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딛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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딛2.11-14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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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1월 9일 주일오전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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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은혜가 가르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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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말씀: 디도서 2장 11-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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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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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 예루살렘 교회는 매우 부흥하는 교회였다. 혼들이 교회에 더해졌고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님을 섬기고자 헌신된 교회였다. 그 교회의 분명한 특징은 사도행전 2:42에 나와 있다. “그들이 흔들리지 아니하며 사도들의 교리와 교제 안에 머물고 빵을 떼며 기도하더라.”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들에게 전해진 사도들의 교리에 머물렀고 거기서 떠나지 않았다. 그들이 사도들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말씀의 교리의 틀에서 그들은 벗어나지 않았고 그 안에서 살려고 하였다.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초기 원동력이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기 전에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가르쳐 지키게 한 모든 것들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셨고 제자들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그들이 주님으로부터 배운 것들을 가르치고 그것들을 지키도록 명령하였다. 그런데 오늘날 “교리”란 의미는 매우 퇴색해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교리를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그것은 단지 머리로 이해해야 하는 귀찮은 성경 지식으로 이해한다. 교회를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교리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들은 그것을 알 필요가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 또한 교리를 가르치는 교회들도 교리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교회들은 자기들의 영해나 성경해석을 교리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 결과는 매우 암담하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더 이상 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가르쳐 지키게 한 모든 것들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신 모든 것들을 지키지 않게 되었다.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사람들은 사도들의 교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도들의 교리는 더 이상 전수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비록 그들에게 성경이 있다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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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 사도와 디도가 크레테 섬에 왔을 때에도 그들은 오늘날과 다를 것이 없는 그런 상황을 보았을 것이다. 교회는 있으나 그 교회는 더 이상 그 빛을 잃어버렸고 크리스천들은 세상 사람들의 삶과 다를 바 없게 되었다. 바울은 그들 중의 한 사람 곧 그들의 대언자의 말을 인용하여 당시 크리스천들의 모습이 어떠하였을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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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딛 1:12-14 그들 중의 한 사람 곧 그들의 대언자도 이르기를,​ 크레테 사람들은 항상 거짓말쟁이요 악한 짐승이요 게으른 탐식가라,​ 하였는데 13 이 증언이 참되도다. 그러므로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 이것은 그들이 믿음 안에서 건전한 자가 되어 14 유대인들의 꾸며 낸 이야기와 진리에서 돌아서는 사람들의 명령들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
 +바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꾸짖으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거짓말쟁이요 악한 짐승이요 게으른 탐식가라 불리는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어진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들이 잃은 것은 “건전함”이었다. 따라서 바울은 그들이 건전하도록 세워야할 이유를 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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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건전함이 필요한 네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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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은 목회 서신서를 통해 네 가지 건전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건전한 생각, 건전한 말씀, 건전한 교리, 건전한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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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건전한 생각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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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딤후 1:7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움의 영을 주지 아니하시고 권능과 사랑과 건전한 생각의 영을 주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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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죄는 우리의 생각을 부패하게 만든다. 죄는 우리의 생각이 세속적이고 육신적인 것들을 좋아하게 만든다. 크레테 사람들에 대한 평가 중 하나는 그들이 게으른 탐식가라 불렸다는 것이다. 그들은 절제하지 못하고 무언가를 탐욕스럽게 원하는 자들이었을 뿐 아니라 게으른 자들이었다. 오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렇게 불린다면 그것은 얼마나 치욕적인 일이겠는가?​ 건전한 생각은 성령님으로부터 오나 이들은 성령을 따라 걷기보다는 육신을 따라 걸음으로써 온갖 탐욕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거짓말쟁이라는 악평이 있었다. 바울은 우리의 말에 있어 건전함이 있어야 함을 말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건전한 말씀을 주셨다.
