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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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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8.1-3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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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1월 6일 주일오전설교==
  
 +======사랑으로 움직이는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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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고린도전서 8장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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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8:1-3 이제 우상들에게 바친 것들에 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로 아나니 지식은 우쭐대게 하나 사랑은 세워 주느니라. 2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그는 마땅히 알아야 할 바를 아직 전혀 알지 못하느니라. 3 그러나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분께서도 그 사람을 아시느니라.
 +
 +=====I. 서론=====
 +
 +삶은 수많은 선택으로 인한 결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순간마다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를 선택하고 그 결정에 따라 말하고 실행한다. 지나간 이야기이지만 올해 8월 21일에 있었던 전투기 추락 관련 뉴스를 잠깐 들려주고자 한다.
 +
 +『한 비행조종사의 ‘살신성인’이 대형 참사를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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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공군 곡예비행팀 ‘레드애로즈’ 소속의 호크 T1 전투기 한 대가 20일 영국 남부 본머스에서 추락하면서 조종사 존 에깅(33·사진) 중위가 숨졌다. 그러나 에깅 중위는 추락하는 과정에서도 끝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고 비행기를 공터로 몰고가 대형 인명피해를 막았다. 그는 추락 직전 비행기에서 탈출을 시도했지만 현장에서 숨졌다.
 +
 +영국 일간 데일리미러는 이날 “에깅이 놀이공원과 주택가, 공항, 쇼핑센터 등이 밀집한 지역을 피해 인근 공터로 몰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조종대를 놓지 않았다”고 전했다』
 +
 +조종사였던 존 에깅 중위는 자신이 살기 위해 적절한 타이밍에 탈출을 시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위해서보다 많은 사람의 생명을 우선적으로 생각했고 그 결과 자신은 탈출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의 결정은 옳고 분명하다.
 +
 +이와 같이 어떤 결정은 그 결과를 가져오곤 한다. 존 에깅 중위의 결정은 삶과 죽음에 대한 결정이었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다른 사람을 살리는 숭고한 결정이었다. 그의 결정은 다른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
 +앞서 말했듯이 삶은 선택에 따른 결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결정 중 어떤 것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일상적인 것이 될 수 있고 어떤 결정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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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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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리기 앞서 여러 가지 생각을 통해 판단하고 선택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이름에 합당한 것인가? 내가 하는 말을 통해 이것이 나에게 유익을 줄 것인가? 아니면 내가 어리석게 보일 것인가? 혹은 이 선택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게 될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에 대한 미움으로 어떤 행동을 하기로 결정하는가?​ 많은 결정이 나의 기분이나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감정과 현재의 주어진 환경과 지식이나 혹은 유익이 되는 것에 따라 이루어지기도 한다.
 +
 +오늘 말씀을 보자. 고린도 교회는 그리스의 주요 도시였고 아가야 지방의 수도였으며 이 도시는 문화와 무역과 부로 유명한 도시였다. 뿐만 아니라 사랑의 여신이라 불리던 아프로디테 신전이 그곳에 있었으며 그곳에서 여신을 섬기던 창녀가 약 3000명정도 있었다고 한다. 바울이 그곳에 복음을 전했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교회를 이루었다. 그런데 그 교회는 여러 가지 문제들 투성이었고 그 문제를 위해 바울에게 여러 가지를 문의했다. 7장에 보면 결혼과 관련된 내용이 나오는 것을 보고 8장에서는 우상들에게 바쳐진 음식에 관한 내용으로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이런 문제를 우리가 대할 수 없다. 우상에 대한 인식이 이미 널리 알려져 더 이상 이슈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이 여기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원리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며 필수적이다. 특히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는 크리스천이 되기 위해서는 더욱 그리하다.
 +
 +=====III.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
 +
 +바울은 우상에게 바쳐진 것들에 대해 언급하기 앞서 먼저 고린도성도들에게 짤막하게 나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언급한다. “지식은 우쭐하게 하나 사랑은 세워주느니라.” 그리고 바울은 그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언급한다.
 +
 +고전 8:4-6 그러므로 우상들에게 희생물로 바친 것들을 먹는 것에 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니며 한 분 외에는 다른 신이 없는 줄 아노라. 5 비록 하늘이나 땅에나 신들이라 불리는 자들이 있어 (신들도 많고 주들도 많으나) 6 우리에게는 오직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나니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분 안에 있노라. 또 한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나니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느니라.
