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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1.1 [2020-04-19 12:22]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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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4월 19일 주일오전설교==
  
 +======사도 바울의 지위와 소명과 사명======
 +
 +본문 말씀: 로마서 1장 1-7절
 +핵심 구절: 로마서 1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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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 1:1-7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구별되었는데 2 (이 복음은 그분께서 자신의 대언자들을 통하여 거룩한 성경 기록들에 미리 약속하신 것으로) 3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에 관한 것이라. 그분께서는 육체로는 다윗의 씨에서 나셨고 4 거룩함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권능 있게 밝히 드러나셨느니라. 5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직을 받아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믿음에 순종하게 하였나니 6 너희도 그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7 바울은, 로마에서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
 +=====서론=====
 +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서신으로 복음이 무엇인지를 신학적으로 설명한다. 이 책은 “크리스천의 헌법” 또는 “기독교 선언서” 혹은 “기독교 신앙의 대강당”으로 불려왔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하게 하였으며 지금도 이 책을 신뢰하는 사람들의 삶을 변하게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들 중 이 책을 통해 삶이 변한 두 사람을 언급해 보고자 한다.
 +
 +중세 암흑기를 끝냈던 마틴 루터는 원래 로마 카톨릭 사제였다. 그는 독일의 비텐버그 대학의 교수로 있으면서 자신의 학생들에게 로마서를 가르치는 중이었다. 그가 본문을 연구하면서 그의 마음은 로마서 1:17의 말씀에서 말하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주제에 사로잡혔다. 성령께서 그 구절을 들어 루터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셨으며 루터는 세상에 종교개혁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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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백 년 전에 영국 국교회에 사역자로 임명받은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선교차 미국으로 복음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 사람은 설교자이며 이제 선교사로 대서양을 횡단할 임무를 맡았지만 정작 자신이 복음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웠으며 회심의 삶을 체험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수요일 저녁 그는 런던의 한 성경 공부 모임에 참석하였는데 거기서 그는 마틴 루터의 로마서 강해를 들었으며 거기서 그는 그리스도께로 회심하게 되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전 세계가 나의 교구(선교지)”라 외쳤던 요한 웨슬레이다. 그는 동생 찰스 웨슬레와 함께 영국과 세계에 부흥 운동을 가져왔다.
 +
 +이 책을 통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그분께서 세상에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의 가치와 중요성은 이 책이 한 혼을 구원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데 있다.
 +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주후 56~58년 사이에 기록하였다. 그가 세 번째 선교여행으로 고린도에 머물렀을 때였다. 성경에 따르면 바울은 회심한 이후 3년을 아라비아에서 보내었다고 말한다(갈 1:17-18). 그 기간에 그는 구약성경을 연구하면서 예수님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을 이해했을 것이다.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그의 마음에는 이 서신에서 전하고 있는 복음의 정수가 불타고 있었을 것이다. 처음 일곱 구절을 보면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의 지체들에게 자신의 자격을 증명하고 있다. 그 중 오늘 우리는 1절만 살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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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이 자신과 자신의 사역을 설명하고 있는 부분을 보면 우리의 과업이 무엇인지 역시 조명을 받을 수 있다. 사실 사도 바울의 신약의 서신들을 보면 소개 부분은 할애가 많이 되지 않지만 이 서신에서 바울은 가장 길게 자신과 사역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는 신학적인 핵심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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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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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자신의 지위를 자랑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종”으로 선언하면서 시작하였다. 어느 누구도 기쁜 마음으로 자신을 종으로 소개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임을 기쁜 마음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종”이란 단어는 “결속된 노예”를 뜻한다. 구약을 보면 종에 대한 법이 있는데 그 법에 따르면 종은 자신의 자유를 거부하고 영원히 주인과 함께 머무를 선택을 할 수 있다(출 21:1-6). 바울은 로마의 성도들 앞에서 자신을 높이기보다는 오히려 낮추어 자신이 그리스도에게 결속된 종임을 말한다. 이것은 또한 그의 위대함의 비결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 노예로 보았기 때문에 개인적인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다. 그의 삶은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드려졌다.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팔린 것이다. 이것이 주님께서 사도 바울을 크게 사용하신 이유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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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현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이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자신이 통제하기를 원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권리가 있으며 전적으로 스스로 원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할 때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한다.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받았다면 우리는 그분과 결속된 종들이 된 것이다! 그분께서 우리를 사셨으며 이제 전적으로 우리의 주인이 되셨다(고전 6: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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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무슨 말이냐? 너희 몸이 너희가 [하나님]에게서 받은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전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 20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느니라.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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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의 지위는 섬김을 위한 자리로 주어지나 많은 사람들은 섬김보다 섬김을 받으려 그 자리를 원하고 있다. 주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이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아니하고 도리어 섬기며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느니라”(마 20:28) 라고 하셨다. 