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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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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3.1-6 [2019-03-17 15:30]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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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3월 10일 주일오전설교==
  
 +======자신이 부족하다는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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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말씀: 고린도후서 3장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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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후 3:1-7 우리가 다시 우리 자신을 추천하기 시작하겠느냐?​ 혹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처럼 너희에게 추천하는 서신을 보내거나 너희로부터 추천하는 편지를 받을 필요가 있겠느냐?​ 2 너희는 우리의 마음에 쓰여 있는 우리의 서신으로 모든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3 너희는 우리의 사역을 통하여 분명히 드러난 그리스도의 서신인데 이것은 잉크로 쓴 것이 아니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 판에 쓴 것이 아니요, 육체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 4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향하여 이 같은 확신을 가지고 있으나 5 우리는 어떤 일이 우리 자신에게서 난 것으로 생각할 만큼 능력이 있지 아니하며 오직 우리의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 6 그분께서 또한 우리를 새 상속 언약의 유능한 사역자로 삼으시되 글자의 사역자가 아닌 영의 사역자로 삼으셨나니 글자는 죽이되 영은 생명을 주느니라.**
 +
 +=====서론=====
 +
 +자신에게서 무언가를 바꿀 수만 있다면 현재 자신이 대하고 있는 상황들에 대해 자신이 적합할 것이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재정적인 부분이나 혹은 인간관계나 혹은 결혼문제나 자녀 양육이나 어떤 과업을 맡고 있거나 어떤 상황에서 현재 자신이 그 부분에서 부족함을 느끼거나 자신이 합당하지 못하다는 감정이 우리를 괴롭게 할 때가 있다. 때로 그러한 감정들은 우리로 하여금 포기하거나 나아가는 데서 멈추도록 이끌기도 한다. ​
 +
 +우리 모두는 다양한 상황들과 삶의 여러 때들에서 우리에게 찾아오는 도전들에 대해 제대로 자신이 그 일을 감당할만한 능력이 갖추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감정을 갖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결혼문제일수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재정적인 어려움일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교육의 부족을 느끼기도 하며 어떤 사람들은 일을 처리하는 수반능력의 부족을 한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해결책은 “우리가 달라질 수만 있다면” 이라고 소망하거나 희망하는데에 머물러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신이 부족하거나 적합하지 못하다는 감정이 그분과 함께 걷는 우리의 인생의 걸음에서 장애물이 되는 것을 원치 아니하신다. 대신 우리는 이런 감정들이 동기가 되어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의 약속들을 믿도록 이끌게 해야 한다.
 +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였던 성경의 사람들=====
 +
 +성경을 보면 분명하게 이런 동일한 감정 즉 하나님께서 부르신 일들에서 자신이 부족하거나 적합하지 못하다는 감정을 가진 주님의 위대한 종들을 발견할 수 있다.
 +
 +출애굽기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고통받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건져내기 위해 한 사람 모세를 택하셨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특별하였으며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죽음에서 건져졌으며 모세 스스로도 자신이 하나님께서 택한 그릇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세는 스스로 자기 백성을 구해보고자 나섰다가 능력이 부족함을 깨닫고 두려움 가운데 도망쳐서 미디안의 광야로 갔다. 거기서 40년이란 세월을 흘려보내던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다. 그리고 주님은 자신의 백성을 건지고자 그를 부르시고 계심을 분명히 하시고 강한 능력으로 그와 함께 할 것을 약속하시며 부르심에 응할 것을 요구하셨다. 그 때 모세는 자신이 언변이 능하지 못하다는 점을 보았으며 그것이 장애물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파라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꺼려하였다. “오 내 [주]여, 나는 말에 능하지 못하나이다. 지금까지도 그러하였고 주께서 주의 종에게 말씀하신 이후에도 그러하오니 나는 말이 느리고 혀가 둔하나이다.”(출 4:10) 
 +
 +사사기 6장을 보면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고통받던 이스라엘 백성을 건지시고자 기드온을 찾아오셨다. 모세에게 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강한 힘을 가지고 주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주었을 때 기드온은 자신의 낮은 혈통으로 인하여 원수들로부터 이스라엘을 건질만한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였다. “오 내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내 가족은 므낫세 안에서 가난하며 또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삿 6:​15). ​
 +
 +예레미야는 자신이 대언자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자신이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모른다고 주장하였다. “아, [주] {하나님}이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을 할 수 없나이다.”(렘 1:6).
