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도구

사이트 도구


롬3.1-8

차이

이 문서의 선택한 이전 버전과 현재 버전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차이 보기로 연결

롬3.1-8 [2020-06-28 13:15] (현재)
admin 새로 만듦
줄 1: 줄 1:
 +==2020년 6월 28일 주일오전설교==
  
 +======인간의 반박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
 +
 +본문 말씀: 로마서 3장 1-8절
 +
 +=====서론=====
 +
 +로마서 2장 마지막 구절들에서 결론적으로 바울은 유대인 독자들에게 그들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들임을 선언하였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종교의 외적 표현들이 아니라 혼을 회심시키고 죄인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이끄는 은혜의 내적 사역임을 가르쳤다. 오늘 본문의 구절들은 로마서 2장에서 전달하던 논리적 주장을 계속이어가고 있다. 우리가 잊지말아야 할 것은 바울은 선교여행을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던 선교사였다는 점이다. 그가 방문한 거의 모든 도시마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회당에 들어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진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바울은 그의 메시지에 반박하는 많은 주장들을 분명히 대해 왔을 것이다. 이 구절들은 이 주장들 중 네 가지를 보여주고 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묻는 그 질문들을 던지면서 그 답 역시 주고 있다. 이 질문들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의 메시지에 대한 반박이며 분명히 응답되어야 할 것이다.
 +
 +우리가 이 네 가지 반박 질문들을 대하고 그에 대한 응답들을 주면서 크리스천인 우리를 위한 메시지도 있음을 보게 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이 동일한 질문들을 하기 때문이다! 이 구절들은 그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주고 있다. 사도 바울은 그 질문들에 대해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고 운을 떼며 응답한다.
 +
 +=====I. 하나님의 선택하심(1-2절)=====
 +
 +“**그러면 유대인의 나은 점이 무엇이냐?​ 혹은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2 모든 면에서 많으니 주된 이유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들이 맡겨졌다는 것이라.**”(롬 3:1-2)
 +
 +====A. 유대인이 되는 것은 헛된 것인가?​(1절)====
 +
 +할례받고(롬 2:25-29) 율법을 알며(롬 2:17-18) 다른 사람들에게 율법을 가르침(롬 19-20)에도 불구하고 혼을 구원할 수 없다면 유대인이어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혹은 종교를 갖는 것에는 무슨 유익이 있는가? 유대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것들과 겪었던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 어떤 선도 주지 못한다면 그런 것들이 주어진 이유를 알고 싶어할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 가운데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었다. 비록 그들이 주님께 특별할지라도 비록 주님께서 그들을 위한 민족적 계획을 가지고 일하시고 또 일하실 것임에도 그러한 사실이 그들이 여전히 주님 앞에서 죄인들이라는 사실을 변경하지 못한다.
 +
 +선한 행위들이 혼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보자. 교회를 정기적으로 출석한다고 해서 하늘나라에 갈 권리를 얻는 것도 아니며 순결한 삶을 살았다고 해서 영광 가운데 있는 본향에 가게 될 것이란 보장을 주지 못하는데 침례교인이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왜 교회의 회원이 되고 왜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는가?​ 종교를 소유한다고 해서 어떤 선을 주지 못한다면 기독교인이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오늘날에도 이 동일한 질문들을 사람들은 던진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줄 답이 있으며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도 응답하실 수 있으시다.
 +
 +====B. 유대인이 되는 것은 가치가 있다(2절)====
 +
 +바울은 유대인들이 모든 면에서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킴으로써 응답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축복을 받았다는 가장 큰 증거는 아마도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자신의 말씀을 주셨을 때 주님은 유대인들을 통하여 주셨다. ​
 +
 +성경의 모든 책들이 유대인들에 의해 작성되었다. 여러 사람들이 누가가 이방인이므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만이 유일하게 유대인이 아닌 사람에 의해 작성되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누가가 이방인이라는 증거는 사실 희박하다. 누가가 이방인으로 여겨진 이유는 그가 의사였다는 이유 하나이다. 오히려 그는 유대인일 가능성이 더 크다. 가장 큰 증거는 누가 스스로의 말에서 드러난다. “우리 가운데서 매우 확실히 믿게 된 그 일들에 관해 2 처음부터 목격자 되고 말씀의 사역자 된 사람들이 우리에게 그것들을 전해 준 그대로 차례대로 제시해서 밝히 보이려고 손을 댄 사람들이 많으므로 3 모든 일을 맨 처음부터 완전히 이해한 나도 데오빌로 각하 당신에게 차례대로 써서 알리는 것을 좋게 생각하였으니”(눅 1:1-3) 사도행전 16:10을 보면 처음으로 “우리”라는 단어가 사도 바울의 선교자들을 일컸는 말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은 그 때부터 누가가 바울의 선교사역에 동참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자신의 말씀을 주셨다는 점에서 그들을 축복하셨다. 주님은 유대인들에게 자신과 인류를 향한 자신의 뜻을 계시하셨다. 그런데 이 축복이 그들로 하여금 주님과 특별한 관계 가운데 걷도록 이끌었어야 하나 그들에게 더 큰 책임의 위치에 두었다. 그들이 진리를 가졌으므로 그들은 주님 앞에서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할 책임이 주어진 것이다!
