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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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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3.15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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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2월 6일 주일오전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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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그 존재의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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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디모데전서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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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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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민족의 명절인 구정을 잘 보내고 오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너무 많이 먹어 항상 배가 부담이 되곤 했는데 이번 설은 경제가 그다지 좋지 않은 영향도 있고 저도 나름대로 적게 먹으려고 노력을 해서인지 좀 나아진 것 같습니다.
 +
 +오랜만에 모인 친척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그중에 장로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있는 집사라든지 권사라든지 그런 직분에 대한 대화가 오갔는데 제가 그런 직분들이 장로교회에 있게된 배경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한국사회는 미국이나 다른 나라와는 다른 점이 연령층이 같지 않을 경우 상대방을 부를 명칭이 마땅치 못한 문제가 있습니다. 영어의 “you”를 번역할 때에도 같은 연령층이나 친구인 경우는 상관이 없지만 다른 연령층 특히 연장자를 부를 때의 호칭은 상당히 까다로운 번역이 됩니다. ​
 +
 +많은 침례교회에서 형제·자매라는 호칭을 사용해서 부르기도 하지만 이 호칭은 사용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고 또한 이 호칭이 정착되지 않은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장로교회의 경우 이 호칭을 쓰지 않는 교회들이 많을뿐더러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실례가 된다고 여기는 한국문화상 어떤 칭호를 대신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는 “김대리”,​ “이과장”,​ 혹은 “박차장”과 같은 직급을 이용해서 부르곤 합니다. 한국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사용하는 것이 바로 칭호입니다. “홍집사”와 같은 식으로 “집사”라는 호칭을 사용해서 형제들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다보니 성경에 나와 있는 진짜 “집사”에 해당하는 “직분”을 구분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되었고 그래서 “안수집사”가 나오게 됐습니다. 사도행전 6장을 보면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사역에 전념”하고자 교회의 일들을 돌볼 일곱명의 집사들을 선출한 후 그들을 안수해서 그 일을 수행하게 했습니다. ​
 +
 +장로교회에서 교회에 어느 정도 다녀서 등록이 되면 집사라는 호칭을 다 주기 때문에 성경에 나와 있지도 않은 “안수집사”라는 직분을 만든 겁니다. 또한 성경에서 나오는 장로는 말씀을 가르치는 감독 혹은 목사를 두고 하는 말인데 이를 잘못해석해서 직분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남자들에게는 어느 정도가 되면 “장로”라는 직분을 줍니다. 그리고 여자들에게는 “권사”라는 성경에 나와 있지도 않지은 새로운 직분을 만들어 줍니다. 그 이야기를 해주면서 저는 이런 것들은 비성경적이므로 성경적인 침례교회에서는 오직 성경에서 말하는 “목사 혹은 감독” 그리고 “집사”라는 두 가지 직분만 가지고 있음을 언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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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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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게 된 이유 역시 다양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려던 여러 가지 이유와 비슷하기도 합니다. 성경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오던 까닭을 살펴보면 다양한 이유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시던 병 고치는 신유의 기적을 보고 자신들이 가진 병들을 고침 받고자 그분께 나아왔습니다. 그분을 대면했던 많은 사람들 중에 고침을 받지 아니한 자가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계속해서 섬기려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권위 있는 말씀으로 인해 그분께 나아왔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그분을 배척하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아왔던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떠나갔습니다. 그들은 당시 유대인의 회당에서 쫓겨나는 것을 원치 아니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분께서 행하신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놀라운 일들을 보고 그로 인해 그분을 따르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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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6:2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기적들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요 빵을 먹고 배불렀기 때문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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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들역시 주님께서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주시자 그분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떠났지만 여전히 그분에게 붙어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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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6:66~69 그때부터 그분의 제자들 중의 많은 사람이 돌아가고 다시는 그분과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 이에 예수님께서 열둘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하시니 68 그때에 시몬 베드로가 그분께 대답하되,​ 주여, 영원한 생명의 말씀들이 주께 있사온대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리이까?​ 69 우리는 주께서 그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확신하나이다,​ 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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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여러분이 어떤 이유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또한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맛보았고 또 주님이 나에게 어떠한 분인지를 진실로 깨닫는 사람이라면 교회로 나아오는 참된 이유를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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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 중 어떤 이는 누군가의 전도로 생명의 주가 되신 예수님에 대한 기쁜 소식으로 인해 그분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 교회로 나온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즐거운 교제를 위해 교회로 나온 사람이 있었을 것이며 혹은 아는 사람의 소개로 그냥 나오기 시작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어떤 이유로 교회로 나오기 시작했던지 간에 이제부터 여러분은 제자들이 주님께 가졌던 그 동일한 이유를 품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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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교회를 무어라 정의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집”,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 “진리의 기둥과 터”라는 용어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용어를 통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러나 편의상 “하나님의 교회”라는 용어부터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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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교회의 정의와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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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로 교회(敎會)는 한자로 가르칠 교, 모일 회로 사용됩니다. 