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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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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9.1-10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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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4월 15일 주일 오전설교==
  
 +======사람의 아들은 잃어버린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느니라-삭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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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누가복음 19장 1-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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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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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는 예수님께 한 치리자가 찾아왔다. 그런데 이 치리자는 젊은 청년이었다. 이 청년은 남들 보기에 성공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큰 부자였고 또한 지방을 다스리는 관원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도덕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남부럴 것이 없는 그였지만 그에게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그 고민은 “성경에서 보여주는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을 해결하지 못했음을 발견한 것이다. 그에게 많은 재산도 있고 또한 도덕적인 삶도 살고 있고 높은 지위와 명예도 있지만 그것이 그에게 인생에 있어 진정한 필요를 주지 않음을 발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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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그가 보기에 예수님은 선한 삶을 보여주고 계시고 그의 가르침은 보통 인간의 가르침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생각할 때에 그분은 그에게 “생명으로 들어가기 위해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분”으로 여겨졌다. 그분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강력한 증거들이 있었다. 병자들이 고침을 받고 죽은 자들을 살리셨는 소식은 그분에 대한 강한 확신을 주었다. 그래서 그는 주님께 찾아와 이렇게 물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으리이까?​”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인가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삶의 경험을 통해 보았을 때 그것은 젊음도 열정도 지식도 패기도 사랑도 도덕적인 삶도 명예도 재산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주 예수님에게 어릴 때부터 십계명에 대해 잘 지켜왔음을 이야기했을 때 주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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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8:22 이제 예수님께서 이것들을 들으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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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그에게 있어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 준다는 것은 큰 손실로 생각되었다. ​
 +
 +눅 18:23-27 그가 큰 부자였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니라. 24 예수님께서 그가 심히 근심하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려우리라! 25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6 그것을 들은 자들이 이르되, 그러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으리요?​ 하매 27 그분께서 이르시되,​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것들이 하나님께는 가능하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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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와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면 과연 구원받을 수 있는 부자가 있을까 생각했지만 주님은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것들이 하나님께는 가능하”다고 말씀하셨다. 오늘 우리가 보게되는 삭개오의 이야기는 주님의 말씀대로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는 가능한 부자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우리의 구원과 관련하여 중요한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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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주님을 찾는 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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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9:1-2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거기를 지나가시더라. 2 보라, 거기에 삭개오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리들 중의 우두머리요 또 부자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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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절에서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거기를 지나가시더라.”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중에 주님은 여리고를 들르셨다. 주님께서 왜 여리고로 가셔야 했는가? 우리는 요한복음 4장에서 주님께서 “유대를 떠나 다시 갈릴리로 가실 때에 반드시 사마리아를 통과해야 하”셔야만 했던 부분에서 동일한 이유를 찾는다. 주님은 구원이 필요한 죄인들이 어디 계시는지를 아시고 그들를 부르시기 위해 그곳으로 나아가신 것이다. 주님은 곧장 예루살렘으로 나아갈 수 있었지만 삭개오를 부르시기 위해 여리고를 지나가신 것이다.
 +
 +삭개오는 누구인가?​ “보라, 거기에 삭개오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리들 중의 우두머리요 또 부자더라.” 삭개오는 세리였다. 그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세무서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세리들 중의 우두머리였다. 세무서장정도 되는 지위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로마는 유대인들에게 강제적으로 세금을 내도록 했다. 그래서 세금을 거두고자 세리를 두었다. 세리는 로마 정부에 바칠 세금을 유대인들에게서 거둔 세금의 일부를 지불했는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유대인들에게서 정부에서 요구하는 세금보다 더 거두곤 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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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리들이 침례인 요한에게 찾아와 무엇을 해야할 지에 대해 물었을 때 침례인 요한은 “너희에게 정해 준 것 이상으로 거두지 말라.”고 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금 거두는 자들의 횡포는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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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인들은 자기 나라를 지배하는 이방인 민족인 로마에 대한 적개심을 갖고 있었는데 세리는 그들의 수하라 생각하여 그들을 변절자 취급했다. 그러나 세리로서 삭개오는 좋은 지위와 명예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큰 부자였다. 삭개오가 살고 있던 여리고는 무역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남쪽으로 이집트와 페르시아와 시리아지방으로 잇는 무역로근처에 있었고 여리고의 종려나무에서 나는 향유는 유명한 수출상품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여리고는 상업이 발달했고 세리였던 삭개오는 쉽게 부자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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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리라는 지위로 인해 그는 사람들에게서 두려움의 대상이잔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다만 그가 속한 유대인들은 세리인 그를 죄인취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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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삭개오는 세상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굉장히 부자고 또한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었지만 그는 무언가가 부족함을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있어 자신을 만족시킬 무언가를 찾는다. 어떤 사람들은 돈을 구하고 또는 사랑을 구하고 또는 지위를 구하고 또는 명예를 구하고 술에 만족을 얻으려 하며 마약이나 무언가로 자신을 채우려 하나 혼은 이러한 것으로 잠깐 만족할 뿐 채워지지 않는다. 삭개오는 이미 재산으로 말하자면 큰 부자였고 세리로서 지위와 명예를 갖고 있었지만 그러한 것이 자신을 만족할만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예수님이 그곳으로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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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9:3-4 그가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보고자 하되 키가 작으므로 밀려드는 무리로 인해 볼 수 없어서 4 앞으로 달려가 그분을 보려고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그분께서 그 길을 지나가시게 되었기 때문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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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은 삭개오가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보기를 그가 구하였”다고 말한다. 삭개오는 단지 예수님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과연 어떤 분인지를 알고 싶어했다. 