 +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현재를 생각해보자. 만일 어떤 기업에서 마침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가정하자. 만일 그 기업이 그 백신을 움켜쥐고 비싼 가격으로 판매를 한다고 한다면 그 기업은 전 세계로부터 많은 비난을 듣게 될 것이다. 그 기업은 전 세계를 살릴 수 있는 매우 막중한 책임이 주어졌으며 그 책임에 합당하게 걷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
 +영적 어둠에 놓여 있는 만 백성에게 치유의 빛이 솟아올랐으며 그 빛에 대한 정보가 유대인들에게 주어졌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그 빛을 세상에 전파하는 책임이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그 빛에 대해 세상에 전파하기를 그치고 그 빛에 대한 정보를 독차지 함으로써 스스로가 세상에서 특별한 존재라고 주장하기 시작한다면 그들은 주님 앞에서 매우 큰 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매우 큰 축복이 놓였음에도 그들은 안식일에 침을 뱉는 것이 율법에 합당한 것인지 아닌지를 두고 논쟁하였다. 만일 바위에 침을 뱉으면 괜찮지만 흙에 침을 뱉으면 그것이 물기를 품은 진흙이 되므로 죄라고 단정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흑암에서 이끌어내야 하나 그들은 사람들이 영적 흑암으로 더욱 깊이 보내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었다!
 +
 +오늘날에도 그와 비슷한 일이 있다. 사람들은 올바른 성경이 어떤 성경인지를 알았다면 사람들에게 진리로 그들을 이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참된 성경을 소유하였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의롭게 여기고 더 영적인 자로서 자신을 본다면 그것은 오만에 가깝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의 선한 행위들과 종교적인 삶과 활동들이 주님으로부터 호의를 받게 할 것이라 믿는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더 크다. 우리가 진리에 더 많이 노출될수록 주님 앞에서 더 많은 책임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만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기준에 못미치게 살고자 계획한다면 근본주의가 아닌 차라리 자유주의 교회에 다니는 것이 낫다! 만일 진리에 정상적인 방식으로 노출되어 왔다면 주님 앞에서 그 진리대로 살 책임을 갖는다(약 1:22). 우리에게는 어둠속을 비추는 커다란 등대와 같은 성경이 주어졌다. 성경은 구원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는 법을 말하고 있으며 그 진리를 깨달은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길을 보여주어야 마땅하다. 만일 우리가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주님 앞에서 그 책임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빛에 대해 해명해야 할 것이다.
 +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특권들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유대인들과 동일한 오류속에 있는 자신을 보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 많은 사람들이 지옥을 향해 멸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에게 주어진 빛을 전달하자.
 +
 +=====II. 하나님의 신실하심(3-4절)=====
 +
 +“**그런데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들의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무효로 만들겠느냐?​ 4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참으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할지어다. 이것은 기록된바,​ 이로써 주께서 주의 말씀하신 것에서 의롭게 되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시리이다,​ 함과 같으니라.**”(롬 3:3-4)
 +
 +====A.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버리셨는가?​(3절)====
 +
 +이 두 번째 질문에서 유대인들은 근본적으로 자기들이 언약의 목적에 따라 살지 못하였음을 말한다. 이것이 사실이며 어떤 유대인들은 믿음에서 실패하였으므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유대인 전체 민족을 버리셨다는 것을 뜻하는가?​ 그들이 묻는 질문은, “그들 중 일부의 실패가 전체의 실패가 되는가? 그들이 죄를 범하였다고해서 모든 은혜의 하나님께서 정말로 자신이 선택한 백성을 버리셨는가?​ 그리고 만일 주님이 버리셨다면 우리가 더 이상 그분을 섬기는 일을 해야 하는가?​”이다. 그들은 주님의 속성의 위대함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의 응답은 우리에게도 소망을 준다. 결국 우리도 이런 저런 이유로 주님을 실망시키지 않는가?
