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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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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7.5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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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10월 16일 주일오후설교==
  
 +==제 13회 창립기념일==
 +
 +======믿음의 증대의 필요성======
 +
 +본문 말씀: 누가복음 17장 5절
 +
 +**눅 17:5 사도들이 [주]께 이르되, 우리의 믿음을 증대시켜 주옵소서,​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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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론=====
 +
 +본문 말씀을 보면 사도들은 주님께 “우리의 믿음을 증대시켜 주옵소서”라고 간청하고 있다. 사도들 뿐 아니라 모든 시대에 걸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크리스천들의 공통된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믿음의 증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는 믿음이 증대되기를 소망할 것이다. ​
 +
 +제자들이 믿음의 증대를 간구하게 된 이유를 보게 되면 주님께서 그 앞에 하셨던 말씀으로 인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너희는 스스로 주의하라. 만일 네 형제가 네게 범법하거든 그를 꾸짖고 그가 회개하거든 그를 용서하라. 4 그가 만일 하루에 일곱 번 네게 범법하고 하루에 일곱 번 네게 다시 돌아와 이르기를,​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그를 용서하라.”(눅 17:3-4) 라고 하셨다. 한번 생각해보라. 주님께서 이 말씀을 우리에게 하였다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 대부분의 경우 아마도, “주님, 그건 너무 과도한 요구이십니다!”라고 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이것은 우리의 육신의 힘으로 하기에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께서 그 명령을 주셨을 때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당연한 바라고 여겼으며 따라서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믿음이 증대되어야 할 필요성을 보았다. 우리는 과연 처음부터 그 필요성을 발견하였는가?​
 +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만일 주님께서 나에게 어떤 큰 일을 수행하라고 맡기셨거나 혹은 기적들을 행하라고 요구하신다면 그 때 믿음이 증대되어야 할 필요를 느낄 것이다. 하지만 제자들이 믿음의 증대를 위해 요청한 경우를 찾아보면 이것 외에는 성경에서 발견하기 힘들다. 그들은 왜 이 경우에서 믿음이 증대되기를 원하였는가?​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제자들이 믿음의 증대를 요청한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명령하신 바를 수행하기를 원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그 명령은 매우 힘든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들은 믿음의 증대를 요청한 것이다. 주 예수님은 더 나아가 6절을 통해 말씀하신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만일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너희가 이 뽕나무에게 이르기를,​ 뿌리째 뽑혀 바다에 심겨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 17:6) 제자들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주님의 명령을 수행하는데 자신들의 믿음의 증대가 필수적이라고 보았을 때 주님은 왜 “너희에게 만일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있었더라면”이라고 말할까? 또한 사도 바울은 이런 믿음을 큰 믿음으로 해석하지 않았던가?​ “또 모든 믿음이 있어 산을 옮길 수 있을지라도”(고전 13:2) 그런데도 주님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있다면 그것을 행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가?​ 먼저 해석에 주의를 위해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여기는 가정법이 사용되었기에 과거 시제로 나오고 있다. 즉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전혀 믿음이 없다고 말하기보다 참된 믿음의 정도를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주님은 “왜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 겨자씨 한 알은 맨 눈으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작은 크기이다. 그러나 모든 씨앗에는 생명의 원리 혹은 근원이 담겨 있다. 그것이 겨자씨이든 혹은 강낭콩이든 간에 그 안에는 생명의 원리가 있다. 씨를 흙에 묻고 물을 주어보라. 며칠이 지나 씨에서 뿌리가 자라고 싹이 돋아 올라올 것이다. 그것이 생명이 있음을 스스로 입증할 것이다. 동일한 크기의 모래는 그런 능력이 없다. 그런데 주님은 여기서 씨가 아니라 믿음에 대해 말한다. 즉 주님은 만일 우리에게 겨자씨 한 알 만큼 정말 작은 믿음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그 믿음에는 생명의 원리 혹은 근원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 믿음을 가지고도 주님의 명령을 수행할 능력을 부여받을 수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고 계신다. 그렇기에 그들 안에 매우 작은 믿음이라도 있다면 그 믿음을 발휘해서 주님의 명령을 수행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과 같다. 주님은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막 9:23)와 같은 말씀을 주실 때 믿음의 크기에 대해 언급하신 적이 없으시다. 믿음은 그 크기가 어찌하든지 간에 동일한 생명의 원리가 담겨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제자들이 믿음의 증대를 위해 간청한 것처럼 우리의 믿음이 증대되어야 할 필요를 볼 수 있다. 작은 믿음보다 증대된 믿음은 더욱 쉽게 일을 하기 때문이며 큰 믿음은 주님의 칭찬을 받기 때문이다. 오늘 오후시간에는 믿음의 증대의 필요성을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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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믿음은 관심의 대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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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은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어야 한다. 