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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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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1.12-17 [2018-06-03 15:52]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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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6월 3일 주일오전설교==
  
 +======예수께서 나를 위해 하신 일들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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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디모데전서 1장 12-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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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딤전 1:12-17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를 드림은 그분께서 나를 신실한 자로 여기사 내게 사역을 맡기셨기 때문이라. 13 내가 전에는 신성모독하는 자요, 핍박하는 자요, 해를 끼치는 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얻게 됨은 내가 믿지 아니하는 가운데 알지 못하고 그것을 하였기 때문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이것은 신실한 말이요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합당한 말이니 곧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말이로다. 죄인들 중에 내가 우두머리니라. 16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내 안에서 모든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이후에 자신을 믿어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게 될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셨으니 이런 까닭으로 내가 긍휼을 얻었느니라. 17 이제 영원하신 [왕] 곧 죽지 아니하시고 보이지 아니하시고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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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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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의 이해를 위해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 서신을 보내던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에 대한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할 것이다. 당시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약 3년의 사역의 기간을 보내고 젊은 사역자의 손에 에베소 교회를 맡기고 그 지역을 떠났다(행 19장). 그 젊은 사역자는 사도 바울의 영적 아들이었던 디모데였다. 디모데에게 있어 에베소 교회는 그가 전담하는 첫 사역지였다. 당시 디모데가 결혼했는지는 알 수 없으며 그가 목사였는지도 사실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바울이 예수님께서 직접 보내신 사도이었듯이 디모데 역시 바울의 권한을 위임받아 사도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다. 디모데와 디도는 그런 점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직접적으로 사도로 세워지지 않았지만 바울의 권위를 위임받아 그 임무를 하던 사람들이었기에 디모데전서와 디도서에서 볼 수 있는 그들의 권위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목사의 권위보다 더 위에 있다. ​
 +
 +디모데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큰 에베소 교회를 책임지어 많은 일을 해야 할 상황이었으나 그는 사도 바울이 겪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과업을 동시에 받았다. 교회 안에는 믿음을 부정하는 거짓 교사들과의 싸움이 있었고(딤전 1:18-20) 거짓 교리들이 일어나고 있었다(딤전 1:3-7, 4:1-3, 6:3-5). 사도 바울은 거짓 교리들에 관해서는 계속해서 그의 서신서 여러 군데에서 경고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은 건전한 교리가 중요함을 인지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조심할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것을 기억해보라. 고린도 교회가 주님을 경배하는 모임에서 질서가 부재되었던 것처럼 에베소 교회 안에서도 무질서가 영향을 끼치려 하고 있었다(딤전 2장). 그런 까닭에 사도 바울은 2장을 통해 교회 안에서 기도의 중요성과 교회 안에서 여자들의 위치에 대해 말하고 있다. 3장을 보면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서 직무들을 가진 자들을 선출함에 있어 그들이 자격이 합당한 자들인지를 검증할 필요가 있음을 가르친다. 주님의 과업을 행할 신실한 자들을 찾아내고 그들에게 사역을 맡기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젊은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 안에 신실한 자들을 찾아내어 그들을 교회의 장로들 즉 목사들로 세워야 하는 막중한 과업을 맡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는 물질주의가 팽배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딤전 6:6-19). 에베소는 항구 도시이자 상업이 발달한 지역이었기에 부한 사람들이 많았으며 재산을 획득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며 이득을 경건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서 돌아설 것을 가르친다. 또한 당시 디모데가 사역을 맡기에 너무 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당시 디모데의 나이는 40세 근처였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도 바울은 “아무도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너는 말과 행실과 사랑과 영과 믿음과 순결에서 믿는 자들의 본이 되라.”