 +
 +딤후 1:13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 안에서 네가 내게 들은 건전한 말씀들의 틀을 굳게 붙들고
 +
 +무엇이 여러분의 생각과 판단에 영향을 주고 있는가? 하나님의 건전한 말씀인가?​ 아니면 세상의 지혜나 어리석은 자들의 조언인가?​ 여러분이 누구의 말에 따라 걷고 있는지 주의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잘못 말하고 걷게 될 것이다. 때로 우리를 잘못되게 만드는 사람들은 우리보다 연장자인 크리스천들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잘못된 조언을 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죄를 범하게 만들 수 있다. 저 역시 한번은 연장자인 크리스천의 말을 따라 행함으로써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는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뒤로 나보다 연장자일지라도 그것이 성경적이지 않으면 즉 건전한 말씀의 틀에 따른 것이 아니면 따르지 않을 것이라 마음을 먹었다. 크레테 사람들은 거짓말쟁이라는 악평이 있었다. 만일 여러분이 어떤 불미스런 일들로 인하여 좋지 않은 악평을 얻게 된다면 그 일들을 행하기까지 여러분의 생각에 영향을 끼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는가?​ 때로 그것은 나의 오만한 생각이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유익하지 못한 조언에게서 온다. 크레테 사람들은 어쩌면 이 험악한 세상에서 살려면 조금은 거짓말도 해야 한다고 들었을지 모르겠다. ​
 +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따를 건전한 교리를 주셨다.
 +
 +딛 1:9 자기가 가르침을 받은 대로 신실한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하리니 이것은 그가 반박하는 자들을 건전한 교리로 능히 권면하고 확신시키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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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리란 앞서 말했듯이 우리가 지키고 따라야할 말씀들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어떤 부패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크레테에는 매우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미 그들 가운데는 “자기들이 마땅히 가르쳐서는 안 될 것들을 가르치”는 자들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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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딛 1:9-11 자기가 가르침을 받은 대로 신실한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하리니 이것은 그가 반박하는 자들을 건전한 교리로 능히 권면하고 확신시키게 하려 함이라. 10 제멋대로 행하며 헛된 말을 하고 속이는 자들이 많은데 특별히 할례자들에 속한 자들이 그러하니 11 너는 반드시 그들의 입을 막아야 하느니라. 이런 자들은 더러운 이익을 얻으려고 자기들이 마땅히 가르쳐서는 안 될 것들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뒤엎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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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은 심지어 디도에게 “너는 반드시 그들의 입을 막아야 하느니라.”라고 아주 막중한 명령을 주었다. 그들과 논쟁을 통해서 혹은 신실한 말씀을 굳게 붙잡고 건전한 교리를 아는 목사들을 세움으로써 디도는 그 일을 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디도가 처한 상황은 오늘날 우리 앞에 있는 영적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 당시 성경을 영해하려는 영지주의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 주변에는 성경을 영해해서 풀려는 안상홍 증인회나 신천지와 같은 이단들을 볼 수 있다. 크레테의 크리스천들이 매우 육신적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많은 하나님의 교회들이 육신적으로 행하고 있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법정에 서거나 교회 성도들끼리 파당으로 나뉘어 서로 싸우거나 하는 소식들을 간간히 들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당시 할례자들에 속한 자들이 할례를 행하거나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음식과 관련된 규례를 지키도록 강요함으로써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거나 혹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질 수 있다고 가르치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장로교회들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구원을 말하기보다는 율법을 강조하는 것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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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건전한 믿음을 소유하길 원하신다. 그러나 크레테 사람들은 믿음 안에서 건전한 자들이 되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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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딛 1:13-14 이 증언이 참되도다. 그러므로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 이것은 그들이 믿음 안에서 건전한 자가 되어 14 유대인들의 꾸며 낸 이야기와 진리에서 돌아서는 사람들의 명령들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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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그들의 믿음이 행함이 없이 죽어버린 것을 말한다. 야고보는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위 없는 믿음도 죽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 앞에서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믿음을 말한다. 살아있는 믿음은 행위를 유발한다. 바울은 살전 1:3에서 “믿음의 행위”에 대해 말한다. 야고보서 2장은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는 믿음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의롭게 됨(justification)은 항상 구원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딤전 3:16에서 예수님은 성령님 안에서 의롭게(justified) 되셨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이제야 구원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렇지 않다. 