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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4.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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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4.22-33 [2018-02-18 15:28]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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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2월 18일 주일오전설교==
  
 +======폭풍으로 인도하시는 주님======
 +
 +본문 말씀: 마태복음 14장 22-3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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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14:22-33 ¶ 즉시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을 강권하사 자기가 무리들을 보내는 동안 배를 타고 자기보다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 무리들을 보내신 뒤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셨다가 저녁이 되매 거기 홀로 계시더라. 24 그러나 이제 배는 바다 한가운데 있었고 바람이 반대로 불므로 파도로 인하여 요동하더라. 25 밤 사경에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가시니 26 제자들이 그분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불안해하여 이르기를,​ 영이다, 하고 두려워서 소리 지르거늘 27 즉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라. 28 베드로가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시거든 물 위로 주께 오라고 내게 명하소서,​ 하니 29 그분께서,​ 오라, 하시매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예수님께 가려고 물 위로 걸어가되 30 바람이 사나운 것을 보고 두려워하다가 가라앉기 시작하며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님께서 즉시 손을 내미사 그를 붙잡으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오 믿음이 적은 자여, 어찌하여 의심하였느냐?​ 하시니라. 32 그들이 배에 들어갈 때에 바람이 그치니 33 이에 배에 있던 자들이 와서 그분께 경배하며 이르되, 진실로 주는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
 +=====서론=====
 +
 +성경의 이 본문에서 우리 주님의 제자들이 사나운 폭풍에 붙잡혀 어찌할 줄 모르는 장면을 보고 있다. 그들이 이 폭풍 가운데 있게 된 것은 자기들의 자의적인 뜻대로 움직여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빵을 먹고 배부른 군중들이 주님을 억지로 왕으로 세우려는 것을 아신 주님께서 제자들이 그들의 생각에 편승하지 아니하도록 그들에게 건너편으로 건너가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었으며 그들은 그분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하였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음에도 그들은 강한 바람을 직면하고 그것을 거슬러 주님께서 명령하신대로 반대편으로 가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최선을 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일보도 전진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거센 바람은 역풍이 되어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큰 파도로 인해 배가 요동함으로 생명의 위협까지 있는 상황이었다. 24절을 보면 그들은 바다 한 가운데 있게 되어 배 밖으로도 나올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
 +우리 자신이 그런 상황에 놓여 있어본 적 있는가? 인생의 폭풍 가운데 자신이 놓여 있으며 무엇을 하여도 아무리 노력한다 하여도 일보도 나가지 못하고 마치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진 마냥 놓인 자신을 발견한 적 있는가? 사실 우리 모두는 그런 때들을 거치게 되어 있다. 때로 인생에서 만나는 그런 폭풍을 만나면 마치 끝이 없이 오는 것처럼 느껴지며 또 그것을 통해 어떤 선도 얻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물론 그런 폭풍은 절대 즐거운 것이 아니지만 그것들은 우리의 삶에 분명한 어떤 선을 이룬다는 점을 오늘 아침에 같이 보고자 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
 +이 날 아침 우리는 폭풍 가운데 놓인 제자들의 처지에 자신을 놓아보면서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보자. 우리가 이것을 할 때에 인생의 폭풍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감추어진 축복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 중 누군가가 이미 어떤 종류의 폭풍에 놓이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나 주님께서 그런 폭풍을 우리의 삶 가운데서 사납게 오게 하신 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본문 말씀이 각자에게 어떻게 역사할지 모르나 그 부분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과 그분의 말씀을 통해 대화하시는 것임을 보자.
