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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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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6.20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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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2월 23일 주일오전설교==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삶======
 +
 +본문말씀:​ 고린도전서 6:20, 고린도전서 10:31\\
 +설교자: 대전교회 홍증표 목사님
 +
 +“왜사니?​”에 대한 질문.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신앙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어떤 이는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ㄴ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함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또 어떤 이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기 위함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대답은 인간의 편에서 바라본 목적입니다. 신앙의 목적이 자기 자신의 유익이나 영광이 될 때 필연코 그 신앙은 자기중심적인 신앙이 되고 결국 기복신앙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주의와 더불어 기복신앙은 빗나간 거짓 신앙입니다.
 +
 +오늘 저는 구원받은 신자의 삶의 목적이 마땅히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삶이어야 된다는 점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
 +이 세상을 사는 자연인의 최고 관심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돈, 명예, 출세를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쫓아다니지만 정작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거리설교를 할 때 그 앞 전자대리점에서 경품행사를 하면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지만 우리가 전하는 복음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들어도 코웃음을 칠뿐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바로 마귀에게 속은 결과입니다.
 +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는 형제,​자매 여러분, 눈을 열어 주셔서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깨닫게 하심으로 여러분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요. 그리고 받은 구원을 귀하게 여기십시요. 우리가 얻은 이 구원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한 것입니다. 오죽하면 성경은 “이 큰 구원”이라고 표현하겠습니까?​
 +
 +“우리가 이렇게 큰 구원을 소홀히 여기면 어찌 피할 수 있으리요?​”(히 2:3)
 +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자의 최고 관심사는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그것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값주고 사신 하나님의 영광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선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마땅한 신자들이 정반대로 하나님의 아들이 모독을 받게 하는 일들이 도처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의 분열, 사역자들의 성적/​도덕적 타락, 신자들의 불순종 등등.
 +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
 +
 +그래서 우리는 먼저 분명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심입니다.
 +
 +먼저 성삼위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행하신 일과 그 목적을 살펴보겠습니다. 에베소서 1장을 펴십시요. 여기에는 삼위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행하신 일들이 나와 있습니다.
 +
 +하나님의 계획\\
 +3-5 창세전에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아이로 입양하실 것을 예정하셨습니다.
 +
 +아들의 구속사역\\
 +7절에서는 아들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
 +성령의 봉언\\
 +13절에서는 구원의 복음을 듣고 주 예수님을 신뢰할 때 약속의 저 거룩한 영으로 봉인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
 +성경은 이렇게 성삼위 하나님의 사역을 제시하면서 그 이유를 빼놓지 않고 제시합니다.
 +6절을 보십시요. “자신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느니라.”\\
 +12절을 보십시요. “그리스도를 신뢰한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 함이라.”\\
 +14절에서도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시느니라.”
 +
 +여기서 동일하게 나오는 표현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기를 원하셔서 구원하셨습니다. 아멘!
 +인간이 존재하는 첫 번째 이유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심도,​ 구속하심도,​ 성령의 봉인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여야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오늘 이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과 얼마나 관계가 있는 것인지 살펴보고 여러분의 삶의 방향이 조정되기를 원합니다.
 +
 +**첫째,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삶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입니다.**
 +
 +성경은 우리의 신앙의 최종 결승점을 이렇게 제시합니다.
 +
 +“마침내 우리가 다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에서 하나가 되어 완전한 사람에 이르고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리니”(엡 4:13)
 +
 +여기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의 최종결승점이 바로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이라는 것입니다.
 +
 +그러면 우리의 최종 결승점이 되시는 주 예수님은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사셨습니까?​
 +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기도하실 때에도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2:28)
 +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것은 오직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해드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
 +“나는 내 뜻을 행하려고 하늘로부터 내려오지 아니하고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려고 내려왔느니라”(요 6:38)
 +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끝마치는 것이니라.”(요 4:34)
 +
 +주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하늘에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자신의 양식으로 여길만큼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둘째,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의 뜻/​자기의 야망이 내려져야 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이고 자기 부인입니다. 그런 다음 자신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여기서 십자가의 헌신의 문제가 등장합니다.
 +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가 필요함.====
 +
 +먼저 십자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해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 모두를 거룩하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며 흠이 없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엡 1:4-5). 우리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하는 것입니다. 많은 아들들과 그리스도의 몸을 얻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보면 많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며 단체적으로 보면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이것을 원하셨습니다.
 +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려면 아들들이 필요하고 몸이 필요합니다. 더 나아가 다만 신분만 아들들인 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을 닮은 아들들이 필요하고,​ 신분으로만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시는 영광스러운 교회가 필요합니다.
 +
 +그러나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들은 십자가를 통해 육신을 제한 후 헌신의 길을 가야 합니다.
