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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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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3.11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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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11월 7일 주일오전설교==
  
 +======성장통======
 +
 +본문말씀:​ 고린도전서 13장 11절
 +
 +**고전 13:11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깨달으며 아이처럼 생각하였으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의 일들을 버렸노라.**
 +
 +=====I. 서론=====
 +
 +//​성장통에 대한 일화//
 +
 +한참 성장하는 아이들이 겪는 통증이 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성장통이라 부릅니다. 이 성장통이 강한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고 거의 없이 지나가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장판을 통해 자라는 뼈의 성장속도와 뼈에 부착된 근육과 힘줄의 성장속도가 달라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뼈의 성장속도와 뼈에 부착된 근육과 힘줄의 성장속도의 차이는 아이들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그 통증의 정도도 다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저희 아이들도 자다가 울던 기억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진이때는 기억이 나지 않을뿐더러 당시 성장통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밤에 보채는 아이가 뭐 때문에 우는지도 모르고 혼을 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은 아파도 그 이유를 잘 말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건희도 아프다고 해서 제가 다리를 주물러 준 기억이 있습니다. 준서도 자다가 갑자기 아프다고 해서 저와 아내가 잠에서 깨어 주물러 주니 울음을 그치고 계속 잠을 자던 기억이 납니다. ​
 +
 +성장통은 자라면 저절로 없어지는 병입니다. 따라서 이 약에 대한 전문적 치료약은 없습니다. 성장통은 어른들에게는 없습니다. 어른들은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기 때문이죠. 단지 어른들은 늙어가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질병들이 있습니다.
 +
 +오늘 저는 크리스천의 성장통에 대해 보려고 합니다.
 +
 +먼저 본문을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우리에게 어떠한 변화가 있을지로 보여줍니다. 10절에서 “완전한 것이 오면” 이라고 말합니다. 이 “완전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구약 성경을 말한다고 합니다. 바울이 성경을 기록할 당시는 아직 신약성경이 완전히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신약성경이 완성되었을 때 이제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히 우리에게 제시된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이 완전히 주어졌을 때”를 상징적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하는 주장이 있습니다.
 +
 +어떤 사람들은 “완전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완전한 것이라고 말하면 물건과 같은 것인데 예수님은 인격체이므로 어떻게 사물을 받는 대명사가 왔는가에 대해 예수님을 두고 누가복음 1:35에서 “거룩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
 +눅 1:35 천사가 그녀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님께서 네게 임하시고 가장 높으신 이의 권능이 너를 덮으시리니 그런즉 또한 네게서 태어날 그 거룩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리라.
 +
 +다른 주장은 이 완전한 것이라는 것은 우리의 완전한 몸을 말하는 것이란 주장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린도전서 15:49에 나오는 하늘에 속하신 분의 형상을 말합니다.
 +
 +고전 15:49 우리가 땅에 속한 그 사람의 형상을 지닌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하신 그분의 형상을 지니게 되리라.
 +
 +고린도전서 15:​53에서도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반드시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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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개인적으로 이 마지막 주장이 올바른 성경적 해석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이유는 12절을 보면 “우리가 지금은 거울을 통하여 희미하게 보나 그때에는 얼굴을 마주 대하여 보며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시는 것같이 나도 알리라”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 라는 것은 여기서 우리가 주님과 마주대할 수 있는 날 즉 우리 몸이 변화된 날임을 뜻한다고 여겨집니다. 뿐만 아니라 그 완전한 것이 누구에게 오느냐?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로 온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부분적으로 하던 것들이 없어지게 된다고 10절에서 말하고 12절에서는 내가 주께서 나를 아시는 것같이 부분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우리 몸의 변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
 +여하튼 간에 우리 몸의 변화로 인해 우리가 소유하게 될 지식과 우리가 현재 소유한 지식을 비교할 때 그것은 아이와 어른의 지식의 차이와 같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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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13:11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깨달으며 아이처럼 생각하였으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의 일들을 버렸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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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불완전한 지식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가 변화되는 그 때에 우리가 소유하게 될 지식은 불완전한 지식이 아니라 완전한 지식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됨을 뜻합니다. 또한 현재 우리가 불확실하게 아는 모든 것들이 이제 마치 맑은 날 높은 곳에서 시가지를 바라볼 때 구름한점없어 모든 것이 멀리까지 다 내려다 보이는 것처럼 모든 것을 다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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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저런 일들이 일어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어떤 장소로 인도하시기도 하며 때로는 고난 가운데 우리를 두시고 혹은 슬픔 가운데 두시기도 하며 혹은 나와 전혀 성격이 맞지 않는 사람과 파트너로써 일하도록 두시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우리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채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며 혹은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응답하지 아니하시는 이유를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 때가 되면 모든 것이 다 이해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완전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자애하신 돌보심과 또한 우리의 성장을 위한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을 보면서 이 땅에서 우리가 가졌던 불평, 불만등을 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현재에도 이런 주님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그것은 고린도전서 13장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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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불완전한 지식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대해 무한한 신뢰를 두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불확실한 미래 가운데 놓인 것 같은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의심을 버릴 것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아이일 때나 어른일 때나 동일하게 존재하는 것이며 우리가 전혀 버리지 아니합니다. 사랑은 영원히 있을 것 중 하나입니다.