 +
 +이 모든 경우에서 주님은 각 사람에게 주께서 친히 그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시면서 그들에게 확신을 주시고자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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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을 보면 심지어 사도 바울도 자신에게 맡겨진 사역을 두고 자신이 그 일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고백을 하였다. “우리는 어떤 일이 우리 자신에게서 난 것으로 생각할 만큼 능력이 있지 아니하며” 하지만 그 다음 그는 “우리의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고후 3:5)라고 단언하였다. 이것이 자신이 부족하거나 적합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모든 우리의 감정에 대한 해결책이다. 즉 주님께서 우리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가운데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를 능하게 하신다는 것을 아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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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족함을 느끼는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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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부족하거나 합당하지 못하거나 능력이 없거나 혹은 적합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때들을 체험한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영역은 서로 다른 영역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그 영역들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 중에서 몇 가지만 예를 들어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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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직업이 있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각 직장 역시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도전들이 주어지고 또 직장 안에서 변화가 생긴다. 그러한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직장에서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시작하는데 그들에게 필요한 기술이 부족하거나 혹은 새로운 도전들을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도전들은 새로운 기술들을 요구하거나 신지식을 습득하도록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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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로 생각해볼 수 있는 영역은 부모역할이다. 크리스천으로서 부모는 자신의 자녀들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경건하게 양육하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세상의 제도들 아래서 다양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세상의 유혹 가운데 있는 자녀들을 양육하는데 자신들의 능력의 한계를 발견하고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주님을 믿는 신실한 부모 아래서도 믿음을 전혀 전수받지 못하는 자녀들이 나올 수 있다. 하나님을 가까이 섬기던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들은 제사장으로서 성막에서 섬기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주님을 알지 못하는 벨리알의 자식들로 불렸다는 점은 충격과 함께 경각심을 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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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로 결혼의 영역이 있다. 많은 가정들이 이혼이라는 위기를 맞고 있다. 남편들과 아내들이 서로가 서로의 기대에 맞게 살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지만 문제는 상호 만족하는 관계를 어떻게 세워가야 할지 알지 못하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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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번째로 재정공급의 영역이 있다. 가족이 원하는 대로 혹은 풍족하게 자신의 가족에게 재정적으로 공급할 수 없다는 감정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그들이 돈을 많이 벌거나 혹은 넉넉하게 버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될 때 비참함의 감정을 겪는 경우도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남자들이 재정적으로 충분하게 벌수 없다는 현실을 인식하면서 결혼을 포기하는 경우들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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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번째로 인간관계의 영역이 있다. 자신이 부족하거나 적합하지 못하다는 감정을 갖는 근원으로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여 친구로 발전해가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하는데 있다. 성격이 조용하거나 말수가 적은 사람들은 더욱 이런 감정을 갖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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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족함에 대한 이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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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부족하거나 적합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감정은 개인에게 있어 어려운 경험이자 시기가 되겠지만 또한 놀라운 축복이 될 수도 있다. 성경의 위대한 사람들이 그 감정에 머물러 있었다면 하나님으로부터 크게 사용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부족함을 놀라운 축복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거기서 유익을 발견할 수 있기 전에 우리는 반드시 우리가 고통을 겪는 이유들을 들추어내야 한다. 그 부분들이 적절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반복해서 자신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의심하는 자들이 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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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자신이 제대로 필요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감정이 우리를 지배할 때이다. 삶의 실패의 경험들은 자신이 잇점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감정을 갖도록 이끌기도 한다. 