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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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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6.16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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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월 5일 주일오전설교==
  
 +======옛 행로들 곧 선한 길로 걸으라======
 +
 +본문말씀:​ 예레미야 6장 16절
 +
 +**렘 6:16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길들 가운데 서서 보며 옛 행로들 곧 선한 길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고 그 길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을 위한 안식을 얻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그 길로 걷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며**
 +
 +=====서론=====
 +
 +종종 렘 6:16은 예전의 삶과 방식을 고수하는 것을 강조하고자 할 때 인용되곤 한다. 이 구절을 들어 현대의 CCM보다는 예전 방식의 찬양을 추구하고 현대의 가치관 보다는 예전의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가치관을 따라 살며 현대의 감성과 감각 위주의 삶보다 예전의 도덕적이고 의로운 삶을 살 것을 추구할 것을 말한다. 물론 이런 것들을 추구하는 것은 합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 구절의 문맥이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지는 않다. 이것은 옛 행로들 혹은 선한 길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다. 오늘 우리는 이것을 보고자 한다.
 +
 +예레미야 6장에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백성에게 준 경고의 말씀이 담겨있다. 예레미야의 시대적 배경은 남왕국 유다가 멸망하던 당시에서 끌러갈 때까지이다.
 +
 +렘 1:2-3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 시대 곧 그의 통치 제십삼년에 {주}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고 3 그것이 또한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제십일년 말 곧 다섯째 달에 예루살렘이 포로로 끌려갈 때까지 임하니라.
 +
 +본문 6장 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북쪽에서 재앙과 큰 파멸”이 올 것을 경고하고 계신다. 이들은 주님께서 전쟁으로 예루살렘을 치라고 명령하신 바빌론이다. 주님은 예루살렘이 “징벌 받을 도시”라고 말씀하신다. 8절에서 주님은 예루살렘을 “황폐하게 하며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땅으로 만들” 것이라 말씀하신다. 어찌하여 하나님의 도시 예루살렘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고 징벌 받기에 합당하며 주께서 70년 동안 바빌론의 압제 아래 놓이는 것을 허락하신 도시가 되었는가?​ 하나님의 성전이 있으며 만군의 주의 이름으로 불리며 또한 하나님의 언약궤가 놓인 도시가 하나님께서 참을 수 없으며 더 이상 지키시는 것을 원치 아니하는 상태가 되었는가?​ 11절에서 “주의 격노가 내게 가득하여 내가 참는데 지쳤노라.”라고 말한다. 주님은 더 이상 유다 백성의 죄를 참아주는데 한계를 느끼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유대인들을 위한 말씀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고 그분의 원칙들과 법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님은 이 땅에서 크리스천들로 하여금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도록 명령하셨다. 그런데 현재의 기독교의 모습을 볼 때 멸망을 앞두고 있는 예루살렘에서 볼 수 있는 종교지도자들의 모습과 흡사해져 가고 있다. ​
 +
 +주님은 그들의 멸망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신다.
 +
 +렘 6:10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경고를 주어야 그들이 듣겠느냐?​ 보라, 그들의 귀가 할례 받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들이 귀를 기울이지 못하는도다. 보라, {주}의 말이 그들에게는 치욕거리가 되며 그들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는도다.
 +
 +이스라엘 백성의 귀는 할례 받지 못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들에게 주어지는 경고의 말씀을 치욕거리라 생각했다. 주님은 그들에게 마음의 할례를 받으라고 말씀하셨다.
 +
 +렘 4:3-4 ¶ {주}가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의 묵은 땅을 갈고 가시나무들 가운데에 씨를 뿌리지 말라. 4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주민들아,​ 너희는 {주}를 위하여 너희 자신에게 할례를 행하고 너희 마음의 포피를 제거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행위들이 악하므로 내 격노가 불같이 나아가 타오르리니 아무도 그것을 끄지 못하리라.