 +
 +그런데 저는 오늘 이 말씀을 가지고 크리스천의 성장통에 대해 보겠다고 언급했습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자 하는 것은 이 말씀을 현재의 우리에게 적용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아이들이 세 명있고 이 세 명의 아이들이 현재 자라고 있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아이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라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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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후서 3장의 마지막을 보면 “오직 은혜 안에서 자라고 우리 주 곧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서 자라라. 그분께 영광이 이제와 영원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명령으로 주어졌습니다. 또한 이 명령이 주어진 상황을 생각해보십시오. 베드로가 이 명령을 주기 전에 앞으로 주의 날이 이를 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을 대할 것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구원받은 크리스천이라고 심판을 받지 아니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구원받은 크리스천 역시 심판석 앞에 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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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 14:10~12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무시하느냐?​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리라. 11 기록된바,​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굴복하고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였느니라. 12 그러므로 이와 같이 우리 각 사람이 자신에 관하여 하나님께 회계 보고를 하리라.
 +
 +그러나 우리가 받게 될 심판은 세상 사람들이 받는 심판과는 같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게되는 심판은 우리가 행한 일들에 대한 보상을 두고 받는 심판입니다. 우리의 구원여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것은 두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시는 분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행위를 두고 해명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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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후 5:10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리니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 이루어진 것들을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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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전서 4:17에 따르면 하나님의 집에서 반드시 심판을 시작할 때가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기전 먼저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믿는 자들에 대한 심판입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심판석앞에 서게 되는 날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걸어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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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벧전 4:17~19 하나님의 집에서 반드시 심판을 시작할 때가 이르렀나니 만일 그것이 우리에게서 먼저 시작되면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아니한 자들의 마지막은 어떠하겠느냐?​ 18 또 의로운 자들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들과 죄인들은 어디에 모습을 나타내겠느냐?​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잘 행하는 가운데 자기 혼을 그분 곧 신실하신 창조주께 맡겨 지키시게 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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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벧후 3:10~13 그러나 주의 날이 밤의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들이 큰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원소들이 뜨거운 열에 녹으며 땅과 그 안에 있는 일들도 불태워지리라. 11 그런즉 이 모든 것이 해체될진대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겠느냐?​ 모든 거룩한 행실 속에서 하나님을 따르는 가운데 12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서두르라. 그 날에 하늘들이 불이 붙어 해체되고 원소들도 뜨거운 열로 녹으려니와 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분의 약속에 따라 의가 거하는 새 하늘들과 새 땅을 기다리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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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되기위해 반드시 먼저 있어야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영적 성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는 베드로후서를 마치기 전에 정말 중요한 명령을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장한 사람은 이해력이 더 넓습니다. 어른은 자기의 부모의 뜻을 더 잘 헤아릴 줄 압니다. 그래서 부모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베드로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그것을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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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아이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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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본문 말씀은 아이에 대한 특징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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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13:11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깨달으며 아이처럼 생각하였으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의 일들을 버렸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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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아이가 말하는 것과 깨닫는 것과 아이의 생각을 보십시오. 종종 우리는 아이들이 자기 뜻대로 행하려 하거나 혹은 어리석게 행하려 하거나 어른의 입장에서 볼 때 유치한 선택을 하려는 것을 보면 “너희가 나이를 먹고나면 혹은 너희가 자라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하지만 아이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아이들은 아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며 또 적은 지식으로 판단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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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아이처럼 말하고 깨닫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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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아이처럼 우리의 영적인 상태도 적은 지식을 가지고 올바로 판단하지 못하면서도 우리는 나의 선택이 올바른 것처럼 고집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이 성장하도록 역사하며 또한 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하십니다. 