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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5.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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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5.10-11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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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월23일 주일오전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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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말씀에 따라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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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누가복음 5장 1~11절\\
 +핵심구절:​ 눅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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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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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본문말씀은 누가복음 5장 1~11절까지입니다. 본문을 잘 이해하려면 먼저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본문을 읽어보면 주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시는 장면임을 파악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주석가들은 마태복음 4:18~22과 막 1:16~20과 동일한 상황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같은 장면이 아닙니다.
 +
 +먼저 오늘의 본문이 되는 장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절을 보면 장소가 게네사렛 호숫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흠정역 성경 뒤편에 지도 18페이지를 보면 “AD 30년경의 팔레스타인 지도”가 나와 있습니다. 거기를 보면 “갈릴리 바다”를 볼 수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내륙에 있기 때문에 바다라기보다는 호수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크기가 크기 때문에 호수와 바다라는 두 가지 이름을 다 갖고 있습니다. 즉, 갈릴리 바다 혹은 갈릴리 호수로 불리기도 합니다. 또한 지도에서 갈릴리 바닷가 주변 도시를 살펴보면 게네사렛과 디베랴가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해변의 도시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본문이 되는 눅 5:1에서 게네사렛 호수라고 불리고 있고 또한 요 21:​1에서는 디베랴 바다로 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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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21:1 이 일들 후에 예수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보이셨는데 그분께서 이렇게 자기를 보이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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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네사렛이라는 지명은 구약에서 “긴네렛”으로 불렸습니다. 민 34:11과 수 19:35을 보면 “긴네렛”이란 지명이 나오며 특히 민 34:11을 보면 갈릴리 바다는 “긴네렛 바다”로 불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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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 34:11 그 지경은 또 스밤에서 리블라로 내려가서 아인의 동쪽 편에 이르고 또 그 경계는 내려가서 동쪽의 긴네렛 해변에 이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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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긴네렛이 시간이 지나면서 “게네사렛”으로 불렸습니다. 이 갈릴리 바다는 우리 주님의 주요 활동무대였습니다. 주님은 갈릴리 사람으로 불렸으며 또한 주님의 대부분의 제자들이 갈릴리에서 어부였습니다. 또한 갈릴리는 이방인들의 도시로 불렸습니다.
 +
 +마 4:14~16 이것은 대언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려 하심이라. 이르시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르단 건너편 바닷길 옆 이방인들의 갈릴리여,​ 16 어둠 속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지역과 사망의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솟아올랐도다,​ 하였느니라.
 +
 +그것은 솔로몬 왕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주의 집과 자신의 궁전을 짓기 위해 목재와 금이 필요했는데 두로 왕 히람에게서 목재와 금을 얻은 대가로 갈릴리 땅에 있는 도시 스무 개를 히람 왕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히람 왕이 그 도시들을 보니 땅이 그리 좋지 못했던 것입니다. ​
 +
 +왕상 9:11~13 (이제 두로 왕 히람이 솔로몬에게 그의 모든 소원대로 백향목과 전나무와 금을 제공하였으므로) 솔로몬 왕이 갈릴리 땅에 있는 도시 스무 개를 히람에게 주니라. 12 히람이 두로에서 나아와 솔로몬이 자기에게 준 도시들을 보고는 그것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13 말하기를,​ 내 형제여, 그대가 내게 준 이것들이 도대체 무슨 도시들이냐?​ 하고 그것들을 가불의 땅이라 부르니 이 날까지 이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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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불은 페니키안 말로 “불만족”(displeasing)이란 뜻을 갖습니다. 갈릴리는 그만큼 무시되고 소외된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베카왕 때에는 (왕하 15:29) 아시리아 왕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포로로 데리고 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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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 15:29 이스라엘 왕 베가의 시대에 아시리아 왕 디글랏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점령하고 그들을 포로로 사로잡아 아시리아로 데리고 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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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두 왕국으로 분리가 된 이스라엘은 북왕국이 멸망하고 난후 갈릴리 지역에 여러 이방인들이 정착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주님이 지상에 계시던 때에는 사람들은 갈릴리 지역을 이방인들의 땅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무시되고 소외되는 지역이 우리 주님이 주로 활동했던 무대였던 것입니다. 그곳에 주님은 수제자였던 베드로를 만나셨습니다. 오늘 본문역시 그 중 하나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베드로를 만나기전 주님은 적어도 세 번 그를 만난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첫 번째 만남은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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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1:40~42 요한의 말을 듣고 그분을 따른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더라. 41 그가 먼저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아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하니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그가 그를 데리고 예수님께로 오매 예수님께서 그를 바라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나의 아들 시몬인즉 게바라 불리리라,​ 하시니 게바는 번역하면 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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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가 처음 주님을 만나게 된 것은 그의 형제인 안드레의 전도를 통해서 였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믿고 베드로에게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인도했습니다. 첫 만남에서 주님은 시몬에게 “게바” 즉,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두 번째 만남은 마태복음 4:18~20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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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4:18~20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거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더라. 19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를 사람들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 그들이 곧 자기들의 그물들을 버려두고 그분을 따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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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갈릴리 바닷가를 거니시다가 두 형제 베드로와 안드레가 물고기 잡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둘을 부르시면서 “나를 따르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그 둘은 그물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그들은 다시 생업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성경은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 번째 만남은 눅 4:38~39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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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4:38~39 그분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오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라. 