 +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에게 요구하시느 것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절대적으로 따르는 십자가의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은 이 길을 걸으려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우리의 옛 사람이 아직 십자가에서 처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분은 그리스도 안에 옮겨왔지만 여전히 아담 안의 본성으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정확하게 이해할 때 십자가의 능력을 알게 됩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우리 자신을 아는 것과 동시에 또 하나 깨달아야 할 것이 그 자아가 십자가에서 어떻게 처리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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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자신의 생각을 따라 사는 삶, 그것이 바로 옛 사람의 특징입니다. 이것은 모든 인류에게 계속해서 심각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우리의 옛 본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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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귀의 요새 - 옛 사람의 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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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신자가 구원을 받았더라도 이 옛 사람의 본성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죄의 몸을 벗을 때까지 끊임없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려 합니다. 마귀는 신자를 소유할 수 없지만 이 옛 사람의 본성을 자극하여 자신을 따르도록 이끕니다. 그래서 신자조차도 자신을 드러내려는 경향성, 자신을 변호하려는 경향성, 자기신뢰,​ 자긍심과 같은 자기 중심성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면서도 자기 영광을 동시에 구합니다. 거의 모든 신자가 이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것은 여전히 그 사람 안에 숨겨진 자기 중심성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지만 속 중심에서는 자기 영광을 구하게 됩니다. 사실 예수 믿는 사람 중에서 자기 영광을 휘해 사역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입술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말할지 몰라도 사실은 많은 순간 자기 영광을 구하게 됩니다. 이렇게 옛사람의 본성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
 +성경은 주님께서 이 옛사람에 대하여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
 +“우리가 이것을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 이제부터는 우리가 죄를 섬기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롬 6:6)
 +
 +이 구절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 십자가에 못박힌 분은 예수님이시다.\\
 +- 그분과 연합됨으로 우리 옛 사람도 십자가에 못박혔다.\\
 +- 그것은 우리가 이제부터는 죄를 섬기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
 +성경은 십자가에서 예수님만 못박혔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우리의 옛 사람도 함께 못박혔다고 말씀하십니다.
 +
 +우리는 믿음으로 연합하여 우리의 옛 사람이 함께 못박힌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놀라운 진리입니다. 이 진리를 바로 알 때 우리 삶에 놀라운 승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해 산 자입니다. 죄가 우리를 주관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며,​ 그 능력으로 함께 하십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죄를 이기는 능력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영적 전쟁에서 놀라운 승리로 인도합니다. 우리가 매 순간마다 이 사실에 기초하여 진리에 동의할 때 놀라운 승리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땅에서 적극적으로 믿음으로 살아야 할 이유인 것입니다.
 +그래서 몸을 입고 있는 동안 신자는 이 옛 사람이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있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더 이상 가능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부패한 자신의 옛 사람을 보는 것과 그런 옛 사람이 십자가에 이미 못박혔음을 보는 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불가능합니다. 오늘날 이 십자가를 안다고 말하는 사람이나 단체에서 조차 그 실제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먼저 깨달은 형제들의 인식에 지적으로 동의하고 있을 뿐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친히 자신의 실존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빛 비춤이 실제가 될 때 우리의 신앙은 주님의 것을 닮아 갑니다.
 +
 +어떤 여인의 간증, 어떤 형제의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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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교회사 가운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 참된 주님의 제자들의 간증을 들을 때 감동합니다. 그러나 그런 제자가 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경건한 신자들의 간증을 부러움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그들의 본을 받으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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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깊게 우리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우리에게는 양다리 걸치기의 얍상한 속셈이 있습니다. 주님도 믿고 세상에서도 즐기고.
 +그러나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하여 분명하게 경고하십니다.
 +
 +“종이 결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이는 그가 한 주인을 미워하고 다른 주인을 사랑하거나 혹은 한 주인을 떠 받들고 다른 주인을 업신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하나님과 맘몬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
 +주님이 오늘도 찾고 계시는 대상은 목표 없이 표류하는 대중이 아니라 주님 자신이 앞서 밟고 간 십자가의 길을 쫒아갈 각오가 된 자들입니다. 많은 죽음을 통과할 때 우리는 풍성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십자가가 필요합니다.
 +
 +===하나님은 우리에게 십자가를 주고 십자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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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우리에게 십자가를 주십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줍니다. 우리가 이런 십자가의 길을 갈 때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을 줍니다.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만 천연적인 본성을 거절하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입어 이 십자가의 길을 신실하게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다음으로 십자가와 더불어 헌신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위해 필수적입니다.