자신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였거나 혹은 필요한 지성이 부족하여 이해가 부족하다고 여기거나 혹은 경제적인 위치가 좋지 않은 문제일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그 감정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면 우리는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인지하나 낙심이나 실망으로 인해 축복을 향해 나아가지 못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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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로 자신에 대해 낮은 자존감을 갖는 경우가 있다. 스스로를 좋아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이 합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게 되면 우리는 불확신을 가지고 고통을 느끼게 되며 스스로를 하나님의 부르심과 축복들을 받기에 합당하지 못하다고 느끼게 된다. 성경은 주님을 따르기 위해 자신을 부인할 것을 가르치지만 그것은 낮은 자존감을 가지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옵소서”라는 주님의 기도처럼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능력이 있으신 분의 지혜를 더욱 의지하는데 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다. 하나님께서 창세 이전부터 계획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삼으시고자 우리를 불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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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로 비교로 인한 요인이 있다. 세상에는 언제나 우리보다 더 많은 장점들을 가졌거나 더 많은 소유들을 가졌거나 더 많은 돈을 가졌거나 혹은 더 큰 능력들을 가진 사람들이 분명히 있기 마련이다. 그러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기가 죽어 살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자신으로도 만족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방식을 받아들이기 전에는 우리는 계속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을 부족하게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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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번째로 연약한 믿음이 요인이 된다. 만일 우리가 필요한 것을 갖추시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한다면 그분께서 우리를 불러 하게 하신 것이 무엇이든지간에 그것을 성취하지 못할 것이란 감정을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성령님을 주셔서 우리를 능하게 하신다. 불확신이 우리 마음속으로 침투할 때 신자들은 이런 감정들에 갇혀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하여금 그것들을 이길 수 있도록 하신다. 성도들은 때로 자기 안에 계신 성령님의 크심을 인지하지 못한다. 사도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곧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그분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의 지각의 눈을 밝히사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 안에 있는 그분의 상속 유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하며 19 그분의 강력한 권능의 활동에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바 그분의 지극히 큰 권능이 어떤 것인지 너희가 알게 하시기를 구”(엡 1:​17-19)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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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번째로 비판의 요인이 있다. 사람들에게서 칭찬을 듣고 귀에 듣기 좋은 말들을 들을 때에는 자신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서 쓴 소리를 듣고 비판을 듣거나 부정적인 말들을 들으면 우리는 확신을 잃어버리고 자신이 부족하거나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나아갈 추진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달려가던 길에서 중도에 멈추어 버리곤 한다. 우리의 생각 없이 던지는 비평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실감을 심어줄 수 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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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 번째로 과거의 실패들이 있다. 우리 모두는 분명히 때때로 실패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반드시 지속적으로 실패감에 젖어서 사는 것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한다. 실패감은 우리로 하여금 패배감에 빠지게 함으로써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갈멜산에서 놀라운 승리를 보였던 엘리야가 자신이 얻고자 한 결과들을 보지 못함으로써 절망감에 마치 늪에 빠지듯이 빠져간 것은 주목할 만하다. 실패를 경험하는 것은 두렵고 괴로운 일이지만 이것을 기억하자. 실패를 경험하는 것이 그렇지 못한 때보다 더 많은 것들을 배우게 하고 또 성장하게 한다. 실패하였다고 해서 그 다음 실패할 것이라 말할 수 없으며 또 그것이 인생 전체의 실패가 아니다. 우리가 실패하였을 때 미래를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아니하신다. 주님은 우리가 넘어질 때를 아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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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족함의 감정이 끼치는 결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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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를 감정적으로 억누르는 상황들을 대하게되면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주님께서 약속하셨던 것들에 집중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부정적인 감정들에 넘어가 지게 되면 우리는 다음의 확실히 오게 되는 결과들을 겪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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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들이 주는 잇점을 취하는 데서 실패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 새롭고 무언가 도전적인 기회들을 제공하신다. 이것들은 종종 순종의 작은 행위들에서 시작되지만 그것들은 우리의 영적인 성장과 섬김에서 다음 단계로 우리를 이끌도록 고안된 것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자신이 부족하다는 감정의 두려움을 허용하여 나아가는데서 멈추게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들을 위해 계획하신 것들을 놓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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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할 수 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불러 그분을 섬기게 하실 때 우리에게 종종 찾아오는 세 가지가 있다: (1) 실패에 대한 두려움, (2) 재정과 관련한 우려들, (3) 가족에 대한 염려. 