시몬의 아내의 어머니가 중한 열병에 걸렸으므로 그들이 그녀를 위하여 그분께 간청하매 39 그분께서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시고 열병을 꾸짖으시니 병이 그녀에게서 떠나고 즉시 그녀가 일어나 그들을 섬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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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시몬의 장모가 열병에 걸렸을 때 그녀를 치유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네 번째 만남이 오늘 본문이 될 것 같습니다. 본문을 보면 두 척의 배가 호숫가에 세워져 있고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배는 영어로 ship입니다. ship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큰 배로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배는 그다지 큰 편은 아닙니다. 어쩌면 사람들을 5~6명정도 태워서 일을 할 수 있는 정도의 크기였을 것입니다. 통통배정도의 크기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봅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당시 4~5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배들이 약 230여척 정도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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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부들은 밤새 수고하였지만 아무 수확도 얻지 못하였고 그물이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씻어 말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 중에 시몬의 배에 오르셔서 시몬에게 배를 육지에서 약간 떨어지게 할 것을 청하셨습니다. 이미 군중들은 주님의 말씀을 들으러 그 호숫가에 많이 모인 상태였습니다. 시몬은 주님의 청에 배를 약간 육지에서 떨어뜨려 놓았고 주님은 그대로 배에 앉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군중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어쩌면 주님은 베드로를 위해 의도적으로 그의 배에 올라 타시고 또한 그에게 청하셨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어쩔 수 없이 주님과 같이 배에 올라타야 했고 꼼짝없이 주님의 말씀을 경청해야 했을 것입니다. 이 때 주님이 어떤 말씀을 군중과 베드로에게 하셨는지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기에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베드로의 마음속에서 역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베드로의 믿음을 세우고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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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을 가르치시던 주님이 시몬에게 이르되, “깊은 데로 가서 너희 그물들을 내려 한 번 끌어당기라” 라고 명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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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물고기를 잡을 수 없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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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5:5 시몬이 응답하여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밤새도록 수고하였어도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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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주님이 시몬에게 말씀한 것은 천직이 어부였던 시몬에게는 무리한 명령으로 여겨졌습니다.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시몬의 말에서입니다. “우리가 밤새도록 수고하였어도”. 지역과 수온에 따라 고기가 잡히는 시간대가 다릅니다. 마태복음 4장에서 시몬은 낮에 고기를 잡기위해 그물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반면 요한복음 21장에서는 베드로와 일행은 밤새도록 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던졌습니다. 누가복음 5장에서도 밤새도록 고기를 잡기위해 수고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시간적으로 고기가 잘 잡히지 않는 아침이 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 시점이 여름이라고 한다면 땡볓에 고기를 잡으려고 애쓰는 어부는 없을 것입니다. 고기가 잘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을 겁니다. 오히려 선선하고 수온이 내려가는 밤이나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새벽때에 일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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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바다낚시를 좋아해서 가끔 가곤 하는데 밀물때인지 혹은 썰물때인지에 따라 고기가 잡히는 때가 있으며 또한 날씨와 수온 역시 고기가 잡히는 때에 영향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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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장소입니다. 갈릴리 바다는 비록 넓어 바다라고 불리긴 해도 내륙에 있기 때문에 깊지 않습니다. 따라서 갑작스런 돌풍이나 태풍에 바닷물결이 크게 요동하기도 합니다. 또한 베드로는 밤새 수고하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보았을 것입니다. 고기가 잘 나오는 길목을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며 또한 어느곳이 깊은 곳인지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있어 깊은 곳에서 나오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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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베드로는 이미 그물을 씻었으니 다시 내리는 것은 헛된 일을 반복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던졌을 때 어떤 수확이 있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베드로는 지금까지 어부로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노련한 어부의 경험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어부도 아닌 주님의 말씀은 무시해도 될 만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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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주님의 말씀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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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5:5 시몬이 응답하여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밤새도록 수고하였어도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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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무엇이 베드로의 마음을 움직였을까요?​ 지금까지 세 번째의 만남을 통해 베드로는 주 예수님이 평범한 일반사람은 아니라는 점을 알았습니다. 그분이 오시기로한 메시야라는 점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부인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단말입니까?​ 그는 무식하기로 유명한 어부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는 소외되고 무시되는 갈릴리 사람으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물을 던지는 일과 배를 모는 일과 고기의 습성을 아는 일 정도로 그것이 메시야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주님과 이전 대면을 통해 그분이 우리를 아시며 또한 그분은 말씀으로 병을 치유하시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있게 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시몬 역시 그의 장모가 심한 열병으로 눕게 되었을 때에 주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으로 그 병을 떠나가게 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주의 말씀에 따라” 그분의 명령에 따라 순종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주님의 말씀의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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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주의 말씀에 따라”는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유익을 위해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밤새 수고하고 땀을 흘렸지만 아무 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의 수고는 열매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 없는 우리의 삶의 수고가 그와 같을 것입니다.