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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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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7.14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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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월 15일 주일 오전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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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적소생의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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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역대기하 7장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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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 7:14 내 이름으로 불리는 내 백성이 자기를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고 자기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면 내가 하늘에서부터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며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
 +
 +=====I. 서론=====
 +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 신실했던 때가 있었으며 또한 그렇지 못했던 때가 있음을 볼 수 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이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가까이 걸었으며 하나님께서는 놀랍도록 이스라엘 민족을 축복하신다. 다윗을 이어 솔로몬이 왕이 되었고 그는 다윗이 세우고자 했던 성전을 건축했다. 오늘 이야기는 솔로몬이 세운 성전을 이제 봉헌한 내용을 담고 있다. 1절을 보면 솔로몬의 기도가 끝나고 왕과 온 백성이 주 앞에 희생물을 드리고 제사장들은 각자 맡은 직무대로 섬기며 이레동안 명절을 지키고 여덟째 날에 엄숙한 집회를 연 후 백성이 각자 장막으로 돌아 갔음을 볼 수 있다. 12절을 보면 그 뒤 하나님께서 밤에 솔로몬에게 나타나 성전에 대해 자신의 눈과 마음을 두시겠다고 하시면서 그와 언약을 맺는 것을 볼 수 있다.
 +
 +오늘 읽은 말씀은 하나님께서 솔로몬과 맺은 언약의 일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솔로몬의 언약은 다윗의 언약의 연장이었다. 그런데 이 구절은 부흥 즉 영적 소생과 관련하여 종종 언급되는 구절이다. 그 이유는 주께서 말씀하신대로 이스라엘이 죄를 지어 하나님께 멀어지고 이방 신들을 섬기다가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으로 인해 고난 중에 오늘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셨던 이 말씀대로 “자기를 낮추고 기도하여 주님의 얼굴을 구하고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났”을 때 주님은 이스라엘을 그들의 고난에서 건지시고 그들의 땅에 내려진 역병이나 기근과 같은 것들을 제거하심으로써 그들의 땅을 고쳐주셨다. 하나님과 주의 백성간의 관계가 회복되고 주님은 그들에게 약속하신 복을 주시곤 하셨다. 이것이 이스라엘 역사의 반복과도 같았다.
 +
 +역대기하 12장을 보면 솔로몬의 아들이던 르호보암은 주의 율법을 버렸고 온 이스라엘도 그와 함께 함으로써 그들이 주께 죄를 지어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치도록 허락하셨다. 그 때 주님은 대언자 스마야를 보내 르호보암과 유다의 통치자들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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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 12:5-6 그때에 대언자 스마야가 시삭으로 인해 예루살렘에 함께 모인 르호보암과 유다의 통치자들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이르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시삭의 손에 넘겨주었노라,​ 하니라. 6 이에 이스라엘의 통치자들과 왕이 스스로 겸손히 행하며 이르되, 주는 의로우시나이다,​ 하매
 +
 +대언자 스마야의 입을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르호보암과 유다의 통치자들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겸손히 하고 그분의 은혜를 구하였을 때 주님은 그들을 이집트왕 시삭의 손에 완전히 넘기지 아니하시고 회복케 하셨다. ​
 +
 +대하 12:12 르호보암이 스스로 겸손히 행하매 주께서 그에게서 진노를 돌이키사 그를 다 멸하지 아니하셨으며 또 유다에서도 일들이 좋아지니라.
 +
 +역대기하 28장을 보면 아하스가 유다의 왕으로 세움을 얻었으나 그가 주앞에서 올바른 것을 하지 아니하고 우상을 숭배하던 이스라엘 왕들의 길들로 걸으며 바알의 형상을 만들며 온갖 죄악을 행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그를 시리아 왕의 손에 넘겨주셨고 또 주변의 민족들의 침략을 당하게 되었다. ​
 +
 +대하 28:18-19 블레셋 사람들도 유다의 저지대 지방과 남부 도시들을 침략하여 벧세메스와 아얄론과 그데롯과 소고와 그것의 마을들과 딤나와 그것의 마을들과 또 김소와 그것의 마을들을 빼앗고 거기 거하였으니 19 이는 이스라엘 왕 아하스가 유다로 하여금 벌거벗게 하고 또 주께 크게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로 인하여 유다를 낮추셨기 때문이더라.
