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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4.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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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4.7-18 [2018-11-11 15:43]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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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11월 4일 주일오전설교==
  
 +======질그릇에 담긴 영적 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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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고린도후서 4장 7-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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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후 4:7-18 그러나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 안에 가지고 있나니 이것은 뛰어난 권능이 [하나님]에게서 나며 우리에게서 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에서 고난을 당하나 괴로워하지 아니하며 난처한 일을 당하나 절망하지 아니하고 9 핍박을 받으나 버림받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나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주] 예수님의 죽으심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님의 생명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살아 있는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항상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님의 생명 또한 우리의 죽을 육체 안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2 그런즉 이처럼 사망은 우리 안에서 일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일하느니라. 13 기록된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노라,​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영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14 또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도 일으키사 너희와 함께 드러내 보이실 줄 우리가 아노라. 15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하여 있나니 이것은 많은 사람의 감사를 통하여 풍성한 은혜가 넘쳐 나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려 함이라. 16 이런 까닭에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썩어 없어져도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는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이 우리를 위해 훨씬 더 뛰어나고 영원한 영광의 무거운 것을 이루느니라. 18 우리는 보이는 것들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을 바라보나니 보이는 것들은 잠깐 있을 뿐이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은 영원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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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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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잠들어 있는 우리의 얼굴 위로 환하게 비쳐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게 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태양으로부터 오는 빛은 사방의 어둠을 물러나게 할 뿐 아니라 얼굴의 촉각에 따뜻함을 전달하며 빛에 매우 민감한 눈에 자극을 주어 잠을 달아나게 한다. 우리는 빛을 통해 세상을 인지하고 또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 물리적인 빛은 태양으로부터 오며 태양은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밝히 빛나게 되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 1:3) 어둠에서 빛을 나누셨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또 인지하는 물리적인 빛은 창조의 넷째 날에 창조되었다. 넷째 날에 두 광채가 창조되어 큰 광채는 낮을 다스리고 작은 광채는 밤을 다스리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처음 창조된 빛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물리적인 빛 뿐 아니라 영적인 빛이 존재하며 하나님께서는 “빛들의 아버지”로 불리시며 그분께는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약 1:17). 에베소서 5:8을 보면 “너희가 한때는 어둠이었으나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니 빛의 자녀들로서 걸으라.”라고 명령하고 계신다. 모든 지적이고 영적인 빛 역시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온다. 그분은 빛이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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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이 되어 빛을 보지 못하고 잠들어 있던 우리의 얼굴에 아침이 되어 환한 빛이 얼굴에 비추어 잠에서 깨어나듯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사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주셨”(고후 4:6)다. 그 빛은 이제 거룩하신 분을 알게 하고 우리의 죄성을 보게 하며 영원하신 분의 영광과 그분의 권능과 지혜와 도덕적인 속성들이 무엇이며 그분의 지적인 창조의 계획과 능력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였다. 성경은 그 빛이 어디에서 비춘다고 말하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이다. 물론 이것은 상징적인 표현이다. 