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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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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6.1-9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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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9월 23일 주일오전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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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적 분별력과 하나님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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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느헤미야 6장 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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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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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다시 느헤미야를 보고자 한다. 만일 여러분이 좋은 지도자상을 찾기 원한다면 당연히 예수님보다 더 좋은 분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롤 모델로 하기에 너무 부족하다. 우리와 동일한 성정으로 동일한 육신의 연약함과 생각의 연약함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우리는 “느헤미야”를 생각할 수 있다. 사실 느헤미야서에는 “영적 지도자”에 필요한 좋은 교훈들이 들어있다. 오늘 우리가 보려는 것도 그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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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에게 큰 일을 맡기셨다. 그것은 바빌론 침공으로 완전히 무너져버려 폐허가 되버린 예루살렘을 재건축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너무 중요한 일이었다. 왜 그러한가?​ 그들은 단순히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축하고 거기에 도시를 세우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성전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일이다. 그 일을 위해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축하고 그 안에 도시의 기능을 되살려 귀환하는 백성들이 정착하여 살 수 있게 하며 주님을 섬기는 성전이 원래의 기능을 회복하도록 해야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온 세상의 이방 민족들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소유하시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분을 경배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과 기도를 드리는 장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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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인 모임이므로 건물은 중요치 않다고 말한다. 과연 그러할까?​ 물론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러나 성도들이 교회로 모여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며 그분의 말씀을 듣는 장소의 중요성은 꼭 필요하다. 우리는 어느 곳에서든지 만나 주님을 경배하고 찬양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일을 위해 따로 떼어진 즉, 거룩히 구별된 장소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우리가 장소가 없어 공원에 매주 모인다고 하자. 비가 오는 날은 장애가 될 것이다. 또 소음공해로 인한 피해와 시끄럽다고 시에 고발이 들어올 수 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며 그분의 말씀을 듣는데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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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느헤미야가 성벽을 건축하려는 그 의의가 어디 있는지 생각해보라. 성벽과 성문은 하나님의 집이 제 기능을 하기위해 꼭 있어야 하는 대상들이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방해받지 않고 집중할 수 있도록 함에 있어 장소가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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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원수들의 첫 번째 공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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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하나님의 일들이 진행되기를 원치않는 사람들이 있다. 느헤미야에게도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들과 함께한 이스라엘의 원수들이 있어 이들은 성벽이 완공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그들은 느헤미야가 고국으로 돌아온 때부터 “이스라엘 자손의 번영을 추구하는 사람”인 느헤미야가 온 것을 못마땅했을 뿐 아니라 성벽을 재건축하고 성문을 다는 일을 시작했을 때 그들은 그 일을 비웃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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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 2:9-10 그때에 내가 강 건너의 총독들에게 이르러 왕의 편지를 그들에게 전하니 이제 왕이 이미 군대의 대장들과 기병들을 나와 함께 보내었더라. 10 호론 사람 산발랏과 암몬 족속인 종 도비야가 그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 자손의 번영을 추구하는 사람이 온 것으로 인해 심히 근심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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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 2:17-20 그 뒤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하는 고난을 너희가 보는도다.