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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4.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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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4.22-26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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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5월 19일 주일오전설교==
  
 +======하갈과 사라의 풍유======
 +
 +본문말씀:​ 갈라디아서 4장 22-26절
 +
 +=====서론=====
 +
 +크리스천에게 있어 가장 큰 혼란을 가져오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율법과 은혜”일 것이다. 요 1:17에서 “율법은 모세를 통해 주셨으되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왔”다고 말한다. 율법과 은혜는 서로 대조가 된다. 율법은 우리에게 하라, 하지 말라고 명령하나 은혜는 하나님께서 이루셨으므로 믿으라고 말한다. 사도 바울 당시 갈라디아 지방의 교회들의 사람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전해 듣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으나 그 뒤 율법을 지키는 것을 강조하는 율법주의자들이 교회 내에 들어옴으로써 구원을 받는 방법에 대한 혼란이 생겼다. 사람들은 내 스스로 내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뒤에 자신들의 구원을 유지하게 하는 것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율법주의자들은 그들에게 율법을 지키도록 강요했고 그 중 하나가 “할례”를 행하는 것이었다. ​
 +
 +마찬가지로 오늘날 장로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구주로 믿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구원에 대한 실제적인 질문들을 던지게 되면 대다수가 갈라디아 교회의 사람들이 겪었던 동일한 혼란 가운데 있음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예수님을 믿고 신실하게 교회를 다니고 있었으나 나중에 자살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란 질문 앞에 대다수가 자살하게 되면 구원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예수님을 구주로 믿었다가 어떤 이유로든 실족하게 되어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되면 그 사람은 구원을 잃어버린 자”로 여기는 것이 대다수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분명 장로교회 사람들은 칼빈주의를 가르치기 때문에 구원에 대해 칼빈주의식 접근을 할 것이라 여기겠지만 실제로 많은 수가 아르메니안식 접근을 하는 것을 본다. 이것은 사람들이 은연중에 “교회를 신실하게 다니는 것”과 그 사람의 구원과 매칭을 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
 +그렇다면 율법과 은혜에 대해 성경은 무어라 말씀하실까?​ 특히 갈라디아서 4장에서 바울이 풍유를 들어 말하고 있는 부분을 통해 그 점을 보고자 한다.
 +
 +=====I. 두 여인=====
 +
 +**갈 4:24 그것들은 풍유니라. 이들은 두 언약인데 하나는 시내 산에서 나와 속박 당하게 하는 자니 곧 하갈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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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4:24을 보면 “그것들은 풍유니라.” 라고 말한다. 풍유란 “비유”법 중 하나를 말한다. 이 단어의 영어 단어는 “알레고리”이다. 알레고리란 “추상적인 내용을 구체적인 대상을 들어 설명하는 방법”을 말한다. 반면 풍유란 “어떤 개념이나 사실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다른 대상에 빗대어 풍자적이거나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말한다. 사실 알레고리와 풍유는 의미가 비슷하면서도 약간 상이하지만 적적한 표현이 없기 때문에 사용된 것 같다. 바울은 이제 설명하고자 하는 추상적인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대상을 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전에 언급했듯이 “비유”가 사용되는 이유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함에 있다고 했다.
 +
 +그런데 이 풍유를 두고 이단이 등장하기도 한다. 개역성경은 “비유”라고 번역하였다. 잘못된 번역은 아니다. 비유는 더 넓은 의미이다. 어떤 이단은 창세기의 내용 전체가 다 사실이 아니라 단지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해 “비유”로 주어졌다고 여긴다. 그들은 창세기에 담겨있는 아브라함과 관련된 이야기를 다 사실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않고 지어낸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창세기의 모든 기술은 사실을 담고 있다. 어떤 부분도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 이단은 비유의 범주를 벋어나는 경우가 있다. 알레고리를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추상적인 내용”을 설명하고자 함에 있다. 그 추상적인 내용을 “구체적인 대상”을 들어 설명하는데 예를 들어 오늘 갈라디아서 4장에서 사용된 구체적인 대상은 창세기 15-21장의 사건 중 일부만을 말한다. 그런데 비유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15-21장의 모든 부분들을 다 비유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즉 구약의 모든 부분을 비유로만 풀려하는데 있다. 이것으로 인해 성경을 억지로 풀고 맞지 않는 것을 그 대상으로 두는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이것을 “영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하면 “영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비유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영해에 지나치게 집중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우리는 구약의 사건들을 대할 때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되 영적인 적용을 하고자 한다면 신약성경에서 정한 범주를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비유는 어떤 실제적인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사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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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으로 가서 보면 바울은 율법과 은혜와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먼저 두 여인에 대해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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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4:22-23 기록된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노예 여종에게서 났고 다른 하나는 자유로운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느니라. 23 그러나 노예 여자에게서 난 자는 육체를 따라 태어났고 자유로운 여자에게서 난 자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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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두 여인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와 그녀의 몸종이던 하갈을 두고 말한다. 이 두 여인은 두 언약을 말한다.
