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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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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1.3-5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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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6월 12일 주일오전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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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 소망, 사랑이 너희 마음속에 있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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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골로새서 1장 3~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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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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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에게 있어 골로새 교회는 특별한 교회였다. 그 까닭은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니었다. 그는 골로새에 가본 적이 없다(골 2:1). 바울의 세차례에 있었던 선교여행 가운데도 골로새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사도행전에는 골로새라는 지역이 나와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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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절을 보면 “에바브라”가 등장하는데 그는 바울에게서 복음을 듣고 믿는 자가 되었으며 그를 통해 골로새 성도들에게 복음이 전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에바브라는 골로새뿐 아니라 라오디게아와 히에라폴리스 지역에 복음을 전하길 갈망하던 주의 종이었다(골 4:​13). ​
 +
 +사도행전 19장에 바울이 에베소에서 있었던 사역이 나와 있는데 바울은 거기서 3년동안 복음을 전함으로 아시아에있는 모든 사람이 복음을 듣게 되었다고 성경은 증언한다. 그 때 에바브라가 바울을 알게 되었고 그에게서 복음을 전해 듣고 그의 가족들과 친척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빌레몬과 그의 종이었던 오네시모 역시 바울에게서 복음을 듣고 주님을 구주로 영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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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당시 골로새 교회는 영적으로 어려운 때를 맞이하고 있었다. 골로새 지역은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길목에 있었다. 그로인해 동양의 철학과 유대교의 율법주의가 혼재된 이상한 교리들이 당시 교회를 교리적으로 위협을 주었다. 그에 대해 바울은 이 교회가 바른 교리와 믿음 가운데서 굳게 서기를 권고하는 서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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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로새 교회의 영적 상황은 어쩌면 우리가 처한 현실과 비슷할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는 온갖 비성경적인 교리들로 인해 내외적으로 어려운 위치에 처했다. 여호와의 증인,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회(안상홍증인회)와 같은 이단교리를 전파하는 자들은 기독교내에 여러 가지 분란과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수많은 거짓 교사들이 기독교내에서 거짓 믿음과 교리들을 퍼뜨리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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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은 여러 가지 철학과 거짓 교리로 위협당하고 있는 교회에게 서신을 통해 위로와 권면의 말씀을 줄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있다. 그것은 그들로 인해 감사를 드리는 일이었다. 바울은 무엇을 두고 감사를 드리고 있는가? 그것은 위태로운 때에 우리가 기본적으로 품어야할 바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크리스천은 이 기초위에서 뿌리를 내리고 터를 잡아 성장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행해야 한다. 그 기초는 우리 마음 안에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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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을 통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언제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세 가지 은혜는 우리를 여러 가지 교리로 우리를 흔들고자 하는 시대에서 우리로 하여금 굳건하게 서기 위해 기본적으로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어야 하는 것들이다. 이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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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 1:3~5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며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림은 4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들을 향한 너희의 사랑을 우리가 들었기 때문이요,​ 5 또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인함이니 이 소망은 너희가 전에 복음의 진리의 말씀 안에서 들은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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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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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은 기독교의 근본이다. 믿음이 없이는 우리는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 그런데 믿음의 시작은 어디인가?​ 먼저 우리는 복음의 진리의 말씀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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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은 복된 소식이란 뜻이다. 어떤 복된 소식인가?​ 그것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식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해 성경대로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성경대로 셋째날에 다시 일어나셨다는 소식이다. 우리의 믿음의 태동은 바로 이 복된 소식을 듣게 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믿음은 에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어야 한다. 바울도 골로새 성도들을 두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소유했음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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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우리를 구원하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 대상으로 해야 한다. 히브리서 12:2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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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여호와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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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많은 이단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면 우리의 믿음의 대상을 예수 그리스도에서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는 데 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피조된 신으로 바라본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말할 뿐이지 실제로는 믿지 않는다. 우리는 몸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나 그들은 영적으로 부활한 것을 믿을 뿐이다. 그런 믿음은 우리를 구원하는 믿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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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안상홍 증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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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우리의 믿음의 대상을 몰래 바꾸는 자들이 있다. 천주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마리아에 대한 믿음이 더욱 크다. 영원하신 창조주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은 피조된 한 여자에게로 바뀌는 것이다. 물론 주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고 오실 때 여자의 몸을 통하여 오셨다. 그것은 우리의 죄들을 위한 화목제물이 되시기 위해 피가 있는 몸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그분은 영으로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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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한 천주교처럼 우리의 믿음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다른 대상으로 옮기는 이단이 있다. 그 이단은 한국에서 자생한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회라 자칭하는 “안상홍 증인회”이다. 이들은 아주 교활한 집단이다. 이 집단의 홈페이지를 방문해보면 어디에도 안상홍이 하나님이란 말은 없다. 그런데 그들에게서 직접 교리를 배우게 되면 차후에 가르치는 것은 안상홍이 하나님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노래하는 찬송가도 만들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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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생명을 주는 대상으로 믿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 어머니”가 있다고 가르친다. 그들이 주장하는 “하나님 어머니”란 교리는 계시록 22장을 보면 생명수를 주는 것은 새예루살렘에서 주기 때문에 새예루살렘이 그들의 어머니라는 것이다! 사실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교리는 요한계시록 21,​22장에서 조금, 그리고 갈라디아서 4장에서 조금이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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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안상홍 증인회를 믿는 사람들의 무리가 최소 10만명 이상이 될 것이므로 이들의 교리를 잠깐 다루고 지나가는 것이 유익할 것 같다. 