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도구

사이트 도구


마16.24-26

차이

이 문서의 선택한 이전 버전과 현재 버전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차이 보기로 연결

마16.24-26 [2017-06-20 09:04] (현재)
줄 1: 줄 1:
 +==2012년 4월 1일 주일 오전설교==
  
 +======크리스천의 삶의 본질======
 +
 +본문말씀:​ 마태복음 16장 24-26절
 +
 +=====I. 서론=====
 +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는 내가 어떻게 하랴?​”(마 27:32) 이 질문은 약 이천년 전에 본디오 빌라도가 이스라엘 백성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두고 그들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그분을 두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라고 답변하였다. 그 답변으로 인하여 주 예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배척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며 주님이 부활하신 후 약 40년이 지난 주후 70년에 이스라엘은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다. 또한 이 질문은 여전히 그 뒤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던져진 질문이기도 했다. ​
 +
 +우리는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에게 우리의 믿음과 신뢰를 둔다. 오늘 우리가 보고자 하는 마태복음 16장을 보면 우리는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어떤 마음으로 그분을 대했는지를 보게 된다. 이것은 우리 자신을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판단되므로 16장 전체를 살펴보고자 한다. ​
 +
 +또한 마태복음 16장은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 중대한 기점이 되는 장이기도 하다. 이 장에서 우리는 18절에서 주님께서 “교회”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하시는 것을 보며 또한 주님은 21절에서 자신의 수난과 부활에 대해 드러나게 알리기 시작하심을 볼 수 있다. 주님은 지금까지 자신에 대해 알리셨다면 이제부터는 십자가를 향해 눈을 고정하기 시작하신 것이다.
 +
 +=====II. 믿음이 없음=====
 +
 +마태복음 16:​1-4절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주께 와 그분을 시험하는 것을 보여준다.
 +
 +마 16:1-4 바리새인들도 사두개인들과 함께 와서 시험하며 그분께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자기들에게 보여 줄 것을 그분께 요구하매 2 그분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저녁이 되면 너희가 말하기를,​ 하늘이 붉으니 날씨가 좋으리라,​ 하고 3 또 아침에는,​ 하늘이 붉고 흐리니 오늘은 날씨가 궂으리라,​ 하는도다. 오 너희 위선자들아,​ 너희가 능히 하늘의 모습은 분별하거니와 시대의 표적들은 분별하지 못하느냐?​ 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대언자 요나의 표적 외에는 아무 표적도 그 세대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그들을 남겨 둔 채 떠나가시니라.
 +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던 당시 이스라엘에는 크게 두 종교집단이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과 전통을 준수하는 자들이었으며 사두개인들은 오늘날로 말하면 자유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부활도 천사들도 믿지 않았다. 이 두 집단은 앙숙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들이 주 예수님에 관해서는 마음을 합하여 주님을 시험하러 나온 것이다. 그들은 주님의 입을 막고자 안달이 났다. 그들이 주님께 한 요구는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자기들에게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그들의 말은 만일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준다면 그분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겠다는 것이었다. ​
 +
 +그런데 주님께서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명하는 표적 즉 기적을 보여준 적이 없었던가?​ 사실 주님은 병든 자들과 악한 영들에게 사로잡힌 자들을 치유하시고 또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온전케 하심으로써 자신이 구약에서 앞서 예언한 그 메시야라는 것을 증명해 주셨다. 그래서 침례인 요한이 감옥에 갖혀 마음이 약해졌을 때 제자들을 보내어 “선생님이 오실 그분이오니이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리오리이까?​”라고 물었을 때 주님은 “가서 너희가 듣고 보는 그것들을 요한에게 다시 보이되 곧 눈먼 자들이 시력을 받으며 다리 저는 자들이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정결하게 되며 귀먹은 자들이 들으며 죽은 자들이 일으켜지며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선포된다”(마 11:4-5)고 전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 종교지도자들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보여주신 기적과 이적을 통해서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마 12:38에 보면 주님께 한 표적을 구하였다. 주님은 그들의 요구에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후에 부활하실 것을 미리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은 주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주신 이후에도 이렇게 말하였다.
