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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6.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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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6.22-24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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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5월 11일 주일오전설교==
  
 +======섬기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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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마태복음 16장 22-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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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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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16장에는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 사람들에게 언급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은 예수님의 사역에서 어떤 중요한 시기가 되었음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주님은 또한 마 16:18에서 “교회”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하고 계신다. 뿐만 아니라 이 장에는 중요한 주제가 담겨있다. 그 주제는 “믿음”에 대한 것이다. 이번 장에 성경은 우리에게 여러 종류의 믿음에 대해 계시한다. 과연 그 믿음을 보고 우리는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
 +=====I. 믿음이 없는 완악한 마음 - 그리스도를 시험함(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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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16:1-4 바리새인들도 사두개인들과 함께 와서 시험하며 그분께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자기들에게 보여 줄 것을 그분께 요구하매 2 그분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저녁이 되면 너희가 말하기를,​ 하늘이 붉으니 날씨가 좋으리라,​ 하고 3 또 아침에는,​ 하늘이 붉고 흐리니 오늘은 날씨가 궂으리라,​ 하는도다. 오 너희 위선자들아,​ 너희가 능히 하늘의 모습은 분별하거니와 시대의 표적들은 분별하지 못하느냐?​ 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대언자 요나의 표적 외에는 아무 표적도 그 세대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그들을 남겨 둔 채 떠나가시니라.**
 +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가장 많은 부끄러움을 당한 사람들은 종교지도자들이었다. 주님은 그들의 죄악을 드러내시며 공개적으로 책망하셨다. 그로인하여 그들은 예수님의 입을 막고자 하나로 연합하기 시작한다. 여기도 서로 교리적으로나 실행적으로나 하나가 될 것 같지 않은 두 종교 그룹이 같이 주님께 나아옴을 본다. “바리새인들”이 “사두개인들”과 함께 예수님께 온 것이다. 바리새인은 오늘날로 말하자면 “근본주의자들”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사두개인들은 “자유주의자들”과 교리가 비슷하다. 이들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짤막하게 정리한다. ​
 +
 +행 23:8 이는 사두개인들은 부활도 없고 천사나 영도 없다고 말하되 바리새인들은 둘 다를 시인하기 때문이라.
 +
 +그런데 이 두 종교 그룹이 예수님의 입을 막는데는 한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들은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그리스도”로 제시하니까 그 증거를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통해 보여주라는 것이다. 이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요구한 것은 이번뿐이 아니라 여러 차례가 있었다(마 12:38; 요 2:18; 요 6:30). 하지만 그 때마다 주님은 그들의 요구대로 응답하지 않으셨다. 표적이나 기적이 행해진다고 해서 사람들이 구원받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를 일으키신 것을 유대인들이 두 눈으로 보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던 사람들이 원한 것은 예수님과 함께 나사로를 죽이고자 하는 것이었다. 또한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주님께서 들려주시던 것을 기억해보라.