롬 3:4에서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참으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할지어다. 이것은 기록된바,​ 이로써 주께서 주의 말씀하신 것에서 의롭게 되시고(justified)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시리이다,​ 함과 같으니라.”라고 말하고 있을 때 그 의롭게 되는 것은 구원과 관련이 없다. 마찬가지로 성경에서 “구원”이라는 단어 역시 꼭 혼의 구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로마서 4장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어떤 행위로도 의롭게 되지 못함에 대해 말하고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말한다. 야고보서 2장은 반면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는 믿음 즉 의롭게 하는(justifying) 믿음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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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크레테 사람들은 그들의 믿음이 건전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들이 입으로 고백한 믿음에 따라 그들의 삶이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믿음이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그들이 믿은 것들이 무엇인가?​ 그들은 유대인들의 꾸며 낸 이야기와 진리에서 돌아서는 사람들의 명령들에 주의를 기울였다. 우리는 유대인들의 꾸며 낸 이야기가 무엇인지 안다. 그들은 탈무드를 붙들고 그것이 매우 지혜로운 것처럼 말한다. 여러분 탈무드는 논어나 맹자나 공자의 말과 다를 바 없다. 그것은 진리와 거리가 먼 것들이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그들이 세운 전통들을 세우려 했던 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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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딛 1:15은 죄를 범하는 것을 합리화하려는 사람들에게서 종종 인용되는 구절이다. “순수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순수하나 더럽혀지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순수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들의 생각과 양심마저도 더럽혀져 있느니라.” 가령 동성애자들은 자기들은 그것을 죄로 보지 않는데 우리는 죄로 보고 있다고 말하면서 우리의 생각과 양심이 더러워져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을 잘못 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는 순수하다. 그러나 생각과 양심이 더러워진 자들은 성경을 순수하다고 보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은 시대에 따라 달리 해석해야 하고 때로는 거부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때로 부족하여 거기에 탈무드나 혹은 외경이나 위경이나 혹은 몰몬 성경과 같은 무언가가 더해져야 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다윗이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매우 순수한 말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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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건전한 교리에 합당한 명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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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레테의 크리스천들이 이렇게 진리에서 벗어나게 되고 그들의 믿음 안에서 건전한 자들이 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처음부터 그들은 건전한 교리들을 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울은 디도에게 건전한 교리에 합당한 명령들을 줌으로써 그들이 바로 세워지게 할 것을 명령한다. 디도서 2장으로 가면 다섯 부류의 사람들에게 지침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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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딛 2:1-2 오직 너는 건전한 교리에 합당한 것들을 말하여 2 연로한 남자들이 맑은 정신을 가지며 신중하고 절제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에서 건전하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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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연로한 남자들이다. 바울은 그들이 연장자인 것처럼 영적인 면에서도 연장자로써의 모습을 보일 것을 명령한다. “맑은 정신을 가지며”는 때로 술취함과 반대되어 사용된다. 그것은 흐리멍덩한 생각과 반대된다. 나이가 들면 행함에 있어 신중함이 더해진다. 여기서 신중함이란 위엄있고 엄숙한 것을 말한다. 즉, 연장자들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그들을 통해 보고 그들의 삶을 모방하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사에 가볍게 행동하지 않고 주의를 가지고 한 마디 말에도 신중하게 행해야 할 사람들인 것이다. “절제하며” 이것은 자신을 통제하는 것을 말한다. 절제는 성령님께서 맺는 열매의 한 은혜이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욕망에 따라 행하지 않고 자신을 억제하는 법을 가르치신다. 연장자들은 믿음과 사랑과 인내에서 건전함이 있도록 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 생각은 고정되어 쉽게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제 내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 또한 참고 견디어 내는 것에 있어 건전한지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연장자들은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그의 삶을 배우려 한다는 것을 항상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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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딛 2:3 연로한 여자들도 그와 같이 하여 거룩함에 합당하게 처신하도록 하며 거짓으로 비난하지 말고 자기를 많은 술에 내주지 말며 선한 것들을 가르치는 자가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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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부류는 “연로한 여자들”이다. “그와 같이 하여”는 그들 역시 연로한 남자들과 동일한 명령들이 주어졌음을 말해준다. 