우리가 그분을 따르고자 한다면 섬김의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신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잠시 종의 개념을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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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종은 전적으로 주인의 소유가 된다. 영적인 의미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놓였던 허물과 죄들의 비참한 상태를 보시고 우리를 그분의 왕국의 자리로 옮기셨다. 그분께서 우리를 자신의 소유로 삼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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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종은 자기 주인을 위해 존재한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다른데서 찾지 않는다. 종은 자신의 권리를 갖지 않는다. 그가 갖는 유일한 권리라 주인에게 속한 것이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자기들을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들을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후 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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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종은 자기 주인을 섬기기 위해 존재한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그의 주인이 그가 하기를 원하는 것을 하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을 갖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평생에 주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생각하는 바였다. 크리스천의 삶의 목적 역시 주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전적으로 그분의 뜻을 행하기를 기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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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종의 뜻은 그의 주인에게 달려 있다. 그의 주인이 그에게 허락하는 것 외에 다른 뜻이나 야망을 갖지 않는다. 즉 종은 모든 부분에서 그의 주인의 뜻에 전적으로 내어드리는 것이다(고후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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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사도 바울이 그의 주인을 언급할 때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미함을 주목하자. 종의 삶은 그것이 좋든지 악하든지 그의 주인의 성격에 달려 있다. 신자의 경우 우리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이라 부르는 대상 앞에서 두려움에 떨거나 움츠릴 이유가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종들을 왕들과 제사장들의 지위로 높이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의 지위는 주님 앞에서 존귀의 자리에 있다. 우리는 주인의 왕좌에 같이 앉을 수 있도록 허락받은 종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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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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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은 이제 새로운 주인에게 종이 된 것 뿐 아니라 사도가 되었다. “사도”란 “대사”란 뜻이다. 이 단어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보냄을 받은 자”이다. 그는 하늘의 대사로서 다른 나라로 보냄을 받는 사람이었다. 대사들은 보통 그가 속한 나라나 왕이 그들을 보낸 곳에서 모든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바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왕이신 예수님의 대표자로 하나님의 권위 아래 수행하였다. 바울이 말할 때 그는 주님을 위하여 말하였다. 그가 행할 때 그는 하늘의 왕좌의 대표로서 행하였다. 그의 권위는 바로 하나님의 권위에 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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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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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울이 하나님의 뜻으로 지금의 그가 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부름을 받았”다는 점을 주목하자. 바울이 이 사역 안으로 들어가고자 결정하지도 않았고 그의 친구들이나 가족이 그를 설득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한 것도 아니었다. 그가 사역 안에 놓여지게 된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었다(딤전 1:12-14).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를 드림은 그분께서 나를 신실한 자로 여기사 내게 사역을 맡기셨기 때문이라. 13 내가 전에는 신성모독하는 자요, 핍박하는 자요, 해를 끼치는 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얻게 됨은 내가 믿지 아니하는 가운데 알지 못하고 그것을 하였기 때문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딤전 1:12-14) 바울이 그렇게 된 것은 그의 삶 가운데 역사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이었다(고전 15:10).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시고 그를 그 자리에 놓으신 것처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를 위하여 동일한 일을 행하신다. 주님은 우리를 그분께서 기뻐하는 때와 장소를 따라 그분의 왕국의 일 가운데 두신다(고전 12: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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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만일 하나님께서 기독교를 핍박하던 가장 악한 원수를 들어(딤전 1:15) 그분의 가장 위대한 사역자로 삼으실 수 있으시다면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께 자신을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삶 역시 쓰셔서 그분의 영광을 위해 일하실 수 있으시다. 마귀나 다른 사람이 여러분을 설득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여러분을 쓰지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게 만들지 못하게 하라. 주님은 여러분을 위한 섬김의 자리를 마련해 두시고 만일 여러분이 그분께 자신을 내어드린다면 그곳에 여러분을 두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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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우리가 비록 사도의 자리를 주장할 수는 없어도 우리는 하늘의 대사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바 되었고 또 죽어가는 세상을 위하여 우리를 자신의 대변인들로 삼으셨다. “또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으며 그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자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 화해하게 하는 사역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시며 그들의 범법을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해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맡기셨느니라. 20 그런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너희에게 간청하시는 것 같이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한 대사가 되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너희에게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해하라.”(고전 5:18-20) 심지어 성경은 우리가 세상의 사람들에게 말하여지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고 있다(고후 3:2-3). 세상이 여러분과 나를 볼 때 세상에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팔리고 헌신된 자들로 보게 하자. 세상 사람들은 진정으로 하늘의 대사들의 삶을 사는 자들을 볼 필요가 있다(빌 1:27). 