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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0.38-42
2010년 9월 12일 주일 오전설교

한 가지가 필요하니라

I. 서론

오늘 제가 준비한 말씀은 제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의 유익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특히 오늘 설교의 주인공으로 두 여인이 나오기 때문에 자매님들이 공감이 많이 가리라 생각됩니다. 먼저 오늘 본문말씀을 보기 전에 고린도전서 7:35절을 찾아 읽겠습니다.

고전 7:35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의 유익을 위한 것이며 너희에게 올무를 씌우려 하는 것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합당한 것을 하게 하여 흐트러짐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는 것이라.

주님은 우리가 마음의 흐트러짐 없이 주님을 섬기길 원하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나오듯이 주님은 우리가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를 맺는 크리스천이 되길 원하십니다. 주님은 여러 번 우리에게 “이 세상 삶의 염려와 재물과 쾌락으로 숨이 막혀 완전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들”이 되지 아니하도록 경고하시고 말씀을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세상 삶의 염려나 재물이나 쾌락으로 인해 숨이 막히지 아니하고 열매를 맺는 크리스천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오는 저희는 그것을 보고자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정말 하루하루를 바쁘게 지내는 저에게 필요한 것이고 역시 바쁜 하루를 보내거나 혹은 여러 가지 힘든 일이나 가족의 건강이나 아니면 갖가지 세상일들로 인해 염려함이 가득한 여러분에게도 좋은 말씀이 되리라 믿어마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누가복음 10:38-42입니다.

38 이제 그들이 갈 때에 그분께서 어떤 마을로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하는 어떤 여자가 그분을 자기 집으로 받아들이니라. 39 그녀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더니 그녀도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들으나 40 마르다는 섬기는 일이 많아 괴로워하더라. 그녀가 그분께 나아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섬기게 내버려 두는 것을 주께서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런즉 그녀에게 명하사 그녀가 나를 돕게 하소서, 하거늘 41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에 관하여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한 가지가 필요하니라. 마리아는 그 좋은 부분을 택하였으니 그것을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II. 어떤 마을

먼저 어떤 일들이 있는지 한 구절 한 구절 보겠습니다. 38절을 보면 “그들이 갈 때에”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되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이 없도다”(눅 9:58) 정말 주님은 거할 집이 없었기에 그분은 여러 곳을 돌아다니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 역시 그분과 함께 동행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마을로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그 마을의 이름은 베다니입니다. 요한복음 11:1을 보십시오. “이제 나사로라 이름하는 어떤 병자가 있으니 그는 마리아와 그녀의 언니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 사람이라.” 요한복음 11:1-2에 따르면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는 같은 집에 살았습니다. 주님은 종종 베다니로 가서 거기서 거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18에 따르면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약 오리쯤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에서 사역을 펼치시고 베다니로 가서 거하시곤 했습니다.

마 21:17 예수님께서 그들을 떠나 도시 밖으로 나와 베다니에 들어가사 거기서 묵으시니라.
막 11: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다

마 26:6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다니에서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거하시기도 했습니다. 눅 19:29을 보면 주님께서 예루살렘 입성을 하시면서 탔던 나귀새끼는 아마도 베다니에서 가져왔을 것입니다. 또한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바로 주님이 자주 가시던 올리브 산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부활하신 후 어디서 하늘로 올라갔는지 아십니까? 바로 베다니였습니다. 눅 24:50을 보십시오.

뿐만 아니라 베다니에서 여인들은 주님의 몸에 향유를 부었습니다. 막 14:3을 보면 베다니의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서 한 여인이 그분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고 요 12:3을 보면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발을 닦아 드렸습니다. 요 12:5에서 향유의 가격은 삼백 데나리온 정도라고 합니다. 일 데나리온이 일꾼이 하루 일하는 품삯이라면 향유의 가격은 약 일 년 치의 월급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베다니의 이 여인들은 주님께 자기의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께 베다니는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 크리스천이 그분께 있어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닙니까?

III. 어떤 여자

다시 본문말씀으로 돌아와서 38절을 보면 “어떤 여자가 그분을 자기 집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 여인은 마르다입니다. 40절에 그녀의 이름이 나와 있고 우리는 이미 요 11:1에서 보았습니다. 마르다는 자기 집으로 예수님과 일행을 초대했습니다. 38절에 “그들”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단지 예수님만 집으로 초대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는 적어도 12명의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마르다와 마리아가 준비해야 할 음식의 양은 적은 편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주님과 일행을 자기 집으로 기꺼이 초대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이 여인들은 주님을 섬기길 원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또한 당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이나 지도자들로부터 배척을 받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에 이들의 초청은 진심어린 초청이었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주님을 믿기 시작한 이후 정말 주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가득하지 않습니까? 정말 우리에게 주어진 많은 일들을 우리는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할 것처럼 합니다. 그런데 시련이 옵니다.

