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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9.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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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9.23-26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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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6월 19일 주일오전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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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백성으로 삼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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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롬 9: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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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 9:23~26 이로써 영광에 이르도록 미리 예비하신 긍휼의 그릇들에게 자신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리려 하셨을진대 무슨 말을 하리요? 24 이 긍휼의 그릇들은 우리니 곧 그분께서 유대인들 중에서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 중에서도 부르신 자들이니라. 25 이것은 그분께서 호세아의 글에서도 이르시되,​ 내가 내 백성이 아니던 자들을 내 백성이라 부르며 사랑받지 못하던 그녀를 사랑받는 자라 부르리라. 26 또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곧 거기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이들이라 불리리라,​ 함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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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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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면서 쓰시던 칭호 중 하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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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 3: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하시니라. 모세가 하나님 뵙기를 두려워하였으므로 자기 얼굴을 숨기니라.
 +
 +출 3:15 하나님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너희 조상들의 주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느니라,​ 하라. 이것은 영원토록 나의 이름이요,​ 이것은 모든 세대에 이르는 나의 기념물이니라.
 +
 +출 3:16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함께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 조상들의 주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분명히 너희를 찾아와 너희가 이집트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
 +
 +이 칭호를 통해 주님이 보여주시는 것:
 +
 +1)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계시하시는 지\\
 +2)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찾고 계시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란 칭호는 신약에서 주께서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들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
 +마 22:31~32 그러나 죽은 자들의 부활에 관하여는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을 너희가 읽지 못하였느냐?​ 이르시되,​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하셨으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매
 +
 +그렇다면 주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 보여주시는 것은 비록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죽은 지 1000년이 넘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께 죽은 자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님은 그들이 앞으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날 것을 미리 보실 뿐 아니라 그들이 현재에도 살아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이 칭호로 부르시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분께서 어떤 부류의 사람들의 하나님이 되길 원하시는지를 보여준다. 마태복음 8장에 이런 말씀이 있다.
 +
 +마 8:11~12 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와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하늘의 왕국에 앉으려니와 12 왕국의 자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고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
 +여기서 왕국의 자손들이라 함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시려고 부르시던 민족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하여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시려고 부른 민족들이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에 대한 답은 로마서 9장에 있다.
 +
 +롬 9:6~8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효력을 상실한 것 같지 아니하니 이는 이스라엘에게서 난 자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7 또한 그들이 아브라함의 씨라고 해서 다 아이들은 아니기 때문이라. 오직, 이삭 안에서 네 씨가 부름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8 곧 육체의 아이들인 자들 즉 이들이 하나님의 아이들이 아니요 오직 약속의 아이들이 그 씨로 여겨지느니라.
 +
 +하나님께서는 육체로 이스라엘인이라고 해서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신다고 하지 아니하셨다. 오히려 아브라함의 씨이자 이삭 안에서 부름을 받은 약속의 아이들이 되어야 함을 언급하셨다. 또한 오늘 말씀은 어떠한가?​ 롬 9:23~26은 하나님께서는 긍휼의 그릇들을 통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또한 그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부르시겠다고 말씀하신다. ​
 +
 +오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불리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으로 삼길 원하시는 사람들에 대해 살펴보자.
 +
 +=====II. 아브라함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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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3:7 그런즉 너희는 믿음에 속한 자들 곧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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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으로 삼길 원하시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 부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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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 26:24 바로 그 밤에 주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내가 너와 함께하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씨를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매
 +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두고 자신의 백성으로 삼길 원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
 +갈 3:6~9 이것은 곧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너희는 믿음에 속한 자들 곧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께서 믿음을 통해 이교도들을 의롭게 하려 하심을 성경 기록이 미리 보고 아브라함에게 미리 복음을 선포하여 이르되, 네 안에서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9 그런즉 이와 같이 믿음에 속한 자들은 믿음이 충만한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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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아브라함을 택하여 그를 부르고 그를 자기 백성으로 삼고자 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여 주셨을 때 아브라함은 그분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이 그대로 될 것임을 믿었으며 전적으로 신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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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맨 처음 아브라함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며 그에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하셨을 때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있어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그는 구전으로 창조의 하나님에 대해 들었을 것이다. 