만일 크리스천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당연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야 합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이 잘못된 행위나 판단을 하고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치부하는 경우를 봅니다. 한 예를 들어 보이겠습니다. 종종 연예인들 중에는 크리스천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아는 때가 언제냐면 연말에 상을 받을 때입니다. 상을 받고 그 상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사할 줄 아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가끔 미인대회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도 상을 받고 감사를 돌리는 경우가 있는 것을 오래 전에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미인대회가 하나님의 딸이 참석해야할 자리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을 잘못되이 이해하고 있기에 어리석은 자리에서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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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 5:11~14 이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말할 것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말하기 어려우니라. 12 시간으로 보건대 너희가 마땅히 가르치는 자가 되었어야 할 터이나 하나님의 말씀의 첫째 기초 원리들을 남에게 다시 배워야 할 필요가 너희에게 있나니 너희가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젖을 필요로 하는 자가 되었도다. 13 젖을 사용하는 자마다 갓난아이이므로 의의 말씀에 능숙하지 못하니라. 14 그러나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들의 것이니 그들은 그것을 사용하여 자기 감각들을 단련시킴으로 선악을 분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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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왜 내가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지 못할까?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시간을 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시거나 혹은 그 말씀을 묵상해 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원리를 모르게 되면 그것에 근거한 하나님의 뜻을 전혀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것은 또한 삶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두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거나 혹은 주님의 징계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선택을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아는 것이 단지 목사의 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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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6:4~9 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주시니 5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6 이 날 내가 네게 명령하는 이 말씀들을 네 마음속에 두고 7 그것들을 네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네가 네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걸어갈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그것들을 말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들을 네 손에 매어 표적으로 삼고 네 눈 사이에 두어 이마의 표로 삼으며 9 또 네 집의 기둥과 문에 기록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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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1:1~2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계획대로 걷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모욕하는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2 그는 주의 율법을 기뻐하며 그분의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하는도다.
 +
 +묵상하는 일은 여러분의 암기력을 늘려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여러분의 삶에 가져오는 일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도록 인도합니다.
 +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아는 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속지 않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쉽게 속는 사람이 아니라 깊게 사고하고 판단하며 어떤 것이 주님의 뜻인지를 알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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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엡 4:13~16 마침내 우리가 다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에서 하나가 되어 완전한 사람에 이르고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리니 14 그 목적은 우리가 이제부터 더 이상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들의 속임수와 몰래 숨어서 속이려 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간교한 술수로 말미암아 온갖 교리의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 밀려다니지 아니하고 15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모든 일에서 그분 안에 이르도록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 그분은 머리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16 그분으로부터 온 몸이 각 부분의 분량 안에서의 효력 있는 일에 따라 모든 마디가 공급하는 것에 의해 꼭 맞게 함께 결합되고 들어차서 몸을 자라게 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세우느니라.
 +
 +
 +====B. 아이처럼 행한다====
 +
 +아이들처럼 우리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할 뿐 아니라 우리는 종종 아이들처럼 걷기도 합니다.
 +
 +고전 3:1~4 형제들아,​ 내가 영에 속한 자에게 말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갓난아이들에게 말하는 것 같이 하였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음식으로 하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지금까지 너희가 그것을 능히 감당하지 못하였으며 지금도 못하기 때문이라. 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하였도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다툼과 분열이 있으니 너희가 육신에 속하여 사람들처럼 걷지 아니하느냐?​ 4 어떤 이는 말하기를,​ 나는 바울에게 속하였다,​ 하고 다른 이는 말하기를,​ 나는 아볼로에게 속하였다,​ 하니 너희가 육신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냐?​
 +
 +아이들처럼 걷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3절을 보니 “사람들처럼 걷지 아니하느냐?​”라고 말합니다. 즉 우리가 영적으로 행하지 못하고 육신적으로 행한다는 것은 바로 이 세상 사람들의 걷는대로 걷는 것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기적입니다. 아이들이 이기적이듯이 세상사람들의 판단은 자기 위주의 판단입니다.