 +
 +그 뒤 29장을 보면 히스기야가 유다의 왕으로 세움을 얻었는데 그는 다윗이 행한 모든 것에 따라 주의 눈앞에서 올바른 것들을 행하고 그분의 얼굴을 구하며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자 하였다. 히스기야는 온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자 하였으며 이전에 조상들이 지은 죄들로 인해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으며 또한 그와 함께 온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려 나아오고 왕의 명령으로 하나님의 유월절을 회복케 하였다(대하 30:1). 그가 다스리던 때에 아시리아 왕 산헤립이 유다를 정복하려고 도시를 에워싸고 히스기야의 마음을 연약하게 하려고 온갖 말을 하였으나 왕은 주의 얼굴을 구하고 그분께 간구하며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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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 32:20-23 이런 까닭에 히스기야 왕과 아모스의 아들 대언자 이사야가 하늘을 향하여 기도하고 부르짖으니라. 21 주께서 한 천사를 보내시매 그가 아시리아 왕의 진영에서 강한 용사와 지도자와 대장들을 다 멸하였으므로 이에 그가 수치스런 얼굴로 자기 땅으로 돌아갔더라. 그가 자기 신의 집에 들어갔을 때에 그의 배 속에서 나온 자들이 거기서 그를 칼로 죽였더라. 22 이와 같이 주께서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거주민들을 아시리아 왕 산헤립의 손과 다른 모든 자들의 손에서 구원하사 사면에서 그들을 인도하시매 23 많은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주께 드리고 또 선물을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리므로 이후로부터 히스기야가 모든 민족들의 눈앞에 크게 되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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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이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의 연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언약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진 말씀처럼 대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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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문자적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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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은 그 해석과 적용이 있다. 어떤 성경 구절은 나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진 구절들이 있고 어떤 구절들은 나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지지는 않았으나 나에게 적용될 수 있는 구절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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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 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것은 우리의 배움을 위하여 기록되었으니 이것은 우리가 성경 기록들이 주는 인내와 위로를 통해 소망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라.
 +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것은 우리의 배움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지 우리가 지키도록 주어진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구약의 율법은 우리가 지키도록 기록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배움을 위하여 기록되었다. 율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을 알게 된다. 그분의 사랑과 거룩함과 의와 지혜와 공의와 거룩히 구별하심과 또한 구원에 대한 계획 등과 같은 것들을 보게 된다.
 +
 +오늘 본문 말씀도 그렇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진 말씀이 아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말씀이다. 앞구절과 뒷구절들을 같이 보아 문맥을 살펴보라.
 +
 +대하 7:12-16 주께서 밤에 솔로몬에게 나타나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곳을 택하여 내게 희생물 드리는 집으로 삼았으니 13 혹시 내가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시 메뚜기들에게 명령하여 땅을 삼키게 하거나 혹시 내 백성 가운데 역병을 보낼 때에 14 내 이름으로 불리는 내 백성이 자기를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고 자기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면 내가 하늘에서부터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며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 15 이제 이곳에서 드리는 기도에 내가 눈을 열고 귀를 기울이리니 16 이는 내가 이제 이 집을 택하고 거룩히 구별하여 내 이름이 거기에 영원히 있게 하려 하였기 때문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영구히 거기에 있으리라.
