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도구

사이트 도구


딛1.1-5

차이

이 문서의 선택한 이전 버전과 현재 버전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차이 보기로 연결

딛1.1-5 [2017-06-20 09:04] (현재)
줄 1: 줄 1:
 +==2014년 10월 26일 주일오전설교==
 +
 +======하나님의 사람 - 디도======
 +
 +본문말씀:​ 디도서 1장 1-5절
 +
 +=====서론=====
 +
 +지금까지 우리는 사무엘상을 살펴보았다. 잠깐 눈을 돌려 신약 중 하나를 살펴보고 다시 사무엘하로 넘어가고자 한다. 오늘 우리가 볼 인물은 “디도”이다. 여러분은 디도에 대해 얼마나 생각해보았는가?​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생각하면 사도 바울이나 사도 베드로 혹은 사도 요한 그리고 바나바와 실라 혹은 디모데나 누가를 생각할 것이다. 우리의 마음에 디도는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 만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인 디도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저 역시 디도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본 적이 없음을 인정하고 싶다. 이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디도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그것은 저에게 도전과 용기를 주었고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도 동일한 축복이 있기를 원한다.
 +
 +=====주해(註解)=====
 +
 +**딛 1:1-4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의 믿음에 따라, 하나님의 성품을 따르는 진리를 인정함에 따라 2 영원한 생명의 소망 안에서 사도가 되었는데 이 생명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약속하셨으나 3 자신의 말씀은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의 명령에 따라 내게 맡겨진 복음 선포를 통하여 정하신 때에 드러내셨느니라. 4 공통된 믿음을 따라 나의 아들이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곧 우리의 [구원자]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
 +우리가 디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디도라는 이름을 사도행전에서 볼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도행전에는 예수님이 들려 올라가신 이후로 사도들의 행적에 대해 보여준다. 거기에는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다. 대부분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성령님께 온전히 순종하여 많은 주의 일들을 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디도란 이름이 담겨있지 아니하므로 우리는 그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이 디도에게 직접적으로 서신을 보낸 적이 있는데 오늘 우리가 보는 디도서이다. 디도서는 흔히 목회 서신서라 불린다. 그것은 목회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
 +
 +여러분이 킹제임스 흠정역이나 혹은 영어 킹제임스성경을 보면 딛 3:15이 끝나고 그 뒤에 “¶ 크레테 사람들의 교회의 첫째 감독으로 임명받은 디도에게 마케도니아의 니코폴리스에서 써서 보내다.”란 문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성경의 일부가 아니라 킹제임스성경을 번역한 번역자들의 주석이다. 이것과 함께 디모데후서 6장의 끝에도 “¶ 에베소 사람들의 교회의 첫째 감독으로 임명받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둘째 서신을 바울이 네로 앞에 두 번째 불려나갈 때에 로마에서 써서 보내다.”란 문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이것은 성경의 일부가 아니라 번역자들의 주석이다. 문제는 이 주석이 옳지 않다는데 있다. 저 역시 예전에는 그것이 사실로 생각하였으나 성경을 알면서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주석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디도는 크레테 섬의 첫 목사였다고 생각하고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의 첫 목사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먼저 에베소 교회를 생각해보자.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에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행 20:17)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음의 당부를 주었다.
 +
 +행 20:28 ¶ 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온 양 떼에게 주의를 기울이라. [성령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로 삼으사 [하나님]의 교회 곧 그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먹이게 하셨느니라.
