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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7.4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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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7.44-50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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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6월 26일 주일오전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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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은 누구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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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누가복음 7장\\
 +핵심구절:​ 눅 7:4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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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서론=====
 +
 +현대 사회는 많은 노동과 시간을 요구한다. 바쁜 일과를 보내고 하루를 정리하고 다음 날을 맞는 것이 한국 사람들에게는 익숙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한국의 노동력에 대한 평가는 하위에 속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크리스천으로써 우리는 생활의 많은 요구 특히 직장의 많은 시간 및 노동의 요구로 인해 크리스천으로써 마땅히 해야 할 일들(기도 및 성경읽기)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큰 슬픔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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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쁜 일상은 바로 믿음의 약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오늘 누가복음 7장을 보면 크게 네 가지 사건이 등장함을 볼 수 있다. 이 네 가지 사건을 통해 예수님께서 어떤 분인지를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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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권위 있으신 분(1~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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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7:1~5 이제 그분께서 백성이 듣는 데서 자신의 모든 말씀을 마치신 뒤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2 어떤 백부장에게 사랑하는 종이 있었는데 그가 병들어 곧 죽게 되었더라. 3 그가 예수님에 대하여 듣고 유대인들의 장로들을 그분께 보내어 그분께서 오셔서 자기 종을 고쳐 주실 것을 그분께 간청하매 4 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절박하게 그분께 간청하여 이르되, 그를 위해 이 일을 하시는 것이 그에게 합당하니이다. 5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 우리를 위해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
 +첫 번째 사건은 가버나움에서 있었다. 한 백부장이 그곳에 있었는데 그에게 사랑하는 종이 있었는데 그가 죽을 병에 걸리게 되었다. 이 백부장은 로마사람이다.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상종을 잘 하지 않았는데 특히 로마의 군인들은 심하였다. 이는 그들이 자기들을 지배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백부장만은 달랐다. 그는 로마인이었음에도 그는 유대인의 하나님에 대해 관심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유대인의 장로들도 그를 두고 예수님께 청할 때, “그를 위해 이 일을 하시는 것이 그에게 합당하다”고 했다. 그는 유대인들을 사랑했다. 그는 또한 그들을 위해 하나님을 섬기도록 회당을 지어주었다. 그는 유대인의 하나님께 자기의 믿음을 둔 자였을 것이다.
 +
 +당시 로마인은 자기를 섬기는 종 즉 노예가 심하게 병들거나 다쳐서 그를 위해 일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그를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이것은 로마의 법이 보장하는 합법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이 백부장은 자기가 군대를 거느리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섬기는 자를 지극히 아끼는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그가 병에서 고침을 받게 되도록 주님께 간청을 하는 자였다.
 +
 +이 백부장은 한번도 주님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는 주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는 로마군인들의 수장으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감시 및 책임을 갖는 사람이다. 분명 그는 예수님의 말씀과 그분의 치유의 기적들에 대해 들어보았고 부하를 시켜 조사를 해보았을 수 있다. 혹은 유대인의 장로들이 그의 종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예수님에 대해 소개해 주었을 수 있다. ​
 +
 +**눅 7:6~8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가시더라. 이제 그분께서 그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르렀을 때에 백부장이 친구들을 그분께 보내어 그분께 이르되, 주여, 친히 수고하지 마옵소서. 주께서 내 지붕 아래로 들어오심을 내가 감당할 자격이 없나이다. 7 그러므로 내 자신이 주께 나아갈 자격도 없는 줄로 생각하였사온즉 오직 한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종이 낫겠나이다. 8 나도 권위 아래 있는 사람이며 내 아래에도 군사들이 있어 내가 이 사람더러,​ 가라, 하면 그가 가고 저 사람더러,​ 오라, 하면 그가 오며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그가 그것을 하나이다,​ 하매**
 +
 +여기서 주님은 백부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주저하지 않으시고 그들과 동행하여 그곳을 가기 시작하셨다. 주님은 자기에게 나아오는 모든 사람들을 거절하지 않으셨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주님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 주셨다. 다만 주님은 항상 그들의 믿음을 먼저 보셨다.