사도 바울이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살펴보고 너희 자신을 입증하라”(고후 13:5)고 명령한 것처럼 우리는 과연 우리가 믿음 안에 있는지 살피는 지혜가 요구된다. 여기에 왜 우리가 믿음 안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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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믿음은 구원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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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구원받을 때 무엇으로 구원받았는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받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지만 모든 세상이 구원받지 않는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받았는데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받았다. 생각해보라. 우리는 인내로 구원받는 것도 아니고 혹은 용기나 혹은 절제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 ​ 하나님의 은혜들 중 믿음이라는 속성을 제시하셨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큰 확신을 갖게 한다. 만일 우리 안에 매우 작은 믿음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구원을 영원히 안전하게 할 것이다. 크리스천에게 있어 믿음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이다. 그것은 야곱이 꿈에서 보았던 사다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 만일 사다리를 치우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크리스천에게서 믿음을 제거하면 그는 지옥에 던져질 것이다. 주님은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하셨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에게서 어떤 다른 요소보다도 믿음으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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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믿음이라고 해서 모두 다 같은 믿음은 아닐 것이다. 세상에는 진실한 믿음의 모조품이 많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단지 신조를 믿으며 어떤 믿음은 거짓을 기반으로 하며 어떤 믿음은 구원에 대해 확신을 주지만 자신을 의지하는 바에 있다. 오직 유일하게 우리의 혼을 구원하는 믿음은 자신에게 두는 믿음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 두는 믿음이다. 주님만이 우리의 믿음의 시작이자 완성자이시다. 진실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럼에도 그 믿음의 주체는 바로 여러분이라는 점이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대신해서 믿어줄 수도 없으며 성령께서는 여러분 안에 계신다 할지라도 여러분을 대신해 믿어주시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주님은 각 사람에게 믿음을 요구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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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은 구원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이기에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 믿음과 신뢰를 둘 것을 간청하며 요구한다. 여러분의 사랑이 대단할 수 있다. 여러분의 인내가 대단할 수 있다. 여러분의 기쁨이 대단할 수 있다. 여러분은 자신을 매우 절제하는 능력을 소유했을 수 있다. 하지만 주 예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없다면 여러분은 잘못된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들을 쓴 것은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하고 또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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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모든 하나님의 은혜들은 믿음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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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들을 생각할 때 무엇을 떠올리는가?​ 은사 혹은 선물? 혹은 사랑과 평강과 기쁨과 절제와 온유와 인내? 그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믿음은 모든 은혜들의 뿌리이다. 베드로는 “이것과 더불어 열심을 다하여 너희의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의 친절을, 형제의 친절에 사랑을 더하라.”(벧후 1:​5-7)라고 권면하였다. 믿음이 모든 은혜의 뿌리인지 생각해보자. 먼저 사랑에 대해 말한다면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지 아니한다면 그분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만일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사실과 그분께서 자신을 부지런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하시는 분이심을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분을 사랑하는게 가능하겠는가?​ 은혜의 다른 요소들 중 인내가 있다. 만일 믿음이 없다면 인내를 발휘하는 일이 가능하겠는가?​ 믿음은 주께서 보상하실 것을 바라봄으로써 성도로 하여금 인내하도록 이끈다. 믿음은 우리가 고난 가운데 있더라도 “모든 일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줄을 믿기에 인내하도록 이끈다. 믿음은 그 뒤에 있을 더 큰 영광을 바라보도록 이끈다. “내가 네게 명령하지 아니하였느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크게 용기를 내라. 두려워하지 말며 너는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주} 네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느니라”(수 1:9) 주님은 우리에게 용기에 대해 말씀하셨으나 만일 주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용기를 낼 수 있겠는가?