(딤전 4;12)고 조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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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모데는 진실로 처리해야 할 산더미 같은 일들을 맡았으며 그 일로 인해 사도 바울이 디모데 서신을 보낼 즈음에 그는 그가 치러야 하는 영적 전투로 인해 그는 또한 자신의 마음에 자리잡은 낙심과도 싸워야하는 처지에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바울은 이 젊은 사역자에게 용기를 주어 주님을 섬기는 일을 신실하게 지속하도록 이끌어야 할 필요를 느끼어 이 서신을 작성하였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가 주 안에서 계속해서 자라나가고 그가 직면한 여러 어려움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위하여 굳게 설 것을 주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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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바울은 이 사역자를 격려하려는 목적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자신의 삶을 예로 제시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그분의 은혜를 통해 또한 그분의 권능을 통해 어떤 일을 하실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이다. “디모데여,​ 나를 보라.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하신 일들을 보라!” 만일 하나님께서 크리스천들에게 온갖 악행을 해왔던 바울과 같은 사람을 취하셔서 그를 은혜로 구원하고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신다면 하나님께서는 디모데 역시 놀라운 일들에 사용하실 수 있음을 바울은 믿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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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동일한 이유로 오늘 우리는 바울의 개인적인 간증을 봄으로써 몇 가지 유익을 얻고자 한다. 예수님께서 바울 안에서 그리고 바울에게 그리고 바울을 위해 하신 것들이 또한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에게 또한 우리를 위해 하신 일들이라는 것을 봄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로서 용기를 얻고 그분을 섬기는 일에 격려를 얻고자 함이다. 사도 바울은 무엇을 간증함으로써 디모데에게 보이고자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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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죄인의 간증(13-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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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딤전 1:13-15 내가 전에는 신성모독하는 자요, 핍박하는 자요, 해를 끼치는 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얻게 됨은 내가 믿지 아니하는 가운데 알지 못하고 그것을 하였기 때문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이것은 신실한 말이요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합당한 말이니 곧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말이로다. 죄인들 중에 내가 우두머리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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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죄인의 행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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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바울이 자신을 두고 시인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는 주님의 모든 명령들을 깨뜨린 죄를 범한 자라는 것을 보게 된다. 그는 “신성모독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악하게 말하고 중상하였던 자였다. 물론 그가 하나님을 두고 욕하거나 중상하거나 모독하는 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주 예수님을 부정하고 그분을 믿는 자들을 억지로라도 다른 곳에 가서까지 죽이고자 할 정도로 증오심이 가득하였던 자였다. 그는 무지 가운데 이 일을 행하였으며 오늘날 많은 사람들도 무지 가운데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며 심지어 증오 가운데 있는 자들도 있다. 예수님 당시에도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과 같이 사람들의 눈에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들을 두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너희를 회당들에서 내쫓을 것이요 참으로 때가 이르면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자기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하리라.”(요 16:2)라고 말씀하셨다. 자기의 순수함 가운데 크리스천을 박해하고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열심을 가지고 섬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바울 역시 회심하기 이전에 이런 류의 사람이었다. 그는 오늘날 자신의 과거의 죄들을 감추고자 크리스천이 되고 또 스스로 목사까지 되려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오늘날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음에도 단순히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들을 용서하셨으니까 이제 자신은 과거의 책임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범죄한 다윗을 용서하셨음에도 그의 죄는 그의 집안과 그의 왕국에 칼을 가져왔음을 기억해야 한다. 죄는 그 끼치는 영향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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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바울은 자신을 “핍박하는 자”였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단순히 핍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해를 끼치는 자”였다. 그는 “과거에 유대인들의 종교 안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교회를 극도로 핍박하여 피폐하게 하였”던 자(갈 1:​13)였다. 그는 스데반의 죽음에 찬성하였을 뿐 아니라 찬성하는 자들을 옹호하던 자였다. 그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던 때에 그는 크리스천을 향해 “살기를 내뿜었”던 자였다. 그것은 그가 “너는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 뿐 아니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에 실패하였다(마 22:37-39). 그는 하나님 앞에서 지극히 죄가 넘치는 자였다. 