사실 이것은 그리스 원어의 의미와 전혀 상관이 없는 뜻입니다. 그리스어로는 “에클레시아”로 “에크”와 “칼레오”가 합쳐진 말로 “불러냄을 받은” 혹은 “모임”,​ “회중”을 뜻하는 말입니다. 신약에서 115번 사용되었으며 그중 3번은 assembly로 사용되었고(한글성경은 무리, 집회, 모임으로 번역됨, 행 19장) 나머지는 교회로 번역되었습니다. 영어로 교회는 church로 이 단어는 그리스어로 “주께 속한”이란 뜻의 “큐리아콘”이란 단어에서 파생된 “circe”라는 단어가 church로 정착하게 된 단어입니다. 영어가 독일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독일어로 교회는 “kirche”(키르히)입니다. 그러므로 영어의 church나 한국어의 “교회”는 원래 그리스어 “에클레시아”와는 전혀 뜻이 일치하지 않는 단어입니다. 그럼에도 계속 이 단어가 사용되는가?​ 그것은 정착되어진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할 때 “지금까지 사용되어오던 용어는 최대한 그대로 유지하는 것으로 한다”는 원칙이 있는데 이에 적용되던 단어 중 church가 있습니다. church는 “에클레시아”와는 전혀 무관한 단어이지만 지금까지 사용되어온 관용어이기에 그대로 유지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행 19:37절과 같은 경우 church라는 번역보다 assembly로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생기게 된 이유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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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서 교회는 두 가지 형태로 쓰입니다. 첫 번째는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교회로 우주적인 교회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었을 때 성령에 의해 한 몸 안으로 침례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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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엡 1:23 교회는 그분의 몸이니 곧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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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12:12~13 몸은 하나이며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그 한 몸의 모든 지체가 많아도 한 몸인 것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시니라.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나 모두 한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왔으며 모두가 마시게 되어 한 성령 안으로 들어왔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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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형태는 지역교회입니다. 지역교회란 각 지역에서 형성된 믿는 자들의 모임을 뜻합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교회는 대부분 지역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각 지역교회가 바울 당시 대부분 큰 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로인해 어떤 형제들은 교회가 각 도시마다 하나씩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여기가 청주시이므로 청주 교회라는 단 하나만의 교회가 성경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성경의 해석의 원리를 무시한 잘못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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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는 우리에게 교리로 주어진 확실한 명령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목사”와 “집사”에 대한 교리는 디모데전서와 디도서에 걸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행정적인 많은 것들이 성경에 명확한 교리로 주어지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의 만찬은 낮에 해야 하는가? 아니면 저녁에 해야 하는가? 혹은 교회 헌금은 돌려야 하는 가? 아니면 헌금함을 두어 자유롭게 내게 해야 하는가? 혹은, 주일 모임은 몇 시에 해야 하는가? 성경은 이런 것들에 대해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자율적으로 정해 수행되어도 무방한 것들이기 때문에 주님은 각 지역교회의 자율에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많은 것들이 시대마다 상황마다 변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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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사람들은 어디서 실수를 범할까요?​ 성경에 명확한 교리로 주어지기보다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거나 당시의 실행을 교리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이런 경우 사도행전에서 그 교리를 만들어 옵니다. 그러나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은 과도기적인 내용들이 많이 적혀있으며 또한 사도행전은 교리서로 주어진 책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지만 거기에 나와 있는 것들을 교리로 삼는 순간 실수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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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잘못된 생각의 근원은 성경을 깊이 살피지 못한데서 기인합니다. 로마서 16장을 보면 바울은 겐그레아에 있는 교회의 종 뵈베를 로마에 있는 교회에 추천합니다. 겐그레아는 어느 지역입니까?​ 겐그레아는 고린도의 주요 항구 중 하나로 고린도에서 8~9마일 떨어져 있습니다. 즉 겐그레아는 고린도에 속해있습니다. 바울이 겐그레아에 있는 교회를 세웠다는 기록이 사도행전에 나와있지 않습니다. 어쩌면 고린도에 있던 사람이 그곳에 복음을 전하고 세웠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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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3절을 보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등장합니다. 5절을 보면 그들의 집에서 교회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로마에는 적어도 두 개의 교회가 존재합니다. 우리는 명확한 교리가 아닌 것들에 대해서는 각 지역교회를 판단하기보다 서로의 자율에 따라 움직이도록 두는 것이 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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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V. 하나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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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으로 돌아가 다시 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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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딤전 3:15 그러나 내가 오랫동안 지체하면 네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알게 하려 하노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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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모데전서 3장15절에서 교회는 먼저 “하나님의 집”으로 불립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몇 가지 생각을 갖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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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나님의 거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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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집은 구약에서 성전을 의미하는 말로 쓰여 왔습니다. 주님은 그곳에서 그분께 나아오는 자들을 만나시고 또한 그분이 살아계심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손으로 지은 건물에 하나님께서 거하실 수 없는 것은 그분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또한 모든 것을 충만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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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66:1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하늘은 나의 왕좌요, 땅은 나의 발받침이라. 너희가 나를 위해 짓는 집이 어디에 있느냐?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에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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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로 주님은 더 이상 인간의 손으로 지은 성전을 통하여 계시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그 성전이 무너지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이제 주님은 믿는 자들 안에 거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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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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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지금 바울이 하나님의 집이라고 일컬을 때 이것은 믿는 자들로 이루어진 지역교회를 들어 이야기 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하기 바랍니다. 