먼저 그들이 새예루살렘이 자기들의 어머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갈라디아서 4장 26절에 근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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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4:26 그러나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로운 자니 곧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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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얼마나 유치한 생각인지를 알 수 있다. 갈 4:22~31은 바울이 율법과 믿음이라는 언약을 언급하기 위해 풍유를 사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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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4:24 그것들은 풍유니라.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인데 하나는 시내 산에서 나와 종이 되게 하는 자니 곧 하갈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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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고 이미 해석해 놓았다. 25절에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이고 또한 지금의 예루살렘에 해당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26절은 자유로운 여자 즉 사라를 말하는 데 사라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예루살렘을 두고 성경이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고 칭했다. 그 의미가 무엇인가?​ 그것은 28절과 31절이 답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약속의 아이들이다. 또한 자유로운 자의 아이이다. 여기서 자유로운 자란 사라를 말한다. 즉 두 여자는 처음부터 두 언약인 셈이다. 율법 언약을 받은 이스라엘은 현재까지 종노릇하고 있다. 그러나 믿음과 은혜의 언약의 아이들은 약속의 아이들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다.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이 우리의 어머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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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이 이런 풍유를 사용한 까닭이 무엇인가?​ 19절에 그 답이 있다. “나의 어린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께서 형성되시기까지 내가 다시 너희를 위해 산고를 겪노라.”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이 율법을 통해 의롭게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그분에 대한 믿음을 통해 태어나기를 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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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계시록에서 그들이 새예루살렘이 신부라고 생각하는데 그 까닭은 21장 9~10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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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 21:9~10 마지막 일곱 재앙을 가득 담은 일곱 병을 가졌던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내게 와서 나와 이야기하며 이르되, 이리로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여 주리라, 하고 10 영 안에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에 이르러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저 큰 도시 곧 거룩한 예루살렘을 내게 보여 주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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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사가 어린양의 아내 즉 신부를 보여준다고 하면서 보여준 것이 새예루살렘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단순히 풀려는 사람은 신부가 새예루살렘이라고 단정을 짓는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생각해보라. 신부는 생명을 가진 자들을 언급하는 것이고 새예루살렘은 건물이다. 천사가 새예루살렘을 보여준 것은 그곳이 바로 신부가 거할 거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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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 19:8을 보면 어린양의 아내는 성도들임을 알 수 있을뿐더러 엡 5:22~33은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신비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즉 그리스도와 교회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와 같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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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보여줄 안상홍 증인회의 잘못된 성경해석은 다음과 같은 주장이다. 그들은 22장을 보면 새예루살렘이 생명수를 주고 있다. 생명수를 주는 것은 하나님이므로 새예루살렘은 하나님 어머니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것이다. 22장 1절을 보면 “또 그가 하나님과 어린양의 왕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정결한 강을 내게 보여 주니라.” 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생명수는 어디서 흘러나오는가?​ “하나님과 어린양”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볼 수 있는가? 볼 수 없다. 그분은 영이시다. 또한 여기서 왕좌는 단수로 되어있다. 영어로 보아도 throne는 단수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분이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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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 잘못된 믿음을 갖는 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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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으로 돌아와서 우리를 구원하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 대상으로 두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맹목적인 믿음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단지 “믿습니다!”만 외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있어 믿음은 대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 자체가 중요하다. 즉 긍정적인 사고를 갖게하는 믿음이 그들을 구원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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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들은 교리를 믿음으로 두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믿고 있는 바가 자신을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그분께 두어야 한다. 즉 인격체에 두는 것이지 단순한 지식에 두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우리가 주의해야 할 부분이 생긴다. 단지 어떤 사람이 어떤 지식을 습득하고 그에 대해 믿음을 고백했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이 비록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구원받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믿음의 대상은 지식이 아니라 그분께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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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하는 믿음은 우리의 전인격적인 요구를 한다. 즉 지성과 감성과 의지적인 역사가 있어야 한다. 먼저 지성으로 우린느 복음의 진리를 이해하게 된다. 감성으로 우리는 죄에 대한 찔림과 구원받아야 할 필요성을 발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의지를 사용해서 그리스도께 자신을 의탁해야 한다. 믿음은 단지 어떤 교리에 지성적으로 동의하는게 아니다. 또한 믿음은 어떤 감성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도 아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 내 자신을 의탁하고 맡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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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 신앙생활에서 믿음의 잘못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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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경우는 성경에 대한 지식이나 혹은 어떤 판단에 있어 지혜로우면 그것이 믿음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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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2:5 이것은 너희의 믿음이 사람들의 지혜 안에 서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권능 안에 서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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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 것이 믿음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때로 나의 경험과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길로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걸어야할 때가 있다. 그분의 뜻과 인도하심을 구하라. 그리고 주님이 말씀을 통해 보여주시거나 성령안에서 확신을 주실 때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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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모든 성도들을 향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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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로 우리가 기본으로 삶아야 할 것은 사랑이다. 이 사랑은 에로스적인 사랑 즉 육신의 사랑이 아니다. 이 사랑은 그리스어로 “아가페”이다. 성경에서 charity즉 크리스천의 사랑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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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에 대해 먼저 언급할 것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그분께서 우리를 먼저 찾으시고 사랑하셨다는 점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분의 독생자를 주셨다. 