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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1.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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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1.16-17 [2020-05-10 14:31]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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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5월 10일 주일오전설교==
  
 +======그리스도의 복음의 가치======
 +본문 말씀: 로마서 1: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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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그 복음이 믿는 모든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그리스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까지 계시되어 있나니 이것은 기록된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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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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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바울은 지금까지 자신에 대해 소개하고 로마에 가고자 하는 그의 동기와 그가 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밝혔다. 이제 그는 로마서 전체를 통해 쓰고자 하는 복음에 집중하고 있다. 단 2구절로 되어 있지만 이 부분에서 복음에 대한 간결하고 장엄한 요약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구절은 복음이 전달하는 메시지 안에 하나님의 권능과 목적이 있음을 분명히 말한다.
 +
 +흥미로운 부분은 복음에 대해 바울이 언급을 시작하기를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무언가에 대해 설명하고자 할 때 이렇게 시작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는 아직 복음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았음을 생각해보라. 그렇다면 바울이 이렇게 말하게 된 이유가 존재할 것이라 추측하게 된다. 그것은 당시 사회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적어도 네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
 +
 +먼저 당시의 도덕적 상황이다. 네로가 당시의 로마 제국을 통치하던 황제였다. 그는 사악한 왕이었으며 동성애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로마는 죄와 사악한 삶으로 타락하였고 후에 로마가 멸망한 것은 외부적인 침략보다는 내적 부패에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로마의 사회상과 전적으로 반대 위치에 있었다. 두 번째로 바울이 유대인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통치 아래 놓여 있는 식민지배 상태였다. 그들의 주장은 로마에서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다. 사도행전 25장을 보면 베스도가 아그립바 왕에게 바울과 관련한 소요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거기서 당시 로마 사람들이 십자가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을 읽을 수 있다. 세 번째 바울이 전한 복음의 내용은 거의 믿기 어려운 내용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바울이 전한 구세주는 멸시받던 유대인들에게서 태어났으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심지어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사람이라고 주장하였음을 인간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불가능에 가깝다. 바울이 전한 구세주는 로마인들조차 치욕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십자가의 형틀에 의해 죽었는데 그것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은 것이라고 하였을 때 로마인들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게다가 바울은 그분이 죽은 지 삼일 후에 다시 일어나셔서 하늘로 올라가셨다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사람들에게 복음은 믿기에 기괴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바울이 십자가를 전하며 어디를 가든지 그는 조롱당하고 쫓겨나고 감옥에 갖히고 잔인하게 다루어졌다. 그렇기에 그것을 본 사람들조차도 십자가의 치욕은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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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여러 이유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복음을 위임받은 사실을 분명히 밝히며 로마에 있는 사람들 중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그 복음을 전하는 일에 위탁받은 자로서 기꺼이 분명하고 확실하게 그들에게 전달하고자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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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로 하여금 계속해서 하나님을 위해 나아가게 한 힘은 어디서 왔는가? 복음이 전달하는 것이 사도로 하여금 온 세계로 나아가서 온 세계가 미워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만들었다. 16-17절에서 바울은 복음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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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복음의 권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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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은 복음이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말한다. “권능”이란 단어는 “하나님 안에 내재하는 힘, 에너지, 능력”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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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죄를 대적하는 자신의 권능을 그분이 원하시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드러내실 수 있으셨다. 주님은 노아의 홍수처럼 혹은 가데스바네아 사건처럼 지상에서 사람들을 쓸어버릴 수도 있었다. 주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므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셨다. 그분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다! 따라서 주님께서 죄에 대해 무언가를 하기로 마음먹으셨을 때 자신의 권능을 행사하여 은혜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하시기로 정하셨다는 점을 깨닫는다면 그것이 얼마나 축복인지를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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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듯이 그렇게 강력하게 드러나는 곳은 없다! 한번 생각해보자.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죄인들을 죽이시거나 혹은 멸망하게 하는 일은 쉬운 일이다. 그냥 두면 알아서 스스로 멸망할 것이다. 하지만 잃어버린 죄인을 주님께서 취하셔서 그분의 은혜로 구하시고 그를 새로운 창조물로 만드신다는 것은 매우 권능있는 일이다. 그것은 외적으로 보이지 아니할지라도 내적으로 일어나는 매우 강력한 변화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지옥에 보내실 수도 있었지만 대신 주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아들 주 예수님을 통해 그분의 사랑을 보내셨다. 주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사실로 인해 매우 감사하다(요일 4:19).