 +
 +도중에 백부장은 친구를 보내어 예수님께 수고하면서 까지 집으로 오실 필요가 없음을 말하며 또한 주님께서 자기 집으로 오는 일을 두고 “내가 감당할 자격이 없”으며 또한 자신이 주님께 나아갈 자격도 없다고 말한다. 분명 백부장은 유대인들의 관습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유대인인 예수님께서 이방인의 집으로 오는 일은 유대인의 관습에 반대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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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한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종이 낫겠나이다.” 이것은 백부장이 예수님의 치유의 능력이 단순히 속임수도 아니며 또한 병들과 악한 영들에 대해 권위를 갖고 계신 분이심을 깨달았음을 보여준다. 백부장은 주님을 본 적이 없지만 그분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상황을 판단해 보았을 때 그것은 분명 속임수 없는 사실 그대로 치유의 권능이 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또한 말씀만으로 치유하시는 그분에 대한 이야기는 그분이 치유의 권위를 소유하신 분임을 깨달은 것이다. 백부장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나와있지 않지만 그의 주님에 대한 판단은 상당히 정확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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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부장은 그분이 하나님만이 갖고 있는 혹은 그분께로부터 온 치유의 권능을 소유한 분이라면 자신이 그분 앞에 선다는 것은 높은 지위의 사람 앞에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는 백부장으로써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자로써 상관이나 혹은 황제 앞에 서는 일보다 주님 앞에 서는 일이 더욱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생각했다! 병과 악한 영들이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여 떠난다면 그분이 가진 권위는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우리는 그분이 배에서 바다를 꾸짖었을 때 파도가 잔잔해지던 일들을 기억한다. 사람들은 이분을 두고 과연 어떤 권위를 지닌 분이기에 바다가 그분께 순종한단 말인가!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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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부장은 그렇다면 그분의 말씀이면 분명 자신의 종이 낫게 될 것을 확신했다. 분명 그런 권위를 가진 분이시라면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을 확신한 것이다. 이것은 자신도 권위 아래 있는 자로써 군사에게 이리 오라 하면 오고 저 일을 하라면 하는 일이 단지 명령으로 주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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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7:9~10 예수님께서 이것들을 들으시고 그로 인해 놀라사 주위를 돌아보시며 자기를 따르던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에서 이렇게 큰 믿음은 내가 결코 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니라. 10 보내어진 자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앓고 있던 종이 온전하게 되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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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은 그 이야기를 듣고 백부장의 믿음을 두고 놀라워 하시면서 “이스라엘에서 이렇게 큰 믿음은 내가 결코 보지 못하였노라”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왕이시라는 것을 믿는 것보다 더 큰 믿음이 어디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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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모든 것들이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명령에 순종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주님께 불가능한 것이 전혀 없음을 확신하는가?​ 주님은 지상에 계시면서 두 번 놀라셨다. 한번은 여기고 한번은 막 6:6이다. 주님은 자신의 백성의 불신으로 인해 놀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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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위대한 대언자(11~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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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7:11~13 그 날 뒤에 그분께서 나인이라 하는 도시로 들어가시니 그분의 제자들 중에서 많은 이들과 많은 사람들이 그분과 함께 가더라. 12 이제 그분께서 그 도시의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에, 보라, 죽은 사람이 실려 나오는데 그는 그의 어머니의 외아들이요,​ 그녀는 과부더라. 그 도시의 많은 사람들도 그 여인과 함께하거늘 13 주께서 그 여인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녀에게,​ 울지 말라,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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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인이란 도시는 가버나움에서 26마일 즉 4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사람이 하루를 걸어야 갈 수 있는 거리정도 된다. 왜 주님께서는 쉬지 않으시고 제자들을 데리고 그렇게 먼 거리를 가셔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어쩌면 제자들중에서 먼거리를 하루에 갈 필요가 있냐고 투덜대는 사람들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죽고나서 그를 일으키기 위해 제자들에게 가자고 했을 때에 도마역시 말하기를 우리도 주님과 함께 죽으러 가자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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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서 주님과 제자들은 과부의 외아들이 죽어 장지로 이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그는 과부의 외아들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그는 삶의 전부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죽고 말았다. 이제 그녀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닐 것이다. 그녀는 이제 같이 살 사람도 없고 이제 세상에서 외톨이가 되고 만 것이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절망적인 가난과 비참함이 남아있을 뿐이다. 아비없는 자들과 과부들의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어찌 이 일을 그냥 둘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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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께서 그 여인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녀에게,​ 울지 말라, 하시고” 여인이 어찌 울음이 나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녀의 삶과 같은 존재가 이제 더 이상 숨을 쉬지 아니하고 관에 그냥 덩그렇게 놓여있음을 생각해보라! 그런 여인에게 주님은 “울지 말라”라고 하셨다. 