 +
 +신들이라 불리는 많은 대상들이 오늘날 존재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모하메드나 부처나 모두 이미 죽은 사람들이다. 오늘날도 여전히 한국사람들이 섬기는 “조상”신 역시 이미 죽은 존재들이며 이 땅에서 사라진 존재들이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존재들이며 사람들이 돌이나 쇠나 어떤 금속으로 만드는 우상들은 살아있지도 그것이 말하지도 우리에게 어떤 저주나 축복도 주지 못하는 물체에 불과할 뿐이다. 그것이 어떤 대상을 지칭한다고 생각하나 그 대상 역시 우리가 믿는 한 하나님에게서 만들어졌고 우리 모두는 그분 안에 있다.
 +
 +우리가 섬기는 대상은 영원히 살아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시며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우리 역시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한다. 바울은 10장에 가서 사람들이 신들이라 부르면서 섬기려는 그 대상이 마귀들임을 언급한다. 그러나 그 마귀들 역시 하나님의 창조물에 불과한 존재들일 뿐이다.
 +
 +고린도 성도들의 문제는 이 지식에 있지 않았다. ​
 +
 +고전 8:7-8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그 지식이 있지는 아니하니 어떤 사람들은 이 시각까지도 우상을 의식하며 우상에게 바친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먹으므로 그들의 약한 양심이 더러워졌느니라. 8 그러나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어도 더 낫지 아니하고 먹지 않아도 더 못하지 아니하니라.
 +
 +문제는 이 지식이 아니라 이 지식을 소유하지 못한데서 나타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신들이라 불리는 대상이 존재하며 또한 그것들이 섬김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서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지식을 소유하지 못한 이제 막 크리스천이 된 사람들은 우상들에게 바쳐진 것들에 대해 여전히 꺼림찍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
 +그러나 사실 음식은 우리를 영적으로 만들어 주지 못한다. 그것을 먹어도 더 낫지 아니하고 먹지 않아도 더 못하지 아니한다. ​
 +
 +당시 사회에서 고기를 사기 위해서 고기시장에 가면 대부분의 싼 고기는 이미 우상을 섬기는 데 바쳐진 고기였다. 혹은 고기를 싸게 파는 곳에 가서 먹으려면 우상의 신전이 있는 곳에 가야 했다. 믿는 크리스천 중에 어떤 사람들은 우상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지식을 가지고 있기에 그가 자기의 지식에 따라 판단하여 고기를 먹으러 우상의 신전이 있는 곳에 가서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을 우상에 대한 약한 양심을 가진 어떤 형제가 보았다면 그는 다른 우상들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음으로써 그 신을 숭배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동시에 우상에 대한 믿음을 소유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죄를 범하게 된다. 그것은 나의 지식에 따른 자유로운 행동으로 인해 다른 형제가 죄를 범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바울은 이 문제를 이렇게 말했다.
 +
 +고전 8:9-11 오직 너희의 이 자유가 약한 자들에게 결코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 지식이 있는 네가 우상의 전에서 음식 앞에 앉은 것을 어떤 사람이 보면 약한 그 사람의 양심이 담대하게 되어 우상들에게 바친 것들을 먹게 되지 아니하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말미암아 그 약한 형제가 멸망하리니 그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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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은 진리를 알게 됨으로써 우리가 자유롭게 된다고 말씀한다. 주 예수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됨으로써 우리는 이전에 알지 못하던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고린도 성도들 중 지식을 갖게된 자들은 더 이상 우상들에 대한 의식을 갖지 않게 된 것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자유함을 주었다. 그러나 때로 우리의 자유함은 아직 지식을 소유하지 못한 자들에게 걸림돌이 되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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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은 나의 자유함으로 내가 다른 성도를 넘어지게하여 죄를 범하게 하였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이라고 언급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더 이상 작은 죄가 아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어떤 죄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을 어김으로써 죄를 범한다. 그러나 성도를 넘어지게 하여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은 더 큰 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 죄는 직접적으로 그리스도께 죄를 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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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8:12 그러나 너희가 이와 같이 형제들에게 죄를 짓고 그들의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면 그리스도께 죄를 짓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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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은 그리스도께 죄를 범하느니 차라리 고기를 먹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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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8: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하면 나는 세상이 서 있는 한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가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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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V. 마음의 의도 – 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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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 문제를 더 깊이 생각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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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8:1-3 이제 우상들에게 바친 것들에 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로 아나니 지식은 우쭐대게 하나 사랑은 세워 주느니라. 2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그는 마땅히 알아야 할 바를 아직 전혀 알지 못하느니라. 3 그러나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분께서도 그 사람을 아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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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은 “지식은 우쭐대게 하나 사랑은 세워 주느니라.”