 +
 +**갈 4:24 그것들은 풍유니라. 이들은 두 언약인데 하나는 시내 산에서 나와 속박 당하게 하는 자니 곧 하갈이라.**
 +
 +앞서 말하지만 오늘은 풍유적 해석이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들어 바울은 신약의 진리를 설명함에 있다. 그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성경의 모든 해석은 사사로이 해석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
 +
 +두 언약은 우리에게 이 점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과 언약을 맺어 오셨다. 아담과 맺은 언약이 있고 노아와 맺은 언약이 있으며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 있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시내 산에서 맺은 언약이 있다. 이 언약은 세대주의에 있어서도 중요한 부분이다. 모든 세대는 언약을 중심으로 나뉜다. 이 언약 중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해 받았던 언약이 곧 하갈을 의미한다.
 +
 +**갈 4: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이요, 지금 있는 예루살렘에 해당하는 곳으로 자기 아이들과 더불어 속박 중에 있느니라.**
 +
 +우리는 바울이 갈라디아서 전체를 통해 대조하고 있는 것이 율법과 은혜라는 점을 알기 때문에 하갈이 비유하는 것이 율법으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갈이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이자 지금의 예루살렘에 해당하는 곳이라면 반면 사라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에 해당하는 곳으로 28절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약속”을 가져다주는 “은혜”의 언약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말한다.
 +
 +갈 3:6 이것은 곧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씨가 하늘의 별들과 같이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라고 약속하셨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리라고 약속한 언약이고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은 “하라, 하지 말라”와 같은 명령의 언약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아브라함이 할 수 없는 것을 주시겠다는 은혜의 언약이고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은 의로운 삶을 가르치는 율법의 언약이다. 은혜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같이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주님께서 친히 행하시겠다는 약속의 언약이며 율법의 언약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함으로 의 가운데 살아야 하는 행위의 언약이다. 은혜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내가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노니 그가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십자가에서 행하리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며 율법의 언약은 “너희가 이것을 행함으로써 살리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알레고리를 통해 이 두 언약을 두 여인과 비교함으로써 무엇을 말씀하시려 하시는가?​
 +
 +====A. 은혜의 언약의 상징인 사라는 아브라함의 원래의 아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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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라함이 사라의 몸종인 하갈을 자신의 아내로 받아들이기 전에 이미 아브라함의 아내는 “사라”였다. 아브라함이 하갈을 자신의 아내로 받아들였다고 해서 사라가 아브라함의 아내라는 사실에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않았다. ​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은혜의 언약을 주신 것은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명하신 것보다 먼저였다.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은혜의 언약을 위한 증표로 주신 것이었다. 또한 은혜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의 언약보다 430년 앞섰다.
