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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5.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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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5.25-26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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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2월 12일 주일오전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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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헛된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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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갈라디아서 5장 25-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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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5:25-26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살면 또한 성령 안에서 걸을지니 26 우리가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시기하지 말지니라.
 +개역성경 -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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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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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이 이 세상 사람들과 동화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사실 우리는 이 악한 현 세상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성령을 주시고 또한 하나님의 새로이 주어진 본성을 따라 우리가 살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종종 우리는 옛생활 즉 구원받기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버리는 경우가 많다. 혹은 우리가 구원받은 후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않았을 수도 있다.
 +
 +예를 들어 고아원에서 어릴 때부터 자라온 아이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런데 어느날 한 사람이 와서 그 아이를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기를 희망했고 모든 서류절차가 진행되어 그 아이는 법적으로 그 사람의 아들이 되었다. 이제 그 사람은 그를 데리고 자신이 사는 집으로 와서 그를 씻기고 새옷을 입히고 그의 방을 정해주고 그와 함께 식사를 했다. 그렇다면 이 아이는 이제 그 사람의 아이가 되었으므로 그와 함께 하는 것과 그의 집에서 보내는 것이 자연스럽게 진행될까?​ 내 생각은 아닌 것같다. 처음 아이는 모든 것이 낯설고 익숙하지 않으며 심지어 그 남자에게 “아빠”라고 부르는 것조차 익숙하지도 않고 그의 자고 일어나서 행하는 것과 또 식사나 행하는 모든 것이 어리숙하게 보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아이에게 어떻게 행해도 되는지 설명하고 가르쳐주는 것이 필요하게 된다.
 +
 +마찬가지로 누군가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당장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지는 못한다. 그는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 두려워함을 배우며 또 성경의 말씀을 암송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을 겪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믿지 아니할 때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게 될 것이다.
 +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마음이 있다. 그것은 내 자신이 소중하다는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를 존중하고 높이려 하며 또한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문제는 그것이 이기적으로 변질되기 쉽다는 점이다. 자기 자신의 유익을 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구하지 않거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 어떤 해나 상처가 되어도 크게 유념하지 않고 오직 모든 생각이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하게 될 수 있다. 이런 생각은 결국 다른 사람과의 경쟁을 유도하기 쉽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자신이 높아지거나 인정받고자 하는 행동을 취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사회문제만은 아니다. 이 문제는 교회 내에서도 발견이 된다.
 +
 +=====II.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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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엡 4:3 화평의 매는 띠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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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은 우리에게 화평의 매는 띠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오늘날 사회와 완전히 다른 방향임을 보여준다. 사회는 우리가 경쟁을 통해 인정받게끔 유도한다. 회사에서 더 많은 월급과 더 높은 지위를 누리기 위해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게 하고 또한 학교에서 학생들 간에 경쟁을 유도한다. 한국의 사회 시스템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 내에서 우리가 그래서는 아니 됨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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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엡 4:1-6 그러므로 주의 갇힌 자 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를 부르실 때에 허락하신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걷고 2 모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사랑 안에서 서로 참아 주며 3 화평의 매는 띠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너희를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것 같이 한 몸과 한 성령이 있고 5 한 주와 한 믿음과 한 침례가 있으며 6 한 하나님이 계시니 곧 모든 것의 아버지시라. 그분께서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에 두루 계시며 또 너희 모두 안에 계시느니라.