IV. 염려함으로 가득함

본문 40절을 보니 “마르다는 섬기는 일이 많아 괴로워하더라”라고 말합니다. 분명 마르다는 처음 주님을 집에 초대하고 그분을 섬기고자 하는 생각으로 기뻤을 것입니다. 그러나 음식을 준비하느라 주방에서 이리저리 다니고 손을 바삐 움직이고 또 초라하지 않는 상을 대접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을 것입니다. 음식 준비하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제 아내가 음식을 준비하느라 부엌에서 몇 시간동안 서서 일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습니다. 비단 제 아내 뿐 아니라 자매님들이 그런 수고를 하리라 생각합니다. 처음 마르다와 마리아는 같이 부엌에서 정신없이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음식을 준비하느라 주님과의 교제는 소홀이 되고 있음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주님을 집으로 초대한 것은 그분의 말씀을 원했고 그분과 함께 하고자 함이 아닙니까? 그래서 마리아는 어느 정도 되었다 싶을 때에 이제 예수님께 가서 그분의 말씀을 들으러 갔습니다. 마르다는 마리아가 부엌에서 보이지 않아 찾아보니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을 봅니다. 마르다는 힘든 일을 자기만 하게 둔 마리아를 두고도 묵묵히 부엌일을 하다가 할 일이 태산같이 많다는 생각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예수님께 총총 걸음으로 가서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섬기게 내버려 두는 것을 주께서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런즉 그녀에게 명하사 그녀가 나를 돕게 하소서”

우리 역시 마르다와 같이 바쁜 일과를 보내며 스트레스로 가득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이들 치다꺼리하다 정신이 없고 때로는 아이들이 아파서 마음이 심란하다가 결국 마음이 괴로움에 주님께 이렇게 외치지 않는가요? “주여, 주께서는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는 도대체 어디서 잘못되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41절을 보십시오. 이제 우리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지적해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마르다야 마르다야”라고 두 번씩이나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요한복음 11:5을 보면 “이제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그녀의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그녀의 이름을 그것도 두 번씩이나 부르심으로써 그녀에 대한 연민과 친근함과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그녀의 상태를 정확히 말씀하십니다. “네가 많은 일에 관하여 염려하고 근심하나”

V. 합당한 염려

고전 7:32을 보십시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염려 없이 지내기를 원하노라.” 우리 성경에는 “염려 없이”라고 되어 있는데 영어로 보면 “without carefulness” 로 되어 있습니다. 즉, 주님은 우리에게 염려 없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염려로 가득한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네가 많은 일에 관하여 심히 염려하고 근심하나”라고 번역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좋은 일에 대한 염려는 바람직한 것입니다. 몇 구절만 보겠습니다. 되도록이면 문맥에 맞게 직역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고후 7:1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부당한 일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또한 부당한 일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며 오직 너희를 위한 우리의 관심(염려함)이 하나님의 눈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다.
고후 8:16 그러나 디도의 마음 속에 열심을 내어 너희를 돌보려는(염려하는) 같은 생각을 넣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후 11:28 이렇게 밖에 있는 일들 외에도 날마다 내게 닥치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빌 2:20 이는 마음을 같이하여 너희 형편을 자발적으로 돌아볼(염려하는) 자가 디모데밖에 내게 없기 때문이라.

그럼에도 우리 주님은 “너희의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라. 이는 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시기 때문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VI. 한 가지가 필요하니라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마르다의 현 상태는 염려함으로 가득하고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주님의 뜻과 거리가 먼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염려함으로 가득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처음 보았던 성경 구절처럼 주님은 우리가 마음의 흐트러짐이 없이 주님을 섬기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40절을 보니 마르다는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한 가지가 필요하니라”

“그러나” 주님은 먼저 주의를 환기시키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생각케 하십니다. 영어성경은 “But”이 가장 먼저 나오나 우리 성경은 41절 맨 끝에 동사에 있습니다. 우리는 염려하고 근심하는 그것에만 우리의 생각이 놓여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것에서 우리의 생각을 바꾸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생각하기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지 않느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주님은 “필요하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마르다가 그 한 가지를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즉 마르다는 그 필요한 한 가지를 실행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도 그 한 가지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실행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요?

세 번째로 주님은 “한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저것도 아니고 여러 개도 아니고 한 가지입니다. 주님은 가장 중요한 것을 일러주고 계십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에게 있어 NO.1은 무엇입니까? 그런데 주님은 마리아가 바로 그 한 가지 그 좋은 부분을 택하였다고 말합니다. 무엇이 우리의 삶에 우선순위가 되어야 할까요?

우리는 마르다가 바로 그 한 가지를 놓침으로 결국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주께서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벧전 5:7은 “너희의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라. 이는 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시기 때문이니라.”라고 말합니다. 사실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시며 우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우쳐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VII. 마리아의 한 가지

우리가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 한 가지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는 마리아를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면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마리아가 그 좋은 부분을 택하였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9절을 보시면 우리는 과연 마리아가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녀도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들으나” 바로 여기에 그 한 가지가 담겨 있습니다. 마치 스펄젼이 말한대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 한 가지”입니다. 과연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 뜻을 가지고 있을까요? 예수님의 발 앞에 있다는 것은 다음의 의미를 갖습니다:

A. 나는 그분의 제자이며 그분의 말씀을 듣기 원합니다.

마르다는 섬기는 일이 많아 걱정하는 마음 가운데 있을 때 마리아는 그분의 가르침을 듣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의 발앞으로 갔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22:3을 보십시오.

