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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5.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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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5.11-32 [2019-01-27 13:23]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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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1월 27일 주일오전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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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탕자의 비유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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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말씀: 누가복음 15장 11-3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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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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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세 가지 다른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백 마리의 양을 가진 한 사람이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되찾는 이야기와 동전을 잃어버린 여인이 마찬가지로 그것을 되찾는 이야기와 마지막으로 둘째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가 그 아들을 되찾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각각의 경우를 보면 양과 동전과 아들이 발견될 때에 큰 기쁨이 존재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표현하셨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한 죄인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기쁨이 있느니라.”(눅 15:10) 양과 동전의 경우 주님은 거의 반복적으로 이 표현을 쓰심으로써 회개하는 한 죄인으로 인해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 기쁨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셨지만 마지막 아들과 관련해서는 그 표현이 있지 않다. 오히려 마지막 절에 아버지의 심정이 담겨 있다.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잃어버렸다가 찾았으니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니라.”(32절) 이 세 이야기 중 오늘 아들과 관련한 것을 집중적으로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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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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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는 이야기를 창조하시는 면에서 대가이셨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부분들을 보면 비유가 많은 부분 차지하는 것을 보게 된다. 비유는 말 그대로 어떤 진리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힘이 있다. 비유적인 전달을 위해 주님은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셨다. 또한 주님은 자신을 경청하는 자들을 아셨고 또 각자의 마음의 상태를 아셨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주님께서는 비유를 통해 말씀하실 때 그것을 듣는 자들의 마음의 상태를 비유를 통해 전달하시려고 하셨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보고자 하는 아들과 관련한 비유는 일반적으로 방탕하게 산 아들 즉 “탕자의 비유”라 불린다. 그분께서 탕자의 비유(눅 15:​25-32)를 제시하셨을 때 당시의 상황을 보면(1-2절) 군중들 안에 있던 세리들과 죄인들은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며 가까이 나아왔지만 군중 안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불평하는 태도와 비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영어 성경에서 세리들과 죄인들이 나아올 때 사용한 표현은 “drew near”를 사용하였는데 이 단어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며 내게 오는 그를 마지막 날에 내가 일으키리라.”(요 6:44)라는 말씀을 떠오르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에게 나아오는 세리들과 죄인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을 두고 기뻐하지 아니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위해 그들의 마음을 보이는 한 이야기가 필요하셨다. 예수님께서 전달한 탕자의 비유는 죄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듣기에 필요한 것을 정확히 전달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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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모두는 아마도 탕자의 비유에 대한 이야기에 익숙할 것이다. 아버지의 집을 떠난 아들 즉 탕자가 일반적으로 우리의 관심의 중심이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 속에는 다른 두 인물이 존재하며 그들로부터 우리는 가치 있는 교훈들을 배울 수 있다. 사실 우리는 각 인물들로부터 다음을 말할 수 있다: 방탕한 아들, 용서하시는 아버지, 분개하는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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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탕한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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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중들 중 세리들과 죄인들은 자기들의 삶과 탕자의 것과 유사점을 쉽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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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탕자를 보면 자기의 상속재산을 가난에 이를 때까지 죄의 쾌락으로 탕진해버린 후에 탕자는 자신이 유대인 남자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밑바닥 인생 즉 돼지들을 먹이는 돼지우리에 있음을 발견하였다. 정통 유대인이라면 돼지고기를 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돼지는 불결한 짐승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만지는 것조차 꺼려할 것이다. 그런데 탕자는 돼지를 키우는 우리 안에 있다! 예수님 당시에도 돼지를 키우는 유대인들이 꽤 있었다. 마귀 들렸던 사람에게서 마귀들이 나갔을 때 그들은 근처의 돼지 떼에게로 들어갔다. 탕자를 보면 그는 정말 배가 고파서 심지어 자기가 돼지들에게 주었던 곡식 껍질조차 그에게 좋은 것으로 보이기 시작하였다. 때로 환경의 최악의 상황들이 우리의 멀어있는 눈을 열게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탕자가 이 파괴적인 길로 내려가는 것을 두고 그에게 그 위험을 경고했을지라도 그가 그 길의 끝에 도달하기까지 그는 자신의 선택들의 어리석음을 볼 수 없었다. 끝에 도달하고 나서야 이 청년은 제 정신으로 돌아와서 “내 아버지께는 빵이 풍족하여 나누어 줄 수 있는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나는 굶어 죽는구나!” 라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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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여기서 탕자가 아버지로부터 멀어지는 어떤 단계들을 거쳤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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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불만족. 이 청년은 집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더 많은 것을 원했다.
