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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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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3.12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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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2월 19일 주일오전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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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적 원리: 부익부 빈익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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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13:12 있는 자는 누구든지 받아서 더욱 풍성하게 될 터이나 없는 자는 누구든지 자에게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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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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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 사회는 자유시장 경제체제라는 원칙을 존중한다. 이것은 시장의 흐름을 정부가 관여하지 않고 시장 스스로가 결정하도록 하는 제도인데 문제는 이 제도가 돈이 많은 사람들이 시장의 흐름을 제어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렇게 되면 사회에서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부익부 빈익빈”현상이다. 돈을 가진 자는 더 부해지고 돈이 없는 자는 더욱 가난해지게 된다. 이 제도의 폐해로 인해 정부는 어느 정도 시장의 흐름에 개입하여 이 현상을 완화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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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많은 크리스천들과 목사들이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하는 전혀 보완되지 않은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선호하는 점이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대부분 그런 크리스천들의 공통점은 부한 사람들이다. 물론 성경은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말한다. 그러나 그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주님은 가난한 자나 타국인들 그리고 고아나 과부들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셨다. 주님은 그들의 하나님이라고까지 말씀하셨다.
 +
 +물질적인 부분에 있어서 주님은 크리스천들에게 사유재산에 대한 인정 뿐 아니라 “균등의 원리”를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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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후 8:14-15 다만 균등의 원리를 따르려는 것이니 곧 이제 이번에는 너희의 넘치는 것으로 그들의 부족함을 공급하고 또한 그들의 넘치는 것으로 너희의 부족함을 공급하여 균등하게 하려는 것이라. 15 이것은 기록된바,​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더라,​ 함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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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지제도가 잘되어 있는 나라일수록 부한 사람들에 대한 세금이 강하다. 그들 역시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의 소외되는 계층에 대한 복지를 지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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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질적인 부분에 있어서 이렇게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는 것을 원치 아니하시는 하나님일지라도 영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음을 또 볼 수 있다. 주님은 영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부익부 빈익빈”을 강조하시고 그 원리에 따라 행하신다.
 +
 +=====II. 성경의 영적 원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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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심는 대로 거두는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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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는 우리가 오늘 보고자 하는 “부익부 빈익빈” 이외에도 여러 영적 원리들이 기록되어 있다. 몇 가지 간단하게 살펴보자면 다 알고 있는 “심는 대로 거두는 원리”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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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6:7-8 속지 말라. 하나님은 조롱당하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 육신에게 심는 자는 육신으로부터 썩는 것을 거두되 성령에게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존하는 생명을 거두리라.
 +
 +바울은 8절에서 이 원리가 영적인 원리임을 보여준다. 우리의 영적생활의 결과는 우리가 어디에 더 많이 투자했는지를 보여준다. 육신인가?​ 아니면 성령 안에서 걷는 것인가? 여러분의 영적생활 즉 기도와 말씀을 읽고 행하는 삶을 매일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여러분을 볼 때 눈에 선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감출 수 없다. 심는 대로 거두기 때문이다.
 +
 +====B. 악화되는 세상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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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12:10 많은 사람이 정결하게 되고 희게 되며 단련을 받을 터이나 사악한 자들은 사악하게 행하리니 사악한 자들 중에서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지혜로운 자들은 깨달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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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12:45 이에 가서 자기보다 더 사악한 다른 영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 거기 거하매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나쁘게 되니라. 이 사악한 세대도 참으로 그와 같이 되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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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딤후 3:12-13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모든 자는 핍박을 받을 터이나 13 악한 자들과 유혹하는 자들은 점점 더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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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12:10은 “악화되는 세상의 원리” 뿐 아니라 오늘 우리가 보고자 하는 원리를 다 말한다. 이 세상은 절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통해서 보여주셨다. 완전하게 창조된 아담은 범죄하여 넘어졌고 양심에 순종해야 할 가인과 노아 이전의 사람들은 실패하여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하셨고 그 뒤 주님은 사람들이 정부를 형성하여 죄지은 자들에 대해 형집행할 수 있도록 하셨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악하여져 가 바벨탑을 건설하고자 했다. 그 뒤 주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율법”을 전수하셔서 그 율법의 지배를 받게 하셨으나 여전히 인간은 자신의 악함 가운데 살았다. 이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유일한 방법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우리를 이 세상에서 건지시는 것 외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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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 처음인 자가 마지막이 되고 마지막인 자가 처음이 될 자가 많은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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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19:30 그러나 처음인 자로서 마지막이 되고 마지막인 자로서 처음이 될 자가 많으니라.