 +
 +눅 16:27-31 이에 그가 이르되, 그러므로 아버지여,​ 간구하건대 아버지께서 그를 내 아버지 집으로 보내소서. 28 내게 다섯 형제가 있사오니 그가 그들에게 증언하여 그들 또한 이 고통 받는 장소로 오지 않게 하소서, 하거늘 29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대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이 저들의 말을 들을 것이니라,​ 하매 30 그가 이르되, 아니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어떤 사람이 죽은 자들로부터 그들에게 간다면 그들이 회개하리이다,​ 하니 31 그가 그에게 이르되, 그들이 모세와 대언자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비록 어떤 사람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날지라도 그들이 설득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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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나사로가 다시 일어났어도 주님을 믿지 않던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을 돌이킨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죽이고자 하는 마음으로 더욱 가득하였다. 기적이나 이적이 보여주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 믿음이 있다면 그것을 더욱 견고하게 하거나 혹은 그 사람의 마음에 스스로 믿음을 갖지 아니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
 +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날씨에 대한 언급을 하셨을까?​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말씀하고자 함에 있다. 그들은 자연 현상을 보고 날씨가 어떠할지를 알고 있다. 그렇다면 성경에 예언한대로 메시야께서 오셔서 거기에 기록된 여러 가지 기적들과 이적들을 통해 그리고 권위있는 말씀을 통해 또한 그분의 삶을 통해 보여주셨다면 그것은 마땅히 그들이 자기들 앞에 제시된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스스로 믿고자 아니하는 즉 고집스런 영적 눈멀음 가운데 놓여있으며 또한 메시야의 증거를 보지 아니했다고 하는 “정직하지 아니함”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 앞에 제시된 여러 가지 증거들을 가지고 믿음을 가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갖고자 하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요 12:37-40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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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12:37-40 ¶ 그러나 그분께서 이렇게 많은 기적들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여전히 그분을 믿지 아니하였으니 38 이것은 대언자 이사야의 말씀이 성취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말하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39 그러므로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하였으니 그 까닭은 이사야가 다시 말하였기 때문이라. 이르되, 40 그분께서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으니 이것은 그들이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달아 회심하여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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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예수님의 많은 기적들을 보고도 믿지 아니했다. 그들은 스스로 믿지 아니하기로 택한 것이다. 그 결과 무어라 말하는가?​ “그러므로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하였으니” 주님께서 그들의 완악한 마음을 더욱 닫아버리신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눈앞에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기에 합당한 증거들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으나 그들은 주님 앞에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정직하기를 원치 아니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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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그들의 영적 상태가 어떠한지를 말씀하신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 주님은 그들이 육체적으로 성적인 죄악을 범하였다고 책망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적 간음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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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57:3-8 ¶ 그러나 여자 마법사의 아들들아,​ 간음하는 자와 창녀의 씨야, 너희는 여기로 가까이 나아오라. 4 너희가 누구를 향해 너희 자신을 과시하느냐?​ 너희가 누구를 향해 입을 크게 벌리며 혀를 내미느냐?​ 너희는 범법의 자식이요,​ 거짓의 씨가 아니냐? 5 너희가 모든 푸른 나무 밑에서 우상들과 더불어 너희 자신을 불태우며 바위 낭떠러지 밑의 골짜기에서 자녀들을 죽이는도다. 6 시내의 매끄러운 돌들 가운데 네 몫이 있나니 그것들 곧 그것들이 네 몫이니라. 네가 그것들에게 음료 헌물을 붓고 음식 헌물을 바쳤거니와 내가 이런 것들로 위로를 받겠느냐?​ 7 네가 높이 치솟은 산 위에 네 침상을 마련하고 거기로 올라가 희생물을 드리며 8 또 문들과 기둥들 뒤에 네 기념물을 세웠나니 네가 나 아닌 다른 신에게 네 몸을 드러내고 올라갔으며 또 네가 네 침상을 넓히고 너를 위해 그들과 언약을 맺으며 네가 그들의 침상을 본 곳에서 그것을 사랑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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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4:4 너희 간음하는 남자들과 간음하는 여자들아,​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인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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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는 그들이 비록 바리새인들이고 서기관들이어 하나님을 믿는다 하여도 그들의 마음에는 자기들이 고안한 것들을 신들로 경배하고 있으며 그것을 더 높은 가치로 생각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참된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이었다면 그들은 그분께서 보내신 아들을 인지했을 것이다. 주님은 그들에게 요나의 표적을 말씀하신다. 요나가 죽어 고래 뱃속에 삼일 낮과 삼일 밤을 보낸 것처럼 주님의 죽으심과 묻히심과 부활에 대한 표적을 주시고 그것이 바로 메시야의 표적임을 말씀하고 계신다. 따라서 누군가 만일 구원받고자 한다면 그는 반드시 이 표적을 믿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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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적은 믿음 - 그리스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5-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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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16:5-12 그분의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 때 빵 가져가는 것을 잊었더라. 6 ¶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고 조심하라,​ 하시니 7 그들이 자기들끼리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우리가 빵을 가져오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하거늘 8 예수님께서 그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오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빵을 가져오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끼리 의논하느냐?