우리 성경은 그냥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보고자 하되”라고 되어 있어 잘 표현되지 않는다. 영어로는 “sought(seek) to see Jesus who he was”라고 되어 있어 그가 그것을 구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주를 만날 만한 때에 그분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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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55:6-7 너희는 주를 만날 만한 때에 그분을 찾으라. 그분께서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부르라. 7 사악한 자는 자기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자기 생각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분께서 풍성하게 용서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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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관원이었던 청년이 “내가 무엇을 하려면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수 있겠는지”에 대해 물었던 것과 다른 마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삭개오는 무엇이 아니라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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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삭개오는 살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종종 삶의 곤고한 일들을 당하게 되면 누군가를 의지하고 싶고 또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그의 삶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삭개오의 심정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 일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어쩌면 단순한 호기심이 그로하여금 주님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이끌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주님은 이미 삭개오를 알고 계셨고 그를 만나기 위해 여리고로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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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필요가 있다면 그것은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신의 혼을 잃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삭개오는 주님께 꼭 나아가고 그분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아주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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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그가 주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3절은 삭개오가 키가 작은 자라고 말할 뿐 아니라 밀려드는 무리로 인해 그는 주님께 나아가지 못했다. 그가 주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큰 장애를 극복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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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장애는 많은 무리로 인해 그가 나아갈 수 없었다고 말한다. 지금 예수님을 만나려고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이 유대인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삭개오는 같은 유대인으로써 그들에게서 변절자 취급을 받는 세리였다. 그가 만일 무리를 자기 힘으로 뚫고 가려한다면 도중에 그는 어떤 봉변을 당해야 할지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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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또한 누군가가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그 사이에 있는 무리라는 장애를 극복해야 함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주님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주님을 보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다. 믿지 않는 친구들이 그에게 계속 죄의 유혹 가운데 혹은 쾌락 가운데 살도록 부추키며 세상적인 삶과 차가운 마음과 악한 행위를 하는 소위 기독교인들로 인해 사람들은 주님을 알고자 하는 마음을 접어버리곤 한다. 그러나 삭개오는 그와 주님 사이에 무리가 없는 곳으로 갔다. 그는 뽕나무로 올라가 무리가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 곳으로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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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장애는 그가 키가 작은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신체적 장애였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주님을 만나고 구원받는데 장애가 되는 우리 육신의 장애가 있다. “모든 사람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우리 모두는 죄로 기울어져있는 죄의 본성을 갖고 태어났다. 아담의 범죄 이래로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죄의 쾌락으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며 또한 진리를 보지 못하도록 눈멀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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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4절을 통해 삭개오는 이 모든 장애에 그분을 알고자 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그분을 멀리서나마 바라볼 수 있도록 주님이 지나가실 길가에 있는 뽕나무에 올라갔다. 키가 작은 삭개오가 나무에 올라가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사람들에게 보여졌을 때에 부끄러움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부끄러움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희생을 치러서라도 주님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더욱 간절히 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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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주님께 나아와 믿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와 같은 그들의 시선을 부끄러워 하는 마음을 이겨내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교만한 마음을 내려놓는 것과도 같다. 그것은 또한 방해하는 친구들과 잠깐 떨어져 있기를 시도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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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죄인을 찾으시는 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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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인인 삭개오가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것 뿐 아니라 주 예수님도 죄인인 삭개오를 찾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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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9:5 예수님께서 그곳에 이르사 위를 보시고 그를 보며 그에게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오늘 내가 반드시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노라,​ 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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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는 삭개오가 그 위에 있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 거기에 이르셨을 때 주님은 위를 보시고 삭개오를 부르셨다. 우리는 주님을 믿게 될 때 우리가 그분을 열심히 찾아 그분을 믿게 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주님이 우리를 찾아 나서시어 우리를 부른다는 점이다. 10절은 우리에게 이점을 명확히 한다. “사람의 아들은 잃어버린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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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은 우리가 주님을 찾아 나서지 아니하였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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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 3:10-12 이것은 기록된바,​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으며 12 그들이 다 길에서 벗어나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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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에 주님은 자신을 찾지 아니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시고 알고자 하는 마음을 주시며 또한 주님을 발견하도록 인도하시고 사람을 보내시어 복음을 듣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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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 10:20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이르기를,​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들이 나를 발견하였나니 내게 묻지 아니하던 자들에게 내가 나타났노라,​ 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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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또한 죄인들에게 관심을 갖고 계신다.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뽕나무에 이르렀을 때 거기에 삭개오가 있음을 이미 아셨다. 또한 그에게 긍휼과 사랑으로써 그에게 은혜를 주시고자 그를 부르셨다. 주님은 이미 삭개오의 마음을 알고 계셨다. 주님은 사람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를 아신다.