 +2. 욕망. 그는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즐기기를 원하였으며 만일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있다면 만족하게 될 거라 생각하였다.
 +3. 기만. 그는 속아서 자신이 삶속에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으며 그것은 오직 자기 아버지의 집 밖에서만이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4. 결정. 그는 집과 그 제약하는 것들을 떠나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고 상상하는 삶을 즐기기로 결정하였다.
 +5. 떠남. 그는 행운을 믿고 자기 가족을 떠나 먼 나라로 갔다.
 +6. 기쁨.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풍족한 돈으로 그는 새로운 세상의 쾌락으로 즐겼다. 그는 죄를 맛보았고 새로운 경험들이 그가 꿈꾸던 모든 것의 성취라 믿었다.
 +7. 환상이 깨짐. 죄는 오직 잠시 동안 만족함을 준다. 즐거움을 줄 것이라 그가 생각했던 것이 그에게 공허함을 남기기 시작하였다. 죄는 처음에 즐길만하지만 그 삯은 언제나 사망으로 끝난다(롬 6:23). 죄의 삶의 방식으로는 행복과 화평과 안전이 사망한다.
 +8. 절망. 돈을 모두 탕진한 후에 기근이 왔으며 탕자는 돼지들을 먹이는 돼지우리에 도달하게 되었지만 그는 배고픈 채 있었다. 그는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진 채 집에서 삶을 시작했지만 이제 그는 먹을 것조차 충분하지 못했다. 그가 위대한 삶이라 기대한 것들은 끝이 났고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는 제 정신이 돌아왔고 회개와 겸손 가운데 자기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
 +
 +그 최악의 상황에서 나오는 유일한 방법은 회개 가운데 그의 아버지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그것도 그의 아들이라 불리는 것이 합당하다고 느낄 수 없었기에 자신을 종으로 여겨달라고 다짐하며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를 부끄럽게 하거나 질책하기는커녕 그의 아버지는 그를 환영하여 집으로 받아들이고 그를 용서하고 그를 위해 잔치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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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탕자가 걸은 쾌락의 길은 결국 파멸로 이끌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친구들이 준 경고들을 거부하면서 택해왔다. 탕자와 같이 그들은 비유적으로 돼지우리 안에 자신이 있으며 한 때 자신이 소유했던 자원들과 위엄을 상실한 채 놓여 있음을 발견한다. 처음에 좋아보이던 것이 그렇게 나쁘게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언제나 하나님이 우리의 생각에서 사라지거나 사람들이 그분에게서 멀어져 갈 때에 일어나는 방식이다. 우리의 계획 가운데 하나님을 두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대로의 삶을 살고자 하며 좋은 결말을 얻고자 할지라도 그것은 절대로 이를 수 없는 곳에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이 그분을 떠나 인생을 설계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신다. 크리스천의 삶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룻기의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삶이 이를 보여준다. 엘리멜렉의 뜻은 “하나님은 나의 왕”이며 나오미는 “즐거움”이란 뜻을 가진 이름이다. 그들이 약속의 땅에 머물라는 하나님의 뜻을 떠나 모압 땅으로 내려갈 때에 그들의 생각은 잠시동안 하나님의 백성에게 찾아온 기근을 피하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거기서 십년을 거하였다. 그 동안 엘리멜렉도 죽고 그곳에서 결혼하였던 두 아들들도 죽었으며 나오미에게는 두 며느리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나 멀리 주님으로부터 갔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얼마나 깊숙이 떨어졌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잃어버린 자들을 사랑하거나 찾는 일을 중단하지 않으신다. 룻기는 하나님께서 소망이 끊어진 가정에 어떻게 소망을 주시고 이스라엘의 왕이 그 집을 통해 태어나게 이끄셨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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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탕자는 제 정신으로 돌아온 후에 자기 아버지에게 돌아가기로 결정하였다. 수치와 죄의식에 가득한 그는 어떻게 고백할지를 계획하고 집을 향해 떠났다. 이것이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기를 원하는 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수치와 죄의식과 찔림의 심정은 성령께서 각 탕자를 하늘의 아버지께 다시 이끄실 때에 결과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겸손한 회개 가운데 나아와서 자기 죄를 자백하고 깨끗케 되고자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며 믿음으로 구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며 그분을 주님으로 받아들여 그분께 자신을 내어드리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용서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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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탕자가 집에서 그의 아버지에게서 환영받았듯이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위해 그분께 오는 모든 자들을 반겨 맞아주실 것이다. 