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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2.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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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2.8-13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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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5월 4일 주일오전설교==
  
 +======하나님의 축복의 충분한 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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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룻기 2장 8-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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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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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기는 비록 분량이 적은 책일지라도 영적으로 부족하지 않은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특히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가 상징적인 의미까지 갖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주실 때 역사의 하나님으로써 실제 역사를 기록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성경의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영적 유익 및 앞으로 있을 일들에 대한 것들을 보여주시려고 상징적인 요소들을 주셨다. 예를 들면 오늘 우리는 룻기 2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장 곳곳에 주어진 영적 유익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룻은 모압 출신의 이방여인으로 그녀의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모압에서 베들레헴까지 따라왔다. 1장을 보면 엘리멜렉은 자기 가족과 함께 이스라엘에 찾아온 기근을 피하고자 모압지방으로 내려간다. 엘리멜렉은 “하나님은 나의 왕”이란 뜻이다. 그런데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으로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와 광야에 있었을 때 모압 왕 발락의 사주와 대언자 발람의 계략으로 이스라엘 안에 우상숭배와 행음을 가져옴으로써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만들었던 민족이었다. 모압은 암몬과 함께 그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신 23:3에서 “암몬 족속과 모압 족속은 {주}의 회중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은 심지어 십 대에 이르기까지 {주}의 회중에 영원히 들어오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룻은 모압 출신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자기 가족과 자기 민족의 신들을 버리고 참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섬기고자 자기 시어머니 나오미가 고국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을 때 그녀를 따라 나왔다. 그 때 만류하는 나오미에게 하였던 룻의 말은 그녀가 어떤 믿음을 하나님께 가졌음을 보여준다. ​
 +
 +룻 1:16-17 룻이 이르되, 나보고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 강권하지 마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리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니이다. 만일 죽는 일 외에 어떤 다른 것이 나와 어머니를 갈라놓으면 {주}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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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날개아래 들어와 그분을 신뢰하려 하는 이 이방여인 룻을 축복하려 하신다. 룻은 이제 자기가 알던 고향과 다른 민족 안으로 들어와 그녀에게 낯설지 모르는 환경에서 자신의 인생을 보내려 한다. 그런데 그녀에게 주어지는 환경은 그녀를 축복 가운데로 이끄는 것을 우리가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거기서 보아스를 만나고 보아스를 통하여 다윗의 할아버지가 되는 “오벳”을 낳았고 하나님께서는 이 이방여인을 통하여 창세기 3장에서 약속하셨던 여인의 씨의 계보를 허락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 어떤 환경을 우리에게 허락하시기 앞서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환경이 오히려 우리에게 재앙이 될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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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나오미를 보자. 그녀는 자신의 남편과 두 아들을 모압에서 장사지내었으며 매우 가난한 상태로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마음은 하나님에 대해 비통한 마음이었다. 1장을 보면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괴롭게 하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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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 1:20-21 그녀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 부르라. [전능자]께서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느니라. 21 내가 풍족하게 나갔으나 {주}께서 나를 빈손으로 집에 다시 오게 하셨느니라. {주}께서 나를 대적하는 증거를 보이셨고 [전능자]께서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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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나오미가 2장에서 변화되는 과정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녀를 다루시고 변화시켜 가는지 역시 우리가 보게 될 것이다. 반면 시아버지와 자신의 남편을 잃은 룻은 나오미와 같지 않음을 볼 수 있다. 그녀는 참된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고자 하며 믿음으로 모든 것들을 이겨내고 있음을 발견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축복하기 앞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세 가지를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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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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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 2:1 나오미에게는 그녀의 남편 엘리멜렉의 가족에 속한 친족으로 부유하고 강력한 자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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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기 2장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은 “보아스”이다. 