​ 9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먹고 너희가 몇 바구니를 거두었으며 10 빵 일곱 개로 사천 명이 먹고 너희가 몇 바구니를 거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느냐?​ 11 내가 빵에 관하여 너희에게 그것을 말하지 아니하고 너희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말한 줄을 어찌 너희가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 12 그제야 그들이 그분께서 빵의 누룩이 아니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교리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명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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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 8:14에 따르면 당시 제자들에게는 빵 한덩어리만 있었다. 이 전에 주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사천 명을 먹이고 여러 바구니를 남기었다. 주님은 이 기적을 이용하셔서 제자들에게 중요한 영적 진리를 가르치시고자 하셨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고 조심하라.” 이 말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물질적인 누룩에 대해 즉 빵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종종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반대로 오해하곤 했다. 예를 들면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하였을 때 그것을 실제적으로 모태에서 두번 나와야 하는것으로 이해했다. 또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서 영적인 물에 대해 언급하실 때 그녀는 실제로 영원히 솟아나는 물로 이해했다. 또한 예수님께서 자신의 살과 피를 먹어야 한다고 하셨을 때 그것을 실제적인 살과 피로 이해하려고 했다. 그런데 주님은 영적인 것을 말씀하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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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악한 것에 대해 말씀하고 계셨다. 성경에서 누룩은 항상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으며 예수님께서 천국의 비유를 말씀하실 때에도 누룩은 좋지 않은 것으로 언급되었다. 그것은 그들의 “교리”에 대한 것으로 바리새인들은 율법과 전통들에 대해 순종하는 것만이 하나님을 만족케 하시는 것이라 가르쳤다. 반면 사두개인들은 자유주의자들로 그들은 부활이나 천사들의 존재에 대해 믿지 아니했다. 그런데 누룩이 빵을 순식간에 부풀게 하여 들뜨게 하듯이 거짓 교리들은 교회에 들어오면 순식간에 여러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사람들로 하여금 들뜨게 만든다. 고린도 교회에서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취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일로 인하여 슬퍼하기보다 그들은 우쭐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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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누룩에 대해 언급하실 때 빵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두고 염려하였을까?​ 성경은 “그분의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 때 빵 가져가는 것을 잊었더라.”라고 말한다. 따라서 건너편에는 빵을 구하기가 어려운 지역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곧 그들은 주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잊음으로써 염려하기 시작했다. 자기들에게 오직 빵 한덩어리만 있는데 이걸로는 모든 사람이 먹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와 같이 적은 믿음은 주님의 가르침에 대해 오해하게 하거나 그분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능력을 의지하지 못하게 한다. 주님은 종종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셨다. 주님은 다른 것보다 믿음에 문제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주님은 한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큰 믿음”이라고 칭찬하셨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주님 앞에서 자신의 믿음에 대해 얼마나 살필까? 정말 하나님의 능력과 가르침에 대해 얼마만큼의 믿음을 두고 있는가를 스스로 살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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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구원하는 믿음 - 그리스도를 고백함(13-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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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16:13-20 ¶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들어오사 자기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 곧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니 14 그들이 이르되, 어떤 이들은 주께서 [침례자] 요한이라 하고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고도 하며 다른 이들은 예레미야나 대언자들 중의 하나라고 하나이다,​ 하거늘 15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나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니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매 17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그것을 네게 계시한 이는 살과 피가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하늘의 왕국의 열쇠들을 네게 주리니 무엇이든지 네가 땅에서 묶으면 그것이 하늘에서 묶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네가 땅에서 풀면 그것이 하늘에서 풀리리라,​ 하시고 20 그때에 자기 제자들에게 명하사 자기가 그리스도 예수인 것을 그들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게 하시니라.**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들어오셨다. 거기는 이방인의 영토에 속했으며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193킬로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런데 그곳은 다양한 종교로 알려진 지역이었다. 그곳은 바알 숭배의 본거지였을 뿐 아니라 그리스 신 “판”의 사당이 거기에 있었다. 헤롯 대왕은 그곳에 아우구스투스 시져를 높이고자 신전을 건립했다. 이렇게 이방 종교들로 가득한 지역에서 주님은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것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질문이다. 그것은 주님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길이 되시기 때문이다. 주님이 누구라고 불리는 지에 대해 사람들이 여러 생각들로 갈라져 있음은 오늘날과 동일하다. 헤롯은 예수님을 두고 자신이 처형한 침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하였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능력있는 기적들과 이적들을 보고 엘리야라고 하였다. 