 +
 +=====I. 폭풍은 주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수단이다(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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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들은 거센 바람으로 인하여 높아진 바다의 파도로 인해 배가 출렁이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그들은 비록 뱃사람이었을지라도 바다를 두려워하는 상황에 놓였을 것이다. 그들은 아직 해가 떨어지기 전에 배를 탔지만 밤 사경이 될 때가지 여전히 바다에서 바람과 씨름하고 있었다. 밤 4경은 새벽 3시에서 6시 사이에 해당한다. 그들에게 있어 바다는 매우 두려운 존재가 되었고 그들은 바다 위에서 생명과 목적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사투하였으며 게다가 이제 매우 기진한 상황에 놓였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에게 두려운 존재인 바다일지라도 동일한 바다가 주님께는 제자들에게 나아가는 도로와 같았으며 자신을 계시하는 수단이 되었다. 주님은 그 바다를 직접 걸으시면서 그 밤에 그들에게 나아갔음을 생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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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주님은 흑암 가운데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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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말했듯이 주님은 물 위를 걸어서 밤 사경 즉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캄캄한 밤에 제자들에게 자신을 계시하러 오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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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우리 중 누군가는 인생의 흑암 가운데 자신이 놓여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한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질문은 “주님께서 어디 계시나이까?​”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 중 누군가는 인생의 날들 가운데 가장 어두운 날들을 지금 지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한 가운데 있을 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절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약속하셨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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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 13:5 너희의 행실을 탐욕이 없게 하고 너희가 가진 것들로 만족하라.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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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가장 어두운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의 입술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시며 그분은 여전히 우리의 삶의 모든 것들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어두운 때에 놓인 우리일지라도 그분의 눈에 분명하게 우리의 모든 걸음과 생각들이 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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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139:11-12 내가 말하기를,​ 어둠이 반드시 나를 덮으리라,​ 할지라도 밤조차 나를 두르는 빛이 되리이다. 12 참으로 어둠이 주를 떠나 숨지 못하며 밤이 낮처럼 빛을 내나니 주께는 어둠과 빛이 다 같으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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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야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리스도의 음성에 순종하고자 하나 빛도 없이 어둠 속에 다닌다면 주를 신뢰하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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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50:10 ¶ 너희 가운데 누가 {주}를 두려워하고 그분의 종의 목소리에 순종하며 빛이 없이 어둠 속에 다니느냐?​ 그는 {주}의 이름을 신뢰하고 자기 [하나님]을 의지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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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들이 가장 어둡다고 느끼는 그 때에, 그리고 그들이 가장 절박하다고 느끼는 그 때에, 그리고 주 예수님께서 오실 것이라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그 때에 주님께서 흑암 가운데서 오셨다. 그들이 파도와 사투하고 있을 때 주님은 그들을 보셨고 그들을 향해 오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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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 6:48 바람이 그들에게 반대로 불므로 그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그들을 지나쳐 가려고 하시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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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주님은 제자들이 힘들어하던 것을 밟고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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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 6:48에 따르면 주님의 제자들은 힘겹게 노를 저으며 자신들의 생명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그들은 거센 바람과 분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분명 그들 중 많은 이가 뱃사공이었기에 이 바람에서 자신을 구해야 한다고 판단하였을 것이나 이제 그들은 지칠 대로 지쳐가고 있었다. 이제 그들에게서 소망이 사라지고 그들의 운명이 다했다고 생각할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이 그토록 싸우고 있던 그 파도 위로 걸어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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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 우리의 폭풍과의 싸움에서 패배했다고 느끼는 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의 축복을 주관하고 계시듯이 여전히 우리의 폭풍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온갖 좋은 것들이 주님으로부터 오듯이 우리가 재앙으로 보는 것들 역시 아버지의 목적과 계획에 따라 그분의 허락하심 아래 우리에게 찾아온다. 모든 것이 흑암 가운데 있을 때에 주님께서 여러분이 힘들어하는 바로 그것을 통해 자신을 계시할 수 있음을 보자. 주님은 분명 우리를 폭풍으로부터 면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폭풍으로부터 자신의 약속대로 우리를 지키실 것이다. 인생의 폭풍을 만났던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라. 다윗과 다니엘과 요셉과 모르드개와 사도 바울 등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에서 폭풍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모두가 하나님께서 그들이 만났던 폭풍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음을 보았으며 구원받고 위로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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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 주님은 깊음의 표면을 밟고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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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들이 두려워하던 대상은 표효하는 바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신을 계시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셨다.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은혜이며 지혜인가! 주님은 그것을 통해 폭풍이 강렬할지라도 주님은 그것보다 더 크신 분이심을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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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우리가 맘에 두어야 할 부분이다. 우리의 삶 가운데 폭풍을 대하면 우리는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바라본다. 