 +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완악하여 단단해진 마음의 묵은 땅을 갈아 하나님의 말씀의 씨가 뿌리를 내리게 하며 또한 말씀이 우리 안에서 열매를 맺도록 “가시나무들 가운데” 뿌리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가시나무들 사이에 떨어진 것은 말씀을 듣고 나아가다가 이 세상 삶의 염려와 재물과 쾌락으로 숨이 막혀 완전함에 이르는 열매를 내지 못하는 자들”(눅 8:​14)이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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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렘 6:13 이는 그들의 가장 작은 자로부터 그들의 가장 큰 자에 이르기까지 다 탐욕에 빠지고 대언자로부터 제사장에 이르기까지 다 거짓으로 행하기 때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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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또한 “탐욕”에 빠진 백성이었다. 그들의 가장 작은 자로부터 그들의 가장 큰 자 즉 통치자들과 왕들을 포함한 다스리는 자들이 모두 탐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뿐 아니라 대언자들로부터 제사장에 이르기까지 즉 종교지도자들 역시 다를 바 없었다. 그들 역시 “돈을 사랑하는” 것이 마음에 가득하였으며 탐욕으로 움직이고 주의 계시나 말씀이라고 선포하였다. 주님은 이들이 “다 거짓으로 행”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들의 종교적인 모습만을 볼 때 그들은 매우 종교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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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렘 6:20 무슨 목적으로 세바에서 내게로 향을 가져오며 먼 나라에서 향품을 가져오느냐?​ 너희의 번제 헌물들은 내가 받을 수 없으며 너희의 희생물들은 내게 향기롭지 아니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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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세바에서 나는 고급 향을 주님께 드렸으며 좋은 향품을 구하여 하나님의 집으로 가져왔다. 그들은 여전히 번제 헌물을 드리며 이것으로 자기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졌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 좋은 향기와 향품과 번제 헌물만 드리면 자기들의 의무는 끝났다고 여겼다. 마치 오늘날 기독교를 고백하는 사람들이 주일 교회만 출석하면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의무를 다 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
 +렘 6:14 그들이 또한 내 백성의 딸의 상처를 조금 고쳐 주고는 평안이 없는데도 말하기를,​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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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그들의 설교는 “평안”으로 가득하였다. 모든 것이 평안하고 안전하며 그들은 주의 뜻 가운데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전쟁과 전쟁의 소문이 늘어나도 그들은 하나님의 선민이며 하나님의 도시 예루살렘은 영원할 것이므로 그들은 안전하고 평안할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귀를 기울이길 원치 아니했고 오히려 그것을 거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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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렘 6:19 오 땅아, 들으라. 보라, 이 백성이 내 말들과 내 법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그것을 거절하였으므로 내가 그들 위에 재앙 곧 그들의 생각의 열매를 가져오리라.
 +
 +이것은 마지막 때에 있게 될 현상 중 하나와 같다. ​
 +
 +살전 5: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고 말할 그때에 아이 밴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임하는 것 같이 갑작스러운 파멸이 그들에게 임하나니 그들이 피하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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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는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의 징조에 대해 무지할 것이며 또한 경고를 주는데 실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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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에게 계속해서 자신의 대언자들을 보내시면서 그들의 죄악에 대해 경고하셨으나 이들은 여전히 자기들의 죄악의 길에서 벗어나지 아니하였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그들의 죄악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북쪽에서 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음에도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들의 거쳐는 하나님의 도시라고 자부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멸하신 북왕국 이스라엘의 길을 따라서 바알을 숭배하고 주변 민족들을 따라서 걷고 있었다. 7장을 보면 주님은 그들에게 “실로”를 바라보라고 권고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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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렘 7:14-15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한 것 같이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 곧 너희가 신뢰하는 이 집과 내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곳에 행하겠고 15 내가 너희의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의 온 씨를 쫓아낸 것 같이 너희를 내 눈앞에서 쫓아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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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는 요셉 지파 중 에브라임 지파에게 장자권을 허락하시고 이 지파의 땅인 실로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두는 것을 허락하셨다. 그러나 사사기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보면 에브라임은 장자 지파로서 이스라엘을 잘 이끌지 못하였고 오히려 전쟁의 날에 뒤로 물라난(시 78:9) 지파가 되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엘리 제사장 때 그들이 애지중지하던 언약궤를 원수의 손에 넘기시고 “실로”에 세워진 성막을 폐하셨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기억하시고 에브라임 지파로 하여금 솔로몬 이후 두 왕국으로 나뉜 이스라엘 중 북왕국 10지파를 다스리게 하셨다. 초대 왕 여로보암은 에브라임 지파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북왕국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주변 이방 민족들의 신들을 섬기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본받아 따라감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에브라임의 온 씨를 흩으셨다. 주님은 이것을 기억하고 유다 백성으로 하여금 회심하고 그들의 사악한 행위에서 돌아설 것을 경고하셨다. 그런데 그들은 주님께서 심판을 가져오기 앞서 그들에게 주는 마지막 권고를 듣고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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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렘 6:16-17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길들 가운데 서서 보며 옛 행로들 곧 선한 길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고 그 길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을 위한 안식을 얻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그 길로 걷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며 17 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수꾼들을 세우고 말하기를,​ 나팔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하였으나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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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예루살렘의 모습은 오늘날 한국의 전체적인 기독교의 모습과 흡사한 상황이다. 