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도구

사이트 도구


느8.1-3.2

차이

이 문서의 선택한 이전 버전과 현재 버전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차이 보기로 연결

느8.1-3.2 [2017-06-20 09:04] (현재)
줄 1: 줄 1:
 +==2011년 4월 3일 주일 오전설교==
 +
 +======영적소생(부흥)의 결과======
 +
 +본문말씀:​ 느헤미야 8:1~3
 +
 +=====I. 서론=====
 +
 +====A. 사전적 의미====
 +
 +오늘은 부흥 혹은 영적소생에 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부흥이란 단어는 성경에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한국식의 독특한 말에 불과합니다. 원 의미는 “소생”입니다.
 +
 +영어로 부흥 혹은 소생은 “revival”입니다. 이 단어의 동사의 뜻은 “다시 살아나다,​ 회복하다”란 의미를 갖습니다. 성경에서 쓰인 예를 잠깐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삿 15:19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턱의 우묵한 곳을 쪼개시니 거기서 물이 나오더라. 삼손이 그 물을 마시매 그의 정신이 돌아와 그가 회복되었으므로 그곳의 이름을 엔학고레라 하였더라. 그것이 이 날까지 레히에 있느니라.
 +
 +왕상 17:22 주께서 엘리야의 목소리를 들으셨더라. 그 아이의 혼이 다시 아이에게 들어가서 그가 살아났으므로
 +
 +왕하 13:21 그들이 어떤 사람을 묻을 때에, 보라, 그들이 사람들 한 떼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그 죽은 사람을 엘리사의 돌무덤에 던지매 그 사람이 밑으로 내려가 엘리사의 뼈에 닿을 때에 소생하여 자기 발로 일어섰더라.
 +
 +====B. 영적 자각====
 +
 +그러나 이 단어가 단지 육체적으로 다시 살아나거나 혹은 정신이 회복하는 것만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
 +사 57:15 높고 높으며 영원에 거주하고 이름이 거룩함인 이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겸손한 영을 지닌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것은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들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케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영적 각성(spiritual awakening)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두고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떻게 정의를 내렸을까요?​
 +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소생케 하려고 찾아오시는 것으로 그들의 마음을 다루고 그들의 삶에서 그분의 역사를 뿌리깊게 행하신다.("​God'​s quickening visitation of his people, touching their hearts and deepening his work of grace in their lives."​) - J. I. Packer
 +
 +하나님의 타락한 백성을 회개와 믿음과 순종으로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the sovereign act of God, in which He restores His own backsliding people to repentance, faith and obedience."​) - Stephen Olford
 +
 +주님의 임함에서 오는 새롭게 되는 때("​times of refreshing from the presence of the Lord." (Acts 3:19)) - J. Edwin Orr
 +
 +하나님의 백성을 각성케하고 소생케 함으로써 진실되게 하고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걷게 하는 것("​the awakening or quickening of God's people to their true nature and purpose."​) - Robert Coleman
 +
 +교회가 타락한 상태에서 회복하고 죄인들이 회심하는 역사("​the return of the Church from her backslidings,​ and the conversion of sinners."​) - Charles Finney
 +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는 성령님의 놀라우신 역사("​an extraordinary movement of the Holy Spirit producing extraordinary results."​) - Richard Owen Roberts
 +
 +하나님의 백성의 영적 쇠락의 위험에서 회개하여 기도와 말씀을 통해 그들을 회복케 하여 더욱 살아있는 영적 삶과 증인의 삶과 일꾼의 삶을 살게 하는 것("​the work of the Holy Spirit in restoring the people of God to a more vital spiritual life, witness, and work by prayer and the Word after repentance in crisis for their spiritual decline."​) - Earle Cairns
 +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깨어있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종종 우리는 넘어지고 미끄러져서 죄 가운데 빠져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붙잡고 세워주지 아니하면 일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되곤 합니다.
 +
 +시 85:6 주께서 우리를 되살리사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게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
 +
 +=====II.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말씀=====
 +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영적으로 각성하게 되는데는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물론 우리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알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풍성히 역사하기 위해서 또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느헤미야서를 잘 보기 바랍니다.