​ 이처럼 하나님의 어떤 은혜의 요소이든지간에 그 모든 것들은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구슬 서말도 꿰메야 보배”란 말과 같다. 모든 하나님의 은혜의 구슬들은 믿음이라는 실타래를 통해서 아름다운 보배를 만든다. 만일 그 실타래가 끊어진다면 모든 구슬들은 흩어지고 말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은혜의 진주들로 이루어진 목걸이로 장식하고자 한다면 믿음이 은혜의 진주들을 엮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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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며 서로를 섬기도록 우리 모두에게 은혜들 즉 선물들을 주셨다. 그런데 그 선물들은 믿음의 분량에 따라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나누어 주신 것들이다. 즉 여러분의 믿음이 증대할 때에 그것은 여러분이 소유한 선물들 역시 증대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기에 여러분의 믿음에 관심을 가지며 그것이 증대되도록 기도하라. 여러분의 믿음에 여러분의 모든 은혜의 선물들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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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 그리스도께서 믿음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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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로 우리가 우리의 믿음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믿음을 중요하게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신약 성경에서 보배로운 것으로 불리는 네 가지가 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이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들로부터 전통으로 물려받은 너희의 헛된 행실에서 너희가 구속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썩을 것들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의 피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 두 번째는 보배로운 돌이신 그리스도이시다. “참으로 사람들에게는 거부당하였으나 [하나님]께는 선정 받은 돌 곧 보배로운 산 돌이신 그분께 나아와 5 너희도 살아 있는 돌들로서 영적 집으로 건축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도다.”(벧전 2:4-5) 세 번째는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이다. “그것들로 말미암아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나니 이것은 너희가 이 약속들을 힘입어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 있게 된 썩을 것을 피하여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벧후 1:4) 네 번째는 “보배로운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 우리와 더불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얻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벧후 1:1) 성경은 우리가 소유한 이 믿음을 보배로운 것으로 부른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예전에 한 크리스천이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머리 위의 관을 벗어서 믿음의 머리 위에 씌우셨다.”라고 하였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매우 믿음을 높이시었다. 그분은 누군가를 구원하실 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하셨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시는 것이지 믿음이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주님은 자신의 관을 믿음 위에 씌우신다는 점이다. 주님은 누군가를 치유하실 때 “네 믿음이 너를 치유하였느니라.”라고 하셨다. 그런데 치유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주님이시다. 믿음이 그리스도 대신에 온 것이다. 주님은 구원의 왕관을 벗어 믿음의 머리 위에 씌우고 믿음을 높이시고 계신다. 롬 3장에서는 무어라 말하는가?​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분은 그리스도시지 믿음이 아니다. 여전히 그리스도께서는 믿음을 높이고 계신다. 마태복음 15장으로 가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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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15:22-28 보라, 어떤 가나안 여자가 바로 그 지방에서 나와 그분께 소리 질러 이르되, 오 [주]여, 다윗의 자손이여,​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 내 딸이 마귀에게 몹시 시달리나이다,​ 하나 23 그분께서는 그녀에게 한 말씀도 응답하지 아니하시니라. 그분의 제자들이 와서 그분께 간청하여 이르되, 그녀가 우리를 따라오며 소리를 지르오니 그녀를 보내소서,​ 하거늘 24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의 집의 잃어버린 양들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어지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라. 25 그때에 그녀가 와서 그분께 경배하며 이르되, [주]여, 나를 도우소서,​ 하나 26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개들에게 던지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시매 27 그녀가 이르되, [주]여, 참으로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자기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가 원하는 대로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질지어다,​ 하신즉 바로 그 시각부터 그녀의 딸이 온전하게 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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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15:22-28을 보면 마귀들린 딸을 둔 한 여인은 주님께 인내를 가지고 모욕을 참으며 지혜롭게 주님께 답변하면서 자기 딸을 치유해 주시길 간청하고 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녀를 두고 무어라 말하는가?