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도구

사이트 도구


눅14.15-24

차이

이 문서의 선택한 이전 버전과 현재 버전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차이 보기로 연결

눅14.15-24 [2017-06-20 09:04] (현재)
줄 1: 줄 1:
 +==2016년 1월 24일 주일오전설교==
  
 +======초청과 그 응답======
 +
 +본문 말씀: 누가복음 14장 15-24절
 +
 +=====서론=====
 +
 +누가복음 14장 1-24절에서 주님께서 다루고 계시는 주요 이슈는 “위선”이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보고자 하는 15절부터 24절까지의 말씀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 앞부분 즉 1-14절까지 역시 참고해야 한다. 1절부터 보면 주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한 사람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가셨다. 주님을 초대한 사람은 우두머리 바리새인들 중 한 사람으로 이스라엘의 계급 중 높은 층에 속한 사람이었다. 우리가 주일날 오전예배가 끝나고 같이 모여 점심을 먹듯이 안식일에 주님을 경배하는 모임이 끝나게 되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서로 초대하여 같이 그들의 주식인 빵을 같이 떼어먹곤 하였다. 그리고 고위층에 있던 바리새인들 중 한 사람이 주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했을 것이다.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한다면 그것은 친절히 접대하는 것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초대받은 경우는 그 이유가 아니었다. 거기에는 숨겨진 의도가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만 초대한 것이 아니라 수종이 있는 어떤 사람역시 초대하였다. 그런데 그것은 당시 바리새인들이 하지 않던 일이었다. 그들이 그 사람을 초대한 것은 주님을 시험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즉 주님을 초대한 것은 위선적인 행위였던 것이다.
 +
 +수종증이란 몸이 간이나 신장이나 심장 중 문제가 있어 몸의 일부가 붓는 현상을 말한다. 뇌에 물이 차서 붓게되면 뇌수종이 된다. 당시 이 병은 치유할 수 없는 병 중 하나였다. 바리새인들은 주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그를 예수님께서 절대 놓칠 수 없는 자리에 앉혀놓았다. 그리고 그들은 안식일날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치유할 것인가를 시험하고자 하였다.
 +
 +만일 예수님께서 그를 보고도 그를 고쳐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병을 고치시는 능력을 가지신 예수님을 두고 “긍휼”이 부족하다고 비난할 것이며 그를 고쳐준다 하여도 안식일을 위배했다고 고소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의 마음을 아셨다. 3절을 보면 주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물으신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율법에 맞느냐?​” 주님의 질문에 그들은 답을 하지 않았다. 답을 한다는 것은 그들의 의도를 드러내는 것과 같기 때문일 것이다. 4절을 보면 그들이 답변하지 않는 것을 보시고 주님은 그를 데려다가 고친 뒤 그를 가게 하셨다. 애초에 그는 그 자리에 합당히 초대받지 않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그 사람의 신변을 더 위하셨다. 바리새인들은 그를 가만두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간 후에 주님은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물으신다. “너희 중에 누가 나귀나 소가 있는데 그것이 구덩이에 빠지면 안식일에 그것을 즉시 끌어내지 아니하겠느냐?​”(5절) 주님의 질문에 바리새인들은 대답할 수 없었다. 주님은 그들의 위선적인 마음을 드러내셨다. 만일 그들이 귀하다 여기는 동물에 대해 안식일에 기꺼이 구원한다면 그보다 더 귀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바 된 사람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
 +7-11절을 보면 주님은 초대받은 자들이 되도록 높은 지위의 사람들 곁에 앉으려 애쓰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참된 겸손이 무엇인지 가르치신다. ​
 +
 +**눅 14:7-11 ¶ 그분께서 초대받은 자들이 으뜸가는 자리를 택하는 것을 눈여겨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되,​ 8 네가 어떤 사람으로부터 결혼식에 초대를 받거든 가장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존귀한 사람이 그에게 초대를 받았을 때에 9 너와 그를 초대한 자가 와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러면 네가 수치를 당하며 가장 낮은 자리를 잡게 될까 염려하노라. 10 오직 네가 초대를 받거든 가서 가장 낮은 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자가 와서 네게 이르기를,​ 친구여, 더 높은 데로 올라가라,​ 하리니 그때에 네가 너와 함께 음식 앞에 앉은 자들 앞에서 영예를 얻으리라. 11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
 +주님은 그들에게 스스로 높아지려 하지 말고 그것을 잔치의 주인에게 맡기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를 높이시고 낮추시는 일은 잔치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지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다.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자는 낮아지는 일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영적인 일 뿐 아니라 세상의 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주님은 영적인 원리만을 설명하고 계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 높아지려는 사람은 마음에 교만을 갖고 있으며 그것은 여러 경로를 통해 드러나고 알려질 것이다. 주님께서 이것을 말씀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 즉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과 서기관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왕국에서 높은 지위를 얻을 것이라 스스로 여겼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 민족을 구원하시려고 보내신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보고도 그분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았으며 예수님께서 메시아라는 증거를 보이는 것을 부정하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12-14절까지는 자신이 받은 혜택이나 은혜를 되돌려 줄 수 있는 자들보다 돌려줄 수 없는 자들을 초대할 것을 권고하신다.
