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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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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0.20 [2017-06-20 09:04] (현재)
줄 1: 줄 1:
 +==2011년 9월 11일 주일 오전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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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기는 자의 주의할 점======
 +
 +본문말씀:​ 누가복음 10:20
 +
 +=====I. 배경=====
 +
 +누가복음 10장은 주 예수님께서 이 지상에 계셨을 때 칠십 명의 제자들을 주님이 가실 도시와 지역으로 보내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
 +
 +눅 10:1 이 일들 후에 또 주께서 다른 칠십 명도 세우사 친히 가시고자 하는 각 도시와 지역으로 둘씩 둘씩 자기 얼굴 앞에 보내시니라.
 +
 +앞서 주님은 9장에서 열 두 제자들을 보내셨다.
 +
 +눅 9:1~2 그때에 그분께서 자기의 열두 제자를 함께 부르사 그들에게 모든 마귀를 제압하며 질병을 고치는 권능과 권위를 주시고 2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하며 병든 자들을 고치게 하려고 그들을 보내시며
 +
 +마태복음에는 열두 제자들이 보냄 받은 곳이 오직 유대지방에 한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
 +마 10:5~6 예수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방인들의 길로도 들어가지 말고 사마리아 사람들의 어떤 도시로도 들어가지 말며 6 오직 이스라엘의 집의 잃어버린 양들에게로 가라
 +
 +반면 누가복음 10장의 칠십 명의 제자들은 유대지방에 한정되지 않는다. 주님이 가실 도시와 지역으로 먼저 보내어 주님의 사역을 예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눅 10장과 눅 9장의 사건은 서로 같은 사건이 아니다. 눅 9장은 마 10장의 사건과 같다. 눅 10장의 사건은 오직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 눅 9장에서 열두 사도들을 보낼 때에는 그들에게 주님께서 “부정한 영들을 대적하여 그들을 내쫓으며 온갖 질환과 온갖 지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셨다(마 10:1). 그러나 눅 10장을 보면 주님이 70명의 제자들을 보내실 때 이들은 주님의 “사도”가 아니었다. 또한 주님은 그들에게 사도들에게 주셨던 능력을 위임하지 않고 오직 “복음 전파와 병든 자들을 치유”하는 능력을 허락하셨다.(9절)
 +
 +어떤 이들은 눅 10장의 칠십 명은 상징적인 숫자이고 각 지파의 수대로 72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민 11:24~25에 기록된 것과 같이 이스라엘 열두지파에게 역사할 70명의 장로들의 숫자와 같다.
 +
 +민 11:24~25 모세가 나가서 주의 말씀들을 백성에게 고하고 백성의 장로 칠십 명을 모아 성막의 주위에 세우매 25 주께서 구름 가운데 내려오사 그에게 말씀하시고 모세 위에 있던 영을 취해 칠십 명의 장로들에게 주시니 그 영이 그들 위에 머물 때에 그들이 대언을 하고 멈추지 아니하였더라.
 +
 +특히 우리 주님께서는 모세가 “나와 같은 대언자”를 주께서 일으키실 것이라고 말했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70이라는 숫자가 우연은 아닐 것이라 여겨진다. ​
 +
 +여하튼 눅 10장에서 주님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칠십 명의 제자들을 둘 씩 자신이 가게 될 도시와 지역으로 미리 보내어 주의 길을 예비하도록 하셨다. 먼저 주님은 그들을 보내기 앞서 그들이 보냄을 받는 목적과 이유를 분명히 알려주셨다.
 +
 +눅 10:2 이러므로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수확할 것은 많으나 일꾼들이 적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수확하시는 주께 기도하여 그분께서 그분의 수확 밭에 일꾼들을 보내실 것을 청하라.
 +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눈을 세상을 향하게 하여 수확할 것이 많음을 보게 하신다. 우리의 일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이겨오는 것이다. 즉 복음을 전함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소유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그것은 혼들을 악한 영적 세력으로부터 이겨오는 일이기 때문에 지혜가 필요하다. 주님은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어린양을 이리들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도다.”라고 말씀하셨다.