 +
 +갈 3:15-18 형제들아,​ 내가 사람들의 관례대로 말하노니 그것이 단지 사람의 언약이라도 일단 확정되면 아무도 취소하거나 거기에 더하지 못하느니라. 16 이제 그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하신 것인데 그분께서 여럿을 가리키며,​ 씨들에게,​ 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를 가리키며,​ 네 씨에게, 하시나니 이 씨는 그리스도시니라. 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확정하신 그 언약을 사백삼십 년 뒤에 생긴 율법이 취소하지 못하며 또 그 약속을 무효로 만들지 못하리라. 18 만일 그 상속 유업이 율법에서 나면 그것은 더 이상 약속에서 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통해 주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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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는 아브라함이 사랑 안에서 택한 그의 아내인 반면 하갈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약속에 대해 인내하지 못함으로 아브라함이 사라의 말을 따라 취한 사라의 하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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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 16:1-3 그런데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그에게 아이를 낳지 못하더라. 그녀에게 한 여종이 있었는데 그녀는 이집트 사람이요,​ 그녀의 이름은 하갈이더라. 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이제 보소서, {주}께서 나를 막으사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하녀에게 들어가소서. 내가 혹시 그녀로 말미암아 아이들을 얻을까 하나이다,​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니라. 3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자기 하녀 이집트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자기 남편 아브람에게 주어 그의 아내가 되게 한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한 지 십 년이 지난 뒤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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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은혜의 언약을 주신 것은 사랑 안에서 주신 것이었으며 율법의 언약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범법들로 인해 더해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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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3:19 그러면 율법은 무엇을 위한 것이냐? 그것은 약속을 받은 그 씨가 오실 때까지 범법들로 인해 더해진 것이요, 한 중재자의 손에서 천사들에 의해 정해진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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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은혜의 언약은 그 뒤에 주어진 율법의 언약이 무효화시킬 수 없었다. 또한 은혜의 언약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언약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계획하시고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정하신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인간을 향한 구원은 아담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차선책으로 구상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었으며 이미 역사의 계획 가운데 세워진 것이었다. 바울은 이 은혜의 언약을 두고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확정하신 언약”이라 말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기 전에 이미 그 언약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었으며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다.
 +
 +====B. 사라가 원래의 아내였으나 하갈이 먼저 첫 아들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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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은혜의 언약을 주신 것은 그의 나이 75세 때의 일이었다. 그 뒤 10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아이가 없던 85년에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여종이 하갈을 주었으며 그녀에게서 이스마엘이 태어났다. 그 뒤 99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주님은 이삭을 약속하셨고 100세에 사라가 이삭을 낳았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이삭보다 십사 년에서 십오 년 정도 더 빨리 태어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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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등의 발단은 사라가 자신을 위해 내준 여종 하갈이 사라보다 먼저 아들을 낳았기 때문이었다. 하갈이 낳은 아들은 “육체를 따라 태어난 자”였다. 반면 사라가 그 뒤에 낳은 아들인 이삭은 “성령을 따라 태어난 자”였다(갈 4:29).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은 성령으로 태어나기 전에 육체를 따라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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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3:5-7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에서 나고 성령에게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에게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이르기를,​ 너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 한 것에 놀라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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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태어나기 전에 이미 우리는 육체를 따라 이 세상에서 존재해왔다. 마치 이삭이 태어나기 전에 아브라함의 사랑을 받아온 이스마엘처럼 우리는 이 육체의 삶에 대해 익숙하다. 이스마엘은 이삭이 태어난 이후로 아브라함의 사랑에서 완전히 멀어졌는가?​ 그러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들 이스마엘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였다(창 21:11). 이와 마찬가지로 육신은 항상 우리에게 근심거리가 된다. 우리로 하여금 성령 안에 있지 못하게 하는 방해꾼이 되기 때문이다.
 +
 +====C. 하갈은 원래 아내가 되어서는 안 되는 자였다. 그녀는 사라의 여종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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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가 하갈을 아브라함의 아내로 준 것은 그녀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불신과 인내하지 못함 때문이었다. 또한 사라가 하갈을 아브라함의 아내로 주었다고 해서 하갈의 신분이 변한 것도 아니었다. 하갈은 여전히 사라의 여종이었다. 사라는 자신의 불신과 인내하지 못함으로 준 하갈에 대해 질투하였고 그녀를 학대하였다. 그로인해 하갈은 자기 주인의 얼굴을 피해 도망하였다.