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것은 어떤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물고기가 잡힐지 아니 잡힐지 모르는 일이며 또한 잡힌다해도 얼마나 잡힐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에게 있어 물고기를 잡는 일보다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유익할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 결과 베드로는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물이 찟겨질정도로 많은 물고기가 잡혔고 베드로 혼자서는 끌수 없는 많은 양이 잡혔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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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주께서는 우리의 선을 위해 말씀을 주십니다. 종종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아나 베드로처럼 행하지 아니합니다. 베드로는 “주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기 위해 자신의 경험과 삶의 지혜와 자신의 감정과 지식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베드로에게 있어 “주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것이 더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여겨졌던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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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48:17 네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인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너를 가르쳐 유익하게 하고 네가 마땅히 가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주 네 하나님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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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주의 말씀에 따라”는 우리의 지식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주 예수님의 능력을 맛보았습니다. 그것은 도전히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임을 본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가 아니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본 것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베드로는 주님에 대한 지각에 변화를 얻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제 주님을 경험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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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그것은 우리를 주님과 더 깊은 교제로 인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우리로 하여금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참된 교제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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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일 1:3~4 우리가 보고 들은 그것을 너희에게 밝히 드러냄은 너희 또한 우리와 교제하게 하려 함이니 참으로 우리의 교제는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이니라. 4 우리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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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왜 자신은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부족한지에 대해 자책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셨습니까?​ 주님은 자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자신을 아는 빛을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쁨을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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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 “주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것은 우리의 영적인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기로 결심하고 실행함으로써 그 결과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능력을 봄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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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5:8~9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이르되, 오 주여, 내게서 떠나소서. 나는 죄 많은 사람이니이다,​ 하니 9 이는 그와 또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이 잡은 물고기들을 끌어당김으로 말미암아 놀랐기 때문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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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베드로가 주님에게 “내게서 떠나소서” 했을 때 이것은 주님을 미워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에 대한 영적 자각을 한 것입니다. 눅 5:5을 보면 베드로는 주 예수님을 “선생님”(Master)로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적을 본 이후 베드로는 주님을 “주”(Lord)라고 부르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것은 주 예수님이 자신의 삶이 주인이 됨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자 메시야이신 분, 또한 병을 말씀으로 꾸짓어 치유케하신 분, 또한 말씀으로 모든 물고기들을 깊은 곳에서 낚게 하신 분. 그분 앞에 자신이 서 있다는 것을 베드로는 깨달은 것입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베드로는 그에 반해 보잘것없는 갈릴리의 어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또한 자신이 얼마나 죄많은 자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
 +
 +“주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것은 우리를 더욱 겸손하게 하며 더욱 깊은 영적 자각을 줄 것입니다. 순종함으로써 우리의 믿음이 자라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주의 제자가 되게 이끌 것입니다. 베드로는 두 번째 만남때 주님께서 “나를 따라오라”고 하셨지만 생업으로 다시 돌아옴으로써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을 걷지 않았지만 이후로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
 +**D. “주의 말씀에 따라”는 우리의 혼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신의 혼을 잃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막 8:36) 주님은 우리에게 “그분을 믿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말씀에 따라 순종할 때에 주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로 영접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을 믿으라는 것은 내게 감정이나 나의 지식이나 경험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순종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것이라는 믿음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며 육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들은 곧 영이요 생명이니라.
 +
 +=====IV. 결론=====
 +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의 말씀을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때로 그것은 우리의 경험과 지식에 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천직이 어부인 베드로에게 있어 주 예수님의 요구는 합당치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전에 앞서 여러분은 누구 앞에 서있는지를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베드로는 그가 가진 적은 지식으로 주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했을 때 놀라운 축복과 함께 주님의 능력을 더욱 체험함으로써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더욱 알게 되었습니다.
 +
 +나중에 주님이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라고 물었을 때 제자들은 “대언자”나 “엘리야”라고 하더이다,​ 라고 답했습니다. 주님은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답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분의 말씀에 따라 순종함으로써 그분이 바로 메시야이자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
 +주님은 여러분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삶속에서 혹은 어떤 상황에서,​ 주님은 여러분에게 그분의 말씀에 따라 걷기를 원하십니다. “주의 말씀에 따라”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지를 체험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눅5.10-11.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