 +
 +성경은 우리가 “모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사랑 안에서 서로 참아 주며 화평의 매는 띠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하신다. 왜 그러한가?​ 우리는 함 몸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 모두는 서로가 경쟁의 대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우리는 한 몸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서로를 위하며 참아주고 사랑하는 대상임을 보여준다. 이것은 가족과 같다. 가족내에서 형제들은 서로 다투고 싸우며 경쟁하는 대상이 아니다. 누군가가 다른 이보다 더 재능이 있어 뛰어날 수 있다. 그러나 가족은 서로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다. 누군가 부족하면 다른 가족의 일원은 그 사람의 부족을 감싸주고 서로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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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이들에게 서로 싸우지 말라고 강조한다. 아이들은 서로 트러블이 생기면 싸움을 하게 된다. 그리고 때로 서로 미워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그들에게 가족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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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과 나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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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12:20-27 그러나 이제 그것들이 많은 지체이나 그럼에도 오직 한 몸이라. 21 눈이 손에게 이르기를,​ 나는 네가 필요 없다, 하지 못하며 또 머리가 발에게 이르기를,​ 나는 네가 필요 없다, 하지 못하리라. 22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그 지체들이 더욱 더 필요하고 23 또한 우리가 덜 귀한 것으로 여기는 몸의 그 지체들 곧 이것들에게 우리가 귀한 것을 더 풍성히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부분들은 아름다운 것을 더 풍성히 얻나니 24 우리의 아름다운 부분들은 부족한 것이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몸을 다 같이 고르게 하사 부족한 그 부분에게 더욱 귀한 것을 풍성히 주셨으니 25 이것은 몸 안에 분쟁이 없게 하고 오직 지체들이 서로 같은 보살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26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그것과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존귀를 얻으면 모든 지체가 그것과 함께 기뻐하느니라. 27 이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개별적으로 지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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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몸 안에 분쟁이 없게 하고 오직 지체들이 서로 같은 보살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교회가 추구해야할 것이다.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하신대로 우리는 이것을 힘써 지켜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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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여러분 모두를 대할 때 되도록 편견을 가지고 대하지 않으려고 하며 또 차별대우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누군가를 더 편애하거나 덜 예뻐하는 것은 가족 안에서 있어서는 안된다. 부모는 모든 가족의 일원을 동일한 사랑으로 대하며 차별대우하지 않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교회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을 대하는 동일한 심정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필요를 동일하게 생각해야 한다. 특히 목사라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대하거나 혹은 내가 사람들을 대함에 있어 더욱 주의를 가지지 않으면 안되는 자리에 있다. 여러분 중 내가 누군가에게만 더 잘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기대는 버리라. 그것은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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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헛된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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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사회가 경쟁을 유도하듯이 교회 내에서도 그런 일들은 반드시 일어난다. 그것은 우리가 육체안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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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벧전 1:24-25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사람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라. 풀은 마르고 그것의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지속되나니 복음으로 너희에게 선포된 말씀이 곧 이 말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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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영광은 풀의 영광과 같다. 그것은 잠깐동안 있는 것에 불과하다. 육체가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영광도 영원하지 않다. 그런데 그 영광을 사람들은 강하게 바라는 것이다. 인간의 영광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헛된 영광이 될 수밖에 없다. 더 높은 지위와 명예와 더 좋은 대접을 받으며 인정받으려 하며 더 편안하게 살며 더 많이 소유하여 자랑하는 것이 이 육체가 바라는 것들이다. 주님은 그것들을 완전히 버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먹고 마시며 소유하며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말한바와 같이 이 육체의 영광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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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일 2:15-17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어떤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은 아버지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나느니라. 17 세상도 그것의 정욕도 사라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토록 거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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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말씀을 보라. “우리가 헛된 영광을 구하여”라고 말한다. 사도 바울은 그 사람의 마음에 헛된 영광에 대한 욕심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육신의 욕망을 바라는 것을 말한다. 헛된 영광이란 이 세상에 속하고 육신에 속한 것들을 헛되이 자랑하는 것을 말한다. 주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고 이제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 그분과 함께 일으켜진 자로써 살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추구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이 세상에 속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인가?​ 아니면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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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 3:1-3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일어났거든 위에 있는 그것들을 추구하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에 있는 것들에 너희의 애착을 두고 땅에 있는 것들에 두지 말라. 3 너희는 죽었고 너희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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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은 다른 아이보다 자신이 더 잘하기를 바라며 노력한다. 그들은 경쟁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다. 다른이에게 게임이나 무언가에서 지는 것은 그들에게 커다란 슬픔과 실망을 가져다 준다. 그리고 이기는 것은 그들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준다. 이기게 되면 그렇기 때문에 다른이가 기분이 나쁠 정도로 자랑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그들은 경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배운다. 