이 세 영역이 하나님의 일들을 시도하려는 마음을 식어버리게 만들어 하나님의 사역들이 중단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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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축복이 상실될 수 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사역으로 부르신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지 아니하였다면 복음의 사역은 다른 사람을 통해 온 세계로 전달되었을 것이며 사도 바울은 축복에서 배제되었을 것이다. 에스더가 자기 민족을 구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자리에 있었을 때 모르드개는 “네가 왕의 집에서 모든 유대인들보다 더 잘 피하리라고 스스로 생각하지 말라. 14 이때에 네가 전적으로 잠잠하면 유대인들은 다른 곳으로부터 해방과 구출을 받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이와 같은 때를 위해 왕국에 들어갔는지 누가 알겠느냐?​”(에스더 4:​13-14)라고 하였고 에스더는 “내가 죽으면 죽으리이다”로 화답하였다. 결과적으로 유대 민족을 위한 구원은 에스더를 통하여 공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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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분의 축복으로 나아가는 길은 매우 단순하다:​ 순종 가운데서 살아가는 삶이다. 주님은 우리를 위한 전체의 계획을 한 번에 끄집어 내지 아니하시고 다만 각각의 연속적인 순종의 단계와 함께 우리에게 나아갈 길을 보여주신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모든 감정들은 우리가 우리와 함께 가시겠다고 약속하신 분의 속성들을 깊이 생각할 때에 사라져야 마땅할 것이다. 그분은 모든 권능을 가지신 분이시며 모든 것을 아시며 사랑하고 은혜로우시며 친절하시고 용서하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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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번째로 성취의 부족이 나타날 수 있다. 우리의 불확신과 부족하다는 감정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도록 허용하면 언제나 무언가를 놓치는 것이 존재하게 된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권능이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분의 임재의 충만하심을 감지할 수 있지 못하는 것을 기억하자. 그분은 우리와 함께 하시어도 우리는 그분을 감지하지 못할 것이다. 주님은 자신의 부르심에 부합하게 능력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찾고 계시지 않으신다. 오히려 주님은 부족한 자들을 부르셔서 가치 있는 무언가를 하도록 그들의 연약함 가운데서 그들을 사용하신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사람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그분의 유용한 도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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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종의 중요한 영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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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에 두 가지 중대한 영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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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구원의 영역이 있다. 우리는 절대로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에 부족하거나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감정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은혜롭게 용서를 제공하시는 것을 그분의 아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일을 못하도록 막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먼저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된다고 시도할 필요가 없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있는 그대로 올 것을 청하신다. 깨끗하게 하시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그분이시다. 우리가 너무 많이 죄를 범해서 절대로 변할 수 없다고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변하게 하실 수 있으시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우리의 모든 죄들을 덮으며 그분의 성령께서 우리를 능하게 하사 의와 거룩함과 순종 가운데서 살게 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신다. 우리의 의무는 예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힘을 의지하여 성령 안에서 그분과 함께 걷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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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로 섬김의 영역이 있다.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 주님은 그분을 섬기도록 우리를 부르신다. 참된 만족은 오직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믿고 모든 상황에서 그분을 신뢰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데 있다. 주님께서 우리가 하도록 부르신 일이 무엇이든지간에 자신이 부적합하다고 느끼는 것은 만일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도우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우리가 기꺼이 인지하고자 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고백이었으며 또한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한다.
 +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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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자신의 무능력함에 더 집중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약속들에 더 집중하는가?​ 여러분의 관심을 그분의 말씀에 집중하는 것이 여러분의 태도와 확신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
 +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불러 여러분의 능력을 넘어 보이는 어떤 방식으로 섬기도록 부르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가? 여러분은 주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는가 아니면 여러분의 불안감이 멈추게 하도록 허용하였는가?​
 +
 +만일 여러분의 부적합하다는 감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순종해왔다면 경험을 통해서 무엇을 배웠는가?​ 결과적으로 여러분의 길에서 어떤 축복들이 왔는가?
고후3.1-6.txt · 마지막 수정: 2019-03-17 15:30 작성자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