진실로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의 도시 다소에서 태어났고 이 도시에서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자라며 조상들의 율법의 완전한 방식에 따라 가르침을 받았고 이 날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을 향하여 열심을 가지게 되었노라.

여기 문하라고 번역되어 있는 것이 바로 가말리엘의 “발 앞에서”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바로 가말리엘의 발 앞에서 배움을 얻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이 일에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 33:3 참으로 그분께서 이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그분의 모든 성도가 그분의 손 안에 있으며 그들이 주의 발 밑에 앉아 각 사람이 주의 말씀들을 받는도다.

제자 됨은 다음의 마음의 자세를 갖습니다:

  • 가르침을 받으려하는 준비된 자세
  • 순종
  • 가르침이 주는 인도함에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의탁함

B. 나는 그분께 가까이 있기를 원합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마르다는 그분이 자기 집에 있다는 것으로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분 곁에 있기를 원했습니다. 마리아는 그분과 더 가까운 관계 속에 있기를 원했습니다. 마르다는 주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던 반면 마리아는 주님과 함께 자신의 시간을 보내길 원했던 것입니다.

C. 나는 주님을 더 잘 섬기길 원합니다.

설교 시간에 의자에 앉아 설교를 듣는 것과 부엌에서 섬기는 것 중 설교자를 기쁘게 하는 일이 어떤 것입니까? 우리는 시간의 부족을 이유삼지만 가능하다면 우리는 더 바른 것을 택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 있어 그분 앞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마음의 변화를 받는 것과 부엌에서 섬기는 것 중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마리아는 무엇이 주님께 최선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40절을 보십시오. “내 동생이 나 혼자 섬기게 내버려 두는 것을 주께서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처음엔 마리아 역시 부엌에서 언니 마르다와 같이 음식을 장만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42절에서 말하듯이 마리아는 좋은 것을 택하였던 것입니다. 그녀는 무엇이 우선인지를 판단하고 주님 발 앞으로 와서 말씀을 경청하였던 것입니다.

VIII. 마리아 - 예수님의 발 앞에

만일 우리가 마리아의 삶을 살펴본다면 그녀에게 특별한 것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녀의 이름이 언급되는 곳에서 그녀는 항상 주님의 발 앞에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보면 그녀는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있습니다.

요한복음 11:32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예수님 계신 곳에 와서 그분을 뵈옵고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그녀는 주님의 발 앞에 엎드려 그녀의 마음의 슬픔을 쏟아놓습니다. 그녀의 행동에는 항상 마음이 함께함을 봅니다. 여기서 잠깐 우리 주님이 두 여인에게 대한 태도를 주목해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1:21을 보면 마르다 역시 주님 앞에 오나 그녀는 그분의 발 앞에 엎드리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그녀에게 “네 오라비가 다시 일어나리라.” 라고 말하며 대화를 나누십니다. 하지만 마리아가 그분께 와서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마음을 쏟아 놓을 때 주님은 그녀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분은 “영으로 신음하시며 괴로워하시고” 우셨다는 사실을 보십니까? 누가 우리 주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입니까? 분명 마르다가 아니라 마리아였습니다. 마리아는 정말 우리 주님의 발 앞을 사랑한 여인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요한복음 12:3을 보십시오. 마리아는 이제 예수님의 발 앞에 향유를 붓고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씻어줍니다. 그녀는 주님이 오라버니를 다시 살리신 것으로 인해 그분께 마음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그녀는 주님을 경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리아의 삶이 점진적으로 변하는 것을 보십니까? 맨 처음 마리아는 그분의 발 앞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요 11장에서 어려움과 괴로움이 왔을 때 그녀는 그녀의 마음을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그분께 쏟아 그분의 위로를 받기 원했습니다. 나중에 그녀는 바로 향유로 그분께 경배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성경에는 주님의 몸에 향유를 붓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지만 이 표현은 여기서만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IX. 결론

우리는 지금까지 마리아의 삶을 통해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 한 가지를 보았고 그것이 또한 마리아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환난이나 어려움이나 역경을 대하게 되면 불평하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돌보지 아니하신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아마 이것은 주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 한 가지를 우리가 실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많은 일들로 바쁜 가운데 정말 중요한 그 한 가지를 실행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한 가지가 필요하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발 앞으로 가서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삶에 가장 우선적으로 놓아야 할 것을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주님을 경배하는 일이 먼저 이어야 할 때 여러 가지 일들로 마음이 심란해 하는 것을 봅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먼저 그분께 합당한 경배를 드리길 원하십니다. 먼저 여러분과 말씀으로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눅10.38-42.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