그는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 가족의 가까운 친족이었다. 가까운 친족이 의미하는 바는 그가 나오미의 가족을 “구속”(redeem)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레위기 25장을 보면 땅에 대한 법을 주님께서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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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 25:23-28 ¶ 땅을 영원히 팔 수 없나니 땅은 내 것이니라. 너희는 나그네요,​ 나와 함께 머무는 자니라. 24 너희 소유의 모든 땅에서 너희는 땅을 무르는 것을 허락할지니라. 25 ¶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자기 소유 중 얼마를 팔았는데 그의 친족 중 하나가 와서 그것을 무르려거든 그는 자기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 26 만일 그 사람에게 그것을 무를 사람이 없고 그 사람 자신이 그것을 무를 힘이 있거든 27 그는 그것을 판 햇수를 세어 자기가 그것을 판 사람에게 그 남은 값을 돌려주고 자기는 자기 소유로 돌아갈 것이니라. 28 그러나 그가 그것을 자기에게로 되돌릴 능력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이 이를 때까지 그것을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돌아가리니 그가 자기 소유로 돌아갈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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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각 지파에게 땅을 유업으로 주셨고 어떤 땅도 영원히 팔수 없게 하셨다. 그런데 땅을 팔고 사는 것 자체를 금하신 것은 아니고 땅을 사고 팔되 땅을 산 사람이 최대 희년이 될 때까지 소유할 수 있게 하셨다. 희년은 매 오십년마다 왔다. 희년이전에 다른 사람에게 판 땅을 다시 사오려면 즉 거래했던 것을 “무르려면” - 이것이 우리 성경에서 보는 용어이다. 영어로는 “redeem”이란 단어가 사용되었고 이 단어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구속” 즉 “값을 치르고 되사다”란 뜻을 갖는다. - 돈을 지불하고 사오거나 그가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의 가까운 친족에게 그 권리가 있었다. 엘리멜렉이 기근을 피하여 모압 땅으로 내려가기전에 거기서 거할 비용을 마련하고자 자기에게 유업으로 주어진 땅을 다른 사람에게 팔고 내려갔을 것이다. 그런데 잠깐 거한다는 것이 이미 십년이 지나버렸고 그 사이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두 아들들이 다 죽은 것이다. 이제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에게는 남편이 다른 사람에게 팔았던 땅을 되사고 싶어도 그럴 형편이 되지 못하였다. 또한 희년까지는 아직 많은 기간이 남아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보아스가 엘리멜렉에게서 가까운 친족이었으므로 그는 엘리멜렉이 판 땅을 되살수 있는 권리가 있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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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아스에 대해 성경은 “부유하고 강력한 자”라고 말한다. 엘리멜렉 가족은 기근을 피하고자 모압으로 내려갔지만 보아스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유업으로 주신 땅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기다렸고 주님은 그의 믿음을 축복하셨다. 오히려 내려간 엘리멜렉 가족은 가난하게 되었다. 그들은 어려운 시기가 찾아왔을 때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다. 베들레헴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은 기근에 멸망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셨음이 드러났다. 때로 우리는 어떤 잘못된 선택을 하면서 우리의 어려운 환경에 그 비난을 돌리곤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신의 백성을 힘주시고 축복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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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 2:2-3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밭에 가도록 허락하소서. 내가 누구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가며 곡식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녀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3 그녀가 가서 밭에 이르러 곡식 베는 자들을 따라가며 이삭을 줍다가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인 보아스에게 속한 밭의 일부를 만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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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온 룻은 자신이 가족을 부양해야할 책임이 있음을 알았다. 그녀는 단지 앉아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오길 기다리지 않았다. 많은 경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신뢰함 가운데 행동하는 자신의 백성을 축복하신다. 룻은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자 당시 땅을 소유하지 못한 가난한 백성이 할 수밖에 없는 이삭줍기를 자청하였을 뿐 아니라 그녀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녀는 믿음 가운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우연히 이르게 된 밭은 보아스에게 속한 밭의 일부였다. 룻은 아직 보아스를 만나본 적도 없고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주어진 환경이나 우리의 마음 가운데서 역사하심으로써 자신의 백성을 돌보신다. 그것은 때로 “우연히”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우연”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으로 모든 것이 그분의 계획 가운데 움직인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을 신뢰하러 온 자녀를 축복하시는지 보라. 