 +
 +요 2:24-25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그들에게 맡기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아셨기 때문이요,​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을 필요가 없으셨으니 이는 그분께서 사람 속에 있던 것을 아셨기 때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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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삭개오를 이름으로 부르셨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그것이 주님의 명령이었다. 주님은 삭개오를 만난 적이 없으셨으나 그의 이름으로 부르셨다. 주님은 우리를 이름으로 부르시고 인도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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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10:3 문지기는 그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들을 이름으로 불러 그것들을 밖으로 인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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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서 삭개오를 부른 부르심은 “긴급한 부르심”이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주님은 그에게 서두르라고 했다. 거기서 내려와서 사람들에게 부끄러움 당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고 사람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지금 당장 내려와서 주님을 만나라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주를 만날만한 때에 주께 나아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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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후 6:2 (그분께서 이르시되,​ 받아 주는 때에 내가 네 말을 들었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구조하였노라,​ 하시나니,​ 보라, 지금이 받아 주시는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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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님은 그에게 “내가 반드시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노라.”라고 하셨다. 주님의 부르심은 실수가 없으시다. 삭개오는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고싶어 했고 주님은 그와 반드시 함께 하여 자신을 계시하시겠다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정확히 아시며 또한 우리 마음을 따라 우리에게 우리를 구원하는 은혜와 능력을 보이길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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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V. 놀라운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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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9:6-10 그가 속히 내려와 기쁘게 그분을 받아들이거늘 7 그들이 그것을 보고 모두 수군거리며 이르되, 그가 죄인인 사람의 손님이 되려고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이르되, 주여, 보소서, 내가 내 재물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내가 거짓 고소하여 어떤 사람에게서 무엇이든지 빼앗았으면 그에게 네 배로 갚겠나이다,​ 하매 9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도 아브라함의 자손인즉 이 날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도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어버린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느니라,​ 하시니라.
 +
 +삭개오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을까?​ 분명 그는 구원을 받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그것을 알 수있는가?​ 그것은 그의 변화를 통해 알수 있다.
 +
 +6절에서 삭개오는 주님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것은 그가 구원받았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들을 보여준다.
 +
 +1. 순종 - 삭개오는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속히 내려왔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구주로 받아들인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그의 삶이 변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만일 누군가가 크리스천이라고 말하나 그의 삶은 전혀 성경의 기록된 것대로 살려하지 않는 자라면 우리는 그 사람의 구원에 대해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
 +2. 열린 마음 - 삭개오는 기쁘게 그분을 받아들였다. 삭개오는 그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주님의 음성에 올바로 반응하여 마음의 문을 열어 그분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제 그는 주 예수님을 자신의 주로 받아들인 것이다.
 +
 +계 3:20 보라, 내가 문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을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
 +
 +3. 기쁨 - 삭개오는 주 예수님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으로 인해 기뻐했다. 기쁨은 참된 구원을 받았을 때 우리의 마음에서 생성된다. 시편 기자는 “구원의 기쁨”(시 51편)이라 말한다. 이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 다르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그것이 영원하지 않으므로 그 기쁨도 영원하지 않다. 그러나 만일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기쁨의 근원이시라면 그것은 영원히 여러분 안에 거할 것이다.