 +
 +**눅 14:12-14 ¶ 그 뒤에 그분께서 또 자기를 초대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을 만들거든 네 친구나 형제나 친족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말라. 그들이 또한 너를 다시 초대하여 네게 되갚을까 염려하노라. 13 그러나 네가 잔치를 베풀거든 가난한 자와 불구자와 다리 저는 자와 눈먼 자들을 부르라. 14 그리하면 그들이 네게 보답하지 못하므로 네게 복이 있으리니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대로 자신의 은혜로 사람들을 부르실 때에 주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와 은택을 돌려드릴 수 없는 자들을 부르셨다. 우리는 그 다음 비유를 통해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의 권고를 들은 한 사람이 언제나 무리 가운데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사람이 있듯이 입을 열었다.
 +
 +**눅 14:15 ¶ 그분과 함께 음식 앞에 앉은 자들 중의 하나가 이것들을 듣고 그분께 이르되, [하나님]의 왕국에서 빵을 먹을 자가 복이 있나이다,​ 하매**
 +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바리새인들인 그들을 높이고자 한 말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 지도자들이었기에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왕국에 참여할 자들이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왕국에서 베푸신 잔치에 참여하게 될 자들이라 여겼다. 그들은 주님께서 어떤 자들이 복이 있을 것인지에 대해 말하자(14절),​ 주님이 말씀하신 가난한 자와 불구자와 다리 저는 자와 눈먼 자들이 아니라 자기들이 복을 받을 자들임을 자랑하며 말하고 있다. 주님은 이것을 이용하셔서 그들 마음에 있는 위선과 그들의 실제적인 영적 상황을 비유로 보여주시기 시작하신다. 이것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다고 스스로 거짓 자만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다. 또한 이것은 구원받은 우리에게도 도전의 말씀이 될 것이다. 주님은 자신의 종들을 보내셔서 사람들을 초대하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잃어버린 혼들을 구원할 과업에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들을 초대하여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성대한 만찬에 참여하기를 원하신다.
 +
 +따라서 본문말씀은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자들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며 그 계획에 대한 우리의 과업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 비유는 구원으로 초대하는 하나님의 초청이다. 우리는 이 초청의 몇 가지 특징에 대해 보게 될 것이다.
 +
 +=====I. 초청이 주어짐(16-17)=====
 +
 +**눅 14:16-17 이에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성대한 만찬을 만들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고는 17 식사 시간에 그 초대받은 자들에게 자기 종을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이제 모든 것이 준비되었노라,​ 하매**
 +
 +이 초청은 “성대한 만찬”에 대한 초대이다. 이 비유는 마태복음 22장에서 나오는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왕에 대한 하늘의 왕국의 비유와 비슷하다. 그러나 비유의 묘사에 있어 차이가 있는 것은 마태복음은 그 대상이 유대인들을 위한 것이고 누가복음은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의 비유는 혼인식으로의 초대인 반면 누가복음의 초대는 “만찬”에 대한 초대라는 점에서 그 목적이 다르다. 비슷하지만 다른 목적으로 주어졌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즉 누가복음의 비유는 구원으로의 초청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성대한 만찬”으로 비유하고 계신다.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부유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이 땅에서 우리가 물질적인 부를 얻지 못한다 할지라도 주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영적인 부를 마련하고 계시고 먼 미래에 있을 하늘의 축복을 보여주시고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
 +하나님께서 성대한 만찬을 여셨기에 거기에 초대된 사람들은 매우 귀한 명예를 얻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매우 값지고 매우 유력한 자들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들은 마치 연말이 되면 여는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받도록 예정되어 있는 자들과 같은 위치에 있는 자들일 것이다. 모두가 그런 자리에 초대받는 것을 매우 귀중하게 생각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마련하신 구원으로의 초대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그 이상의 것이기 때문에 주 예수님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 “성대한 만찬”이라 표현하셨다. 하늘의 영광과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특권과 모든 은혜의 자리로 우리를 주님은 부르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초대하고 계시는 왕국은 이 세상과 같이 죄가 넘치고 악이 넘치는 사회가 아니라 의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며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거룩함이 넘치는 세상이다. 주님은 그 왕국을 우리에게 약속하셨고 그 왕국에서 열게 될 성대한 찬치에 우리를 초대하셨다. 거기에는 우리가 성경에서 보았던 모든 구원받은 의인들이 있을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과 다윗과 욥과 이사야와 룻과 사무엘과 모든 하나님의 대언자들과 사도들이 거기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잔치에 참여할 것이다. 그 찬치에 참여하도록 주님은 모든 사람들을 지금 부르고 계신다. 그 잔치에 참여하는 유일한 조건은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뢰하는 것이다.