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그것의 성문들이 불탔으니,​ 오라, 우리가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여 다시는 수치거리가 되지 말자, 하고 18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내 위에 선하게 임한 하나님의 손과 또 왕이 내게 하신 말씀을 고하였더니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이처럼 그들이 자기 손을 강하게 하여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니라. 19 그러나 호론 사람 산발랏과 암몬 족속인 종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그 말을 듣고는 우리를 조롱하여 비웃고 업신여기며 이르되, 너희가 행하는 이 일이 도대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하기에 20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며 그들에게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그분께서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러므로 그분의 종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몫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념물도 없다, 하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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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후 성벽은 느헤미야의 지도아래 이스라엘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노력으로 재건축이 되기 시작하자 산발랏과 함께한 하나님의 원수들은 음모를 꾸미고 그 일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원수들의 공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대상이었다. 그들은 백성들의 마음이 주변 원수들의 위협으로 인해 약해지고 또한 그 일이 그들이 하기에는 너무 벅차다는 생각을 갖게끔 하여 스스로 일을 중단하게 함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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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 4:1-3 그러나 산발랏이 우리가 성벽을 건축하였다는 것을 듣고 노하여 크게 분개하고 유대인들을 조롱하며 2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의 군대 앞에서 말하여 이르되, 이 미약한 유대인들이 무슨 일을 하는가? 그들이 스스로를 견고하게 하려는가?​ 희생물을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끝내려는가?​ 불탄 쓰레기 더미에서 돌들을 꺼내어 되살리려는가?​ 하였더라. 3 이제 암몬 족속 도비야는 그 곁에 섰다가 이르되, 여우가 올라가서 그들이 건축하는 그것 즉 그들의 돌 성벽을 무너뜨리리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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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 4:7-11 그러나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족속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벽이 세워지고 그 무너진 곳이 메워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듣고는 그때에 심히 분노하여 8 그들이 다 함께 음모를 꾸미고 가서 예루살렘과 싸우고 그 일을 방해하기로 하였더라. 9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인하여 밤낮으로 그들을 향해 파수꾼을 세웠는데 10 유다는 이르기를,​ 짐 나르는 자들의 힘이 쇠하였고 쓰레기는 아직도 많으므로 우리가 성벽을 건축할 수 없다, 하고 11 우리의 대적들은 이르기를,​ 우리가 그들 한가운데로 들어가 그들을 죽이고 그 일을 그치게 할 때까지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리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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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일이 중단될 수 없음을 백성에게 알리고 오히려 그들에게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며 위대하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아들딸과 아내와 집을 위해 싸우라.”고 명령했다. 그들은 공사에서 일을 하면서 허리에 갈을 찬채 하였고 느헤미야를 따라 파수하는 자들 역시 반절은 일에 참여하고 반절은 파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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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그 일의 결과로 느 6:1에서 성벽이 그 안에 무너진 곳이 모두 보수되고 복구되었다. 아직까지도 성문의 문짝은 달리지 못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원수들에게 큰 근심이 되었다. 그들은 문짝만 달리면 끝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까지 사용한 전략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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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원수들의 두 번째 공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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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론사람 산발랏과 그의 종 도비야와 게셈과 원수들이 생각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연약하게 하기는 쉬우나 문제는 그들에게 강력한 야전사령관이 존재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느헤미야는 백성의 마음을 돌이켜 그들로 하여금 자원하여 주님을 섬기도록 이끌 수 있는 사람이었으며 또한 그에게는 권위가 있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원수들은 지금까지는 백성을 공략해서 그들의 마음을 연약하게 하려했으나 그것이 신통치 못함을 보고 직접적으로 느헤미야를 공략하기로 결정했다. 하나님의 원수들이 느헤미야에게 사용한 공략은 크게 네 개로 나뉠 수 있으며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원수들이 하나님의 일들을 중단하기 위해 지도자를 공략할 때 사용하는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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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이것을 알라. 하나님의 원수 마귀는 먼저 백성들의 마음을 연약하게 한다. 그들 스스로 하나님 섬기는 일을 중단하게 한다. 그 일이 성공적이지 못하면 마귀는 이제 교회의 지도자들을 공략 대상으로 삼을 것이다. 여기에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지도자들의 영적 분별력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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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친구가 되는 것처럼 하려는 원수들의 속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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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 6:1-4 이제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우리의 원수들 중 남은 자들이 내가 이미 성벽을 건축하여 그 안에 무너진 곳을 남기지 아니하였다는 것을 들었는데 (그때까지도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하였노라.) 2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야의 여러 마을 중 하나에서 함께 만나자, 하였으나 그들은 내게 해를 끼치려고 생각하였더라. 