그는 종교인이었지만 자신의 죄들 가운데서 잃어버린 자였음을 생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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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우리가 구원받기 전의 우리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역시 바울과 같이 죄로 가득한 자임을 시인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물론 사도 바울이 범한 동일한 죄들을 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동일하게 온갖 악한 생각들과 그 생각들이 가져오는 악한 행위들로 가득한 자들이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주 하나님 앞에서 죄인들로 지옥에 합당한 자들이었다. 오직 “선택에 따른 [하나님]의 목적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부르시는 분으로 말미암아 섬”(롬 9:11)으로 인하여 구원이 “원하는 자에게서 나지도 아니하고 달리는 자에게서 나지도 아니하며 오직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에게서 나”서(롬 9:16) 우리에게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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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죄인의 기만당함(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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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가 그렇게 행한 것은 “알지 못하는 가운데” 그러하였음을 말한다. 그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변명하려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단순한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행위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도 또 자신의 생각이 어디서 출발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는 순수하고 신실하게 주님을 섬긴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순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노력 가운데서 예수님과 복음의 소식을 거부하였다. 그가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주 예수님을 만나서 그분께서 그의 눈을 열어주기까지 그는 완전히 눈멀어 있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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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의 삶은 우리의 삶의 거울과 같다. 성경에 따르면 모든 잃어버린 죄인들은 자신의 상태와 운명에 대해 눈멀어 있음을 말한다(고후 4:4). 사실 그들은 자기들의 죄들과 허물들 가운데서 영적으로 죽어있다(엡 2:1).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알지 못하였고 구원받아야 할 필요도 발견하지 못하였으며 지옥으로 향하고 있음도 깨닫지 못하였다. 오직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참 지식을 주시고 우리를 살리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이끌기 전까지는 우리는 영적으로 완전히 죽어 눈먼 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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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우리가 영적 원수인 마귀와 죄에게 속아 있음을 뜻한다. 죄와 마귀는 우리를 기만하고 속여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할 이유가 없음을 속삭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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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 죄인의 진단(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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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바울은 자신을 두고 “죄인들의 우두머리”라는 칭호가 자신의 것이라 주장한다. 사도 바울의 말은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기 전에도 사람이 타락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타락해 있었지만 여전히 지금도 나의 존재의 속안은 사악함이 있으며 그럼에도 나는 구원받은 자로다.”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롬 7:​18-25에서 한 말과도 동일하다. 내가 원치 아니하는 것을 행하는 죄가 여전히 내 안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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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역시 사도 바울이 생각과 동일함을 시인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내 자신의 삶을 보면 과거의 나와 비교하였을 때 상당히 진전을 보이는 면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여전히 변화를 입어야 할 부분들이 있으며 나 스스로는 그것을 고칠 능력이 없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죄인들임을 증거하지만 더 이상 잃어버린 죄인들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분의 의를 입은 성도들이 된 죄인들이 되었다(고전 6: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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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성도의 간증(13-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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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딤전 1:13-14 내가 전에는 신성모독하는 자요, 핍박하는 자요, 해를 끼치는 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얻게 됨은 내가 믿지 아니하는 가운데 알지 못하고 그것을 하였기 때문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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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성도의 회심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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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바울은 주님으로부터 주어진 두 가지 큰 선물들이 그의 구원을 가져왔음을 말하고 있다: 긍휼과 은혜. 