 +
 +창 16:4-6 ¶ 그가 하갈에게 들어가니 그녀가 수태하니라. 그녀가 자기가 수태한 것을 알고 자기 눈으로 자기 여주인을 멸시하므로 5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당하는 부당한 일을 당신이 당하기 원하나이다. 내가 내 하녀를 주어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녀가 자기가 수태한 것을 알고 자기 눈으로 나를 멸시하니 나와 당신 사이에서 {주}께서 판단하시리이다,​ 하니라. 6 그러나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보라, 당신의 하녀는 당신의 손 안에 있으니 당신이 기뻐하는 대로 그녀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그녀를 학대하니 하갈이 그녀의 얼굴을 피해 도망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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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75세에 약속한 이삭을 왜 100세에 주셨을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라의 태 뿐 아니라 아브라함 역시 죽은 자와 같이 될 때까지 기다리시기 위함이셨다. 사라는 이미 오래전부터 불임이었다. ​
 +
 +롬 4:19 그가 백 세쯤 되었을 때에도 믿음이 약해지지 아니하여 이제는 죽은 자기 몸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또 사라의 태가 죽은 것도 고려하지 아니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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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마찬가지로 율법은 처음부터 사람을 구원하려고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언약의 하녀로 주시려고 계획된 것이었다. 즉,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율법을 주셨을 때 그것은 사람이 율법을 통하여 구원받을 것이라 구상하고 주신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율법과 함께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제시하는 희생물을 드리는 것들에 대해 가르친 것이다. 주님은 율법을 주실 때 구원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율법이 인간을 완전하게 만들 것이라 여기지도 않으셨다. 그렇다면 율법이 주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율법은 은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
 +갈 3:21-25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에 위배되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생명을 줄 수 있는 율법이 주어졌더라면 진실로 의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있었으리라. 22 그러나 성경 기록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두었으니 이것은 주께서 믿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주려 하심이라. 23 그러나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 아래 붙잡혀서 나중에 계시될 믿음에 이르기까지 갇혀 있었느니라. 24 그런즉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훈육 선생이었으니 이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게 하려 함이라. 25 그러나 믿음이 온 뒤에는 우리가 더 이상 훈육 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
 +율법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율법은 사람에게 죄를 알게 하여 준다. 율법은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본래의 얼굴이 어떠한지를 보여준다. 율법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죄인임을 발견한다.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는 존재임을 발견하게 도와준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율법은 또한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훈육 선생이다. 율법은 완전하시고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대해 말하며 또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합당한 우리의 죄들을 위한 희생물이 되심을 보여준다. 이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도록 이끈다. 그러나 율법이 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율법은 생명을 줄 수는 없었다. 율법은 의가 무엇인지를 가르칠지언정 율법 안에서 사는 자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율법은 생명을 가져다주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은혜는 다르다. 은혜는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하심을 보여주시며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이루어 놓으신 그 구속을 받아들이도록 이끔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도록 한다. 은혜를 구원을 가져다 준다.
 +
 +딛 2:11-13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 12 우리를 가르치시되 경건치 아니한 것과 세상에 속한 정욕들을 우리가 거부하고 이 현 세상에서 맑은 정신을 가지고 의롭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13 저 복된 소망과 위대하신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느니라.
 +
 +====D. 하갈은 자유로운 여자가 아니었고 사라는 반대로 여종이 될 수 없었다.====
 +
 +하갈이 아브라함의 아내가 되었다고 해서 하갈의 신분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그녀는 사라의 여종이었다. ​
 +
 +창 16:9 {주}의 천사가 그녀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 돌아가 그녀의 손 밑에서 복종하라,​ 하고
 +
 +이와 마찬가지로 율법의 언약은 절대 자유로움을 줄 수 없다. 만일 누군가가 율법의 언약 아래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면 그는 절대 자유로움 가운데 걷지 못할 것이다. 분명 그는 정직하고 선한 삶을 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예 여자에게서 태어난 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육신도 그와 같다. 옛 본성을 가지고 사는 것은 선한 삶을 살수는 있을 수는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를 맺는 성령 안에서의 삶은 살 수 없다. 육신 안에서 사는 삶은 사망을 가져올 뿐이다.