3 내가 그들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지금 큰일을 하는 중이므로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내가 그 일을 버려두고 너희에게로 내려가서 그 일이 중단되게 하겠느냐?​ 하매 4 그럼에도 그들이 네 번이나 이런 식으로 내게 사람을 보내되 내가 같은 식으로 그들에게 대답하였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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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벽이 이제 그 안에 무너진 곳을 남기지 아니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과 함께한 원수들은 지금이 아니면 절대 이스라엘을 더 이상 자신들의 영향에 둘 수 없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제안한 것은 백성이 아닌 느헤미야에게 직접적으로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다. “오라, 우리가 오노 평야의 여러 마을 중 하나에서 함께 만나자.” 오노 평야는 예루살렘에서 약 4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다. 느헤미야가 그곳에 가려면 그는 하나님의 일을 중단한 채 혹은 다른 사람에게 잠시 맡기고 떠날 수밖에 없는 거리이다. 그들이 어떤 제안을 했는지 성경은 기록하고 있지 않다. 다만 정황상 그들은 지금까지 그들이 하나님의 성벽 건설하는데 방해를 했던 점으로 미루어 그들의 방해에 대해 느헤미야에게 사과하고 그와 화해하며 잘 지내고 싶다는 식의 이야기를 전했을 것이다. 성벽 건축으로 느헤미야는 지금까지 제대로 쉼을 누릴 수 없었다는 점을 그들은 이용하여 그에게 후하게 대접하겠다고 했을 것이다. 그들은 느헤미야에게 힘든 일에서 이제 좀 며칠간 쉬고 우리와 친구가 되어보자 라고 제안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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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느헤미야는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속마음의 의도를 분별할 줄 아는 분별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산발랏의 친구가 되자는 제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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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종 하나님의 원수들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친구가 되자는 제안을 한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깨달아야 한다. 때로 그것은 영적 쇄락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원수들과 친구가 될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과 같은 일이다. 또한 하나님의 일들을 방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방법은 교회의 지도자들과 친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들의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행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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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헤미야는 그들의 제안의 숨겨진 의도가 무엇인지를 분별해냈다. “그들은 내게 해를 끼치려고 생각하였더라.” 느헤미야는 그들이 어떤 계략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그것은 자신에게 해가 됨을 알았다. 그들이 어떤 해를 끼치려 하는지는 어쩌면 그들은 느헤미야를 직접적으로 제거하려는 음모를 가졌을 수 있다. 아니면 그들은 그에게 향응을 제공함으로써 그의 명성에 해를 끼치려는 것일 수 있다. 그렇게 됨으로써 그들은 느헤미야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줄이고자 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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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헤미야는 그들의 제안에 사실 그대로를 전했다. “내가 지금 큰 일을 하는 중이므로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느헤미야의 일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중책이었다. 그것은 반드시 진행되어야 하며 느헤미야도 그 필요에 대해 알고 있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중책을 맡기셨다면 여러분은 지금 서있는 성벽에서 내려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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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여러분이 지도자의 자리에 있다면 여러분은 누구를 친구로 둘지에 대해 많은 분별력이 필요하다. 친구는 여러분의 삶과 결정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분의 친구로 인해 여러분도 동일하게 취급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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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적 분별력이다. 영적 분별력이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각에 따라 문제를 판단하는 능력을 말한다. 우리는 종종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속곤 한다. 그러나 주님은 사람이 보는 것같이 보지 아니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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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상 16:7 주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나 키의 크기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주는 사람이 보는 것처럼 보지 아니하나니 사람은 겉모습을 보나 주는 마음을 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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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분별력을 비판적이거나 부정적인 것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참된 분별력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별해낸다. 