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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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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1-4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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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12월 25일 주일오전설교==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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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쁜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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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말씀: 누가복음 1장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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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1-4 우리 가운데서 매우 확실히 믿게 된 그 일들에 관해 2 처음부터 목격자 되고 말씀의 사역자 된 사람들이 우리에게 그것들을 전해 준 그대로 차례대로 제시해서 밝히 보이려고 손을 댄 사람들이 많으므로 3 모든 일을 맨 처음부터 완전히 이해한 나도 데오빌로 각하 당신에게 차례대로 써서 알리는 것을 좋게 생각하였으니 4 이것은 각하로 하여금 각하가 이미 설명 받은 그 일들이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
 +=====서론=====
 +
 +오늘은 12월 25일로 크리스마스 즉 성탄절이다. 어제부터 많은 교회들이 크리스마스이브로 예배를 드리고자 모임을 가졌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크리스마스는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날과 거리가 멀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에는 목동이 양들을 방목하고 있던 때로 시기로는 가을에 해당할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로마 제국이 전쟁에서 이기고자 국가 종교를 기독교로 바꾼 후 바빌론 종교를 포함한 여러 종교 사제들을 모두 기독교로 전향하고자 그들의 종교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온 데서 유래했다. 초기 크리스천들은 로마에 의해 제정된 크리스마스를 거부해왔다. 12월 25일은 고대 로마 및 이집트에서 태양을 신으로 섬기는 데서 유래한 날이다. 그 날은 태양이 지구에서 가장 멀리 있는 날로 그날을 시작으로 해가 길어지기 때문에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세력을 얻어 만물이 소생해 나간다는 것을 기념한 날이다. ​
 +
 +또한 크리스마스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산타클로스라는 인물이다. 이 인물은 가공의 인물로 예수 그리스도를 대체하고자 만들어진 존재이다. 그는 재림하실 주님께서 피로 물든 옷을 입는 것처럼 빨간 옷을 입으며 영원히 사는 존재로 부각되었으며 하늘을 날으며 선물을 준다. 그런데 이 인물은 산타 클로스란 이름을 갖고 있다. “산타”란 여자에게 주어지는 호칭이다. 산타 마리아를 들어봤을 것이다. 남성에게는 산 호세와 같이 “산”이란 호칭이 붙는다. 즉 클로스는 수염 난 남성으로 보이는 여성인 셈이다. 남장 여자정도의 의미가 되겠다. 이쯤에서 이 가공의 인물은 예수님을 모독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산타클로스의 이야기 역시 복음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행위 구원을 가르친다. 착하게 살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해 흔히 사람들은 동방박사 세 사람이 예수님께서 누이신 구유로 찾아간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그것은 로마 카톨릭에 의해 퍼지게 된 잘못된 사실이다. 동방에서 온 현자들은 예수님께서 약 2세정도 되었을 때 왔으며 그들은 단지 세 사람만 온 것이 아니라 큰 그룹을 이루어 왔으며 그들로 말미암아 당시 예루살렘 전체가 소동할 정도였다. 예수님께서 구유에 누였을 때 왔던 사람들은 누가복음 2장을보면 밖에서 양들을 돌보고 있던 목동들이었다. 우리는 12월 25일을 이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오심을 증거하는 것은 이 날이 세상에서 크리스마스날로 지정되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날을 이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오심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
 +오늘 우리가 함께 보려는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복음에 있다. 누가복음은 사도 바울과 함께 선교여행에 동참하였던 의사 누가가 기록한 것이다. 누가에 의해 기록된 책은 누가복음 외에도 사도행전이 있다. 즉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연장선상에 있는 책들이라는 사실이다. 행 1:1,2을 보면 그 점은 매우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렇다면 누가는 어떤 목적으로 이 복음서를 기록하였는가?​ 그것은 당시 고위급 계층에 있어 누가가 “각하”로 불렀던 “데오빌로”에게 자신이 보고 들은 사실들을 토대로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교회의 전통에 따르면 “데오빌로”라 불렸던 인물은 로마의 도미티안 황제의 사촌인 플라비우스 클레멘트(Flavius Clements)라고 한다. 