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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1.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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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1.16-19 [2018-03-18 15:30]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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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3월 11일 주일오전설교==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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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말씀: 마태복음 11: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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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11:16-19 ¶ 그러나 내가 이 세대를 어디에 비유할까?​ 그것은 마치 장터에 앉아 자기 동무들을 부르며 17 이르기를,​ 우리가 너희를 향해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아니하였고 우리가 너희를 향해 애곡하여도 너희가 애통하지 아니하였다,​ 하는 아이들과 같도다. 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그가 마귀 들렸다, 하더니 19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매 그들이 말하기를,​ 보라, 음식을 탐하는 자요, 포도즙을 많이 마시는 자요,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로다,​ 하는도다. 그러나 지혜는 자기 자녀들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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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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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으로 미투(me too)운동이 한창이다. “나도 당했다”는 게 그 요지인데 성희롱이나 성폭력과 관련한 여성들의 과거의 피해 사실을 고발하는 운동이다. 이 미투 운동으로 사회가 좀 더 깨끗해지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운동 뒤에는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이나 단체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것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변질될 우려는 언제든지 있다. 뿐만 아니라 익명으로 제보되는 많은 정보들을 제대로 거르지 않고 행해지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므로,​ 미투 운동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익명성의 조작된 거짓 정보들이 넘쳐나고 있다. 미투 운동의 문제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시한다는데 있다. 죄로 인식되는 성폭력이나 심각할 정도의 성희롱은 당연히 조사되고 그에 따른 벌을 받아야 마땅하나 마녀사냥식으로 거론되는 여론몰이는 원치 않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원수들에게서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라 불렸다. 그런데 주님은 그렇게 불리는 것을 싫어하지 않으신 것처럼 보인다. 주님은 그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 오셨기 때문이다. 주님을 인지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였는지를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그들 중 많은 자들이 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그분의 도움을 절실히 구하였다. 베드로는 주님 앞에서 엎드려져서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가 많은 자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였듯이 많은 자들이 그분에게서 죄들의 용서와 그분의 능력을 청하였다. 그럴 때마다 주님은 언제나 한결같으셨다. 주님은 언제나 그들 편이셨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다.
 +
 +여러분이 갑작스럽게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하였다고 생각해보라. 그 때 여러분이 도움을 청할 사람으로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여러분의 친구들일 것이다. 친구란 우리에게서 어떤 존재이며 어떤 관계에 있는 사람들인가?​ 성경은 친구에 대해 무어라 말하고 있을까? 오늘 그 점을 같이 살펴보고자 한다. ​
 +
 +여러분 중에 개를 키워본 적이 있거나 개를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동물 중 가장 사람과 친근한 동물이 개라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개는 여러분이 어떤 피부색을 갖고 있든지 혹은 잘생겼든지 혹은 그렇지못하든지 여러분이 남자이든 여자이든 아이이든 어른이든 상관하지 않으며 또한 여러분의 직장도 상관없이 언제나 자기의 주인을 사랑하려하는 동물이다. 여러분이 집에 개가 있고 또 부자가 되어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고 치자. 그 친구들은 여러분에게 매우 친근하게 붙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사고가 생겨 많은 돈을 잃었다고 한다면 그 친구들은 여전히 여러분을 친구로 대하고 있을지는 미지수일 것이다. 그럼에도 언제나 한결같은 것은 오히려 개가 그러할 것이다. 개는 언제나 한결같이 주인을 대하고 사랑하려 하며 주인의 근처에 있고 싶어한다. 우리에게 그런 친구들이 있다면 그것은 많은 것을 얻은 것과 같다.