 +마 20:16 이와 같이 마지막인 자가 처음이 되고 처음인 자가 마지막이 되리니 부름 받은 자는 많으나 선정된 자는 적으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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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에서 두 번에 걸쳐 이 말씀을 하셨다. 이것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법칙이다. 먼저 마태복음 19장에서 주님과 제자들의 대화를 자세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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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19:27-29 그때에 베드로가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하매 2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다시 나게 하는 때 곧 사람의 아들이 자기의 영광의 왕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왕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으로 인해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녀나 토지를 버린 모든 자는 백 배를 받고 또 영존하는 생명을 상속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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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들은 자신들이 생각할 때에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기 때문에 처음이 될 것이라 확신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에게 경각심을 주셨다. “그러나 처음인 자로서 마지막이 되고 마지막인 자로서 처음이 될 자가 많으니라.”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드러나게 섬기는 일을 하고 남의 이목을 받기에 좋은 자리에 있으면 상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또한 처음이 될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섬기는 양을 보는 것이 아니다. 주님은 그들의 마음의 질을 보신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자들일수록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크다. 주님께서 오실 때 그분께서 자신의 사람들을 모으셔서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서게 하실 때 우리는 무명하여 사람들에게 인정받지도 아니하고 또 드러나지도 않은 많은 사람들이 목사들이나 자신의 인정만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보다 먼저가 될 것이다. 마 20장의 비유도 동일한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속 중심을 아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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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여러분의 재능이나 지식이 먼저가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께 올바르기를 원한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구하기보다 주님께 자신을 먼저 드리는 사람이 되라. 주님이 쓰시던 사람들은 재능 있는 사람들을 쓰시는 것이 아니었다. 주님은 자신이 온전히 역사하실 수 있도록 주님께 온전히 의탁할 수 있는 마음을 소유한 자들을 쓰신다. 여러분의 마음을 먼저 드리라. 그렇게 될 때 주님은 필요한 지혜나 재능을 여러분에게 허락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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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번째로 오늘 우리가 보고자 하는 원리는 “부익부 빈익빈 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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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부익부 빈익빈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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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13:12 있는 자는 누구든지 받아서 더욱 풍성하게 될 터이나 없는 자는 누구든지 자기에게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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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을 보면 이 말씀을 두 번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구절은 마 13:12이고 다른 구절은 마 25:29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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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25:29 있는 자마다 받아서 풍성하게 될 터이나 없는 자는 자기에게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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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25:29절은 달란트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셨고 누가복음에서는 무나에 대한 비유(눅 19:26)를 말씀하셨다. 둘다 동일한 내용을 말한다. 첫 번째로 언급된 마 13:12은 다른 복음서에서도 기록되었는데 막 4:25과 눅 8:1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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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 4:23-25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24 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듣는 것에 주의하라. 너희가 무슨 척도로 재든 그것대로 평가를 받으리니 듣는 너희가 더 많은 것을 받으리라. 25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자기에게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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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 말씀을 주기 전 주님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와 그 해석에 대해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역시 같은 상황이다. 주님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와 그 해석에 대해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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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8:18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지 주의하라. 있는 자는 누구든지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누구든지 자기에게 있는 줄로 여기는 것도 빼앗기리라,​ 하시니라.
