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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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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1.8-10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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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10월 10일 주일 오전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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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천과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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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고린도후서 1:8~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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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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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일 “행복 전도사”로 알려진 작가겸 방송인 최윤희씨(63세)의 자살 소식을 우연찮게 알게 되었습니다. 뉴스를 짤막하게 이야기 하자면 이렇습니다. “최씨는 7일 오후 고양시 백석동의 한 모텔에서 남편 김모(72)씨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최씨가 질병을 비관해 남편과 동반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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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와 관련해 미디어오늘 인터넷 신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우려섞인 글을 실었습니다:​
 +
 +『최씨는 희망과 행복 주제에 대한 다수의 서적을 출간했으며 TV 등에서 활동한 인물이라서 그의 비극적 행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우려가 크다. 유명인이 공적으로 보여주는 언행과 사생활이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특히 총리, 장관 내정자 등의 청문회에서 거듭 확인되는 공인의 가려진 생활의 어두운 측면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이 더욱 심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
 +수년전부터 연이어 발생하는 연예인등의 자살은 모방 자살의 우려와 건강한 삶의 철학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등 그 후유증이 심각하다. 자살을 바라보는 시각은 역사적으로 지역에 따라 다양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부정적, 비판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오늘날 자살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정신건강과 관련지어 대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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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최윤희씨에 대해 개인적으로도 또한 그분의 공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습니다. TV를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그분이 TV에서 어떤 공헌을 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인터넷을 보던 중 자살이란 단어와 그녀가 가지고 있던 “행복 전도사”라는 타이틀이 눈에 띄였기 때문에 알아본 것 뿐입니다.
 +
 +오늘은 사회적 문제를 가지고 크리스천이 가져야 할 마땅한 자세에 대해 보고자 준비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볼 사회적 문제는 다름 아닌 “자살”에 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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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나라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한국이 28.4명으로 OECD 평균 자살률 11.2명의 두 배가 넘는다. 통계청의 2009년 사망원인통계 결과에 따르면 자살 사망자가 전체의 6.2%로 사망원인 4위였고 자살률은 10년 전(19.3명)보다 107.5% 증가했다. 지난해 자살에 의한 사망자는 전년보다 19.9% 증가한 1만5413명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42.2명, 34분에 한 명꼴로 자살한 셈이다.
 +
 +참고로 신종플루를 포함한 인플루엔자에 의한 사망자는 지난해 155명으로 2003년 이후 가장 많았다. 이 가운데 신종플루 사망자는 140명으로 60대 이상 고령자가 52.8%, 여자가 53.6%를 차지했다. 신종플루 사망률은 인구 10만명당 0.3명이었다.
 +
 +또한 자살률이 충청도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
 +자살률이 높은 이유로 ‘충청도 특유의 기질’이 꼽히기도 한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졌을 때 충청도 노인들은 ‘주변이나 자식들에게 ‘신세지지 않겠다’는 특유의 고집이 강해 극단적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분석이다. ​
 +
 +충청남도 복지정책과 이재은씨는 “충청도 사람들은 평소에는 크게 성내거나,​ 남에게 자기 주장을 강요하지 않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기질이 있다”고 말했다.
 +
 +=====II. 자살을 택하는 이유=====
 +
 +죽음이 감히 우리에게 찾아 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 비밀스런 죽음의 집으로 달려 들어간다면,​\\
 +그것은 죄일까? ​ - 윌리엄 셰익스피어
 +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면서 적어도 한번 이상 자살에 대해 생각합니다. 저 역시 어릴 때 그러했고 또한 정말 힘들다고 여겨질 때 죽고 싶은 생각을 가져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러한 생각을 실행에 옮기지 않습니다. 그것은 합당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면 사람들이 자살을 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 이유를 두가지로 압축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삶이 주는 짐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과 두 번째는 명예입니다. 명예로운 자살을 두고 문제시 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미국의 항공모함을 공격하기 위해 택한 것은 가미가제였습니다. 즉 항공기를 항공모함에 박아넣는 자살을 감행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높은 지위의 사람들이 중죄를 범하였을 경우 그 사람에게 스스로 자결하도록 형을 내리곤 했습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 자살의 원인은 삶이 주는 짐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이러한 생각에 붙잡히게 되면 우울증에 걸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살하는 사람들의 많은 경우가 우울증세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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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성경에서 자살에 대한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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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서 자살하는 예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생명을 하나님의 선물로 여겨왔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없었습니다. 자살에 대한 예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삼손과 사울 왕을 듭니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 전쟁 상황 가운데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삼손의 경우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적대관계 가운데 있었고 삼손은 들릴라에게 속아 그의 힘의 근원인 머리카락을 잘리게 되어 블레셋 군대에게 잡혀 눈이 뽑히고 멧돌을 돌리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블레셋사람들이 자기들이 잡은 삼손을 희롱거리로 삼으려고 자기들의 축제에 그를 데리고 나왔는데 그가 그 건물의 기둥들을 붙잡고 마지막으로 주님께 간구하기를 “오 주 하나님이여,​ 간구하옵나니 나를 기억하옵소서. 오 하나님이여 간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들이 내 눈들을 뺀 것을 단번에 원수 갚게 하옵소서...나를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죽게 하소서”(삿 16장)이라 하면서 그들과 함께 자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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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찬가지로 사울 역시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그의 아들들은 죽고 그 역시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적들에게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을 택했습니다. 그의 무기드는 자에게 자기를 죽이라 했으나 그가 행하지 않자 스스로 칼위에 업드려 죽음을 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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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V. 자살을 해서는 아니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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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 자살에 대한 직접적인 명령은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자살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나 혹은 자살을 권하는 곳은 한군데도 없습니다. 그러나 몇가지의 예를 통해 자살은 죄가 됨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양심입니다. 어느 누구도 양심이 무디어지기 전에 자살을 정상적인 경우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십계명의 6번째 명령은 “너는 살인하지 말라”입니다. 