 +
 +이 장로들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이었다. 에베소에 있는 여러 교회들의 장로들이 아니라 에베소에 있던 한 교회의 장로들이었다. 그것은 17절에서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들을 두고 바울은 “감독자”라고 말한다. 영어로는 overseer로 번역된 이 단어가 바울 서신에서 흔히 보이는 “감독”이라고 번역된 동일한 단어이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명령하여 교회를 먹이게 하셨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분명히 장로들이자 목사들임을 알 수 있다. 성경에서 목사는 장로이자 감독으로 불린다. 그렇다면 이미 에베소 교회에는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두 서신을 보내기 전에 이미 목사들이 있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번역자들은 디모데가 첫 번째 감독이었다는 주석을 달았을까?​ 우리는 여기서 번역자들이 생각하던 “감독”에 대한 개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또한 성경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이 생각한 감독의 개념은 마치 카톨릭의 주교들 위에 있는 대주교나 혹은 감리교회에서 목사들 위에 있는 감독과 같은 개념이다. 이것은 성경과 맞지 않다. 우리가 보는 디도서에서도 5-7절을 보면 장로와 감독은 동일한 직분임을 알 수 있다. 성경에서 장로는 여러 의미로 사용되나 여기서 사용된 의미는 영적으로 연장자를 말한다. 디모데후서에서 보는 동일한 현상이 디도서에서도 나타난다. 디도는 과연 크레테 섬에서 첫번째 목사였는가?​ 아니다. 이미 크레테에서는 교회가 있었다. 바울이 디도를 크레테에 남겨 두었던 이유는 그로 하여금 그곳에 교회를 개척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교회들을 바로 세우고 또한 각 도시에서 장로들을 임명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일반적으로 목사 혹은 장로에게 맡겨진 사역은 거의 그들이 죽음으로써 사역을 끝마치는 데까지인데 반해 디도는 잠시 동안 크레테에서 사역을 하도록 보냄을 받았다. ​
 +
 +딛 3:12 내가 아데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 니코폴리스에 있는 나에게 오도록 힘쓰라. 내가 거기서 겨울을 보내기로 작정하였노라.
 +
 +바울은 당시 니코폴리스에 있었고 디도에게 이 서신을 받으면 사역을 아데마나와 두기고에게 맡기고 디도 자신은 바울에게 올 것을 힘쓰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처음부터 크레테에 오랫동안 남겨지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그는 감독 즉 목사로 세움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딛 1:5에서 “내가 너를 세운 것같이”란 바울이 자신의 사역을 위해 사도직의 대행인으로 디도를 세운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디도나 디모데를 두고 “감독”이라 생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 둘이 사도 바울의 사역을 돕도록 세움을 받은 자들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사도의 권한을 위임하여 사도 바울을 대신하여 섬겼던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권한과 권위는 사도 바울의 권한과 권위를 위임받은 권한이었기에 디도서와 디모데전후서에서 보이는 이들의 권위는 장로들 즉 목사들의 권위 이상이었다. 따라서 목회서신서를 대할 때 이 두 사람의 권위는 사도 바울에게서 위임받은 사도의 권위라는 점을 마음에 두고 서신서를 대해야 한다. ​
 +
 +4절을 보면 바울은 디도를 두고 “나의 아들”이라 부르고 있다. 그런데 영어를 보면 “my own son”이라 말한다. 우리말로는 own을 번역하기가 매끄럽지 않아 생략되었다. 바울은 디도를 두고 내가 직접 낳은 아들이라 말하고 있다. 이 표현은 바울이 디모데를 부를 때 사용하던 표현과 동일하다. 물론 바울이 육체적으로 직접 낳은 아들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믿음 안에서” 바울은 직접 디도와 디모데를 낳은 것이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이 두 사람은 바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왔으며 이제 그 두 사람은 바울을 쫓아 주님을 섬기기로 자기들을 헌신하였다. 우리는 이 두 사람을 배제하고 바울의 사역을 말할 수 없다. 이 두 사람은 바울의 사역에서 많은 비중 있는 일들을 행하였기 때문이며 바울은 이 두 사람을 필요에 따라 자신의 권위를 가지고 사도의 일을 하도록 보내곤 하였다. 디모데와 디도를 생각해보자. 이 두 사람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다. 먼저 디모데는 유대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리스 사람이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유대인이었다. 따라서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복음 전파를 위하여 디모데로 하여금 할례를 받게 하였다.
 +
 +행 16:1-3 그때에 그가 더베와 루스드라에 이르렀는데,​ 보라, 거기에 디모데라는 이름의 어떤 제자가 있더라. 그는 어떤 여인 곧 믿는 유다 여인의 아들이었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리스 사람이더라. 2 그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움에 있던 형제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더라. 3 바울이 그를 데리고 가려 할 때에 그 지역에 있던 유대인들로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그에게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들이 그의 아버지가 그리스 사람인 줄 다 알았기 때문이더라.
