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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3.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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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3.19-31 [2020-07-12 12:2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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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7월 12일 주일오전설교==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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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말씀: 로마서 3장 19-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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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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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번 주 우리는 9-18절을 보면서 아담의 범죄 이후로 전적으로 타락한 창조물인 사람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사람 안에 어떤 선도 없음을 선언하셨다! 사람이 손대는 모든 것은 그의 존재의 깊은 곳에서부터 자리잡고 있는 죄로 인해 변질되었으며 하나님의 눈앞에서 사람은 비참한 존재가 되었다. 저번 시간에 우리는 영적 거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았다. 이제 계속해서 그 다음 단락을 보면 앞에서 말한 바와 동일한 것들을 말하지만 방향 전환이 이루어졌음을 본다. 바울은 이 옛 사람에 대한 결론적인 사고를 보여주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실 때 그분께서 창조하시는 새 사람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오늘 아침에 보고자 하는 사람은 바로 이 구원받아 새롭게 된 이 새 사람을 보고자 한다. 영적 거울을 통해 본 옛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으로 변한 일에 대해 말씀을 통해 살펴보자.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며 옛 것은 지나갔으며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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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망가진 옛 사람(19-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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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우리가 알거니와 율법이 어떤 것들을 말하든지 그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나니 이것은 모든 입을 막아 온 세상이 [하나님] 앞에서 유죄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그분의 눈앞에서 의롭게 될 수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알게 되느니라.**”(롬 3: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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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그는 율법에 의해 죄인으로 밝히 드러났다(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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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율법이 사람의 모든 죄성을 드러내었기에 그는 죄인으로 드러나고 율법에 의해 정죄되었다. J.B. 필립스는 “율법의 곧바름으로 우리가 얼마나 구부러져 있는지를 보여준다.”라고 하였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율법을 들여다보면서 바울이 말하는 진리를 놓칠 자는 없을 것이다. 상산수훈에서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해보자(마 5:17-48). 주님은 율법을 더 강력하게 세우셨고 그것으로 율법은 사람의 마음의 상태까지 드러내었다.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로 우리가 진실로 얼마나 비참한지가 드러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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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그는 율법에 의해 죄인으로 정죄받았다(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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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사람에게 도구로 주셨다. 그것은 사람에게 그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보이고 그를 예수께로 이끌기 위해 주어졌다. “그런즉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훈육 선생이었으니 이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게 하려 함이라.”(갈 3:24) 만일 율법이 존재해야 할 온전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율법은 사람에게 그가 하나님의 눈앞에서 죄가 있음을 보이고 그가 구주가 필요한 자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 주어졌다는 말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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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법은 거울과 같다(약 1:23-25). 거울은 얼굴이 얼마나 더러운지를 보일 수 있지만, 얼굴을 깨끗하게 하는데 사용될 수는 없다. 거울을 들어 깨끗하게 하려고 얼굴을 문지를 수 없다. 거울은 물을 사용하라고 가리키기 위해 존재한다. 그처럼 주님의 율법도 그러하다. 율법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는 분 즉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갈망을 우리 안에 생성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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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구속받은 새 사람(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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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제는 율법 밖에 있는 [하나님]의 의 곧 율법과 대언자들이 증언한 의가 드러났느니라. 22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자에게 미치고 믿는 모든 자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의니 거기에는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속(救贖)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 25 그분을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한 화해 헌물로 제시하셨으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참으심을 통해 과거의 죄들을 사면하심으로써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려 하심이요,​ 26 내가 말하거니와 이때에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사 자신이 의롭게 되며 또 예수님을 믿는 자를 의롭게 만드는 이가 되려 하심이라.**”(롬 3: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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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라는 접속사로 시작하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것은 생각의 변화를 예고한다. 그것은 다음에 나올 사고의 흐름이 가치가 있음을 시사한다. 우리는 분명히 망가져 있는 사람이었지만 우리 안에서 변화가 있게 하신 주님께 감사한다. 이 변화를 “그러나”라는 단어가 예고하고 있다. 매우 큰 문도 작은 경첩으로 움직이듯이 사고의 흐름도 작은 단어를 통해 변화한다. 가령 엡 2:1-10을 생각해보자. 성경의 위대한 구절들 중 하나인데 거기도 “그러나”라는 단어가 놀라운 변화를 예고한다. 우리의 옛 상황에서 매우 놀라운 변화가 있었음을 말하는 신학적인 진리를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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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믿음의 행사(21-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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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큰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그가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로마서 3장까지 오면서 우리는 그 사실을 살폈다. 사람의 더 큰 문제는 그가 잃어버린 자이기에 하나님께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죄인이기에 하나님께 나아갈 방법을 찾지 못함을 보았다. 사람은 하나님을 만족시킬 만큼 선하지 못하다. 하지만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으로 완전한 의를 요구하신다(마 5:20, 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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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비참한 죄인이며 자신의 노력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될 수 없다. 