내가 지면 실망으로 기분이 나빠지는 것처럼 상대도 그러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며 내가 자랑할 때 상대방이 기분이 안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즉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배워간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서로를 사랑으로 감싸주고 아끼는 법을 배워간다. 성장한 사람은 이제 자신보다 타인의 감정을 보살필 줄 알게 된다. 그런데 커서도 여전히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다른 사람과 항상 경쟁관계에서 살아가게 되면 그 사람의 사회생활은 순탄치 않을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타인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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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교회내에서도 동일한 마인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육신의 영광을 추구함으로써 헛된 것들을 자랑함으로써 살고자 하는 성도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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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헛된 영광은 원어로 “케노독소이”로 되어 있으며 “내가 자랑할 것이 있다고 헛되이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교회 내에서 자신이 가진 재능이나 지식이나 지위나 재산이나 학위와 같은 육신의 영광이 될 만한 것들을 가지고 인정받고 높임받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영광을 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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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헛된 영광의 폐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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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5:26 우리가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시기하지 말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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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성도가 여전히 세상의 것들을 추구하고 그것들을 자랑하려 할 때 어떤 일들이 있게 되는가? 성경은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시기하지 말지니라.”라고 말한다. 누군가가 헛된 영광을 구하게 되면 나타나는 현상은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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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서로 노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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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헛된 영광을 구하는 것은 이와 같다. 나는 이거할 수 있다. 너는 못하지? 나는 이거 있다. 너는 없지? 나는 이거 먹는다. 너는 못 먹지? 그것은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기분만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경쟁의식을 갖게 만든다. 여기 “노엽게 하다”로 쓰인 영어 단어 provoke는 단순하게 화나게 하는 뜻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발하다,​ 도발하다”의 뜻도 있다. 헛된 영광을 구하게 되면 상대방 역시 육신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마치 아이들이 너 이거 없지? 나 이거 있다! 하면 상대 아이도 넌 이거 없지? 이렇게 나오듯이 육신적인 생각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것은 화평의 매는 띠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는 것을 깨뜨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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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린도 교회는 육신적인 교회였다. 그들 가운데 다툼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나는 너희보다 더 좋은 파에 속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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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1:10-15 형제들아,​ 이제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다 같은 것을 말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생각과 같은 판단 안에서 완전히 함께 결합하라.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안사람들 편으로 너희에 관한 일 곧 너희 가운데 다툼이 있음을 내가 밝히 알게 되었노라. 12 이제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곧 너희가 각각 이르기를,​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께 속하였다,​ 하는도다. 13 그리스도께서 나뉘셨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느냐?​ 혹은 너희가 바울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느냐?​ 14 내가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가운데 아무에게도 침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15 이것은 아무도 내가 내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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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가 나는 바울파야.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았거든. 그가 누군지 알아? 그는 이방인들을 위한 위대한 사도야! 그러자 다른 사람이 나는 아볼로파야. 바울은 말하는 것도 그렇고 생김새도 그렇쟌아. 아볼로는 말도 잘하지, 또 얼마나 미남인데. 다른 사람은 나는 게바파야.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에게서 가르침을 받았거든. 그러니까 내가 정통이지. 그러냐? 나는 그리스도파야. 내가 아는 것은 그분의 계시를 받아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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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에게 바울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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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1:29-31 이것은 어떤 육체도 자신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그러나 너희는 하나님에게서 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사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성별과 구속이 되셨으니 31 이것은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를 자랑할지니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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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추구할 자랑은 우리의 육체의 영광이 아니다. 이것은 풀과 같은 육체와 함께 사라져버릴 것이다. 또한 주님이 우리를 택하신 것은 우리에게 어떤 자랑할 만한 것이 있어서가 아니다. 여러분이 가진 재능은 여러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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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4:7 누가 너를 다른 사람과 구별되게 하느냐? 네가 가진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이제 네가 그것을 받았을진대 어찌하여 그것을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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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은 우리에게 어떤 것도 경쟁이나 헛된 영광으로 하지 않기를 권고했다.(빌 2:3의 strife는 경쟁의 의미도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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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 2:3 어떤 일도 다툼이나 헛된 영광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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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서로 시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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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로 헛된 영광은 서로 시기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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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의 헛된 영광은 교회의 하나됨을 무너뜨릴 뿐 아니라 성도로 하여금 마땅히 생각해야 할 바 이상으로 생각하게 한다.
