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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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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4.1-8 [2020-07-19 09:5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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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7월 19일 주일오전설교==
  
 +======아브라함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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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말씀: 로마서 4장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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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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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은 율법을 관짝에 넣고 막 못을 박았다. 그는 확신에 찬 용어로 율법은 구원하지 못하며 구원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흘려진 피에 믿음을 둘 때에만 온다는 진리를 전달하였다. 우리 모두는 이 진리를 믿고 그 안에서 기뻐한다. 우리는 저번 주 로마서 3장을 보면서 칭의나 구속이나 화목제물이나 죄들의 사면이나 죄의 용서나 하나님의 은혜와 관련해 조금만 맛보았다.
 +
 +불행하게도 모든 사람이 믿음의 핵심 교리를 믿지 않는다. 로마서를 믿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유대인들)이 바울이 전달하는 진리를 사실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따라서 바울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의 자신의 메시지를 계속 옹호하기 위해 한 증인을 증언석에 서도록 부르고 있다.
 +
 +바울의 증인이란 다름 아닌 아브라함이다(1절). 이 사람은 수세기 동안 세상의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아오던 사람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도 아브라함은 유대인들과 무슬림과 크리스천들에게서 큰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바울의 때에 많은 사람들이 특히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을 거의 그들의 숭배의 대상으로까지 여겼다. 따라서 만일 바울이 자신의 주장을 주장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호소해야 한다면 그것은 아브라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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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이 아브라함을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의 한 예로 사용하기로 정하였기 때문에 우리도 시간을 들여 이 사실을 깊이 생각해보는 것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따라서 기회를 만들어 오늘 8구절로 이루어진 오늘 본문을 들여다보아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직접 증거로 보고자 한다. 이 일을 하면서 바로 우리 자신의 믿음도 점검해보도록 하자. 우리의 구원이 전적으로 믿음을 근거로 한 것임을 확실히 하자. 믿음을 근거로 하지 않으면 구원이 전혀 아니며 최대의 기만이자 최악의 저주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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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한 소문(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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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육체에 관한 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발견했다고 우리가 말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게 되었으면 그 일에 대하여 자랑할 것이 그에게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롬 4:1-2)
 +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을 자기 행위들로 구원받은 사람의 최고의 본(example)으로 붙들고 있다. 그들은 아브라함이 올바로 살아간 삶의 개요였다고 믿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받아들이고 의롭다고 선언하신 것이 그가 그런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
 +바울은 여기서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즉 만일 아브라함이 자기 행위로 의롭게 되었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아브라함이 자랑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는 자기를 가리키면서 “나를 보라. 내가 이루어놓은 것을 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도 그 사실을 존중하고 아브라함을 의의 완전한 본으로 붙들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우리가 줄 수 있는 모든 찬사를 받아도 합당한 자가될 것이다.
 +
 +오늘날에도 이런 주장이 있다. 이런저런 방식으로 자기들의 행위들로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는 교단들이 기독교 안에도 있다. 카톨릭인들은 미사에 참여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안식일교인들은 어떤 음식들을 피해야 한다고 믿으며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한 사람들은 구원받은 것이 구원의 필수조건이라고 믿는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믿음으로 사람이 구원받는다고 믿지만, 그 사람이 자신의 구원을 유지하려면 선한 행위들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사람들은 자기들이 행위로 의에 이르렀다면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 모든 사람들이 잘못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방식으로 믿음에 오게 되면 육체나 우리가 행한 것에 대해 자랑할 것이 없으며 오직 예수님과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어놓으신 것만이 자랑할 것이 된다(엡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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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구절의 마지막 표현에 주목하자.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바울이 말하는 바는 아브라함과 관련한 소문이 사실이어서 아브라함이 자기 행위로 어찌하든 의롭게 되었어도 하나님께는 감동받지 아니하실 것이다! 우리는 어린 아이때부터 훈련을 받는다. 선한 행위들과 선한 일들을 하면 보상을 받고 그것은 우리에게 성취감과 자기 확신의 감정을 전달한다. 우리가 하는 선한 일들이 육체나 사람들의 눈에 우리를 좋게 보이게 할지라도 주님께는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다. 왜 그러한가?​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바라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보시기 때문이다. “{주}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나 키의 크기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주}는 사람이 보는 것처럼 보지 아니하나니 사람은 겉모습을 보나 {주}는 마음을 보느니라.”