우리 주님의 부활을 통해 이 빛은 그분의 얼굴에서 빛나게 보이게 되었으며 그분의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변화산에서 변화되어 환하게 빛나던 분을 보았던 것처럼 그분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 물리적인 빛 뿐 아니라 영적으로 그분과 그분을 보내신 분의 영광을 알게 하는 빛이 흘러나온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제자들이 참 하나님과 그분의 영광을 보게되었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고 신뢰한 사람들의 마음에는 창조주 하나님을 알게 하는 빛이 우리의 지성과 감성에 빛을 비춘다. 아침에 태양 빛이 수용적이며 민감한 눈에 자극을 주고 잠에서 깨어나게 하듯이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과 그분의 권능에 대한 계시는 진리를 수용하고자 하며 반응하고자 하는 마음에 자극을 준다. 그 빛은 우리를 영적 잠에서 깨어나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며 그분의 거룩함이 어떠한지를 알게 하여 우리의 죄성을 보게 할 뿐 아니라 빛이 세상을 인지하게 하듯 우리로 하여금 영적인 분별력을 갖게 하는 지혜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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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영적 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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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그 빛을 “보배” 즉 보물로 칭하고 있다. 그 보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선포한 복음 즉 감추어져있던 신비를 통해 오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진리”로 부르셨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빛이 오면 가시광선과 자외선과 적외선이 같이 오듯이 그 보배인 빛은 죄에 대한 값없는 용서와 구약의 율법이 아닌 자유롭게 하는 법과 생명의 권능의 약속이 같이 온다. 그 빛은 수천 년이 흐른 지금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역사하는 힘이 있다. 누구든지 그분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능을 선사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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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빛 혹은 이 진리는 “보배” 즉 가치있는 보물이다. 주 예수님께서는 이 보배를 복음서에서 “밭에 숨겨진 보물”로 비유하셨고 또한 “매우 값비싼 진주”로 비유하셨다. 진주의 비유에서 상인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팔아 그 진주를 구매하였다. 물론 원래의 적용은 교회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다. 이 보배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늘의 보물을 생각나게 한다.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거기에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마 6:21) 이 보물의 값을 지불하기 위하여 신격의 두 번째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야 했으며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셔야만 했다. 그 보물은 이 세상의 어떤 것을 지불하더라도 그 값을 지불할 수 없음에도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뢰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값없이 주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롬 3:24) 주어지며 그것을 받아들인 자들을 영적으로 부하게 만든다. 이 부(富)는 “스스로 날개를 내어 날아가는” 이 세상의 재물과 같지 아니하여 어느 누구도 빼앗아 갈 수도 없으며 빼앗길 수도 없다. 이 부(富)는 또한 세상에서 가난한 자들을 믿음 안에서 부요하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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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질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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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보배가 담긴 그릇은 매우 가치 있는 재료로 만들어진 그릇이 아니다. 그것은 흙으로 만들어진 “질그릇”에 불과하다. 아담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라고 하셨으며 그렇기에 그의 이름은 “아담” 즉 “흙”이 되었다. 고대의 왕들은 금이나 은이나 보석들을 보관할 때 흙으로 만들어진 항아리에 보관하곤 하였다. 그리 보잘 것 없는 재료로 만들어진 것이 매우 값비싼 보석들을 보관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질그릇은 그 안에 담긴 것을 잘 보관할 뿐 아니라 그것을 변하게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질그릇으로 만들어진 것에 온 방을 밝히는 빛을 유지하게 하는 기름이 놓인다. 내용물은 그 내용물을 담고 있는 물체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있는 것이다. 종이로 만들어진 책은 불타기 쉽고 값도 저렴할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매우 심오하고 인간의 생명을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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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도 그분은 질그릇과 같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으나 그분의 입에서는 진리의 말씀이 전해졌으며 그분의 말씀은 권능 있고 힘이 있었다. 그분은 사람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이셨다. 사도들은 어부이거나 혹은 세금을 걷는 세리이거나 혹은 천막을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인류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계획이 담긴 복음을 전달하는 일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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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하나님의 위대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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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이 질그릇에 자신의 진리의 빛을 주시고 그를 통해 일하시는 이유는 “이것은 뛰어난 권능이 [하나님]에게서 나며 우리에게서 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다. 