 +
 +요 6:30 그러므로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그러면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표적을 보이사 우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나이까?​ 선생님이 행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
 +믿음이 없는 마음은 어떤 증거를 보여주어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마음은 더욱 주님에 대한 시험으로 가득하다.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가 말하는 어떤 증거로도 주님을 믿으려 하지 않을뿐더러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것과 성경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가나안 땅으로 여정을 걷더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던 사람들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물이 없을 때 물을 주셨고 고기가 먹고 싶다며 불평할 때 주님은 그들에게 고기를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주를 시험하고자 하는 마음 뿐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에게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시 78:18-19 또 그들이 자기 욕심대로 먹을 것을 구하여 자기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니 19 참으로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며 말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상을 준비할 수 있으리요?​ 하였도다.
 +
 +이들의 마음에 대해 22절은 이렇게 말한다.
 +
 +시 78:22 이는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그분의 구원을 신뢰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로다.
 +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계속해서 믿지 아니하는 마음으로 가지고 주님께 그분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입증할 표적을 보여달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주님이 이 땅에서 여러 가지 표적들을 보여주시는 것을 보아왔기에 분명 하늘에서 오는 표적은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은 마귀가 예수님에게 요구했던 것처럼 쉽게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을 요구한 것과 같은 방법을 이용한 것이다. 마귀는 주님께 돌을 빵에 되게 하라고 요구했었다. 설령 주님께서 하늘에서부터 표적을 보인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것을 통해 주님을 믿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님은 그들의 마음을 알고 계셨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표적을 보여주고 계셨다. 그것은 자신의 아들을 때가 되어 보내신 것이다. 그것은 하늘 아버지의 뜻을 계시한 표적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믿고자 하는 마음만 있었다면 주님의 가르침과 그분의 행함과 보여주시는 기적들과 이적들을 통해 이분이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바로 그 메시야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서 요구하시던 것이었다. 주님은 그들에게 “시대”의 표적 즉, “때”의 표적에 대해 말씀하신다. “충만한 때가 이르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있게 하셨”다.
 +
 +주님은 그들을 두고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표현하셨다. 주님은 그들의 마음이 악함을 말씀하셨고 또한 그들이 영적으로 간음을 범한 자들임을 말씀하셨다. 영적 간음이란 참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거짓 것들을 섬기고 신으로 둠을 말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라고 말하며 그렇게 행동했지만 주님은 그들의 마음에 참된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들의 종교를 섬기고 있음을 아셨다. 만일 그들이 참 하나님을 섬겼다면 그분이 보내신 메시야를 인지하고 그분을 믿었을 것이다. 이제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그들에게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과 심판에 대한 표적을 보일 것이다.
 +
 +믿음의 마음은 가장 작은 것에서도 믿음의 기준으로 평가하나 믿음이 없는 마음은 어떤 것을 증명하여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가 아직 구원받지 아니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 주의할 점이다. 그들의 마음이 닫혀있을 때 그들에게 사실을 입증하려고 애쓴느 것은 어떤 유익도 가져다 주지 않는다. 주님은 표적을 요구하는 그들에게 “요나의 표적”외에는 언급하지 않으셨다.
 +
 +=====III. 작은 믿음=====
 +
 +마 16:​5-12절을 보면 이제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계심을 볼 수 있다.
 +
 +마 16:5-8 그분의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 때 빵 가져가는 것을 잊었더라. 6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고 조심하라,​ 하시니 7 그들이 자기들끼리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우리가 빵을 가져오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하거늘 8 예수님께서 그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오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빵을 가져오지 아니하였으므로 서로 의논하느냐?​
 +
 +제자들은 건너편으로 건너갈 때 빵 가져가는 것을 잊었다. 그들은 빵 한 덩어리만 가지고 간 것이다.
 +
 +막 8:14 이제 제자들이 빵 가져오는 것을 잊었으므로 배에는 그들에게 빵이 한 개밖에 없더라.
 +
 +그 때에 주님은 그들에게 그들이 앞서 만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 대한 주의를 주셨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고 조심하라.” 그러나 제자들은 이 의미를 깨닫지 못했고 오히려 오해했다. 오히려 그들은 “누룩”이란 단어를 크게 들은 것 같다. 그들은 주님께서 빵에 대해 언급하고 계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끼리 의논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빵을 가져오지 않아서 주님이 걱정하고 계신거야!” 그것이 그들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주님은 빵에 대해 걱정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퍼뜨리는 잘못된 교리에 대한 경고를 주시고자 함에 있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부르셨다. 빵에 대해서라면 주님은 이미 그들에게 그분께서 공급하시는 주이심을 보여주셨다.