 +그것은 우리가 보고자하는 부익부 빈익빈 법칙이 씨뿌리는 자의 비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주님은 왜 하늘의 왕국의 신비들을 언급하실 때 왜 비유로 말씀하셨을까?​ 사람들은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제자들을 제외하고 주님이 그들이 알기를 원치 아니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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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13:10-11 제자들이 나아와 그분께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하매 11 그분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늘의 왕국의 신비들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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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사람들은 주님은 모두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또한 제자들에게만 특별히 그 해석을 주었을 것으로 말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심오성이 깊어 깨닫기가 어렵기 때문에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이나 현상을 통해 그 진리를 쉽게 깨닫도록 하기 위함에 있다. 주님은 하늘의 왕국의 신비들에 대한 비유 말고도 여러 비유들을 사람들에게 언급했고 종종 사람들은 그 비유를 듣고 주님이 언급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마 21:28을 보면 두 아들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시고 31-32절에서 주님은 그 비유의 의미를 해석해 주었다. 또 33절에서 포도원의 주인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그 해석을 하지 않았어도 수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주님의 비유들을 듣고 그것이 자기들을 가리켜 하신 말씀인 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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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21:45 수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분의 비유들을 듣고는 그분께서 자기들을 가리켜 그것들을 말씀하신 줄 깨닫고 46 그분께 손을 대려 하였으나 무리를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그분을 대언자로 여겼기 때문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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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이 비유는 듣는 사람이 진리를 깨닫기 쉽게 하도록 함에 그 의미가 있다. 마 35을 보면 주님은 시편 78편을 인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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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78:1-3 (아삽의 마스길) 오 내 백성이여,​ 내 법에 귀를 기울이고 내 입의 말들에 너희 귀를 기울일지어다. 2 내가 내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되 옛적부터 있던 은밀한 말들을 말하리니 3 그것들은 우리가 들어서 아는 바요,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말해 준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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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편 78편은 비유의 목적이 깨달음을 위한 것임을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이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이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이 되었을까?​(13절) 그것은 오늘 우리가 보고자 하는 영적인 법칙이 어떤 뜻인지를 잘 보여준다. 먼저 누가복음 말씀을 기억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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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8:18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지 주의하라. 있는 자는 누구든지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누구든지 자기에게 있는 줄로 여기는 것도 빼앗기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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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영적인 원리를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깨닫는 자는 더욱 깨닫도록 하고 듣고자 하지 않는 자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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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너희가 어떻게 듣는지 주의하라.”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법칙이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그것이 주는 축복과 연관이 됨을 알 수 있고 두 번째로 “듣는 것”과 관련됨을 알 수 있다.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네 가지 마음의 상태에 대해 비유로 말씀하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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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V. 비유와 관련된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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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보자. 우리는 이 비유를 통해 “부익부 빈익빈” 원리에 대해 알게 된다. 먼저 등장하는 씨가 떨어진 장소는 길가에 씨가 떨어졌다. 주님은 그것을 두고 말씀을 깨닫지 못한 자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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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길가에 씨를 받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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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13:18-19 그런즉 너희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들으라. 19 어떤 사람이 왕국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저 사악한 자가 와서 그의 마음속에 뿌려진 것을 채어 가나니 이 사람은 곧 길가에 씨를 받은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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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가는 밭의 가장자리를 사람들이 다님으로 땅이 딱딱해진 부분을 말한다. 그 사람 안에 있는 여러 가지 장애물 즉 불신이나 염려나 편견이나 혹은 그가 추구하는 것이나 야망과 같은 것으로 그의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있는 것을 말한다. 이 사람에게는 말씀이 전혀 마음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
 +
 +이 말씀은 많은 사람들이 변화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그 첫 번째 이유를 보여준다. 먼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구원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있다. 많은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는 것이 둔하다. 그래서 그들이 택하는 방법은 말씀을 듣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교회가자는 권면을 거절하고 전해진 전도지를 읽지 않고 버리며 복음을 전하려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거절한 사람들은 그의 마음이 점점 더 완악해져가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빈익빈 원리에 의한 것이다. 주님은 그들이 말씀을 들어 깨닫거나 회개할 기회를 제거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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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13:13-15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이니라. 14 이사야의 대언이 그들 안에서 성취되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의 마음은 무디어지고 그들의 귀는 듣기에 둔하며 그들은 눈을 감았나니 이것은 언제라도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회심하여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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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라오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을 보여주시고 회개할 기회들을 주셨으나 그럼에도 그분을 거역하고 주의 백성을 괴롭히기로 결정하였다. 주님은 결국 그의 악함을 더욱 악하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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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 9:17-18 성경 기록이 파라오에게 이르기를,​ 내가 바로 이 목적을 위해 너를 일으켰나니 이것은 내가 네 안에서 내 권능을 보이고 내 이름을 온 땅에 두루 밝히 알리려 함이니라,​ 하시나니 18 그런즉 그분께서 긍휼을 베풀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또 강퍅하게 할 자를 친히 강퍅하게 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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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경우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일들로 사람의 마음이 지금까지 종교인들에게 속음으로 말미암아 혹은 육신적으로 행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 그의 마음이 복음이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완전히 딱딱하게 굳어버린 경우를 볼 수 있다. 흔히 “이단이나 혹은 교회다니는 사람들에게 너무 치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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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또한 믿는 크리스천에게도 적용된다. 어떤 사람들은 이제 막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다. 그런 사람은 말씀을 아직 깨닫기 어렵다. 우리는 그것을 이해한다. 그런데 주님을 믿은 지 10년이 넘고 20년이 넘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수준이 너무 낮은 경우가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첫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풀이해서 설명하는 교회를 다니지 못한 것이다. 내가 다니는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데 게으르다면 그 교회를 다니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아니한 경우다. “너희가 어떻게 듣는지 주의하라.” 이것은 주님의 경고이다. 말씀을 깨닫는 것이 둔하다고 알고자 하는 마음을 닫지 말라. 단지 몸은 여기에 앉아있고 마음은 깨닫지 못한다고 다른 것들을 생각하려 하지 말라. 그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여러분 안에 들어간 말씀을 제거하도록 두는 것이다. 그것은 여러분이 영적으로 더 암울해지는 것을 말한다.