 +
 +7-8절은 삭개오가 자신의 죄들에서 회개하였음을 보여준다. 그의 삶은 죄의 삶에서 이제 주님을 섬기는 삶으로 변화되었음을 보여준다.
 +
 +눅 19:7 그들이 그것을 보고 모두 수군거리며 이르되, 그가 죄인인 사람의 손님이 되려고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이르되, 주여, 보소서, 내가 내 재물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내가 거짓 고소하여 어떤 사람에게서 무엇이든지 빼앗았으면 그에게 네 배로 갚겠나이다,​ 하매 ​
 +
 +1. 자백 - 회개의 합당한 열매는 자신의 죄들을 시인하는데서 시작한다. 삭개오는 자신이 지금껏 산 삶에 대해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주님께 시인했다. 주님, 지금까지는 내가 돈을 버는데 인생을 소비했다면 이제는 그것을 주님을 위해 사용하는데 쓰겠습니다. 만일 내가 누구의 것을 빼앗았으면 그것을 뉘우치고 그것을 네배로 돌려주겠습니다.
 +
 +2. 변화된 삶 - 삭개오의 즐거움의 근원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전에는 돈이었다면 이제 주님을 섬기는 것이 그의 즐거움의 근원이 되고 있다. 그는 이제 주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다.
 +
 +고후 5:15-17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16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우리가 아무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니 참으로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분을 더 이상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
 +누군가 구원받았음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고백으로 구원받았음을 알 수 있을까? 누군가 구원받았다면 그 사람의 삶을 통해 이제 그의 믿음이 드러날 것이다.
 +
 +약 2:18 참으로 어떤 사람은 이르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위가 있으니 네 행위가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내 행위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느니라.
 +
 +누군가 진정으로 거듭났다면 그의 삶은 변화될 것이다. 갑작스런 변화는 보기 힘들어도 그의 가치관은 조금씩 변화된다. 그것은 그 안에 성령께서 거하시고 역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살아있는 믿음은 행위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여기 삭개오 역시 그의 가치관이 변했다. 그의 즐거움은 이제 더 이상 돈을 모으는데 있지 않다. 그는 주님을 섬기는데 즐거움을 가지며 또 그분과 교제하는데 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이것은 젊은 관원이 보인 태도와 완전히 다르다. 젊은 관원은 주님이 “네가 가진 것들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 다음에 나를 따르라.”라고 했을 때 심한 근심으로 떠나갔다. 그러나 삭개오는 주님을 알고 싶어했으며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기뻐했다. 그의 마음이 변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이제 자신의 삶에 만족을 주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안 것이다. 어느 누군가 말하기를 “삶의 진정한 행복은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섬기는데 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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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절과 10절은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큰 구원인지를 보여준다.
 +
 +9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도 아브라함의 자손인즉 이 날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도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어버린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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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절은 삭개오가 주님에 대해 믿음을 소유했음을 보여준다. 주님은 그에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그가 아브라함이 주님에 대해 믿음을 소유했던 것처럼 그를 따라 믿게 된 자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
 +롬 4:21-24 그분께서 약속하신 것을 그분께서 또한 능히 이행하실 줄로 온전히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분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 인정하셨느니라. 23 그것을 그에게 의로 인정하셨다고 기록된 것은 이제 그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24 우리가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분을 믿을진대 그것을 의로 인정받을 우리도 위한 것이니라.
 +
 +주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이제 주 예수님을 믿게된 자들에게 그 약속을 실행하실 것이다. ​
 +
 +갈 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씨요 약속에 따른 상속자니라.
 +
 +우리는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로써 하나님께서 이제 앞으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것들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생각해보라.
 +
 +10절은 주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우리가 받은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잃어버린 바 되었다가 이제 구원을 얻은 것이다.” ​
 +
 +눅 15:7-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로운 아흔아홉 사람보다 회개하는 한 죄인으로 인하여 더 기쁨이 있으리라. 8 또 어떤 여자에게 드라크마 열 개가 있는데 그녀가 한 개를 잃어버리면 등잔불을 켜고 집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9 또 그녀가 그것을 찾은즉 자기 친구와 이웃들을 함께 불러 이르되, 나와 함께 기뻐하자. 내가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한 죄인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기쁨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
 +=====V.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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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 거기에는 가난한 자나 부한 자나 남자나 여자나 어린아이나 연로한 자나 구분이 없다. 삭개오의 예에서처럼 주님은 인간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두를 구원하실 수 있다. 다만 주님은 우리의 의지를 거부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그분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나아가고자 한다면 주님은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신다.
눅19.1-10.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