 +
 +성경에도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어떤 사람을 친구로 두는 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다윗의 아들이었던 암논은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인 요나답을 친구로 두었었는데 암논은 그의 말대로 행함으로써 결국 자신의 생명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얻었다.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는 다니엘을 친구로 둠으로써 그들의 인생에서 매우 값진 것들을 얻었다. 오직 이 네 사람만이 왕이 내려주는 우상숭배에 사용되었을 음식을 먹지 아니하고 콩과 물만으로 먹으면서도 믿음으로 건강을 얻었고 불확실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 올린 자들이 되었다. ​
 +
 +요셉 에디슨(1672-1719)은 “인간의 삶 중에서 가장 달콤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정이다. 우정을 가장 즐거움의 가장 고귀한 정도까지 끌어올리는 것은 매우 적은 사람들만이 찾아낸 비밀에 속한다.”라고 하였다. 기원전에 살았던 아리스토(384-322 B.C.) 그리스 철학가는 “친구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단일한 혼이 서로 다른 육체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응답하였다고 한다. 그 만큼 올바른 친구를 두는 것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선택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친구들을 두기도 하고 잃어버리기도 한다. 우리는 어떤 이유로 누군가가 내 친구라는 생각을 가지며 또는 누군가가 내 친구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가?​ 그 기준은 무엇에 달려 있는가? 어떤 사람은 필요한 때에 돈을 빌릴 수 있다면 친구로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필요한 때에 돈을 빌려주지 아니한 친구에 대한 서운함을 가지기 전에 모든 친구가 돈을 빌려줄 만큼 여유가 있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돈이 친구의 기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라 불리셨을 때 그분께서 돈이 많아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다. 주님은 머리 둘 곳조차 없으신 가난한 분이셨다. ​
 +
 +주님은 세리들과 죄인들을 이해하셨던 분이셨다. 그렇다고 그들과 타협하시거나 그들의 죄들을 그냥 덮으며 묵과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이해와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가까이 가셨고 그들이 기꺼이 자신들의 잘못들을 인정하였을 때 그들을 용서하시며 그들이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도록 도우시며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던 여인을 생각해보라. 주님은 그녀를 정죄하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그 여인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여인은 스스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였고 그 처벌 받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긴 상황이었다. 주님은 그 여인의 죄를 용서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선적으로 보도록 이끄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사실 그 여인은 바리새인들이 주님을 고소하기 위해 마련한 계략의 희생양이었다. 그들이 간음하는 현장에서 여인을 잡았다고 하는데 남자는 어디있는가?​ 그들은 왜 여자만 데려왔는가?​ 사람은 죄를 범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며 그렇기 때문에 용서가 필요하다. 사마리아의 야곱의 우물가에서 만났던 여인을 생각해보라. 그녀 역시 도덕적으로 깨끗한 여인은 아니었다. 주님께서 “가서 네 남편을 데리고 오라”고 하였을 때 그 여인은 “내게는 남편이 없나이다.”라고 하였다. 그녀와 동거하는 현재의 남자도 사실은 그녀의 남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녀의 죄들을 정죄하셨던가?​ 아니다. 주님은 그녀 스스로 자신의 죄를 바라보도록 이끄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여셨다.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때 비로소 자신의 죄들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님은 죄인들의 친구가 되시고자 오셨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진정한 친구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우리는 주님의 삶을 통해 그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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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진정한 친구는 희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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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15:13-15 아무에게도 자기 친구들을 위해 자기 생명을 내놓는 것, 이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나니 14 무엇이든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너희가 행하면 너희가 나의 친구니라. 15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자기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오히려 내가 너희를 친구라 하였나니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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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친구들을 위해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도록 자신의 생명을 내놓으셨다. 그것은 자신의 친구들을 죄들에서 건지시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심지어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였을 때에 주님은 그분의 미리 아심을 통해 우리를 이미 친구로 부르셨다. 우리는 친구에게 무언가의 희생을 요구할 수 없다. 하지만 친구는 자신이 아끼는 친구를 위해 무언가를 희생할 줄 안다. 우리는 누군가를 친구로 삼기위해 많은 것들을 희생하지 않는가? 친구를 만나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린다하여도 희생하며 또 같이 교제할 때 사용하는 돈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지위나 혹은 무언가를 얻고자 의도적으로 친구를 만들려 한다. 하지만 진정한 친구는 자신이 친구라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얻으려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친구는 희생할 줄 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심으로써 죄인들의 친구가 되심을 스스로 입증하셨다. 의로우신 분께서 불의하신 자들을 대신하여 죄인의 자리에 서셔서 죽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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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에서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요나단은 자신의 아버지 사울 왕을 대신해서 왕위에 올라갈 차기 일 순위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고 그에게 이스라엘 왕국을 주려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사울 왕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시기로 움직이거나 혹은 욕망이 앞서지 않았다. 