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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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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2.37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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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2월 2일 주일오전설교==
  
 +======조심하라 III-무관심,​분별======
 +
 +본문말씀:​ 누가복음 12장 37절
 +
 +>I. 위선(1-12절)
 +>II. 탐심(13-21절)
 +>III. 염려(22-34절)
 +
 +=====서론=====
 +
 +지난 주에 이어 계속해서 누가복음 12장을 보고자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위선”에 대해 제자들에게 조심할 것을 경고하셨음을 이 주전에 살펴보았고 저번 주에는 주님께서 재물의 소유와 관련하여 주의하여야 할 것들에 대해 경고하신 것들을 보았다. 재물이 많으면 우리는 탐욕 혹은 탐심을 주의해야 하며 재물이 없을 때에는 우리는 삶에 대한 염려로 가득하게 될 수 있다. 재물과 이 세상 삶의 염려는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숨막히게 하는 것들이다. 오늘은 그 다음 구절 즉 35절부터 끝까지 보고자 한다.
 +
 +여기에도 저번 주와 마찬가지로 두 가지 경고가 있다. 그런데 두 가지 경고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관이 있다. 첫 번째 경고는 35-53절에서 나오는데 주님의 오심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에 대해 경고하고 계신다. 두 번째 경고는 54절에서 57절 끝까지로 주님의 오심에 대한 분별에 대해 말하고 계신다. 그런데 저번 주 보았던 재물의 소유와 관련한 경고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 따로 따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서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물에 대한 탐욕과 소유한 것이 적음으로 인해 오는 염려는 우리의 시각을 축소시킨다. 주님은 우리가 미래지향적인 크리스천이 되길 원하신다. 주 예수님의 오심을 소망하면서 본향을 바라보며 살길 원하신다. 그러나 탐욕과 염려는 크리스천을 근시안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의 모든 생각이 이 땅에 머물러 있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위선이나 탐욕이나 염려와 같은 것들을 이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항상 마음에 품고 사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 세상 일들이 우리를 강하게 유혹하더라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주님은 크리스천인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오심에 대해 어떻게 대비하기를 원하시는가 오늘 주님의 주의하라는 경고의 말씀을 들을 귀를 가지고 듣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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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V. 무관심(35-5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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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2:35-36 너희 허리에 띠를 띠고 너희 등불을 타오르게 하며 36 너희 자신은 마치 자기 주인이 결혼식에서 돌아올 때에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같이 되라. 그가 와서 두드리면 그들이 즉시 그에게 열어 주리라.**
 +
 +주 예수님은 비유를 들어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씀하고 계신다. 41절에서 베드로는 주님이 비유를 들었음을 이해했다. 주님은 여기서 유대인들의 혼인 풍습을 예로 들고 계신다. “너희 자신은 마치 자기 주인이 결혼식에서 돌아올 때에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같이 되라.”라고 말씀하심으로서 우리가 그분을 섬기는 자 즉 “종”임을 일깨우고 계신다. 유대인들은 하루의 시작을 저녁 6시로 보았듯이 유대인의 결혼식은 밤에 있었다. 따라서 신랑을 섬기는 종들은 신랑이 신부의 집으로 가서 신부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올 때까지 그를 기다려야 했다. 신랑이 밤의 어느 경점에 올지 모르기 때문에 종들은 언제든지 신랑을 맞을 준비를 하고 신랑이 신부와 함께 온다는 것을 들으면 지체하지 않고 문을 열어 집안으로 신부를 맞이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신부는 문밖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너희 허리에 띠를 띠고 너희 등불을 타오르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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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리에 띠를 띠라는 것은 움직임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지실 때에 그들에게 유월절 어린양을 잡을 것을 명령하셨고 어린양을 잡는 날 그들은 허리에 띠를 띠고 신을 신고 지팡이를 손에 잡고 먹도록 하셨다. 그것은 언제든지 주님께서 이동하라고 명령하시면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에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은 신랑을 기다리는 종들이 신랑의 음성을 들었을 때 신속히 움직여 문을 열어주어야 했을 것이다.