최근 서울의 대형교회 목사의 비리를 TV에서 자세히 다룬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목사의 비리와 성적 죄악은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에서는 알려져 있었으나 한국에서는 언론통제로 그렇지 못했던 것을 지금에서야 다루게 된 것이다. 대형교회의 목사들이 정치권과 결탁하여 움직이며 또한 사랑의 교회가 갈라져 경찰이 대치하는 그런 뉴스를 들을 때마다 그 교회의 이름인 “사랑”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짐을 느낀다. 최근에는 “차별금지법안”이라는 것이 새누리당 의원들에 의해 발의되었다고 한다. 차별금지법안이란 동성애자의 결혼을 비난하거나 목사의 설교 중 예수님외에 다른 구원이 없다고 말하면 최고 삼천만원에 해당하는 벌금을 내는 법안이라고 한다. 이 법안의 주 목적은 신천지나 하나님의 교회와 같은 이단들을 비난하지 못하게 하는데 있다고 보면 된다. 이 법안은 행 4:12 같은 구절을 설교하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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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 4:12 다른 사람 안에는 구원이 없나니 하늘 아래에서 우리를 구원할 다른 이름을 사람들 가운데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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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영적으로 아주 위험한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백성에게 주셨던 경고의 말씀은 오늘을 살고 있는 크리스천에게도 동일한 경고의 말씀이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섯 가지 행위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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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길들 가운데 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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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는 길들 가운데 서서” 라고 주님은 명령하신다. 성경에서 길들은 종종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의 삶의 계획 역시 “길”로 불릴 수 있다. 주님은 길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 먼저 멈추어 서라고 말씀하신다. 주님께서는 유다 백성에게 그들의 악한 길들에서 떠나길 원하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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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렘 7:2-3 {주}의 집 문에 서서 거기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주}께 경배하려고 이 문들로 들어가는 너희 모든 유다 사람들아,​ {주}의 말씀을 들으라. 3 만군의 {주}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길들과 너희 행위들을 고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하여금 이곳에 거하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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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또한 그들의 악한 계획에 따른 삶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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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렘 18:12 그들이 말하기를,​ 소망이 없으니 오직 우리는 우리 계획대로 걸으며 저마다 자기의 악한 마음이 상상하는 것을 행하리라,​ 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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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사람들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며 좁은 길로 걸어갈 것을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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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7:13-14 ¶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그 문은 넓고 그 길이 넓어 거기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 문은 좁고 그 길이 좁아 그것을 찾는 자가 적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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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길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지금까지 걸어왔던 옛 행로들이었다. 그들은 이 길로 걸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다. 우리는 종종 우리 자신이 그 행로들 가운데 있는지 멈추어 서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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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믿음의 눈으로)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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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서 두 번째로 말씀하신 행위는 “보라”는 것이다. 과연 내가 가고 있는 길들이 옛 행로들 즉 선한 길로 걷고 있는지 보아야 한다. 우리의 보는 것은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이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는 길이 있으나 그 끝은 사망의 길들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의 눈을 소유하는 것이다. 이집트에서 나와 광야에서 걷던 이스라엘 백성들 중 많은 사람들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했던 것은 그들이 들은 것들을 믿음과 결부시키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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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 4:2 우리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도 복음이 선포되었으나 선포된 그 말씀이 그것을 들은 자들 속에서 믿음과 섞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들에게 유익을 끼치지 못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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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그들을 두고 그들은 내 길들을 알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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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95:10 내가 사십 년 동안 이 세대로 인해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것은 마음속으로 잘못하는 백성이요,​ 그들이 내 길들을 알지 못하였도다,​ 하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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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명기를 통해 