 +
 +마 16:9-10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먹고 너희가 몇 바구니를 거두었으며 10 빵 일곱 개로 사천 명이 먹고 너희가 몇 바구니를 거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느냐?​
 +
 +그들은 오병이어의 기적(마 14:17)뿐 아니라 그 뒤에도 동일한 기적(마 15:34)을 보여주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께서 빵에 대해 걱정하신다고 잘못 생각했던 것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
 +마 6:31-33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우리가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 모든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나니)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한 줄 아시느니라. 33 오직 너희는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이와 같이 적은 믿음은 주님의 뜻에 대해 잘못된 생각 혹은 오해를 하게 된다. 종종 제자들과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오해하곤 했다. 주님이 영적인 것들을 언급할 때면 여기서와 같이 물질적인 것으로 이해했고 물질적인 것들은 영적으로 오해하곤 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다고 했을 때 니고데모는 실제로 어머니의 뱃속에 다시 들어가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주님은 우리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했다. 수가성의 야곱의 우물가에서 주님은 한 여인에게 성령님을 두고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을 언급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실제적으로 솟아나는 샘물로 이해했다.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에 주님은 영적 체험을 두고 말씀하시며 자신의 살과 피를 먹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음을 언급했으나 사람들은 그것을 실제로 먹는 것으로 알아듣고 그 의미가 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적은 믿음은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자 하는 영적인 것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
 +적은 믿음을 가진 성도는 하나님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평향적인 생각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적은 믿음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공급하심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다. 심지어 제자들에게서 보는 바와 같이 주님이 이미 그것을 보여주셨음에도 과거의 경험을 기억하지 못하기도 한다. 주님은 “기억하지 못하느냐?​”고 책망하신다. 주님께서 적은 믿음에 대해 말씀하신 구절들을 살펴보자.
 +
 +마 6:30 그러므로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입히시거든,​ 오 너희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물며 너희는 더 잘 입히지 아니하시겠느냐?​
 +
 +하나님은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이시다. 주님은 우리에게 공급하시는 분이시다.
 +
 +마 8:26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오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매우 고요하게 되거늘
 +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배에 타고 있었다. 그들의 두려움은 주에 대한 확신보다 더 강하였다. 강한 파도와 넘치는 물결을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천직이 어부이던 제자들도 두려워하였다. 그들은 경험적으로 그 파도의 세기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주님에 대해 확신하기를 원하신다.
 +
 +마 14:31 예수님께서 즉시 손을 내미사 그를 붙잡으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오 믿음이 적은 자여, 어찌하여 의심하였느냐?​ 하시니라.
 +
 +적은 믿음은 하나님에 대해 의심하게 만든다. 과연 하나님께서 나를 주님이 계신 그곳까지 안전하게 보호하실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으며 물위를 걷고 있던 베드로도 출렁이는 물결을 보고 이 물결이 자신을 삼킬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에 대해 확신하기를 원하신다.
 +
 +마 16:11-12 내가 빵에 관하여 너희에게 그것을 말하지 아니하고 너희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말한 줄을 어찌하여 너희가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 12 그제야 그들이 그분께서 빵의 누룩이 아니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교리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명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
 +제자들은 주님의 책망을 들은 후에야 주님께서 “빵”에 대해 말씀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비로소 주님의 의도를 제대로 알게 된 것이다.
 +
 +=====IV. 구원하는 믿음=====
 +
 +마 16:13-15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들어오사 자기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 곧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니 14 그들이 이르되, 어떤 이들은 침례자 요한이라 하고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고도 하며 다른 이들은 예레미야나 대언자들 중의 하나라고 하나이다,​ 하거늘 15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나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니 ​
 +
 +이제 주님은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으로 오셨다. 여기서 말하는 빌립보는 마케도니아 지방에 있는 곳을 말하지 않는다. 가이사랴의 빌립보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193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이곳은 바알 숭배의 중심지이기도 했으며 그리스의 목약의 신인 “판”의 신전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거기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물으셨다. “사람들이 나 곧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
 +
 +이것은 구원에 있어 중요한 질문 중 하나이다. 그분이 누구인지를 알며 그분의 사역을 이해하는 것은 구원으로 향하는 첫단계와 같다. 사람들은 주님을 두고 침례자 요한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헤롯왕은 예수님을 두고 침례자 요한이 부활했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고 했다. 엘리야는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이 임하기전 엘리야를 보내시겠다고 했던 것을 사람들이 기억했을 것이다. 주님의 기적과 이적을 통해 사람들은 주님이 엘리야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레미야라고 생각했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대언자라 불리며 이스라엘의 부패와 패망을 두고 슬피 울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레미야가 다시 부활하여 올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은 대언자들 중 하나 즉 대언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님을 두고 “그 대언자”라고 칭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대언자”를 일으키실 때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조언했다. 침례인 요한이 침례의 사역을 했을 때 사람들은 사람을 보내어 요한이 “그 대언자”인지를 물었다. 그러나 주님을 두고는 “그 대언자”인지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그들의 불신의 결과였을 것이다. 그들은 주님이 아무리 기적과 이적을 통해 자신이 “그 대언자” 즉, 메시야라는 점을 입증하였어도 그들은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대언자”라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은 것이다.
