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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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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8.1-8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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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8월 29일 주일 오전설교==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
 +본문말씀:​ 누가복음 18장 1~8절
 +
 +=====I. 비유의 목적=====
 +
 +주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에 기록된 비유를 주시는 목적은 “사람들이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보여 주시려 함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항상 기도”할 수 있을까요?​ 또한 데살로니가전서 5:17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 라고 명령합니다.
 +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항상 기도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가입니다. 항상 기도한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언제나 무릎 꿇고 기도만 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잠도 자고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고 일도 합니다. 그런데 언제나 무릎 꿇고 기도만 하고 있다면 언제 잠을 잘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주님이 항상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기도의 자세를 언급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항상 기도의 영 안에 머무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쟁 중에 군인은 어디를 가든지 간에 총을 휴대하고 다닙니다. 그가 잠을 자거나 혹은 보초를 서거나 혹은 밥을 먹을 때에도 총은 항상 그의 옆에 놓여있습니다. 전시에는 또한 총은 언제나 사용 가능한 상태로 둡니다. 적이 나타나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예비합니다. 기도 역시 그러합니다.
 +
 +기도는 성도의 간절한 열망을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 무언가를 정말 갖고자하는 열망을 가져본 적 없습니까?​ 가령 어떤 노트북이 갖고 싶으면 그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돈을 쓸 때에도 돈을 모을 때에도 그 생각이 모든 것을 좌우합니다. 마찬가지로 기도 역시 그러합니다.
 +
 +가령 여러분의 아이가 병에 걸려 몹시 아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일을 하러 회사로 가야 하거나 혹은 아이 옆에 있거나 여러분의 생각은 아이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다 그 생각이 간절해지면 여러분은 무릎 꿇고 문자 그대로 기도하게 됩니다.
 +
 +사실 기도는 그와 같습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마음의 간절한 소원이나 간청을 품는 것입니다. 그것은 입술로 나오지 않더라도 여러분의 마음에 있다면 언제든지 여러분은 하나님께 아뢸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본문말씀에 기도와 낙심이 대조되어 등장한다는 점을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
 +때로 우리들은 시간을 정하여 기도하기도 합니다. 우리 주님도 정해진 시간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새벽에 그러하셨고 또한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밤을 새시며 기도하셨습니다. 다윗은 아침, 점심, 저녁에 주님께 아뢸 것이라고 시편에서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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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55:17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기도하고 크게 부르짖으리니 그분께서 내 음성을 들으시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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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엘 역시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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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6:10 이제 그때에 다니엘은 그 조서에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들어가 자기 방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자기 하나님 앞에서 감사를 드리더라.
 +
 +또한 기도는 즉각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
 +느 2:1~5 아닥사스다 왕의 제이십년 니산 월에 왕 앞에 포도즙이 있었고 내가 그 포도즙을 들어 왕에게 드리니라. 이제 내가 전에는 왕 앞에서 슬퍼한 적이 없었으므로 왕이 내게 이르되, 네가 병들지 아니하였거늘 어찌하여 네 얼굴에 슬픈 기색이 있느냐? 이것은 분명히 마음의 슬픔이로다,​ 하므로 그때에 내가 매우 심히 두려워하며 왕에게 아뢰되, 왕께서는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그 도시 곧 내 조상들의 돌무덤이 있는 곳이 황폐하고 그 도시의 성문들이 불타 없어졌사오니 어찌 내 얼굴에 슬픈 기색이 없사오리이까?​ 하매 이에 왕이 내게 이르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기에 내가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고 왕에게 아뢰되, 왕께서 만일 기뻐하시고 왕의 종이 왕의 눈앞에서 은총을 입었사오면 왕께서 나를 유다로, 내 조상들의 돌무덤이 있는 도시로 보내사 내가 그 도시를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
 +느헤미야는 왕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그의 기도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그의 소원을 아뢴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기도의 영 안에 머물며 언제든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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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기도는 여러분의 마음의 간절한 소원과 원함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므로 기도의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잘못된 형태의 기도를 하는 것을 봅니다.