맹맹한 세상에서 소금과도 같이 우리는 우리의 삶의 향기를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풍겨야 하며 하나님의 일들에 대한 갈망을 다른 사람들 안에 형성해야 한다(마 5:13-16). “또 너희가 말이나 행위로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며 그분을 힘입어 [하나님] 곧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라.”(골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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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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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의 다음 선언은 그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구별”되었다는 것이다. 이 작은 표현에 큰 축복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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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별”이란 단어는 “따로 떼어 놓다”란 뜻을 내포한다. 바울은 자신의 삶이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따로 떼어 놓아졌음을 말한다. 즉 바울에게 이제 삶의 중대한 문제들은 오직 하나님께 중대한 것들만 있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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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에 관심을 둔다. 그들은 완전히 분리되려면 이것 혹은 저것을 하는 것을 그만 두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들의 온 관심은 그들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만 있어 보인다. 이런 사람들은 중대한 것을 놓쳤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관심은 세상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로 분리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께로 분리된다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세상으로부터 분리된다. 만일 내가 어떤 지역에 살고 있다면 동시에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만일 내가 진정으로 세상으로부터 분리되기를 원한다면,​ 그 비결은 내 삶을 전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하는 것에 있으며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원하는 것이다(고후 6:17). 만일 내가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산다면 나는 세상과 어떤 문제를 갖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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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구별”이라 번역된 단어(ap+horizo)에서 “경계선”(horizon)을 의미하는 단어가 나왔다. 이 단어가 문자 그대로 주는 의미는 “경계선을 떠난” 것이다. 그 말은 바울의 경계선이 변하였음을 말한다. 그가 이전에는 종교인으로 지옥을 향해 나아가고 또 율법주의의 삶을 살며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반역하는 자였지만 이제 새로운 경계선을 향해 나아가게 되었다. 그의 근본적인 삶이 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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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도 그러하다. 우리는 영원히 변하였다! 우리는 새로운 경계선을 향해 나아간다. 이전에 우리의 운명은 지옥에서 영원을 보내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구원받아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고자 하늘을 향해 나아간다. 이전에는 우리의 삶은 죄와 반역으로 가득하였지만 이제 우리는 하늘의 왕국의 대사들로 부름을 받았다. 오늘날 세상에서 하나님의 대표자들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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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복음”에게로 분리되었음을 말한다. 그의 사명은 예수님의 “좋은 소식”을 죄와 멸망 가운데 빠져있는 세상에 전달하는데 있다. 이 복음은 특별한 메시지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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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그것은 하나님의 복음이다. 이 복음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인간의 사고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최후를 맞이하고 죽으시고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일어나시는 계획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획이어 왔다. 그것은 인간이 지상에 서기 이전 오래전에 고안되었다(계 13:8). 만일 인간이 구원계획을 개발해왔다면 그것은 분명히 행위로 인한 구원과 종교적인 의식행위들을 포함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좋아한다. 인간은 그것을 확립하여 조금이나마 인정받고자 할 것이다. 반면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죄인들이 믿음 안에서 그분께 자유롭게 와서 하나님의 은혜로 영원한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확정하셨다(엡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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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에서 태어난 복음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이유로 세상을 구원하고자 그렇게 계획하시고 또 자신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달하기를 원하셨을까?​ 그 답은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기 때문이며(요일 4:8) 그분께서는 단 한 죄인도 그분 없이 죽는 것을 보기를 원치 아니하시기 때문이다(벧후 3:9).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그분의 사랑은 위대하여 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무엇이든 하실 것이다. 그분은 여러분과 나와 같은 사람도 사용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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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셨고 또 우리를 사랑하시나 인간은 대적하여 일어나 하나님께 반역하고 결국 갈보리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을 죽이는데 참여하였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의 상한 상태를 보시고 손을 내밀어 우리와 그분 사이를 회복하시고자 하신다.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을 멀리하려고 노력하여도 그분은 여전히 우리에게 그분의 사랑을 생각나게 하시고 그분에게로 오라고 부르신다. 그분의 복음은 분명히 좋은 소식이다!
 +
 +c. 그것은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할 유일한 복음이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혼들을 구원할 다른 계획을 알지 못한다(행 16:3, 행 4:12, 요 3:16).
 +
 +d. 우리는 현재 이 복음의 전달자이다. 바울이 복음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전달하도록 구별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오늘날 동일한 일을 위해 구별되었다. 복음의 메시지는 소중하고 위대하다. 우리의 임무는 우리의 삶을 향한 주님의 뜻에 복종하고 세상에서 그분의 대사가 되는 것이다.
 +
 +=====응답=====
 +
 +짧은 1절에서 우리는 바울의 삶을 통해 그의 지위와 소명과 사명에 대해 볼 수 있으며 그것을 우리 자신에게 투영해보았다. 바울은 자신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종으로 보고 하나님의 대사로 보았으며 구원의 좋은 소식을 전달하는 선포자로 보았다. 동일한 지위와 소명과 사명이 이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르게 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놓여 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좋은 소식이 잃어버린 세상에 전달되기를 원하신다. 그 복음 안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다.
롬1.1.txt · 마지막 수정: 2020-04-19 12:22 작성자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