한치 앞을 보지 못하며 당장에 사투하는 것에 모든 생각이 붙잡혀 있다. 우리의 생각은 깊이 판단하지 못하며 우리의 눈은 더 멀리 내다보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직면하든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직면하는 폭풍보다 더 크신 분이시며 그분이 으뜸이 되셔야 한다. 비록 주님은 우리가 원하는 그 때에 오지 아니하실지라도 분명 자신의 목적과 계획에 따라 그분의 때에 나타나실 것이다. 그 때에 우리가 직면하는 폭풍이 오히려 주님께서 자신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이 됨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두려워하고 힘들어 하던 것이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는 도구로 이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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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바울의 삶에서 많은 굴곡이 있었지만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12장에서 말하고 있는 육체의 가시를 생각해보자. 그것은 그에게 매우 괴로움이 되고 그를 연약하게 만드는 것이 되었으며 그의 사역에 크나큰 방해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세 번씩이나 주님께 간구하여 그것을 제거해주시기를 청하였다. 하지만 주님의 답은 사도 바울의 생각과 달랐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나의 강한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해지느니라.”(고후 12:9) 사도 바울의 생각은 그것이 제거되었을 때 주님을 더 잘 섬길 수 있다고 여겼으나 주님은 오히려 바울의 육체 안에 있는 가시가 그를 겸손하게 만듦으로 더욱 하나님의 능력이 더 강하게 역사할 수 있게 될 것이라 말씀하신다. 사도 바울은 그 가시로 인해 자신의 능력이 아닌 주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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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우리의 삶속에 있는 폭풍을 두려워하며 그것이 제거되기를 바랄지 모른다. 하지만 만일 그것들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계획하신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유익을 얻고 그분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하며 그분의 계시를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우리의 인생의 길에 주어진 것이다(롬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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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폭풍은 하나님의 시험의 도구이다(25-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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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폭풍은 구주를 계시한다(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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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 물위를 걸어오셨을 때 제자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들은 그분을 두고 영이라 생각하였다. 그들은 두려움에 외쳤지만 감사하게도 주님은 그들에게 화평과 권능의 말씀을 주시며 그들에게 오셨다. 주님은 그들에게 화평의 말씀을 가지고 오셨다. “안심하라”. 그분은 또한 권능의 말씀을 가지고 오셨다. “나니”(It is I, 에이미 에고) 그분은 또한 가능성의 말씀을 가지고 오셨다. “두려워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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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폭풍은 이전에 우리가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주님을 계시하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실 때 그분은 우리의 폭풍 위에서 오시며 제자들이 폭풍이 치던 밤에 주님으로부터 얻었던 동일한 소망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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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화평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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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안심하라고 말씀하실 때 여전히 바다는 거센 바람으로 높은 파도가 치고 있었음을 생각해보라. 그분의 권능으로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우리의 폭풍 가운데 우리에게 화평의 말씀을 주고 계신다. 이것이 바로 빌립보서 4:6-7에서 말하고 있는 화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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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 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서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들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알리라. 7 그리하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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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권능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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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셨을 때 주님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셨다. “내니” 이것은 예수님께서 “나는 문이요”,​ “나는 포도나무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는 선한 목자요”라고 하였을 때 사용하셨던 것과 동일한 표현이다. 다만 도치가 되어 있을 뿐이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안심하라,​ 바로 너희의 모든 것이 되시는 하나님이 여기 있느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위대하신 “스스로 계시는 분”(I AM)이시다. 그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을 가지신 분이시며(마 28:18) 그렇기에 시험의 시간에 자신의 화평을 우리에게 선사하실 수 있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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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잠재력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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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는 또한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을 주셨다. 이것은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그 모든 것들로부터 시선을 완전히 돌리라는 명령과 같다. 두려워하는 것을 멈추고 다시 그것으로 인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까지 주관하고 계심을 인지하며 그것을 우리의 삶속에서 헤아릴 수 있다면 그분께서 하나님이시며 모든 권능을 소유하신 분이시기에 인생의 모든 폭풍에서도 주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그 단계에 도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치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자신에게 찾아온 폭풍에서도 그 결과에 상관없이 마땅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오직 그분만 경배하기로 정하며 그분을 신실하게 신뢰하게 된 것과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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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폭풍이 축복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구주를 우리에게 계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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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폭풍은 성도를 정련한다(28-2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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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가 주님이라는 소리를 듣자 그는 주님처럼 물 위를 걸어 그분께 나아갈 수 있기를 원하였다. 예수님은 단순히 베드로에게 오라고 말씀하셨으며 베드로는 순종하여 그 역시 물 위를 걸어 예수님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폭풍을 사용하시어 베드로가 믿음에서 성장하도록 하는 도구가 되게 하셨다.