오히려 요나단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며 그의 최고의 친구로서 그를 위해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들을 희생하기로 정하였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자신의 옷과 병기를 주었을 뿐 아니라 남자들이라면 가장 바랄만한 왕위를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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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진정한 친구는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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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 17:17 친구는 언제나 사랑하며 형제는 어려운 때를 위하여 태어났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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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과 요나단의 경우에서 보듯이 진정한 친구는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을 한다. 또한 그 사랑은 시들지 않으며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이것이 우리 주님께서 죄인들을 대하실 때의 태도이며 그렇기에 죄인들의 친구로 불리신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그들을 이해하기는 커녕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져서 그들을 비난하기 앞서나 주님은 그들에게 다가가셨고 그들이 왜 그러할 수밖에 없는 자들인지를 이해하셨다. 한 번은 한 사람이 예수님의 명성을 들었는데 그분이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지나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사람은 주님을 보고자 하되 무리가 많을 뿐 아니라 키가 작아 그분을 볼 수 없기에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서 그분을 보았다. 주님은 그 삭개오를 바라보시고 그에게 “오늘 내가 반드시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노라.”고 하셨다. 그 때 삭개오는 매우 기쁘게 내려와 그분을 자신의 집에 모시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그가 죄인인 사람의 손님이 되려고 들어갔도다.” 하였으나 예수님의 사랑은 삭개오로 하여금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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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된 우정 즉 친구의 사랑은 그들 사이의 문제나 혹은 오해나 거친 말들에도 시들지 아니한다. 자신의 제자들을 친구로 삼으신 예수님께서 바로 이런 종류의 사랑을 가지고 제자들을 대하셨다. 예레미야 31:3에서 “영원한 사랑을 가지고 사랑”하신다고 하신 하나님처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심지어 그분을 버리시고 떠나시던 그 날 밤에도 그들을 사랑하셨으며 고기나 잡아야겠다는 베드로를 따라간 제자들이 고기를 잡고 있던 디베랴 바닷가로 가셔서 그들을 만나시고 그들을 회복하여 다시 주님을 섬기도록 이끄셨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너는 왜 나를 세 번 부인하였느냐고 묻지 않으셨다. 우리는 이 부분이 잘 되지 않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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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버트 인그램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가 자기 아내와 함께 처음으로 스키를 배울 기회를 가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박삼일로 길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스키를 타는지를 배우고 싶어했다. 리조트에 도착한 인그램은 그곳에서 약 240킬로 떨어진 곳에 사는 친구들에게 전화하기로 결정하였다. 전화로 그들이 친구들에게 자기들이 리조트에 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자 친구들은 “여기로 와서 만나는 건 어떠냐? 세 시간만 운전하면 되잖아”라고 하였다. 인그램은 만일 그렇게 하면 스키를 배울 시간 중 하루를 잃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깊이 생각하지 않고 친구들한테,​ “아니, 너흰 여섯 시간 투자할 친구가 아닌 거 같어.”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조금 후에 친구들이 전화를 해서 말하기를 베이비시터를 고용하고 차를 준비해서 그곳으로 가서 다음날 저녁 때에 저녁을 같이 먹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인그램은 친구들이 전화로 “넌 우리한테 여섯 시간 투자할만한 친구들이야”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부끄러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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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란 자신의 친구와 교제할 만큼 희생을 줄 줄 알며 즐거움을 줄만큼 사랑하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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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진정한 친구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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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 18:24 여러 친구를 두는 자는 반드시 자신을 다정한 자로 보여야 하나니 형제보다 더 친밀한 친구도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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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친구라 부르는 모든 사람이 다 진정한 친구는 아닐 것이다. 서로에게 친절하나 때가 되면 우리를 버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은 친구라 생각했던 사람이 우리를 배신할 때일 것이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친구로 대하셨으나 그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은 삼십냥에 팔아넘겼다. 진정한 친구라면 역경의 날이나 혹은 재물이나 명성이 무너진 날에도 자신의 친구를 버리지도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친구이시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의 편이시다. 때로 살같은 부부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나 주님은 언제나 자신의 친구들을 위하시며 성령을 통해 우리를 위로하시고 인도하시고 지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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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은 우리에게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피 우는 자들과 함께 슬피 울라.”(롬 12:​15)라는 명령을 주고 있는데 우리가 이 일을 기쁨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우리의 친구들이다. 때로 여러 말보다 같은 심정을 품어주는 것이 더 강렬할 때가 있다. 주님은 성령을 통해 기도하시며 또한 우리를 위하여 말로 할 수 없는 신음으로 중보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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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과 요나단은 서로 친구가 된 이후로 서로에 대해 진실하였다.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고자 하였을 때 요나단은 왕에게 나아가 다윗을 위하여 좋은 말들을 해주어 관계를 회복하게 하려고 애를 썼을 뿐 아니라 다윗을 위해 죽기를 피하지 아니하였다. 사울 왕이 다윗을 찾아 죽이려 하므로 다윗이 광야에서 이곳저곳으로 피할 때에도 요나단은 다윗을 찾아 와서 “하나님 안에서 그의 손을 강하게”(삼상 23:16)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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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이 인생의 여정을 다 마치기까지 주님은 우리의 친구가 되어주실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아니할 것이라 약속하셨다(히 13:5). 