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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1.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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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1.16-18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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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6월 2일 주일오전설교==
  
 +======믿음은 확고한 마음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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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룻기 1장 16-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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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 1:16-18 룻이 이르되, 나보고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 강권하지 마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리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니이다. 만일 죽는 일 외에 어떤 다른 것이 나와 어머니를 갈라놓으면 {주}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매 18 그녀가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한 것을 보고 나오미가 그녀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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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의 계보에 기록된 여인들이 있다. 다말과 라합과 룻 그리고 우리아의 아내였던 여인 밧세바 이렇게 네 명이다. 이 중 밧세바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또한 성경의 여러 책들의 이름 중 여인의 이름으로 기록된 책이 두 권 있다. 룻기와 에스더기.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계보에도 올라와 있으며 또한 성경의 여러 책 중 이름을 갖고 있는 룻이란 여인에 대해 보고자 한다. 룻기는 볼 때마다 내 마음을 기쁘게 한다. 그것은 룻기가 아름다운 사랑을 담고 있어서가 아니다. 룻이라는 여인이 보여준 믿음으로 인하여서이다.
 +
 +사람들은 룻기가 기록된 주된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까지 이어지는 계보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룻기의 마지막은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로 끝나고 있는 것은 그 점이 사실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룻기를 단순히 그 목적으로만 보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룻기를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는 중요한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것은 룻의 믿음에 대한 것이다. 물론 룻기에는 “믿음”이란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믿음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중요한 것을 놓친 것이다.
 +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믿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축복하도록 이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사람들에게서 믿음을 찾으셨고 또한 그 믿음을 축복하셨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통하여 믿음으로 시력을 회복하였고 어떤 이는 몸이 온전해 졌으며 어떤 이는 자기의 죽은 자녀를 다시 얻기도 했다. 예수님은 종종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음을 보시고 책망하셨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도록 가르치셨다. ​
 +
 +믿음은 내 뜻과 내 생각대로 걷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믿쉽니다.”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이 되기를 갈망하는 것을 믿음으로 오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오히려 내 삶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분을 신뢰함에 있다. 잠언에 이런 말씀이 있다. ​
 +
 +잠 3:5-7 ¶ 네 마음을 다하여 {주}를 신뢰하고 네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지어다. 6 네 모든 길에서 그분을 인정하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네 행로들을 지도하시리라. 7 ¶ 네 눈에 지혜롭게 되지 말지어다. {주}를 두려워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
 +믿음은 내 생각대로 걷는 것이 아니다. 주의 말씀을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될 것을 확신하여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걷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지혜를 포기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의지하는 것이다. 물론 믿음의 축복은 그냥 오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축복하시기 전 우리가 믿음이 있는지 시험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시험을 받아왔다. 그런데 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해 그들의 마음을 고정하였다는 것이다. 즉 확고한 마음을 소유하였다. 오늘 본문말씀에서도 “굳게 결심한”을 영어 단어 그대로 해석하면 “확고한 마음을 가진”으로 번역된다. 영어로 “stedfastly minded”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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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을 향해 그들의 확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 중에 아브라함이 있다. 