클레멘트의 아내는 도미틸라(Domitilla)로 그녀는 크리스천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영향으로 클레멘트 역시 기독교 신앙에 관심을 갖고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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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복음은 다른 공관복음서 즉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비해 예수님의 인성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것은 누가가 의사였기에 인간적인 면에 대한 많은 관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여러 글들이 작성되었으나 누가는 예수님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던 관계로 바른 정보를 전달해야 할 필요를 느꼈고 하나님께서는 누가를 사용하시어 신약에서 두 권의 책을 기록하도록 역사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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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복음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여러 대언서들을 통해 예고하셨던 기쁜 소식을 전달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것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유대인들은 로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고 또한 하나님께서 메시야에 대한 약속을 주신 민족이기에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소식을 유대인들이 들었을 때에 그들은 매우 기뻐했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러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대언자 말라기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에게 오실 메시야와 그 앞서 엘리야에 대한 예고를 주신지 약 40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기간 동안 이스라엘 민족에게 여러 사건들이 있었고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같은 새로운 종교 계층들이 생겨났으며 메시야의 오심에 대한 약속이 주어진 후 오랜 기간이 흐르면서 종교지도자들은 말라기에 기록된 메시야의 오심과 관련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기 시작하였으며 사실상 메시야의 오심을 고대하고 있지 않던 때였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대언의 말씀을 성취하시고자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오심을 알리지 아니하고 오직 몇 사람들에게 그 소식을 알게 하셨다. 그 때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하였을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의 탄생에 대한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가브리엘이라 불리는 천사를 보내시어 두 사람에게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이 두 사람은 그 경우에서 매우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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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브리엘은 먼저 사가랴라 불리는 제사장에게 찾아가서 그의 집안에 어떤 일이 있을지를 보여주었고 그 뒤 마리아라 불리는 여자에게 찾아간다. 5절부터 25절은 사가랴라 불리는 제사장에게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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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사가랴의 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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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5-7 ¶ 유대 왕 헤롯 시대에 아비야 계열에 사가랴라는 이름의 어떤 제사장이 있었는데 그의 아내는 아론의 딸들에게 속하였고 그녀의 이름은 엘리사벳이더라. 6 그들이 둘 다 [주]의 모든 명령과 규례 안에서 흠 없이 걸으며 [하나님] 앞에 의롭더라. 7 엘리사벳이 수태하지 못하므로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고 이제 그들이 둘 다 매우 연로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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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가랴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란 뜻이며 그의 아내 엘리사벳의 이름은 “하나님은 나의 맹세”란 뜻이다. 이 두 사람은 하나님을 가까이서 섬기도록 세움을 받은 제사장의 집안에 속한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의 삶은 매우 경건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신실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슬픔이 있다면 그들은 아이가 없었으며 더 이상 아이를 갖지 못할 것으로 여겨질 만큼 매우 연로한 상태였다. 그들은 연로하였음에도 계속해서 주님께 아이를 주시길 간구하였다. 13절을 보면 천사는 “주께서 네 기도를 들으셨느니라.”라고 말한다. 그들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매우 연로하여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이삭을 주셨던 것을 기억하면서 주님께 간구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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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8-10 마침 사가랴가 자기 계열의 순서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 직무를 수행할 때에 9 제사장 직무의 관례에 따라 그가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게 되었더라. 10 백성의 온 무리는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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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사장들은 그들의 가족을 따라 크게 스물네 그룹으로 나뉘어 있으며(대상 24:4) 직무의 관례에 따라 이제 사가랴가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며 섬기는 일을 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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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11-13 [주]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분향 제단의 오른쪽에 서매 12 사가랴가 그를 보고 불안해하며 두려움에 사로잡히거늘 13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야,​ 두려워하지 말라. 