 +
 +막 4:21-25 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통 밑에나 침상 밑에 두려고 등잔불을 가져오느냐?​ 등잔대 위에 두려고 가져오지 아니하느냐?​ 22 감추어 둔 것 중에서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은밀히 간직한 것 중에서 널리 퍼지지 아니할 것이 없느니라. 23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24 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듣는 것에 주의하라. 너희가 무슨 척도로 재든 그것대로 평가를 받으리니 듣는 너희가 더 많은 것을 받으리라. 25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자기에게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하시니라.
 +
 +여러분의 영적인 빛의 밝기는 여러분의 행위를 통해 드러난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선한 행위를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여러분의 행위를 살펴보라. 그 행위가 악한지 그렇지 않은지 여러분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평가해보라. 그 행위가 악하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빛이 어둡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여러분의 눈이 무엇을 보는지로 드러난다. 눈은 마음의 등불이다. 여러분은 하늘에 있는 것들을 바라보는가?​ 아니면 세상적인 것들을 바라보는가?​
 +
 +마 6:23 네 눈이 악하면 네 온 몸이 어둠으로 가득하리라. 그런즉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둡게 되면 그 어둠이 얼마나 크겠느냐!
 +
 +주님을 알지 못하는 자라면 주님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갈급하기를 원하신다. 주님을 알기를 사모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해도 알고자 하는 마음을 품으라.
 +
 +시 107:9 그분께서 사모하는 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혼을 선하심으로 채워 주시는도다.
 +
 +물론 우리는 지식의 말씀들에서 벗어나 잘못하게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에서는 귀를 돌려야 한다.
 +
 +잠 19:27 내 아들아, 지식의 말씀들에서 벗어나 잘못하게 하는 훈계 듣기를 그칠지어다
 +
 +====B. 돌밭 속에 씨를 받은 자====
 +
 +마 13:20-21 그러나 돌밭 속에 씨를 받은 자 곧 그자는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나 21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만 견디는 자니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 그가 곧 실족하느니라.
 +
 +두 번째 부류로 말씀을 대하는 자는 돌밭 속에 씨를 받은 자이다. 이 사람은 말씀이 은혜롭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믿음의 뿌리가 없다. 그것은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날 때 드러나게 된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 말씀에 대한 믿음의 뿌리 없이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시험이나 환난이나 고난이 찾아오기 까지 이 사람의 행위은 종교적이다. 그것은 주의 말씀이 은혜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 사람의 믿음이 되지 않는다. 믿음의 뿌리가 내리기 위해서는 씨앗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
 +
 +요 12:24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홀로 남거니와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그대로 남아있다. 그 사람은 변화되지 않은 채 자신의 열심을 가지고 종교를 섬기고 있는 것일 뿐이다.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죽는 것이다. 주님 내 힘으로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없음을 압니다. 주님 저는 구제불능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여 주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이제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그리고 나를 인도해 주십시오. 주의 은혜의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십시오.
 +
 +말씀을 돌밭 속에 여전히 두려는 자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로 하여금 나가떨어지도록 환난과 고난과 시험 속에 그를 던지실 것이다.
 +
 +(크리스천 역시 돌밭 속에 말씀을 두려는 자와 같이 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러분의 신앙은 진짜인가?​ 아니면 보이기 위한 것인가? 여러분 안에 믿음이 있는가?)
 +
 +====C. 가시나무 사이에 씨를 받은 자====
 +
 +마 13:22 가시나무 사이에 씨를 받은 자 또한 말씀을 듣되 이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속임수가 말씀을 숨 막히게 하므로 열매 맺지 못하는 자니라.