 +
 +=====II. 잔치에 대한 거부=====
 +
 +**눅 14:18-20 그들이 다 하나같이 변명하기 시작하여 첫째 사람은 그에게 이르되, 나는 땅을 샀으므로 반드시 가서 그것을 보아야 하니 원하건대 나를 용서하라,​ 하고 19 다른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사서 그것들을 시험하러 가니 원하건대 나를 용서하라,​ 하며 20 또 다른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런즉 가지 못하겠노라,​ 하므로**
 +
 +우리가 이 상황을 이해하려면 고대 사회에서 성대한 잔치를 열 때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오늘날에도 비슷하겠지만 찬지를 여는 사람은 잔치에 대한 날짜와 초대자들을 계획하고 그것을 미리 초대받은 자들에게 알리며 그들의 동의를 얻는다. 이것은 얼마만큼의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미리 계산하기 위함도 있다. 따라서 초대하는 사람은 초대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오는지를 미리 알고 있다. 그리고 잔치날이 이르게 되면 초대받았던 사람들이 잔치에 오도록 종들을 보내어 그것을 알린다. 초대받은 자들은 잔치가 있을 날을 미리 알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 날을 대비하고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여러분이 잘 아는 누군가로부터 결혼 초대장을 받으면 그 날은 스케줄을 비워두고 결혼식에 참여할 계획을 세워둘 것이다. 미리 옷을 준비하거나 비용을 계산한다. 결혼식에 초대받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가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외국의 경우 참여 여부까지 알림으로서 그날 준비할 음식량을 조절한다. 그런데 우리는 18절부터 매우 이상한 상황을 보게 된다.
 +
 +종들이 가서 초대받은 자들에게 이르렀을 때 그들은 하나같이 그들이 잔치에 참여할 수 없는 이유들을 대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들이 내놓은 변명들은 사실 잔치에 참여하지 못할만한 변명들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구실에 지나지 아니하는 변명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이 변명들을 대할 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비유의 주된 대상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 주된 대상은 이스라엘이며 왕국으로 초대를 받은 그들의 부르심을 두고 말하고 있다. ​
 +
 +마 8:11-12 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와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하늘의 왕국에서 앉으려니와 12 왕국의 자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날 것이요,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
 +비유에서 그들은 앞으로 있을 잔치에 미리 예고를 받고 준비되어 있어야 할 사람들이었지만 실제로 메시아께서 오셨을 때 그들은 그분을 거부하고 그분의 믿고자 나아오지 않았다. 주님은 여러 비유를 통해 그것을 보여주셨다.
 +
 +눅 19:14 그런데 그의 국민들은 그를 미워하고 그가 간 뒤에 소식을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를 통치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
 +마 21:37-39 그가 맨 마지막으로 자기 아들을 그들에게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으나 38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는 자기들끼리 이르되, 이 사람은 상속자니 오라, 우리가 그를 죽이고 그의 상속 재산을 빼앗자, 하고 39 그를 붙잡아 포도원 밖으로 내던지고 죽였느니라.
 +
 +그들이 초대에 응하지 않았을 때 주님은 자신의 집을 채우시고자 다른 사람들에게로 향하시고 모든 사람들을 초대로 부르셨다. 또한 이 초대는 오늘날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는 모든 사람을 향한 초대로 영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구원의 길을 마련하시고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게 하셨으며 그분을 다시 부활하게 하시고 자신의 거룩한 영을 세상에 보내어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도록 모든 사람을 부르고 계신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메시아께서 오셨음에도 그분을 믿으려하기 보다 변명을 내놓았던 것처럼 여전히 예수님께서 구원으로 부르시며 초대하심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어떤 변명을 내놓고 있는지 살펴보자.