자기의 둘째 아들을 안아주고 옷을 갈아입히고 그가 집으로 돌아온 것을 축하하는 일에서 아버지의 마음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이것이 주 하나님께서 그분께 나아오는 모든 자들을 반겨 맞으실 때와 정확히 같다. 심지어 자기들의 삶을 엉망진창으로 살았을지라도 주님께 환영받을 것이다. 잃을 것이 없고 얻을 것은 모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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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주님을 떠나 정말 자신이 삶을 너무 엉망진창으로 살아와서 당황스럽고 두렵고 해서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주저하고 있는가? 탕자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그분의 용서라는 선물을 받아들일 때에 회개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용서하신다는 확신을 우리에게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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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서하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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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 그분의 청중들은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온 세리들과 죄인들이 있었고 또한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분께서 죄인들과 함께 하신다고 그분을 비난하였다. 이 두 그룹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관련하여 교훈이 필요하였으며 이것이 탕자의 비유가 정확히 전달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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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탕자의 비유에서 가장 놀라운 인물은 사실 용서하시는 아버지이다. 예수께서는 탕자와 같이 죄를 짓더라도 회개 가운데 하나님께 되돌아오면 용서를 받지 못함이 불가능함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 하나님께 용서 받지 못하는 죄는 우리를 영원히 용서하시기 위해 마련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희생적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이 유일한 구원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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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아버지가 그의 아들을 대하는 단계들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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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상처받은 마음. 탕자의 아버지는 그의 아들이 자기의 상속재산을 일찍 갖고자 하고 또 그에게 줄 집을 떠나고자 하는 아들의 욕망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
 +2. 계속해서 그가 걱정됨. 멀리 떨어진 자녀를 둔 부모와 마찬가지로 이 아버지는 자기 아들을 염려하여 그가 좋은 선택들을 하는지 혹은 궁핍 가운데 있는지 염려하였다.
 +3. 인내 가운데 기다림. 집나간 자식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오늘날의 부모처럼 이 아버지는 자기 아들을 보기를 고대한다.
 +4. 그를 위해 지켜본다. 그의 아들은 절대로 아버지의 생각에서 멀리 있지 않으며 그는 행여 그가 돌아올까 보고자 길을 지켜본다.
 +5. 자기 아들이 곧 돌아오기를 원함. 자기 아들의 삶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 할지라도 절대로 이 아버지로 하여금 그를 거부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바램은 그를 가능한 빨리 보는 것이다.
 +6. 집으로 그를 환영하다. 마침내 아버지가 아들을 길에서 볼 날이 왔으며 아들이 먼 거리에 떨어져 있어도 그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달려가 그를 맞이한다. 책망으로 그를 대하기보다 그는 자기 아들이 더러운 옷을 입었어도 계속해서 그를 안고 입을 맞춘다. 이 청년은 힘겹게 죄를 고백하고 아버지 앞에서 자신이 그의 아들이라 불리기에 합당치 아니함을 고백하나 그 말이 끝나기 전에 그의 아버지는 종들을 불러 가장 좋은 옷과 반지와 신발을 가져와서 그를 입히라고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지시해서 살찐 송아지를 잡아 자기 아들이 돌아온 것을 환영할 잔치를 준비하라고 한다.