자살은 바로 스스로를 살인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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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 9: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살인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주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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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 9:6 누구든지 사람의 피를 흘리는 자는 사람에 의해 자기 피를 흘리리니 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만들었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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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하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망가뜨리는 것처럼 자살 역시 그러합니다. 자살은 하나님의 형상을 스스로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동물처럼 다른 피조물들과는 다른 것이 있습니다. 인간은 사고하고 판단하며 이성적입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존엄하게 여깁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살인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에 반하는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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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상 2:6 주께서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무덤으로 내려가게도 하시고 올라오게도 하시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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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역시 우리의 생명을 취해가십니다. 자살은 하나님께서 생명의 주인이 되신다는 점을 부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스스로 생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삶과 죽음을 통해서도 생명의 주인되신 그분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자살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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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 14:8~9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니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 목적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일어나사 다시 살아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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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 잘못된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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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크리스천이 자살을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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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크리스천도 자살을 하는 경우가 있을까요?​ 분명히 있습니다. 삶이 주는 무게가 너무 무겁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크리스천에게는 없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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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크리스천이 자살하면 구원에 어떤 문제가 생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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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잘못되이 가지고 있는 견해 중 하나는 크리스천이 자살하면 구원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주변에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습니다. 이 견해는 사실 카톨릭의 공식 견해여 왔습니다. 카톨릭에서 나온 장로교회 역시 이 견해를 붙들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장로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을 가르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카톨릭에서 말하는 행위 구원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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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구원받았을 때 그것은 우리의 행위와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한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가 받을 형벌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가 이미 십자가에서 처리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순간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처형되었고 또한 그분과 함께 생명의 새로움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크리스천이 자살한다 할지라도 그가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구원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고 오히려 그가 받아야할 상급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심으로 우리가 성장하게 하고 또한 우리에게 보상을 주시려 하나 자살은 우리가 그것에 합당하지 못한 자로 여기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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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 바울의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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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을 보십시오. 바울은 산전수전을 겪어온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역시 생명을 포기할 정도로 정말 힘에 겹게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 점을 형제들이 알기를 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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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후 1:8 형제들아,​ 아시아에서 우리에게 닥친 고난에 대하여 너희가 모르기를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라. 우리가 힘에 겹도록 한량없이 눌려서 심지어 생명까지도 단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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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은 타고난 재능가였고 이런 저런 시험들을 많이 당해보았기 때문에 어떤 것이 와도 이겨낼 것처럼 보였지만 그 역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도 아시아에서 닥친 고난이 너무 힘들어서 삶을 포기하는 단계에 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상황에서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혹 그런 일들을 하나님의 사람들이 당하게 될 때 유익이 되도록 올바른 선택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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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우리 속에 죽음의 선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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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절을 보면 바울은 “우리 속에 죽음의 선고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처형된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울은 한량없이 눌려서 힘에 겹도록 힘든 상황에서 바로 그 점을 기억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자기 자신에 대해 죽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미 자기 자신이 죽었다고 판결한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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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 6:4~7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분과 함께 묻혔나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힘입어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진 것 같이 우리도 생명의 새로움 속에서 걷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분의 죽음과 같은 모양으로 함께 심겼으면 또한 그분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되리라. 6 우리가 이것을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 이제부터는 우리가 죄를 섬기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 7 죽은 자는 죄로부터 해방되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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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후 1:9 우리 속에 죽음의 선고를 받았으니 이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죽은 자들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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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하나님을 신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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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신뢰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실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즉 바울은 그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을 보게 되면 우리는 그 상황을 헤쳐나갈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힘도 능력도 없는 자신을 발견한는 것이죠. 우리에게도 삶이 주는 중압감이 너무 무겁다고 느끼는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이것을 이겨낼 수 없다고 생각이 드는 겁니다. 아무리 계산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여길 때가 있습니다. 