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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2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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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24.1-12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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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4월 20일 주일오전설교(부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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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광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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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누가복음 24장 1-12절
 +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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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부활절이다. 사실 우리가 이 날을 절기로 지키지 않는다. 그럼에도 크리스천에게는 매우 의미가 있는 날임에 틀림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유월절을 영원한 절기로 명령하셨으며 주님은 유월절의 중간에 즉 무교절의 중간에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사건으로 인하여 온 나라가 슬픔에 잠기었다. 진행되는 모든 것들을 볼 때마다 과연 감추어진 사실들이 왜 이리 많은지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언론 대중 매체는 대다수가 사실을 보도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만 볼 뿐이다. 그러나 이 시간은 여러분이 그 모든 혼란스러운 것들로부터 시선을 돌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집중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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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셨던 그 날 아침을 말씀을 통해 회상하고 거기서 위로와 힘과 소망을 갖고자 한다. 성경이 증언하는 바 “예수님 안에서 잠자는 자들”로 인하여 우리가 아무 소망 없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슬퍼하지 아니하는 그 이유를 보고자 한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일어나지 아니하셨다면 그것은 죽은 자들의 부활을 부정하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헛되고 우리가 여전히 죄들 가운데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자들도 멸망한 자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으며 우리에게 영광의 아침을 선사하셨다. 오늘 그 아침으로 돌아가서 말씀의 유익을 얻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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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회고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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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24:1 이제 주의 첫날 매우 이른 아침에 그들이 자기들이 이미 예비해 둔 향품을 가지고 다른 어떤 자들과 함께 돌무덤에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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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된 첫 날 매우 이른 시각에 우리는 여인들이 무덤을 향하고 있음을 말씀을 통해 본다. 그들의 마음은 매우 슬픔에 잠겨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믿고 따르던 주님을 그들이 예상하지 않던 때에 잃어버린 슬픔은 말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세월호 사건으로 갑작스럽게 자녀들을 잃은 부모의 슬픔은 말로 할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친구들을 잃어버린 학생들 역시 정신적으로 공황상태가 되었을 것임에는 분명하다. 이들처럼 주님을 따르던 여인들의 슬픔은 말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이들은 그들의 주님으로 믿고 섬기는 대상이었다. 그것은 인간적 친밀함을 넘어 메시야로써의 신뢰와 소망을 상실한 것이다. 이들은 단순히 예수님을 동경의 대상으로 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여인들 중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마귀들로부터 구원함을 받았다. 주님은 이 여인들의 죄들을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는 분이셨을 뿐 아니라 그들의 모든 의지처요 신뢰하는 반석이셨다. 그런데 그들이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할 여유도 없이 그들은 사랑하는 주님을 한 순간에 잃어버린 것이다. 이들이 얼마나 주님을 사랑했었는지는 이들의 행동으로 드러나 있다. 그들은 비록 죽은 몸일지라도 자신들이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던 그분의 몸에 바르려고 향품을 준비해 갔다(막 16:1). 그 때는 이미 주님께서 목요일에 죽으신 지 나흘째가 되는 때였다. 요한복음 19장을 보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몸을 빌라도에게 청한 후 깨끗한 아마포를 준비한 후 니고데모가 몰약과 알로에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와서 유대인들이 장사지내는 방식대로 그 향품들과 함께 그분의 몸을 아마포로 감쌌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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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19:39-40 또 처음에 예수님께 밤에 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알로에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오니라. 40 그때에 그들이 예수님의 몸을 가져다가 유대인들이 장사지내는 방식대로 그 향품들과 함께 아마포에 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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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인들의 방식이란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당일에 그 시체를 땅에 묻었다고 한다. 흙에서 온 사람이 곧 흙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예의라 여긴 것이다. 그러므로 시체에 향품이나 무언가를 처리한다는 것은 이방인들이 하는 것으로 여기고 하지 않았다. 다만 왕들이 죽었을 때는 향품을 관 안에 같이 두었다고 한다. 따라서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왕의 죽음으로 대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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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여인들은 왜 주님께서 돌아가신지 나흘이 되는 시점에 와서 주님의 몸에 바르려 하였을까?​ 어쩌면 그들은 그 일이라도 자기들의 사랑을 보이고자 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사랑한 주님을 조금이라도 더 곁에 두고자 하는 마음이었을지 모르겠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여인들은 주님께서 뉘이셨던 무덤을 향해 가고 있었고 그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죽임당하신 후에 자기들에게 닥칠지 모르는 위협과 위험으로부터 피하고자 걸어 잠근 집에 모여 있었다(요 20:19). 