 +
 +아이들을 생각해보십시오.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을 먹고 마시고 행하려 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선택하려 합니다.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줘보십시오. 그러면 아이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서로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뺏기도 하고 혹은 다른 말로 구슬리거나 혹은 속여서 결국 자기가 가지려고 하거나 혹은 그러만한 능력이 되지 않으면 울고맙니다. 여기 고린도 교회도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께서는 고린도성도들에게 은사들을 넘치게 주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7을 보니 어떤 은사에도 뒤처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른 교회에서 있을만한 은사들은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로가 상대방이 가진 은사를 업신여기거나 혹은 부러워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더 많이 알는 지식의 은사를 가졌으며 그것으로 인해 우쭐해졌습니다. 은사들로 인해 사람들은 서로 나뉘었고 다투었으며 파당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서로 다투고 나뉘도록 은사들을 허락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자랑하도록 혹은 우쭐대도록 은사들을 허락하신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성도들에게 몸의 지체에 대한 부분을 설명해주어야 했습니다.
 +
 +고전 12:14~20 몸은 한 지체가 아니요 여럿이라. 15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아니한다,​ 하면 이런 이유로 그것이 몸에 속하지 아니하느냐?​ 16 만일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아니한다,​ 하면 이런 이유로 그것이 몸에 속하지 아니하느냐?​ 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냐?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18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친히 기뻐하시는 대로 지체들을 곧 그것들 각각을 몸 안에 두셨느니라. 19 만일 그것들이 다 한 지체라면 몸은 어디 있느냐? 20 그러나 이제 그것들이 많은 지체이나 그럼에도 오직 한 몸이라.
 +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서로 다른 은사들을 준 것은 그것으로 서로를 섬기도록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서로 다른 은사들을 주신 것은 바로 몸의 기능을 위한 것입니다. 모두가 입이 된다면 몸의 다른 기능들은 어디있습니까?​ 모두가 다 손이 된다면 입의 기능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서로 다른 은사들을 허락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교회로서 온전한 기능을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는 그 은사들을 가지고 나뉘고 다투고 자랑하고 또한 파당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사람들이 하는 방법과 같지 않습니까?​
 +
 +=====III. 성장에 대한 첫걸음 - 아이의 일들을 버렸노라=====
 +
 +오늘 저는 크리스천의 성장통에 대해 언급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여러분에게 성장통이 있다는 것은 여러분이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저는 이 성장통을 버리는 일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
 +오늘 본문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
 +**고전 13:11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깨달으며 아이처럼 생각하였으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의 일들을 버렸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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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의 일들을 버렸노라.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자라면서 겪어야할 성장통입니다. 아이의 일들을 버리는 일이 바로 우리의 영적인 성장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성장하면서 우리는 그에 따른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죠. 그것은 우리가 세상적인 것들을 버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자라기 위해 이것은 또한 필수인 것입니다.
 +
 +바울은 여기서 버린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손실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에게 손해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아이들에게 토이스토리 3을 보여주었습니다. 거기서 주인공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가 3편에서는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그에게 엄마는 예전에 갖고 놀던 장난감들을 아이들을 돌보는 곳에 기부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대학생이 된 이 주인공은 망설여집니다. 이제 더 이상 장난감을 갖고 놀기에는 수치스럽고 줘버리자니 예전의 기억들이 생각나고... 그런데 이것이 우리의 영적인 모습입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육신적인 일들을 버려야 함을 아나 그것들이 우리의 습관이 된 경우도 있습니다. 혹은 우리 육신이 너무 좋아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혹은 이 세상에서 이런저런 소리 듣지 않고 살아가려면 필요하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우리는 망설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것들이 나 자신에게 손해가 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믿음의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
 +빌 3:8~14 참으로 확실히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의 손실을 입고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9 율법에서 난 내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난 의를 소유한 채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10 이것은 내가 그분의 죽으심과 일치하게 되어 그분과 그분의 부활의 권능과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알고자 함이요, 11 어찌하든지 내가 죽은 자들의 부활에 도달하려 함이라. 12 나는 내가 이미 도달한 것처럼 말하지 아니하며 이미 완전한 것처럼 말하지도 아니하고 다만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나를 붙잡아 이루시고자 하신 그것을 붙잡으려고 뒤따라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내가 이미 붙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다만 이 한 가지 일을 행하나니 곧 뒤에 있는 그것들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그것들을 잡으려고 나아가 1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푯대를 향해 밀고 나아가노라.
 +
 +크리스천의 성장통,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것이며 또한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내가 옮겨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라고 있습니까?​
고전13.11.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