아브라함은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흔들리지 아니하였고 약속대로 이삭을 아들로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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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 4:19-22 그가 백 세쯤 되었을 때에도 믿음이 약해지지 아니하여 이제는 죽은 자기 몸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또 사라의 태가 죽은 것도 고려하지 아니하였으며 20 믿지 아니함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에 관하여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믿음이 강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그분께서 약속하신 것을 그분께서 또한 능히 이행하실 줄로 온전히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분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 인정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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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은 형제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이집트로 팔려가 노예의 신분으로 살며 모함으로 감옥에서 발에 족쇄로 묶임을 당하였으나 그는 자신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데서 돌이키지 아니하였고 주님은 그를 이집트의 총리가 되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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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105:17-22 그분께서 한 사람을 그들보다 앞서 보내셨으니 곧 요셉이라. 그가 종으로 팔렸도다. 18 그들이 그의 발을 족쇄로 상하게 하고 그를 쇠 안에 넣어 두되 19 그분의 말씀이 임할 때까지 그리하였도다. {주}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20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석방하였으니 곧 그 백성의 치리자가 그를 자유로이 가게 하며 21 그를 자기 집의 주(主)로 삼고 자기의 모든 재산을 관리하는 자로 삼아 22 그가 기뻐하는 대로 자기의 통치자들을 속박하며 자기의 원로들에게 지혜를 가르치게 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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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역시 고난 중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데서 돌이키지 않았다. 역경은 그들이 가진 믿음을 더욱 빛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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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룻에게서도 동일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룻은 하나님에 대하여 확고부동한 생각을 갖고 거기서 돌아서기를 거절하였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해 확고부동한 마음을 소유하게 하였을까?​ 오늘 우리는 룻기 1장을 통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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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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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룻기의 배경을 살펴보도록 하자. 1절을 보면 룻기의 시대적 배경을 알 수 있다. “이제 재판관들이 다스리던 때에” 성경에서 룻기 이전은 사사기 즉 재판관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후 그들에게 그 땅에서 정착하면서 살 때에 주변 민족들처럼 왕을 세우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주님께서는 시시때때로 필요할 때마다 재판관들을 세우셔서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고 그들을 다스리도록 하셨다. 주님은 그들에게 자신의 말씀인 모세오경을 이미 주셨고 그 말씀에 따라 그들이 걷기를 원하셨으나 그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로인해 그들은 종종 주변 민족들의 압제를 받거나 기근을 겪어야 했다. 룻기 1절에서도 “땅에 기근이 들”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약속의 땅에서 축복을 약속하셨으나 그 땅에 기근이 들었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죄 가운데 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 때에 베들레헴유다의 엘리멜렉이 그의 가족을 데리고 기근을 피하고자 모압 지방에서 잠깐 머무르려 그곳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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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서 사람들이나 장소의 이름은 의미가 있음을 언급한 적이 있다. 여기 베들레헴은 “빵집”이란 뜻이고 “유다”는 “찬양”을 의미한다. 엘리멜렉은 “하나님은 나의 왕”이란 뜻이다. 그러나 그의 삶은 하나님을 자신의 왕으로 두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약속의 땅에 머물러 있어야 했으나 하나님께서 금하시고 저주하신 곳으로 갔다. 그의 아내 나오미는 “즐거운”이란 뜻을 갖는다.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인데 말론은 “병약한”이란 뜻이고 기룐은 “유약한”이란 뜻이다. 우리 같으면 자녀들의 이름을 그렇게 짓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멜렉이 두 아들의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은 두 아들이 태어난 이래로 약한 체질의 아이들이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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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압 땅에 머물던 엘리멜렉 가족에게 시련이 찾아온다. 먼저 엘리멜렉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타국 땅에서 죽음으로써 가족은 슬픔을 맛보아야 했다. 그 뒤로도 가족은 고국으로 돌아가지 아니했다. 두 아들은 그곳에서 정착하여 각각 아내를 얻었다. “오르바”는 “사슴”이란 뜻이고 “룻”은 “아름다움”을 뜻한다. 그것은 외적 아름다움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 아름다움을 뜻하는 말이다. 그 땅에서 십년 쯤 거하였을 때 말론과 기룐도 그 땅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이제 그 가족은 나오미와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만이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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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절을 보면 그 뒤 나오미와 오르바와 룻은 “주께서 자신의 백성을 돌아보사 그들에게 빵을 주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오미는 더 이상 모압에서 소망을 얻을 수 없음을 발견하고 다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주신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나오미에게는 두 며느리를 데리고 간다는 것은 그들의 인생에 있어 큰 손해라고 생각하였다. 만일 그들이 자기들의 고향인 모압에 남아 그들의 부모에게로 돌아간다면 그들은 그곳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여 다시 가정을 일으킬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오미와 함께 그들이 알지 못하는 낯선 땅으로 간다면 그들이 다시 결혼할 가능성이 있을지 알지 못하였다. 