 +
 +이제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안정적인 삶을 살기위해 꼭 필요한 성벽을 완성했습니다. 이제 그들의 물질적 필요가 채워진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이제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들을 저버리고 우상들을 섬기는 죄들로 말미암아 앗시리아와 바빌론에게 완전히 멸망했고 그들은 포로로 사로 잡혀가 거기서 살아야했습니다. 이제 대언자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그 땅이 칠십년의 안식을 누리고 난 후 이스라엘 백성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의 집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삶의 중요성을 더욱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들에게 먼저 성전을 건축하도록 명령하셨고 이제 느헤미야의 지도로 성벽도 완성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현재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부분을 바로 잡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을 위해 느헤미야 8장을 보면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9장에 와서는 죄들을 자백하게 하며 10장 이후로 성벽을 봉헌하며 13장에서는 그들의 인간관계를 바로잡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진행되기 위해 가장 먼저 와야 할 것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영적 자각 혹은 소생에 있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하나님의 도시인 예루살렘을 봉헌하기 앞서 이 일이 먼저 와야 함을 알았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교회와 기독교 사역의 주요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 최우선적으로 오지 않을 때 우리는 타락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올바른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느헤미야 8장은 우리가 영적으로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것은 우리가 ​
 +
 +  -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이고(1절)
 +  -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며(2~8절)
 +  -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고(9~12절)
 +  -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13~18절).
 +
 +=====III.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위해 모이라.=====
 +
 +느 8:1 온 백성이 한 사람처럼 물 문 앞의 거리에 함께 모여 서기관 에스라에게 주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 책을 가져오라고 말하매
 +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여야 합니다. 많은 경우 영적 회복은 하나님의 교회로 모였을 때 이루어집니다. 전파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심의 역사가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몸이 피곤하다든지 혹은 바쁘다든지 하는 여러 가지 이유를 핑계삼아 교회로 모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삶은 더욱 피폐되어 갑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삶을 축복하지 않습니다. 삶은 더욱더 무거워져 가고 마음도 평안하지 못합니다. 할수만 있다면 교회로 모이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의 영적인 회복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세상의 많은 것들로 오염되고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으로 인해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이 들은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서 찔림을 주시고 회심케 하심으로 우리를 소생케 하실 수 있습니다.
 +
 +본문말씀을 보면 온 백성이 한 사람처럼 물 문 앞의 거리에 함께 모였습니다. 성경에서 물은 정결케함을 말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
 +엡 5:26~27 이것은 그분께서 말씀을 통해 물로 씻음으로 교회를 거룩히 구별하고 정결하게 하려 하심이요 27 또 그것을 점이나 주름이나 그런 것이 없는 영광스런 교회로 자기를 위해 제시하려 하심이며 교회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
 +또한 물은 만족과 관련해서 성령님을 상징합니다. ​
 +
 +요 7:37~39 마지막 날 곧 명절의 그 큰 날에 예수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 기록이 말한 것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라. 39 (그러나 이것은 그분께서 자기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더라.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아니하셨으므로 아직 성령님께서 주어지지 아니하였더라.)
 +
 +영적으로 회복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온 백성이 물 문 앞에 모인 것처럼 성령님의 역사를 기대하면서 말씀 앞에 모이십시오. 어떤 말씀이 여러분에게 역사할지 모릅니다.
 +
 +=====IV.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라.=====
 +
 +느 8:2~3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 책을 가지고 남녀 회중과 지각이 있어 들을 수 있는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3 물 문 앞의 거리 앞에서 아침부터 정오까지 남자와 여자와 깨달을 수 있는 사람들 앞에서 그 안의 것을 낭독하매 온 백성이 율법 책에 귀를 기울였더라.
 +
 +두 번째로 우리가 해야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단지 읽었다고 혹은 들었다고해서 그것이 우리의 삶과 환경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들어와 그것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각의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8장에는 깨닫다 혹은 지각이 있다라는 표현이 총 여섯 번 등장합니다(2,​3,​7,​8,​12,​13).