 +
 +반면 디도는 그리스 사람이었으며 바울은 디도로 하여금 할례를 받는 것을 강요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복음의 진리를 위하여 디도로 하여금 할례받는 것을 반대하였다.
 +
 +갈 2:1-5 그 뒤 십사 년이 지나서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도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노라. 2 내가 계시로 말미암아 올라가 내가 이방인들 가운데서 선포하는 그 복음을 그들에게 전달하되 명성 있는 자들에게는 개인적으로 하였으니 이것은 어찌하든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던 그리스 사람 디도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4 이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우리의 자유를 엿보아 우리를 속박하려고 몰래 들어왔으나 5 우리가 그들에게 단 한 시간도 굴복하지 아니하였으니 이것은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게 하려 함이라.
 +
 +이 때가 사도행전 15장의 사건이다. 당시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긴 은혜의 복음을 변호하기 위하여 예루살렘교회로 갈 때에 디도를 데리고 갔다. 그렇다면 디도가 바울의 사역에 합류한 것은 사도 바울의 사역에서 매우 이른 시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왜 사도행전에는 디도의 이름이 전혀 기록되지 않고 있는가?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가정을 할 수 있다. 먼저 우리는 사도 바울과 함께 사역의 기간 동안 그와 함께 하였던 그의 주치의 “누가”(Luke)를 알고 있다. 그런데 누가의 이름은 사도행전에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사도행전의 저자가 “누가”이기 때문이다. 누가가 바울의 사역에 동참하게 된 것은 행 16:​10부터이다. 그 부분부터 선교 일행을 칭할 때 “우리”라는 호칭으로 말한다. 그 전까지는 “그들”이라 불렀다. 따라서 어쩌면 디도는 누가와 친 형제일 가능성이 있다. ​
 +
 +디도는 바울의 사역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먼저 디도는 사도 바울을 기쁘게 하고 힘을 주는 자였다.
 +
 +고후 2:12-13 또한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려고 드로아에 이르매 [주]께서 내게 문을 열어 주셨으되 13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였으므로 내가 내 영 안에서 안식을 얻지 못하여 그들과 작별하고 거기서 마케도니아로 들어갔노라.
 +
 +디도는 사도 바울에게 큰 힘을 주는 자였던 것이다. 그가 어떤 뛰어난 말을 하기보다는 그의 존재만으로도 바울은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주님께서 바울에게 드로아에서 복음의 문을 열어주셨음에도 바울은 그와 함께한 디도를 만나지 못했을 때 영적으로 안식하지를 못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디모데와 마찬가지로 디도는 바울이 직접 갈 수 없는 곳에 대신 바울의 사도의 권위를 가지고 가서 사도 바울의 역할을 대신하였다. 우리가 목회서신인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를 보면 어떤 차이를 볼 수 있는데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에는 바울이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교회의 질서에 대해 소상히 가르치는데 반해 디도서에서는 그렇지 않다. 전체적인 부분을 간략히 말하는 정도에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바울이 디모데를 더 사랑하고 디도를 덜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바울의 성품에 맞지 않다. 따라서 디모데에 비해 디도는 매우 성숙한 크리스천이었을 것이란 가정을 해 볼 수 있다. 그는 바울이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성숙한 크리스천이었을 뿐 아니라 사도 바울이 그에게 맡긴 사역을 매우 훌륭히 해내었다. 고린도 교회가 여러 가지 죄들로 연루되고 영적으로 교만에 빠져 있었으며 분열 가운데 있었을 때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바로 잡고자 직접 그곳으로 가고자 하였지만 그럴 수 없었다. 바울은 그 때 고린도 성도들을 위한 서신을 작성하여 디도 편으로 그 서신을 보내고 그를 통해 교회를 바로 잡는 사역을 맡긴다. 그리고 디도는 기쁜 소식을 바울에게 전하였다.
 +
 +고후 7:13-14 그런즉 우리가 너희의 위로를 통하여 위로를 받았고 참으로 디도의 기쁨으로 인해 넘치도록 더욱 기뻐하였으니 그의 영이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다시 활력을 얻었느니라. 14 내가 너희에 관하여 무엇인가를 그에게 자랑하였어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라. 오히려 우리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진실하게 말한 것 같이 우리가 자랑한 것 즉 내가 디도 앞에서 행한 자랑이 진실임이 드러났도다.