 +
 +====B.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신실하시다(4절)====
 +
 +바울이 격정적으로 답변하는 것을 보라.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영어적 표현은 “God forbid”로 가장 강한 어감적 느낌을 전달한다.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할지어다!” 바울이 의미하고자 하는 바는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에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존중하실 것이라는 점이다. 사람이 얼마나 사악해지든지 간에 주님은 절대로 그에게 주신 약속으로 인해 그를 포기하지 않으실 것이다. 이스라엘의 모든 죄들과 실패들에도 주님께서는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
 +이것은 얼마나 축복인가! 우리가 구원받은 이후로 우리가 주님을 대적하여 범하였던 모든 죄들과 그 모든 때를 잠시 기억해보자. 우리가 만일 서서 증언해야 한다면 우리 모두가 다 많은 죄들을 범하였음을 시인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사실을 변경하지 않는다(요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모든 자는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들에도 불구하고 신실하시다. “우리가 믿지 아니하여도 그분은 항상 신실하시니 자신을 부인할 수 없느니라.”(딤후 2:13) 다윗을 생각해보자. 그는 간음이라는 죄를 범하였고 거짓말을 하고 결국 살인을 범하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하셨으며 다윗을 놀라운 방식으로 사용하셨다. 라합은 어떠한가?​ 그녀는 주 앞에서 비참한 죄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녀를 용서하셨고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그녀를 사용하셨다. 시몬 베드로를 기억해보자. 그는 공개적으로 주님을 대적하여 죄를 범하였지만 주님게서 그를 사랑하시고 그를 용서하셨으며 놀랍고 큰 방법으로 그를 사용하셨다. 요점은 하나님게서 여러분의 죄들을 심판하실 것은 사실이다. 그래야 그분께서 의로우시다는 점을 입증한다(갈 6:7). 하지만 죄가 심판받은 이후에 하나님게서는 여러분의 죄들을 용서하시고 그분께서 여러분의 죄보다 더 크신 분이심을 입증하신다! 하나님게서는 언제나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으시며 그분께서 기다리시는 모든 것은 사람이 그 준비의 동일한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다(요일 1:9, 잠 28:13). “자기 죄들을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려니와 누구든지 그것들을 자백하고 버리는 자는 긍휼을 얻으리라.”(잠 28:13)
 +
 +우리가 삶의 어떤 길을 취하든지 어떤 죄들을 범하든지 간에 상관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는 용서와 회복이 있다! 주님은 자신이 사용하는 흙덩어리를 버리지 않으신다!(요 18:4)
 +
 +=====III. 하나님의 의로우심(5-8절)=====
 +
 +“**그러나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내가 사람으로서 말하노니) 보복하시는 [하나님]께서 불의하시냐?​ 6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7 만일 내 거짓말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가 더욱 풍성하게 되어 그분이 영광을 얻게 되었다면 어찌하여 내가 여전히 또한 죄인으로 심판을 받느냐? 8 차라리 (우리가 중상모략을 당하듯이 또 어떤 자들이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주장하듯이),​ 선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악을 행하자, 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이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롬 3:5-8)
 +
 +이 네 구절에서 바울은 유대인들이 제기하는 죄의 문제와 관련된 반대 주장을 다룬다. 그는 막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서하심으로써 영화롭게 되신다는 점을 계시하였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게서 더욱 영광을 받으실 수 있도록 그들이 죄를 범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들의 생각의 흐름을 주목하고 지혜로운 사도가 어떻게 응답하는지 보자.
 +
 +====A. 하나님께서 내 죄를 묵과하시는가?​(5절)====
 +
 +여기서의 주장은 이렇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를 통해 영화롭게 되셨으므로(4절,​ 시 51:4) 그런 점에서 다윗의 죄는 주님께서 자신의 공의와 은혜를 보이실 기회를 제공하였으며 그렇기에 다윗이 죄를 범함으로써 주님을 도왔다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결국 만일 다윗이 죄를 범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공의와 은혜를 보일 기회를 절대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죄를 범하더라도 만일 내가 주님께 그분의 공의와 은혜를 입증할 기회를 주었다면 주님께서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
 +이것은 교묘한 논리이자 동시에 잘못된 주장인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득을 위하여 죄를 이용하신다고 하나님을 고소하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생각은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실 때 그분께서 영화롭게 되시도록 죄를 조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모든 속성과 정반대에 놓인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이 논리를 가지고 산다. 그들은 예수님을 시인하고나서는 죄를 지으러 달려간다. 그리고 심판이 오면 그들은 하나님께 다시 달려온다. 그들은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셨다고 증언한다. 교회는 주님을 찬양하며 이 순환은 다시 시작한다. 우리는 예수님을 위하여 확고하게 있을 것을 마음을 정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사람이 구원을 받고 그 뒤에 자신의 생명이 끝날 때가지 예수님을 위하여 사는 것이 하나님께 더욱 영광이 될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위하여 갖고 계신 이상적인 계획이다. 물론 우리가 실패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실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실패하는 것을 막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가 갖추게 하셨다(고전 10:13, 롬 6:14)
 +
 +====B.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를 정죄하신다(6절)====
 +
 +바울은 사람들의 주장에 다음과 같이 응답한다. “절대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묵과하신다면 그분은 세상을 심판할 권리를 갖지 못하신다!” 바울은 모든 죄를 주님께서 심판하실 것을 말하고자 하고 있다. 주님께서 그의 죄들을 심판하지 아니한채로 빠져나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죄에는 지불할 것이 있고 그 지불하는 것은 사망이다(롬 6:23). 하지만 예수님께 자기들의 믿음을 둔 자들에게는 우리의 죄들이 이미 심판을 받았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받았다(롬 5:9). 우리가 아직 붙잡히지 않았거나 심판받지 않았다고해서 너무 자만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아시며 그것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아신다. “속지 말라. 하나님은 우롱당하지 아니하시느니라.”