룻의 믿음은 이미 그 지역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보아스는 룻을 아직 만나보지 않은 상태에서도 룻에 대한 칭찬을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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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 2:11-12 보아스가 그녀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뒤에 네가 네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또 네가 네 아버지와 어머니와 모국을 떠나서 지금까지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을 내가 분명히 보았느니라. 12 {주}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해 주시기를 원하며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날개 아래로 의지하러 온 네게 충분히 보상해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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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계획 가운데 없을 때에도 주님은 자신을 신뢰하는 자들을 선하게 인도하신다. 우리 가족이 전주에서 청주로 이사오면서 풀어야 할 숙제는 거처와 직장이 가장 큰 문제였다. 우리에게는 저축한 돈도 없었기 때문에 직장을 빠른 시일 내에 구해야 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한 사장님을 저와 만날 수 있도록 예비해주셨다. 처음 제가 지금 직장에서 섬기는 사장님과 면담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서로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를 발견하고 놀라워했던 기억이 아직도 머리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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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나이에 낯선 땅에 끌려와 우상숭배로 가득한 곳에서 평생을 살아야 했던 다니엘과 그 세 친구를 생각해보라.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환경에 굴하지 아니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고 그분만을 섬기기로 결심하고 믿음을 따라 걸었다. 그들은 우상에게 먼저 드려졌던 왕이 내려준 음식을 먹기보다 콩을 먹기를 선택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담당하던 내시의 마음을 움직여주셨다. 다니엘은 언제나 믿음 안에서 살았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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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보이지 아니하는 손길로 룻을 그녀가 가야할 곳으로 인도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장소에서 발견되게 하셨다. 주님은 우리의 생각 속에서 부담이나 강한 확신이나 혹은 영적 이끌림을 통해 역사하심으로써 우리가 축복을 받아야 할 장소에 머무르게 하실 수 있으시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살다가 후에 삶의 뒤를 돌아보게 될 때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곤 한다. 이제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하기에 필요한 두 번째 단계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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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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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 2:8-9 그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네가 듣지 아니하느냐?​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거나 여기를 떠나지 말며 여기에 내 소녀들 옆에 가까이 있으라. 9 또 그들이 거두는 밭에 눈을 두고 그들을 따라서 가라. 내가 청년들에게 명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청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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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절에서 처음으로 보아스는 룻을 보게 되고 처음 보는 여자에게 자연스럽게 관심을 표명하는 것을 본다. 그 때 그가 들은 말은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온 여인이며 또한 게으르지 아니하고 일에 열심인 여인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행한 행위들을 보라. 먼저 룻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던 법을 따라 이삭 줍는 일을 하고자 함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회복지의 개념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음의 법을 명령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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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 19:9-10 ¶ 너희가 너희 땅의 수확물을 거둘 때에 너는 네 밭의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수확물 중에서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10 네 포도원에 떨어진 포도를 줍지 말고 네 포도원의 포도를 다 따지 말며 가난한 사람과 나그네를 위하여 그것들을 남겨 둘지니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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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은 남의 밭에 들어가 이삭을 줍는 일을 시작하기 앞서 곡식 베는 자들을 감독하는 자에게 찾아가서 그에게 그 일을 청하는 일부터 시작하였다. 그녀가 얼마나 자신을 겸손함 가운데 두고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 감독하는 종은 보아스에게 룻에대해 좋은 보고를 하였다. 그것은 보아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8절에서 보아스가 직접적으로 룻에게 말을 하는 것을 본다. 여기서 은혜는 그것을 받을만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을 본다. 하나님께서 “내가 긍휼을 베풀 자에게 긍휼을 베풀고 내가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롬 9:15)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그것을 받기에 합당한 자들에게 주어진다. 룻은 그것을 받기에 합당한 여인임을 보아스의 말에 대한 룻의 대답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에 그녀가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타국인이온데 어찌하여 당신의 눈에 은혜를 입게 하시며 나를 알아주시나이까?​ 하매” 룻은 자기가 이런 대접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지 않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은혜를 당연시하며 감사할 줄 모르는가?​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은 그에게 주어진 은혜를 인지하지 못하는데서 온다. 그것을 당연시 여기는 것이다. 