여인들은 슬픔에 잠겨 있는 동안 제자들은 두려움 가운데 있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왜 예수님의 제자들이 두려움 가운데 있게 되었나? 그들은 사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기적들과 이적들을 통해 그리고 그분의 입에서 나온 권위있는 말씀들로 인해 그들은 흔들리지 않았으며 주님께서 앞으로 자신의 왕국을 세우실 것이며 그들을 지배하고 압제하는 로마제국의 굴레로부터 해방을 가져오실 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물론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의 길 앞에 십자가와 고난이 있음을 여러 차례 알리셨음에도 그들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주셨던 말씀을 깨닫지도 못하였으며 두려움으로 묻는 것도 원치 아니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때에 잡히셨으며 끌려가 처형되신 후 돌아가셨다! 얼마나 그들의 마음이 허망함과 원망으로 그리고 두려움으로 가득했을지 생각해보라. 그들은 지금까지 주님께서 보여주신 은혜와 사랑과 권능과 말씀으로 인하여 그들의 삶이 변했으며 모든 것들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르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들 앞에서 그들이 의지하고 신뢰하던 대상을 일시에 잃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마치 인생의 가장 소중하다고 여긴 가치를 상실한 것과 같을 것이다. 주님의 제자들이 얼마나 큰 슬픔 가운데 그리고 주님께서 잡히셨던 것처럼 자기들도 종교지도자들로부터 잡히게 되어 죽을 것이라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을 사로잡았을지 생각해보라. 마치 바울이 “만일 그리스도께서 일으켜지지 아니하셨으면 너희 믿음이 헛되다”고 했던 것처럼 그들이 얼마나 믿음에 있어 허망함에 빠졌을 지를 생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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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이 뉘이셨던 무덤으로 왔던 여인들은 비탄과 슬픔에 잠겨 지금까지 주님과 함께했던 모든 추억들을 이제 그 무덤에 두고 오고자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주님을 발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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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계시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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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자신을 찾고 사랑하는 자들이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는 것을 원치 아니하신다. 주님께서 우리를 염려하시고 돌보신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 하나님께서는 슬픔에 잠긴 여인들을 위로하고 그들로 하여금 소망과 믿음을 회복하도록 한 천사를 보내어 자신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 먼저 여인들이 무덤에 갔을 때 본 것은 그들을 적잖이 당황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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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24:2 돌이 돌무덤에서부터 굴려진 것을 발견하고 3 안으로 들어갔으나 [주] 예수님의 몸을 찾지 못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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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의 생각 속에 여러 가지 것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누군가 예수님의 몸을 훔쳐갔을까?​ 그것이 그들의 주된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 여인들은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것이라는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당황과 염려로 사로잡힌 여인들이 보게 된 것은 두 천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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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24:4-7 이것으로 인하여 그들이 매우 당황해할 때에, 보라, 빛나는 옷을 입은 두 남자가 그들 곁에 서 있으므로 5 그들이 두려워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 저들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찾느냐? 6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아니하고 일어나셨느니라. 그분께서 아직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기억하라. 7 이르시기를,​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죄인들의 손에 넘어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셋째 날 다시 일어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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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항상 사람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들을 알리실 때 천사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다. 예를 든다면 주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하기 앞서 두 천사를 보내시어 거기 살고 있던 롯에게 그곳이 멸망할 것이라는 것을 증거하게 하셨다. 신약에 와서 주님은 한 천사를 침례자 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에게 보내시어 요한에 대한 것을 증거하게 하셨다. 그 뒤 가브리엘 천사는 처녀 마리아에게 찾아가서 예수님을 잉태하게 될 것을 전하였다. 이처럼 주님은 중요한 것을 증거하실 때 천사들을 보내셔서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 여기서도 두 천사가 보냄을 받아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말씀을 전하고 있다. 먼저 이 천사들이 한 것은 예수님의 돌무덤 의 출입구를 막던 거대한 돌을 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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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28:2 보라, 큰 지진이 났더라. 이는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는 가서 그 입구에서 돌을 뒤로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기 때문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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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보라. 왜 천사는 그 돌무덤의 입구를 막는 그 거대한 돌을 뒤로 굴려놓았을까?​ 예수님께서 나오시도록?​ 예수님은 이미 그곳에 계시지 않았다. 천사들이 그 돌을 뒤로 굴려놓은 것은 여인들과 제자들이 그곳을 보고 예수님께서 거기 계시지 아니한 것을 믿게 하려 함에 있었다. 당황함과 두려움에 있을 여인들에 대해 천사들은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너희가 찾는 줄 내가 아노라. 6 그분은 친히 말씀하신 대로 일어나셨으므로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와서 [주]께서 누우셨던 곳을 보라.”(마 28:​5-6)라고 말하였다. “주께서 누우셨던 곳을 보라.” 그것은 여인들에게 큰 도전과 믿음과 소망에 대한 촉구였다. 