이것이 부족하면 사람들은 아첨과 신실한 조언을 분별해내지 못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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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우리가 영적 분별력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시는 시각에 대해 알아야 한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익숙해야 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 영적 분별력은 영적인 성숙에 크게 좌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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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 5:12-14 시간으로 보건대 너희가 마땅히 가르치는 자가 되었어야 할 터이나 하나님의 말씀의 첫째 기초 원리들을 남에게 다시 배워야 할 필요가 너희에게 있나니 너희가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젖을 필요로 하는 자가 되었도다. 13 젖을 사용하는 자마다 갓난아이이므로 의의 말씀에 능숙하지 못하니라. 14 그러나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들의 것이니 그들은 그것을 사용하여 자기 감각들을 단련시킴으로 선악을 분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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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님의 은사들 중 하나는 영들을 분별하는 것이다. 즉 분별력은 성령님으로부터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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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느헤미야에게 영적 분별력이 부족하였다면 그는 원수의 해악적인 초대를 두고 화해의 제스처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들의 초대에 대한 숨겨진 의도를 파악했다. “내가 지금 큰일을 하는 중이므로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내가 그 일을 버려두고 너희에게로 내려가서 그 일이 중단되게 하겠느냐?​” 느헤미야는 그들의 덪에서 빠져나갔을 뿐 아니라 자기가 해야 할 일에서 마음을 빼앗기지도 않았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를 알았으며 그 일이 중단되어서는 안 됨을 알았다. 그것은 원수들이 원하는 일이었다. 영적 분별력은 우리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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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원수의 간교한 중상모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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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 6:5-9 그때에 산발랏이 자기 종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같은 식으로 다섯 번째로 자기 종을 내게 보내며 6 그 편지에 쓰기를, 이교도들 가운데 그 일이 알려졌고 가스무도 너와 유대인들이 반역할 것을 생각한다고 말하나니 그런 까닭에 네가 성벽을 건축하여 이 말들과 같이 그들의 왕이 되려 하는도다. 7 또 네가 대언자들을 임명하여 예루살렘에서 너에 관해 선포하여 이르기를,​ 유다에 왕이 있다, 하게 하였으니 이제 이 말들대로 그 일이 왕에게 알려지리라. 그런즉 이제 오라, 우리가 함께 의논하자,​ 하였더라. 8 그때에 내가 그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기를,​ 네가 말한 것 같은 그런 일들은 내가 행하지 아니하였으며 네가 네 마음에서 그것들을 꾸며 내느니라,​ 하였으니 9 이는 그들이 다 우리를 두렵게 하며 이르기를,​ 그들의 손이 약하게 되어 그 일을 그치고 그것을 이루지 못하리라,​ 하였기 때문이라. 그런즉, 오 하나님이여,​ 이제 내 손을 강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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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발랏이 두 번째 사용한 전략은 중상모략이었다. 그는 “봉하지 않은 편지”를 보내어 중간에 사람들이 느헤미야에 대한 모략을 읽도록 두었다. 종종 비난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빨리 전파된다. 육신적인 사람들은 남을 비방하는 일을 즐겨하기 때문이다. 사탄의 지도자들을 무너뜨리는 방법 중 하나는 사람들 사이에 중상모략적인 말들이 퍼지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지도자를 신뢰하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하나님의 일이 중단되게 하려 하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다른 사람들에 대한 비방을 늘어놓는다면 여러분은 그들의 말 듣는데서 귀를 돌리는 것이 현명하다. 특히 그 대상이 지도자들이라면 더욱 주의하라.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은 마귀의 소통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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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발랏이 편지에 쓴 내용은 느헤미야가 전혀 행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산발랏은 어떤 의도로 편지에 그렇게 기록했겠는가?​ 먼저는 “봉하지 않은 편지”를 보냄으로써 사람들 사이에 중상모략이 퍼지게 함이었다. 두 번째는 그것으로 느헤미야가 두려움에 빠지게 하려는데 있다. “이제 이 말들대로 그 일이 왕에게 알려지리라.” 산발랏은 느헤미야가 두려움으로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빠지려니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안전할 것이다. 느헤미야는 그들의 의도를 간파했다. 그리하여 느헤미야는 그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할 때 “네가 말한 것 같은 그런 일들은 내가 행하지 아니하였으며 네가 네 마음에서 그것들을 꾸며 내느니라.”라고 했다. 느헤미야는 자신을 해명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그 소문의 근원지가 바로 산발랏 자신임을 지적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더 이상 산발랏이 그 일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또한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간구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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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발랏의 세 번째 의도는 느헤미야로 하여금 분노 가운데 일을 그르치게 만들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산발랏의 중상모략은 느헤미야가 지금까지 행한 일들에 대한 그의 선행을 완전히 오도하는 것이다. 산발랏의 계산에는 느헤미야가 분노로 사리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와 따지러든 어떻게든지 지금의 일에서 중단하고 나오게 하려는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일을 중단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차분하게 그들에게 적절한 대처를 한 것이다.