라고 언급하였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통해 많은 지식을 소유하는 것은 사람을 우쭐대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바울은 사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더 깊은 문제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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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을 생각해보자. 지식 자체가 문제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 지식은 도구와 같다. 지식은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끼친다. 피아노나 기타를 칠 줄 알게 되면 우리는 더욱 아름다운 곡조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 무언가를 만드는 기술을 안다면 우리는 그것을 통해 교회건물의 많은 부분을 더 유익하게 꾸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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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은 중립적이다. 마치 칼과도 같다. 음식을 만드는 자의 손에 들렸을 때 칼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지만 살인자의 손에 들린 칼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다. 마찬가지고 지식은 누구의 손에 들렸는지에 따라 사용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식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올바른 동기가 필요하다. 바울은 그것을 “사랑은 세워 주느니라”라고 표현했다. 세워주기 위해 무엇이 사용되는가?​ 역시 동일하게 지식이 사용된다. 그러므로 어떤 동기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지식은 우쭐대게 하고 또 세워주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지식의 바른 효용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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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엡 4:13-15 마침내 우리가 다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에서 하나가 되어 완전한 사람에 이르고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리니 14 그 목적은 우리가 이제부터 더 이상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들의 속임수와 몰래 숨어서 속이려 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간교한 술수로 말미암아 온갖 교리의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 밀려다니지 아니하고 15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모든 일에서 그분 안에 이르도록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 그분은 머리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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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 마음에 숨겨진 동기와 의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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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여러분에게 크리스천의 영적인 삶에 대한 아주 심각하고도 중요한 것을 언급하고자 한다. 고린도 성도들은 우상들에게 바쳐진 것들에 대해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좋을지를 바울에게 물었다. 그들이 이렇게 물은 동기는 남을 넘어뜨리고자 하는데 있지 않고 어떻게 주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지를 묻고자 하는데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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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지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응하는 것을 보아왔다.
 +
 +  - 지식이 많은 것으로 인해 우쭐하여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경우 ​
 +  - 지식이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인해 스스로 열등감에 빠지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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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비단 교회 내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사회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일이다. 이 두 경우는 또한 가정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흔히 보는 현상이기도 하다. 우리가정은 세 아이를 키우면서 이것을 많이 보았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경우 모두 그 동기는 사랑이 아니다.
 +
 +전에 언급했듯이 지식은 중립적이다. 지식은 세울 수도 또한 우쭐대게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는 마음에 있다. 마음의 동기와 의도가 그가 가진 지식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결정한다. 남보다 위에 있고자 하는 마음, 남보다 더 앞서고자 하는 마음, 남보다 더 많이 알고자 하는 마음이 그로 하여금 우쭐대게 한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스스로 열등감에 빠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고자 하는 자는 즉, 우쭐대는 자는 ​
 +
 +  - 자신이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거나 ​
 +  - 자신이 육신적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거나 ​
 +  -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지식으로 남을 세워 주길 원하신다. ​
 +
 +한 가정에서 부모는 이미 학교의 과정을 겪어본 사람들이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학교에서 배운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게 했다. 나는 수학을 정말 잘했지만 지금은 미분, 적분 공식이 무엇인지 생각이 나지도 않는다. 더욱이 통계는 뭐가 뭔지 이해가 들어오지 않는다. 이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려면 나도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제 배움의 과정에 있기 때문에 솜이 물을 흡수하듯 그렇게 지식을 빨아들인다. 때로는 아이들은 자기들이 부모보다 더 많은 지식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실수를 한다. 종종 엄마 아빠는 그것도 몰라? 라고 핀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라. 자녀들이 더 영적으로 걷는가? 부모가 더 그러한가?​ 많은 경우 부모들이 아이들을 공평하게 대하기 위해 더 사랑 안에서 대해준다. 그러나 자녀들은 그렇지 않다. 지식 자체가 우리를 세워주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사랑이 배제된 지식은 생명을 앗아가는 칼이 될 수 있다.
