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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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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1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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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7월 18일 주일 오전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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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뜻과 싸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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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룻기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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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시대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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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기 1장의 상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잘 이해함이 필요합니다. 롯기 1:1을 보면 “이제 재판관들이 다스리던 때에 땅에 기근이 드니라.” 라고 말합니다. 즉 룻기의 시대적 배경은 재판관들이 다스리던 때입니다. 룻기이전의 책은 사시기 즉 재판관기입니다. 룻기는 사사기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사사들 즉 재판관들을 일으키셔서 그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재판하고 치리하게 하셨던 때에 있었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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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암울하던 때였습니다. 삿 17:6의 말씀은 당시의 영적인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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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삿 17:6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눈에 옳은 것을 행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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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동일한 말씀이 삿 18:11; 19:1; 21:25에서 즉 사사기에서 총 4번에 걸쳐 나옵니다. 처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왕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왕이시며 또한 그들을 다스리시는 분이심을 알게하려는 것(삼상 8:​7)이었습니다. 주님은 재판관들을 세우시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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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사기를 보면 여러 번에 걸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악을 행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방 민족들 즉, 메소포타미아(삿 3:8), 모압(삿 3:14), 가나안(삿 4:2), 미디안(삿 6:1), 암몬(삿 10:7), 블레셋(삿 13:1) 등에게 파셔서 그들이 종이 되어 그 민족들을 섬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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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즉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그분의 뜻을 구하고 그분을 섬기기보다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행하였던 시대였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크리스천에게 정말 중요한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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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등장하는 인물들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베들레헴유다의 어떤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은 나의 왕이란 뜻입니다.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 즉 즐거움이란 뜻입니다.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인데 말론은 “병든” 이란 뜻이고 기룐은 “파괴적인,​ 소모적인”이란 뜻입니다. 오브라는 “목덜미”,​ 룻은 “친구”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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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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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재판관들이 다스리던 때에 땅에 기근이 드니라. 사사기 때에 여러 번에 걸쳐 기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사기에는 “기근”이란 단어가 나오질 않습니다. 그 기근은 이방 민족들의 침탈로 인한 기근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기드온이 미디안 족속에게 숨기기 위하여 포도즙 틀 곁에서 밀을 타작하던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기근은 말 그대로 먹을 것이 부족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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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멜렉은 베들레헴유다 사람이었습니다. 베들레헴은 “빵집”이란 뜻이고 유다는 “찬양”이란 뜻입니다. 빵집에 거하는 사람들에게 기근이 왔다는 것은 아이러니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전체 민족의 영적인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사기때의 기근이 이방 민족들의 침탈로 인한 것임을 생각할 때 이들은 이방민족들의 지배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즉 엘리멜렉은 점점 더 먹고 사는 것이 어려워져 감을 보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말로 그는 재정적으로 시험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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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재정적인 시험은 우리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찾아오는 시험입니다. 하나님은 이 기근이라는 시험을 통해 종종 그분께 대한 우리의 믿음과 순종과 사랑을 보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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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라함은 기근으로 인해 하나님께 구하여 그분의 뜻을 따라 행하기 보다는 이집트로 내려가 거기서 오히려 난관에 빠지게 됨을 봅니다(창 12:10). 우리가 어디에 있던지 고난이나 어려운 환경은 주어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과연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지가 더욱 중요한 문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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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분명한 하나님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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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고 또 거룩한 생활을 하기에 필요한 말씀들을 주셨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언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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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건져내셔서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거하고 있던 장소가 바로 그 곳이었습니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래로 그의 후손들에게 약속하셨던 땅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 거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살기를 주님은 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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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룻기 1:1을 보면 “베들레헴유다의 어떤 사람이 자기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머물렀는데” 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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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압은 이스라엘과 원수가 되던 민족이었습니다. 이 태생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딸 사이의 근친상간의 결과로 생겨난 민족이었습니다. 