 +
 +17절 이후로 주님은 다윗의 언약을 언급하는 것을 봄으로써 이 언약이 다윗의 언약의 연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4절에서 하나님께서 치유하시겠다고 한 것은 “땅”이다. 그것은 젖과 꿀이 흐른다고 말씀하시던 가나안 땅을 두고 말한다. 실제로 13절에서 문제가 된 것은 “땅”이다. “혹시 내가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가뭄은 땅을 갈라지게 한다. “메뚜기들에게 명령하여 땅을 삼키게 하거나” 여기도 마찬가지로 “땅”이 등장한다. “혹시 내 백성 가운데 역병을 보낼 때에” 역병은 그 땅이 오염되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스라엘의 민족적 죄는 그들이 살고 있는 땅에 하나님의 저주가 내리도록 한다. 그러나 민족적 회개는 그 땅을 하나님께서 치유하고 하나님의 축복이 내리도록 한다. 또한 기도는 성전에서 드려지는 기도임을 주님이 15절에서 명확하게 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그 성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파괴되었고 그 뒤로 지어진 스룹바벨 성전과 헤롯 성전 역시 무너지고 없다. 따라서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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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종 크리스천 국가로 알려진 미국의 목사들이 이 구절을 들어 미국의 땅이 병들어가고 있는 근본적인 치유는 민족적 회개가 필요함을 역설하는 경우가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을 두고서도 동일한 입장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구절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로 인해 땅이 부패함으로써 노아와 그의 가족만을 남기고 옛세상을 멸하셨으며 또한 가나안 땅의 민족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쫒겨난 것은 그들이 우상을 섬기고 또한 죄로 가득한 삶을 삶으로써 하나님께서 그 민족들을 심판하신 결과임을 성경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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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영적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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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모든 말씀이 우리의 배움을 위하여 기록된 것처럼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영적 소생과 관련된 중요한 원칙들을 보여준다. 비록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눈과 마음을 두시는 성전은 없지만 오히려 믿는 자의 몸이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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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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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렸던 것처럼 오늘날 크리스천 역시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니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자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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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 7:14 내 이름으로 불리는 내 백성이 자기를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고 자기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면 내가 하늘에서부터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며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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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크리스천이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그분의 뜻 가운데서 성령충만을 구하면서 걷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크리스천들이 죄와 연루된 삶을 살고 있다. 세상 안에서 살아가면서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지 않고 믿지 않는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하나님을 향해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할 크리스천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조금도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그렇기 때문에 남들의 시선을 피하면서 주일은 교회를 다닌다는 자족감으로 만족하기 위해 큰교회를 찾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교회를 선호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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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85:6 주께서 우리를 되살리사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게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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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주님은 “영이 뜨거운 가운데 주를 섬기”기를 원하신다. 주님께서 주신 므나를 손수건에 싸서 고이 간직하고선 주님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주님이 주신 므나가 여기있나이다.” 하고 손수건에 싸인 므나를 드리는 것이 주님의 뜻이 아니다. 그런데 그것을 아는 크리스천들 역시 주님을 향해 뜨겁게 달아오르지 않는다. 무엇이 영적으로 잠들어버린 그들을 깨우는 것을 막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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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마지막 때의 교회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 될지를 알고 미리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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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 3:14-16 라오디게아 사람들의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요,​ 신실하고 진실한 증인이요,​ 하나님의 창조를 시작한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라.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나는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그런즉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므로 내가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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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위해 뜨겁든지 아니면 진리를 위해 냉철하게 차겁든지 하기를 원하신다. 미지근한 것은 차거운 것보다도 못한 것이다. 많은 크리스천의 삶이 주님을 믿기는 한데 세상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채 세상을 향해 앉아있는 롯의 모습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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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영적으로 미지근한 크리스천들로 하여금 영적 각성 혹은 소생하는 것을 막는가? 오늘 말씀은 크리스천들이 영적으로 소생하지 못하는 방해물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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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V. 겸손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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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 7:14 내 이름으로 불리는 내 백성이 자기를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고 자기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면 내가 하늘에서부터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며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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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내 이름으로 불리는 내 백성이 자기를 낮추고”라고 말씀하셨다. 크리스천이 영적으로 소생하지 못하고 미지근한 첫 번째 원인은 겸손의 부재에 있다. 겸손은 다른 사람의 권위와 명령과 인도에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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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자 곧 그가 하늘의 왕국에서 가장 큰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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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아이는 부모의 권위에 스스로 자신을 낮춘다. 또한 명령하는 대로 행한다. 부모가 인도하는대로 아이는 따라온다. 사람들은 겸손을 단지 칭찬을 받을 때 우쭐하지 않는 것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겸손은 권위와 연관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자신을 굴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과 명령이 나의 생각과 판단보다 앞서는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따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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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러분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안다. 그는 솔로몬이 아직 살아있을 때에 그 앞에 섰던 노인들의 권고를 듣고 겸손히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것을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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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 10:6-11 르호보암 왕이 자기 아버지 솔로몬이 아직 살아 있을 때에 그 앞에 섰던 노인들과 의논하여 이르되, 너희는 이 백성에게 대답하도록 내게 어떤 권고를 주겠느냐?​ 하니 7 그들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이 백성에게 친절히 대하며 그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에게 좋은 말로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토록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니라. 8 그러나 왕이 노인들이 자기에게 준 권고를 버리고 자기 앞에 서 있던 자들 곧 자기와 함께하며 자라난 청년들과 의논하여 9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우리가 이 백성에게 대답하도록 어떤 조언을 주겠느냐?​ 백성이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지워 준 멍에를 조금 편하게 하소서, 하였느니라,​ 하매 10 그와 함께하며 자라난 청년들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백성이 왕께 아뢰어 이르기를,​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해 그것을 조금 가볍게 하소서, 하였은즉 왕은 이같이 그들에게 대답하고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내 새끼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리니 11 내 아버지는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지워 주었으나 나는 너희 멍에에 더 얹으리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벌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벌하리라,​ 하소서, 하니라.