 +
 +4절은 70명의 사역이 단기 사역임을 보여준다. “돈주머니나 짐 보따리나 신을 가지고 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고” 주님은 그들의 사역이 몇 주나 몇 달이 걸리는 사역으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며칠에 이를 것임을 언급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이것을 오늘날의 선교사역이나 교회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
 +9절은 그들이 할 일을 말씀하고 계신다. “병든 자들을 고치며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왕국이 너희에게 가까이 왔느니라.”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야가 되시며 또한 하나님의 긍휼을 그들에게 보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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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6절을 보면 세 도시의 저주를 볼 수 있다. 오늘날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 중 벳새다는 남아있으나 갈릴리의 작은 고기 잡는 마을에 불과하며 고라신은 폐허만 남아있을 뿐이다. 특히 가버나움은 우리 주님이 살던 곳이기도 한 장소이며 많은 기적들이 있었다. 거기서 주님은 세리 마태를 부르셨고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하셨으며 야이로의 딸을 고치셨고 혈우병을 앓던 여인을 치유하셨다. 그러나 그곳 사람들은 많은 기적들과 주님의 은혜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거부했으며 그 결과 가버나움은 멸망하여 그 흔적이 제 일차 세계대전 때까지 알려지지 아니했다. 전쟁중 독일 수도승에의해 언덕의 일부가 파헤쳐져 드디어 가버나움이 1500년 이상의 역사를 뒤로하고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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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병고치는 은사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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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서 자신이 직접 부르신 열두 사도 뿐 아니라 이 칠십 명의 제자들에게 “신유”의 은사를 주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은 모두 이런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주장의 근거는 막 16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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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 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곧 내 이름으로 그들이 마귀들을 내쫓으며 새 언어들로 말하며 18 뱀들을 집어 올리며 어떤 치명적인 것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들이 나으리라,​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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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하나님께서 치유와 악한 영들을 내쫓는 능력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증거하게 하신 말씀을 확증하기 위한 것이다. 막 16:20이 그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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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 16:20 그들이 나가서 모든 곳에서 복음을 선포하매 주께서 그들과 함께 일하시며 따르는 표적들로 말씀을 확증해 주시니라. 아멘.
 +
 +바울은 그것이 사도들의 표적임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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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후 12:12 진실로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인내와 표적들과 이적들과 능한 행위들로 사도의 표적들을 행하였노라.
 +
 +실로 바울은 치유 뿐 아니라 그가 로마로 끌려가던 중 배가 폭풍을 만나 파선하여 멜리타라는 섬에 잠시 거할 때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불을 피우다 땔감에 있던 독사가 바울의 손을 물었으나 바울은 그 뱀을 불에 떨어뜨리고 또 그에게 해악이 오지 않았다.
 +
 +히브리서 2장역시 이런 표적들과 이적들과 다양한 기적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확증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언급한다.
 +
 +히 2:3~4 우리가 이렇게 큰 구원을 소홀히 여기면 어찌 피할 수 있으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신 것이요 그분의 말씀을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것인데 4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뜻에 따라 표적들과 이적들과 다양한 기적들과 성령님의 선물들로 그들에 대하여 증언하셨느니라.
 +
 +또한 바울은 고전 12장에서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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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12:29~30 모두 사도이겠느냐?​ 모두 대언자이겠느냐?​ 모두 교사이겠느냐?​ 모두 기적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30 모두 병 고치는 선물들을 가지겠느냐?​ 모두 타언어들로 말하겠느냐?​ 모두 통역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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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유와 기적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말씀을 확증하기 위해 그분의 제자들에게 주신 것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도와 금식을 통하여 신유와 기적의 역사는 분명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누가 그런 은사가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거짓말쟁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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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주님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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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절로 가서 보면 주님이 보내셨던 칠십 명의 제자들이 주께 기뻐하며 돌아와 이렇게 말한다. “주여,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마귀들도 우리에게 굴복하나이다.” 분명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면서 있었던 악한 세력들과의 전쟁을 경험했고 거기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악한 영들이 굴복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그들이 “부정한 영들을 대적하여 그들을 내쫓”을 수 있는 권위를 주시겠다고 한 적이 없었다. 주님은 열두 사도들에게는 그러한 권능을 주셨으나 칠십 명의 제자들을 둘씩 보내실 때에는 이런 언급을 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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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들이 주님께 부여받은 사역 즉 “병든 자들을 치유하고 하나님의 왕국이 가까웠음”을 신실하게 전하였을 때 그들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역의 부수적인 축복을 보았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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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들에게 부여된 하늘의 능력과 권위로 악한 영들을 제압하고 쫒아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며 당연히 기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쁨에 너무 심취하게 되면 결국 그 권위가 주는 매력에 헤어 나오지 못함으로 더 중요한 것을 망각하는 경우가 있다. 주님은 바로 그 점을 보시고 제자들을 바로잡으신다. 바로 이점이 주님을 섬기는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으로 우리가 함께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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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V. 