 +
 +바울은 디도가 자원함으로 갔으며 또한 그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임을 말한다.
 +
 +고후 8:16-17 그러나 디도의 마음속에 열심을 내어 너희를 돌보려는 같은 생각을 넣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7 참으로 그가 권면의 말을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더욱 열심을 내어 자원함으로 너희에게 갔느니라.
 +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성령님을 통하여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신다. 만일 우리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께 우리 자신을 내어 드리고 그분께서 우리의 마음에 넣어 주시는 생각에 복종한다면 주님은 우리를 통하여 디도에게 역사하셨던 것처럼 그렇게 역사하실 것이다. 디도는 스스로 자원함으로써 문제가 많은 고린도 교회로 가서 그들이 하나님 안에서 회복하고 주님을 섬기도록 이끌었을 뿐 아니라 그들이 자원하여 당시 고난 가운데 있던 예루살렘교회를 돕는 일에 참여하도록 이끌었다.
 +
 +고후 8:6-7 그러므로 우리는 디도에게 요청하여 그가 이미 시작하였은즉 같은 은혜를 또한 너희 안에서 끝낼 것을 구하였느니라. 7 그러므로 너희가 모든 일 곧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열심과 우리를 사랑하는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할지니라.
 +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일 년전에 이 일을 계획하였으니 그것을 이제 완수할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권고한다.
 +
 +고후 8:10-11 이 일에 내가 충고하노니 이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니라. 너희가 일 년 전에 행하기를 시작하였을 뿐 아니라 열심히 하였나니 11 그러므로 이제는 그것을 행하여 완수하라. 이미 하려고 준비되어 있은즉 너희가 가진 것으로 완수할지니라.
 +
 +따라서 디도의 고린도에서의 사역은 적어도 일 년 이상 지속된 것임을 알 수 있다.
 +
 +5절을 보면 바울은 디도를 크레테에 남겨 두고자 함을 본다.
 +
 +**딛 1:5 이런 까닭으로 내가 너를 크레테에 남겨 두었나니 그것은 곧 네가 부족한 것들을 바로잡고 또 내가 너를 세운 것 같이 각 도시에서 장로들을 임명하게 하려 함이니라.**
 +
 +바울이 디도를 크레테에 남겨 두었다는 것은 바울 역시 크레테에 디도와 함께 있었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언제 시점인가?​ 우리가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은 크레테 섬에 간 적이 없다. 따라서 이 서신은 사도 바울이 첫 번째로 로마의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난 이후 그가 두 번째로 감옥에 갇히기 전의 일임을 알 수 있다. 즉 이 이야기는 사도행전 28장 이후의 일인 것이다. 사도 바울과 디도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에서 크레테에 들렀고 그곳의 교회들의 상태가 올바르지 못한 것을 보았다. 그런데 바울은 그곳에 오랫동안 머무를 수 없었기에 디도에게 막중한 사역을 맡기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였을 것이다. 바울은 디도에게 두 가지 임무를 주었다. “네가 부족한 것들을 바로잡고 또 내가 너를 세운 것 같이 각 도시에서 장로들을 임명하게 하려 함이니라.” 먼저 크레테가 복음을 듣고 교회가 시작된 것은 오래전 일이었을 것이다.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날에 성령님께서 사도들에게 임하여 그들이 다른 나라 말들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게 하신 사건을 본 민족들 중에는 크레테 사람들이 있었다(행 2:11). 그들은 경건한 유대교 개종자들로써 그들은 그들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 교회를 세워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 교회는 곧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교회는 타락하고 세속화 되며 거짓 교리가 교회 안에 들어왔고 또한 그들을 영적으로 인도하고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고 양육해야할 참된 목사가 없었고 거짓 교사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