사도들은 매우 결점이 있고 연약한 존재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일하심으로써 자신의 권능의 뛰어남을 보이신다. 만일 능력 있는 자가 자신의 능력으로 어떤 일을 해낸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업적을 자신의 공으로 돌릴 것이다. 하지만 연약하고 결점이 많으며 지혜가 부족한 자가 놀라운 일들을 해낸다면 그 공은 그러한 자를 강하게 하시고 지혜를 주시어 능력을 주시는 분께서 마땅히 그 영광을 받아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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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들은 연약한 몸을 가졌고 그들의 판단은 결점들이 있으며 그들의 성격은 불완전하여 베드로는 불과 같고 요한은 급한 성격을 지녔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 모두를 통해 일하시고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시는데 어려움이 없으셨다. 그들 모두가 종종 굴욕당하고 핍박 받으며 경멸당하곤 함으로써 낙심하기도 하였지만 전적으로 그들 안에 있는 그 놀라운 보배가 얼마나 더욱 뛰어난지를 보여주었다. 그 빛을 주시는 성령께서는 그들 모두를 통하여 일하시고 그들을 능력있게 하시며 선물을 주셔서 그들을 불러 행하게 한 일들을 수행하게 하시었다. 사도 바울의 “우리가 사방에서 고난을 당하나 괴로워하지 아니하며 난처한 일을 당하나 절망하지 아니하고 9 핍박을 받으나 버림받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나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주] 예수님의 죽으심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님의 생명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라는 고백은 그의 삶을 통해 일하시는 빛이자 진리이신 성령님의 능력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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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V. 낙심하지 아니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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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바울은 그러한 고난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았고 그것이 전적으로 자신의 질그릇 안에 놓인 그 보배의 가치임을 고백하였다. 그 보배로 말미암아 고난 가운데 있는 삶을 살아도 그는 낙심하지 아니하는 이유가 있었다. 먼저 그것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의로운 자녀들이 넘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신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사방에서 고난을 당하나 괴로워하지 아니하며 난처한 일을 당하나 절망하지 아니하고 9 핍박을 받으나 버림받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나 망하지 아니하”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그 보배로 인한 것이다. 넘어질듯 하여도 넘어지지 아니하는 오뚜기처럼 참된 크리스천의 신앙의 삶에는 그가 오뚜기처럼 일어나게 하는 비중이 그 안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고난을 통해서 우리 안에 있는 보배가 더욱 아름답게 비치게 될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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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로 낙심하지 아니하는 이유는 그 고난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그리스도의 고난들 뒤에 있는 것”(골 1:24)이라 불렀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해 내가 고난당하는 것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고난들 뒤에 있는 것을 그분의 몸 곧 교회를 위해 내 육체 안에 채우노라.” 고난이나 고통이나 혹은 그리스도로 인한 핍박과 역경을 당할 때 십자가를 생각하자. 그분께서 나의 죄들로 인하여 의로운 자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음을 기억하자. 사도들은 그러한 것들을 당할 때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로 합당하게 여겨진 것”으로 생각하였다. 심지어 여러분이 하나님을 경배하기위해 교회에 오는 것 역시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라. 누군가는 자기희생을 하면서 주님을 섬기기 위해 온다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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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로 사도 바울은 고난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아니하는 이유로 “우리의 겉 사람은 썩어 없어져도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16절)기 때문이라 말한다.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서 겉 사람은 계속 늙어간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는 “날마다 죽는다.” 우리는 이 땅에 영원히 살 수 없다. 언젠가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이 땅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날이 이르기 전에 우리의 속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지도록 하기 위해 즉 그분의 거룩한 본성에 동참하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 고난을 우리의 훈련의 방법으로 삼으셨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보물을 더욱 드러내는 일이다. 질그릇인 우리가 육체나 심적인 여러 고난이나 고통을 통해 우리의 겉 사람은 괴로워할지 모른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견디고 이겨온 만큼 영적으로 성장한다. 애벌래가 아름다운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여러 번 허물을 벗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마지막에는 나비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성품의 모난 부분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훈련을 통해 우리가 자신의 육신의 본성대로가 아닌 성령을 따라 걸으며 그분의 음성에 순종함으로써 우리의 성품에서 그분의 열매가 나타나게 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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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 하나님의 훈련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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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후 4:17-18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이 우리를 위해 훨씬 더 뛰어나고 영원한 영광의 무거운 것을 이루느니라. 