바울은 이 지역교회가 바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이 지역교회 가운데 거하고 그들 가운데 거니신다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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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후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찌 조화를 이루겠느냐?​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니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고 그들 가운데 거닐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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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나님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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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거처와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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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엡 2:19~22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더 이상 낯선 자도 아니요 외국인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더불어 동료 시민이요 하나님의 집안에 속한 자들이며 20 또 사도들과 대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자들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으뜸 모퉁잇돌이 되시나니 21 그분 안에서 모든 건물이 꼭 맞게 함께 뼈대를 이루어 주 안에서 한 거룩한 전으로 자라가고 22 그분 안에서 너희도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거처로 함께 세워져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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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이 구원받은 성도들을 칭하는 용어로 종종 사용하던 것이 “형제들”이란 용어입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게 되어 하나님의 가족 즉, 하나님의 집안에 속한 자들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의 지체들을 대할 때 가족처럼 대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딤전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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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기 때문에 양육함으로 자라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라나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교회에 목사와 교사를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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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2:42 주께서 이르시되,​ 그런즉 자기 주인으로부터 그의 집안사람들을 넘겨받아 다스리며 제 때에 그들에게 그들 몫의 양식을 나누어 줄 신실하고 지혜로운 청지기가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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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엡 4:11~16 그분께서 더러는 사도로 더러는 대언자로 더러는 복음 전도자로 더러는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것은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고 섬기는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하심이라. 13 마침내 우리가 다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에서 하나가 되어 완전한 사람에 이르고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리니 14 그 목적은 우리가 이제부터 더 이상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들의 속임수와 몰래 숨어서 속이려 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간교한 술수로 말미암아 온갖 교리의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 밀려다니지 아니하고 15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모든 일에서 그분 안에 이르도록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 그분은 머리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16 그분으로부터 온 몸이 각 부분의 분량 안에서의 효력 있는 일에 따라 모든 마디가 공급하는 것에 의해 꼭 맞게 함께 결합되고 들어차서 몸을 자라게 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세우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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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사랑 안에서 훈련이 있습니다. 올바른 훈련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버릇이 없어 망치고 맙니다. 가족의 가장이 자녀들이 올바로 훈육받도록 징계하듯이 교회의 영적 지도자는 교회의 바른 성장을 위해 훈련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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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4:18~5:5 지금 어떤 자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줄로 생각하고 우쭐대고 있도다. 19 그러나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 우쭐대는 자들의 말이 아니라 권능을 알아보리니 20 하나님의 왕국은 말에 있지 아니하고 권능에 있느니라. 21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아니면 사랑과 온유의 영으로 나아가랴?​ 5:1 너희 가운데 음행이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알려졌는데 그런 음행은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거론되지 않는 것으로 곧 누가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는 것이라. 2 그런데도 너희가 우쭐대며 오히려 슬퍼하지도 아니하고 이런 일 행한 자를 너희 가운데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니라. 3 내가 진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마치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을 그렇게 행한 자에 관하여 이미 판단하였노라. 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가 같이 모일 때에 내 영도 함께 있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5 그런 자를 사탄에게 넘겨주어 육체를 멸하게 하려 하였으니 이것은 영이 주 예수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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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든 일에는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하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사랑 안에서 행해져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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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으로써 유모의 부드러움과 아버지의 권면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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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전 2:7~12 유모가 자기 아이들을 돌보듯 너희 가운데서 부드러운 자가 되었으니 8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다정하게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혼까지도 너희에게 기꺼이 나누어 주고자 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소중하였기 때문이라. 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해산의 고통을 너희가 기억하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수고하며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였노라. 10 우리가 믿는 너희 가운데서 얼마나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처신하였는지에 대하여는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11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명하였노니 12 이것은 너희를 부르사 자신의 왕국과 영광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께 너희가 합당히 걷게 하려 함이라.