그것은 불확실한 미래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점으로 인해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자기 부모에게 돌아갈 것을 종용하였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자신에게는 소망이 더 이상 없음을 언급한다. 그녀는 더 이상 결혼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고 설령 결혼하여 아이를 낳은다 할지라도 두 며느리가 아이가 커서 결혼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음을 설명한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보았을 때 두 며느리의 삶은 만일 그들이 나오미를 따라 간다면 나오미와 함께 평생을 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그것은 오르바와 룻에게 큰 결심이 필요한 때라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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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삶은 결심을 해야 하는 많은 선택의 기로를 갖고 있다. 우리는 오르바와 룻이 직면한 것과 같은 동일한 결심을 해야 하는 길 가운데 종종 서 있곤 한다. 오르바는 자신의 삶을 위해 인간적으로 가장 안전한 방법을 택하였다. 그것은 자기 부모에게로 돌아가 예전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택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삶에 어떤 변화도 없으며 그녀가 결혼하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만 있을 뿐이다. 반면 룻은 나오미와 함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으로 주신 땅으로 돌아가기로 택하였다. 그것은 룻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먼저 우리는 룻의 현실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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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룻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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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룻의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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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은 모압 여인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백성이 하나님께 대해 죄를 범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정죄받은 민족이라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때 모압 왕 발락이 발람을 고용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고자 한데서 기인한다. 발락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으므로 그 민족을 이길 수 없음을 알고 그 민족을 저주하고자 발람을 고용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인 모압을 유업으로 주지 않을 것이므로 그곳을 치지 말라고 명령하신터였다. 발람은 하나님으로부터 경고를 받아 그 민족을 저주할 수 없었다. 대신 발락 왕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치게 만드는 교묘한 술책을 가르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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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 2:14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몇 가지 있나니 이는 거기에 발람의 교리를 붙잡는 자들이 네게 있기 때문이로다. 그가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게 하고 우상들에게 희생물로 바친 것들을 먹게 하며 또 음행하게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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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람의 계획은 이스라엘과 친해지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그들을 초청하여 자기들의 우상들을 숭배하는 잔치에 높은 자리를 앉도록 허락하였고 또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스스로 우상에게 절하게 하고 음행하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로 인해 그 백성을 치게 만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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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 25:1-3 이스라엘이 시팀에 머무르며 백성이 모압의 딸들과 행음하기 시작하니라. 2 그들이 자기 신들에게 희생물을 드릴 때에 백성을 부르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니라. 3 이스라엘이 스스로 바알브올에게 연합하였으므로 {주}의 분노가 이스라엘을 향해 타오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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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계획은 유효했고 그로 인해 이만 사천 명이 죽임을 당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로 하여금 모압을 치게 허락하시고 발락 왕과 발람을 치게 하셨다. 그 뒤 주님은 모압 족속에 대해 다음같이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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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23:3-4 암몬 족속과 모압 족속은 {주}의 회중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은 심지어 십 대에 이르기까지 {주}의 회중에 영원히 들어오지 못하리라. 4 너희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그들이 빵과 물을 가지고 길에서 너희를 맞이하지 아니하고 메소포타미아의 브돌에서 브올의 아들 발람을 사서 너를 치고 저주하게 하려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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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압 족속은 하나님께 저주받은 민족이었다. 그 족속은 주의 회중에 들어오는 것을 주님은 영원히 금지하셨다. 