​ “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여러분은 그러한 상황을 대하면 무어라 말하겠는가?​ 아마 대부분 이렇게 말할 거이다. “딸에 대한 사랑의 애정이 지극하다.” 혹은 “이런 모욕을 참으니 인내가 대단하다.” 혹은 “참 지혜로운 여자이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주님은 그 여인의 믿음을 보셨고 그것을 칭찬하셨다는 점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믿음을 가장 고귀하고 가치있는 것으로 보고 계신다면 그것은 우리 역시 동일한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가? 주님께 믿음은 매우 보배롭고 매우 값비싼 보석과 같은 것이었다면 여러분은 믿음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만일 여러분이 믿음을 소유하였다면 그것은 매우 가치 있는 것을 소유한 것이다. “ 이것은 너희 믿음의 단련이 불로 단련해도 없어지는 금을 단련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으로 드러나게 하려 함이니라.”(벧전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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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 믿음은 모든 축복의 유일한 통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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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중에 축복을 원치 아니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원하고 간구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모든 축복은 믿음이라는 통로를 통해 온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흔들리지 말지니라. 흔들리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나니 7 그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주]께 받을 줄로 생각하지 말라.”(약 1:6-7)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또한 그것을 기뻐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무화과나무에 일어난 이런 일을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옮겨져서 바다에 빠지라, 하여도 그대로 될 것이요, 22 너희가 믿고 기도할 때에 무엇을 구하든지 모든 것을 받으리라”(마 21:21-22) 라고 하셨다. 믿음은 여러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핫라인이다. 그 라인이 끊어지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어떤 것도 아뢸 수 없다. 핫라인이 있을 때 여러분은 고난 중에 기도로 하나님께 간구하며 실망과 낙심 중에 위로와 힘을 위해 간구하며 재정적인 위기가 왔을 때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고자 그분께 아뢰게 된다. 믿음이 없이는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무엇을 받을 것이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우리는 절박함과 절실함 가운데 기도하나 “믿음” 안에서 기도하는 것은 잊어버리곤 하지 않는가? 기도는 하나님의 눈을 여러분에게로 돌리며 하나님의 손이 여러분을 위해 움직이도록 만드는 능력이 있다. 때로 우리는 우리가 기도하는 바에 대한 응답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못할 수 있다. 그럼에도 믿음의 기도는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는 바가 있다. 믿음의 기도는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화평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서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들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알리라. 7 그리하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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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 믿음은 우리의 원수의 불붙은 화살을 막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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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천이 종종 잊어버리는 것 중 하나는 우리가 구원받은 이후로 영적 전쟁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그 점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에 관심을 두기에 합당한 이유를 제공한다. 에베소서 6장을 보면 노장으로 모든 지혜로 크리스천에게 영적 전쟁을 대비하도록 가르치는 바울은 우리가 입어야할 것들을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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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엡 6:11-17 너희가 마귀의 간계들을 능히 대적하며 서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12 우리는 살과 피와 맞붙어 싸우지 아니하고 정사들과 권능들과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과 맞붙어 싸우느니라. 13 그러므로 너희가 악한 날에 능히 버티어 내고 모든 일을 행한 뒤에 서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를 동여매고 의의 흉갑을 입으며 15 화평의 복음을 예비한 것으로 너희 발에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취하여 그것으로 너희가 능히 그 사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끄며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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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마귀의 간계들에 능히 대적하며 서기 위해 무엇을 입어야 하는가?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갑, 화평의 복음,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 그런데 바울은 “믿음의 방패”를 언급할 때 “모든 것 위에”라고 말한다. 여러분이 갖추고 있는 장비가 아무리 하챦은 것일지라도 믿음의 방패를 갖고 있다면 여러분은 이것 하나는 분명히 할 수 있다. “너희가 능히 그 사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끄며” 믿음은 마귀의 모든 불화살을 끄는 힘이 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생각의 영역에서 쏟아지는 온갖 악한 생각들에 대해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도록 도운다.