 +
 +지식에 대한 잘못된 다른 방법은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장점과 약점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약점을 가지고 자신의 강점으로 삼으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우리에게 이것을 요구한다. 승진하기 위해 우리는 종종 남을 밟고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크리스천의 사랑으로 걷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모습일 뿐이다. 여러분의 주위를 보라. 이 사람들은 여러분의 형제요 자매이다. 이제 영원을 같이 보낼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가족들이다. 이들은 여러분의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여러분의 경쟁상대가 아니다. 나는 여러분의 약점을 알더라도 오히려 여러분의 장점을 더 사용하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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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지식으로 자랑하거나 남을 넘어지게 할 때 그것은 사실 두 가지 면에서 실패한 것이다. ​
 +
 +  * 먼저, 그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이다(3절). ​
 +  * 둘째, 그는 그리스도께 죄를 범하고 있다(12절).
 +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서로 다른 은사들을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자랑하기 위함인가?​ 아니다. 오히려 서로 섬기기 위한 것이다. 나는 여기의 어떤 사람들보다 가진 은사가 많지 않다. 나는 피아노를 배우지 못해 반주할 줄 모르고 음식을 만드는 법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주어진 말씀의 은사로 나는 여러분을 섬기는 것을 좋아한다. 여기서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지식을 자랑하고자 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를 세워주기 위함이다. 만일 내가 자랑하는 자였다면 분명 주님은 나를 이 자리에 세우지 않으셨을 것이다. 분명 우리 마음은 자랑하고자 하는 육신의 욕심이 솟구쳐 오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을 부인함이 필요하다.
 +
 +그러므로 남을 세우는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죄에게 죽었음을 인지하고 죄의 모든 요구에 대해 죽음을 선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 자로서 이제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과 성도들 섬기는 일에 드려야 한다.
 +
 +다른 사람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연약함을 이용하려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자기 이웃을 사랑하게 되어있다. ​
 +
 +자신의 은사들을 자랑하는 자는 사실 육신적인 사람이다. 고린도 성도들은 모든 은사에 있어 풍성한 교회였다. 그러나 그 교회는 육신적으로 걸었다. 많은 은사를 가졌다고 해서 영적인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영적인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영적인 삶이 가져다주는 축복을 모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육신의 자랑과 바라는 것을 충족시키는 것이 만족한 삶이며 그것이 영적인 축복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가장 간단한 테스트는 다음과 같다. 내가 사랑 안에서 걷고 있는가? 내가 그 형제를 사랑함 가운데 그 형제에게 유익이 되는 것을 주고 있는가? 그것이 아니면 십중팔구는 이기적인 모습 가운데 걷고 있다.
 +
 +많은 크리스천이 세상의 삶으로 인해 영적인 삶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이 인정받고 높여지는 것이 영적인 삶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
 +나는 지금 2년 가까이를 여러분과 함께 하면서 여러분이 나의 장단점을 파악했듯이 나 역시 여러분의 장단점을 파악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영성에 대한 부분도 어느 정도 파악했다. 각 사람의 영적 분별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대충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모든 사람에게 되도록 차별없이 대하려고 노력한다. 모든 사람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로 인해 누군가 실족하게 된다면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께 죄를 범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누군가의 잘못을 보면서도 그 사람이 기분나빠하지 않도록 그것을 언급하지 않고 무마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잘 걷고 있는 사람의 발을 걸어 넘어지거나 절뚝거리게 만드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
 +고린도 전서 8장에서는 지식이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을 배려하지 않는 일로 인해 약한 자들이 약한 양심으로 인해 죄를 범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어찌 말하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문제인 것이다. 바울이 말하는 대로 그런 사람은 먼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없다 라는 것을 배우는 일이다.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해주려고 노력하는 나 역시 성경의 깊은 부분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안다. 누군가의 도움이 아니면 성경을 더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을 공부할 때마다 느낀다. 내가 발견하는 것은 내가 성경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보다 성경적 지식이 제일 많을지라도 그것을 내 자랑으로 삼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나는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식은 자랑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움을 위해 존재하며 주님은 나에게 그 목적으로 부르셨기 때문이다.
 +
 +=====VI. 결론=====
 +
 +어떤 사람들은 지식의 우쭐함 가운데 살고자 하는 크리스천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양심적인 크리스천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잇다. 그런데 양심은 지식을 바탕으로 형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가 가진 지식의 정도에 따라 양심은 다르게 반응한다. 이런 점에서 양심은 우리를 인도하는 법이 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으로 자신의 지식을 움직여 다른 사람을 세우고자 한다. 여러분은 어떤 부류가 되고자 하는가? 참된 크리스천의 자유는 사랑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고전8.1-3.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