이것은 주님이 그 여인을 위해 무언가를 하실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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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7:14~17 나아가사 관에 손을 대시니 그를 나르던 사람들이 멈추어 서니라. 그분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 죽었던 그가 앉아서 말하기 시작하거늘 그분께서 그를 그의 어머니에게 넘겨주시니 16 모든 사람에게 두려움이 임하므로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큰 대언자가 우리 가운데서 일어났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찾아오셨다,​ 하더라. 17 그분에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그 주변 온 지역에 두루 퍼지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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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말씀으로 백부장의 병든 종을 사망에서 건지셨듯이 이제 말씀으로 죽은 청년을 다시 살리셨다. 롬 4:17에 따르면 죽은 자를 산 자처럼 보시고 말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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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 4:17 (이것은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들의 조상으로 삼았느니라,​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들을 살리시며 없는 그것들을 마치 있었던 것처럼 부르시는 이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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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그 뒤로도 장례를 치르는 자들을 살리셨다. 눅 8:​41~56에서는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고 요 11:​1~45에서는 나사로를 살리셨다. 그러나 누가복음 7장의 사건은 사람들의 눈에 독특한 것이었다. 그것은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신 일이다.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큰 대언자가 우리 가운데서 일어났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찾아오셨다,​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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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건은 그들로 하여금 과거의 대언자들을 생각나게 했을 것이다.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의 외아들을 일으켰고(왕상 17장) 엘리사는 수넴 여인의 외아들을 일으켰(왕하 4장)다.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주께 간구하며 그 아이 위에 엎드렸고 마찬가지로 엘리사 역시 주께 기도하며 그 아이 위에 엎드려 눈에 눈을 손에 손을 맞대었으나 주님은 말씀만으로 그 청년을 일으키셨다. 분명 위대한 대언자였던 엘리야보다 더 큰 대언자임을 보이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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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어떤 이유로 나인에 오게 되었는가?​ 그것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순종하셨던 주님을 보여줄 뿐 아니라 주께서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시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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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V. 앞으로 오실 메시야(18~3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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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7:18~19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알리니라. 19 요한이 자기 제자들 중의 두 사람을 불러 예수님께 보내며 이르되, 선생님이 오실 그분이오니이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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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셨다는 소식은 요한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는 제자들 중 두 사람을 불러 예수님께 보내어 주님께서 과연 오실 메시야인지를 묻는다. 그런데 침례인 요한이 누구인가?​ 그는 날 때부터 성령으로 충만하던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 사가라로부터 예언의 말씀을 들었고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에 순종하여 예수님을 요단 강에서 침례를 주었던 자이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증거하였고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제시했던 자였다. 그런 요한이 어떻게 주님께 그런 질문을 하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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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11:2~3을 보면 요한이 이 질문을 했을 때에는 그가 감옥에 있었던 때였다. 분명 침례인 요한은 예수님의 사역을 두고 오해 가운데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분명 이분이 올 메시야라면 왜 나는 여전히 감옥에 있는가?​” 라는 질문이 그를 혼란에 빠지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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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또한 육체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된 상황이었을 것이다. 평생을 광야에서 살던 사람이 좁고 더러운 감옥에 있으니 그의 마음이 편할리 있겠는가?​ 그는 분명히 메시야이신 그분이 곧 악의 세력들을 정복하시고 자신을 감옥에서 건지시리라 믿었을 것이다. 주님이 어둠의 권능을 멸하시고 의인들을 위하여 심판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요한이 감옥에 갖혔다는 소식을 들었던 주님은 멀리 가셨고 주님의 선두주자였던 요한은 쓸쓸하게 감옥안에 있는 상황이 그로 하여금 의심 가운데 있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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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은 주님에 대해 불신의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의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할 때 우리 안에 생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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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7:20~23 그 사람들이 그분께 나아가 이르되, 침례자 요한이 우리를 선생님께 보내며 말하기를,​ 선생님이 오실 그분이오니이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라. 21 바로 그 시각에 그분께서 병약함과 역병과 악한 영 들린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또 눈먼 많은 사람에게 시력을 주시더라. 22 그때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그들에게 이르시되,​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들을 요한에게 고하되 곧 눈먼 자들이 보며 다리 저는 자들이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정결하게 되며 귀먹은 자들이 들으며 죽은 자들이 일으켜지며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선포된다 하라. 23 누구든지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할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
