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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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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8.1-3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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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5월 13일 주일 오전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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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말씀과 영적 소생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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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느헤미야 8장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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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 8:1-3 온 백성이 한 사람처럼 물 문 앞의 거리에 함께 모여 서기관 에스라에게 주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 책을 가져오라고 말하매 2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 책을 가지고 남녀 회중과 지각이 있어 들을 수 있는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3 물 문 앞의 거리 앞에서 아침부터 정오까지 남자와 여자와 깨달을 수 있는 사람들 앞에서 그 안의 것을 낭독하매 온 백성이 율법 책에 귀를 기울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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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 8:10 그때에 느헤미야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기름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며 아무것도 예비하지 못한 자들에게 일부를 보내라. 이 날은 우리 주께 거룩한 날이니라. 너희는 또한 슬퍼하지 말라. 주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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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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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참 성장해야할 아이가 먹는 것을 잘 먹지 않으면 키가 잘 크지 않게 된다. 가정에서는 밥 먹기를 원치 않는 자녀와 먹이려는 부모와의 싸움을 겪게 되곤 한다. 특히 아침 식사시간에 그런 경우가 많다. 아이의 성장을 염려하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녀가 아침 식사를 거르지 않기를 원하고 아이는 아침에 밥을 먹고 싶은 기분이 나지 않기 때문에 굶고 대신 입맛을 자극하는 몸에 해로운 인스턴트식품이나 군것질을 하려고 한다. 인터넷 신문을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세 개사에서 나오는 햄버거와 감자튀김에 대해 썩는지를 조사했는데 무려 4주가 지나도 곰팡이는커녕 전혀 썩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수제로 만든 햄버거는 4-5일이 지나자 썩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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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말씀은 종종 우리가 세끼마다 먹는 식사에 비교되곤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빵으로 비유하곤 한다. 성장하는 아이에게 식사를 거르는 것이 몸에 안좋은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적 성장에 큰 영향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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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축복하셔서 자신의 백성의 모든 영적 진보와 소생하는 일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성장하지 못하며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영적으로 회복되는 일에도 꼭 필요하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의 영적 소생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 과정을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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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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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헤미야 7장 1절을 보면 성벽이 건축된 후 문짝을 달아 이제 예루살렘 거주민들이 안전하게 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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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 7:1 이제 성벽이 건축되매 내가 문짝을 달고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임명한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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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뒤 하나님의 백성과 느헤미야가 가장 먼저 구했던 것은 영적인 부분이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법을 가르쳐 그 안에서 살도록 교육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았기에 그들을 위해 에스라를 성경교사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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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 8:1 온 백성이 한 사람처럼 물 문 앞의 거리에 함께 모여 서기관 에스라에게 주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 책을 가져오라고 말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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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찬가지로 교회의 사역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가르치는 일은 정말로 중요하다. 우리는 주의 첫날 즉 일요일을 집회로 모인다. 그것은 온 교회가 어떤 목적을 두고 한 자리로 모이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이 날 집회로 모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먼저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안에서 걷도록 하기 위함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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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엡 4:11-12 그분께서 더러는 사도로 더러는 대언자로 더러는 복음 전도자로 더러는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것은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고 섬기는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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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을 찬양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이것을 흔히 “예배”라 부른다. 오늘날 우리가 회중 집회로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방법은 어떻게 정해졌을까?​ 그것을 우리는 오늘 본문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흔히 장로교회나 감리교회와 같은 기존 교단 교회들이 너무 형식적이라고 비난하는 교회 형제들이 있다. 그들은 자유로운 형식의 모임을 지향한다. 형제교회가 그러하며 또한 독립침례교회에서도 그런 교회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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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마져 완전히 변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또한 우리가 주일날 회중으로 모이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기 위함에 있다. 구약의 모든 절기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고 해서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이던 집회의 태도마저 신약에 와서 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주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영이시므로 “영과 진리로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더 중시함을 보여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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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는 느헤미야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그리고 그분을 경배하고 찬양하기 위해 모인 하나님의 백성이 회중으로 모인 것을 보고 그들이 어떠한 방법 혹은 태도로 집회에 참석했는지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회중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경배하고 찬양하기 위한 집회를 가질 것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영적으로 소생되어 가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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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이 회중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자 했다.