 +
 +인생의 폭풍이 우리 주변에서 큰 소리를 내더라도 만일 우리가 예수님께서 폭풍의 주인이라는 진리를 붙들 수만 있다면 우리는 우리 주변의 환경보다 더 높이 일어나 주님과 함께 환경의 파도를 밟고 걸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를 보면 그가 물 위를 걸은 것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곧 그는 주님으로부터 자신의 시선을 옮겨 주변을 바라보았을 때 물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배 위에 타고 있던 다른 열 한 명의 제자들이 나서지 못하였던 것을 행한 사람이었다. 베드로만이 유일하게 그의 폭풍을 밟고 걸은 자였다. ​
 +
 +인생의 폭풍들은 만일 우리가 허용한다면 우리의 믿음에 집중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날들을 이용하셔서 우리에게 자신에 대해 더욱 가르치시고 우리가 주 안에서 자라도록 도우신다. 주님은 폭풍들을 이용하셔서 우리가 더욱 주님과 같이 변모되도록 하신다. 배 안에 열 두 명이 있었지만 오직 한 사람만이 잠시 동안이지만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걸었음을 기억하자.
 +
 +====C. 폭풍은 성도로 하여금 기억하게 한다(30-31절)====
 +
 +베드로는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걷기를 원하였고 주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하여 파도 위를 걸었다.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의 눈을 주님으로부터 돌이켰고 곧바로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누가 주관하고 계시는지를 기억해야 하였고 그는 주님을 부르고 도움이 필요한 때에 그분의 도움을 얻었다.
 +
 +인생의 폭풍들은 누가 삶을 주관하고 있는지를 기억하게 도운다. 베드로와 같이 우리는 폭풍 가운데 있을 때 주님으로부터 시선을 떼는 경우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실패하게 되어 있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주관하고 계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기억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성공적으로 인생의 폭풍의 바다들을 항해하더라도 우리는 자신의 능력에게로 그것을 돌리거나 그 성공을 자신에게 돌리는 일은 합당하지 않다. 우리가 성공하여도 그것은 우리가 우리 손을 붙들고 있는 그분이 더 위대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폭풍들 가운데서 우리가 성공하는 것은 우리가 기꺼이 예수님께서 폭풍의 주인임을 인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
 +=====III. 폭풍은 하나님의 증거의 도구이다(32-33절)=====
 +
 +====A. 폭풍은 그분의 권능을 증언한다.====
 +
 +예수님께서 그 폭풍을 잠잠하게 하셨다. 주님은 어떤 말도 하지 아니하셨고 단지 제자들이 탄 배에 오르자 바다는 잠잠해졌다.
 +
 +언젠가 주님은 우리의 삶속에서도 동일한 것을 행하실 것이다. 폭풍이 거칠게 몰아칠지라도 그것이 주님의 목적을 성취하게 되면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바람을 그치게 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가 깨닫기를 원하는 모든 것은 바로 그분께서 인생의 폭풍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라는 점이다. 그것은 내가 아니고 여러분이 아니며 다른 누군가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바다의 주인이시며 폭풍의 주인이시다.
 +
 +====B. 폭풍은 그분의 신성을 증언한다.====
 +
 +예수님께서 폭풍을 잠잠하게 하셨을 때 제자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그분을 고백하고 그분 앞에서 엎드려 경배하였다. 인생의 폭풍들 안에서 그리고 그 폭풍들을 이기는 주님의 권능은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증언한다. 그것들은 그분이 하나님이시며 삶의 모든 문제들을 주관하시는 분임을 말한다. 폭풍들이 올 때에 그것들은 제자들이 결론적으로 도달하였던 곳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분 앞에 무릎 꿇어 경배하는 것이다.
 +
 +폭풍이 좀 더 견디기 쉽게 만드는 비결이 있다: 폭풍이 끝나 그분 앞에 엎드릴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파도가 여전히 우리의 배를 위협하고 있을 때에 엎드리라. 바람이 여전히 우리를 대적하고 있을 때 엎드리라. 주님 앞에서 여러분을 겸손하게 하려고 먹구름이 제거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기꺼이 그분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 주님께 둔 믿음을 가장 드러낸다. 그것은 일들이 가장 악한 상황처럼 보일 때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분 앞에 엎드리자. 주님께 합당한 존귀를 돌리자.
 +
 +=====결론=====
 +
 +때로 폭풍이 주어진 축복을 보는 것은 어렵다. 그렇지 아니한가?​ 때로 주님께서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을 통해 어떤 선을 가져오실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우리는 각자가 처한 폭풍의 속성들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파도 위를 걸어서 오시는 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분이 우리가 필요한 분이다. 그분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누가 아는가? 오늘 폭풍 가운데 있는 자신에게 주님께서 파도를 밟고 오셔서 평안을 주실지.
마14.22-33.txt · 마지막 수정: 2018-02-18 15:28 작성자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