성경이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할 때 그것은 문자 그대로 표적을 맞추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선해진다고 하여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절대 하늘나라에 이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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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자신의 믿음을 그분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께 둠으로써 의롭게 되는 것을 허락하셨다. 이 구절이 말하는 바는 구원은 단지 행위들로 얻거나 혹은 선해진다고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통해서 온다.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살 수도 없다. 하늘나라로 가기 위해 선해질 수도 없다. 하늘나라로 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은혜로 구원받으며 하늘의 아버지께서 의롭다고 선언하시며 하늘나라로 가게 하신다. 어떤 것도 할 수 없지만 믿음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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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자에게 미치고 믿는 모든 자 위에 임하는” 이라는 표현에 주목하자. 이것은 주님께서 자신의 의를 취하셔서 그분의 아들을 믿는 자들 “위에” 두신다는 것을 암시한다. 여기에 구원이 어떻게 역사하는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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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자유를 체험(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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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구절은 신학적으로 위대한 두 단어를 소개하고 있다. 하나는 “의롭게하다”(justify)이고 다른 하나는 “구속”(redemption)이다. “의롭게하다”란 “죄가 없다고 선언하거나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신학적인 의미로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권능과 은혜 가운데 우리를 의로우며 그분과 관계를 형성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구속”은 “몸값을 지불한 후에 자유롭게 하다”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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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두 단어가 같이 사용되었으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지불하신 값을 우리에게 적용하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신다. 그렇게 하심으로 주님은 우리를 우리의 죄들의 정죄와 결과들로부터 자유롭게 하신다. 그분은 문자 그대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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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족시켜야 할 필요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그분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일로 말미암아 나를 두고 이미 만족하셨다. 나는 더 이상 하나님께서 나를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할 만큼 선해지도록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분께서 이미 나에게 자신의 의를 주셨고 그분의 눈에 이제 나는 의로운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분의 눈에 그분께서 거룩함 같이 나도 위치적으로 거룩하다!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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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은 이 구절에서 이 모든 일들이 “값없이” 주어졌다고 말한다. 이 말은 문자 그대로 “정당한 이유가 없어도”가 된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받기에 합당하지 않으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의 의를 주셨다. 우리가 심지어 그에 대해 지불하거나 다시 값을 능력이 전혀 없는 가운데 이 일을 하셨다. 주님은 우리에게 어떤 이유도 없이 혹은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은 채 자신의 의를 주셨다! 하나님께서 지옥이 마땅한 수많은 죄인들을 구원하신 데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오직 떠오르는 게 있다면 “사랑”과 “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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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구원과 구속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이해하지는 못해도 감사한 것은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구원과 구속을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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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치를 누르면 전기가 흘러 형광등이 켜지는 그 모든 세밀한 과정을 이해하지는 못해도 스위치를 누르면 그 형광등의 혜택을 받아 어둠에서 밝음 아래 놓이게 된다. 그처럼 우리는 구원과 구속의 모든 것들을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질 때 주님은 그 두 가지가 우리 안에서 성취되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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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 용서를 체험(25-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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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화해헌물”이 되심을 말한다. 이 용어는 신학적인 용어로 “달래거나 만족시키는 것”을 뜻한다. 이 단어는 구약에서 지성소 안에 놓이는 언약궤를 덮는 덮개를 뜻하는 히브리 단어에서 왔다. 언약궤의 덮개는 해마다 있는 속죄의 날에 희생된 동물의 피로 뿌려졌다. 이 의식은 백성이 생명을 얻고 그들이 범한 죄들을 상실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드려진 동물의 생명을 상징하는 피가 하나님께 드려짐으로써 동물의 피가 백성의 죄를 대신하였으며 그것으로 하나님께서 만족하시고 그들의 죄들이 속죄함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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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여러분과 나에게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신뢰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어떤 것도 더 이상 요구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절대적으로 만족하셨다! 이것으로 인해 그분께서는 “과거의 죄들을 사면하심”으로써 우리를 용서하셨다. “사면”(remission)이란 “넘기다,​ 면제하다”란 뜻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신뢰할 때에 하나님게서는 우리의 죄들을 그분 뒤에 두시고(시 103:12, 사 38:17, 믹 7:19) 우리를 영원히 깨끗하게 하시고 우리를 용서하신다(골 2:13-14, 요일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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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감사드림은 영적 거울을 통해 보았던 그 옛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는 더 이상 있지 아니하다는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새롭게 되었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함으로 이 세상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는가?​ 예수님과 그분의 흘리신 보혈의 피 아래 혼을 구원하고자 왔는가?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 다시 태어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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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의로운 새 사람(27-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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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즉 자랑할 것이 어디 있느냐? 있을 수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의 법으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 그러므로 우리가 결론을 내리노니 사람은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느니라. 29 그분은 오직 유대인들의 [하나님]이시냐?​ 그분은 또한 이방인들의 [하나님]이 아니시냐?