 +
 +**딛 1:10-11 제멋대로 행하며 헛된 말을 하고 속이는 자들이 많은데 특별히 할례자들에 속한 자들이 그러하니 11 너는 반드시 그들의 입을 막아야 하느니라. 이런 자들은 더러운 이익을 얻으려고 자기들이 마땅히 가르쳐서는 안 될 것들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뒤엎는도다.**
 +
 +교회 안에는 질서가 없었고 그 안에는 제멋대로 행하는 자들이 있었다. 바울은 교회에 질서를 세울 것을 명령하였다. 5절에서 “바로 잡고”는 영어로 “set in order”이다. 교회 안에 질서가 없을 때 그것은 질서의 하나님을 높이지도 영화롭게 하지 못한다. 모든 혼란이 있는 곳에는 마귀의 역사만 있을 뿐이다. 많은 교회들이 점점 무질서해지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들의 권위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은 오늘날도 동일하다. 세상의 인본주의 정책이 교회 안으로 침투함으로써 사람들은 다 형제인데 누가 특별히 말씀을 증거할 목사가 필요하냐?​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교회 안으로 거짓 교리를 전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할례자들에 속한 자들로 유다이즘을 전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아야 하거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었다. 오늘날 많은 교회 안으로 율법주의가 침투해 있거나 혹은 안상홍증인회나 신천지와 같은 이단적인 사상이 침투하고 있으나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알지 못한다. 그런데 그러한 자들의 목적은 “더러운 이익을 얻으려고”이다. 그런 교회들의 특징은 특정 사람들이 부를 독차지해간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그런 교회들은 “가정들을 온통 뒤엎는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을 무너뜨리는 자들이다. 먼저 가정 안에 불필요한 분열을 야기한다. 그들은 “이혼”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꺼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가정을 돌보기보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유로 교회만을 돌볼 것을 강요한다. 그리하여 교회에 필요이상으로 헌금하게 하고 가정을 소홀이 하며 오직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유로 교회에 올인하게 만든다.
 +
 +**딛 1:12-14 그들 중의 한 사람 곧 그들의 대언자도 이르기를,​ 크레테 사람들은 항상 거짓말쟁이요 악한 짐승이요 게으른 탐식가라,​ 하였는데 13 이 증언이 참되도다. 그러므로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 이것은 그들이 믿음 안에서 건전한 자가 되어 14 유대인들의 꾸며 낸 이야기와 진리에서 돌아서는 사람들의 명령들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
 +뿐 만 아니라 그들은 그들 주변의 사람들과 동일한 마인드를 가진 세속적 크리스천이었다. 그들은 성령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육신 가운데 있었다. 그들을 두고 악한 짐승, 게으른 탐식가란 별명이 있었고 성도들 역시 동일한 죄에 연루되어 있었다. 바울은 그들을 엄히 꾸짖을 것을 명령하였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꾸짖음을 줄 때에 감정이 상하는 것으로 반발하기 보다는 여러분의 영적인 상태를 더욱 살피기를 바란다. 그들은 또한 유대인들의 꾸며 낸 이야기 즉 잘못된 성경해석을 받아들였다. 오늘날 신천지는 거짓성경해석을 전하는 무료성경신학원을 통하여 성장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사람들의 명령들을 더욱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겼다. 사도 바울은 이 모든 일들을 바로 잡기위해 무엇이 필요함을 보았다. 그것은 바로 “바른 목사”를 세우는 일이다. 사람들은 많은 목사들이 타락하고 올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목사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바울은 모든 일의 해결방안으로 “합당한 목사”를 세울 것을 말한다. 그 합당한 목사는 재능 있는 목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눈에 자격이 있는 목사를 말한다.