주께서 네 기도를 들으셨느니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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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가랴는 성전에서 주의 천사가 분향 제단의 오른쪽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을 때 천사는 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주의 천사의 등장은 때로 심판으로 인한 목적도 있었기 때문에 사가랴는 아직 이유를 알지 못하여 두려워했다. 천사는 그에게 주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을 언급하여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을 이야기하며 그 아이의 이름을 “요한”으로 할 것을 지정하였다. 요한은 “여호와께서는 은혜로우시다”란 뜻이다. 천사는 아이가 커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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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14-17 네가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들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15 이는 그가 [주]의 눈앞에서 크게 되고 포도즙이나 독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심지어 자기 어머니 태에서부터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16 이스라엘 자손 중의 많은 이들을 [주] 그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것이기 때문이라. 17 그가 또 엘리야의 영과 권능으로 그분보다 앞서 가서 아버지들의 마음을 자녀들에게로 돌아오게 하고 불순종하는 자를 의인의 지혜로 돌아오게 하며 [주]를 위하여 예비된 한 백성을 준비하리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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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아이의 탄생은 그의 가족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이 될 것이다. 이 아이는 16-17절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일을 할 것이며 그에게 엘리야의 영과 권능으로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을 주를 위하여 예비할 것을 언급한다. 이것은 400년 전에 구약의 마지막 대언자 말라기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대언하였던 대언의 말씀이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자의적으로 해석했던 대로가 아니라 이제야 성취되는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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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4:5-6 ¶ 보라,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대언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들의 마음을 자녀들에게로 돌아오게 하며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들에게로 돌아오게 하여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치지 아니하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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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야의 영과 권능으로 오는 아이가 또한 시사하는 바는 이제 곧 주 곧 약속된 메시야께서 오실 것을 말한다. 15절에서 요한은 태어나면서부터 “나실” 인 혹은 “나사르” 인의 삶을 살 게 될 것을 언급하고 있다. 사가랴는 아들을 얻게 될 것을 계속 간구하였으나 주어질 아들이 그와 같은 제사장으로의 삶이 아니라 대언자로서의 삶을 살게 될지는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가랴는 자식을 두고 기도하였으나 실제로 천사가 아들을 갖게 될 것을 그에게 이야기하였을 때 그의 반응은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때로 우리의 기도는 응답이 더디어지게 되면 불신 가운데서도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을 사가랴를 통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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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18-20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이것을 내가 무엇으로 알리이까?​ 나는 노인이요 내 아내도 매우 연로하나이다,​ 하니 19 천사가 응답하여 그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서는 가브리엘이라. 이 기쁜 소식을 네게 말하며 네게 보이기 위해 내가 보내어졌노라. 20 보라, 네가 내 말들을 믿지 아니하므로 이 일들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네가 벙어리가 되어 말을 하지 못하려니와 내 말들은 그것들의 때에 성취되리라,​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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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절에서 천사는 사가랴의 마음이 불신의 상태인 것을 말하고 있다. 사가랴가 자식을 위해 기도하였음에도 실제 아들이 주어질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종종 하나님의 백성은 기도하나 믿음의 기도를 드리지 아니할 때가 있다. 사도행전 12장을 보면 헤롯 왕이 교회를 괴롭히고자 야고보를 칼로 죽이고 베드로를 붙잡아 후에 죽이고자 감옥에 두었을 때 교회는 베드로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그들의 기도대로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베드로를 감옥에서 건져내어 밖으로 이끌어 내셨으며 베드로가 사람들에게 찾아갔을 때 사람들은 그가 올 것을 믿지 못하고 베드로가 문밖에 서 있다고 전한 여자 아이를 두고 처음에는 미쳤다고 생각하였고 여자 아이가 확고히 단언하자 “그것은 그의 천사라”고 하며 믿지 못하는 마음을 보였다. 