또한 그분께서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을 어떻게 물로 심판하시고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건지셨는지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전에 한번도 하나님을 만나보지도 그분의 음성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아브라함은 주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면서 그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땅을 향해 나아가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그것은 그에게 그의 인생에 있어 중대한 선택을 해야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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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 아니하는 그분께 자신의 전부를 의탁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 선택에서 아브라함은 그분을 신뢰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라면 나의 인생의 계획도 그분께 달려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약속의 땅으로 믿음으로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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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라함은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 역시 허물과 죄를 범하는 인간에 불과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을 신뢰하고 전적으로 인생을 내어맡기는 자들을 절대 버리지 아니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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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라함의 시험들을 생각해보라. 창 12(지시한 곳으로 떠나라), 15(네씨가 바다의 모래와 같을 것이다), 17(사라가 아들을 낳으리라),​ 22(네 아들 이삭을 바치라)장. 모든 시험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한다면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들이다. 또한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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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 11:8~10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아 훗날 상속 재산으로 받게 될 곳으로 나가면서 순종하고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나갔으며 9 믿음으로 그는 낯선 나라에 머무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머물렀고 자기와 함께 동일한 약속의 상속자가 된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장막들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기초들이 있는 한 도시를 바랐기 때문이라. 그것의 건축자와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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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같이 전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주님께 맡길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고자 찾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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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3:6~7 이것은 곧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너희는 믿음에 속한 자들 곧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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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믿음에 속한 자들인가?​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아브라함의 자녀/​자손인 줄 알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들을 위해 죽고 부활하셨다는 역사적 사실을 믿는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주님을 나의 구주이자 주로써 모시고 내 인생을 그분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것이다. 바울이 이것을 설명할 때 주인들과 종들에게 주는 말씀을 통해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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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이삭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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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4:28 형제들아,​ 이제 우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아이들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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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 28:13, 킹흠정 또, 보라, 주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주니 곧 네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니라. 네가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씨에게 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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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라함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이스마엘과 이삭. 그중에서 주님은 “오직, 이삭 안에서 네 씨가 부름을 받으리라”고 하셨다. 이것을 통해 주님은 “육체의 아이인 자들 즉 이들이 하나님의 아이들이 아니요 오직 약속의 아이들이 그 씨로 여겨”짐을 보여주셨다(롬 9:8). 만일 주님께서 약속의 아이들이 그의 씨로 여겨진다고 말씀하셨다면 우리 역시 믿음을 통해 이삭과 같이 약속의 아이들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믿음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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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4:28 형제들아,​ 이제 우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아이들이니라.
 +갈 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씨요 약속에 따른 상속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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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라함의 두 아들은 아버지는 같으나 어머니가 다른 배다른 형제들이다. 만일 육신으로 따진다면 맏아들인 이스마엘이 장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육신에 따른 것이 아니라 약속에 따른 것이었다. 그것은 “곧, 이때에 내가 오리니 사라에게 한 아들이 있으리라”(롬 9:9)하신 주의 말씀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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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삭은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자녀였다. 또한 그 역시 하나님을 믿고 자신의 생명을 의탁했던 자였다. 우리는 창 22장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 헌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주께서 보여주시던 산에서 그를 바치려고 했던 것을 안다. 그 때 이삭은 아브라함이 자기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믿음으로 순종하자 그 역시 믿음으로 부응했다. 주님은 이삭에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들을 상속으로 주셨다. 즉 그는 약속에 따른 상속자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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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이삭의 하나님이라 자신을 부르신 것은 자신의 백성이 된 자들이 약속의 상속자가 될 것임을 보여주고 계신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신뢰한 우리가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가 되었음을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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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 8:16~17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니라. 우리가 그분과 함께 고난 당하면 이것은 우리가 함께 영광도 받으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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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그리스도를 신뢰한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들과 예언들이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성취될 것임을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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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V. 야곱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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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 3: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하시니라. 모세가 하나님 뵙기를 두려워하였으므로 자기 얼굴을 숨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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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주님은 자신이 야곱의 하나님으로 불리길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신다. 그런데 야곱이 누구인가?​ 그는 속이는 자이다. 야곱과 에서는 쌍둥이이다. 