감사에 인색한 사람은 불평을 잘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보아스가 룻에게 무엇을 명하는지 보라.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무는 비결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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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딸아” 보아스는 룻을 “내 딸”이라 불렀다. 그것은 보아스와 룻과의 나이차이로 인한 것이다. 그러나 또 한가지는 보아스가 룻을 자신의 가족처럼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아스가 룻에게 보여주는 친절은 마치 다윗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삼하 9:10)을 자신의 식탁에 같이 참여하게 하여준 것과 같다. “네가 듣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경청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들을 통하여 역사하시곤 하신다.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거나 여기를 떠나지 말며”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그분의 은혜를 발견하였다면 거기에 머무르는 것이 합당하다. 때로 그곳에서 시련이나 어려움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 다시 여러분을 인도하기까지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곳에서 스스로 움직이려 하지 말라. 우리가 움직이기에 앞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확실히 보이는지 확인하라. “여기에 내 소녀들 옆에 가까이 있으라.” 보아스는 룻에게 그녀가 함께할 동료들을 제공하고 있다. 신앙의 동료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매우 크다. “또한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주]를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 2:22) “또 그들이 거두는 밭에 눈을 두고 그들을 따라서 가라.” 그들이 앞서가서 그녀가 가야할 길을 만들어 놓음으로써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님을 앞서 섬기는 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것이 유익이 된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도 나를 따르는 자가 되라.”(고전 11:1)라고 말하였다. “내가 청년들에게 명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보아스의 밭에 룻이 머무는 동안 그녀는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올바른 장소에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호하신다.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청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보아스의 밭에 있는 동안 룻은 목마를 때에 마실 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즉 그녀는 갈증에서 새롭게 될 수 있다. 우리가 올바른 장소에 있을 때 주님은 삶의 여러가지 것들로 낙심하거나 피곤해 있는 우리를 새롭게 하실 수 있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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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 2:10-13 이에 그녀가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타국인이온데 어찌하여 당신의 눈에 은혜를 입게 하시며 나를 알아주시나이까?​ 하매 11 보아스가 그녀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뒤에 네가 네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또 네가 네 아버지와 어머니와 모국을 떠나서 지금까지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을 내가 분명히 보았느니라. 12 {주}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해 주시기를 원하며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날개 아래로 의지하러 온 네게 충분히 보상해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거늘 13 그때에 그녀가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의 눈앞에서 호의를 얻기 원하나이다. 내가 당신의 여종들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나를 위로하시고 당신의 여종에게 친절히 말씀하셨나이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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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은 “내가 지금까지 쉬지 않고 일하는 것에 대한 댓가다.” 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이 과분함을 알고 있다. 그녀의 겸손함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축복하시는지 보라.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가 그것에 합당하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축복하신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주시길 원하신다. 그렇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으로 옷 입는 것이다. 룻은 자신을 보아스의 여종들의 하나보다 못한 자라 여겼다. 그런데 룻이 차후에 누구의 아내가 되었는가?​ 룻은 자신에게 주어진 친절을 감사함으로 받을 줄 아는 여인이었다. 또한 우리는 어디서도 룻의 불평을 보지 못한다. 룻은 “왜 나에게 이런 어려운 일들이 주어졌는가?​”라고 묻고 있지 아니한다. 오히려 룻은 자기에게 주어진 작은 친절에도 그것이 합당치 아니한 자에게 베풀어졌음을 말하고 있다. “나는 타국인이온데” 특히 룻은 타국여인이었으며 그것도 “모압여인”이었다. 그것은 민족적 배경을 안다면 절대 사랑받지 못할 민족에 속한 여인이었다. 룻은 이방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교회로 불림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상징이다. 여기서 룻을 구속하는 보아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이다. 보아스는 여기서 추수의 주인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룻에게 친절하게 대할 뿐 아니라 그녀를 차후에 아내로 맞이한다. 보아스가 여기서 룻의 믿음에 대해 어떻게 격려하고 있는지 보라.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날개 아래로 의지하러 온 네게 충분히 보상해 주시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마음이기도 하다. 주님은 우리에게 충분한 보상을 주시길 원하신다. “너희 자신을 살필지니 이로써 우리가 이룬 그것들을 우리가 잃지 아니하고 충분한 보상을 받으리라.”