주님은 우리가 믿음의 기도를 드리기를 원하신다. 의로운 자의 효력 있고 뜨거운 기도는 많은 유익이 있다(약 5:16)고 야고보는 말한다. 천사는 믿지 아니하는 사가랴가 표적을 구하자 그 일이 이루어지기까지 그가 벙어리가 될 것을 표적으로 준다. 62절을 보면 사가랴는 단지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가 된 것 뿐 아니라 들을 수도 없게 된 상태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62절에서 사람들은 사가랴에게 손짓하여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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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21-25 백성이 사가랴를 기다리며 그가 성전 안에 그토록 오랫동안 머무르는 것을 이상히 여기더라. 22 그가 나와서 그들에게 말을 하지 못하매 그들이 그가 성전 안에서 환상을 본 줄 알았으니 이는 그가 그들에게 손짓을 하며 말을 하지 못한 채 있었기 때문이더라. 23 그가 자기 직무의 날들을 다 마친 뒤 곧 떠나서 자기 집으로 가니라. 24 그 날들이 지난 뒤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수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내며 이르되, 25 [주]께서 나를 살펴보시는 날들에 사람들 가운데서 내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나를 이렇게 대우하셨다,​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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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전에서 나온 사가랴를 보고 사람들은 그가 환상을 보았을 것이라 여겼다. 그는 손짓을 할 뿐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는 요한이 태어나기까지 열달 동안 말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으며 주님은 천사를 통해 하신 자신의 말씀을 지키셨다. 엘리사벳은 수태하였고 그것은 그와 그녀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매우 놀라운 기적의 사건으로 알려졌을 것이다. 찾아오는 사람들로 인해 엘리사벳은 태에 있는 아이를 위해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내야 했을 것이다. 자기 아내가 수태하게 된 것을 본 사가랴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그는 자기의 불신을 탓하면서도 자기가 아들을 갖게 될 것을 매우 기뻐하였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은 앞으로 올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보내어진 자이기에 곧 메시야께서 오실 것으로 인해 더욱 기뻐하였을 것이다. 그것은 주님께서 구약의 많은 약속의 말씀들을 통해 주셨던 메시야에 대한 대언의 말씀이 성취될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 점을 사가랴가 요한이 태어난 후에 말문이 열렸을 때 그가 했던 찬양에서 그 사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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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마리아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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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가진 가브리엘 천사는 제사장 사가랴에게서 떠나 그 후 여섯째 달이 되었을 때에 갈릴리의 한 도시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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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26-28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에 의해 나사렛이라 하는 갈릴리의 도시로 보내어져서 27 다윗의 집에 속한 요셉이라는 이름의 남자와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렀는데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더라. 28 그 천사가 들어가 그녀에게 이르러 말하되, 크게 호의를 입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니 네가 여자들 가운데 복이 있도다, 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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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아는 다윗의 집에 속한 요셉과 동일하게 그녀 역시 다윗의 집에 속한 자였으며 요셉과 마리아는 서로 정혼한 사이였으며 아직 성적 접촉이 없던 처녀였다. 이 두 사람은 갈릴리의 나사렛이라는 도시에 살았는데 이것으로 인해 예수님께서는 나사렛 사람이라 불리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 하나님의 대언의 말씀을 받았던 대언자들 중에는 메시야께서 나사렛 사람이라 불릴 것을 안 사람들도 있었다. 마 2:23을 보면 “나사렛이라 하는 도시로 가서 거하니 이것은 대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신바,​ 그가 나사렛 사람이라 불리리라,​ 함을 성취하려 함이더라.” 라고 말한다. 당시 갈릴리는 유대인들이 경멸하는 도시 중 하나였다. 이것은 솔로몬의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 살필 필요가 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당시 두로왕 히람은 솔로몬이 하던 건축 사업에 많은 양의 양질의 목재를 제공하였으며 그것으로 인해 솔로몬은 히람 왕에게 갈릴리의 스무 도시를 주었다(왕상 9:11). 그 이후로 이방인들이 갈릴리 지역에 거하기 시작하였으며 갈릴리는 이방인들의 갈릴리로 불리게 되었다. 많은 세월이 흘러 로마 시대에 이르렀을 때 예루살렘에 거하던 유대인들은 자기들은 순수한 정통 유대인이라고 자부하였고 특히 갈릴리 지역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경멸의 눈으로 보곤 하였다. 그들은 그 지역에 사는 유대인들은 순수하지 못하고 이방인들과 접촉하며 살고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에서 살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대언의 성취를 위한 것이었다. 마태는 그 점을 이렇게 말하였다.