 +
 +롬 12:3 내게 주신 은혜를 힘입어 너희 가운데 있는 각 사람에게 내가 말하노니 각 사람은 마땅히 생각할 것보다 더 높이 자기에 대하여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믿음의 분량을 나누어 주신대로 맑은 정신으로 생각하라.
 +
 +이것이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에 대해 가져야할 생각이다. 그러나 헛된 영광은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없는 것을 탐내는 마음을 갖게한다. 그것은 마치 지체들이 서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아이들은 누가 무언가를 하려면 그에 대한 시기로 자기도 한다고 나서는 경우가 있다. 누가 반장선거에 나서면 자기도 꼭 나서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생각이 아니다.
 +
 +약 3:14-18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며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아니요, 땅에 속한 것으로 관능적이며 마귀에게 속한 것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거기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느니라. 17 그러나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순수하고 다음으로 화평하며 부드럽고 간청을 잘 들어주며 긍휼과 선한 열매로 가득하고 차별과 위선이 없나니 18 의의 열매는 화평케 하는 자들의 화평 속에서 뿌려졌느니라.
 +
 +사울 왕은 골리앗을 죽인 다윗을 두고 그를 크게 사용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를 오히려 크게 무너지게 만든 것은 사람들의 말이었다.
 +
 +삼상 18:5-9 사울이 다윗을 보내는 곳마다 그가 가서 지혜롭게 행동하매 사울이 그를 세워 군사들을 다스리게 하였더니 온 백성의 눈앞에서와 사울의 신하들의 눈앞에서 그가 인정을 받으니라. 6 그들이 돌아올 때 곧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을 살육하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의 모든 도시에서 나아와 노래하고 춤추며 작은북과 악기를 가지고 기뻐하며 사울 왕을 맞이하더라. 7 여인들이 놀며 서로 화답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수천이요,​ 다윗은 수만이로다,​ 하니라. 8 사울이 심히 노하고 그 말을 기쁘게 여기지 아니하였으므로 이르되, 그들이 다윗에게는 수만을 돌리고 내게는 수천만 돌리니 왕국 외에 그가 더 얻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하고 9 그 날 이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
 +사울의 마음에 걸린 것은 “사울이 죽인 자는 수천이요,​ 다윗은 수만이로다.”라는 말이었다. 그는 자신이 더 크게 영화롭게 되기를 바랬을 것이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것으로 인해 여인들이 그렇게 나왔을 것이라고 더 큰 마음으로 대하기보다 그의 마음은 시기심으로 가득해 그가 원하는 것은 왕국일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사울은 그 뒤로 다윗을 죽이고자 여러 번 시도하였다. 그는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게 되었다. 주님은 더 이상 사울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
 +민수기 16장을 보면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회중 안에서 유명하여 명성이 있는 자들을 데리고 데모 집회를 열었다. 그들이 모세에게 한 말은 이것이었다. ​
 +
 +민 16:3 그들이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려고 함께 모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넘치게 행하는도다. 온 회중 곧 그들 각 사람이 거룩하고 주께서도 그들 가운데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 자신을 주의 회중보다 높이려 하느냐? 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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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모세와 아론이 누리는 영화를 자신들도 누리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헛된 영광을 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 대해 시기심으로 움직였다. 모세는 다음과 같음 말로 그들을 책망하였다.