 +
 +여러분이 사업을 운영하고 계시다면,​ 아니면 직장에서 사람들을 지휘하는 위치에 계시다면 어떤 사람을 좋아할까요?​ 조금만 불리해 보이면 직장을 떠나려는 기회주의자들을 좋아할까요?​ 아니면 시간과 재능과 정성을 다하여 조식에 헌신하는 사람을 좋아할까요?​ 어떤 조직이든 구성원들이 젊음과 시간, 재능을 전적으로 바쳐 ​ 주기를 바랍니다. 목숨까지는 아니더라도 애정을 갖고 시간을 쏟아 주기를 원합니다. 가족은 서로 가정에 좀 더 많은 시간과 애정을 쏟아 주기를 바랍니다. 교회 역시 성도들이 좀 더 교회에 많은 시간과 정열을 쏟아 부어 주기를 바랍니다. ‘열성과 헌신’없이는 발전도 성장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는 헌신되지 못한 군중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
 +주님을 단지 나를 구원해 주신 고마우신 분 정도로 믿고 이해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길의 첫 발도 내딛지 못한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단지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만을 말씀하지 않습니다. 우리 혼의 구원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사는 삶은 더욱 중요합니다. 십자가의 구원이 단지 혼이 지옥에 가지 않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복음의 10%도 인식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의 의의는 이것입니다.
 +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자기들을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들을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5)
 +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목적을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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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으니 그것은 우리가 깨어 있든지 자고 있든지 자신과 함께 살게 하려 함이라](살전 5:10).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즉 그는 육체 안에서 남은 때를 더 이상 사람들의 정욕을 따라 살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하리라.](벧전 4:2).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한 첫 걸음이 헌신입니다.
 +
 +
 +====헌신: 주님의 명령====
 +
 +‘헌신’이란 말은 [자신을 드린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몸을 바치는 것을 헌신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신자들에게 우리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드릴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몸을 산 희생물로 드리라고 명령하십니다. 로마서가 참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책인데 개인의 구원과 이스라엘의 민족적 구원을 말한 후에 12장 1절에서 헌신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
 +===헌신의 근거===
 +
 +그러면 신자는 왜 하나님께 헌신해야 합니까?
 +
 +**첫째는 주님의 권리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는 고린도전서 6:​19-20에서 보여주신 진리입니다.
 +
 +“도데체 무슨 말이냐? 너희 몸이 너희가 하나님에게서 받은 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전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느니라.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우리 중에 아무도 자기를 위해 살지 아니하고 또 아무도 자기를 위해 죽지 아니하는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니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7-8)
 +
 +우리 주님은 우리를 사기 위하여 그 대사로 자기의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에 의해 사신 바된 자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구속을 받은 연고로 주님에 대해 우리 자신의 주권을 버려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에 의해 사신 바 된 자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피로 사신 바된 자들이기 때문에 우리 영과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하는 자들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주님이 흘리신 보혈은 곧 그분이 지불하신 대가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권리로 우리는 주의 것입니다.
 +어떤 사물에 대하여 값을 치른 자가 권리를 갖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주님께서 사신 사람들이고 주님이 최고의 대가를 지불하여 산 자들임을 분명히 보아야 합니다. 그분은 금이나 은으로 우리를 사신 것이 아니라 그분의 보배로운 피로 사셨습니다.
 +
 +**둘째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
 +의무감만으로 온전한 헌신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냥 주인이니까 헌신하는데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
 +고린도후서 5:14-15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의 사랑의 강권함으로 인해 저희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분을 위하여 산다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
 +“이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기 때문이라. 우리가 이같이 판단하노니 곧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었으면 모든 사람이 죽었느니라.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있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자신들을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함이니라.”
 +
 +신자가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감쌌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에게서 도망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에 의해 만진바 된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든 어런 헌신의 냄새를 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마땅히 그분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랑이 또한 헌신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헌신하는 것은 바로 주님의 사랑으로 인함입니다. 헌신한 사람치고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선교사들
 +사람이 주님 앞에 헌신하려면 반드시 주님의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볼 때 헌신은 자연적 결과가 됩니다.
 +
 +웬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이 없어 이 몸 바칩니다.(166장)
 +
 +여기에 주님의 사랑이 있고 주님의 권리도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는 그분을 섬기기로 선택하였고 주님의 권리로 인하여 우리는 다만 그분을 쫒아갑니다.
 +구속으로 인하여 산출된 권리가 우리를 주님을 위하여 일하게 할 뿐 아니라 구속에서 보여진 사랑도 우리로 주님을 위하여 일하게 합니다. 헌신의 근거는 권리만이 아니라 사알이 있습니다. 헌신의 근거는 합법적인 권리일 뿐 아니라 인간의 지각을 훨씬 초월하는 사랑입니다. 이 두가지 이유로 인하여 우리는 마땅히 주님께 드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
 +===헌신의 의미===
 +
 +그런데 주님의 합법적인 권리를 알거나 사랑의 격려를 받는 것을 헌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헌신의 마땅한 이유를 알아도 얼마든지 헌신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헌신은 우리가 주님의 사랑에 강권되고 주님의 권리를 본 다음 우리를 새로운 위치에 두는 한 가지 일을 이어서 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에 강권되고 주님의 비싼 값으로 산 바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께 드려지고 주님을 위하도록 모든 것에서 자신을 구별하는 것이 바로 헌신입니다. “주여, 주께서 저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오늘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모든 것에서 제 자신을 구별합니다.” 라고 표하는 것입니다.