 +주님은 침례자 요한의 질문에 단순한 답변을 주셨다.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들을 요한에게 고하되 곧 눈먼 자들이 보며 다리 저는 자들이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정결하게 되며 귀먹은 자들이 들으며 죽은 자들이 일으켜지며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선포된다 하라.” 침례인 요한이 원하던 것은 아마 이스라엘에 왕국을 가져오기 위해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일을 시작하실 것이라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이미 요한이 들어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시 전하라고 하고 있다. 그것은 분명 메시야의 표식이었다. 또한 주님은 요한에게 의미있는 말을 남긴다. “누구든지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할 자는 복이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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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메시야가 보여줄 긍휼의 능력만을 말씀하고 계신다. 심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아니하신다. 정작 요한은 주님을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제시하였으나 자신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여 어떻게 그것이 성취되는지는 깨닫지 못한 것이다. 주님은 요한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메시야의 모든 표적이 행해지고 있듯이 내가 올 그 메시야다. 또한 나는 네가 깨닫지 못하는 다른 계획을 갖고 있어 그것을 실행할 것이다.” 그 뒤 예수님은 침례인 요한을 칭찬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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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 전지하신 하나님(36~5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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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7:36~38 바리새인들 중의 하나가 그분께서 자기와 함께 잡수실 것을 그분께 구하매 그분께서 그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음식 앞에 앉으시니라. 37 보라, 그 도시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서 음식 앞에 앉으신 것을 알고는 향유를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그분 뒤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분의 발 곁에 서서 눈물로 그분의 발을 씻기 시작하여 자기 머리털로 발을 닦고 그분의 발에 입을 맞추며 향유를 발에 부으매**
 +
 +여기의 도시가 어디인지는 나와있지 않다. 주님께 나아온 이 여인은 죄인으로 인지되고 있다. 그녀는 어쩌면 간음을 범한 여인이거나 창녀였을 것이다. 많은 주석가들이 이 여인을 두고 막달라 마리아와 동일시하고 또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와 동일 인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기의 사건은 요 12장의 사건과 완전히 다른 사건이다. 또한 여기의 여인은 죄인이라 불리는 점에서 막달라 마리아도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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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서 예수님께 향유를 붓는 사건은 두 번있다. 한번은 여기서 있고 나머지는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유월절 엿새전에 한 것이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발에 한 것이며 바리새인인 시몬의 집에서 행해졌으나 마리아가 한 것은 자기 집 즉 나사로의 집에서 행해졌고 예수님의 발 뿐 아니라 머리에도 부어졌다. 마태복음 26장과 요한복음 12장의 사건은 같을 것이다. 다만 마태복음은 시간적 순서에 따라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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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유를 담은 옥합” 유대인의 관습에 따르면 여인들은 결혼전에 자기를 정결케하고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목욕후 향유를 바른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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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향유는 머리에 부은다. 그런데 이 여인은 귀한 향유를 가지고 와 예수님의 발에 부어 자기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고 있다. 이 여인은 눈물을 흘릴 정도로 진솔하고 솔직하며 또한 겸손하다. 자기 머리에 최상의 향유가 주님께 발에 붓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녀는 또한 정성을 다하고 있다. 주님의 발에 입맞춤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
 +
 +**눅 7:39~47 이제 그분을 초대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속으로 말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대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이 여자가 누구며 또 어떤 여자인 줄 알았으리라. 그 여자는 죄인이니라,​ 하니라. 40 예수님께서 응답하여 그에게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말할 것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말씀하소서,​ 하매 41 그분께서 이르시되,​ 빚을 준 어떤 사람에게 빚진 사람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는데 42 그들이 전혀 갚을 것이 없으므로 빚 준 사람이 두 사람 다 너그러이 용서해 주었나니 그런즉 내게 말해 보아라. 그들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하시거늘 43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많이 용서해 준 사람이니이다,​ 하니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옳게 판단하였도다,​ 하시고 44 그 여자에게로 돌이키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에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씻고 자기 머리털로 발을 닦았으며 45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내가 들어올 때부터 내 발에 입 맞추는 것을 그치지 아니하였고 46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붓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이 여자는 많은 죄를 용서받았느니라. 이는 그녀가 많이 사랑하였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적은 것을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하느니라,​ 하시고**
 +
 +“이 사람이 만일 대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이 여자가 누구며 또 어떤 여자인 줄 알았으리라. 그 여자는 죄인이니라” 바리새인인 시몬은 예수님이 그 여인이 어떤 사람이고 그녀의 마음을 안다면 가까이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기에 그분이 대언자라는 사실을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람의 마음을 보는 데 어려움이 없으시다. 오히려 주님은 시몬의 마음을 읽고 계시고 그의 잘못을 바로잡고 계신다.