그들이 그것을 제자들에게 전했을 때 대부분의 제자들은 근거 없는 이야기로 보고 믿지 아니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그 돌무덤으로 달려가 그 안에 들어가 보았다. 그들이 무엇을 보았는지 요한복음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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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20:3-9 그러므로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아가 돌무덤으로 가니라. 4 이처럼 그들 둘이 같이 달려갔는데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를 앞질러 달려가서 먼저 돌무덤에 이르렀더라. 5 그가 몸을 구부려 안을 들여다보고 아마포가 놓인 것을 보았으나 아직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라. 6 그 뒤 시몬 베드로가 그를 따라와서 돌무덤에 들어가 보매 아마포가 놓여 있고 7 또 그분의 머리 주변에 있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함께 개인 채 한 곳에 따로 놓여 있더라. 8 그제야 돌무덤에 먼저 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서 보고 믿었으니 9 이는 그들이, 그가 반드시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일어나야 하리라, 하신 성경 기록을 아직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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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와 요한이 본 것은 예수님을 감쌌던 아마포가 그대로 있음을 보았고 또 예수님의 얼굴을 감쌌던 수건은 따로 잘 개인 채 놓여있는 것을 보았다. 만일 누군가가 예수님의 몸을 훔쳐갔다면 분명 아마포와 같이 가져갔을 것이고 역시 수건이 설령 떨어져 나가더라도 잘 개여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었을 것이다. 그 모든 것들로 인하여 누군가가 훔쳐간 것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며 또 예수님의 몸이 없어진 것도 확실해졌다. 요 20:8에서 “다른 제자”란 요한을 의미한다. “보고 믿었으니”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다기보다 여자들의 말을 믿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들은 그 전에 여자들이 예수님의 몸이 없어졌고 그들이 천사들을 만났으며 천사들이 전해준 말을 전하였을 때 그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아니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이 사실일거라 확신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주님의 부활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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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뿐만 아니라 주님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함으로 자책에 빠졌을 베드로를 친히 위로하시고자 하셨다. 막 16:7을 보면 천사들은 여자들에게 제자들에게 가서 전하라고 하였을 때 “베드로”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였다. 눅 24:34을 보면 후에 주님은 개인적으로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그와 함께 하셨다. 주님은 직접적으로 그를 위로하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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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 16:7 그러나 너희 길로 가서 그분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그분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그분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그분을 볼 것이라고 고하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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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직접 나타나시고 그녀의 믿음을 세우셨다.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에 와 주님께서 거기 계시지 아니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갔을 때 여전히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에 있었다. 그녀는 부활하신 주님을 보기 전에는 마치 천사가 주님이 부활하셨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믿지 아니할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다시 나타난 천사들이 “어찌하여 슬피 우느냐?​”고 물었을 때 “그들이 내 주를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답하였다. 주 예수님께서는 친히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그녀를 부르시고 그녀의 믿음과 사랑을 세우시고 그녀에게 매우 중대한 명령을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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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20:15-18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슬피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그녀는 그분을 동산지기로 생각하고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이여,​ 당신이 그분을 여기서 옮기셨거든 그분을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일러 주소서. 그리하면 내가 그분을 모셔 가리이다,​ 하매 16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마리아야,​ 하시거늘 그녀가 돌이켜 그분께, 랍보니여,​ 하니 이것은, 선생님이여,​ 라는 말이라. 17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대지 말라. 내가 아직 내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다만 내 형제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자기가 [주]를 보았으며 또 그분께서 자기에게 이것들을 말씀하셨다고 말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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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보다 더 크고 중대한 명령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있었을까?​ 이 여인은 사도가 아님에도 사도들보다 먼저 부활하신 주님을 뵈었으며 그분에게서 명령을 받았다. 주님은 자신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아신다. 그리고 친히 그녀를 맞이하시고 세워주셨다. 얼마나 놀라운 구주이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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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든 증거들과 소식에도 제자들은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에 더디었으며 여전히 의심 가운데 있었다. 어찌 자기들의 눈앞에서 돌아가신 것이 확실히 드러난 분이 사흘이 지나 다시 자기들 눈앞에 나타난 사람이 있었는가?​ 그들은 분명 예수님께서 친히 나사로를 나흘이 된 시점에서 그를 일으키시고 친히 자신을 두고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였음에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여전히 모든 것이 이해되지 않는 것들뿐이었다. 