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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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 8:1-3 온 백성이 한 사람처럼 물 문 앞의 거리에 함께 모여 서기관 에스라에게 주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 책을 가져오라고 말하매 2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 책을 가지고 남녀 회중과 지각이 있어 들을 수 있는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3 물 문 앞의 거리 앞에서 아침부터 정오까지 남자와 여자와 깨달을 수 있는 사람들 앞에서 그 안의 것을 낭독하매 온 백성이 율법 책에 귀를 기울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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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효력있게 역사하여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지각에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말씀을 듣고 그 의미를 깨달아야 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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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이 회중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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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백성이 한 사람처럼 물 문 앞의 거리에 함께 모여 서기관 에스라에게 주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 책을 가져오라고 말하매”(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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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은 “온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갈망하였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 백성은 지난 세월 바빌론의 포로생활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귀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삶에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올 때에 말씀을 들으려는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은 채 교회에 와서 자리에 앉아 시간을 그냥 흘려보낸다. 그리고 설교가 끝나고 나면 자기에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하는 설교라고 말하곤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굶주려 있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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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이기 때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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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기아상태이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큰 슬픔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갈망함이 없이는 영적으로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마음을 두고 네 가지 밭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우리가 어떠한 마음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마음 밭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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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119:130-131 주의 말씀들이 들어오면 빛을 주며 이 빛이 단순한 자에게 명철을 주나이다. 131 내가 주의 명령들을 사모하므로 내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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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이 회중은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여 들었다. 그들은 낭독되고 설교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흘려보내지 않았다. 내가 듣는 그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변화시킨다고 생각해보라.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더 풍성한 생명과 영적 능력을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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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렘 23:29 주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산산조각 부수는 쇠망치 같지 아니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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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안에서 크게 역사할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의지를 꺽지 아니하신다. 주님은 우리가 자원하여 나오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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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회중은 “한 사람”처럼 모였을 뿐 아니라 “남녀 회중과 지각이 있어 들을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모였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말씀을 듣기 위해 회중 집회로 모일 때 여자들을 배제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대상은 남자와 여자 모두 포함된다. 뿐만 아니라 지각이 있어 들을 수 있는 모든 사람도 포함되었다.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할 수 있다면 그들 역시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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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이 회중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경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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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 8:3-7 물 문 앞의 거리 앞에서 아침부터 정오까지 남자와 여자와 깨달을 수 있는 사람들 앞에서 그 안의 것을 낭독하매 온 백성이 율법 책에 귀를 기울였더라. 4 서기관 에스라가 그들이 강단으로 쓰려고 만든 나무 강단에 서매 그의 오른편에는 맛디디야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가 섰고 그의 왼편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 섰더라. 5 (에스라가 온 백성 위에 있었으므로) 온 백성의 눈앞에서 책을 펴니 그가 책을 펼 때에 온 백성이 일어서니라. 6 에스라가 주 곧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송하매 온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며 머리를 숙여 얼굴을 땅에 대고 주께 경배하였더라. 7 또한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비야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이 백성으로 하여금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 백성은 자기 자리에 서 있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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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기관 에스라가 나무로 만든 강단에 올라서서 온 백성 앞에서 책 즉 율법 책을 폈을 때 온 백성이 일어났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전에 모두 일어난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설 때에 하나님 앞에 서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 회중은 성경을 낭독하고 또 설교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서 있었다. 여러분은 앉아서 편하게 설교를 듣지만 1900년대 초까지도 성경이 가르쳐지고 설교될 때 온 회중이 일어나서 경청하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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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이 회중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일어나서 경청한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의 예절에 어른이 오면 아랫사람은 일어나 어른을 맞이한다. 마찬가지로 이 회중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오신 것으로 여겼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경외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오늘날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함이 사라진지 오래된 것같이 보인다. 전파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두려움과 떨림으로 대하기보다는 내가 원치 않으면 듣지 않아도 되는 하나의 책으로써 대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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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교회에서 입는 옷은 내가 입는 옷들 중에서 좋은 옷들만 입는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는 잘 입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하나님을 만난다는 생각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실 때 모세에게 명령하여 백성이 셋째 날을 대비하게 하고 옷을 빨아 입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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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장로교회나 감리교회 등에서 강대상이 있는 곳을 거룩히 생각하며 심지어 신발을 벗고 올라오게 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강단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설교자를 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에 있다. 