그분의 긍휼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합당한 지옥이라는 정죄를 주지 않으셨다. 또한 그분의 은혜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합당치 아니한 완전한 구원을 주셨다. 긍휼은 받아야 합당한 자에게 받지 아니하게 하시는 친절을 말한다. 반면 은혜는 받지 말아야 할 것을 합당치 아니한 자에게 받게 하시는 친절이다. 바울이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모독하며 그분의 복음을 증오하였음에도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아니한 것은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그러나 은혜는 그가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주 예수님을 직면하게 하여 그의 죄들을 보게 하고 그의 혼을 건지어내어 하나님을 진실로 섬기는 자가 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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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절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구하고 그분의 피로 산 그 은혜가 그에게 넘치도록 풍성하였음을 고백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필요 이상으로 은혜를 주셨음을 뜻한다! 그의 죄가 넘친 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넘쳐났다(롬 5:20)! 그는 단지 구원만 얻은 것이 아니었다. 주님은 그를 불러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셨고 그것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어 복음을 믿지 아니하는 세상에 전하도록 세움을 얻었다. 13절을 보면 “긍휼을 얻게 됨”이라고 되어 있는 부분의 원어는 “수동형”으로 되어 있다. 즉 사도 바울이 긍휼을 구하지 않았으나 긍휼이 그를 찾았음을 말한다. 그는 긍휼을 받기에 합당치 않았으나 그럼에도 긍휼이 그에게 임하였다. 바울은 긍휼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럼에도 긍휼은 그의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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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음으로써 구원받은 자들이라면 그 역시 사랑과 영광의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두 가지 동일한 선물을 받은 자들이다. 하나님의 긍휼이 우리가 방황하던 날들과 우리가 죄의 어둠과 사망 가운데 놓였을 때 그분의 진노로부터 우리를 건지었다. 그분의 은혜가 사랑 가운데 우리에게 이르러 우리의 영적 상태를 보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께로 우리를 이끌었다. 우리의 혼을 구원한 것은 은혜를 위한 은혜였다(엡 2:8-9, 딛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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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죄들보다 바로 그분의 은혜가 더욱 넘치도록 풍성하였음을 알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상태와 모습”으로는 하늘나라로 갈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소유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늘의 시민이 되었을 뿐 아니라 영원히 그분의 자녀들이 되었다. 바울의 혼을 단지 구원만 하지 않은 것처럼 은혜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든 자들에게 “넘치도록 풍성”하다. 주님은 이제 은혜 가운데서 자신의 성도들이 주님을 섬기도록 부르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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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성도의 회심의 나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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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혜가 임하였을 때 그것은 “믿음과 사랑”과 함께 왔다. 주님께서 바울을 구원하셨을 때 은혜가 바울이 이전에 부인하였던 그분을 믿게 만들었다. 은혜가 그에게 임함으로써 그가 이전에 증오하고 죽이고자 하였던 하나님의 사람들과 주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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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하시는 일이다! 은혜는 여러분이 항상 의심하고 믿지 아니하던 분을 믿게 할 것이다. 은혜는 그 이전에 미워하고 받아들이지 아니하던 사람들과 그분을 섬기는 일들을 사랑하게 하고 관심을 갖게 이끈다. 즉 은혜는 여러분이 완전히 딴 사람이 되게 하며 여러분의 삶을 완전히 그리고 영구적으로 바꾸어 놀 것이다(고후 5: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옛것은 지나갔고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다.
 +
 +=====III. 종의 간증(12절)=====
 +
 +**딤전 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를 드림은 그분께서 나를 신실한 자로 여기사 내게 사역을 맡기셨기 때문이라. **
 +
 +====A. 섬김의 이유들====
 +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주님을 섬기고 있는 것은 바로 주님께서 자신을 그 사역 가운데 “두셨”으며 또한 자신이 “신실한 자”로 보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신실한 자로 여기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믿음이 충만한 자 혹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셨다는 것을 뜻한다. 사도 바울은 스스로 이 사역으로 들어올 것을 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주 예수님을 핍박하고 주의 성도들을 핍박하였다는 것으로 인해 사역에 합당치 아니한 자라고 생각하였다. 그럼에도 그가 복음 선포자와 사도가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딤전 2:7). 주님께서 그를 취하여 그분께서 친히 바울이 섬기기를 원하는 곳에 그를 두셨다. 사도 바울이 이제 그 사역 안에 있게 되었을 때에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신실하게 섬겨왔다. 이 동일한 것을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주문하고 있다(딤전 1:17-19).