거기에 그들에게 다른 명령들이 더해졌다. 하나님께서는 연로한 여자들이 거룩함에 합당하게 걷기를 원하신다. 나이가 들은 여자들이 쉽게 범하는 죄들은 모여서 다른 사람들을 험담하거나 혹은 의지할 무언가를 기댄다는 것이다. 때로 그것은 많은 술이 될 수 있다. 여기서 “거짓으로 비난하다”란 용어는 그리스어로 “디아볼로”이다. 이 용어는 대부분 “마귀”로 번역되었으며 “중상하는 자”와 여기서 “거짓으로 비난하는 자”로 번역되었다. 이것이 보여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거짓으로 비난하고 중상하는 것은 마귀의 일이라는 것이라는 점이다. “자기를 많은 술에 내주지 말며”에서 “내주다”란 단어는 그리스어로 “둘로”가 사용되었다. “둘로스”가 “노예” 혹은 “종”으로 번역된다는 것을 안다면 여기서 내준다는 것은 술의 노예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감정적으로 쉽게 움직이는 여자들은 쉽게 마귀들에게 쓰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거룩함에 합당하게 처신할 것을 원하실 뿐 아니라 오히려 “가르치는 자”들이 될 것을 원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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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딛 2:4-5 이것은 그들이 젊은 여자들을 가르쳐서 맑은 정신을 가지며 자기 남편을 사랑하고 자기 자녀들을 사랑하게 하며 5 신중하며 정숙하고 가정을 보살피며 선하고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여야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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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절과 5절에서 바울은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 즉 “젊은 여자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그들을 가르치는 자들은 디도가 아니라 “연로한 여자들”이다. 즉 바울은 디도로 하여금 여자들을 직접 가르치는 것을 피할 것을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저는 내가 직접 여자들 모임을 인도하기보다 그들을 이끄는 영적인 자매들이 있기를 원한다. 교회 안에서 연장자인 자매들의 사역은 매우 중요하다. 그들은 목사를 대신하여 젊은 여자들의 사역에 쓰임을 얻는 것이다. 예전에 한 목사가 “여자들의 모임은 마귀적”이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사실 성경이 가르치는 바와 다르다. 만일 여자들의 모임이 다른 사람들을 비방하는 자리가 된다면 그것은 마귀적이 될 수 있으나 그렇지 않고 자매들이 같이 모여 기도하고 성경공부를 하며 또 주님 안에서 서로 간에 세워주는 교제를 하는 자리를 갖는다면 그것은 목사를 대신하여 주님을 섬기는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교회 내에 풍성하게 이루어져야 할 사역들 중 하나이다. 많은 여자들이 이런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자신을 주님께 헌신하게 되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이 사역이 우리 교회에서도 이루어지고 풍성하게 진행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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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젊은 여자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무엇인가?​ 혹은 젊은 여자들이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매우 가정적임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이 바로 세워지고 배우자들이 서로 사랑하며 가족 구성원들이 사랑을 발견할 수 있기를 원하심을 볼 수 있다. 가정이 바로 세워지는 일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아내이다. 물론 가정의 모든 책임자와 인도자는 남편이다. 그러나 많은 일들이 아내의 손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내의 가정에서의 사역이 얼마나 중요한가?​ 바울은 “그리하여야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받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한다. 크리스천 가정이 깨지고 소란하며 좋지 않은 간증을 남길 때 우리는 믿지 아니하는 자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받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하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모독할 것이다. 바울은 여자들이 사랑하는 것과 순종하는 것”을 배우게 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
 +딛 2:6-8 젊은 남자들도 이와 같이 권면하여 맑은 정신으로 생각하게 하되 7 모든 일에서 네 자신을 선한 행위의 본으로 보이며 교리에서 부패하지 아니함과 신중함과 성실함을 보이고 8 비난 받을 수 없는 건전한 말을 하라. 이것은 반대편에 속한 자가 너희에 대하여 나쁘게 말할 것이 없으므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
 +네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젊은 남자들”이다. 바울은 그들에게 한 가지 명령을 주고 있다. “맑은 정신으로 생각하게 하라”. 젊은 사람들은 매우 열정적이어 무모하게 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의 길을 살필 수 있는 맑은 정신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젊은 남자들은 대부분 그러하듯 그들을 영적으로 이끄는 목사들의 삶을 보고 그것을 따라할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디도에게 그들 앞에서 모든 부분에서 즉 말과 행실과 교리에서 본을 보이는 자가 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따라서 목사가 어떤 영 가운데 있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한국의 독립침례교회를 보면서 아쉬운 점은 많은 목사들이 말씀보존학회를 거쳐 나오게 되었는데 거기서 그들을 이끌던 사람의 삶을 그대로 배워왔다는 것이다. 그로 인하여 여러 사람들이 그 동일한 영 가운데 매우 간증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
 +다섯 번째 사람들은 “종들”이다. ​
 +
 +딛 2:9-10 종들에게 권면하여 자기 주인들에게 순종하게 하며 모든 일에서 그들을 매우 기쁘게 하고 말대꾸 하지 말게 하며 10 훔치지 말고 전적으로 선하게 충성하는 것을 보이게 하라. 이것은 그들이 모든 일에서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의 교리를 빛내게 하려 함이니라.