 +
 +====A. 물질적 소유의 변명====
 +
 +첫 번째 사람은 땅을 샀기 때문에 그것을 먼저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그것을 하려 하겠는가?​ 비유의 주인은 만찬으로 사람들을 초대하였다. 누가 자신의 땅을 저녁때에 가서 보고자 하는가? 이 사람의 변명은 물질적인 소유욕으로 가득하여 복음으로의 초대를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사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이 세상이 주는 만족을 더 원하며 앞으로 올 세상에 마음을 두지 아니하는 사람들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신의 혼을 잃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이런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가졌는지에 마음을 두려 한다. 그러나 중요한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는 무지한 자들이다.
 +
 +눅 12:16-21 또 그분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여 이르시되,​ 어떤 부자의 땅이 풍성하게 열매를 내매 17 그가 속으로 생각하여 이르되, 내 열매를 쌓아 둘 곳이 내게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가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지어 거기에 내 모든 열매와 물건을 쌓아 두고 19 또 내 혼에게 말하기를,​ 혼아,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편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라,​ 하리라, 하였느니라. 20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 어리석은 자여, 이 밤에 네게서 네 혼을 요구하리니 그러면 네가 예비한 그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보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해 부요하지 못한 자는 이와 같으니라,​ 하시니라.
 +
 +====B. 출세를 위한 변명====
 +
 +두 번째 사람은 소를 5겨리 샀으므로 그것을 반드시 시험해보아야 하므로 가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그는 밤에 새로 구매한 소를 가지고 밭을 갈겠다고 하는 사람이다. 그는 이 세상에서 출세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이나 사업이나 혹은 물질적 추구나 명예욕이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막도록 허용하는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돈을 벌고자 하며 어떤 자들은 높은 자리를 원하며 어떤 자들은 인정받고자 함으로 예수님께 나아오지를 못한다. 유대인들 중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믿었으나 그분을 시인하게 되면 회당에서 출회당할 것을 두려워 드러내지 못하였다. ​
 +
 +====C. 개인적 관계를 위한 변명====
 +
 +세 번째 사람은 이제 막 결혼한 사람이다. 그는 이제 신부와 시간을 오랫동안 보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가 초대한 자의 초대에 응하였으며 또한 그 역시 결혼을 하기 전 미리 그것을 알고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적인 관계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섬기는 삶을 살게되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점으로 인해 그분께 나아오지를 않는다. 그들은 친구들이나 가족과의 관계를 더 우선시하며 그로 인해 그들에게서 받을 비난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
 +
 +눅 9:61-62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먼저 내가 가서 내 집에 있는 자들에게 작별을 고하게 하옵소서,​ 하니 6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왕국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해 그들이 앞으로 하나님의 왕국이 도래할 것이며 그 일을 위해 메시아를 보내실 것을 알았으며 그들에게 주어진 율법과 대언서들을 통해 분명히 약속된 메시아가 그들 앞에 있음에도 그들은 현재 자기들에게 주어진 종교 지도자들이라는 지위와 그들이 가진 명예와 소유 그리고 그분을 믿지 아니하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받게 될 비난을 두려워하여 그분을 시인하지 아니하고 그분을 알려 나아오지 아니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현재의 상황을 보여주고 계신다. 분명 이스라엘은 초대받은 명예로운 민족이었다. 그들에게는 메시아에 대한 모든 언약들과 약속들과 대언들이 주어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어 그들을 초청하였을 때 그들은 주님께 나아오기보다 그럴 수 없는 변명들을 내세워 거절하였다. 오늘날 사람들 역시 동일한 변명으로 주님께 나아오려 하지 않는다. ​
 +
 +=====III. 연장된 초청=====
 +
 +**눅 14:21-24 이에 그 종이 와서 자기 주인에게 이 일들을 알리매 그때에 집 주인이 노하여 자기 종에게 이르되, 빨리 도시의 거리와 골목길로 나가서 가난한 자와 불구자와 다리 저는 자와 눈먼 자들을 여기로 데려오라,​ 하니라. 22 그 종이 이르기를,​ 주인이여,​ 주인께서 명령하신 대로 하였으되 여전히 자리가 있나이다,​ 하니 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큰길과 산울타리로 나가서 그들을 억지로라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을 채우라.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전에 초대한 그 사람들 중에서는 아무도 내 만찬을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
 +초대받은 자들을 부르러 온 종들이 그냥 돌아왔을 때 주인은 노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역사에서 겪은 일들이 그 점을 잘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기까지 하셨다. 그분은 우리를 축복하시며 우리에게 선을 베푸시길 원하시는 분이시다. 그와 동시에 그분은 심판과 진노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만일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거하며 회개하기를 거부하며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거부한다면 주님은 자신의 심판과 진노를 보여주실 것이다.