(삼상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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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마지막에 행한 것으로 판단받는다. 가령 운동선수의 기량은 그의 마지막 스코어에 달려 있다. 그것이 행함이 통하지 못하는 이유다. 행함이 통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지속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더 행해야 하고 더 행해야 되어 결국 할 수 있는 정도의 극단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 다음 우리가 더 할 수 없을 때에 어떻게 되는가? 만일 내가 내 선한 행위들로 구원받는다면 나는 선한 행위들을 유지해야만 하며 내 삶의 매우 작은 순간에도 더 나은 행위들로 나아가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내 운명이 정해진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살아야 하는 환경치고는 너무 스트레스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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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의 운동선수를 생각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존중하는 운동선수가 언제나 최고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자기의 몸의 상태를 최고로 유지시켜야 한다. 모하메드 알리를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그를 뛰어난 권투선수로 기억한다. 그는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쏠 수 있는 사람이었음을 기억한다. 그런데 그가 파킨슨병에 걸려 있는 상태에서도 사람들은 그렇게 기억한다. 하지만 그가 링에 오른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이제 그를 그렇게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언제나 마지막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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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선한 행위들로 감동받지 아니하신다는 점이다.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그분을 향한 믿음이다. 믿음은 여러분과 나의 혼을 구원하는 유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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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아브라함의 믿음의 실제(3-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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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기록이 무어라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하느니라. 4 이제 일하는 자는 품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5 일을 하지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느니라.**”(롬 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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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바울은 아브라함의 구원의 진정한 기초가 되는 것에 대해 말한다. 단순히 말해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구원하셨다. 아브라함이 85세의 노년의 나이였을 때 그는 자녀가 없는 상태였으며 주님께서 그에게 와서 그가 자녀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후손들이 결과적으로 아브라함이 머리 위로 바라보는 별들처럼 많게 될 것이라고 그에게 말씀하셨다(창 15:1-6). 그 말이 미치 것처럼 들린다면 더 이상한 일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아브라함의 이 믿음은 아브라함의 의의 근거로 간주되었다고 말한다. 즉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기에 하나님께서 그의 혼을 구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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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다”란 단어를 주목하자. 이 단어는 “누군가의 계좌를 신용처리하고 그에 맞게 처리한다.”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보자. 만일 여러분이 은행에 가서 이미 초과 인출된 계좌에서 수표를 작성하려 하면 그들은 그 상황에 맞게 처리할 것이다. 하지만 만일 여러분이 은행에 가서 여러분의 계좌에 수백억을 예금하고 수표를 작성하려 하면 그들은 여러분의 계좌를 신용처리하고 여러분에게 모든 거래를 허용할 것이다. 이 진리를 영적인 부분에 적용하면 어떻게 되는가?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구원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둘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은행에 우리의 계좌를 여시고 거기에 그리스도의 의를 입금하신 후 우리를 마치 예수님을 대하듯이 우리를 대하신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입금하여 하늘에 계좌를 여는 일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의를 가지고 하나님의 호의를 보장하려는 행위와 같으며,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단지 우리에게 합당한대로 대해져서 우리는 지옥으로 보내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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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4-5절에 요약되어 있다. 그는 만일 우리가 선한 행위로 구원받는다면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실 때 그 사람에게 자신의 채무를 지불하시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회사에서 한달을 일했는데 사장이 와서 여러분의 월급을 주면서 “선물”이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그것은 “선물”이 아니라 내가 일한 것에 대한 “합당한 보상”이라고 말할 것이다. 구원도 그와 같다. 만일 내가 행위로 구원받게 되었다면 나는 나의 선함을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런 경우라면 나는 은혜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게 되며 내가 행한 것을 하나님께서 보상으로 지불한 것이 된다. 이것은 구원에 대한 잘못된 관점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절대로 보상을 해야 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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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절을 보면 더 나아가 말하기를,​ 경건치 아니한 자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아직 깨닫지 못하였는가?​ 구원은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행위에 대한 것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다 믿음에 대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여러분이 구원받기 위해 추가되어야 할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하늘나라로 가는 새로운 구원을 추구하는 것이 되어 절대 하늘로 갈 수 없을 것이다. 구원은 모두가 다 믿음에 관한 것이다. (요 3:16, 행 16:31, 행 8:37. 믿음이 죄인의 혼을 구원하는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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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진리를 읽는 우리에게 이것이 얼마나 축복인지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하나님께 갈수 있으려고 선해질 필요가 없다. “경건치 아니한 자”란 표현이 그것을 말한다. 