 +
 +또한 허리에 띠를 띠는 것은 일을 위한 것이다. 37절은 이점을 명확히 한다. 주인은 종들을 섬기기 위해 허리띠를 띤다. 유대인들은 현대의 우리와 같이 바지를 입지 않았다. 그들은 원피스로 된 몸 전체를 덮는 치마와 같은 옷을 입었다. 중동의 아랍사람들이 입는 기다란 옷을 생각하면 된다. 그런 옷은 일을 하는데 매우 거추장스럽기 때문에 허리띠를 메지 않으면 일을 하는데 제약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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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리에 띠를 띠는 것은 생각을 바짝 조이는 것이다. 흔히 생각을 바꾸어 온 마음을 쏟아 넣을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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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벧전 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정신을 차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오실 그 은혜로 인해 끝까지 소망을 가질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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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허리에 띠를 띠고 또 너희 등불을 타오르게 하라고 하셨다. 만일 종이 등불을 타오르게 하지 않는다면 어두운 밤에 아무것도 볼 수 없어 일을 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등불을 소유해야 할 뿐 아니라 그 등불이 타오르게 해야 한다. 다윗은 시편 119:​105에서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말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을 밝히는 등불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과 목적과 우리를 향한 계획을 발견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들과 조언들에 대해 듣는다. 그런데 등불은 그 안에 기름이 계속 공급되지 아니하면 꺼지기 때문에 계속해서 기름을 공급해 주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성막의 성소 안을 유일하게 밝혀줄 등잔대를 두게 하셨고 그 등잔대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등잔대에서 밝히는 불이 없이는 빛이 들어올 창이 전혀 없는 성막의 내부에서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혹이라도 어떤 이유에서 그 등잔대의 불을 꺼뜨리게 되면 그 불은 반드시 번제단의 불에서 가져와야 했다. 성막은 우리의 마음에 대한 모형이기도 하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자신의 성전 삼아주시기 전 우리는 영적으로 어둠 가운데 있었다. 이제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조명을 주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일깨워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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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허리에 띠를 띠고 너희 등불을 타오르게 하라고 하셨는데 등불이 계속 타오르려면 기름이 계속해서 공급되어야 한다. 마태복음 25장에는 등을 들고 신랑을 맞이하러 나간 열 처녀에 대한 비유가 있다. 그 중 다섯은 기름을 미리 예비한 지혜로운 처녀들이었고 나머지 다섯은 그렇지 못한 어리석은 처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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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25:1-4 그때에 하늘의 왕국은 마치 자기 등불을 가지고 신랑을 맞으러 나아간 열 처녀와 같으리라. 2 그들 중의 다섯은 지혜롭고 다섯은 어리석더니 3 어리석은 자들은 자기 등불을 가져가되 기름을 함께 가져가지 아니하였고 4 지혜로운 자들은 자기 등불과 함께 자기 그릇에 기름을 가져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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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열 처녀 모두 등불이 있었고 처음 얼마간을 밝혀줄 기름이 모두에게 있었다. 그러나 신랑이 더디 오므로 자기 그릇에 기름을 예비한 다섯 처녀는 계속해서 자기 등불을 계속해서 밝힐 수 있었고 나머지 다섯은 기름이 없어 그러하지 못했다. 주님은 여러분의 등불이 계속해서 타오르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여러분은 혹 주님의 오심에 대해 기대하던 그 마음을 잃어버렸는가?​ 그래서 주님께서 오심에 대해 될 대로 되겠지 라는 심정으로 사는가? 여러분의 그릇에 기름을 담아두라. 그렇지 않으면 그 등불은 곧 꺼질 것이다. 성전의 등잔대를 계속해서 밝히기 위해 타서 더 이상 쓸모없어진 심지를 자르는 가위와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들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성령 안에서 걸으며 우리의 영적 생활의 심지를 다듬는 일들을 계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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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2:37 주인이 와서 그 종들이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도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허리띠를 띠고 그 종들을 음식 앞에 앉히고 나아와 그들을 섬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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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왔는데 종들이 깨어 즉시로 문을 열어 준다면 그것은 종으로써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다. “우리는 무익한 종들이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이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께 할 말일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종들이 주인을 섬겨야 하나 주님은 자신의 종들을 섬길 것이라는 점이다. 