 +
 +잘못된 기도의 첫 번째 형태는 위선적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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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6:5~6 또 너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과 같이 되지 말라.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거리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보상을 받았느니라. 오직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으로 들어가 네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그리하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네게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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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자랑하기 위해 혹은 보이기 위해 새벽기도를 하십니까?​ 아니면 1~2시간 기도하십니까?​ 여러분의 기도가 위선적이지 않도록 하십시오. 만일 그러하다면 이미 보상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하나님과 여러분사이의 은밀한 것이 되게 하십시오. 기도제목이 은밀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기도할 때 진지하게 마음의 소원과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아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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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로 잘못된 기도의 형태는 중언부언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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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6:7~8 오직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교도들과 같이 헛된 말을 되풀이하지 말라. 그들은 자기들이 말을 많이 하여야 아버지께서 들으실 줄로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교도들과 같이 되지 말라. 너희가 너희 아버지께 구하기 전에 그분께서 너희에게 필요한 것들을 아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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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아버지에게 무언가를 사달라고 계속 반복해서 말하는 아이를 본 적이 있습니까?​ 조금 지나면 아버지는 아이에게 역정을 내고 말 것입니다. 의미없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하는 말은 진정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우리 주님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한 두 번 주님께 기도하더라도 여러분은 진지하게 주님께 그것을 아뢰셨습니까?​ 또한 계속해서 그것을 마음에 품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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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본문말씀에 항상 기도하는 것과 낙심은 대조적으로 등장합니다. 낙심은 무언가를 얻으려는 생각이나 노력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즉각적으로 주시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오히려 가장 좋은 때를 구하고 기다리기를 원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는 하늘의 축복의 문이 열리기 전 그만 포기하고 마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어떤 기도제목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렸다면 그것은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아뢸 마음이 없는 것은 바로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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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심은 지쳐버리는 것입니다. 영어로 동일한 faint가 사용됩니다. 종종 우리는 이런 말을 합니다. “기다리는데 지쳤어” 이것이 바로 낙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힘입어 낙심하지 아니하고 인내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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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 8:25 그러나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인내로 그것을 기다리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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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합당한 것인지 아닌지를 알게 하십니다. 예를 들면 사도바울은 자기 몸에 있는 가시 즉 육신의 연약함을 두고 하나님께 세 차례에 걸쳐 주님께 이 문제를 간절히 아뢰었습니다. 주님은 “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나의 강한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해지느니라.” 라고 응답하셨고 바울은 더 이상 이 문제를 두고 하나님께 아뢰는 일을 그쳤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의 기도의 응답은 즉각적으로 오지 않습니다. 특히 구원받아야 할 혼들을 위한 기도는 더욱 그러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사람들이 항상 기도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매일 매달 매년마다 기도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예전에 죠지 뮬러의 기도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죠지 뮬러는 자기 친구의 구원을 위해 무려 52년간 기도했고 마지막 친구는 그의 죽음의 소식을 접한 뒤에 얼마 후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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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낙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께 종종 기도를 아뢸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비유에서도 5절에서 “그녀가 항상 와서”라고 하십니다. 마음의 소원이 간절하면 할수록 원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면 할수록 우리는 주님의 왕좌앞으로 그분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러 더욱 더 종종 나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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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두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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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서 사람들이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가르치면서 비유로 두 인물을 보이십니다. 이 두 인물은 재판관과 과부입니다. 주님은 이 비유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우리에게 “사람들이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이유를 보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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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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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과부입니다. 과부는 남편을 사별한 사람입니다. 여자 혼자의 몸으로 가족을 돌보아야 하는 책임에 여자라는 이유로 법의 보호에서 제외당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율법은 과부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을 언급하고 있음에도(출 22:22~24, 신 14:28~29) 오히려 보호의 대상에서 제외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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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1:16~17 너희를 씻고 너희를 깨끗하게 하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위를 버리고 악을 행하기를 그치며 선을 행하기를 배우고 공의를 추구하며 학대받는 자들을 구제하고 아버지 없는 자들을 위해 재판하며 과부를 위해 변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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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과부를 위해 변호하라”라고 말씀하셨으나 당시 재판관들은 많은 일들을 치리하므로 재판관의 눈에 띄여 그들의 문제를 변호하거나 혹은 해결하기 위해 뇌물을 주곤 했습니다. 