주님은 그들에 대해 “믿음이 없는” 자녀들이었다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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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32:20 이에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얼굴을 그들에게 숨기고 그들의 종말이 어떠한가 보리라,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심히 거역하는 세대요, 믿음이 없는 자녀들이기 때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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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온 것은 그들로 하여금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소망하면서 걷는 법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주님은 그들에게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였던 만나로 먹이신 것은 그들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 그들로 알게 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과 같지 못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말할지라도 그들은 아브라함이 믿음의 길을 걸었고 그를 따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이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그 길을 걸었던 대로 걷지 아니하였다. 오히려 이들은 반역하는 세대였고 불평으로 가득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원치 아니하던 세대였다. 그들은 고난을 당할 때면 언제나 이집트에서 살던 때를 그리워하며 한탄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집트에서 고난과 노역의 삶을 살며 고통 가운데 울부짖었던 것을 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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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레미야 6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그들로 믿음의 눈으로 볼 것을 명령하고 계신다. 그런데 믿음이라는 것은 단순히 “믿습니다.”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불확실한데에 내 자신을 의탁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확실한 것에 나를 의탁하는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오느니라.”(롬 10:17) 믿음은 단순히 내가 무조건 믿겠다고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계시하신 것에 확신을 두고 그분을 신뢰하는데 있다. 따라서 주님은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과 책망을 주심을 볼 수 있다.
 +
 +렘 6:8 오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혼이 너를 떠나며 내가 너를 황폐하게 하여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땅으로 만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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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렘 6:10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경고를 주어야 그들이 듣겠느냐?​ 보라, 그들의 귀가 할례 받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들이 귀를 기울이지 못하는도다. 보라, {주}의 말이 그들에게는 치욕거리가 되며 그들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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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렘 6:19 오 땅아, 들으라. 보라, 이 백성이 내 말들과 내 법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그것을 거절하였으므로 내가 그들 위에 재앙 곧 그들의 생각의 열매를 가져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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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법과 연관이 있다. 믿음은 바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들에 소망과 신뢰를 두는데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길을 보고 그 길 안에서 걸어야 한다. 더욱이 현재의 기독교는 믿음에서 많이 떠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대를 따르지 않고 예전 하나님의 사람들이 걸었던 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고한 신뢰와 확신을 두고 그 말씀대로 될 것을 믿으며 그 안에서 사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로 걷는 것이다.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서도 그 선한 길로 앞서 가셨으며 우리로 하여금 믿음의 경주를 달릴 것을 종용하고 계신다.
 +
 +=====III. 선한 길을 물으라.=====
 +
 +주님께서 세 번째로 권고하는 것은 선한 길을 물으라는 것이다. 사람마다 걷는 행로들이 같지 않다. 주님께서 나를 인도하시는 행로들과 여러분을 인도하시는 행로들은 같지 않다. 다만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을 따른다면 모두 선한 길 가운데 있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갖고 계신 계획들은 여러분을 향한 계획들과 같지 않다. 따라서 매일 매일의 삶에서 우리 각자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의 발걸음의 정도는 같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같은 원칙 아래 걸으나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으로 우리가 서로 다른 삶의 영역에서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믿음으로 각자를 향한 그분의 계획과 목적에 순종할 것을 요구하신다. 우리는 서로 다른 직장에서 가정에서 환경에서 살고 있으며 또한 우리의 믿음의 분량도 서로 같지 아니하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 그리고 순간순간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두고 내가 어떤 선택과 결단을 내리는 것이 필요한지 그분께 묻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이 원칙을 마음에 품고 있다면 우리는 이 부분에서 성공할 것이다. 그것은 주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보여주셨던 원칙이기도 하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옵소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에도 동일한 것을 가르치셨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
 +종종 사람들은 하나님께 묻는 것을 실패함으로 올바른 선택을 하는데서 실패한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래가 자기 몸종 하갈에게로 들어갈 것을 요청하였을 때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이스라엘과 원수가 된 이스마엘을 얻었다. 여호수아는 기브온 거주민들이 교활함으로 마치 그들이 먼 지방에서 그들과 평화협정을 맺으려 온 것처럼 나아왔을 때 주님께 그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묻지 아니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명령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을 죽이지 못하고 그들을 자기들의 종들로 삼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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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어떻게 하면 “너희가 모든 지혜와 영적 깨달음에서 그분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질” 수 있는가? 우리는 성령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을 구하고 기도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뜻을 계시해주시길 간구함이 필요하다. 에바브라는 골로새 성도들이 하나님의 모든 뜻 안에서 완전하고 완벽하게 서도록 그들을 위해 기도하였다.