 +
 +민 16:8-11 모세가 또 고라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희 레위의 아들들아,​ 들으라. 9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회중으로부터 너희를 구별하여 자신에게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성막에서 섬기는 일을 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섬기게 하신 것이 너희에게는 단지 작은 일로 보이느냐?​ 10 그분께서 너와 또 너와 함께하는 너의 모든 형제 곧 레위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자신에게 가까이 있게 하셨거늘 너희가 제사장 직분도 구하느냐?​ 11 이런 까닭으로 너와 너의 모든 무리가 다 함께 모여 주를 대적하는도다. 아론이 누구이기에 너희가 그에게 불평하느냐?​ 하니라.
 +
 +그들은 현재 다른 지파에서 누리지 못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그들은 주의 성막에서 섬기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얼마나 놀라운 특권인가?​ 다른 지파들은 주의 성막에 함부로 나아올 수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모세와 아론이 누리는 것이 더 커보였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이 누리는 명예를 자기들도 누리고 싶어했다. 그들의 행위로 인해 이스라엘은 하나가 되지 못하고 분열되고 말았으며 주님은 크게 진노하셨다.
 +
 +=====IV. 해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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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5:25-26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살면 또한 성령 안에서 걸을지니 26 우리가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시기하지 말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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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헛된 영광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헛된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A.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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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절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중요한 점을 지적한다. ​
 +
 +갈 5:24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애착들과 정욕들과 함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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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애착들과 정욕들과 함께 육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주체는 누구인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있다. 그것은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의 주와 구주로 영접한 순간에 이루어졌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처형된 것이다. 그러나 실행적인 측면에서 주님은 우리가 “애착들과 정욕들과 함께 육신”을 십자가에 못박기를 원하신다. 영어 역시 현재완료형으로 되어있다(have crucified). 그 말은 이것이 현재에도 지속되는 행위임을 말한다. 그것은 육신의 헛된 영광을 구하고자하는 모든 욕구에 대해 죽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 세상과 육신에 속한 어떤 애착과 욕심에 대해 죽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나는 이미 이 세상에 대해 죽은 자로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 자로서 “위에 있는 것들에 너희의 애착을 두고 땅에 있는 것들에 두지 않”는 것이다(골 3:2).
 +
 +====B. 성령 안에서 걸음====
 +
 +갈 5:25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살면 또한 성령 안에서 걸을지니
 +
 +여기의 걷는다는 단어는 16절에서 말하는 성령 안에서 걸으라 와 다른 단어이다. 여기의 단어는 “스토이코멘”이 사용되었는데 그 의미는 “보조를 맞추어 걷다”라는 의미가 있다. 이 단어가 쓰인 곳이 롬 4:12이다.
 +
 +롬 4:12 또 할례자들에게 속할 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아직 할례 받지 않은 때에 소유한 그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자들에게 할례의 조상이 되려 함이라.
 +
 +먼저 우리는 구원받은 자라면 우리는 성령 안에 살고 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 우리는 그분 안에 있고 그 존재를 갖는다. 그렇다면 이제 주님은 성령 안에서 걷기를 원하신다.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말씀에 따라 보조를 맞추어 걸어야 한다. 성령 안에서 걷는다는 것은 성령의 통제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주님은 분명 우리 마음속에서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여주시기도 하고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분의 말씀안에 걷도록 마음을 인도하신다. 그것에 저항하지 말라. 오히려 보조를 맞추어 걸으라. 기록된 말씀에 따라 걸어가려고 하라. 성령께서는 육신의 욕망이 아닌 그리스도께서 원하는 것들을 우리안에서 이루시도록 우리를 이끌 것이다.
 +
 +
 +=====V.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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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헛된 영광을 구하는 것은 우리가 육신의 자랑을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서로 노엽게 하고 서로 시기하게 만들 뿐이다. 그것으로 인해 누군가는 상처를 입고 육신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속한 하늘나라에 있는 것들에 애정을 두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애정과 원함이 어디있는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죽으셨다 부활하시어 하늘에 오르신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 그것을 두라. 우리의 생명이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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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애착들과 정욕들과 함께 육신을 십자가에 처형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은 헛된 영광을 구하는 육신의 모든 욕망에 죽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또한 성령안에서 그분의 인도하심에 보조를 맞추어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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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5.25-26.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