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믿음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겪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벧전 5:8-9) 형제 혹은 자매들을 향한 악한 생각들과 모든 높아지는 마음들과 비관적인 생각들과 자신의 계산대로 걷는 것이 지혜로와 보이며, 하나님의 일들보다 사람의 일들을 생각하게 하는 것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있을 때 여러분은 마귀의 불붙은 화살들을 맞고 서 있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들에 끌려 다니지 말라. 그 때는 “믿음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해야 할 때이다.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 가운데서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주님께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이 밤에 수탉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마 26:34) 하였을 때에 베드로는 매우 높아진 마음으로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답변하였으나 그가 어떻게 걸었는가?​ 그는 믿음 없는 자같이 걸었다. 그는 주님을 세 번 부인하였으며 그것도 주님을 저주하며 부인하였다. 그 일이 있기 전에 주님은 베드로에게 무어라 말하였는가?​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갖기 원하였으나 32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쇠하지 않도록 기도하였은즉 너는 돌이킨 뒤에 네 형제들을 강하게 하라”(눅 22:31-32) 마귀가 여러분을 갖고자 불붙은 화살을 던지고 있을 때 그 사실을 깨닫고 있는가? 아니면 여러분은 생각의 영역에서 올라오는 모든 부정한 생각들과 악한 생각들과 낙담하는 생각들과 높아진 생각들과 이기적인 생각들과 시기하는 생각들과 미워하는 생각들과 저주하는 생각들을 붙들고 그것들이 여러분의 생각에서 열매를 맺도록 품고 있는가? 우리는 영적 전쟁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으며 또한 믿음이 증대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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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 믿음은 내게 주어진 일들을 수행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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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은 명령의 길에서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바퀴와 같다. 만일 바퀴가 없다면 마차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힘들어지듯이 믿음이 없이는 우리는 하나님의 일들을 수행할 수 없다. 만일 믿음이라는 바퀴가 없다면 여러분은 그 마차를 끌고 가는 것이 매우 힘들어 질 것이다. 믿음이 없을 때 하나님의 모든 명령들은 매우 무거운 것들이 될 것이다. 반대로 믿음은 하나님의 모든 명령들이 무겁지 않은 것임을 깨닫게 하여준다. “우리가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는 것, 이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니라. 그분의 명령들은 무겁지 아니하니라.”(요일 5:3)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사도 바울이 외친 것처럼 말할 것이다.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그러나 믿음이 없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대한 관심도 사그라들며 또한 그것을 할 수 있는 의지 마져 상실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나 그분을 섬기는 일이 매우 버겁다고 느낄 것이다. 만일 하나님을 정말 잘 섬기는 사람들을 찾으려 한다면 여러분은 믿음의 사람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작은 믿음은 우리를 구원 받도록 이끌지만 작은 믿음으로는 큰 일들을 할 수 없다. 작은 믿음은 절망이라는 거인 앞에서 포로가 되어 차디찬 옥에 던져질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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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말씀을 상기해보라. 제자들은 주님께서 자기에게 용서를 구하는 형제를 두고 일흔 번에 일곱 번까지 용서하라는 명령을 주셨을 때 주님께 믿음을 증대해 달라고 간구하였다. 그들은 주님의 명령에 도망가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명령을 수행할 능력 즉 증대된 믿음을 원한 것이다. 그들은 믿음이 증대되었을 때 그 일은 어렵지 않은 것임을 알았다고 말할 수 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든 쓴 것과 진노와 분노와 소리 지르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 서로 친절히 대하며 상냥한 마음을 품고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인하여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하라.”(엡 4:31-32) 이 명령이 누군가를 생각할 때에 여러분에게 매우 무겁다고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께 이렇게 기도해야 할 것이다. “주여, 우리의 믿음을 증대시켜 주옵소서.” 주의 명령에 따라 순종할 수 있도록 우리의 믿음을 증대시켜 주옵소서. 주님은 현재 나의 믿음으로 그 일을 수행하도록 도우실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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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우리가 주님의 명령을 수행함에 있어 주의해야 할 점이 본문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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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7:7-10 그런데 너희 중에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가축을 치는 종이 있으면 그가 밭에서 올 때에 그가 즉시 그에게 이르기를,​ 와서 앉아 음식을 먹으라, 하겠느냐?​ 8 도리어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저녁을 먹도록 준비하고 또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실 때까지 나를 섬기며 너는 그 뒤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아니하겠느냐?