주인이 종과 같이 허리띠를 띠로 종들을 직접 대접하는 것이다. 이 주인이 누구인가?​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님은 우리의 신실함에 대해 보상하시며 우리를 섬기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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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2:38-40 주인이 만일 이경에 오거나 삼경에 올 때에 그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도다. 39 이것을 알지니 곧 그 집 주인이 만일 도둑이 몇 시에 오는 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자기 집이 뚫리지 않게 하였으리라. 40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너희가 생각하지 않는 시각에 사람의 [아들]이 오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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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신부의 집이 신랑의 집에서 멀다면 신랑의 집에 도착하는 것은 늦은 밤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그 시각에도 종들이 주인이 신부를 데리고 오기를 기다리고 준비하고 있다면 그 종들은 주인의 기쁨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주님은 그와 같이 우리가 주님의 기쁨에 동참하기를 원하신다. 주님은 각자에게 주님을 섬길 달란트와 므나를 주셨다. 만일 우리가 그것으로 주님을 신실하게 섬긴다면 주님은 우리의 수고에 보상하시며 축복할 것이다. 따라서 주인의 기쁨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종들은 신랑이 오기까지 깨어있어야 한다. 신랑은 마치 도둑이 예고없이 오듯이 그렇게 올 것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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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업이 잘 되면 그 때는 주님을 열심히 섬겨야지.” 혹은 “먼저 돈을 벌 내 일이 잘 되면 그 때 주님을 섬기는 것을 생각해보자.” 이렇게 말할 수 없다. 주님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때에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님은 “너희가 생각하지 않는 시각에 사람의 아들이 오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만일 우리가 현재 주님의 오심에 대해 깨어있지 않다면 주님은 우리가 깨어 준비되어 있지 아니한 때에 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님의 오심을 맞이하는 우리는 전혀 그분에 대해 준비되지 않은 우리의 모습을 보이며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주님의 기쁨에 동참하지 못할 것이다. 이 세상 삶의 염려와 재물과 쾌락이 주님의 오심에 대해 여러분이 무관심하지 못하게 되도록 허용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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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2:41-44 ¶ 그때에 베드로가 그분께 이르되, [주]여, 이 비유를 우리에게 말씀하시나이까,​ 아니면 모든 사람에게도 하시나이까?​ 하니 42 [주]께서 이르시되,​ 그런즉 자기 주인으로부터 그의 집안사람들을 넘겨받아 다스리며 제 때에 그들에게 그들 몫의 양식을 나누어 줄 신실하고 지혜로운 청지기가 누구냐? 43 그의 주인이 올 때에 그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도다. 44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를 자기의 모든 소유를 맡을 치리자로 삼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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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는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듣고 그것이 자기들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인지를 물었다. 즉 주님을 기다리는 종들은 자기들만을 두고 말씀하고 계신지 아니면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지를 알고자 했던 것이다. 주님은 그에 대해 직접적인 답을 주지 않으시고 돌려서 표현하셨다. “그런즉 자기 주인으로부터 그의 집안사람들을 넘겨받아 다스리며 제 때에 그들에게 그들 몫의 양식을 나누어 줄 신실하고 지혜로운 청지지가 누구냐?​” 주님의 답변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이와 같다. 한 단체나 교회의 믿는 바나 행함은 그 단체나 교회의 지도자들의 영향 아래 있다. 만일 교회의 목사가 주님의 오심에 대해 확고하다면 그 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일 교회의 목사가 주님의 오심에 대해 무관심하다면 그 교회의 전체적 분위기는 동일할 것이다. 따라서 지도자들의 가르치는 바는 중요하며 그의 책임 역시 막중하다. 따라서 모든 종들을 다스리도록 세워진 청지기 역할을 맡은 종은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주님은 그러한 청지기 역할을 맡은 종이 누가 될 것이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자기 주인으로부터 그의 집안사람들을 넘겨받아 다스리며 제 때에 그들에게 그들 몫의 양식을 나누어 줄 신실하고 지혜로운 청지지가 누구냐?​” 이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로 주님은 그들에게 앞으로 교회를 세울 사도로 부르셨던 사람들이었다. 