또한 모압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와 광야의 여정을 거치는 동안 이스라엘을 없애고자 했던 민족이었습니다.(신 23:3-6, 민 24,25장) 뿐만 아니라 모압은 이스라엘을 침공해서 18년동안 다스렸습니다(삿 3:12-14). 그런데 왜 그런 민족에게로 나아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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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압은 하나님께서 저주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민족에게 나아가 도움을 구하는 것은 합당치 않은 일인 것입니다. 이것은 이사야가 8:19에서 말한 바와 같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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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8:19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부리는 영들을 지닌 자들과 슬쩍 엿보고 중얼거리는 마술사들에게 구하라, 할 때에 백성이 마땅히 자기들의 하나님께 구하여야 하지 아니하겠느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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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께 구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엘리멜렉은 아주 큰 실수를 범하고 맙니다. 그 실수는 우리 모두가 흔히 범하는 실수가 될 수 있습니다. 모압은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 즉 세상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종종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의 얼굴을 구하고 도움을 구하기보다 세상적인 방법을 먼저 떠올리고 그것을 추구하거나 세상 사람들의 지혜를 구하거나 혹은 그들에게서 도움을 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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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의 믿는 크리스천들은 마치 사사기 때의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하나님을 왕으로 두고 있음에도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눈에 옳은 것을 행하였더라.” 라고 함과 같이 오늘날 우리들도 그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구하고 그분의 은혜의 얼굴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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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V. 잘못된 선택/​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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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멜렉은 “하나님은 나의 왕”이란 뜻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삶의 왕으로 하나님을 모시는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엘리멜렉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지금의 주어진 시험의 시간을 회피하길 원했습니다. 그는 결정을 내릴 때 하나님을 완전히 배제해 버린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기근으로 암미암아 살기가 힘들어질 때 그 기근이 주어진 원인인 죄의 문제를 두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할 때에 오히려 잠시 동안이나마 살기가 편한 곳으로 피해있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1절의 머물다 라는 단어는 영어로는 sojourn 이라는 단어로 잠시 머물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결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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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아들들의 이름을 보십시오. 병들고, 소모적인 이것이 그 두 아들의 이름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삶을 정확히 보여주는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그는 병든 삶을 살고 또한 그는 하나님의 뜻에서 완전히 벗어나 그의 삶은 소모적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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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을 보존하려고 모압으로 내려갔던 엘리멜렉과 그의 가족은 그곳에서 정착해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베들레헴유다의 에브랏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거할 곳은 빵집인 베들레헴에서 주님께 찬양드리는 삶을 살며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 것이 주님의 뜻이 명확한 데도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의 땅에 편안히 거하고자 들어가 정착하게 된 것입니다. 에브랏은 “열매맺는” 이란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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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곳에서 엘리멜렉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타국의 땅에서 자기 남편이 죽음을 맞이했으나 나오미는 두 아들이 남아있고 재정적으로는 힘들지 않게 사는 것으로 만족했을 것입니다. 그의 가족은 계속해서 머물러 있다가 두 아들은 모압 여인들을 각각 자기 아내로 맞이합니다. 이것은 엘리멜렉의 아들들이 내린 잘못된 결정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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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23:3-6 암몬 족속과 모압 족속은 주의 회중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은 심지어 십 대에 이르기까지 주의 회중에 영원히 들어오지 못하리라. 너희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그들이 빵과 물을 가지고 길에서 너희를 맞이하지 아니하고 메소포타미아의 브돌에서 브올의 아들 발람을 사서 너를 치고 저주하게 하려 하였느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네 하나님께서 너를 사랑하셨으므로 주 네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시고 주 네 하나님께서 그 저주를 돌이키사 네게 복이 되게 하셨나니 너는 네 평생 동안 그들의 화평과 형통을 영원토록 구하지 말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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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하게 그들이 모압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이는 일이 잘못된 일임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눈에 옳은 대로 그렇게 선택을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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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 하나님의 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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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잘못된 선택에 징계하심으로써 그들에게 약속된 장소로 돌아가기를 촉구하셨을 것입니다.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거하며 또한 이스라엘 백성의 원수의 평안을 구하지 않기를 바라시고 징계하셨을 것입니다. 두 아들의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말론은 병을 많이 앓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아들의 병을 통해 주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심에도 그들은 계속해서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모압이 더욱 자유롭게 살기에 좋았을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오락이나 쾌락을 추구하기에 좋은 것들이 많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둘째 아들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곳의 삶이 소모적이라고 생각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재정적으로 넉넉함을 추구하게 될 때 우리는 종종 영적 빈약함을 잊어버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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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 계속해서 머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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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멜렉의 죽음이나 자기 아들들이 병들고 소모적인 삶을 사는 것을 보고도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온 관심은 재정적인 넉넉함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결국 주님은 두 아들의 삶을 취해가심으로 나오미에게 가장 무거운 징계를 내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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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나오미의 삶에 큰 충격이 되었습니다. 나오미는 주의 손이 자신을 치셨음을 알았습니다. 