​ 9 그 종이 명령받은 일들을 했으므로 그가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노라.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그 모든 일들을 행한 뒤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니이다. 우리는 해야 할 우리의 의무를 하였나이다,​ 하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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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일지라도 그 안에 생명의 근원이 있기 때문에 명령을 수행할 능력이 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어떤 주님의 명령들이나 섬기는 일들을 하게 되면 믿음이 적은 자들은 곧 자신의 믿음이 대단하거나 혹은 자신이 어떤 큰 일들을 수행한 것처럼 높아진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일에 대해 주님은 미리 경고하고 계신다. 우리는 “무익한 종”이다. 사실 우리의 믿음을 통해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주님의 명령들과 섬기는 일들을 수행할 능력을 부여하시기에 우리가 행할 수 있는 것이지 그 능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미약한 믿음의 기도에도 응답하시는 분은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며 그분께서 우리의 기도의 요청에 따라 역사하시기 때문이지 바로 우리 자신이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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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 오직 믿음만이 고난 중에 우리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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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을 생각해볼 때에 많은 사람들이 단 것을 좋아한다. 그들에 입맛에 달고 기쁨을 주는 것들만을 원하곤 한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단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은 아직 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성장하면 우리는 쓴 것을 좋아하기 시작한다. 쓴 것이 몸에 좋은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종종 하나님의 백성들은 위로를 원한다. 설교가 위로로 충만하고 자기 마음을 달래주기를 원한다. 그러나 여러분이 확실히 알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위로가 필요할 때에 그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믿음이다. 만일 누군가가 자신을 위로하고 달래주기를 바란다면 여러분은 진실로 여러분을 위로할 수 있는 믿음이 결여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앞에 있는 소망과 하나님의 약속을 보게 한다. 설교자는 여러분에게 그 사실을 고지하고 알려줄 뿐이며 위로를 얻는 것은 바로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과 소망을 둘 때이다. 하나님께서는 위로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분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요 긍휼의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니라. 4 그분께서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심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위로 받을 때 얻는 위로를 힘입어 우리가 어떤 고난 중에 있는 자들도 능히 위로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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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은 믿음은 “무엇을 먹을까 혹은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하고 염려하고 근심하나 증대된 믿음은 “오직 너희는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는 말씀에서 위로와 용기와 소망을 발견할 것이다. 적은 믿음은 고난에서 울며 훌쩍거릴 때 증대된 믿음은 고난에서 주님의 임재와 도움을 발견하고 기뻐하며 위로를 얻고 또 동일한 고난 중에 있는 자들에게 소망의 말을 건네 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진정한 위로를 원한다면 여러분의 믿음에 관심을 두라. 믿음이 증대될 때 여러분은 고난 중에서도 쉽게 요동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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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 믿음은 쉽게 연약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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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믿음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 중 마지막으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믿음은 쉽게 연약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믿음에 관심을 갖고 살펴야할 이유를 말한다. 사도 바울이 “스스로 서 있는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할지니라”(고전 10:​12)라고 말하였듯이 우리는 언제나 동일한 믿음의 정도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만일 주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믿음 없는 자와 같이 걷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아삽은 불의한 자들이 화평하고 잘 살며 행복해 보이며 또한 그들은 월계수처럼 뻗어 나가는 것처럼 보았을 때 그는 실족하여 넘어질 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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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73:1-3 (아삽의 시) 진실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곧 마음이 깨끗한 자에게 선하시도다. 2 그러나 나로 말하건대 내 발은 거의 지나갈 뻔하였고 내 걸음은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3 이는 내가 사악한 자들의 번영을 보고 어리석은 자들을 부러워하였기 때문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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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멜산에서 바알 대언자 사백명을 대적하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였던 엘리야는 아합 왕과 이세벨 여왕이 자기들의 죄에서 돌이키지 않는 것을 보았을 때 매우 연약해져서 도망하여 죽기를 바라였다. 