 +
 +바울이 이 복음을 “그리스도의 복음”이라 부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자. 바울은 사실 여러 이름을 가지고 이 복음을 부르고 있다. “하나님의 복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하지만 단 하나의 복음만을 전달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많은 복음을 대하고 있다. 신천지나 구원파나 혹은 여러 종교 단체에서 그들만의 복음을 전달하여도 만일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모두 가짜가 된다. 갈라디아서 1장에서 바울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어떤 천사일지라도 다른 복음을 전달한다면 그는 저주받을 것이라 말하였다. 고린도후서 11장을 통해 이미 사도 바울 당시에도 다른 거짓 복음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전달되었음을 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물질적 축복을 복음으로 여긴다. 바울은 “이득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 경고하면서 그런 사람들에게서 돌아설 것을 말하였다(딤전 6:5).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신다고 주장하면서 모두가 다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하늘 나라가 존재한다면 모두가 다 그곳으로 갈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죄성과 죄인들과 죄들에 대해 말하며 우리 모두가 죄인들이며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 가운데 죽는다면 우리는 지옥에 가게 될 것이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아들 주 예수를 세상에 보내셨다고 말한다. 바울에 따르면 예수님은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일어나셨으며 만일 우리가 그분께 믿음을 둔다면 우리는 영원히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떤 복음을 신뢰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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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복음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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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복음의 메시지가 전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위하여 이렇게 놀라운 일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분께서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셔서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들로 인하여 죽도록 내버리신 이유가 무엇인가?​ 그 주된 답은 단순히 말하자면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답변이 존재한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목적이 구원의 메시지 안에 담겨 있으며 그것은 “구원”에 대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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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이란 단어는 매우 중요한 단어이다. 그 단어는 “안전, 보존, 건짐”을 뜻한다. 그 단어는 “모든 해로움과 위험으로부터 건짐을 받았음”을 전달한다. 죄인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열망은 그들을 영적 죽음과 영적 더러움과 영적 기만과 영적 파멸에서 영구히 건져내는 것에 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다면 모든 죄인들의 결말은 지옥의 불 가운데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사람들에게 주시는 목적은 사람의 영원에서의 운명을 바꿀 뿐 아니라 여기 지상에 있는 동안 그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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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의 메시지가 주는 주된 목적은 잃어버린 자들의 구원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빠져 있던 죄인들이 변화된 삶을 살 뿐 아니라 그들의 영원한 운명이 변화되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명이 되기를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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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복음의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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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절은 이 복음의 구원의 메시지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평이한 용어로 전달한다. “믿는 모든 자를”이라 말하고 있음을 주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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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단순한 용어는 성경적인 구원이 어떤 종교에서 주장하듯이 복잡한 종교적인 의식이나 어떤 종교 행위나 선행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구원은 믿음의 결과로 주어지며 그것도 오직 믿음만이 요구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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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엡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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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딛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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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이 단순한 부분이 많은 사람들이 실족하여 넘어지는 부분이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위해서 무언가 거창한 것을 하기를 좋아한다. 그들의 삶속에서 먼가 중대한 일을 했거나 그 일에 참여했다는 기분이 들기를 원한다. 하지만 구원의 문제에 있어 죄인이 그 영역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 죄인은 스스로를 구원하는 일에 실패자였고 성경의 역사가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 목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범죄한 이후로 즉각적으로 그들을 영원히 구원할 방도를 제공하지 않으시고 때가 이르기까지 임시적으로 그들의 죄들을 덮을 제도만 허락하셨을 것이다. 구원과 관련하여서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구원은 단지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기꺼이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 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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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느니라.”(요 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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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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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서 자신의 구원을 그렇게 값없이 제공하셨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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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V. 복음의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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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위대한 복음이자 혼을 구원하는 복음의 메시지는 세상의 모든 개개인을 위한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은혜의 복음의 영역에 미치지 아니하는 자가 없다. 우리 구주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들으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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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취하라.”(계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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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모든 자는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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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의 대상은 그 메시지를 듣고 받아들이는 누구나이며 그는 하나님의 보배로운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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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은 그 대상을 설명하면서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그리스인에게로다”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 말은 이해하기 어렵도록 만들고자 주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선순위에 입각해서 복음을 유대인들에게 먼저 주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복음을 유대인들에게 먼저 주신 것은 시간적인 순서를 언급하시는 것이다. 주님은 유대인들을 수천년동안 다루시고 계셨으며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실 때도 그분은 유대인들의 메시야로 오셨다. 물론 주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오셨으나 자기 백성은 그분을 거절하였다(요 1:11). 이제 주님은 세상의 이방인들을 향하셨으며 그들에게도 구원을 제공하신다. 따라서 구원은 지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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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구절은 오히려 구원이 사람들의 인종적인 구별이나 사회적인 지위나 그들의 교육 단계나 능력이나 그들의 심지어 사악함의 정도에 상관 없이 모두에게 차별없이 주어진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힌다. 구원받기를 원하여 나아오는 자를 구원받지 못하게 막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쪽에서는 어떤 제약도 없다. 복음의 대상은 모든 사람이며 그것도 어디든지 상관없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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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들의 주장대로 구원의 대상에서 배제되는 사람은 없다. 누구든지 자유롭게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 구원의 유일한 제약은 스스로 의지를 사용하여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려고 그분을 거절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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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 복음의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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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의 산물은 신자의 삶 속에 “의”로 나타난다. 사실 사람은 두 가지 큰 문제가 있다. 먼저 그는 스스로 의롭다 생각하며 따라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받아주실 것이라 여긴다. 두 번째는 첫 번째 문제에서 사람이 절대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사람은 의롭지 않으며 자신의 의지나 자신의 행함으로 의를 생산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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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믿음이 복음의 메시지 위에 놓이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게 되며 하나님께서는 그 죄인들을 받아주시고 의롭다고 선언하신다. 사람이 노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권능으로 하신다(고전 6:9-11, 롬 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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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종교를 통해 찾고자 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과의 화평과 하나님께서 받아주시는 것과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 등인데 이 모든 것들이 그가 복음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때 주어진다. 그것이 복음이 주는 것이며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달할만한 가치가 있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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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에서 믿음까지”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신자의 삶이 하나님께 두는 믿음으로 시작하며 믿음으로 사는 삶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의가 신자의 삶을 통해 계시되어 가는 사실을 말한다. 그것은 믿음으로 시작하고 믿음으로 지속함을 말한다. 이 구절이 결론을 내리듯이 믿음은 하나님의 자녀를 위한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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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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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믿을 만한 가치가 있는 복음이 주어졌으며 복음은 또한 사람들과 나눌만한 가치가 있다. 여러분은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신뢰하고 있는가?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는가?​ 바울 때에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복음이 여전히 동일한 구원의 능력을 갖고 있으며 사람들은 지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복음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달함으로써 복음의 권능이 드러나게 하자.
롬1.16-17.txt · 마지막 수정: 2020-05-10 14:31 작성자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