그전의 일들에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징계하고 계심을 보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재정적으로 이제 힘들어지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을 거역하고 계속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두 아들마져도 데려가시는 것을 보고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크게 치고 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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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절을 보십시오. 나오미가 다시 자기 백성에게 돌아가기를 마음먹게 된 것에는 주님의 뜻을 구함에 있지 않았습니다. 단지 주께서 자신의 백성을 돌아보사 그들에게 빵을 주셨다는 것을 들었던 것입니다. 이제 주님을 신실하게 기다린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복을 주신 것을 들었으나 자신은 이제 남편도 두 아들도 잃고 또 재정적으로도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 자신을 보고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결정을 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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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I. 나오미의 쓴 뿌리(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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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 나오미의 마음을 보십시오. 분명 나오미와 그의 가족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한 그 댓가를 거두었으나 오히려 나오미의 마음은 자신을 돌아보기는커녕 하나님께 비난을 돌리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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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 1:13 ...내 딸들아, 아니라. 주의 손이 나와서 나를 치셨으므로 내가 너희로 인해 괴롭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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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 1:20-21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 부르라. 전능자께서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느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으나 주께서 나를 빈손으로 집에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주께서 나를 대적하는 증거를 보이셨고 전능자께서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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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종 나오미의 마음의 상태는 바로 우리의 모습이곤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우리 뜻을 따라 살며 죄를 짓는 일들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더욱 싫어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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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 12:11 이제 어떤 징계도 그 당시에는 기쁘게 보이지 아니하고 슬프게 보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단련된 자들에게 의의 화평의 열매를 맺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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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의의 화평의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안에 쓴뿌리를 갖게 됩니다. 즉 자신의 죄들을 미워하기 보다는 자신을 징계하는 하나님이 원망스러워집니다. 바로 나오미의 상태가 그러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우리 자신을 수정하고 고쳐야할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매을 때리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더욱 강도를 강하게 하듯이 주님도 계속해서 그분의 인도하심을 거부하는 자녀에게 더욱 무거운 징계를 내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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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II. 모든 것을 선으로 이루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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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와중에서도 우리는 모든 것을 선으로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합니다. 나오미는 모든 것을 잃었으나 룻을 얻게 됩니다. 이 룻은 모압 여인이나 그리스도의 계보에 들어가게 된 여인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된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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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은 오늘날 구원받는 이방인들을 상징합니다. 율법은 룻이 하나님의 회중에 들어갈 모든 기회를 박탈해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은 그분께 믿음을 둔 룻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합니다. 룻의 믿음을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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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 1:16-17 룻이 이르되, 나보고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 강권하지 마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리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니이다. 만일 죽는 일 외에 어떤 다른 것이 나와 어머니를 갈라놓으면 주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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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은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의 남편과 나오미를 통해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인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건져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던 것들을 들었을 것입니다. 또한 룻은 하나님께서 나오미와 자기 남편에게 징계를 내리시는 것을 보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직접 보았을 것입니다. 나오미가 자신을 징계하는 하나님을 원망할 때 룻은 자신의 백성을 징계하면서까지 바로잡으시려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던 것입니다. 룻은 그모스 신을 섬기던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과 징계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만을 섬기기로 작정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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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이 룻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오미를 어떻게 치유하시는지를 보십시오.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완전히 자신을 버리셨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녀의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쓴 뿌리가 그녀의 마음 안에 있었습니다. 나오미는 오랜기간동안 하나님의 축복을 보지 못하고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룻을 통해 나오미가 잃었던 것을 되찾게 해주십니다. 하나님께 믿음을 둔 자녀에게 어떻게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지를 주님은 이 룻을 통해 나오미에게 보이십니다. 주님은 이 룻을 통해 나오미에게 그녀가 잊고 있던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무언지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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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X.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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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인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백성이 그분의 뜻을 구하고 그분을 섬기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때로 우리는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주님께 죄를 범하기도 하고 그분께 구하지 아니하고 우리 멋대로 결정하여 살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은 우리를 말씀으로 책망하시고 또 징계도 하십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즉각적으로 순종하고 그분께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그분께 나아오는 자신의 백성을 축복하길 원하십니다.
  
룻1.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