 +
 +겸손의 반대는 교만이다. 사람들은 남의 권위나 명령이나 조언이나 인도에 자신을 맡기지 아니하고 스스로 생각한대로 선택하고 판단하고 삶을 살아가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는 파라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출 10:3 모세와 아론이 파라오에게 들어가 그에게 이르되, 히브리 사람들의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서 네 자신을 낮추기를 거부하려느냐?​ 내 백성을 가게 하여 그들이 나를 섬기게 하라.
 +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획을 파라오에게 보이셨을 때 파라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자신을 겸손히 하여 하나님의 명령대로 수행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가 원하는 대로 판단하는 대로 행하고자 했다.
 +
 +우리 육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자신이 즐거워하고 익숙한대로 걷고자 하는 것이 육신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온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겸손을 가르치셔야 했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낮추어 행하는 법을 배우게 하셨다.
 +
 +신 8:2 너는 주 네 하나님께서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너를 인도하신 그 모든 길을 기억할지니 이것은 그분께서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또 네가 그분의 명령을 지키려 하는지 그렇지 아니한지 알고자 하심이라.
 +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시기를 원하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 가운데 살기를 원하신다.
 +
 +사 57:15 높고 높으며 영원에 거주하고 이름이 거룩함인 이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겸손한 영을 지닌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것은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들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
 +성경에서 부흥 혹은 영적 각성/​소생의 예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요나서이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섬기고 죄로 가득한 니느웨를 멸하기 앞서 자신의 대언자 요나를 보내어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에 대한 엄중한 경고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
 +
 +욘 3:4-8 비로소 요나가 그 도시로 들어가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라. 5 이에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며 그들 중에 가장 큰 자로부터 가장 작은 자에 이르기까지 굵은 베옷을 입었고 6 말이 니느웨 왕에게 이르매 그가 자기 왕좌에서 일어나 자기 몸에서 옷을 벗어 내려놓고는 굵은 베옷으로 몸을 덮고 재 속에 앉았더라. 7 또 그가 왕과 왕의 고관들의 칙령으로 니느웨 전역에 선포하고 널리 알리게 하며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가축 떼나 양 떼나 어떤 것도 맛보지 말지니라. 그들이 먹지도 말고 물을 마시지도 말며 8 사람과 짐승이 굵은 베옷을 입고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참으로 그들이 각각 자기의 악한 길과 자기 손의 폭력에서 떠날지니라.
 +
 +니느웨 백성과 왕은 요나의 입으로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믿음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앞에 스스로를 낮추고 회개하기 시작했다.