누가복음 24:13을 보면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육십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로 가면서 이 모든 일들을 두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은 지금까지 보여진 증거들과 여인들의 말을 토대로 과연 예수님이 부활하셨을까를 두고 자기들의 의견을 나누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마음에는 불신과 의심이 있었고 아직 사실을 받아들이기에 부족함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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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여러 사람들의 마음일 것이다. 그들은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한 읽어 역사적인 이야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며 또 사람들이 전해주는 믿음에 대한 소식도 들었다. 그런데 이들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그 사실이 그들의 마음에 와 닫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의 이야기가 그들에게 실제로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제자들의 문제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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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실감(實感)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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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바와 이름이 나와있지 않은 제자는 엠마오로 가는 길에 예수님께서 친히 그들에게 가까이 오시고 그들과 같이 가셨으나 그들은 눈이 가려져서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주님은 그들에게 그들이 나눈 대화에 대해 물으시고 왜 슬퍼하는가를 물으셨다. 우리는 여기서 제자들이 여전히 여자들이 천사들을 보고 예수님을 보았다고 간증한 이야기들을 믿지 않고 있으며 또한 증거를 통해 여자들의 이야기가 사실이기는 해도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그들은 가장 인간적이고 당연하게 보이는 “누군가 예수님의 몸을 가져가지 않았을까?​”라는 결말로 가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눅 24:​19-24까지의 이 두 사람의 대답은 그 점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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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24:19-24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무슨 일들이냐?​ 하시매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나사렛 예수님에 관한 일들이니라. 그분은 [하나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에서 능력 있는 대언자였는데 20 수제사장들과 우리의 치리자들이 그분을 넘겨주어 정죄 받아 죽게 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그러나 우리는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할 분이시라고 믿었노라. 이 모든 것 외에도 오늘은 이런 일들이 이루어진 지 사흘째 되는 날이요, 22 또 우리 일행 중의 어떤 여자들도 참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였으니 그들이 일찍 돌무덤에 갔다가 23 그분의 몸은 보지 못하고 와서 말하기를 자기들도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말한 천사들의 환상을 보았다고 하였으며 24 또 우리와 함께 있던 자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돌무덤에 가서 참으로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그분은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니라.**
 +
 +주님은 즉각적으로 그들의 믿음을 책망하셨다. “오 어리석고 대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얼마나 우리는 명확히 드러난 사실에도 믿음을 가지지 못할 만큼 의심에 가득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제자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불신의 모습과 같지 않은가? 또한 주님은 항상 제자들의 믿음을 보고 계신다는 것을 본다. 주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믿음을 가질 것을 촉구하신다. “그리스도가 이런 일들로 고난을 당하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함이 마땅하지 아니햐냐?​ 하시고 모세와 모든 대언자들의 글에서 시작하여 모든 성경 기록들에서 자기에 관한 것들을 그들에게 풀어 설명해 주시니라.”(눅 24:26-27) 하나님께서는 이미 예수님의 부활이 있기 전에 수백 년 동안 그 일이 있을 것을 대언의 말씀을 통해 지속적으로 말씀하고 계셨다. 모세의 글에서 시작하여 모든 대언자들의 글을 통해 주님은 계속 말씀하셨다. 그 중 한 예를 든다면 이사야서 53장이다. 이사야 53장은 전체적으로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 대언하고 있다. 이사야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전 750여년경에 이것을 대언하였다. 그 중 10절을 보면 우리는 부활에 대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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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53:10 ¶ 그러나 {주}께서 그를 상하게 하는 것을 기뻐하사 그를 고통에 두셨은즉 주께서 그의 혼을 죄로 인한 헌물로 삼으실 때에 그가 자기 씨를 보고 자기 날들을 길게 하며 또 {주}의 기뻐하시는 일이 그의 손에서 번영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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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께서 그의 혼을 죄로 인한 헌물로 삼으실 때에” 이것은 십자가를 말한다. 그런데 그 뒤에 무어라 말하는가?​ “그가 자기 씨를 보고 자기 날들을 길게 하며” 어떻게 죽은 자가 자기 날들을 길게 할 수 있는가? 부활이 없이 이 일이 가능할 수 있는가? 시편 16편 역시 주님의 부활에 대해 명확히 말하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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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16:8-10 내가 {주}를 항상 내 앞에 모셨나니 그분께서 내 오른편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이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소망 중에 안식하리니 10 이는 주께서 내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시고 주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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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은 대언으로 “주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실 것”이라 말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 바로 “부활”이다! 주께서 그들과 같이 머물 곳에 들어가셔서 그들과 함께 음식 앞에 앉으셔서 그들의 눈을 열어 주셨을 때서야 그들은 자기들이 믿고 섬기던 주님이 바로 앞에 계셨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주님의 부활이 실체가 되어 실감이 되어 그들에게 다가온 것을 본 것이다. 이제서야 성경 말씀이 그들에게 실감이 되어 다가온 것이다. 