(요이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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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 2:14-17 보아스가 그녀에게 이르되, 식사할 때에 너는 이리로 와서 빵을 먹으며 네 빵 조각을 식초에 찍으라, 하니 그녀가 곡식 베는 자들 옆에 앉으매 그가 그녀에게 볶은 곡식을 건네주니 그녀가 배불리 먹고 남겼더라. 15 그녀가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청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녀가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그녀를 책망하지 말라. 16 또 그녀를 위해 손에 쥔 것에서 의도적으로 얼마를 떨어뜨리고 그것들을 남겨 두어 그녀가 줍게 하며 그녀를 꾸짖지 말라, 하니라. 17 이처럼 그녀가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자기가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일 에바쯤 되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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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아스는 자신이 먹는 상에 룻이 함께 할 것을 청하고 있다. 이것은 유대인인 남성이 이방여인인 룻에게 최대의 호의를 보여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아무 것도 아닌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가족이 되게 하시고 그분의 식탁에 함께 하는 자가 되게 하셨다. “그녀가 배불리 먹고 남겼더라.” 여기서 보아스가 얼마나 룻을 돌보고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배불리 먹고”는 영어로 “ate and sufficed”로 되어 있다. 직역하면 “먹고 만족하였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혼을 만족케 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만족하게 하신다.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소망과 바램 안에서, 평안과 판단 안에서, 생각과 기억 안에서 우리에게 만족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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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36:7-9 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뛰어나신지요! 그런즉 사람들의 자녀들이 주의 날개 그늘 밑에서 주를 신뢰하나이다. 8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기름진 것으로 넘치도록 만족할 것이요, 주께서 그들로 하여금 주의 기쁨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9 생명의 샘이 주께 있으므로 우리가 주의 빛 안에서 빛을 보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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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아스의 친절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법에서 규정한 것 이상으로 나아가 친절을 베풀고 있다. 그는 청년들에게 의도적으로 얼마를 떨어뜨려 룻으로 하여금 더 많이 이삭을 줍게 하였을 뿐 아니라 곡식단 사이에서 줍게 하였다. 보아스가 얼마나 룻을 사려깊게 대하고 있음을 생각해보라.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게 하였을 경우 룻이 무안해할 것을 염려하여 그냥 자연스럽게 룻이 많이 주을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녀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은 양은 보리가 일 에바 정도가 되었다. 일 에바는 약 모녀가 일주일 가량을 먹을 수 있는 양 정도가 된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삭을 줍는 영적 교훈을 배울 수 있다.
 +
 +룻은 열심히 일하였다. 축복은 부지런한 자들에게 주어진다. 말씀의 축복도 그러하다. 말씀의 축복은 많은 묵상을 요구한다.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계획대로 걷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조롱하는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2 그는 {주}의 율법을 기뻐하며 그분의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하는도다.”(시 1:1-2) 룻은 이삭을 주을 때마다 몸을 구부려야 했다. 우리가 말씀의 유익을 얻으려면 마찬가지로 몸을 구부려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주님은 교만한 자들을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룻은 한 번에 하나씩 이삭을 주을 수 있었다. 영적인 말씀의 축복은 하나씩 주어진다. 주님은 만나를 일주일분량으로 내리지 않으셨다. 오늘의 만나는 오늘의 양을 위한 것이다. 룻은 주운 이삭을 손으로 꼭 잡고 있어 놓치지 않아야 했다. 마찬가지로 영적 유익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마음에 두었을 때 오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땅에 있는 것은 말씀을 듣고 정직하고 선한 마음속에 그것을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내는 자들이니라.”(눅 8:15) 룻은 주은 이삭을 먹기 위해서 반드시 타작 과정을 거쳐야 했다. 말씀의 유익을 얻기 위해서는 “묵상”이라는 타작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유익을 얻게 된다. 룻은 자신이 주은 이삭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았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고 영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말씀의 유익을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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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우리는 소망 가운데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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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 2:18-22 ¶ 룻이 그것을 가지고 도시로 들어가 자기 시어머니에게 자기가 주운 것을 보이고 자기가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가져다가 시어머니에게 드리매 19 그녀의 시어머니가 그녀에게 이르되, 네가 오늘 어디에서 주웠느냐?​ 어디에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알아준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녀가 자기가 누구와 함께 일했는지 자기 시어머니에게 알리고 이르되, 오늘 나와 함께 일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이니이다,​ 하매 20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주}께서 그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산 자와 죽은 자에게 친절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도다,​ 하고 나오미가 또 그녀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의 가까운 친척이요,​ 우리의 가까운 친족 중 하나이니라,​ 하니라. 21 모압 여인 룻이 이르되, 그가 또 내게 말하기를,​ 내 청년들이 내 모든 수확물을 거둘 때까지 너는 그들 옆에 바싹 붙어 있으라, 하더이다,​ 하매 22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네가 그의 소녀들과 함께 나감으로써 그들이 다른 밭에서 너를 만나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 좋으니라,​ 하니 23 이에 그녀가 보아스의 소녀들 옆에 바싹 붙어 있으며 보리 수확과 밀 수확을 끝마칠 때까지 이삭을 줍고 자기 시어머니와 함께 거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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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은 먹고 남은 것들을 그냥 버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보아스가 제공한 것들을 만족하게 먹고 남은 것들을 시어머니에게 드렸다. 