그런데 룻은 모압 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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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룻의 역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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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은 이미 자기의 시아버지와 남편과 남편의 형제를 잃었다. 오르바와 함께 룻은 과부로 남았고 그 가족은 그들을 부양할 사람을 잃었고 미래에 대해 불확실한 것들만 남았을 뿐이었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을 잃었을 뿐 아니라 생계에 대해서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인간적인 계산으로 보았을 때 오르바가 택한 것과 같이 고향으로 돌아가 예전 삶으로 돌아가서 결혼할 다른 사람을 찾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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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 룻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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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돌아보심으로 그들에게 더 이상 기근이 없음을 들었다. 그것은 나오미에게 큰 소망이 되었다. 나오미는 하나님의 뜻 밖에 있을 때에 소망을 얻지 못하였으나 이제 그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소망을 얻은 것이다. 나오미와 함께 룻 역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더 알고자 하였다. 그것은 새로운 삶에 대한 도전이 될 것이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백성을 만나며 새로운 방식의 삶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말한다. 나오미가 처음 이스라엘로 다시 돌아가고자 했을 때 두 며느리인 오르바와 룻이 함께 일어나 그녀를 따르고자 했다는 점은 오르바와 룻 모두 새로운 삶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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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룻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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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룻의 소망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직면한 것은 “불확실한 미래”였다.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하나님을 믿는 나오미조차도 그녀의 두 며느리에게 함께 이스라엘로 돌아갈 것을 종용할 수 없었다. 사실 나오미는 그녀의 가족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그들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음을 알았다. 13절에서 나오미는 “주의 손이 나와서 나를 치셨으므로”라고 말한다. 여전히 나오미는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었다. 또한 자기에게 찾아온 불행으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녀는 자기 두 며느리를 보내려 하면서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친절히 대한 것 같이 주께서 너희를 친절히 대하시기를 원한다”고 말하였다. 오르바와 룻은 하나님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어떻게 대하시는지에 대해 많은 것들을 나오미에게 듣고 배웠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또 세상이 악해졌을 때 노아를 부르시고 그를 통하여 방주를 짓게 하셨던 이야기와 그 뒤 마찬가지로 세상이 하나님을 찾지 아니할 때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불러 그를 통하여 어떻게 이 민족을 인도하시고 가나안 땅으로들어오게 되었는지 오르바와 룻은 들었을 것이다. 그들은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주께로부터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오르바와 룻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시며 자신의 말씀대로 수행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체험적으로 보았다. 룻은 자기 남편을 잃으면서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사는 삶에 대해 어떻게 징계하시는지를 보았다. 또 그와 반대로 온전히 주님을 신뢰하였을 때 주님께서 어떻게 자신의 백성을 돌아보사 그들과 함께 하심을 소식으로 들었다. 룻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모압의 신들과 같지 아니함을 보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심을 전해 들었다. 그것은 룻에게 삶의 큰 도전이 앞에 있음을 의미한다.
 +
 +룻은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분의 은혜와 긍휼에 내 자신을 맡기고 그분께서 내 삶을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나오미와 함께 그녀가 전에 가본 적도 없는 곳으로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 가운데로 갈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인간적으로 가장 안전한 길을 택할 것인가? 그녀는 도전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로 하여금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께서 인도해 주실 것을 확신 가운데 믿음의 길을 선택하는데 오히려 방해의 말을 주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 말은 나오미의 입에서 나왔다. 나오미는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자기 두 며느리를 희생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오미는 두 가지 이유를 들어 그들로 하여금 고향으로 자기 부모에게로 다시 돌아갈 것을 권면했다. ​
 +
 +이와 같이 우리 모두는 여러 가지 삶의 도전 가운데 놓인다. 삶의 도전의 문제를 접할 때 여러분의 결정을 주도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분 자신의 지혜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인가?​ 크리스천들 역시 종종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여 선택하곤 한다. 나 역시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내가 믿음 가운데 걷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될 때 그렇지 아니했음을 발견하곤 한다. 우리는 자신의 지혜대로 걸은 것이다. 자신의 지혜로 인생을 살려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특징은 자기가 생각한 대로 인생이 풀리지 않을 때 불평이 나오곤 한다. 그러나 룻은 그런 류의 여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나 그것으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이 무언지를 보았다. 내게 닥친 일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가?​ 아니면 잘 풀리지 아니하는 인생으로 불평 가운데 있는가?