 +
 +마귀는 종종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들을 중단케 하려고 우리를 분노 가운데 두거나 혹은 두려움으로 움직이게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 스스로 일을 망치게 하려는 것이다. 두려움은 우리를 마비시킨다. 반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움직이게 한다. 만일 여러분이 지도자의 위치에 있다면 다른 사람들의 비방이나 중상모략에 너무 많은 생각을 두지 말라. 그런 일들은 분명 있을 것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내 입안의 혀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데 어찌 내가 다른 사람들의 혀를 통제할 수 있을 거라 바라겠는가?​”
 +
 +비방이나 중상모략을 들었을 경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느헤미야가 보여주었던 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길 간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의 삶속에서 나타나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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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 원수는 불명예스런 수치가 일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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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 6:10-14 그 뒤에 므헤다벨의 손자요, 들라야의 아들인 스마야가 갇혔기에 내가 그의 집에 가매 그가 이르기를,​ 그들이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집에서 성전 안에서 함께 만나고 성전의 문들을 닫자. 참으로 그들이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에 11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도망하리요?​ 나 같은 자로서 성전에 들어가 자기 생명을 구할 자가 누구이리요?​ 나는 들어가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12 보라, 내가 깨달은즉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지 아니하셨더라. 단지 도비야와 산발랏이 그를 고용하였으므로 그가 나를 향해 이런 대언을 선포하였더라. 13 그러므로 그들이 그를 고용한 목적은 나를 두렵게 하고 그렇게 하여 죄를 짓게 하며 또 악한 소문을 내려고 일을 만들어 나를 모욕하려 함이었더라. 14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대언자 노아댜와 대언자들 중 남은 자들이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으니 그들의 이 소행대로 그들을 기억하옵소서.
 +
 +세 번째로 산발랏이 시도한 방법은 느헤미야에게 수치스런 일 즉, 스캔들이 일어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스마야를 고용했다. 여기 보면 “갇혔기에”란 표현이 있다. 이것은 그가 감옥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격리되었음”을 보여주는 단어이다. 레위기 13장에 보면 제사장이 질병을 가진 사람에 대해 의심스러운 증상이 있으면 그를 “가두어 둘 것”으로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표현이 어색하다. 우리말로 “격리”하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이것은 스마야에게 어떤 질병이 있음을 보여준다. ​
 +
 +또한 해석에도 문제가 생겼다. “스마야가 갇혔기에 내가 그의 집에 가매”가 아니라 “이 일후에 내가 스마야의 집에 갔는데 그는 격리되어 있더라.” 라고 번역되어야 영어와 일치한다. 즉 느헤미야는 스마야를 문병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스마야가 하나님의 대언을 받았다고 하고 느헤미야를 불렀을 것이다. 하나님의 대언이 주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느헤미야는 당연히 그의 집을 찾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어떤 질병이 있어 그의 집에 격리되어 있음을 본 것이다. 그런데 그의 대언은 다음과 같았다. ​
 +
 +“그들이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집에서 성전 안에서 함께 만나고 성전의 문들을 닫자. 참으로 그들이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이 말을 들은 느헤미야는 두려움으로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담대했다. “나 같은 자가 도망하리요?​ 나 같은 자로서 성전에 들어가 자기 생명을 구할 자가 누구이리요?​ 나는 들어가지 아니하리라.” 스마야는 느헤미야의 마음에 두려움을 일으킴으로써 느헤미야가 두려움에 근거하여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게 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는 제사장들에게만 허용되어 있는 성전에 들어가 안전하게 있기를 간구한 것이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제사장이 아니었다. 스마야는 느헤미야에게 타협함으로써 박해를 피할 수 있는 쉬운 길을 제시한 것이다.
 +
 +그러나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결심한 담대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그는 두려움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스마야가 하나님께서 보낸 대언자가 아니고 산발랏이 고용한 협잡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만일 병든 스마야를 데리고 성전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는 스스로 믿는다고 하는 하나님께 대해 죄를 짓는 꼴이 된다.