과부들은 당연히 구제의 대상이나 여전히 뇌물을 주어야 했고 혹은 가난한 과부의 경우는 자기들의 사정을 재판관에게 아뢸 수 있는 여건이 전혀 주어지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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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1:23 네 통치자들은 반역하는 자들이요,​ 도둑들의 무리이며 모두가 뇌물을 사랑하고 보상을 따라가며 아버지 없는 자들을 위해 재판하지 아니하고 과부의 사정이 자기들에게 이르지 못하게 하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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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23:14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과부들의 집을 삼키고 겉치레로 길게 기도하나니 그런즉 너희가 더 큰 정죄를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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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유에 등장하는 과부는 가난한 과부였을 것입니다. 자신의 사정을 재판관이 무시하고 한동안 들어주지 않았다는 것은 과부가 그에게 어떤 뇌물도 줄 형편이 되지 못하였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과부는 그녀의 마음의 소원을 재판관에게 아뢰는 일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어떤 미사여구를 사용하여 자신의 소원을 아뢰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내 대적에게 내 원수를 갚아 주소서.”가 전부였습니다. 그녀는 여러번 재판관의 앞에 나가려고 했으나 제지당하고 쫓겨났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그의 집에까지 가서 그의 귀에 들리도록 간구의 소리를 높였을 것입니다. 그가 문에서 나올 때면 그의 발을 붙잡고 “내 대적에게 내 원수를 갚아 주소서”라고 간청하기를 마다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과부는 불의한 재판관의 마음이 움직여서 그녀의 원수를 갚아주기까지 낙심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간청했다는 사실입니다. 율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그녀에게 있어 유일한 희망은 이 재판관 뿐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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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이 재판관은 계속되는 과부의 간청을 거절할 만큼 자신을 악하게 보일 수 없음을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람들을 존중하지도 않으나 명색이 재판관이라 자기에게 뇌물을 줄 형편도 되지 못하는 과부의 사정을 들어주기로 결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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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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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8:6~7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관이 말한 것을 들으라. 비록 하나님께서 밤낮으로 자기에게 부르짖는 자들 곧 자기의 선택 받은 자들을 향하여 오랫동안 참으실지라도 그들의 원수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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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비유의 인물들이 하나님과 그분의 선택받은 자들과 연관됨을 말씀하십니다. 사실 비유의 인물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선택받은 자들과 대조적인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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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과부를 보십시오. 주님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들을 과부로 비유하신 것이 아니라 그 정반대입니다. 정반대의 과부가 그러하다면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들은 어찌해야 하겠느냐?​라는 뉘앙스로 지금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먼저 과부와 재판관과의 관계를 보십시오. 재판관은 엄하고 그녀를 모르며 사랑하지도 돌보지도 않습니다. 또한 과부는 법정에서 재판관에게 나아갈 권리도 얻지 못하고 있으나 하나님의 자녀는 우리를 사랑하고 돌보시며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분에게 나아갑니다. 또한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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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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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엡 3:12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그분을 믿는 믿음을 통해 담대함을 가지고 확신 있게 나아감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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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과부는 자기를 돕고 변호해줄 자가 전혀 없으나 우리에게는 변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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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일 2:1 나의 어린 자녀들아,​ 내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죄를 짓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지어도 우리에게 아버지와 함께 계신 변호자가 계시니 곧 의로우신 분 예수 그리스도시라.
 +
 +과부는 재판관에게 “내 대적에게 내 원수를 갚아 주소서.” 라는 말을 빼곤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지만 우리 안에는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신음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
 +롬 8:26~27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말로 할 수 없는 신음으로 친히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분께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위해 중보하시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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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부는 재판관이 자기의 말을 들어줄 지에 대한 약속이 없지만 여러분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고 거기에는 우리를 위한 모든 약속들이 담겨있습니다.
 +
 +과부는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서 재판관에게서 자기의 원하는 것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긍휼과 사랑과 부가 함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과부는 낙심하지 아니하고 항상 간구하였는데 하나님의 사람은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
 +====B. 재판관====
 +
 +또한 우리가 간구하는 대상을 보십시오. 과부는 자기를 사랑하지도 알려하지도 않으며 관심도 없고 오히려 자기를 내쫓은 재판관에게 간구하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며 돌보시고 아끼시며 우리를 구원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
 +마 7:11 그런즉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들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구하는 자들에게 좋은 것들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
 +이 재판관은 자기의 유익과 편의를 위해 과부의 간청을 미루었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과 선을 위해 그러하신다는 점입니다.
 +
 +눅 18:7~8 비록 하나님께서 밤낮으로 자기에게 부르짖는 자들 곧 자기의 선택 받은 자들을 향하여 오랫동안 참으실지라도 그들의 원수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분께서 속히 그들의 원수를 갚아 주시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땅에서 믿음을 찾아보겠느냐?​
 +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들은 과부보다 더 좋은 환경과 더 좋은 보장과 더 좋은 대상에게 간구하면서 불의한 재판관에게 간구하던 과부보다 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
 +=====III. 결론=====
 +
 +그럼에도 주님은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땅에서 믿음을 찾아보겠느냐?​”라는 말씀을 기도와 연관되어 하셨습니다. 사실 이 말씀의 배경은 누가복음 17장에 있습니다. 이제 세상은 노아의 날들과 같이 또한 룻의 날들과 같이 될 것입니다.(눅 17:26~32)
 +
 +우리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는 것은 믿음과 같습니다. 노아의 날들과 룻의 날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노아의 날들에는 오직 여덟 사람만 구원받았습니다. 룻의 피난의 때에는 오직 네 명뿐이었습니다. 그것도 하나를 도중에 잃어버렸습니다. 이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이 때에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을”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요? 여러분은 주님 앞에서 간절함을 가지고 기도하십니까?​ 또한 그 간절함을 버리지 않고 계십니까?​ 혹은 구원받아야할 대상을 두고 기도하면서 포기하지는 않으셨습니까?​ 주님은 “사람들이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눅18.1-8.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