 +
 +비유를 보면 주인은 종들을 다시 내보내어 잔치에 올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초대할 것을 명령한다. 그래서 종들은 나가서 거리와 골목길로 나가 보이는 모든 사람들을 초대하여 데리고 온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할 것을 미리 아셨고 그것을 미리 말씀하시고 경고로 주셨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가난한 자와 불구자와 다리 저는 자와 눈먼 자들이 그분을 믿고 받아들이게 될 것을 아셨다. 주님은 지혜롭지 아니하고 고귀하지 아니하고 어리석은 자들과 약한 것들과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참으로 없는 것들을 부르셨을 때 그들이 주 예수님을 영접할 것을 미리 아셨다.
 +
 +고전 1:25-29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들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들보다 강하니라.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신 것을 너희가 보거니와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고 강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고귀한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자들을 당황하게 하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시고 [하나님]께서 강한 것들을 당황하게 하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있는 것들을 쓸모없게 하려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시고 참으로 없는 것들을 택하셨나니 29 이것은 어떤 육체도 자신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
 +초대받았던 이스라엘 민족이 주 예수님을 거부하였을 때 주님은 이제 잔치에 참여하게 될 자들의 범주를 넓히셔서 이제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그곳에 올 수 있도록 하셨다. 이것이 마 22장의 비유와 다른 점이다. 마태복음 22장에서는 결혼식 예복을 입어야 하나 눅 14장의 비유에서는 그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
 +이 연장된 초청에는 오늘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담겨 있다. 먼저 21절에서 주인이 종들에게 명령하되 “빨리” 데려오라고 하신 것을 눈여겨 보라. 주인은 이 초청이 긴급함을 알고 있다. 초청을 한 주인은 준비한 음식이 오래가지 못함을 안다. 시간이 되면 음식은 먹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주인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또한 조금 지나면 밤이 되어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주어진 초청은 “긴급함”이 있다. 우리의 날들은 길지 않다. 야고보는 “너희의 생명이 무엇이냐?​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수증기니라.”(4:​14)라고 하였다. 우리의 날들은 날아가는 화살과도 같다. 어느 누구도 내일에 무엇이 올지를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의 생명이 끝나면 우리는 하늘 아니면 지옥 중 하나로 향하게 된다.
 +
 +우리가 지옥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형성하는 일이다. 그분을 내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신뢰하며 그분을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지니신 분이시다. “다른 사람 안에는 구원이 없나니 하늘 아래에서 우리를 구원할 다른 이름을 사람들 가운데 주지 아니하셨느니라.”(행 4:12)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르게 된 그분께 속한 사람들을 불러 사람들을 구원으로 초대하라고 긴급히 명령하신다.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기간에 속한 사람들이며 너무 늦기 전에 사람들을 구원으로 초청해야 할 의무를 지닌 사람들이다. 주님은 우리가 거리와 골목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초대할 것을 명령하신다.
 +
 +그렇다면 초대받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부한 자들도 영향력있는 친구들도 아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관계를 형성하기 어려운 자들이며 “가난한 자와 불구자와 다리 저는 자와 눈먼 자들”이다. 주님은 과연 어떤 자들을 초청하기를 원하시는가?​
 +
 +**A. 가난한 자들 **– 주님은 다시 돌려줄 수 없는 자들을 부르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은혜를 우리에게 베푸실 뿐 아니라 그분의 구원에 절대 다시 돌려드릴 수 없는 자들을 부르신다. 주님은 다시 갚으실 것을 요구하시지도 않으시며 그분께 나아오기를 원하신다. “누구든지 목마른 자들은 나와서 값없이 생명수를 마시라.”(계 22)
 +
 +**B. 불구자들** – 이들은 몸의 일부가 기형이 되었거나 틀어졌거나 망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회에서 불편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회에서 결점이 있다고 여겨지고 거부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이들을 향한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불구자들을 사랑하신다. 우리 모두는 죄로 인하여 뒤틀린 본성을 갖고 있다. 우리의 본성은 죄를 향하여 기울어져 있으며 성경은 그것을 “불법”이라 부른다. 때로 사회와 교회가 그런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곤 하지만 주님은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것”을 말씀하셨다. 주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이 그분께 와서 자신의 죄들을 버리고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 그분을 신뢰하기를 원하신다.