 +
 +마귀는 지도자를 무너뜨리기 위해 거짓 목사들이나 종교지도자들을 이용하기도 한다. 산발랏과 도비야는 여대언자와 대언자들의 남은 자들을 이용하여 느헤미야가 종교적 덫에 빠지길 원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자신이 가진 지위와 신분을 이용해 거짓 대언이나 조언을 줌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중단하게 만들려하는 것이다. “그들이 그를 고용한 목적은 나를 두렵게 하고 그렇게 하여 죄를 짓게 하며 또 악한 소문을 내려고 일을 만들어 나를 모욕하려 함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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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 원수들의 은밀한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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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 6:17-19 또한 그 당시에 유다의 귀족들이 도비야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고 도비야의 편지도 그들에게 이르렀으니 18 이는 도비야가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이 베레기야의 아들 므술람의 딸을 취하였으므로 유다에서 그에게 맹세한 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더라. 19 또한 그들이 도비야의 선한 행실을 내 앞에서 말하고 또 내 말도 그에게 전하니 도비야가 내게 편지를 보내어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더라.
 +
 +분별력이 없는 지도자들은 원수들을 친구로 삼을 것이다. 그것은 원수들의 은밀한 전략이기도 하다. 원수들은 성벽과 성문이 건설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성벽과 성문이 건설되는 것은 막을 수 없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영향을 여전히 끼침으로써 자기들의 영향아래 있게 되도록 전략을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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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수들의 방법은 백성들 중 지위가 있는 사람들을 공략하는 것이었다. 이는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도비야는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은 므술람의 딸을 취함으로써 원수들은 이스라엘 가족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도비야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일들을 원치 아니하여 비방하고 방해하던 인물이 아니던가?​ 그런 사람을 사위로 삼고 또 그의 아들을 사위로 삼는 것은 그들에게 영적 분별력이 부족함을 보여준다. 귀족들 역시 지도자들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므로 지도자가 분별력이 없을 때 그들은 원수들을 오히려 친구로 여기며 또한 그들의 선으로 인해 악을 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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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크게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방해 및 그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느헤미야 13장을 보면 느헤미야가 왕에게 다시 가서 휴가를 얻어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놀라운 일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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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 13:4-7 이 일이 있기 전에 우리 하나님의 집의 방을 감독하는 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연합하였으므로 5 그를 위해 큰 방 하나를 예비하였는데 그 방은 예전에 그들이 음식 헌물과 유향과 기구들과 또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주도록 명령한 곡식과 새 포도즙과 기름의 십일조와 또 제사장들의 헌물을 두던 곳이더라. 6 그러나 이 모든 기간에 내가 예루살렘에 있지 아니하였나니 바빌론 왕 아닥사스다의 제 삼십 이년에 내가 왕에게 갔다가 며칠 뒤에 왕에게서 휴가를 얻어 7 예루살렘에 와서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해 하나님의 집 뜰에 방을 예비한 그 악한 일을 알게 되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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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원수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위해 하나님의 집 뜰에 있는 마련한 방을 차지함으로써 하나님의 일이 방해를 받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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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 13:8-13 그 일로 인해 내가 심히 근심하였으므로 도비야의 모든 집안 물건을 그 방 밖으로 내던지고 9 그때에 명령하여 그들이 그 방을 정결하게 하였으며 내가 하나님의 집의 기구들과 음식 헌물과 유향을 다시 거기로 가져다 놓았노라. 10 내가 또 그들이 레위 사람들의 몫을 그들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을 알게 되었으니 이는 일을 하던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자기 밭으로 도망하였기 때문이더라. 11 그때에 내가 치리자들을 꾸짖고 이르기를,​ 어찌하여 하나님의 집을 내버려 두었느냐?​ 하고 곧 그들을 함께 모아 다시 그들의 처소에 세웠더니 12 그때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즙과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보고에 들이므로 13 내가 제사장 셀레미야와 서기관 사독과 레위 사람들 중에서 브다야를 보고의 재무관으로 삼고 또 맛다니야의 손자요, 삭굴의 아들인 하난을 그들 다음가는 자로 삼았으니 그들은 신실한 자로 인정받았더라. 그들의 직무는 자기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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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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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원수들은 하나님의 일들이 중단되도록 은밀한 계략으로 지도자들을 공략한다. 만일 여러분이 지도자의 위치에 있다면 영적 분별력을 위해 기도하라.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과 하나님의 원수들이 사용한 방법과 느헤미야의 방법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하나님의 원수들은 속이는 것이며 해악적인 것이나 느헤미야는 영적으로 깨어있어 진리를 말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무해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잘 기억해야 할 것이다.
  
느6.1-9.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