18 우리는 보이는 것들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을 바라보나니 보이는 것들은 잠깐 있을 뿐이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은 영원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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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바울은 17-18절에서 하나님의 훈련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그리고 하나님에게서 받은 계시를 가지고 이 점을 설명하고 있다. 이 두 구절을 말하기 전에 그의 삶에 많은 시련과 고통이 있었고 육체적인 노동의 수많은 햇수가 흘러갔음을 염두에 두자. 그런데 이 두 구절은 오랫동안 크리스천의 믿음과 인내를 강화하고 소망을 불어넣으며 마음에 강화된 권능을 받아 많은 역경을 이겨낼 힘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어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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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종 사람들은 진리를 인지하지 못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계획되고 목적을 갖고 있으며 우리의 삶에 유익을 끼칠 실제적인 것들을 가져오신다. 그리고 그것은 “고난”을 통해 온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 선교사이자 복음 전도자로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서 자신이 당한 고난을 말하고 있다. 그가 당한 고난은 그의 성품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끼쳤고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감당하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변해갔다. 고난을 통해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했고 또한 그분의 심정으로 각 지역의 교회를 세워나갈 수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을 말할 때 시간적으로 “잠시 받는” 것이며 또한 그 성격은 “가벼운”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비교를 통해 얻은 결과였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육체적이고 심적인 고난을 앞으로 자신이 받을 영광의 “무게”와 “영원성”과 비교하여 본 후에 기쁨의 소망과 확신에 차서 우리에게 동일한 소망을 주고자 이렇게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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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하나님의 훈련의 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 우리를 훈련하시는 이유는 바로 영광을 위한 것이다. 비가 온 후에 흑암의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아름답고 밝은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적인 아들들에게 영원한 영광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생각해보자. 그분은 부활과 승천을 통해 영화롭게 되기 전 그분은 자신이 아닌 자신의 원수들의 죄들을 대신하여 죽는 대속적인 고난을 겪으셨고 앞에 있는 영광을 위하여 그 십자가를 인내하셨다. 그분의 고난은 십자가가 전하는 영광의 무게와 영원성에 비교한다면 매우 짧은 것이고 가벼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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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훈련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이것은 고통받는 자가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더 나은 자가 되어야 하는 과정의 문제 이상의 유익을 말한다. 우리는 이 고난을 통해 주어지는 훈련으로 무엇을 보며 또 어떤 감각을 얻게 되는가? 훈련은 세상을 향한 눈과 세상적인 가치관에 영향을 줌으로써 그것들이 덜 중요한 것이며 곧 없어지게 될 것을 깨닫게 한다. 우리는 없어질 것들에 자랑하는 경향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자들이라는 점이다. 하나님의 훈련으로 말미암아 성도는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을 바라보는 감각을 얻게 된다. 우리 보다 앞서 가신 그리스도를 보며 또한 믿음에서 뛰어남을 보여주었던 여러 성도들을 본다. 사도 바울은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의 전당에 서 있는 여러 믿음의 장로들을 언급하였다. 훈련을 통해 우리는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은 쉼이 없는 자들에게 안식을 슬퍼하는 자에게 기쁨을 고통받는 자에게 위로를 선사한다. 훈련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께서 “그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가까이 계”신다는 점을 깨닫게 하며 그것은 모든 거룩한 혼들의 참된 삶에서 보인다. 크리스천이 깊이 관심을 가지는 실제의 영역은 영원한 영역이다. 영원의 영역에서 시간은 사라지며 죽음은 그 힘을 잃으며 지상의 영광스러운 모든 것들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훈련은 성도로 하여금 영원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도록 이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비록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더 인내할 힘을 주며 앞으로 나타나고 계시될 영광을 소망하도록 이끈다.
 +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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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그릇 안에 담긴 보배를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허락하시는 훈련은 고난을 통해 온다. 그 영광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이며 주님은 우리가 보배를 담는 그릇으로 합당한 자가 되게 하려고 우리의 삶을 이끄신다.
고후4.7-18.txt · 마지막 수정: 2018-11-11 15:43 작성자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