어떤 이들은 민족적 멸망을 바라보면서 눈물로 대언한 예레미야와 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주님을 두고 예레미야라 하였다. 그러나 이들 모두 예수님에 대해 올바로 보는데 실패했다. 사람들이 주님을 바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는 한 그들은 하나님께 이르는 길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 시각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온다. 베드로는 이에 대해 올바른 믿음의 고백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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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속에서 그리스도에 대해 계시하신 것에 대한 올바른 응답이다. 이것을 계시한 것은 베드로의 지성이 아니라 그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령님이시다. 주님은 이것을 마 11장에서 앞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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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11:25-26 ¶ 그때에 예수님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오 하늘과 땅의 [주]이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이것들을 지혜롭고 분별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아기들에게는 드러내셨사오니 감사하나이다. 26 과연 그러하옵나이다. [아버지]여,​ 그것이 아버지 보시기에 매우 좋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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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절의 드러내셨다는 단어가 마태복음 16장의 “계시”와 동일한 단어인 reveal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로 주님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는 감추신 것을 겸손한 제자들에게는 계시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믿음의 고백은 이번뿐이 아니라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께서 그가 무화과나무 밑에 있었음을 언급하였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다. 예수님께서 바다의 파도를 잠잠하게 하셨을 때 배에 탔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경배하면서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렀다. 베드로 역시 그의 형제 안드레가 주님께 그를 인도했을 때 이후로 이 고백의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셨을까?​ 그것은 아마도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먼저는 그들을 감정적으로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게끔 하는 어떤 기적이나 이적도 없는 상태에서 그들이 순전히 예수님의 삶과 그분의 가르침을 보고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점이다. 지금까지의 고백에는 그들을 감정적으로 고백하게 만드는 어떤 환경들이 있어왔다. 두 번째는 그들이 가이샤랴 빌립보라는 특정 지역에서 믿음의 고백을 하게 하시고 또한 주님의 교회에 대한 언급을 하길 원하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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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거기서 교회에 대한 선언을 하신다.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주님은 반석이신 자신 위에 자신의 교회를 세우실 것이며 이 교회는 믿음이 고백 위에 세워지며 이 일을 위해 주님은 믿음으로 부르실 것이다. 교회는 “부르심을 받아 나온 모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누군가가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 안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이 믿음이 요구된다. 또한 이 교회는 이 지상에서 절대 그 맥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의 피의 맥박이 계속해서 지상의 어디에서든지 있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탄이 아무리 교회를 무너지게 하려해도 이 고동치는 맥박의 소리는 없어지지 아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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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에게는 이 믿음이 있는가? 만일 그분을 그리스도요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였다면 여러분은 그분의 몸이자 교회에 속한 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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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V. 섬기는 믿음 - 그리스도를 따름(21-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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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16:20-28 그때에 자기 제자들에게 명하사 자기가 그리스도 예수인 것을 그들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게 하시니라. 21 ¶ 그때부터 예수님께서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가서 장로들과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일들로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며 셋째 날 다시 일으켜질 것을 자기 제자들에게 보이기 시작하시니 22 그때에 베드로가 그분을 붙잡고 그분을 꾸짖기 시작하여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이 일이 결코 주께 임하지 아니하리이다,​ 하거늘 23 그분께서 돌이키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너는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내게 실족거리니라. 네가 [하나님]에게서 난 일들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에게서 난 일들을 좋아하는도다,​ 하시니라. 24 ¶ 그때에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지니라. 25 누구든지 자기 생명을 구원하려 하는 자는 그것을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로 인해 자기 생명을 잃으려 하는 자는 그것을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혼을 잃으면 그에게 무슨 유익이 있느냐? 혹은 사람이 무엇을 주어 자기 혼을 대신하게 하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자기 [아버지]의 영광 중에 자기 천사들과 함께 올 것이요, 그때에 그가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28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들 중에는 죽음을 맛보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더러 있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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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물으신 후로 이제 자신의 사역에 대해 선언하신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셔서 붙잡히시어 고난 당하고 죽임을 당하나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으심에 대해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직접적으로 계시하신 것이다. 이미 암시적으로 언급을 하셨지만 제자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