그러나 설교자가 낭독하고 설교할 때에 그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경외를 표해야 하는 대상이다. 그것은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가 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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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주의해야 한다. 느헤미야는 에스라를 세웠다. 성경은 에스라를 두고 무어라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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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7:6 이 에스라가 바빌론에서 올라왔는데 그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전에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서기관이더라. 주 그의 하나님의 손이 그 위에 있었으므로 왕이 그가 요구한 모든 것을 그에게 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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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7:10 이는 에스라가 주의 율법을 구하고 그것을 행하며 이스라엘에서 법규와 법도를 가르치려고 자기 마음을 예비하였기 때문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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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익숙한 서기관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고 그것을 행하며 또한 주의 말씀을 가르치려고 자기 마음을 예비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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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 이 회중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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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라가 주 곧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송할 때에 온 백성은 “아멘, 아멘”으로 화답했다. 아멘은 “그렇게 되기를 원하나이다.” 혹은 “그렇게 될 것입니다.”란 뜻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믿음으로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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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믿음으로 받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천국과 지옥의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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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전 2:13 이런 까닭에 우리가 또한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를 드림은 너희가 우리에게서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들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그 말씀이 또한 믿는 너희 안에서 효력 있게 일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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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 4:2 우리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도 복음이 선포되었으나 선포된 그 말씀이 그것을 들은 자들 속에서 믿음과 섞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들에게 유익을 끼치지 못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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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서 유익을 끼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될 것이라고 믿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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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의 일은 회중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도록 함으로써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을 갖도록 함에 있다. 나는 여러분이 잘 깨닫도록 도와줄 수는 있어도 여러분이 믿음을 갖는 것은 스스로가 결정을 해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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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V. 이 회중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했다. 9-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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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 8:9-12 온 백성이 율법의 말씀들을 듣고 울므로 디르사다인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서기관인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친 레위 사람들이 온 백성에게 이르기를,​ 이 날은 주 너희 하나님께 거룩한 날이니 애곡하지 말며 슬피 울지 말라, 하고 10 그때에 느헤미야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기름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며 아무것도 예비하지 못한 자들에게 일부를 보내라. 이 날은 우리 주께 거룩한 날이니라. 너희는 또한 슬퍼하지 말라. 주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11 이처럼 레위 사람들도 온 백성을 조용하게 하며 이르기를,​ 오늘은 거룩한 날이니 조용히 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매 12 온 백성이 자기들의 길로 가서 먹고 마시며 일부를 보내고 크게 기뻐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자기들에게 밝히 드러난 그 말씀들을 깨달았기 때문이더라.
 +
 +에스라와 그와 함께한 레위인들이 회중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했을 때 그들은 말씀을 듣고 울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들이 죄에 대해 마음이 찔렸고 또 그로 인해 마음이 슬퍼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율법으로 죄를 알게 된다고 말한다. ​
 +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그분의 눈앞에서 의롭게 될 수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알게 되느니라.
 +
 +우리가 잘못되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찌른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마음이 찔릴 때 두가지 반응을 보인다. 첫 번째는 무시하거나 화를 낸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거나 화를 내는 것과 같다. 두 번째 반응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걷지 못했거나 어겼다는 자책감으로 마음이 슬퍼한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지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가?​ 만일 그러하다면 여러분은 성장하고 변화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
 +그런데 종종 우리의 실패는 슬픔에 잠겨버린다는데 있다. 느헤미야는 “너희는 또한 슬퍼하지 말라. 주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라고 말했다. 우리는 슬픔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주를 기뻐해야 한다. 그것은 주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또한 주로 인해 기뻐하는 것을 말한다. 나의 죄를 지적하는 말씀을 거부하지 않고 기쁨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그 말씀 안에 거하려 하며 나의 죄를 용서하시는 주님을 기뻐하는 것이다.
 +
 +우리의 삶의 변화의 큰 힘은 “주를 기뻐하”는데 있다. 그것은 주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찌르는 말씀을 두고도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시편기자는 “많은 노략물을 얻는 사람같이 내가 주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나이다.”라고 말했다.(시 119:162) 또한 복있는 사람은 “주의 율법을 기뻐하며 그분의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자라고 말한다(시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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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 이 회중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13-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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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 8:13-18 그 이튿날 온 백성의 아버지들의 우두머리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들을 깨닫기 위해 함께 서기관 에스라에게로 모여 14 주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신 율법에서 기록된 것을 찾은즉 이스라엘 자손은 일곱째 달 명절에 초막에 거할지니라 하였고 15 또 그들은 자기들의 모든 도시와 예루살렘에 널리 알리고 선포하여 이르기를,​ 산에 가서 올리브나무 가지와 소나무 가지와 은매화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들의 가지를 가져다가 기록된 대로 초막을 지으라, 하라, 하였더라. 16 이에 백성이 나가서 그것들을 가져다가 자기를 위해 초막을 짓되 각 사람이 자기 집 지붕 위에나, 자기 뜰에나, 하나님의 집 뜰에나, 물 문 거리에나 혹은 에브라임 문 거리에 짓고 17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자들의 온 회중이 초막을 짓고 그 초막 밑에 앉았으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시대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적이 없었더라. 거기에 심히 큰 기쁨이 있었더라. 18 또한 그는 첫째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 책에서 낭독하고 그들은 이레 동안 명절을 지키며 여덟째 날에 규례대로 엄숙한 집회를 열었더라.