 +
 +세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의 마음은 가시나무 사이에 씨를 받은 자이다. 이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스러움을 깨달았다. 또한 그 말씀으로 인해 내가 죽어 이제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과 또한 세상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이 둘다 공존한다. 눅 8:14은 “ 이 세상 삶의 염려와 재물과 쾌락으로 숨이 막혔”다고 말한다. ​
 +
 +이것은 교회 내에서 세상적인 방식으로 무언가 시도하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임을 보여준다. 교회와 세상은 공존할 수 없다. 그것은 순수한 것을 숨이 막히게 할 뿐이다! 교회가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방법으로 세상에서 인기 있는 프로그램들을 택해서 하면 사람들이 불어나서 좋을 듯 한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서 숨이 막혀 성장하지 못하게 된다.
 +
 +주님은 또한 우리가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면 이제 그 말씀대로 살도록 주의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걸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적인 생각으로 이것저것 재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버리라. 여러분 안에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며 역사하신다는 신뢰가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믿음으로 사는 법을 경험하지 못한 것인가? 혹 이 세상 삶의 염려로 가득해 있는가? 부하고자 하는 욕망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의 선택을 주저하게 하는가? 아니면 육체의 쾌락으로 인해 말씀으로 사는 것은 재미없어 보인다고 생각하는가?​ 그러하는 순간에 열매를 맺지 못하며 오히려 말씀이 숨이 막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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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은 내가 어떤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그분의 뜻을 물으며 알지못할지라도 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생각해보라. 주님은 그에게 “네 아버지와 어머니와 친족을 떠나 내가 너에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큰 시험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아는 사람이 전혀 없으며 자신을 보호할 무리도 적은 가운데 또한 어떻게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으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었다. 주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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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아 훗날 상속 재산으로 받게 될 곳으로 나가면서 순종하고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나갔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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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라함은 인간적으로 그곳에 가는 것이 현명하거나 혹은 이득이 되거나하는 것들을 고려해보고 가겠다고 한 것이 아니었다. 주께서 조금 보여주시는 것들을 순종하고 따라갔을 때 약속의 땅으로 왔던 것이다. 여러분이 믿음의 결정을 유보하는 순간 여러분은 더욱더 믿음에 대해 가난해질 것이다. 빈익빈의 원리가 여러분에게 적용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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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크리스천들이 세상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해 믿음을 뒤로하고 교회 나가기를 소홀이 여기거나 혹은 성경을 읽지 않는 선택을 한다. 그 결과는 비참하게도 믿음의 퇴보의 길을 걷게 된다. 주님에 대한 신뢰가 점점 약해져가는 자신을 보면서 나중에야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주님을 떠나 세상에 빠진 사람들이 처음부터 믿음을 저버린 것이 아니다. 작은 것 하나 믿음을 따라 걷지 아니하다가 그것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 이것이 영적으로 빈익빈 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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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 좋은 땅속에 씨를 받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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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13:23 그러나 좋은 땅 속에 씨를 받은 자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그것이 또한 열매를 맺어 얼마는 백 배, 얼마는 육십 배, 얼마는 삼십 배를 내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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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듣고 깨닫고 실행하여 열매를 맺는 크리스천이 되기를 원하신다. 열매는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걸을 때 맺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것은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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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찾으시며 그가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많은 열매(much fruit, 5절)를 맺기까지 우리를 인도하시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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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15:1-2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시니 2 내 안에서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모든 가지는 그분께서 제거하시고 열매를 맺는 모든 가지는 깨끗하게 하사 그것이 더 많은 열매(more fruit)를 맺게 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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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사람은 자신이 맺는 열매는 자신의 힘으로 맺는 것이 아님을 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또한 우리 안에서의 그분의 역사이다. 성령님께서 보여주시는 진리대로 말씀대로 따라 걸을 때에 이 열매들은 자연적으로 우리 안에서 맺어지게 된다. 그것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인격과 품성이 변화되어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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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15:3-5 이제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깨끗하게 되었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 같이 너희도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더 이상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그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나 없이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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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은혜를 맞본 자가 겸손하게 그분의 은혜를 구할 때 더욱 그분의 은혜를 맞보게 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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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4:6 그러나 그분께서 더 많은 은혜를 베푸시나니 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은 교만한 자들은 물리치시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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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우리에게 더 많은 은혜를 베푸시길 원하신다. 이것이 부익부 원리이다. 여러분이 가진 것에서 주님은 더 채워주시는 것이다. 주님은 여러분에게 큰 축복을 주시기 전에 여러분이 믿음으로 살아가는지 시험하신다. 끝까지 견디라. 그리고 그분의 축복을 사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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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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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 안에서 풍성하기를 원하는가?​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소유하기를 원하신다. 그것은 “여러분이 어떻게 듣는지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깨닫는 말씀대로 살도록 주께 간구하여 주의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기를 구하자.
  
마13.12.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