 +
 +오늘날에는 “종”의 신분이 없다. 성경이 전파되는 곳마다 “노예제도”나 신분제도는 사라져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종에게 주어진 말씀은 오늘날 직장에서 고용되어 섬기는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 우리가 젊은 여자들에게 그리고 종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보는 것은 우리의 매일의 삶 즉 가정의 삶과 직장에서의 삶과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모든 삶에서 우리가 주님을 섬기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서는 주님을 열심히 섬기지만 직장에서는 대충하려 한다. 그것은 사역의 중요한 면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주일날 우리는 매일 매일 주님을 섬기기에 필요한 영적 힘을 얻으려고 말씀을 듣고자 그리고 주님을 경배하고자 모이는 것이다. 우리의 매일의 삶이 주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직장에서 우리가 사장에게 어떤 모습으로 섬기는 가는 바로 우리가 주님께 직접적으로 그렇게 섬기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울은 잘 섬기는 종들은 “모든 일에서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의 교리를 빛내게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
 +골 3:22-24 종들아, 육체에 따라 너희의 주인 된 자들에게 모든 일에서 순종하되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자들같이 눈으로 섬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단일한 마음으로 하라. 23 또 너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 너희가 상속 유업의 보상을 [주]에게서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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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은혜가 가르친다.=====
 +
 +마지막으로 우리는 매우 중요한 부분을 보고자 한다. ​
 +
 +**딛 2:11-15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 12 우리를 가르치시되 경건치 아니한 것과 세상에 속한 정욕들을 우리가 거부하고 이 현 세상에서 맑은 정신을 가지고 의롭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13 저 복된 소망과 위대하신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느니라. 14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으로부터 친히 우리를 구속하시고 정결하게 하사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는 백성 곧 자신을 위한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5 이것들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꾸짖고 아무도 너를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
 +
 +우리는 은혜 아래 있고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다. 그러나 그 점으로 인하여 많은 크리스천들이 무법자(lawless)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예를 들어 구원파에서는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지킬 필요가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심지어 그들은 잘못된 것으로부터 돌이키는 회개 역시 잘못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은혜가 우리를 가르친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두고 주님께서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였던 말씀을 기억할 것이다. 주님도 그 여인을 정죄하지 아니하였다. 은혜를 베푸신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그 여인에게 매우 중요한 것을 가르치셨다. ​
 +
 +요 8:11 그녀가 이르되, [주]여, 아무도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하시니라.
 +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다는 것은 우리가 율법에게서 해방되어 더 이상 율법의 요구 아래 있지 아니함을 말한다.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으며 더 이상 율법은 우리에게 요구하지 못한다. 즉 우리는 구원을 얻고자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 율법은 우리의 죄를 제거하거나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구원받은 이후에도 우리는 의로운 삶을 위해 율법의 행위로 가지 않는다. 구원받은 이후에도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믿음이지 율법의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울은 율법의 행위로 의로워지려는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가 그렇게 어리석으냐?​ 너희가 성령 안에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완전해지고자 하느냐?​”(갈 3:3)
 +
 +그럼에도 율법은 여전히 우리에게 그 기능을 하고 있다. 그것은 바울이 말한 대로 우리가 율법을 무너뜨리지 않고 오히려 굳게 세우기 때문이다. 먼저 율법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우리는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의의 기준을 본다. 율법은 여전히 우리에게 죄가 무엇인지를 가르친다. 그것이 율법이 주어진 목적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기 때문에 율법은 더 이상 무용하다고 말한다. 과연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는가?​ 우선 몇 구절을 보고 판단해보고자 한다.