 +
 +이 이야기를 통해 예수께서는 지상의 아버지를 예를 들어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는,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견손한 회개 가운데 그분께 나아오는 자들을 기꺼이 용서하신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과거에 얼마나 멀리 그분에게서 떨어져 있었다 하여도 주님은 기꺼이 용서하신다. 그분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회개하는 죄인들을 향하는 하나님의 태도를 보이고 세리들과 지인들에게 만일 그들이 자백하고 그분께 돌아온다면 그분의 아버지께서 기꺼이 용서하고 그들을 받아주신다는 점을 전달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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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으로부터 멀리 도망하고 죄 가운데 사는 것은 절대로 행복을 찾는 방법이 아니다. 탕자와 같이 우리는 결과적으로 환상이 깨지고 절망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죄를 버리고 그분께 돌아오면 우리를 용서하시고 환영하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을 주시고 하늘에서는 큰 축제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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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모두를 위한 유일한 소망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용서이다. 인간은 사망이 정해졌으므로 그 다음에는 심판이 있지만 우리는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신뢰하는 일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히 9:27). 주님은 우리 모두가 우리의 죄로 인해 합당한 형벌의 값을 지불하시려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 그분을 신뢰하는 믿음과 우리를 위한 그분의 희생으로 인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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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탕자들을 위해 주시는 것들은 무엇인지 비유를 통해 보자.
 +
 +1. 용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그분께 두는 우리의 믿음을 근거로 우리는 용서를 받을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셔서 우리의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다(요일 1:9).
 +2. 받아주심. 주님은 우리의 선한 행위에 근거해서가 나니라 우리의 죄의 빚을 온전히 지불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을 근거로 해서 우리를 받아주신다. 그분을 믿는 각 신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분의 가족 안으로 받아들여진다.
 +3. 회복.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위엄과 지위와 생각을 회복시키신다.
 +4. 기뻐함. 우리만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버지께 돌아오기를 기다려왔던 우리의 가족과 친구들이 기뻐한다. 그러나 가장 큰 축제는 한 죄인이 회개할 때마다 하늘에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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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 돌아오는 것은 그분과의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것으로 이것은 절대 끊어져 갈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죄를 범하고 그분의 사랑의 징계를 경험하게 될지라도 우리는 절대로 우리의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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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개하는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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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 주신 세 가지 비유 모두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큰 기쁨이다. 그런데 마지막 비유에서 기뻐하지 않는 한 사람이 있다. 탕자가 돌아온 것을 정말로 기뻐하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탕자의 형으로 그는 신실하게 집에 머물며 자기 아버지를 섬기고 있었다. 그가 들에서 돌아왔을 때 그는 음악소리와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한 종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를 묻고 나서 자기 아버지가 그의 동생이 돌아왔다고 잔치를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는 화가 나서 집안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하였다. 그의 아버지가 밖으로 나와 그에게 잔치에 참여하기를 간청하였을 때 그는 거부하였는데 그가 자기 아버지에게 한 말은 그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를 드러낸다. 그의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에 있는 열 가지 특징들을 보도록 하자.
 +
 +1. 화: 그가 자기 아버지가 그의 반항하는 동생을 그가 행한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환영하며 맞아주었을 때 이것이 그의 첫 번째 반응이었다(28절).
 +2. 시기: 그는 자기 아버지가 자기에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였다. “보소서,​ 이 여러 해 동안 내가 아버지를 섬기며 어느 때고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적이 없었거늘 아버지께서 내가 내 친구들과 함께 즐기도록 내게 염소 새끼 한 마리도 결코 주지 아니하셨나이다.”(29절)
 +3. 쓰라림: “그러나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아버지의 이 아들이 돌아오매 즉시 아버지께서 그를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30절)
 +4. 분개함: 그는 자기 아버지가 자기의 신실함을 절대 알아주지 아니했지만 불순종한 아들이 단지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유만으로 보상해주었다는 사실로 분개하였다.
 +5. 거부. 그는 자기 아버지가 그의 동생이 돌아온 것을 축하해준 것을 자기는 거부한 것으로 보았다.
 +6. 용서하지 못함. 그는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버린”이라 말하며 자기 동생의 죄들에만 관심이 있지 그의 회개에는 그렇지 않고 있다. ​
 +7. 경시. 그는 탕자를 자기 동생으로 인지하기보다 오히려 “아버지의 이 아들”로 언급하고 있다.
 +8. 고소. 그는 자기 아버지가 그의 반항하는 동생을 위해 열어준 잔치와 같은 것을 자기를 위해서는 해 준적이 없다고 자기 아버지에게서 잘못을 찾고 있다. ​
 +9. 자기 의. 그는 자신에게서는 죄를 보지 못하고 있다.