주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셨을 때에도 제자들은 배불리 먹고 남은 것들을 바구니에 담아두었다. 우리는 이 구절에서 룻이 얼마나 큰 기쁨 가운데 집으로 왔을지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나오미”에게서 발견된다. 나오미는 하나님의 허락하신 유업의 땅으로 돌아왔을 때 자신을 “마라” 즉 쓰라림으로 불렀다. 룻이 이삭을 주으러 나가겠다고 했을 때에도 그녀의 반응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룻이 축복과 함께 왔을 때 나오미는 그 사람을 먼저 축복한다. 그런데 그녀를 변화하게 만든 것은 룻이 누구에게서 축복을 받았는지를 알았을 때였다. 룻이 그 사람의 이름이 “보아스”였다고 하였을 때 나오미는 “주께서 그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라고 하였을 뿐 아니라 보아스가 그들의 가까운 친족 중 하나임을 언급하였다. 나오미는 지금까지 룻이 “우연히”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필요한 곳으로 인도함 받았음을 깨달았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소망이 남아있음을 보았다. 그것은 보아스가 자기들의 유업의 땅을 다시 되사올 수 있는 기회가 있음을 본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있으려면 보아스는 반드시 룻을 자기 아내로 맞이해야 가능하다. 그것은 엘리멜렉이 이미 죽어 없기 때문이다. 3장으로 가면 나오미가 이제 그 일을 위해 소망 가운데 룻에게 어떻게 해야 할 지를 가르쳐주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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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 3:1-5 그때에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녀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해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네가 잘되게 하여야 하지 아니하겠느냐?​ 2 너와 함께하던 소녀들을 둔 보아스는 이제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마당에서 보리를 까부르리라. 3 그런즉 너는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마당으로 내려가되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할 때까지 그에게 네 자신을 알리지 말며 4 그가 누울 때에 눕는 곳을 알아두었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을 드러내고 누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그가 네게 고하리라,​ 하니 5 그녀가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것을 내가 행하리이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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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우리는 룻과 나오미가 소망 가운데 걷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룻이 삶 가운데 역사하여 그들에게 어떻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시는 것을 봄으로써 이제 소망 가운데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 지를 주 안에서 확신하며 걷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나오미가 이런 확신을 갖게 된 것은 무엇으로 인한 것인가? 그것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한 것이다. 나오미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주신 말씀의 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보아스”란 이름을 들었을 때 “우리의 가까운 친족”이라고 말할 때에는 단순히 가까운 친족이 아니라 주님께서 자신의 말씀에서 명령하신 대로 상속유업으로 주신 땅을 되사올 뿐 아니라 자녀가 없이 이름이 사라지게될 위험에 처한 가족을 다시 세우는 일에 관여할 수 있는 사람임을 말하고 있다. 4장에서 우리는 보아스가 그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 룻을 아내로 맞이함으로써 신 25장에서 명령하신 바를 수행하는 것을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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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25:5-10 ¶ 형제들이 함께 거하는데 그들 중 한 명이 죽고 아이가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밖에서 남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녀의 남편의 형제가 그녀에게로 들어가 그녀를 아내로 취해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녀에게 행할 것이며 6 이로써 그녀가 낳는 맏아들이 죽은 그의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7 그러나 그 사람이 자기 형제의 아내 취하는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거든 그의 형제의 아내는 성문으로,​ 장로들에게로 올라가 말하기를,​ 내 남편의 형제가 이스라엘 안에서 자기 형제에게 이름을 일으켜 주기를 거부하여 내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행하려 하지 아니하나이다,​ 할 것이요, 8 그의 도시의 장로들은 그를 불러서 그에게 말할 것이며 만일 그가 그 일을 고집하며 말하기를,​ 그녀를 취하는 것을 내가 좋아하지 아니하노라,​ 하거든 9 그의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의 앞에서 그에게 다가가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응답하여 이르기를,​ 자기 형제의 집을 세우려 하지 아니하는 그 사람에게는 이같이 하리라, 할 것이며 10 이스라엘 안에서 그의 이름을 자기 신이 벗겨진 자의 집이라 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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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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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날개 아래 의지하러온 우리에게 충분한 보상을 주시기 원하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 안에서 사는 것과 그분의 은혜 안에 머무르는 것과 소망 가운데 걷는 것이 필요하다.
룻2.8-13.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