주의1 - 하나님께서는 혼들이 구원받는 것을 더욱 기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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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5: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한 죄인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기쁨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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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제자들의 기쁨은 잘못된 것이 없다. 그들은 이전에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놀라운 체험을 했다. 악한 영들이 그들에게 굴복하고 떠나갔던 것이다. 어찌 이런 일들을 경험할 때 기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들의 기쁨은 거기서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목적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신실하게 복음을 전하고 병자들을 치유해주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된 기쁨이 더 커야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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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의 눈앞에서 악한 영들이 떠나가고 사람들이 주 예수의 이름 앞에 순종함으로 나아오는 것을 그들은 보았을 것이다. 그들의 눈앞에서 주 예수님이 높여지고 영화롭게 되신 것이다. 그렇다면 혼들이 주님께 돌이키는 것이 그들에게 더 큰 기쁨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그런데 현재 제자들은 그 기쁨보다 악한 영들이 자기들에게 굴복하였다는 사실이 더 큰 기쁨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주님은 그리하여 그들을 바로 잡고 있는 것이다. 복음을 통하여 누군가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이름이 하늘에 영원히 기록되게 되었다면 주님은 그것을 더욱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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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제자들은 그 능력이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악한 영들이 자신들에게 굴복하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있음을 알았다. 그것은 그들에게 큰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때로 주의 이름은 자신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많은 은사주의 운동을 보라.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고 주의 이름으로 병자들을 치유한다고 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으며 또한 그들에게 있어 주의 이름은 자신들이 높임받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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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신실하게 섬기는 자신의 종들을 축복하신다. 때로 우리가 행하는 많은 일들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보기도 한다. 그런데 그 축복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일들을 신실하게 행한 일에 대한 부수적인 축복이다. 종종 우리는 이 축복 안에서 주님을 망각하곤 한다. 모든 것이 자신의 능력으로 한 것으로 생각하거나 혹은 하나님의 일들보다 그 축복을 누리는 것이 우선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신 그 목적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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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예수님께서 칠십명의 제자들을 부르시고 보내신 것은 그들이 높임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의 길들을 예비하기 위한 것”이다. “친히 가시고자 하는 각 도시와 지역으로 둘씩 둘씩 자기 얼굴 앞에 보내시니라.”(눅 10:1)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두고 더 마음에 두라. 거기에 더 큰 기쁨을 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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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 주의2 - 하나님의 뜻 가운데 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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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0:20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들이 너희에게 굴복하는 이 일로 기뻐하지 말고 오히려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으므로 기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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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으므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동일한 일들을 하는데 그들의 이름이 땅에 기록된 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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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7:21~23 내게,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르기를,​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대언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많은 놀라운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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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렘 17:13 오 주여,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여,​ 주를 버리는 자들은 다 부끄러움을 당하며 나를 떠나는 자들은 땅에 기록되리니 이는 그들이 생수의 근원이신 주를 버렸기 때문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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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그들의 기쁨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데 있기를 원하신다. “영생은 이것이니 곧 그들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인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라고 주님이 말씀하셨다. 마 7장의 이들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데서부터 빗나간 것이다. 또한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일단 구원받으면 우리는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은 그분과의 교제에 문제를 가져오며 아버지 하나님의 기쁨의 교제에 이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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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일 1:3~4 우리가 보고 들은 그것을 너희에게 밝히 드러냄은 너희 또한 우리와 교제하게 하려 함이니 참으로 우리의 교제는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이니라. 4 우리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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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 주의3 - 기쁨의 근원을 환경이 아니라 성품에 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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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들은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마귀들이 자신들에게 굴복”하던 것으로 인해 기뻐하고 있다. 반면 주님은 그들에게 더 고차원의 기쁨을 소유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여러분은 악한 영들을 내쫓은 것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이 더 큰 기쁨이겠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역사하고 계심으로 인하여 더 기뻐하겠는가?​ 마귀들이 그들에게 굴복한 것은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다. 종종 우리는 기쁨의 근원을 우리 주변의 크게 드러나는 환경에 두는 경우가 있다. 내가 월급을 많이 받아 돈이 많이 들어왔거나 혹은 어떤 것을 얻었을 때 혹은 좋은 직장을 얻었거나 누구에게서 칭찬을 받았거나 좋은 점수를 얻었을 때와 같이 우리 주변의 일어나는 많은 환경이 내 기쁨의 근원이 되는 것을 보게 된다. 분명 이런 것들을 두고 기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에게 기쁨의 근원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에 두라고 말씀하신다.