 +
 +====C. 내 죄가 하나님을 높이는가?​(7-8절)====
 +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죄의 용서를 통하여 영화롭게 되셨다는 사실을 근거로 자기들의 죄들을 정당화하려고 시도한다. 질문은 이렇다. “만일 내 죄들이 하나님을 높인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심판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만일 용서가 주님을 영화롭게 한다면 하나님께서 더 많이 영광을 얻으시도록 더 많이 죄를 범하는 것은 안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것은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말할 필요조차 없다! 하지만 이런 동일한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 기독교 안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 교리는 “신앙지상론”(antinomianism)으로 알려져 있다. 이 교리는 우리가 은혜로 구원받았기에 우리가 즐거워하는 죄를 행할 수 있다는 생각을 붙든다. 이 교리는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므로 도덕과 올바른 생활방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것은 진리와 거리가 멀다!
 +
 +사람들은 살면서 죄를 범하는 때를 겪게 될 것이며 그 다음 용서를 위해 주님께 다시 돌아올 것이고 “일어난 일은 우리를 주님께로 다시 돌아오게 하였으므로 최선의 일이었다.”고 그들은 간증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철학을 붙든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처음부터 그런 죄들을 범하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과 신실하게 걷는 것이 더 좋은 일 아니겠는가?​ 죄로부터 사람을 지키시는데 하나님의 권능이 충분함을 입증한 삶이 더욱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겠는가?​ 죄를 용서하심으로 하나님게서 높임을 받으셨지만 주님은 절대로 죄 자체를 높이지 아니하실 것이다. 사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속에 있는 죄는 그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삶속에 돌이킬 수 없는 해를 끼칠 수 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용서하심으로써 영화롭게 되시지만 여러분을 본따라 하던 그 죄인은 지옥에 갈 수 있다. 그 일로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되실 수 있겠는가?​ 여러분이 주님을 위해 살다가 그 뒤에 세상을 위해 살고 또 다시 주님을 위해 살고 또 다시 세상을 위해 사는 것을 지켜보는 자녀들은 어찌될 것인가? 그들은 아마도 성장하여 여러분처럼 살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 일로 영광을 얻게 될 수 있을 것인가?
 +
 +====D. 하나님께서는 어떤 죄인도 본으로 삼지 않을 것이다(8절)====
 +
 +바울의 마지막 말은 계시적이다. 그는 단순히 말하기를,​ 이런 삶의 철학을 붙드는 자들은 정죄받을 것이며 그들에게 마땅한 바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죄는 주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다! 주님은 죄를 묵과하실 수 없으시다. 그분은 거룩하시므로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죄를 심판하시며 이 점은 분명하므로 죄인은 만일 그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어떤 개인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않은 채 자신의 삶을 산다면 그는 죽을 때 지옥에 가게 될 것을 확신할 수 있다. 크리스천은 만일 자신이 반은 주님 안에서 반은 세상에서 산다면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들의 결과들이 그의 삶속에 채워지게 될 것임을 확신할 수 있다. 모든 죄인들이 주님앞에서 자신의 행위들을 해명해야 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겔 18:4).
 +
 +=====결론=====
 +
 +사람이 죄인으로 드러나게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죄들을 정당화할 어떤 창조적인 방법을 생각하고 실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죄를 심판하신다. 혹은 인간의 나약함과 유혹을 이기지 못함으로 죄를 범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주님께 용서를 구하게 되고 주님께서 용서하심으로써 영화롭게 되었다고해서 그의 행위가 정당화되어 더 많은 은혜를 가져올 수 있는 통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들을 정당화하는 일을 그치고 주님께서 그 부분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을 행해야 한다.
롬3.1-8.txt · 마지막 수정: 2020-06-28 13:15 작성자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