 +
 +=====V.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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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을 통해 그다음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로 불린다는 점입니다. 교회는 “에클레시아” 즉, “불러냄을 받은 모임” 혹은 “회중”을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사교모임이 아닙니다. 또한 회중으로써 교회는 합당한 질서와 절차가 존재합니다. 이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교회이므로 하나님께서 교회의 주관자이십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알려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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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구약에서 이집트에서 불러냄을 받은 무리를 기억할 것입니다. 예, 이스라엘입니다. 주님은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불러내어 인도하실 때 아무런 질서나 혹은 운영 없이 그냥 되는대로 인도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그 민족을 위해 법을 주셨으며 인도자인 모세를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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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 3:5~6 또 모세는 참으로 나중에 말하게 될 그것들을 증언하기 위해 그분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으되 6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집을 다스리는 아들로서 신실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기쁨을 끝까지 굳게 붙들면 우리가 그분의 집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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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본문말씀이 바울이 감독과 집사의 직분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준 말씀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은 교회에 두 가지 직분을 주신 것은 교회가 “불러냄을 받은 모임” 즉 “회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어떤 교회에서는 (특히 형제교회) 모두가 다 설교할 수 있는 특권이 있는 것처럼 가르쳐지고 또한 그렇게 실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감독과 집사라는 직분을 교회에 주시는 목적을 상실한 것입니다. 모든 믿는 자들은 주 안에서 형제들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와 형제가 되셨습니다. 또한 모든 믿는 자들은 영적 제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모두에게 감독과 집사라는 직분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일을 수행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특정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직분입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기 위해 말씀을 전하는 주요 사역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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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 20:28 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모든 양 떼에게 주의를 기울이라. 성령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로 삼으사 하나님의 교회 곧 그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먹이게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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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사는 하나님의 교회의 일들을 수행하기 위한 사역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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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 6:2~4 이에 열두 사도가 제자들의 무리를 자기들에게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려두고 상을 섬기는 것은 합당치 아니하니 3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는 너희 가운데서 정직하다는 평판이 있고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 오직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하리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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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교회는 형제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기회를 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입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바울은 신실한 자들에게 그 일을 맡겨야 함을 언급합니다. 그것은 강단에서 전파되는 모든 일들에 대해 감독 즉, 목사가 책임을 가져야 함을 상기케 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세워 말씀을 전하게 할 것인지에 대해 감독은 말씀에 대한 부르심과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사가 있는지 또한 그 사람이 주님에 대한 믿음이 신실한지 점검해야 합니다.
 +
 +딤후 2:2 또 네가 많은 증인들 가운데서 내게 들은 것들 바로 그것들을 신실한 사람들에게 맡기라. 그들이 또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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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 진리의 기둥과 터=====
 +
 +마지막으로 본문말씀을 보면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언급합니다.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었습니다. 에베소에는 여신 다이아나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 신전은 127개의 기둥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지역교회는 진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졌으며 또한 진리의 기둥과 터를 갖고 있습니다.
 +
 +기둥이 보여주는 것은 지역교회의 주된 사역이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보이는 것임을 말합니다. 우리는 “생명의 말씀을 제시”(빌 2:​16)함으로써 세상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을 얻게 해야 합니다. 또한 기둥으로써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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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는 기둥이 넘어지지 않도록 존재하는 것입니다. 만일 터가 무너지면 “공의는 뒤로 물러가고 정의는 멀리 서 있나니 진리가 거리에 쓰러졌고 공평이 들어가지 못하는”(사 59:14) 상태가 될 것입니다. 만일 지역교회가 진리에서 돌아서거나(딤전 4:1) 혹은 사역에 있어 세상과 타협하거나 따라간다면 진리는 더 이상 설 수 없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 지역교회 지도자는 강한 군사처럼 죄와 타협에 대해 대항해야 합니다.
 +
 +왕상 7:​21~22절을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면서 세운 두 기둥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
 +왕상 7:21~22 또 그가 그 기둥들을 성전의 주랑 앞에 세우니라. 그가 오른쪽 기둥을 세우고 그것의 이름을 야긴이라 하며 왼쪽 기둥을 세우고 그것의 이름을 보아스라 하니라. 22 그 기둥들 꼭대기 위에는 백합 모양이 있었더라. 이와 같이 두 기둥을 만드는 일이 완성되니라
 +
 +야긴은 “그가 세우리라”라는 뜻이며 보아스는 룻기에 등장하는 인물로 그를 통해 이스라엘의 왕들이 나왔습니다. 보아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등장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기둥의 꼭대기 위헤는 백합이 있습니다. 백합은 우리 주님을 상징하는 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역교회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며 그분의 향기를 퍼뜨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
 +=====VII.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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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이 교회가 진리 위에 굳건하게 서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그것은 어쩌면 재미없는 교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딤전3.15.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