 +
 +마 4:12-16 ¶ 이제 예수님께서 요한이 감옥에 갇혔다는 것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떠나가셨다가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경계의 해안에 있는 가버나움에 와서 거하셨으니 14 이것은 대언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려 하심이라. 이르시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르단 건너편 바닷길 옆 이방인들의 갈릴리여,​ 16 어둠 속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지역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솟아올랐도다,​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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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대언자 이사야를 통해 주어진 말씀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그녀에게 했던 말은 “크게 호의를 입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함께 하시니 네가 여자들 가운데 복이 있도다” 였다. 특히 여기서 “여자들 가운데”라는 표현은 카톨릭 성경에서 삭제한 부분이다. 카톨릭은 마리아를 성녀라 부르며 경배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으나 성경은 그녀가 여자들보다 위가 아니라 여자들 가운데 있는 즉 우리와 동일한 죄인들임을 말하고 있다. 그녀는 비록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낳은 육신의 어머니가 되었지만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었다. 천사의 문안 인사를 들은 마리아는 왜 그렇게 자기에게 인사하는지가 궁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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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29-33 그녀가 그를 보고 그가 하는 말에 불안해하며 이것이 도대체 무슨 인사인가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니 30 그 천사가 그녀에게 이르되, 마리아야,​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호의를 입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네 태에 수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리라. 32 그가 크게 되고 가장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그가 영원토록 야곱의 집을 통치하며 그의 왕국이 무궁하리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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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사는 마리아에게 그녀가 한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할 것을 지시한다. 그리고 그 태어나는 분은 가장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라 말한다. 즉 천사는 예수님께서 인성과 신성을 지니신 분이 될 것을 말한다. 이것은 기원전 760년경에 대언자 이사야를 통해 하신 말씀의 성취였다. 먼저 앞으로 오실 메시야께서는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실 것을 언급한 대로 마리아는 처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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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한 표적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보라, 처녀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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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실 메시야는 인성을 지니신 분으로 처녀에게서 태어나실 뿐 아니라 신성을 지니신 분으로 임마누엘 즉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라 불릴 것이다. 사 9:6 역시 메시야께서 인성과 신성을 가지신 분이 되실 것을 대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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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9:6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권이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이], [조언자],​ 강하신 [하나님],​ 영존하는 [아버지],​ [평화의 통치자]라 할 것이기 때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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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다. 이것은 예수님의 인성을 말한다. 그분은 우리의 죄들로부터 우리를 대속하시기 위해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서 오셨다. 하지만 그분은 영으로는 하나님이시다. “한 아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실 뿐 아니라 그분의 이름은 “강하신 하나님”,​ “영존하는 아버지”라 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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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시야께서는 다윗의 왕좌를 통치하시기 위해 오실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첫 번째 오실 때에 그분은 이스라엘과 모든 인류를 위해 죄의 헌물로 자신을 드리기 위해 오셨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들로 인해 드려지고자 그분은 오셨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하늘에서 오실 때에 그분은 언약하신 대로 다윗의 왕좌를 통치하시기 위해 오실 것이다. 성경의 성취되지 아니한 많은 부분들이 바로 이 부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
 +**눅 1:34-38 이에 마리아가 천사에게 이르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하매 35 천사가 그녀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님]께서 네게 임하시고 가장 높으신 이의 권능이 너를 덮으시리니 그런즉 또한 네게서 태어날 그 거룩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리라. 36 보라, 네 사촌 엘리사벳도 늙은 나이에 아들을 수태하였느니라. 수태하지 못한다고 하던 그녀에게 이 달이 여섯째 달이 되었나니 37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느니라,​ 하니라. 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을 보소서. 당신의 말씀대로 그 일이 내게 이루어지리이다,​ 하매 천사가 그녀에게서 떠나니라.**
 +
 +34절의 마리아의 질문은 불신의 질문 즉 믿지 못하여 한 질문이 아니라 인간적인 눈으로 불가능한 데 어떤 식으로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실 것인가에 대한 그녀의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의 질문에 천사는 인간적인 방식이 아니라 기적적인 방식으로 메시야 즉 그리스도께서 태어날 것을 말한다. 또한 그녀의 태 안에 잉태될 것은 “거룩한 것”이라 불린다. 그것은 우리가 죄의 본성을 갖고 있는 것과 다르게 죄의 본성을 소유하지 아니할 것을 뜻한다.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아니하였고 그분 안에 죄가 없었으며 또한 죄를 짓지도 아니하셨다. 그분은 완전한 헌물로 삶을 사셨고 우리의 죄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드려지셨다.