 +
 +**C. 다리 저는 자들** – 이들은 주변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거동하는 것이 힘든 자들이다. 그들이 초대를 받아 만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이들은 스스로 불가능하고 누군가 그들을 도와야 한다. 이들은 죄로 인하여 장애가 되어 하나님께 스스로 가지 못하는 자들이다. ​
 +
 +사 59:10-15 우리가 눈먼 자들같이 담을 더듬고 눈이 없는 자같이 더듬으며 우리가 대낮에도 밤에서와 같이 걸려 넘어지고 죽은 자들같이 황폐한 곳에 있도다. 11 우리가 다 곰같이 부르짖고 비둘기같이 몹시 애곡하나니 우리가 판단의 공의를 바라나 공의가 없고 구원을 바라나 구원이 우리에게서 멀리 있도다. 12 우리의 범법들이 주 앞에 심히 많으며 우리의 죄들이 우리를 쳐서 증언하나니 우리의 범법들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우리의 불법들에 관하여는 우리가 그것들을 아나이다. 13 우리가 {주}를 대적하여 죄를 짓고 거짓말을 하며 우리 [하나님]을 떠나 학대와 반역을 말하고 마음에서 거짓된 말들을 수태하여 말하매 14 공의는 뒤로 물러가고 정의는 멀리 서 있나니 진리가 거리에 쓰러졌고 공평이 들어가지 못하는도다. 15 참으로 진리가 없어지므로 악에서 떠나는 자가 자기를 탈취물로 만들매 {주}께서 그것을 보시고 판단의 공의가 없음을 기뻐하지 아니하셨도다.
 +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올 수 없는 자들의 도움이 되신다. 그분이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도 아버지 하나님께 올 자는 아무도 없다. ​
 +
 +**D. 눈먼 자들 **– 이들은 어둠 가운데 놓여진 자들로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올 능력이 없는 자들이다. 그들에게는 인도자가 필요하다. 그들에게 빛이 되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시는 일이다. 우리는 영적 흑암에 놓여 있던 자들이었으나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조명을 주사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였고 우리는 그분을 믿게 되었다.
 +
 +고후 4:4-6 그들 속에서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가려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이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 하였느니라. 5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선포하지 아니하며 오직 [주]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과 또 예수님으로 인하여 너희의 종 된 우리 자신을 선포하노니 6 빛에게 명령하사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사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주셨느니라.
 +
 +**E. 큰길과 산울타리에 있는 자들 **– 종들이 거리와 골목길에서 보이는 자들을 초청하여 데리고 왔으나 여전히 빈자리는 많았고 주인은 이제 큰길과 산울타리로 나가 억지로라도 사람들을 데리고 오라고 말하고 있다. “큰길과 산울타리”는 말 그대로 아무나를 의미할 수 있다. 혹은 인간적으로 버려지는 사람들을 내포할 수 있다. 거기에는 집이 없는 사람들(홈리스)이나 떠돌이들이나 혹은 사업으로 바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종류의 사람이든지 무엇을 하는 사람이든지 어디에 거하든지 간에 주인은 상관하지 말고 잔치에 초대하라고 말한다. 이것이 우리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바이다.
 +
 +마 28:19-20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20 무엇이든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하시니라. 아멘.
 +
 +예수님은 우리에게 대상을 한정하지 않으셨다. “모든 민족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어야 할 대상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모든 인류를 구원할 계획을 창세전에 계획하셨고 이제 그것을 보여주셨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믿을 것을 요구하고 계신다. 주님은 먼저 주님을 믿고 영접한 자신의 사람들을 종으로 보내어 모든 사람들을 만찬으로 초대하기를 원하신다. 그 명령은 “긴급함” 가운데 주어졌다! 날들이 길지 않으며 이제 곧 어두운 밤이 되어 더 이상 일하지 못할 때가 올 것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억지로라도” 데려올 것을 명령하실 정도로 때가 매우 악함을 잊지 말자.
눅14.15-24.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