 +
 +**갈 4:25-26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이요, 지금 있는 예루살렘에 해당하는 곳으로 자기 아이들과 더불어 속박 중에 있느니라. 26 그러나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로운 자니 곧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
 +
 +하갈은 “지금 있는 예루살렘에 해당하는 곳” 즉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한다. 바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대속의 사역에 대해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오신 메시야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고 여전히 율법을 통해 스스로 의로워지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의 멍에를 매어도 율법이 가르치는 그리스도를 거부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율법의 언약 하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는 사람은 속박 아래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와 반대로 사라는 자유로운 여자로 “위에 있는 예루살렘”에 해당한다. 셋째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앞으로 우리가 거할 처소를 의미한다. 그것은 우리가 서 있는 은혜를 보여준다. 은혜는 우리 모두에게 생명을 주는 “어머니”인 셈이다. 율법은 생명을 주지 못하여도 은혜는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다준다.
 +
 +율법의 언약은 우리를 “종”으로 만드나 은혜의 언약은 우리를 “아들”이 되게 한다. 종과 아들은 동일하게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고 행하나 그 동기에서 다르다. 종은 두려움 가운데 그것을 행하나 아들은 아버지와 아들의 순종의 마음 가운데 행한다. 즉 우리에게 다른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
 +====E. 하갈은 그녀의 아들과 함께 쫓겨나나 사라는 절대 그렇지 않다.====
 +
 +사라가 이스마엘이 자기가 낳은 이삭을 희롱하자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그의 아들을 내쫓”기를 간구했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 둘을 내보냈던 것처럼 율법의 언약은 영구한 목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잠시동안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은혜는 모든 시대에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 ​
 +
 +율법의 역할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였다. 아브라함에게 있어 하갈과 이스마엘은 사라가 이삭을 낳을 때까지 기쁨을 주었다. 그 뒤 여종의 아들은 약속으로 받은 아들과 함께 상속을 받을 수 없었다. ​
 +
 +사라가 나이가 들어 죽었을 때 아브라함은 막벨라에 있는 동굴에 그녀를 두었고 또 아브라함이 죽었을 때 이삭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을 마찬가지로 그곳에 두었으나 하갈은 그곳에 두지 않았다. 하갈은 그곳에 절대 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구원에 대해 어떤 선행을 해야 유지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하갈을 막벨라 동굴에 두려는 시도와 같은 것이다.
 +
 +=====II. 두 아들=====
 +
 +사라와 하갈이 각각 아들을 낳아 두 아들이 아브라함에게 있었듯이 이 비유 역시 사라와 하갈 뿐 아니라 두 아들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
 +**갈 4:31 그런즉 형제들아,​ 이처럼 우리는 노예 여자의 아이가 아니요 자유로운 자의 아이니라.**
 +
 +하갈이 율법을 비유하는 것처럼 이스마엘은 자기 육체의 힘으로 의로워지고자 하는 자를 비유하며 이삭은 그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기적적으로 태어난 것과 같이 성령님으로 태어난 자들을 비유한다. 만일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모든 죄들을 위한 헌물로 드려지셨고 나를 위한 대속물이 되셨음을 믿고 그분을 신뢰하며 내 힘으로 구원받을 수도 없고 구원을 유지할 수도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자라면 우리는 자유로운 자의 아이 즉,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자들이다. 그러나 육신으로 의롭게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두 아들의 풍유를 보자.