 +
 +벧전 5:5-6 젊은 사람들아,​ 너희도 이와 같이 장로에게 복종하고 참으로 다 서로에게 복종하며 겸손으로 옷 입으라.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강한 손 밑에서 스스로 겸손하라. 그리하면 정하신 때에 그분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
 +=====V. 기도의 부재=====
 +
 +대하 7:14 내 이름으로 불리는 내 백성이 자기를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고 자기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면 내가 하늘에서부터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며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
 +
 +두 번째로 영적 각성을 막는 장애물은 “기도의 부재”이다. 기도는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하신다는 것을 말한다. 기도의 부재는 반대로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약 4:2-3 너희가 욕심을 내도 갖지 못하고 죽여서 갖고자 해도 얻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워도 갖지 못함은 너희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너희가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그것을 너희의 정욕에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
 +오늘날 모든 교회에서 기도는 빠지지 않는다. 크리스천의 생활의 많은 부분이 기도로 시작하고 끝난다. 문제는 많은 기도가 형식적이고 의식적이며 진정성이 담겨있지 않는데 있다. 영적 각성을 이끄는 기도는 “의로운 자의 효력있고 뜨거운 기도”이다.
 +
 +약 5:16 너희 잘못들을 서로 고백하고 너희가 병 고침을 받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 의로운 자의 효력 있고 뜨거운 기도는 많은 유익이 있느니라.
 +
 +이 부분을 단지 병든 자의 고침만 생각하지 말라. 17절은 의로운자의 효력있고 뜨거운 기도의 예로 엘리야를 언급했다. 또한 19-20절은 회심의 사역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한 사람의 효력있고 뜨거운 기도는 혼들을 회심하도록 이끌 것이다.
 +
 +나는 여러분에게 위대한 부흥설교자로 유명한 디 엘 무디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고자 한다. 한번은 미국의 시카고에서 사역을 하던 그가 휴가차 영국으로 간 적이 있었다. 그 해가 그에게 안식년이었으로 무디는 설교에 대한 계획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는 영국에서 한 목사를 만나게 되었고 그 목사는 유명한 무디에게 자기 교회에 와서 설교를 해줄 수 있냐고 청해왔다. 그래서 무디는 그 목사의 교회에 가서 설교하게 되었다.
 +
 +오전 예배가 끝나고 무디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참으로 이런 교회는 처음봤다. 교회가 영적으로 완전히 죽은 교회같다. 이 사람들에게 저녁예배도 말씀을 전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후회스럽다. 하지만 약속 때문에 무디는 저녁 예배에 나가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다. 설교 중반쯤 되었을 때 무디는 사람들이 살아난 것처럼 보였으며 사람들을 구원으로 초청할 필요를 강하게 느꼈다. 그래서 크리스천이 되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자리에서 일어남으로써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랬더니 수많은 사람들이 일어났다. 무디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제 말뜻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 중 크리스천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예배가 끝난후 심방실로 오시면 제가 상담을 해드리겠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무디가 상담실로 갔을 때 거기에는 사람들이 가득해 있었다. 무디는 사역자에게 “이게 어찌된 일인가요?​”라고 물었고 사역자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내일 밤도 설교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
 +그 다음날 무디는 휴가를 보내기 위해서 아일랜드행 기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아일랜드에 도착해서 기차에 내려보니 그에게 전보가 와 있었다. “돌아오십시오. 부흥이 시작되었습니다.” 무디는 서둘러서 기차에 올라타 그 교회로 돌아가서 10일동안 저녁 집회를 계속했다. 그동안 400여명의 사람들이 초청에 임했다.