 +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인하여.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바른 마음을 갖고 그분과 화해한 후 그분의 왕국의 시민이 되었음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신다. ​
 +
 +살전 5:16~18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모든 일에서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
 +빌 4:4 항상 주를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
 +우리의 기쁨의 근원은 환경이 아니라 주께 두어야 한다. 그분은 우리의 구원이시다. 세상이 여러분에게 큰 짐이 되며 지기에 버거운 슬픔을 가져다주는가?​ 주를 바라보라. 그분은 우리의 얼굴에 빛을 비추시는 분이시다. ​
 +
 +주님은 어찌하여 주를 기뻐하라고 말씀하시는가?​ 주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분의 전능하심과 그분의 전지하심에 의지하는 것이다. 주를 기뻐하는 것은 그분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시인하는 것이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그분의 뜻가운데서 나의 유익을 위해 주께서 주신 것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주를 향한 우리의 믿음을 성장하게 한다. 주변의 일들은 단지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보일 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내면을 보아야 한다.
 +
 +벧전 1:6~9 비록 지금은 필요가 있어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으로 인해 잠시 근심하고 있으나 오히려 그 구원을 크게 기뻐하나니 7 이것은 너희 믿음의 단련이 불로 단련해도 없어지는 금을 단련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으로 드러나게 하려 함이니라. 8 너희가 그분을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지금도 너희가 그분을 보지 못하나 믿으며 이루 말할 수 없고 영광이 가득한 기쁨으로 기뻐하나니 9 이는 너희가 너희 믿음의 결말 곧 너희 혼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라.
 +
 +환경에 기쁨을 두기보다 주님께 기쁨을 두라. 그렇다면 내 주변의 모든 일들은 그분의 역사로 보게 될 것이다.
 +
 +=====VII. 주의4 - 하나님의 호의 가운데 거하는 것을 더욱 기쁨으로 여기라.=====
 +
 +제자들은 분명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자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섰을 것이다. 주께와서 자랑하는 마음으로 “주여,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마귀들이 우리에게 굴복하였나이다.”라고 말하였을 것이다. 그것이 아담의 본성이다. 무엇인가 자랑할 것이 존재하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높이게 된다. 사람들에게 높임 받고자 하는 심성이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
 +그런 제자들에게 주님은 더 큰 기쁨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호의 가운데 거해야 한다. 우리가 행한 무엇인가로 인해 사람들이 여러분을 높이며 칭찬하는가?​ 그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그것을 허락하신 분이 누구인지를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호의 가운데 거하라. 그분의 기쁨이 되는 것을 구하라. ​
 +
 +강단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가 넘어지기 쉬운 부분은 자신의 설교로 사람들이 변화될 때이다. 그 때 그것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 치부하기 쉽다. 그것은 설교자의 능력이 아니라 설교자 안에서 그의 모든 능력과 지혜와 지식을 활용하여 그를 사용하신 성령님께 있다. ​
 +
 +잠 3:5~7 네 마음을 다하여 주를 신뢰하고 네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지어다. 6 네 모든 길에서 그분을 인정하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네 행로들을 지도하시리라. 7 네 눈에 지혜롭게 되지 말지어다. 주를 두려워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
 +
 +=====VIII. 결론=====
 +
 +기쁨의 근원은 어디있는가?​ 환경에 있는가? 아니면 나의 능력에 있는가? 아니다. 주께 두어야 한다. 주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기 때문이다. 오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경고의 말씀을 마음에 잘 새기자.
  
눅10.20.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