고통이 주는 중압감을 절대 이겨낼 수 없다고 여길 때가 있습니다. 자신을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결국 사람들은 우울증에 빠지게 됩니다. 사람이 우울증에 빠지게 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현실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이 만일 크리스천이라면 여러분은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러한 것들을 우리에게 허락하셨다면 그분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이상으로 고난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감당하지 못할 경우에도 주님은 피할 길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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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10:13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시험 외에는 너희가 어떤 시험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하나님은 신실하사 너희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시험 당하는 것을 너희에게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또한 그 시험과 함께 피할 길을 내사 너희가 능히 그것을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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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후 1:3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분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요 긍휼의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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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 역시 그의 마음이 낙담하고 불안해 할 때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그분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기억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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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42:5~8 오 내 혼아, 어찌하여 네가 낙심하느냐?​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느냐?​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분의 얼굴의 도우심으로 인하여 내가 여전히 그분을 찬양하리로다. 6 오 나의 하나님이여,​ 내 혼이 내 속에서 낙심하므로 내가 요르단 땅과 헤르몬 족속의 땅과 미살 산에서부터 주를 기억하리이다. 7 주의 폭우 소리에 깊음이 깊음을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내 위로 넘어갔나이다. 8 그러할지라도 주께서 낮에는 자신의 인자하심을 명령하시며 밤에는 그분의 노래가 내게 있으므로 내가 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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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 고난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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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러한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이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일 때가 있습니다. 바울의 경우에도 그러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힘에 겹도록 한량없이 눌려서 삶을 포기할 정도가 된 것은 그가 이제 받을 위로로 어떤 고난 중에 있는 자들도 능히 위로하게 하려 함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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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후 1:4 그분께서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심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위로 받을 때 얻는 위로를 힘입어 우리가 어떤 고난 중에 있는 자들도 능히 위로하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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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 본 사람은 죽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압니다. 죽음의 고난을 겪어본 사람은 그 어떤 고난도 고난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6.25 사변을 겪으시고 살아오신 분들을 보면 그들에게 닥친 어떤 것도 힘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들을 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미 삶이 주는 위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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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 그리스도께서도 고난을 당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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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후 1: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 안에 넘치는 것 같이 우리의 안위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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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셨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으로 인해 십자가를 견디사 그 수치를 멸시하시더니 이제 하나님의 왕좌 오른편에 앉으셨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
 +히 2:9~10 다만 예수님을 보노라. 그분께서 죽음의 고난을 당하시려고 천사들보다 조금 낮게 되셨다가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10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시며 또 자신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시는 그분께서 많은 아들들을 영광으로 데려가시는 일에서 그들의 구원의 대장을 고난들을 통해 완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
 +====E. 고난은 서로의 안위와 구원을 준다.====
 +
 +바울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말합니다. 고난을 당하는 사람은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사람을 볼 때 위로를 받습니다. 그가 당하고 있는 고난을 견디도록 힘을 줍니다.
 +
 +**고후 1:6 우리가 고난을 당해도 그것은 너희의 안위와 구원을 위한 것이요, 혹은 우리가 위로를 받아도 그것은 너희의 안위와 구원을 위한 것이니 이 구원은 우리도 당하고 있는 동일한 고난을 견디게 하는 데 효력이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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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 우리는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
 +
 +**고후 1:7 너희에 대한 우리의 소망이 굳건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안위에도 그러할 줄을 알기 때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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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고난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모든 것이 이제 쉬운 길로만 다니고 고난이 절대 우리를 침범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더 많은 고난이 찾아옵니다. 인간의 삶이 주는 고난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써 살아가는 고난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앞으로 주신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
 +
 +고후 4:17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이 우리를 위해 훨씬 더 뛰어나고 영원한 영광의 무거운 것을 이루느니라.
 +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받는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앞으로 주어질 왕국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입니다. 고난은 여러분의 삶의 방식을 바꿉니다. ​
 +
 +====G. 고난은 경험을 가져온다 / 고난은 믿음의 성장을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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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 5:3~5 그리할 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도 기뻐하나니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체험을, 체험은 소망을 이루는 줄 우리가 아노라.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에 의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넓게 부어졌기 때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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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고난에서 건져낸 경험을 하게 되면 동일한 고난이 여러분을 찾아올 때에는 여러분은 이미 그 고난을 이길 준비가 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고난에서 건지실 것이라는 신뢰와 믿음이 여러분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은 사실 이전의 고난의 체험을 통해서 성장한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 체험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더욱 신뢰하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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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후 1:10 그분께서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건지고 계시며 또 여전히 건지시리니 우리는 그분을 신뢰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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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1.8-10.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