 +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았다면 이제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매튜 헨리는 “거룩한 기쁨은 우리의 순종이라는 바퀴에 기름을 칠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와 같이 주를 기뻐하는 것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힘을 준다. 우리 안에 주를 기뻐하는 마음이 있을 때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과정이 되지만 주를 기뻐하지 않을 때에는 마치 형벌을 받는 것과 같다. 유대인들은 주님을 기뻐했기 때문에 기꺼이 초막에 지낼 것을 명령한 율법에 순종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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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의 힘으로 살고자 결심한 백성은 자신에게 묻혀있는 진리를 발견하곤 한다. 여기 하나님이 백성 역시 그들에게 묻혀있는 즉 실행되지 않고 있는 진리 즉 초막절기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수백 년 동안 초막절기를 제대로 실행하지 아니했다. 그러나 이 백성은 자기 조상들이 무시했다고 해서 그대로 따르지 아니했다. 그들은 말씀의 진리대로,​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음성대로 걷기로 결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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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인 성도의 가장 큰 특징은 성도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한다는 점이다. 물론 성령님은 말씀을 통해 역사하신다. 우리에게 우리가 읽은 말씀을 기억나게 하고 또 깨우쳐 주신다. 여기 이스라엘 백성 역시 “주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신 율법에서 기록된 것을 찾”았다고 말한다. “주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이것은 큰 진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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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백성 중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교회에 오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변화를 거부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있다. 그것은 자기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 가운데서 걷기를 싫어하는 것이다. 그것은 주의 말씀을 기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를 기뻐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은 동일시 되어야 한다. 그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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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막을 짓고 그 안에 앉아있는 일은 편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주를 기뻐하는 회중은 자원하여 주의 명령에 순종하여 모든 백성이 초막을 짓고 그 밑에 앉았다. 그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자기 집에 초막을 지었고 또 어떤 사람은 여건이 안되어 거리로 나아가 거기서 초막을 지은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 일에 동참했다는 사실이다.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초막을 지어 그 아래 앉을 것을 명령하신 것은 그들이 이집트에서 건짐을 받아 나와 초막아래서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이집트에서 건짐을 얻었음을 기억하게 한다. 또한 초막은 그들의 삶이 순례자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의 여정이 순례의 여정이었듯이 우리의 삶 역시 그러하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초막을 명령하신 것은 그것이 앞으로 있을 천년왕국을 예표하기 때문이었다. 초막은 앞으로 주님이 오실 것이란 소망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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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은 “온 회중”이 초막절을 지켰다고 말하였을 뿐 아니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시대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이 의미는 그 전에 한 번도 초막절을 지낸 적이 없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솔로몬이나 이스라엘 백성은 초막절을 지켜왔다. 그러나 온 회중이 자원하여 기쁨으로 그 일을 한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백성은 모두 의무감에 그 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회중은 주를 기뻐하는 것이 그들이 힘이었다. 그들은 주를 기뻐함으로 그분의 명령 지키는 것이 어렵지 않았고 또한 자원하여 순종했다. ​
 +
 +여러분이 말씀의 은혜를 받고 기쁨으로 받으며 나의 죄들을 용서하시고 은혜와 긍휼과 사랑으로 대하시는 주님을 기뻐할 때에 주를 섬기고 성도들을 섬기는 일을 기쁨으로 행하기도 한다. 그것은 여러분에게 아무런 짐이 되지 아니한다. 주님은 나에게로 와서 나의 멍에를 매라고 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죄의 멍에를 버리고 더 가벼운 주님의 멍에를 메려고 하지 않는다.
 +
 +=====VI. 결론=====
 +
 +느헤미야 8장은 영적으로 소생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
 +  회중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자 했다.
 +  회중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했다.
 +  회중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했다.
 +
 +순종함에 있어 주를 기뻐하는 것은 우리의 힘이 된다.
  
느8.1-3.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