 +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을 통해 율법을 헛되게 만드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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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바울은 율법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는 율법의 기능을 오히려 더 세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전에 율법을 단지 행위를 판단하는 것으로만 알았다면 우리는 이제 우리의 마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율법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그 점에서 율법을 강화하셨다. 사람들에게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자라고 하셨을 뿐 아니라 여자를 보고 마음에 음욕을 품으면 이미 그 여자와 더불어 간음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이 땅에 계시면서 율법의 행위만 보던 것에서 마음을 살필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온갖 더러운 죄들이 나온다(막 7장). 바울은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하였다. 이전에 율법을 육신의 드러난 행위로만 이해했다면 주 예수님과 바울은 우리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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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5:1-2 너희 가운데 음행이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알려졌는데 그런 음행은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거론되지 않는 것으로 곧 어떤 사람이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는 것이라. 2 그런데도 너희가 우쭐대며 오히려 슬퍼하지도 아니하고 이런 일 행한 자를 너희 가운데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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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바울은 무엇으로 이 사람이 죄를 지었음을 판단하였는가?​ 율법이 죽었고 무용하다면 무엇으로 그 사람이 죄를 범하였음을 판단할 수 있는가? 율법은 여전히 우리에게 무엇이 죄가 됨을 가르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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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 13:8-10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누구에게든지 어떤 것도 빚지지 말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성취하였느니라. 9 너는 간음하지 말라, 너는 살인하지 말라, 너는 도둑질하지 말라, 너는 거짓 증언하지 말라, 너는 탐내지 말라, 한 것과 어떤 다른 명령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이 말씀 안에 간략하게 들어 있느니라. 10 사랑은 자기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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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은 여기서 율법을 언급하였으나 부정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그런데 바울은 율법에서 오직 십계명에 해당하는 것만을 언급하셨다. 그것은 도덕법에 해당한다. 이것이 우리가 봐야할 부분이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새 명령을 주셨는데 그 명령은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이었다. 그런데 그 명령에는 율법의 모든 것들이 달려있음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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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22:36-40 선생님이여,​ 율법에서 큰 명령은 무엇이니이까?​ 하매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38 이것이 첫째가는 큰 명령이요,​ 39 둘째 명령은 그것과 같은 것으로서,​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니라. 40 모든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이 이 두 명령에 매달려 있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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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엡 6:1-3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그것은 약속 있는 첫째 명령이니) 3 이것은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게 하려 함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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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바울은 십계명의 다섯 번째 계명을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명령을 크리스천 자녀들에게 명령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 명령이 주는 축복 역시 동일하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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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우리에게 율법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먼저는 죄가 무엇인지 알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구원받고자 함에 있지 않다. 그것은 이미 우리가 얻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고자 함도 아니다. 율법이 이스라엘에게 처음 주어진 것도 그것으로 의로워지길 주님이 기대하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님은 그것을 통해 그들이 죄인임을 발견하길 원하셨다. 또한 그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축복 아래 있기를 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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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법의 행위를 통하여 의로워질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오직 우리는 믿음으로 의로워지고자 한다. 그런데 우리는 율법을 통해 하나님께서 보시는 거룩하심이 무엇인지를 발견한다. 거룩함이란 죄가 완전히 없는 것이 아니라 죄로부터 나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이 죄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를 위한 것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명령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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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벧전 1:15-16 오직 너희를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 같이 너희도 온갖 종류의 행실에서 거룩할지니라. 16 기록된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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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지킬 수 있는가? 주님은 우리 스스로 지키라고 하지 않으셨다. 우리가 성령님을 따라 걸을 때에 그 일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이루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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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5:13-18 형제들아,​ 너희가 부르심을 받아 자유에 이르렀으나 오직 자유를 육신을 위한 기회로 쓰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라. 14 온 율법은 이것 즉,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한 말씀 안에서 성취되었느니라. 15 그러나 만일 너희가 서로 물고 삼킬진대 너희가 서로에게 소멸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6 그런즉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곧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신은 성령을 대적하여 욕심을 부리고 성령은 육신을 대적하나니 이 둘이 서로 반대가 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너희가 능히 하지 못하느니라. 18 그러나 너희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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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 은혜가 무엇을 가르치는지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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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딛 2:11-15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 12 우리를 가르치시되 경건치 아니한 것과 세상에 속한 정욕들을 우리가 거부하고 이 현 세상에서 맑은 정신을 가지고 의롭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13 저 복된 소망과 위대하신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느니라. 14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으로부터 친히 우리를 구속하시고 정결하게 하사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는 백성 곧 자신을 위한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5 이것들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꾸짖고 아무도 너를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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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거부하도록 가르친다. 우리는 무엇을 거부해야 하는가? 마치 주님께서 간음하였으나 주님께서 정죄하지 않은 여인에게 다시는 죄를 짖지 말라고 하신 것처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안에 더 살겠는가?​” 우리는 경건치 아니한 것과 세상에 속한 정욕들을 거부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거부할 것을 가르치신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것을 가르친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주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릴 것을 가르치신다. “그래, 주님이 때가 되면 오시겠지”가 아니라 “주님, 어서 오십시요”라고 이끄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정결하게 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다. 그런데 그 특별한 백성은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는 백성이다. 주님은 우리가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아니하고 우리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해 살도록 명령하고 계신다. 바울은 이것을 디도가 “이것들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꾸짖고 아무도 너를 업신여기지 못하게 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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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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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자들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게 하라. 은혜는 우리를 가르치신다. 예수님은 내가 가르쳐 지키게 한 모든 것들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성령님을 힘입어 우리에게 맡겨진 것을 힘써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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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딤후 1: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여 네게 맡겨진 그 선한 것을 지키라.
  
딛2.11-14.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