주님은 그 약속을 위해 우리에게 위로자 성령님을 보내주셨으며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며 또 고난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아니하도록 우리를 붙드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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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14:16-18 내가 [아버지]께 구할 터인즉 그분께서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사 그분께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거하게 하시리니 17 곧 진리의 [영]이시라. 세상은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나니 이는 세상이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분을 아나니 이는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거하시며 또 너희 속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라. 18 내가 너희를 위로 없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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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역성경에서 “보혜사”로 번역되어 있고 흠정역 성경에서는 “위로자”로 번역된 단어는 “파라클레톤”이란 그리스어이다. 이 단어는 “곁에서 돕는 자”란 뜻이다. “다른”은 “같은 종류의 다른 것”이란 뜻으로 주님께서 “다른 위로자”를 보내시겠다고 하신 것은 제자들에게 있어 예수님께서 그들의 위로자로서의 사역을 지금까지 해오셨음을 말한다. 주님은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가야 할 길을 인도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시고 위로하시고 힘을 주셨다. 이제 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이 세상을 떠나야 할 때가 되었으므로 그분께서 하셨던 동일한 사역을 이어서 지속할 다른 위로자가 필요하며 또 그 일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져야 하므로 그분의 영이신 성령님을 보내주심으로 그 약속을 성취하셨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다른 위로자” 즉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한 종류의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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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시간에 살던 미첼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미첼은 16살에 암이 발견되어 여러 달 동안 화학요법을 받아야 했다. 화학요법은 암세포를 죽이나 다른 정상세포 역시 같이 죽으므로 몸을 매우 상하게 하는 치료법인데 미첼은 치료를 받으러 갈 때마다 두렵고 걱정이 앞서 있었다. 그 때마다 그의 가장 친한 고등학교 친구가 그녀와 함께 동행했다. 미첼은 회고하기를 “치료를 마치고나면 심신이 매우 지쳐서 그냥 누워만 있게 됩니다.” “하지만 내 친구가 내손을 잡고 ‘너는 해낼 수 있어. 미첼, 넌 분명히 해낼거야’라고 부드럽게 반복해서 말해주곤 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밖에서 공을 차거나 쇼핑을 하거나 숙제를 할터인데 미첼의 친구는 친구로서 가장 최선의 일을 하였으며 그것도 변함없이 행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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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35:14 그가 마치 내 친구나 형제인 것처럼 내가 행동하였으며 내가 크게 몸을 굽히고 애곡하기를 자기 어머니로 인해 애곡하는 자같이 하였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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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V. 진정한 친구는 받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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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11:19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매 그들이 말하기를,​ 보라, 음식을 탐하는 자요, 포도즙을 많이 마시는 자요,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로다,​ 하는도다. 그러나 지혜는 자기 자녀들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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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거룩한 분이라고 여기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불쾌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가하고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주님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도 자신의 시간을 쓰시며 사랑하시며 그들이 회복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사용하신 분이셨다. 주님은 그들을 받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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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된 친구는 자신의 친구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준다. 우리의 모난 것이나 부족한 것이나 성품에서 결이 있어도 다 용납할 줄 안다.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것이 주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이며 주님은 죄인들을 그대로 받아주신다. 우리가 구원받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 것은 바로 그분께서 우리를 그대로 받아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디게 변화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모되기를 너무 더디하지만 주님은 우리를 재촉하지도 않으시며 기다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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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자신의 자녀들이자 친구들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따라 걷기를 원하시며 그분의 은혜 안에서 살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넘어지며 실패한다. 우리가 실패할 때마다 주님께서 우리를 버리실 것이란 생각을 버리라. 주님은 우리의 진정한 친구이시며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으신 분이시다. 주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돌보시며 우리가 회복하도록 이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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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야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변하기를 원하여 갈멜산에서 바알 대언자 사백명과 대결하였으나 그 뒤에도 이스라엘은 변하지 않았으며 또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회심하지 아니한 채 그를 죽이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거의 망연자실한 상태로 도망하였다. 그가 나무 밑에 누워 죽기를 청하였을 때 주님은 그를 책망하지 아니하시고 부드럽게 말씀하시며 또 그를 어루만지시고 먹을 것을 주시며 회복하도록 이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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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주님께 받아들여진 자들이며 이것이 에베소서 1장에서 말하는 바이다. 