 +
 +====A. 깨닫는 자====
 +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대상은 “남자와 여자와 깨달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즉 깨달을 수 있는 나이가 된 사람들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깨닫기에 너무 어리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의 아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십시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의 쉽게 하는 실수는 아이들이 떠들기 때문에 그들을 뒤에 유아실에 방치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아직 습관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냥 자리에 앉게 두시면 습관도 형성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
 +====B. 깨닫는 결과====
 +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할까요?​ 그것은 열매가 전혀 없거나 30배 60배 100배의 차이로 드러납니다. 우리 주님께서 하신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생각해보십시오(마 13:1~9, 18~23). 주님께서는 “좋은 땅 속에 떨어져 얼마는 백 배, 얼마는 육십 배, 얼마는 삼십 배의 열매를 낸” 땅을 두고 그 해석을 이렇게 하셨습니다:​ “좋은 땅 속에 씨를 받은 자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그것이 또한 열매를 맺어 얼마는 백 배, 얼마는 육십 배, 얼마는 삼십 배를 내느니라.”
 +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나 그것을 마음에 두어 깨닫지 못할 때에는 사악한 자가 와서 그의 마음속에 뿌려진 것을 채어 간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한다면 결국 그 뿌려진 씨는 마귀가 앗아가는 것입니다.
 +
 +====C. 깨닫게 하는 자====
 +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자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됩니다. 전에 목사의 일 중 하나가 지식과 명철로 먹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
 +렘 3:15 내가 또 내 마음에 맞는 목양자들을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먹이리라.
 +
 +7~8절을 보면 에스라와 그와 함께한 자들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깨닫게 합니다. 이것이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의 양떼를 지식과 명철로 먹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와 그것을 어떻게 삶에 적용할 것인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에스라”를 택했습니다. 그는 에스라가 그 일에 아주 적합한 자라고 여겨졌던 것입니다. 에스라 7장을 보면 우리는 에스라에 대한 놀라운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전에 주신 모세의 율법ㅇ 익숙한 서기관”(라 7:​6)이었을 뿐 아니라 “주의 율법을 구하고 그것을 행하며 이스라엘에서 법규와 법도를 가르치려고 자기 마음을 예비”한 자였습니다(라 7:10). 즉, 에스라는 느헤미야가 자신을 불러 하나님의 백성에게 율법을 가르쳐달라는 부탁을 받기 전에 이미 그 일을 하기로 마음을 정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는 아닥사스다 왕에게서도 인정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
 +
 +라 7:25 에스라여,​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네 하나님의 법들을 아는 자들을 행정관과 재판관으로 세워 강 건너에 있는 온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너희는 그것들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가르치라.
 +
 +====D.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존중====
 +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안다면 우리는 강단에 서서 말씀을 전하는 자들의 삶과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들을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3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낭독됩니다. 그런데 5절을 보니 하나님의 말씀이 낭독하기 위해 에스라가 책을 펼 때에 앉아있던 온 백성이 일어섭니다. 이들이 일어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이 들을 것은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강단은 누군가의 의견이나 사견을 펴는 자리가 아닙니다. 듣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듯이 들어야 하므로 설교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자라야 합니다.
 +
 +또한 온 백성은 낭독되는 율법 책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것은 역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의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합니다. 또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한지를 보여줍니다. 형제사랑침례교회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할 때에 다 함께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리에 앉아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에 경의를 표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설교자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알고자 하는 열의가 많을수록 깨닫는 것은 더욱 많게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
 +=====V.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라.=====
 +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고 그 의미를 깨닫고 풀이해주자 회중의 첫 반응은 말씀으로 인해 그들의 마음이 찔리고 주께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한 것으로 인한 슬픔으로 그들은 울었습니다(10절). 여기보면 레위 사람들이 온 백성에게 “이 날은 주 너희 하나님께 거룩한 날이니 애곡하지 말며 슬피 울지 말라.”라고 하며 그들이 슬퍼하지 말고 오히려 주를 기뻐하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레위기 23:26~36을 보면 일곱째 달에 있는 절기들의 순서가 나와 있는데 느헤미야 8:14에서 초막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현재 속죄일(10일,​ 레 16장)과 장막절(15일) 중간에 끼어있는 안식일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레위 사람들이 슬퍼하지 말라고 했을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죄로 인한 찔림을 가져다 줍니다. 그것은 자책과 슬픔으로 나타나 회개로 인도합니다.
 +
 +고후 7:9~10 이제 내가 기뻐함은 너희가 근심하였기 때문이 아니요, 오히려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에 이르렀기 때문이라. 너희가 하나님께 속한 방법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어떤 일에서도 너희가 우리로 인하여 상처를 받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를 이루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거니와 세상의 근심은 사망을 이루느니라.