 +
 +**갈 4:29 그러나 그때에 육체를 따라 태어난 자가 성령을 따라 태어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지금도 그러하도다.**
 +
 +====A. 이스마엘이 맏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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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삭이 태어나기 전에 이스마엘이 태어났으며 육신적 탄생이 영적 탄생보다 앞선다. 따라서 이삭이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 이스마엘은 다 큰 청년이었다. 외적인 힘으로 이삭은 이스마엘을 이길 수 없었듯이 육신의 힘은 우리로 하여금 성령님 안에서 걷는데 큰 장애물이 된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걸음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를 맺는 것보다 육신이 우리로 하여금 죄를 범하게 하는 유혹과 힘이 더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은혜와 지식 안에서 자라나야 한다. 우리는 완전함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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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이스마엘과 이삭의 차이는 본질의 차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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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마엘과 이삭 모두 할례를 받았다. 둘 다 아브라함에게서 사랑을 받았고 아브라함의 피를 물려받았을 뿐 아니라 이스마엘도 좋은 성품의 사람이었다. 아브라함을 장사지낼 때에 이스마엘도 함께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 역시 복을 주셨고 그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다. 그렇다면 이 둘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그들의 본질에 있다. 이스마엘은 육신을 따라 태어났고 이삭은 성령을 따라 태어났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불신과 인내하지 못한 결과로 얻게 된 아들이라면 이삭은 불가능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믿음 안에서 성령님의 놀라운 역사로 말미암아 얻게 된 태의 열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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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두 부류가 존재한다. 먼저는 육체적 탄생만을 지닌 사람들이다. 두 번째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그는 더 이상 육신을 따라 하나님께 알려지지 아니하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그의 영을 따라 하나님께서 그를 아신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거듭난 우리가 성령님 안에서 걷기를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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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율법을 지키려는 자들과 성령님 안에서 걷는 자들의 겉모습은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둘 다 선한 삶을 추구하고 율법 안에서 걷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차이는 내면에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율법을 지키려 애쓰는가?​ 아니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걸음으로써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는가?​ 결과는 같아 보여도 마음의 동기는 완전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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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 8:4 이것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는 우리 안에서 율법의 의가 성취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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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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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4:29 그러나 그때에 육체를 따라 태어난 자가 성령을 따라 태어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지금도 그러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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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체를 따라 태어난 이스마엘이 성령을 따라 태어난 이삭을 핍박하였던 것처럼,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며 율법을 지키며 스스로 의로워지고자 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전파하던 바울을 박해하였다. 뿐만 아니라 거듭난 크리스천 안에서 육체는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하는 것을 막는 가장 큰 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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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5:16-17 그런즉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곧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신은 성령을 대적하여 욕심을 부리고 성령은 육신을 대적하나니 이 둘이 서로 반대가 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너희가 능히 하지 못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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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본성은 자신의 소유를 주장하려 한다. 마치 이스마엘이 이삭에게 내가 아브라함의 맏아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십자가에 처형된 옛 본성은 여전히 우리의 몸에 대해 자기의 소유를 가지려 한다. 그러나 옛 본성으로 살아가는 것은 성령을 따라 걷는 즉, 믿음과 은혜 안에서 사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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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 이삭은 약속의 상속자였으나 이스마엘은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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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오직 이삭 안에서 네 씨가 부름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육체를 따라 사는 삶을 축복하지 않으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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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신을 따라 사는 삶의 결말은 “사망”이다. 우리는 거기서 거둘 것이 없다.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살았을 때 앞으로 갈 곳을 위해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을 따라 사는 삶을 축복하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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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6:20-61 오직 너희 자신을 위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서는 좀과 녹이 부패시키지 아니하며 거기서는 도둑들이 뚫지도 훔치지도 못하느니라. 21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거기에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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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신은 약속의 상속자가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축복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우리에게 주실 모든 축복은 성령님 안에서 걸을 때에 얻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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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 이스마엘은 쫓겨나야 했으나 이삭은 집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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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4:30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기록이 무어라 말하느냐?​ 노예 여자와 그녀의 아들을 내쫓으라. 노예 여자의 아들은 자유로운 여자의 아들과 함께 상속자가 되지 못하리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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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옛 사람은 이미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 보시기에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산다면 이제 성령님을 따라 걸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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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5:24-25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애착들과 정욕들과 함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살면 또한 성령 안에서 걸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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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사람이 십자가에 이미 처형된 것처럼 우리는 성령 안에서 육신을 죽은 것으로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걸어야 한다. 육신이 주는 생각은 절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으며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리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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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 8:12-15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을 따라 살도록 육신에게 빚지지 아니하였느니라. 13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로되 성령을 통해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 14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 받는 자들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니 15 너희는 다시 두려움에 이르는 속박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 삼으시는 [영]을 받았느니라. 그분을 힘입어 우리가, 아바, [아버지],​ 하고 부르짖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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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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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예 여자와 그녀의 아들을 내쫓으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이다. 율법을 통해 우리는 절대 의롭게 될 수 없다. 우리는 은혜를 저버리고 스스로 의롭게 하고자 하는 모든 행위를 용납해서는 아니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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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걸어야 한다. 매 순간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육신이 주는 즉 옛 사람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걸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양자 삼으시는 영을 따라 걷는 것이다. 여러분은 하갈의 아들인가?​ 아니면 자유로운 여자의 아들인가?​
갈4.22-26.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