때로 우리는 사랑에 메말라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 라고 묻는다. 적어도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또한 주님은 우리가 비록 깨닫지 못해도 우리를 돌보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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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라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성도들을 향한 사랑이라고 했다. 왜 그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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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일 3:21~24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정죄하지 아니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확신을 갖고 22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것을 그분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고 그분의 눈앞에서 기쁨이 되는 그 일들을 행하기 때문이라. 23 그분의 명령은 이것이니 곧 우리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을 주신 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 24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는 자는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은 그 안에 거하시나니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 우리가 아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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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성도들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한다는 가장 큰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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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일 3:17~18 그러나 누가 이 세상의 좋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동정하는 마음을 닫아 그를 피하면 어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거하겠느냐?​ 18 나의 어린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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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형제들에 대한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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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13:34 내가 새 명령을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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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로새 성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이 명령을 지키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명령에 따라 살기를 원하신다. 이 사랑은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야 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을 통해 그 사랑의 성격을 보여주었다. ​ 그 사랑은 이타적인 사랑이다. 크리스천의 사랑의 특징은 바로 이타적인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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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V. 하늘에 쌓아 둔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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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크리스천의 기본이 되는 것은 소망이다. 소망은 궁극적인 것이다. 우리는 바랄 수 없는 것들을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되거나 얻게 될 것을 소망한다. 소망은 우리가 믿는 것들에 대한 결과이기도 하다. 히 11:1은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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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천의 소망의 다른 특징은 그 대상이 보이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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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 8:24~25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라. 그러나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니 어찌하여 사람이 보는 것을 여전히 바라리요?​ 25 그러나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인내로 그것을 기다리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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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크리스천의 소망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세상 사람들이 소망하는 것들을 생각해보라. 어떤 사람들은 좋은 직장을 소망한다. 어떤 이들은 좋은 가정을 소망한다. 어떤 이들은 부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어떤 이들은 출세하기를 소망하기도 하며 자식들이 성공하기를 소망한다. 이 모든 것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을 소망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을 소망한다. 비록 그분이 보이지 아니하실지라도 그분은 우리의 복된 소망이시다.
 +
 +딛 2:13 저 복된 소망과 위대하신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느니라.
 +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지 아니할 것을 소망한다.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바이다.
 +
 +고전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는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을 넘치게 하라.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너희가 아느니라.
 +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소망을 통하여 하나님이 계시는 곳으로 나아간다.
 +
 +히 6:19 우리에게 있는 이 소망은 혼의 닻과 같아서 확실하고 굳건하여 휘장 안에 있는 곳으로 들어가나니
 +히 7:19 율법은 아무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하였으나 주께서 더 나은 소망을 가져오심은 완전하게 하였으므로 우리가 이 소망을 힘입어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느니라.
 +
 +우리가 가진 소망은 죽은 소망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소망이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성취하실 것으로 100%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
 +벧전 1:3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찬송하리로다. 그분께서 자신의 풍성하신 긍휼에 따라 죽은 자들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다시 낳으사 산 소망에 이르게 하셨으며 ​
 +
 +우리는 이 소망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며 또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소망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우리는 그 소망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한다.
 +
 +롬 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에 의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넓게 부어졌기 때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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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로새서 말씀으로 돌아가서 보라. 바울은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이라고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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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6:19~21 너희 자신을 위해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서는 좀이 먹고 녹이 슬며 거기서는 도둑이 뚫고 훔치느니라. 20 오직 너희 자신을 위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서는 좀이 먹지도 녹이 슬지도 않으며 거기서는 도둑이 뚫지도 훔치지도 못하느니라. 21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거기에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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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천의 소망은 안전한 소망입니당. 그것은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 소망을 내게서 앗아갈 수 없습니다. 그 소망을 앗아가려면 그는 먼저 하나님이 계신 하늘로 가야할 것입니다. 또한 그 소망은 오래 되었다고해서 녹이 슬거나 좀이 먹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소망은 언제나 새로운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그 소망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내가 생각할 때에 나를 변하게 하는 소망입니다. 왜냐면 거기에 내 마음도 같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시들해지셨습니까?​ 그렇다면 이 소망을 생각해보십시오. 주님이 나를 위하여 예비하신 것들을 마음에 그려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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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에게 이 소망이 있다면 다음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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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벧전 3:15 오직 너희 마음속에서 주 하나님을 거룩히 구별하고 너희에게 너희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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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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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크리스천의 근본이 되는 은혜들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소유하고 성도들을 사랑으로 섬기며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생각하십시오.
 +
  
골1.3-5.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