주 예수님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현재의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갈 뿐이며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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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진리에 가까이 오지만 여전히 이 문제의 진리를 깨닫는데 이르지 못하고 있다. 많은 종교인들이 선한 삶을 추구하며 구원을 얻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생각해보라. 그들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진리를 깨닫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 믿음을 두는 일이다. 우리 모두는 아담과 이브가 전해준 저주 아래 놓여 있으며 우리 모두는 태어나면서부터 죄의 본성을 갖고 있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를 말해준다. 또한 선한 행위로 구원받고자 한다면 선한 행위의 삶을 계속해서 지속해야 함을 생각해보라. 그러나 행함이 없는 자에게도 축복이 있다. “경건치 아니한 자” 안에 여러분과 내가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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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아브라함의 믿음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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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또한 다윗이 행위가 없어도 [하나님]께서 의를 인정하시는 사람의 복된 일을 묘사하여 7 이르되, 자기 불법들을 용서받고 자기 죄들이 가려진 자들은 복이 있으며 8 [주]께서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 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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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응답하였기 때문에 그의 삶 속에 가치있고 주목할만한 어떤 확실한 결과들이 있었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관련하여 언급하던 원리들을 예로 들어서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요점을 들고자 다윗을 예로 들었다. 바울은 다윗이 시 32:2에서 한 기도를 인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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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구절들에서 바울은 우리가 구원을 위해 주 예수님을 신뢰할 때에 우리의 것이 되는 세 가지 위대한 결과들을 보여준다. 이것들은 주목할만한 가치가 분명히 있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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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죄들이 용서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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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서받는다”란 단어의 원래의 의미는 “멀리 보내다”란 뜻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받아들일 때 우리의 죄들은 영원히 우리의 삶으로부터 제거된다. (시 103:12, 사 38:17, 43:25, 렘 50:20, 믹 7:19, 골 2:13-14, 요일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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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죄들이 가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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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사용된 단어가 전달하는 것은 “가려져서 절대로 다시는 드러나지 않게 한다”이다. 예수님의 피는 권능있어 모든 죄들을 덮는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들이 만일 여러분의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면 다 덮어진다. 이 점에서 우리가 영원히 구원받는다고 믿는다. 만일 내 미래의 죄들이 나를 지옥으로 보낼 수 있다면 나는 진정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전부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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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 죄들이 인정되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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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정된다”로 번역된 단어는 앞서 보았던 것과 동일하게 “누군가의 계좌를 신용처리하고 그에 맞게 처리한다.”란 뜻이다. 5절에서 이미 보았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구원을 위해 신뢰한 순간 여러분의 죄들은 절대로 다시 여러분의 계좌로 들어오지 않을 것인데 그것들이 이미 주님의 계좌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 못한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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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 믿음을 두었다면 우리는 이미 용서되었으며 우리의 죄들은 가려졌고 우리의 죄들은 더 이상 우리의 계좌에 있지 아니하다! 이것은 놀라운 축복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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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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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은 여러분과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선한 행위들을 해야 하는가 라든지 선한 행위들을 얼마나 해야 하는가 라든지에 달려 있지 않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들은 죄인들이며 아담이래로 모든 사람들은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행위들을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고 영원히 우리를 의롭다 선어하시고 자신의 자녀 삼으실 방법을 갈보리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들을 위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제공하시고 그분께 믿음을 둘 것을 명령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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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주님께 믿음을 둘 때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동일한 일이 있으며 다윗에게 있었던 동일한 일이 있다. 바로 주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의로 간주하시며 우리의 죄들이 용서받고 가려지며 죄들이 더 이상 인정되지 아니한다. 할렐루야!
롬4.1-8.txt · 마지막 수정: 2020-07-19 09:54 작성자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