 +
 +=====III. 룻의 믿음=====
 +
 +룻은 자기가 직면한 도전에 대해 “믿음”으로 반응하였다. ​
 +
 +룻 1:16-17 룻이 이르되, 나보고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 강권하지 마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리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니이다. 만일 죽는 일 외에 어떤 다른 것이 나와 어머니를 갈라놓으면 {주}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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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의탁하기로 결심하였다. 차후 보아스는 룻에게 이렇게 말한다. ​
 +
 +룻 2:11-12 보아스가 그녀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뒤에 네가 네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또 네가 네 아버지와 어머니와 모국을 떠나서 지금까지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을 내가 분명히 보았느니라. 12 {주}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해 주시기를 원하며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날개 아래로 의지하러 온 네게 충분히 보상해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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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룻은 무엇을 두고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하였는가?​ 먼저 그녀는 새로운 장소에 대해 주님께 자신을 의탁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룻은 나오미가 어디로 가든지 그녀를 따르기로 결심하였다. 종종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사용하시는 방법은 우리를 새로운 곳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되고” 룻은 이전의 알던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을 알지 못하고 또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하나님의 백성인 그들 가운데 있기를 원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며 하나님의 돌봄의 대상이다. 룻은 그들 가운데 자신이 발견되기를 소망하였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은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해 듣고 체험적으로 배운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해 일부만 경험하였을 뿐이다. 그녀는 하나님을 더욱 알고 그분을 섬기며 또 그분의 백성이 되길 갈망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두고 그분의 백성이 되는 것은 그분의 말씀과 명령 가운데서 살아갈 것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인생에 대한 도전에 대해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주님, 이제는 내 자신의 지혜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주님의 말씀에 따라 걷는 삶을 살겠습니다.” 라고 결심하는 것과 같다. “어머니께서 죽는 곳에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니이다.” 룻은 자신의 삶의 모든 애정과 사랑을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가운데 둘 것을 말한다. 만일 여러분이 고향을 정말 그리워함에도 그곳에 가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죽을 때 자신을 그곳에 묻어달라고 요청할 것이다. 요셉은 죽어서도 이집트에 묻히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자신의 시신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한 그 땅에 묻기를 유언으로 청하였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룻이 온전히 자신을 주님께 의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룻이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의탁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믿음” 때문이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다. 그것은 내게 지금 주어지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것이 있다고 확신하는 것과 같다. 룻은 앞날에 대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주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을 온전히 의지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룻은 거기서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룻기를 통해 주님께서 룻의 믿음을 어떻게 보상하시는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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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날개 아래 의지하러 온 룻에 대해 충분히 보상하셨다. 그녀는 먼저 하나님의 백성으로 간주되었다. 보아스는 그녀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했을 뿐 아니라 그녀는 다윗 왕의 조상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그녀의 이름을 기록하셨다. 성경이 전파되는 어느 곳에서든지 우리는 룻의 이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결론=====
 +
 +주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지혜로 인생을 살 것을 원치 않으신다. 주님은 오히려 주님을 신뢰하고 모든 행로 가운데 그분을 인정하기를 원하신다. ​
 +
 +잠 3:5-7 ¶ 네 마음을 다하여 {주}를 신뢰하고 네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지어다. 6 네 모든 길에서 그분을 인정하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네 행로들을 지도하시리라. 7 ¶ 네 눈에 지혜롭게 되지 말지어다. {주}를 두려워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
 +여기서 “인정하라”는 acknowledge란 단어가 사용되었다. 그것은 내 모든 길에서 그분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것을 시인하라는 것이다. 여러분은 주님을 인지하고 그분을 발견하면서 걷고 있는가? 아니면 오직 자신의 지혜대로만 걷고 있는가? 여러분은 믿음이 있는가? 믿음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들에 대해 흔들리지 않고 굳건한 생각을 부여한다.
룻1.16-18.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