우리는 쌍둥이로 태어나면 위아래를 나누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쌍둥이일지라도 먼저 태어나는 자가 형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형과 동생의 관계로 된 것이 현재로 보자면 야곱과 에서는 같은날 태어난 쌍둥이이다. 그런데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 형의 뒷꿈치를 잡고 태어났다. 또한 그는 팥죽 한그릇에 장자권을 샀으며 에서를 속여 아버지로부터 장자에게 주는 축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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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삶은 또 어떠한가?​ 그의 삶은 시련과 속임수와 고난과 슬픔으로 가득차 있다. 그는 사촌인 라반에게 속아 라헬을 얻기위해 14년을 봉사했고 또한 라반을 속여 그의 양무리의 대부분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는 네명의 아내를 통해 12지파와 딸을 낳았고 딸로 인한 슬픔과 요셉을 잃게 되는 슬픔등 갖가지 고난이 그의 삶에 점철되어 있다. 인간의 눈으로써는 그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에 합당한 자라고 볼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경은 무어라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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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 9:11 (그 아이들이 아직 태어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도 아니하였으되 선택에 따른 하나님의 목적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부르시는 분으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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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곱과 에서는 이삭과 이스마엘과는 다르게 같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난 자들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축복은 형인 에서가 아니라 동생인 야곱에게로 주어졌다.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에게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들이 어떤 목적이나 동기를 갖기도 전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밝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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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미래를 아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미리아심이라 부른다.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지 않을 때에 어떻게 될지와 우리를 부를 때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실지를 미리 알고 계신다. 야곱과 에서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고 그들이 어떤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주님은 그분의 미리아심을 통해 야곱을 선택하셨고 그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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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그를 불렀을 때 그는 어떻게 부응했는가?​ 그는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정했다. 비록 그의 삶이 거짓과 슬픔과 속임수와 고난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지만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불렀고 그분을 신뢰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땅과 축복을 동일하게 상속으로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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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에서는 어떠했는가?​ 그는 장자권을 업신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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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 25:34 이에 야곱이 빵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고 마시고 일어나 자기 길로 갔더라. 에서는 이와 같이 자기의 장자권을 업신여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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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그는 아내로 삼지 말아야 할 여자를 데리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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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 26:34~35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취하였는데 35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에게 마음의 근심거리가 되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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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이미 하나님과 관련된 일에 관심도 없고 오히려 업신여기는 사람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시겠는가?​ 하나님께서 야곱을 축복하시고 에서를 버린다 하여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불의한 일이 되겠는가?​(롬 9:14)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미리아심의 결과이다.
 +
 +롬 9:16 그런즉 이와 같이 그것은 원하는 자에게서 나지도 아니하고 달리는 자에게서 나지도 아니하며 오직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
 +
 +롬 9:13절에 “야곱은 내가 사랑하되 에서는 미워하였는니라” 라는 말씀은 말라기 1:2~3에서 하신 말씀이다. 야곱과 에서가 살아있을 때가 아니라 이미 수백년이 지난 시점이다. 또한 말라기의 말씀은 그 두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 민족들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야곱은 이스라엘을 말하고 에서는 에돔을 말한다. 즉 하나님께서 민족들을 다루시는 그분의 주권적인 뜻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롬 9:11은 여전히 개인에게 적용이 된다.
 +
 +====로마서 9장의 설명.====
 +
 +성경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구원에 합당치 못한 자이며 모두 죄인들임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기 전 우리 모두는 멸망에 합당한 자였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은 그분의 미리아심을 통해 우리를 구원으로 부르셨으며 우리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입게 되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분의 긍휼과 은혜가 아니라 의와 심판으로 부르신다면 어느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또한 오직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에게서 나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의 의지보다 하나님의 의지와 뜻이 먼저임을 알 수 있다.
 +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볼 때 “내가 긍휼을 베풀자에게 긍휼을 베풀고 내가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하신 주의 말씀에 따라 주의 주관적인 뜻에 따라 긍휼과 심판이 무작정 내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만일 그렇다면 주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 되실 수 없으시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미리아심과 부르심에 달려있다. 또한 그것은 그분의 주관하심에 달려 있으며 그분의 의로우심과 반하지 않는다.
 +
 +롬 9:23~26 이로써 영광에 이르도록 미리 예비하신 긍휼의 그릇들에게 자신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리려 하셨을진대 무슨 말을 하리요? 24 이 긍휼의 그릇들은 우리니 곧 그분께서 유대인들 중에서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 중에서도 부르신 자들이니라. 25 이것은 그분께서 호세아의 글에서도 이르시되,​ 내가 내 백성이 아니던 자들을 내 백성이라 부르며 사랑받지 못하던 그녀를 사랑받는 자라 부르리라. 26 또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곧 거기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이들이라 불리리라,​ 함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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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고자 하는가? 주님은 어떤 그릇들을 긍휼의 그릇으로 삼아 자신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리려 하시는가?​ 그것은 부르심을 얻은 자들이다. 그런데 그 부르심을 얻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다. 그분의 긍휼을 힘입은 것이다. 생각해보라. 주님이 부르지 않으셨다면 우리 모두는 죄인으로 지옥이 합당한 자들이었음을.
 +
 +롬 8:29~30 그분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는 예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주님은 그분의 미리아심을 따라 우리를 부르심으로써 영화롭게 하시고 그분의 백성으로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신다.
 +
 +
 +=====V. 결론=====
 +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불리기를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는 자들은 어떤 자들인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약속을 통하여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며 또한 긍휼을 얻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자들이다.
  
롬9.23-26.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