​ 참으로 또한 이방인들의 하나님이시니 30 할례자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 무할례자를 믿음을 통해 의롭게 하실 분은 한 [하나님]이시니라. 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을 통해 율법을 헛되게 만드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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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율법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27-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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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구절들에서 바울에 따르면 새 사람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받지 아니함을 알고 있다. 그는 순전히 믿음으로 구원받았다. 따라서 자신의 구원과 관련하여 그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으므로 사람이 높임을 받기보다 모든 영광과 존귀는 반드시 주님께 드려져야 한다. 새 사람은 율법은 사람을 주님께서 인도하기 위해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에 불과함을 안다. 그는 하나님을 만족시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이미 만족하셨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께 무언가를 지불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하나님께서 이미 전적으로 만족하셨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구원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함을 알며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그는 무언가를 해야 하는 구원의 단계에서 지나서 이미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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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어있는 공간에 단지 두 개의 의자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하나는 “하라”가 붙어있고 다른 하나는 “행해졌다”라고 붙어있다. 이 두 의자는 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와 종교적 신념들을 대표한다. 모든 것이 구원받기 위해 무언가를 하라 이거나 이미 행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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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라”고 하는 종교들은 모두 사람이 하나님을 만족시키기 위해 무언가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관념을 기초로 한다. 가령, 기도하고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고 헌금하고 선한 사람이 되며 봉사하고 순례자가 되며 특정한 의복을 입거나 십계명을 지키거나 혹은 미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들이다. 겉으로 볼 때 “하라”고 하는 모든 종교들은 조금씩 다르게 보이겠지만 모두가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구원을 얻기위해 무언가를 “하라”고 요구한다. 유대교나 이슬람이나 불교나 몰몬교나 여호와 증인이나 천주교나 다 “하라”고 하는 종교들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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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히 말해 세상의 모든 종교들은 한 가지를 제외하고 “하라”고 요구하는 종교이다. 그 제외되는 한 가지는 기독교로 기독교는 “행해졌”음을 말하는 종교이다. 진정으로 구원받은 자들은 구원받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거나 하도록 요구받지 않는데 이미 예수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행하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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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모든 사람들은 그 두 의자 중 택하여 앉게 될 것이다. “하라”는 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해야만 하늘나라에 갈 것이라 믿거나 구원받을 모든 것이 이미 갈보리 십자가에서 행해졌음을 깨닫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행해졌다”라 붙은 의자에 앉는 것이다. 어떤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인지 심사숙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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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주님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29-3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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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주 예수 그리스도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였으므로 우리는 하늘의 아버지와 올바른 관계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 그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만이 아니시라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아들들과 딸들이다(요일 3:1-2).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의롭게 하시고 그분의 아들 안에서 위를 받아주셨으며 이제 그분은 우리의 새로운 본향인 하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는 더 이상 낯선 자들이 아니요(엡 2:12) 가족이다. 우리는 주님과 화해하게 되었으며(고후 5:18-19)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 둔 믿음으로 그분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
 +====C. 생명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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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마지막 구절에서 위대한 사도는 마지막 질문을 묻는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을 통해 율법을 헛되게 만드느냐?​” 만일 우리가 율법을 배제하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면 이것이 하나님의 율법을 무효화하고 헛되게 만드는 것이 된다. 다시 말해, 만일 우리가 은혜로 구원받았다면 우리가 율법을 던져 버리고 우리가 만족하는대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답은 “절대 그럴 수 없느니라!” 바울이 말하는 바는 우리의 구원이 율법을 절대적으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율법을 세우고 제 위치에 두게 한다. 어떻게 이것이 이루어질수 있는가? 주님께서 율법을 사용하시어 우리가 죄인임을 보이신다. 주님은 율법을 사용하시어 우리가 그분 없이는 지옥에 갈 운명임을 보이신다. 주님은 율법을 사용하시어 우리의 필요를 세우신다. 이제 우리가 구원받았으므로 주님은 이 율법이 우리의 삶을 통해 살기를 시작하셨다. 그 차이는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율법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하니까 율법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본성적으로 주님의 율법의 영으로 살아가는 것인데 주님께서 우리 안에 그분의 성령님을 두셨기 때문이며 그분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셨기 때문이다(벧후 1:4). 단순히 말하자면 우리가 구원받았을 때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처럼 살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
 +이 말을 오해하지 말라. 그 말은 우리가 죄없는 완전함으로 살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예수님께서 은혜로 구원하신 모든 삶을 변하시킨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 안에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위해 살도록 하며 그분을 만족시키고 존귀히 여기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과 열망을 넣어주신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살도록 허락함으로써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음을 세상에 보이는 것이다.
 +
 +=====결론=====
 +
 +우리가 영적 거울로 우리 자신을 보았을 때 우리는 아담 안에서 죽은 옛 사람을 보았다. 그는 하나님의 눈앞에 전적으로 죄인이며 죄의 본성이 그의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자였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받아들이며 그분께 믿음을 두었을 때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다. 이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를 그에게 주시며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고 선언하시며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신다.
 +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는가?​
롬3.19-31.txt · 마지막 수정: 2020-07-12 12:24 작성자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