 +
 +천사의 설명에 마리아는 그 모든 것들이 이해되지 아니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자신의 말씀을 성취하시며 그분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기에 천사가 언급한대로 그 일이 자기에게 임하여질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 “주의 여종을 보소서. 당신의 말씀대로 그 일이 내게 이루어지리이다.” 마리아는 매우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주의 낮은 여종으로 언급하였을 뿐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지도 아니하였으며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자기에게 그대로 될 것을 받아들였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녀는 자기의 약혼자 요셉에게서도 의심의 대상이 될 것을 생각하였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사람들에게서 손가락질을 받는 대상이 될 수도 있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그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였으며 그분의 목적이 성취되기를 소망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와 같이 그분의 말씀에 소망을 두는 자들을 통하여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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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좋은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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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말씀하신대로 때가 되어 요한이 태어났으며 요한이 태어난 날 사가랴는 자기 입을 열어 주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께서 어떤 좋은 소식을 주셨는지를 알린다. 여기에 복음의 목적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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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67-79 그의 아버지 사가랴가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대언하여 이르되, 68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분께서 자신의 백성을 돌아보사 구속하시고 69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자신의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70 이것은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존재하던 자신의 거룩한 대언자들의 입을 통해 그분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71 우리 원수들과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려 하심이요,​ 72 또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긍휼을 이루시고 자신의 거룩한 언약 73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자신이 맹세하신 그 맹세를 기억하려 하심이며 74 또한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우리를 건져 내사 75 우리가 평생토록 자신 앞에서 거룩함과 의로움으로 두려움 없이 자신을 섬기도록 허락하려 하심이라. 76 아이야, 너는 가장 높으신 이의 대언자라 불리리라. 네가 [주]의 얼굴 앞에 가서 그분의 길들을 예비하고 77 그분의 백성에게 그들의 죄들의 사면을 통하여 구원을 얻게 하는 지식을 주리니 78 이것은 우리 [하나님]의 친절한 긍휼로 말미암은 것이라. 이로써 동트는 때가 높은 곳으로부터 우리를 찾아와 79 어둠과 사망의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을 주고 우리 발을 화평의 길로 인도하셨도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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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복음은 구속을 위한 것이다(6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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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속은 “값을 치루고 사다”란 뜻을 갖는다. 이것은 죄수나 혹은 노예상태가 된 것을 값을 지불하고 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태어나신 것은 죄와 사망에게 속박되어 있는 자들을 구속하시기 위한 것이다. 오직 죄를 알지 못하는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속을 위한 합당한 값을 치루실 수 있었으며 그분은 자원하여 우리를 위한 죄의 헌물이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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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복음은 구원을 위한 것이다(69-7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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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의 목적은 우리를 우리의 원수들의 손 즉 마귀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것이며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 없이 그분을 섬기도록 하기 위함이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것을 많은 대언자들의 입을 통해 말씀하시고 약속하셨으며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약속을 성취하셨다. 십자가를 통해 마귀는 더 이상 그분을 믿는 자들을 죄로 정죄할 수 없게 되었다. 죄의 값은 지불되었고 더 이상의 죄의 정죄와 형벌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라졌다. 또한 복음은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맘대로 살도록 하기 위한 방종이 아니다. 복음이 주는 자유는 우리로 하여금 자유롭게 살아계시고 영원하신 참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주셨듯이 그분을 사랑하는 가운데 그분을 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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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 복음은 죄들의 사면을 위한 것이다(76-7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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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의 진수는 죄들의 사면에 있다. 바울은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풍성한 은혜에 따라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엡 1:7)라고 말하고 있다. 만일 죄들의 사면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의 구원은 완성될 수 없다. 그 일을 위해서 주님은 반드시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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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 복음은 여명을 위한 것이다(78-7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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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부분은 마 4:12-16과 일맥상통한다. “어둠 속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지역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솟아올랐도다.” 말라기 4장을 보면 말라기는 주의 오심을 마치 해가 떠오르는 것으로 묘사하였다(말 4:2).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죄의 억압 가운데 여전히 어둠 가운데 놓여 있는 자들이 아니라 이제 새로운 빛 아래서 일어나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맞본 자로서 새로운 삶을 살도록 주어진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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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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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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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죄들의 용서와 새로운 삶을 주시고자 자신의 아들을 보내셨다. 크리스마스의 정신은 산타클로스와 같은 의로운 삶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의 정신은 바로 우리를 위하여 죄의 헌물로 드려지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다.
눅1.1-4.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