만일 우리가 주의하지 않는다면 주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에게서 보듯이 믿음은 차가운 서리에 맞아 거의 동사하여 죽어버릴 아름다운 꽃과 같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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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믿음의 증대는 우리의 소망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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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들이 주님의 명령을 준행하기 위해 믿음의 증대를 간구하였던 것처럼 믿음의 증대는 성도들의 바램이자 소망이어야 한다. 우리는 믿음의 확장과 심오함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먼저 우리의 믿음은 범주는 확장되어야 한다. 우리가 주님을 처음 믿게 되었을 때를 떠올려 보라. 우리가 아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내 모든 죄의 값을 지불하셨다는 점일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성경지식은 넓어지고 더욱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하고 알게 되면서 우리는 주님에 대한 믿음의 범주가 확장되어 가는 것을 본다. 우리는 성경의 어떤 교리들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성경 그 자체를 알고자 하며 내가 묵상하는 말씀들에 대해 더욱 믿음을 갖게 되기를 원한다. 우리의 성경 지식의 성장은 주님을 더욱 알게 하고 이해하게 하여줌으로써 그분을 더욱 신뢰하고 더 많은 정도의 믿음을 둘 수 있도록 이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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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알고 믿는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삶속에서 예수님의 오심을 고대하는 것은 단순히 성경 지식을 습득하는데서 끝나지 않는 것을 안다. 그것은 주님을 향한 내 믿음의 정도가 자라날 때에 우리는 더욱 주님의 오심이 더욱 소중하며 내게 의미가 있는 것을 실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담겨 있는 약속들을 더 많이 알고 그것들에 믿음을 두기 시작할 때에 여러분은 더욱 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성장하는 것들을 볼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믿음은 양에 있어서도 확장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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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로 우리의 믿음은 능력에 있어서도 강력해져야 한다. 그것은 작은 믿음이 아니라 큰 믿음을 향하여야 함을 말한다. 적은 믿음은 소망하는 바가 적으나 큰 믿음은 주님과 동행한다. 적은 믿음은 염려하나 큰 믿음은 확신 가운데 걷는다. 적은 믿음은 불안해 할 때에 큰 믿음은 주님을 신뢰한다. 주님께서 언제나 큰 믿음에 대해 칭찬하셨음을 잊지 말자. 주님께서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어떤 말을 던지실지 생각해보라. “착하고 신실한 종아” 즉 “믿음이 충만한 종아” 주님께서 여러분을 두고 믿음에 대해 평가하실 때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어떤 평가를 원하는가?​ 여러분의 믿음에 관심을 갖고 그것이 증대되도록 간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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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믿음의 증대를 위해 주님께 간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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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여러분과 함께 하고자 하는 부분은 제자들이 믿음의 증대를 위해 주님께 간청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올바른 분에게 나아갔다. 그들은 “내가 내 믿음을 증대하리라.” 하지 않았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들은 설교자나 목사에게 “위로의 설교를 전해주셔서 내 믿음이 증대되게 해주세요.”라고 하지 않았다. 혹은 “어떤 영적인 책이 내 믿음을 증대시킬 것이다”라 생각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은 여러분의 믿음을 증대시키지 못할 것이다. 여러분의 믿음을 증대시킬 수 있는 분은 여러분의 믿음의 대상이시기도 한 분인 예수님뿐이시다. 그분은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시다. 그분만이 우리의 믿음의 속성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이시다. 그렇기에 믿음의 증대는 우리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의 기도와 그분과의 교제의 결과가 될 것이다. 모든 일에서 즉 즐거운 일이나 슬픈 일이나 위로나 낙망이나 위태한 때나 고난의 때에 그분께 아뢰고 믿음의 증대를 위해 기도하라. 주님께서 여러분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여 믿음이 증대되도록 해달라고 간구하자. “그러나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부르사 자신의 영원한 영광에 이르게 하신 분께서 너희가 잠시 고난을 받은 뒤에 너희를 완전하게 하시고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고 정착시키시리니 11 그분께 영광과 통치가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벧전 5: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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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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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자신의 믿음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가?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을 살기 원하는가?​ “주여 우리의 믿음을 증대시켜 주옵소서” 라고 간구하자.
눅17.5.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