 +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택하여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으로 인해 사람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무릇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우대하는 양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성경에 대하여 문외한이고 근본적으로 헌신한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내어 놓고 주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러분을 은혜로 대하시어 그분의 일에 여러분을 참여시키는 것입니다.
 +헌신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광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무릎꿇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저도 참여하게 되었군요. 오, 세상에 많은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 같은 사람이 참여하게 되다니요.” 라고 말해야 합니다. 헌신은 우리의 희생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높이 올려지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가장 큰 희생이 필요하겠지만 헌신 안에는 이런 냄새는 없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냄새가 있을 뿐입니다.
 +
 +===성직을 받드는 제사(출 29:​19-20)===
 +
 +==(1) 피바름: 구별됨==
 +
 +이 수양을 잡아서 어떻게 했습니까?​ 첫 번째 일은 수양의 피를 아론과 그 아들들의 오른 귓볼과 오른쪽 엄지와 오른발의 엄지 발가락에 바르는 것입니다. 이 뜻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열납했으므로 이제 나는 이 피가 이미 나의 귀와 손과 발을 거룩히 구별했음을 시인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다는 것입니다.
 +“주여, 내가 구속됨을 인하여 오늘부터 나의 이 두 귀는 나의 것이 아닙니다. 주여, 내가 구속됨을 인하여 오늘 이후부터 나의 이 두손이, 나의 두 발도 나의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받음으로 인하여 내 전체가 당신께 속하고 나의 것이 아닙니다.”
 +
 +==(2) 드려짐==
 +
 +우리 몸을 드리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드리는 것인가? 우리의 각 지체들을 주님이 사용하시도록 드리는 것입니다. 몸의 각 부분들 즉, 손과 발, 입, 눈, 귀 등 신체의 각 부분들이 다 주님께 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도구로 죄에게 내어 주지 말며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 자로서 하나님께 드리고 너희 지체를 의의 도구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13) 우리 몸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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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발은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약한 자와 쓰러진 자를 돕기 위해 우리 손을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바친 손을 도박, 술마심, 도둑질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돌보고 그들을 찾아내도록 눈을 사용해야 합니다. 어려운 형제를 향해 눈을 가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우리의 귀 역시 늘 열려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가 열려 있어야 합니다.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막아서도 안됩니다. 우리 몸이 우리 자신의 것이었을 때는 닫든지 돌리든지,​ 막아버리든지 우리 마음대로 했지만 이제는 주님의 것이기에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과 혀는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며 힘과 위로를 주는 일에 사용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헌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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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시간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스케줄을 마음대로 주장할 수 있도록 내어 드리는 것이 바로 헌신입니다. 이 시간에 내가 무엇을 한다고 결정하는 것은 자신이 여전히 주인이라 뜻이지 헌신된 것은 아닙니다. 나의 시간을 내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것, 내가 하기 싫은 일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종입니다. 종의 시간은 곧 주인의 것입니다. “지금 시간이 없습니다.”란 말은 애당초 성립되지 않는 말입니다. 헌신이란 바로 나의 시간을 주님께 내어 드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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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신을 방해하는 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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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신: 요나-십자가를 먼저 말한 이유\\
 +세상을 사랑함: 데마\\
 +자기를 사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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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신하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헌신하지 않으면 영적 성장이 없습니다. 헌신된 무리들을 통해 주님은 자신의 뜻을 펼치십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몸의 지체들을 지휘하는 권한을 주님께 내어드리고 목숨까지도 주님이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100% 내어 드리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헌신입니다. 주님의 마음은 언제나 헌신된 자들에게로 향합니다. 헌신은 감정적 충동이 아니라 의지적 행위입니다. 헌신은 우리 자신을 다스릴 권리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위임하는 것이며, 영원히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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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분의 위대하심과 영광을 보아야 그분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빛 비춤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누굴 보낼까” 라는 하나님의 초청에 “제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할 수 있는 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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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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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든, 그렇지 않던 하나님은 영광스러우십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리에 있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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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추하고 더러운 우리를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제는 우리를 값주고 사신 주님께 영과 몸으로 영광돌리는 삶을 살기 위하여 십자가의 길, 헌신의 길을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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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감사하게도 이런 길을 가는 자들에게 당신의 영광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남은 인생 이런 영광에 동참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고전6.20.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