 +
 +요 2:18-22 ¶ 이에 유대인들이 응답하며 그분께 이르되, 네가 이런 일들을 행하니 우리에게 무슨 표적을 보이느냐?​ 하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성전을 헐라. 사흘 안에 내가 그것을 일으켜 세우리라,​ 하시니 20 이에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을 짓는 데 사십육 년이 걸렸거늘 네가 그것을 사흘 안에 세우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그분께서는 성전인 자기 몸을 가리켜 말씀하셨더라. 22 그러므로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신 뒤에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께서 자기들에게 이것을 말씀하셨음을 기억하고 성경 기록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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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서도 주님은 요나의 표적에 대해 언급하셨다. 그러나 이제 주님은 분명하고 평이하게 자신의 죽으심을 알리신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이야기였다. 이에 대해 베드로의 응답은 다른 제자들의 감정을 대표하는 것일 것이다.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이 일이 결코 주께 임하지 아니하리이다.” 그러나 주님은 베드로의 감정적이고 어쪄면 인본주의적인 발언에 대해 뒤로 돌으시며 “사탄아,​ 너는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내게 실족거리니라. 네가 [하나님]에게서 난 일들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에게서 난 일들을 좋아하는도다.”라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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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베드로의 말에 어떤 실수가 있었는지 생각해보자.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동일하게 생각했다. 대부분 고통과 죽음을 피하는 것을 원한다. 그것은 당연한 인간적인 모습이다. 즉 베드로는 이 일에 대해 하나님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하나님의 생각을 아는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서이다. 그 결과 베드로는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할 만큼 믿음은 가지고 있었으나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실 것을 받아들일만한 믿음은 갖지 못했다. 그런데 베드로의 말은 사탄이 예수님께 광야에서 했던 말과 같은 맥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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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4:8-10 마귀가 다시 그분을 데리고 심히 높은 산으로 올라가 세상의 모든 왕국들과 그것들의 영광을 그분께 보여 주며 9 그분께 이르되, 네가 만일 엎드려 내게 경배하면 내가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하매 10 이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너는 여기서 물러가라. 기록된바,​ 너는 [주] 네 [하나님]께 경배하고 오직 그분만을 섬길지니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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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여기서 크리스천의 삶에 중요한 믿음의 길에 대해 가르치신다. “어떤 사람이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지니라.” 주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신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은 어떤 것들을 부인 혹은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자기 부인과 포기를 헛갈려 한다.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것을 배우는 것을 두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그보다 더 큰 문제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뜻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주님은 그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포기하는 법을 배우게 할 것이다. 그러나 포기를 배운다고 해서 아직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법을 배운 것은 아니다. 주님은 먼저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것을 요구하시며 또한 그리스도의 치욕과 죽으심을 경험할 것을 요구하신다. 바울은 빌 3:​7-10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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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 3:7-10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이득이던 것들을 곧 그것들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손실로 여겼으며 8 참으로 확실히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뛰어나기 때문이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의 손실을 입고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9 율법에서 난 내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난 의를 소유한 채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10 이것은 내가 그분의 죽으심과 일치하게 되어 그분과 그분의 부활의 권능과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알고자 함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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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그분의 고난과 치욕과 죽으심에 그리스도와 일치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고난은 언제나 주안에서 견디게 될 때 값진 영광으로 인도된다. 그러나 많은 크리스천이 고난이라는 십자가를 지려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믿음에서 끝나고 있는가? 아니면 이제 그분의 뜻을 구하고 그리스도와 일치하고자 하는 믿음이 우리 안에 있는가?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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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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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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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어떤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가? 주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제 그분을 섬기고자 하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는 여전히 그 믿음을 배우지 못한 채 있는가? 주님은 우리에게 “어떤 사람이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지니라.” 라고 말씀하신다. 눅 9:23은 “날마다” 그러하기를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그것은 섬기고자 하는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마16.22-24.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