그들은 엠마오에 머물어 하루를 보내기보다 즉각적으로 일어나 열한 사도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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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24:32-35 그들이 서로 이르되, 그분께서 길에서 우리와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 기록들을 열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는 33 바로 그 시각에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열한 제자와 또 그들과 함께한 자들이 같이 모여 34 말하기를,​ [주]께서 참으로 일어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 것을 보고 35 길에서 이루어진 일들과 그분께서 빵을 떼실 때에 자기들이 그분을 알게 된 일을 말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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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서로가 주님을 보았다고 간증하며 있었던 일들을 말하나 여전히 불신 가운데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주님은 그들 모두가 주님께서 부활하셨음을 확신하게 하도록 즉각적으로 그들 가운데 나타나셨다. 주님은 자기를 보고도 영을 본 것으로 여기는 제자들을 위해 주님의 손과 발을 내밀면서 만져보고 주님이 실제로 부활하셨음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셨다. 그럼에도 여전히 너무 기뻐 자기가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자들을 위해 먹을 것을 요청하셨다. 주님께서 그들 앞에서 음식을 드시는 것을 본 제자들은 그제서야 자기들 앞에 계시는 분이 실제로 부활하신 그분이심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주님은 아주 중요한 것을 제자들에게 깨우치기 위해 말씀을 하신다.
 +
 +**눅 24:44-48 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여전히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말들 곧 모세의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과 시편에 나에 관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반드시 성취되어야 하리라 한 말들이 이것들이라,​ 하시고 45 그때에 그들의 지각을 여사 그들이 성경 기록들을 깨닫게 하시며 46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같이 기록되었은즉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셋째 날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는 것이 마땅하며 47 또 회개와 죄들의 사면이 그의 이름으로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민족들 가운데 선포되어야 하리니 48 너희는 이 일들의 증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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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며 진리임을 그들로 알게 하심으로써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갖도록 가르치셨다. 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셨다는 역사적 사실을 듣고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가?​ 먼저 그것이 자기들이 직접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에 다가오지 않는다. 이것은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에 대해 확신이 없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 점을 명확히 하였다. 따라서 가장 복있는 것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사람일 것이다. 주님은 예수님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그분의 손의 상처와 옆구리의 상처를 만져보기 전에는 절대 믿지 않겠다고 말한 도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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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20:27-29 그 뒤에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고 내 두 손을 보며 또 네 손을 이리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으라.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하시니 28 도마가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하매 29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도마야, 너는 나를 보았으므로 믿었으나 보지 않고도 믿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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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지 않고도 믿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어떻게 주님을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가? 그것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전적인 신뢰 즉 그것이 사실이며 진리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 가능한 것이다. 만일 여러분 가운데 예수님의 부활이 여러분의 실체가 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성경이 사실이며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점을 알려고 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성경이 진리이고 참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에 거기서 증거하고 있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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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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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은 주님께 믿음과 신뢰와 소망을 두면서 주님께서 그들에게 명령하신 것에 대해 확고함으로 순종하였다. 그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권능으로 입기까지 예루살렘에서 떠나지 아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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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과연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확고한 믿음이 있는가? 200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서 그 사건을 다시 볼 수 없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지 않고도 믿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주님은 우리에게 주신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확고한 믿음과 신뢰를 갖기를 원하신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할 수 있으며 거룩히 구별된 사람들 가운데서 유업을 나누어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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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너희는 이 일들의 증인이라.”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어 구원받았다면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를 이제 주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에 증거하는 일이 우리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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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송: “예수 부활 했으니”-154장(복음찬송가)
  
눅24.1-12.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