 +10. 통렬하고 물어뜯으며 찌르는 말들.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버린 아버지의 이 아들”(30절)
 +
 +두 형제 중 누구를 더 자신과 연관시킬 수 있는가? 둘 다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용서가 필요했지만 오직 하나만 그것을 허락하였다. 만일 여러분이 이 선물을 받아들인 적이 없다면 오늘 하나님께 간구하여 그분의 은혜와 긍휼의 권능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변화시켜달라고 간청하자.
 +
 +탕자의 이야기에서 기뻐하지 않던 맏아들은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기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같다. 그들은 신실하게 매 안식일마다 회당에 참석하였고 율법을 지킨다고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죄인들과 세리들을 천하게 보았다. 그런 그들을 예수님께서 받아주셔서 그분 가까이 있도록 허락하셨을 때 그들은 분개와 시기 가운데 있었다.
 +
 +그와 동일한 방식으로 우리 역시 죄 있는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살으며 삶이 엉망진창인 사람들을 비판적으로만 볼 수 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의 죄들에 대해 너무 비판적으로 되기 전에 맏아들의 태도에서 몇 가지 가치 있는 교훈들을 배우고자 한다.
 +
 +1. 이 이야기에는 두 가지 돼지우리가 있다. 우리 눈에 명백한 우리는 탕자가 자기의 방탕하고 어리석은 선택들의 결과로 대하게 된 먼 나라에 있던 곳이다. 그러나 순종하던 맏아들도 집에서 돼지우리 안에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죄 있는 태도 때문이다. 그는 자기 아버지에게 외적으로 보이는 순종으로 인해 자신을 경건하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마음에서 그는 분노와 자기 의로 가득한 태도로 돼지우리 안에 뒹굴고 있었다.
 +
 +2. 우리도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먼 나라에 있을 수 있다. 먼 나라는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나가려고 택한 어느 곳이든 될 수 있다. 탕자는 집을 떠나 어떤 제약도 없이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가고자 했다. 그런데 그의 형은 물리적으로는 집에 머물러 있었지만 그 역시 먼 나라에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마음이 적대적인 태도들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비록 자기 가족과 머물러 있었지만 그는 비참하였고 감정적으로 그들과 분리되어 있었다. 한 형제는 돼지들을 위한 곡식 껍질로 배를 채우고 있었지만 다른 형제는 자기 형제와 아버지를 두고 용서하지 못하는 태도와 시기와 독한 분노로 가득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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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삶의 돼지우리로부터의 자유롭게 되는 길은 회개와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으로 포장되어 있다. 우리 마음의 상태는 외적인 종교적 행위로 그렇게 드러나지 않아 감추어져 있을 수 있으며 오직 사람들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태도로 드러난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용서를 바라는 죄인들을 환영한다고 그분을 향해 화를 내었지만 실제로 그들은 자기들의 죄로 가득한 마음을 인지하기를 거부하여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구할 필요를 보지 못함으로써 더 악한 상황 가운데 있었다. 만일 우리가 삶의 돼지우리에서 나오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기꺼이 우리의 죄를 시인하고 우리의 죄로 가득한 행위들과 태도들을 두고 용서를 구하고자 예수님께 나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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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서하지 아니하는 태도와 분개라는 돼지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기대하지 않지만 자신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는가?​ 좋은 소식은 우리가 우리의 죄로 가득한 행동들과 태도들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우리를 반겨 맞이하여 그분의 팔로 안으신다는 점이다. 그분께 돌아서고 그분의 풍성한 은혜와 사랑의 축복을 오늘 즐기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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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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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의 삶 가운데 겸손히 회개 가운데 하나님께 나아온 때가 있었는가?​ 여러분의 삶이 엉망진창임을 고백하고 그분의 용서가 필요함을 고백하였는가?​ 만일 그러하다면 주님께서 여러분의 삶속에서 어떻게 회복해나갔는지를 보았는가?​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왜 지체하고 있는가?
 +
 +이 이야기의 지상의 아버지의 모습이 여러분의 하늘의 아버지를 이해하는데 얼마나 기여하였나?​
 +
 +우리는 각자가 이 비유의 인물들 중 하나에 투영할 수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반항하는 아들과 그를 집으로 따뜻하게 받아준 용서하는 아버지와 탕자가 환영받기에 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비통함을 지닌 맏아들이 있다.
  
눅15.11-32.txt · 마지막 수정: 2019-01-27 13:23 작성자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