 +
 +**딛 1:6-9 어떤 사람이 책망 받을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거나 제멋대로 한다는 비난을 받지 아니하는 신실한 자녀들을 두었으면 임명하라. 7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결코 책망 받을 것이 없어야 하느니라. 그는 자기 뜻대로 하지 아니하며 쉽게 화내지 아니하며 자기를 술에 내주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익에 빠지지 아니하며 8 오직 손님 대접하기를 좋아하며 선한 사람들을 사랑하며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정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9 자기가 가르침을 받은 대로 신실한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하리니 이것은 그가 반박하는 자들을 건전한 교리로 능히 권면하고 확신시키게 하려 함이라.**
 +
 +목사는 영적 리더자이기에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것이 없어야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역시 책망 받을 것이 없어야 한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정의롭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며 자신에 대해서는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는 그가 배운 대로 신실한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하며 건전한 교리에 능숙한 사람이어야 한다. 곧 그는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세우시는 사람을 말한다. 오늘날 교단이나 신학교가 목사를 인정하는 시스템은 온갖 문제들을 볼 것이다. 왜 그러한가?​ 여러분이 한국의 신학교를 만일 가본다면 여러분은 절대 그곳에서 믿음을 배우지 못할 것을 알 것이다. 그들은 이상한 교리 뿐 아니라 세상적인 지식과 지혜를 가르친다. 그런데 그곳에서 나와서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먹일 수 있겠는가?​ 또 많은 사람들이 돈벌이로 목사가 되고자 신학교로 가고 있다. 그들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자리를 원하겠는가?​ 그렇다고 극단으로 가서 목사 무용론을 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
 +엡 4:11-12 그분께서 더러는 사도로 더러는 대언자로 더러는 복음 전도자로 더러는 목사 겸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것은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고 섬기는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하심이라.
 +
 +이 사역자들은 스스로 된 사람들이 아니다. 주님께서 부르시고 주신 사람들이다. 이들이 주어진 목적은 세 가지로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고” 즉 먼저 성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먹이고 성장하게 하려 함에 있다. 두 번째로 섬기는 일을 하게 하며 즉 하나님과 다른 성도들을 섬기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교회를 통해 우리는 섬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세 번째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이다. 복음 전파를 통해 양육을 통해 교회는 스스로 자라나가야 한다. 목사들은 주님께서 이 목적을 위해 부르시고 주신 사람들이다.
 +
 +바울은 크레테 섬의 교회의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질서를 가르치고 올바른 목사들을 세울 것을 디도에게 지시하였다. 물론 디도는 그 일을 훌륭히 해냈을 것이다. 역사가들은 말하기를 크레테의 사람들은 디도를 자기들의 수호자로 삼았고 그 뒤 베니스가 크레테를 차지하였을 때에도 그들 역시 디도를 자기들의 수호자로 두었다고 한다. 우리가 디도의 마지막 기록을 보는 것은 딤후 4:10에서 보게 된다.
 +
 +딤후 4:10-11 데마는 현재의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떠났고 그레스겐은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으며 11 오직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마가를 취해 데리고 오라. 그가 사역을 위해 내게 유익하니라.
 +
 +여기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 그는 분명 바울의 명령을 수행하고자 그곳으로 보냄을 받았을 것이다. 디도는 죽음을 앞둔 사도 바울일지라도 그에게 주어진 명령을 기쁨으로 수행하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하였다고해서 사역을 소홀이 하거나 사람들을 자기 옆에 두고자 하지 않았다. 12절에서 바울은 두기고를 에베소로 보내었다. 바울은 중요한 사역을 위해 디도를 달마디아로 보내어 하나님의 일이 진행되도록 하였을 뿐 아니라 디모데에게는 에베소에서 교회를 바로 세울 것을 지시하였다. 우리는 끝까지 노 사도의 명령 아래서 복음을 위하여 헌신하는 한 사람 디도를 보고 있는 것이다.
 +
 +=====결론=====
 +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가? 디도를 두고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
 +고후 8:23 디도에 대하여 누가 묻는다면 그는 나의 동반자요 너희를 위한 동료 협력자며 또 우리 형제들에 대하여 묻는다면 그들은 교회들의 사자(使者)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
 +고후 12:18 내가 디도에게 청하였고 그와 더불어 한 형제를 보내었는데 디도가 너희에게서 이득을 취하더냐?​ 우리가 같은 영 안에서 걷지 아니하더냐?​ 우리가 같은 보조로 걷지 아니하더냐?​
 +
 +디도는 사도 바울의 동반자이자 동료 협력자였다. 그는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애쓰는 형제이자 사도 바울을 기쁘게 하는 자였다. 그는 바울과 동일한 영 가운데서 걸으며 보조를 맞추는 사람이었다. 그가 바울의 사역에 아니 하나님의 복음 전파의 사역에 얼마나 큰 유익을 끼쳤는지 생각해보라. 우리 모두가 디도와 같이 영적으로 강력한 자가 되기를 바란다.
  
딛1.1-5.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