 +
 +그러나 슬픔만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기쁨도 가져다 줍니다.
 +
 +시 119:111 내가 주의 증언들을 영원히 유산으로 삼았사오니 그것들은 내 마음의 기쁨이니이다.
 +
 +렘 15:16 내가 주의 말씀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먹으매 주의 말씀이 내게 기쁨과 마음의 즐거움이 되었사오니,​ 오 주 만군의 하나님이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불리나이다.
 +
 +요 15:11 내가 너희에게 이 일들을 말한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어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
 +타락한 크리스천에게 있어 하나님의 말씀은 때로 죄로 인한 근심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마치 여자가 산고를 겪으면 근심하거니와 아이를 낳으면 기쁨으로 인해 그 고통을 기억하지 아니함같이 회개 후에 찾아오는 기쁨은 그 전의 슬픔을 잊게 합니다.
 +
 +그렇다면 레위인들은 백성들에게 기뻐하라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크리스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무거운 근심을 가져다 주듯이 회개하는 심령에게 있어 하나님의 말씀은 죄들의 용서와 교제의 회복 및 구원의 기쁨과 같은 것들을 가져다 줍니다. 죄에 대해 회개한 혼은 이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들을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을 때에 그것은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는 묵상이 요구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는 그분의 명령에 큰 기쁨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
 +
 +시 1:2 그는 주의 율법을 기뻐하며 그분의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하는도다.
 +
 +=====VI.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
 +
 +마지막으로 우리가 느헤미야 8장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을 볼 수 있습니다.
 +
 +느 8:14~16 주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신 율법에서 기록된 것을 찾은즉 이스라엘 자손은 일곱째 달 명절에 초막에 거할지니라 하였고 15 또 그들은 자기들의 모든 도시와 예루살렘에 널리 알리고 선포하여 이르기를,​ 산에 가서 올리브나무 가지와 소나무 가지와 은매화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들의 가지를 가져다가 기록된 대로 초막을 지으라, 하라, 하였더라. 16 이에 백성이 나가서 그것들을 가져다가 자기를 위해 초막을 짓되 각 사람이 자기 집 지붕 위에나, 자기 뜰에나, 하나님의 집 뜰에나, 물 문 거리에나 혹은 에브라임 문 거리에 짓고
 +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할 때에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힘을 가져다 줍니다. 매튜 헨리는 “거룩한 즐거움은 순종이라는 바퀴에 기름을 쳐줍니다.” 라고 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명령의 목적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행하지 않거나 행해서는 아니되는 것을 행함으로 죄를 짓는 것입니다. 말씀의 본래의 목적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
 +약 1:22~25 오직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너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거울로 자기의 본래 얼굴을 들여다보는 사람과 같으니라. 24 그는 자기를 바라보고 자기 길로 가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곧 잊어버리거니와 25 누구든지 자유롭게 하는 완전한 법을 들여다보며 그 안에 거하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그 일을 행하는 자니 이 사람은 자기가 행하는 일에서 복을 받으리라.
 +
 +=====VII. 결과=====
 +
 +이스라엘 백성은 일곱째 달 명절에 초막에 거하라는 명령에 순종했는데 그들의 순종을 두고 성경은 “눈의 아들 여호수아 시대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적이 없었더라. 거기에 심히 큰 기쁨이 있었더라.” 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 전에 한 번도 장막절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은 장막절을 지켜왔습니다. 솔로몬의 때에 그러했고(대하 8:13) 포로에서 돌아온 뒤에도 그러했습니다(에스라 3:1~4). 그런데 성경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뒤의 문장이 설명합니다. “거기에 심히 큰 기쁨이 있었더라.”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은 장막절을 지키더라도 모두가 다 즐거움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주의 명령이므로 해야되는 일이므로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스스로 기쁜 마음을 가지고 장막절을 지켰습니다. ​
 +
 +이것이 영적으로 각성한 혹은 영적으로 회복된 크리스천이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뻐할 때에 주님께 순종하고 그분을 섬기면 그분을 섬기는 것이 힘들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기쁨이 됩니다. ​
 +
  
느8.1-3.2.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