 +
 +사도 바울이 주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이유는 모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동일한 이유가 되어야 마땅하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섬겨야 할 곳을 지정하시며 우리를 그곳에 두신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전 12:7-31, 롬 12:1-8). 주님은 우리를 두신 곳에서 섬기도록 필요한 선물들을 주시며 우리의 임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두신 곳에서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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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섬김의 자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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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섬길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 과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능하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주님께서 그를 강하게 하고 권능을 주셨음을 뜻한다. 사도 바울은 이전에 그가 할 수 없었던 것을 하였다. 그것은 그가 위대한 복음 전도자나 교사였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그렇게 된 것은 주님의 능력으로 인한 결과였다. 사도 바울이 뛰어난 지성가였기에 그가 할 수 없는 것들을 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능력이 그로 하여금 뛰어난 지혜를 얻게 하였다. 사도 바울이 타고난 능력이 있어서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이 그에게 임하였기에 그가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는 자가 되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 직무를 위해 그분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능하게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종이 된 바울의 간증이었다(고전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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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분을 섬기는 일들 중 어디로 부르실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다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반드시 그분께서 여러분이 그 과업을 행할 수 있도록 여러분을 능하게 하실 것이라는 점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신다면 여러분을 예비시키시고 또 필요한 능력들을 부여하실 것이다. 바로 그분의 영광을 위해 그분의 일들을 행하는데 필요한 자원들이 그분의 성령님을 통해 여러분에게 공급될 것이다(고전 15:10, 고후 3:5-6, 4:1, 12:9-10, 빌 4:13, 딤후 4:17).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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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V. 본이 된 자의 간증(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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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딤전 1:16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내 안에서 모든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이후에 자신을 믿어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게 될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셨으니 이런 까닭으로 내가 긍휼을 얻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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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택하시어 그분의 긍휼과 은혜를 베풀어주신 이유는 그를 본으로 사용하고자 함이었음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그분의 “오래 참으심”의 긍정적인 증거가 되기를 원하셨다. 만일 하나님께서 바울을 구원하시고자 하셨고 또 그렇게 하셨다면 그것은 그분에게로 오려하는 누구든지 그분께서 구원하실 것이라는 점을 모든 사람이 깨닫게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신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런 “본”이 되었다고 말한다. 주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 두 가지를 보이고자 하신다. 먼저 바울을 구원하실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나아오는 누구든지 구원하실 수 있으시다. 또한 하나님께서 바울을 구원하신 방법은 다른 사람들이 구원받는 방법이 어떠할지를 보여준다. 사도 바울처럼 빛이 비추고 예수님의 음성을 분명하게 듣는 일은 없을지라도 죄를 자각하게 하시고 십자가에 처형되어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믿음을 두는 방법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그에게 긍휼과 은혜가 주어진 것처럼 구원받는 모든 자들에게 긍휼과 은혜가 주어질 것이다. 그에게 은혜가 주님은 섬기도록 이끌었던 것처럼 은혜가 구원받은 모든 자들을 불러 주님을 섬기도록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도 바울을 위해 오래 참으셨던 것처럼 길이 참으셔서 인내하시고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인해 참 지식을 받아들이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 믿음을 두게 될때까지 하실 것이다. 은혜가 사도 바울의 삶을 변하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창조물이 되게 하였던 것처럼 그분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삶이 성령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변화하게 될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주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였더라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길을 가고 있었을지를 생각해보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 안에서 넘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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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 찬송자의 간증(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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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딤전 1:17 이제 영원하신 [왕] 곧 죽지 아니하시고 보이지 아니하시고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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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찾으셨을 때에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기억하였으며 또한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를 생각하였다. 그 모든 것들을 생각하였을 때 그는 주님께 찬양을 돌리는 것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두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찬양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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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바울의 모습은 우리 앞에 올바른 예를 세우고 있다.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구원을 위해 우리를 찾으셨을 때 우리가 어떠한 자였는지를 기억해야 할 이유가 있다. 주님께서 우리를 찾으셨을 때 우리가 어디에 있었으며(사 51:1) 우리를 통하여 어떤 일들을 행하셔 왔는지를(고전 2:9, 삼상 12:24) 생각해보라. 주님께서 어디서 우리를 찾으셨고 우리를 위하여 어떤 일들을 하셨으며 우리 안에서 어떤 일들을 하시고 계시며 또 우리를 어디로 이끄실지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찬양함이 마땅함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분이 누구시며 또한 우리는 누구인지를 생각한다면 우리의 목소리를 높여 그분을 찬양하는 것은 합당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분은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며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분의 이름을 높이고 알리는 일에 자신을 드리어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 “오 [주]여, 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들이 주를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나이다”(계 4:11)
 +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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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여러분이 구원받은 자라면 사도 바울의 간증과 같은 간증이 있을 것이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선하시고 은혜롭지 않으신가?​ 만일 그러하다면 그분을 섬기는 삶을 살며 그분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는 입술의 열매는 당연하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부분이 있다면 주님께 여러분을 드리라.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더욱 드러나며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 보여준 그분의 긍휼과 은혜가 또한 우리 주변의 이웃들과 가족들에게 나타나도록 기도하자.
딤전1.12-17.txt · 마지막 수정: 2018-06-03 15:52 작성자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