우리는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들여진 자들이다. 우리 자신을 볼 때 여전히 죄를 범하고 더러운 자들이나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적합하며 합당하다고 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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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 진정한 친구는 바로 잡음을 제공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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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 27:6 친구가 주는 상처는 믿음직하나 원수의 입맞춤은 속임수가 가득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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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실수하였을 때에 와서 얼굴을 맞대고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는 친구는 거의 없다. 그러나 진정한 친구라면 와서 사랑 가운데 우리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는 자들이다. 참된 친구라면 자신의 친구가 잘못된 길로 악한 길로 계속 가는 것을 원치 아니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은 물론 감정을 상하게 할 수는 있다. 진정한 친구는 자신의 친구를 사랑으로 얻기를 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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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이 밧세바로 인하여 간음이라는 죄를 범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나단” 대언자를 사용하여 그의 죄를 지적하도록 이끄셨다. 다윗은 나단 대언자의 책망을 듣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였으며 나단 대언자는 그 뒤로도 계속 다윗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음을 본다. 비록 책망을 들을 때에 다윗은 괴로웠을 터이나 그는 친구의 책망을 거절하지 아니하였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의 잘못을 바로잡으시는 친구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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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 27:17 쇠가 쇠를 예리하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자기 친구의 얼굴을 예리하게 하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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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 진정한 친구는 용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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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사는 대인관계의 연속이라 말할 수 있다. 어떤 친구관계일지라도 그 안에는 감정이 상하고 기분이 나빠질 수 있는 때가 필연적으로 올 것이다. 그럴 때 나를 용서하고 나의 잘못을 잊어버릴 줄 아는 친구를 둔 사람은 복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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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 16:28 비뚤어진 자는 다툼을 뿌리며 수군거리는 자는 중요한 친구들을 갈라놓느니라.**\\
 +**잠 17:9 범법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거니와 문제를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친구들을 갈라놓느니라.**
 +
 +이것은 역시 우리가 친구를 얼마나 소중히 대하는지에 대한 자신을 돌이켜 볼만한 일이다. 진정한 친구는 마음이 상하고 상처를 받았을지라도 그것을 화평과 연합의 정신 아래 묻어두려 할 것이다. 만일 누군가 용서하기를 거부한다면 그는 사실 친구라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미움과 증오의 영을 소유하게 된다면 자신과 다른 사람을 분명 파괴할 것이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친구로 여기시고 우리의 죄들을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옮기셨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우리의 죄가 산더미 같을지라도 얼마나 종종 우리가 죄를 많이 지을지라도 죄가 얼마나 더러운 것일지라도 우리가 주 예수님께 돌이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면 주님은 언제나 회개하는 심령을 받아주시고 우리를 용서하신다. 우리는 하늘에 매우 놀라운 친구를 두고 있다.
 +
 +=====VII. 진정한 친구는 서로에게 열려있다.=====
 +
 +**요 15:15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자기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오히려 내가 너희를 친구라 하였나니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라.**
 +
 +우리가 아주 깊은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어떤 말을 했을 때 그것이 마치 잎사귀들이 바람에 날려 흩어지듯이 여러 사람들 귀로 퍼진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두려운 일이다. 그런데 여러분이 솔직해지고 정직해질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로 인하여 여러분은 복을 받은 것이다.
 +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친구이시다. 그분께 무엇을 고하든 주님은 우리의 확신을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
 +
 +벧전 5:7 너희의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라. 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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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과 요나단이 서로에게 얼마나 열려 있었는지를 생각해보라. 만일 다윗이 요나단이 자신의 친구라 여기지 못하였다면 사울 왕이 자신에게 행한 것들을 그에게 하소연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연인들의 사랑보다 더 뛰어난 것이었다고 말한다. 주님께서도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아브라함을 내 친구 아브라함(사 41:8)이라 부르셨던 주님을 생각해보라. 아브라함에게 앞으로 있을 일들을 보여주신 주님의 마음을 생각해보라. 진정한 친구에게는 우리는 어떤 것을 나누려 하지 감추려 하지 않는다. 그런 친구를 둔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바로 주님께서 우리의 친구가 되시기를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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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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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사회에서 진정한 친구를 얻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모두가 다 각자의 이득을 위하여 움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 수 있다면 우리 자신이 누군가의 진정한 친구가 되는 일은 매우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진정한 친구가 되셨음을 기억하자.
마11.16-19.txt · 마지막 수정: 2018-03-18 15:30 작성자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