주님은 그들에게 약속과 함께 그들로 하여금 신실한 청지기가 될 것을 명령하셨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맡은 일들에 대해 신실한 청지기로 있기를 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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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4:1-2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역자요,​ [하나님]의 신비들을 맡은 청지기로 여길지어다. 2 또한 청지기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신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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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2:45-48 그러나 그 종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내 주인이 오는 것을 늦추시는구나,​ 하며 남종과 여종들을 때리고 먹고 마시고 취하기 시작하면 46 그가 그를 기다리지 않는 날 그가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잘라 내고 믿지 않는 자들과 함께할 그의 몫을 그에게 지정하리라. 47 자기 주인의 뜻을 알고도 자기를 예비하지 아니하고 주인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그 종은 채찍을 많이 맞되 48 알지 못하고 채찍 맞을 일들을 한 자는 적게 맞으리라. 누구든지 많이 받은 자에게는 사람들이 많이 요구할 것이요, 사람들이 많이 맡긴 자에게는 더 많이 달라고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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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주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제 때에 필요한 양식을 집안사람들에게 나누어주지 않는다면 주님은 그 사람에게서는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할 것이다. “누구든지 많이 받은 자에게는 사람들이 많이 요구할 것이요, 사람들이 많이 맡긴 자에게는 더 많이 달라고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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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의 오심을 대비하지 아니하는 종의 모습을 보면 만일 우리가 주님께서 오실 것을 대비하지 않는 삶을 살 때 우리에게 있을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 종은 타락해 간다. “남종과 여종들을 때리고 먹고 마시고 취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오늘날 타락한 목사들이 보여주는 모습들이다. 그들은 교회를 통해 부패하고 살찌며 부하게 되고 제 때에 양식을 나누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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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겔 34:10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노라. 내가 내 양 떼를 그들의 손에서 요구할 것이며 그들로 하여금 양 떼 먹이는 것을 그만두게 하리라. 또한 목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먹이지 못하리니 내가 내 양 떼를 그들의 입에서 건져 내어 그들에게 먹이가 되지 아니하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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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것은 목사들을 향한 말씀이고 나는 목사가 아니므로 해당없다.”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신다. “알지 못하고 채찍 맞을 일들을 한 자는 적게 맞으리라.” 만일 여러분이 몰랐다고 한다고 간과되는 것이 아니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주인의 뜻을 알고 자신을 예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깨어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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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그를 잘라내고”가 오늘날 구원받은 크리스천이 구원을 잃어버린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문자적 적용과 영적 적용의 구분이 필요하다. 또한 비유는 적용함에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성경은 믿는 자의 구원의 영원한 안전에 대해 명백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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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2:49-53 ¶ 내가 땅에 불을 보내러 왔노니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50 그러나 내게는 잠겨야 할 침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답답하겠느냐! 51 너희는 내가 땅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열이니라. 52 이제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하며 둘이 셋과 하리니 53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자기 며느리와 며느리가 자기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이 땅에 불을 붙이셨기 때문이다. 주님은 땅에 화평을 주려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주셨다. 여기 주님께서 잠겨야 할 침례란 십자가의 고통과 죽으심을 말씀하신다(시 42:7) 주님은 믿는 자들에게 마음속에 세상이 줄 수 없는 화평을 주셨지만 이 세상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과 화평을 누리기 어렵다. 만일 누군가가 주님을 신실하게 섬기고 그분을 기다리고자 한다면 그가 대면하게 될 것은 가족의 분열을 보게 될 것이다. 이 동일한 말씀을 마태복음에서 보자.