 +
 +무디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영적으로 죽어있어 보였는데 갑자기 변화가 있었다. 그 배경에는 80세가 넘은 메리 앤 애덜라드(Mary Ann Adelard)란 이름을 가진 과부가 신문에서 디 엘 무디의 설교시리즈를 읽은 후 매일 같이 하나님께서 디 엘 무디를 자기 교회로 보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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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적으로 각성하기를 원하는가?​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그분을 섬기는 삶을 살며 의미있는 인생을 살고자 원하는가?​ 영적 부흥은 무릎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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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륭한 영적 각성가였던 찰스 피니는 “기도는 영적 각성으로 이끄는 일련의 사건들을 연결하는 필수적인 것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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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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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 7:14 내 이름으로 불리는 내 백성이 자기를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고 자기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면 내가 하늘에서부터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며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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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적 각성이 일어나지 않는 세 번째 이유는 “주님의 얼굴을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것은 내 눈이 그분을 향해있는 것을 말한다. 그분의 도우심과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분의 목적과 인도하심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최우선순위로 두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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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들어있는 크리스천도 깨어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앞에서 의미있는 삶을 살기를 간구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나에게 영적 부흥이 있을 수 있을지를 간구한다. 그러나 우리는 영적 부흥을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간구하며 그분의 얼굴을 구해야 한다. 시편기자는 자신이 영적으로 낙망했을 때 그분의 얼굴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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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42:5-6 오 내 혼아, 어찌하여 네가 낙심하느냐?​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느냐?​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분의 얼굴의 도우심으로 인하여 내가 여전히 그분을 찬양하리로다. 6 오 나의 하나님이여,​ 내 혼이 내 속에서 낙심하므로 내가 요르단 땅과 헤르몬 족속의 땅과 미살 산에서부터 주를 기억하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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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마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이기 때문이요,​”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의에 주리고 목마라 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는 삶의 무엇을 내 최우선순위로 두고 있는가? 나의 생각과 행동에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여러분은 하나님에 대한 첫사랑을 간직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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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 2:4-5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조금 있나니 이는 네가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이라. 5 그러므로 네가 어디로부터 떨어졌는지 기억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하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네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속히 네게 가서 네 등잔대를 그것의 자리에서 옮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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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무엇을 추구하며 인생을 살고 있는가? 여러분의 눈은 어디에 있는가? 돈인가? 명예인가?​ 쾌락인가 아니면 술이나 학위과 같은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분의 뜻을 구하며 살고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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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8:14 가시나무 사이에 떨어진 것은 말씀을 듣고 나아가다가 이 세상 삶의 염려와 재물과 쾌락으로 숨이 막혀 완전함에 이르는 열매를 내지 못하는 자들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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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느웨를 생각해보라. 사람들은 자기들의 눈을 자기들을 만족시킬 것들을 구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임박한 심판의 소식을 듣고 그들은 하나님을 구하는 일을 최우선적으로 했다. 그분의 얼굴의 은혜를 간구하기 시작했을 때 니느웨는 영적으로 깨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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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I. 악한 길에서 떠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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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 7:14 내 이름으로 불리는 내 백성이 자기를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고 자기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면 내가 하늘에서부터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며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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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느웨는 하나님께 부르짓으며 간구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악한 길에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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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욘 3:8-10 사람과 짐승이 굵은 베옷을 입고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참으로 그들이 각각 자기의 악한 길과 자기 손의 폭력에서 떠날지니라. 9 하나님께서 돌아서시고 뜻을 돌이키사 자신의 맹렬한 분노에서 떠나심으로 우리가 멸망하지 아니할는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라. 10 하나님께서 그들이 행한 일 곧 그들이 자기들의 악한 길에서 돌이킨 것을 보시고 재앙 즉 친히 그들에게 행하리라고 말씀하신 그 재앙에서 뜻을 돌이키사 그것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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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한 길에서 떠나는 것은 죄를 버리고 거룩을 붙잡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선하심만 바라보고 그분의 의로우심과 거룩하심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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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5:16 너희 잘못들을 서로 고백하고 너희가 병 고침을 받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 의로운 자의 효력 있고 뜨거운 기도는 많은 유익이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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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고보는 “의로운 자”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생각해보라. 죄를 버리지 않으면 그 죄가 다시 나를 옛생활로 데려갈 것이다. 죄에 대한 변명이나 합법화가 아니라 죄를 버리는 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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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 28:13 자기 죄들을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려니와 누구든지 그것들을 자백하고 버리는 자는 긍휼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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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한 길에서 떠나는 것은 나의 습관을 바꾸는 것과도 같다. 죄를 범하게 하는 습관이나 삶의 방식에서 떠나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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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적 소생/​각성은 자기 죄에 대해 솔직하지 못한 사람에게 오지 않는다. 자기 죄들을 자백하고 버리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돌아서는 자들을 주님은 찾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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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렘 29:13 또 너희가 마음을 다하여 나를 찾으면 나를 찾고 나를 만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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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II.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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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85:6 주께서 우리를 되살리사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게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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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며 그분의 뜻에 따라 삶으로써 주님의 눈에 의미있는 삶을 살길 원하신다. 만일 우리가 잠들어 있다면 이제 우리가 깨어야할 시간이다. “너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빛을 주시리라.”(엡 5:14).
  
대하7.14.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