 +
 +골 4:12 너희에게 속한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종인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너희를 위해 항상 기도로 뜨겁게 수고하나니 이것은 너희가 [하나님]의 모든 뜻 안에서 완전하고 완벽하게 서게 하려 함이라.
 +
 +=====IV. 선한 길로 걸으라.=====
 +
 +크리스천의 믿음의 완성은 행함에 있다. 야고보는 그 부분을 설명하는 책이다.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위 없는 믿음도 죽었느니라.”(엡 2:26) “오직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너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거울로 자기의 본래 얼굴을 들여다보는 사람과 같으니라. 24 그는 자기를 바라보고 자기 길로 가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즉시 잊어버리거니와 25 누구든지 자유롭게 하는 완전한 법을 들여다보며 그 안에 거하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그 일을 행하는 자니 이 사람은 자기가 행하는 일에서 복을 받으리라.”(약 1:22-25)
 +
 +만일 믿음이 있다고 말하나 그 입술의 고백에 따른 행함이 없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헛것이다. 살아있는 믿음은 행함으로 그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떻게 믿음 안에 있는지 입증할 수 있는가? 삶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주신 계시의 말씀을 따라 걷는데 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어떻게 믿음의 조상이 되었는지를 아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자기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을 두고 그 말씀에 따라 걸었다. 히브리서 11장은 그 선한 길을 따라 걸었던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
 +여기에 살아있고 참된 믿음의 결단이 드러난다.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변화된 사람이라면 우리가 고백한 믿음에 합당하게 걸어야 한다. 시편을 통해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행로들로 나를 인도하”신다고 고백하였다(시 23:3).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믿음을 두고 있다면 우리는 말씀이 가르치는 의로운 행위들을 행하고자 할 것이다. ​
 +
 +=====V. 너희 혼을 위한 안식을 찾으리라.=====
 +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선한 길로 걷는 모든 자들을 향한 약속을 보게 된다. 그들은 자기들의 혼을 위한 안식을 발견할 것이다. 히브리서 4:3에서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려면 믿어야 하느니라” 함과 같다.
 +
 +히 4:3 이미 믿은 우리는 안식에 들어가나니 이것은 세상의 창건 이후로 그 일들이 완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진노하여 맹세한 것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려면 믿어야 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
 +이 안식은 육체의 평안함을 말하는 안식이 아니다. “혼을 위한 안식”으로 “구원”과 관련이 있다. 이 안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다. 따라서 믿음의 행로들을 따라 걷는 모든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여주신 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것이다.
 +
 +마 11:28-30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 위에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을 위한 안식을 찾으리니 30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 하시니라.
 +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우리는 혼을 위한 참된 안식을 발견할 것이다. 이 안식은 종교적 행위에 있지 않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그분과 하나님과 갖는 교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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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이 되신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우리 혼을 위한 안식을 발견할 수 있다. 고난이나 박해나 스트레스나 어떤 환경 아래 내가 놓여 있다 할지라도 그분을 통하여 우리는 혼의 안식을 누릴 수 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억울하게 매를 맞고 옥에 갇혔어도 그들은 불평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의 발이 차꼬에 채워진 상태에서 주님을 찬양하였다. 믿음의 길을 걷는 자들은 성령님께서 그들 안에서 그들을 위로하고 소망을 주며 또한 세상의 부귀영화보다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실 때 그들은 순종하는 마음으로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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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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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다 백성이 옛 행로들에서 떠나 자기들의 길로 가게 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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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렘 18:15 내 백성이 나를 잊었으므로 그들이 헛된 것에게 분향하였으며 그것들이 그들로 하여금 옛 행로들을 떠나 그들의 길들에서 걸려 넘어지게 하고 행로들 곧 닦지 아니한 길로 다니게 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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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기독교는 그들의 하나님을 잊지 않았는가?​ 나는 어떠한가?​ 나는 선한 길로 걷고 있는가?
렘6.16.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