 +
 +마 10:34-42 내가 땅에 화평을 보내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나는 화평이 아니라 검을 보내러 왔노라. 35 사람이 자기 아버지를 딸이 자기 어머니를 며느리가 자기 시어머니를 대적하여 불화하게 하려고 내가 왔나니 36 사람의 원수들이 그의 집안에 속한 자들이리라.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내 뒤를 따르지 아니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39 자기 생명을 찾는 자는 그것을 잃을 것이요, 나로 인하여 자기 생명을 잃는 자는 그것을 찾으리라. 40 ¶ 너희를 받아들이는 자는 나를 받아들이며 나를 받아들이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느니라. 41 대언자의 이름으로 대언자를 받아들이는 자는 대언자의 보상을 받고 의로운 자의 이름으로 의로운 자를 받아들이는 자는 의로운 자의 보상을 받으며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들 중 하나에게 찬 물 한 잔이라도 주어 마시게 하면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자기 보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만일 우리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자라면 주님을 가족보다 더 사랑하는 자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가족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일이다.
 +
 +=====V. 분별(54-57절)=====
 +
 +믿는 자들을 포함하여 주님의 오심에 대해 분별력을 갖지 못한다. 주님은 이것과 관련하여 두 가지 예를 들고 있다. ​
 +
 +**눅 12:54-57 ¶ 또 그분께서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즉시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는도다,​ 하나니 참으로 그러하고 55 너희가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더우리라,​ 하나니 그렇게 되느니라. 56 너희 위선자들아,​ 너희가 능히 하늘과 땅의 모습은 분별하거니와 어찌 이때는 분별하지 못하느냐?​ 57 참으로 또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 스스로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
 +사람들은 날씨가 어떨지를 하늘의 현상을 보고 대충 안다. 저녁 노을이 좋으면 그 다음 날씨가 좋을 것이라 여기고 양떼구름이 일거나 연기가 똑바로 하늘로 가지 못하면 그 다음날 비가 올 것이라 여긴다. 만일 사람들이 일기예보를 잘 맞추듯이 영적인 일들에도 관심을 가지고 분별한다면 그들은 주님의 오심이 가까워오고 있음을 알 것이다. 특히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대상은 유대인들로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예수님의 초림과 관련한 말씀 뿐 아니라 재림에 대한 말씀도 담겨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의 행함과 기적들을 보고도 메시야가 온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때가 어느 때인지를 분별하지 못한 것이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성경에 더 가까이 있다고 말하는 자들이었지만 그들이 메시야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처럼 주님께서 오실 때가 가까이 올 때 종교지도자들은 더욱 주님의 오심에 대해 알지 못할 것이다. 주님이 오시기전 종교통합운동이 있을 것이라 이미 30-40여년 이전에 한국에서도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 지도자들에게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들은 그것이 대세라고 여기고 있다. 또한 무작정 스스로 분별하지 못하고 지도자들이 가르치는 대로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 스스로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
 +**눅 12:58-59 ¶ 네가 네 대적과 함께 행정관에게 가거든 길에 있을 동안에 그에게서 풀려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관에게 끌고 가고 재판관이 직무 수행자에게 넘겨주어 관리가 너를 감옥에 가둘까 염려하노라. 59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네가 마지막 그 한 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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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적용된다. 이스라엘 민족은 만일 그들이 메시야로 오신 그분을 받아들이지 아니한다면 즉 그들이 때의 분별력을 갖지 못한다면 그들에게 남아있는 일은 로마에게서 완전한 패망만이 남아있었다. 이제 그들이 구할 것은 회심과 메시야를 받아들임으로써 그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AD 70년 로마의 타이터스 장군에 의해 유대는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
 +
 +만일 누군가가 금전적 고소를 당해 감옥에 들어갈 상황이 되었다고 생각해보라. 그 일을 당하기전 애를 쓸 것이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이 모든 것들을 살펴 분별해보았을 때 자신이 가게 될 곳이 지옥으로 여겨진다면 이제 부지런히 애를 써서 그곳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는 거기서 결코 나오지 못할 것이다.
 +
 +=====결론=====
 +
 +여러분은 주님의 오심에 대해 어떤 자세인가?​ 그분을 기다리고 있는가? 아니면 무관심한가?​ 만일 그러하다면 시대적 흐름에 분별력을 가지며 또 열심을 내어 살펴봄으로 너무 늦어 심판이 임하지 않도록 하라.
눅12.37.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