 +
 +먼저 주님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비유를 들어 요점을 설명한다. 요점은 더 많이 용서받았다면 더 많이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죄성에 대한 민감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
 +“네가 이 여자를 보느냐?​” 주님은 이 질문으로 바로 시몬의 생각을 바로 잡고 계신다. 시몬은 이 여인의 겉모습과 그녀의 과거의 죄악들만 보고 있다. 그러나 주님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을 보고 계신다. 주님은 왜 이 여인이 자기에게 와서 정성과 마음이 담긴 헌신을 하고 있는 그 동기가 무엇인지를 보고 계신다. 이 여인은 언제인지 모르나 주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그분이 하나님의 대언자이며 또한 죄들을 용서하신다는 소식은 그녀의 죄들을 용서받고 싶은 마음의 깊은 곳을 움직였다. 그녀는 주님께 왔고 그녀의 죄들을 용서받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눈물로 주님의 발을 씻기고 향유를 부으면서 주님께 죄들의 용서를 간절히 간구하고 있었다.
 +
 +시몬은 이 여인을 보며 죄들의 용서를 구하는 겸손한 죄인이라는 것을 보지 못하였고 또한 죄들을 용서받기 위해 그녀의 최선의 사랑을 주님께 드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또한 그는 그녀가 죄인인 것처럼 자신도 마찬가지로 죄인이라는 점을 인지하지 못했다. 즉 시몬이 주님이 그녀의 마음을 보지 못한다고 여겼을 때 주님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그녀의 동기를 보았고 그녀의 믿음을 보았고 그녀의 사랑을 보았던 것이다.
 +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에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씻고 자기 머리털로 발을 닦았으며 45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내가 들어올 때부터 내 발에 입 맞추는 것을 그치지 아니하였고 46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붓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시몬은 주님을 자기 집으로 모시면서 유대인의 주인이 손님에게 행하는 대우를 제대로 주지 않았다. 그런 그가 예수님께 그러한 것을 주는 여인을 책망할 자격이 있는가? 주님은 시몬에게서 “소홀함”을 보았고 여인에게서 “감사에서 우러나오는 헌신”을 보았다. 또한 주님은 우리의 마음에서 나오는 솔직한 감정을 거부하지 않는다.
 +
 +**눅 7:48~50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들을 용서받았느니라,​ 하시니 49 그분과 함께 음식 앞에 앉은 자들이 속으로 말하기 시작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들도 용서하는가?​ 하더라. 50 그분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
 +47절에서 주님은 이미 이 여인의 죄들이 용서받았음을 언급하셨다. 그러나 주님은 여인에게 직접 “네 죄들을 용서받았느니라”라고 언급하심으로써 그녀의 마음이 평안하도록 하신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어찌하여 그녀의 죄들을 용서하시는가?​ 그녀의 회개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겸손과 주님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에 근거하여서 이다.
 +
 +“이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들도 용서하는가?​” 주님은 말씀으로 병들을 치유하시는 권위가 있으시다. 주님은 말씀으로 죽은 자들을 살리시는 권위가 있으시다. 주님은 시몬이 보지 못한 여인의 마음의 동기를 보시는 하나님이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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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주님이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는 핵심은 바로 우리의 믿음에 있다. 여인은 주님이 자신의 죄들을 용서하실 것이라는 믿음과 주님을 신뢰했다. 그런 그녀의 믿음과 사랑의 헌신에 주님은 그녀를 용서하셨다.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로 인도한다. 여인은 주님께 죄들의 용서를 받기위해 그녀의 최선의 사랑과 헌신을 주었다. 주님은 자신을 완전히 낮춘 이 여인에게 이제 마음의 평안을 갖고 돌아가기를 명하신다. 주님은 말씀으로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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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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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은 누구신가?​ 여러분에게 어떤 존재인가?​ 그분은 말씀으로 병들을 치유하고 생명을 살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자 우리의 마음의 동기를 보시는 전지하신 분이시다. 주님은 또한 우리의 필요를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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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 3:8 참으로 확실히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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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7.44-50.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