 +
 +그러나 주님을 “그 대언자”로 믿은 사람들이 있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러나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다. 주님은 그 동일한 질문을 여러분에게도 던지신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누구라 생각하는가?​ 이스라엘 백성은 그분이 메시야가 아니라고 배척했으며 결국 그분을 십자가에 내어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신의 죄들로 인해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성경대로 셋째날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오기를 거부한다. 다른 사람들이 주님에 대해 잘못되이 믿으려할 때 베드로는 주님께 자신의 믿음의 고백을 한다. ​
 +
 +마 16:16-17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매 17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그것을 네게 계시한 이는 살과 피가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
 +
 +베드로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의견을 따라가지 않았다.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다수의 의견은 잘못된 경우가 많다. 주님은 영적인 문제에서는 우리가 다수의 의견에 휩쓸리기보다 바른 판단을 하기를 원하신다. 한국에서 바른 신앙을 유지하기는 때로 어려워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새벽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이상한 교회로 생각한다. 주님과 가까운 교회가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새벽예배는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존재한다. 나는 새벽기도나 새벽예배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규칙이 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주님께 기도드리는 것이 오직 새벽에 교회와서만 가능한 일인지 묻고 싶다. 새벽기도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보다 자신의 체험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
 +한 때 우리나라에서는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외지 않으면 이단으로 간주하던 때가 있었다. 탁명환씨가 출판하던 이단관련 책에서 그렇게 주장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많이 알려지기도 했기에 문제 삼지 않지만 여전히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사도신경은 천주교의 잔재물이지 교회를 위한 것이 전혀 아니다. 그럼에도 천주교에서 나온 장로교회는 그곳의 잔재물을 지금도 갖고 버리지 못한 셈이다.
 +
 +베드로는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따라가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계시하신 것을 더욱 붙들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것은 우리를 구원하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인간의 이성적 판단에 따른 결과가 아니다.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것들을 계시하심으로써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다.
 +
 +고전 2:10-12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으로 우리에게 그것들을 계시하셨으니 성령께서는 참으로 모든 것 즉 하나님의 깊은 것들까지도 살피시느니라. 11 사람의 것들을 사람의 속에 있는 사람의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것들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이제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난 영을 받았으니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함이라.
 +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으로 주님은 겸손한 자들에게 이것을 계시하신다. 스스로 지혜있다 하며 교만한 자들 즉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는 주께서 감추시고 겸손한 제자들에게는 계시하신 것이다. 마 11: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오 하늘과 땅의 주이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이것들을 지혜롭고 분별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아기들에게는 드러내셨사오니 감사하나이다.
 +
 +마 16:18-20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하늘의 왕국의 열쇠들을 네게 주리니 무엇이든지 네가 땅에서 묶으면 그것이 하늘에서 묶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네가 땅에서 풀면 그것이 하늘에서 풀리리라,​ 하시고 20 그때에 자기 제자들에게 명하사 자기가 그리스도 예수인 것을 그들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게 하시니라.
 +
 +주님은 베드로의 믿음의 고백을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베드로라.” 베드로란 의미는 “돌” 혹은 분리된 바위를 의미한다. 그러나 주님은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다. 반석은 “페트라”란 단어가 사용되었다. 주님은 아람어로 말씀하셨으므로 베드로에게 “게바”라고 하셨을 것이다. 게바와 베드로 혹은 페트로스는 같은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이 반석은 베드로가 될 수 없다. 이 반석은 무엇인가?​ 그것은 베드로의 믿음의 고백이 될 것이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
 +엡 2:20 또 사도들과 대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자들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으뜸 모퉁잇돌이 되시나니
 +
 +그 믿음의 고백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 즉 메시야이시며 또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란 것이다. 즉 그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바울은 고전 3:11에서 그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직접적으로 말한다.
 +
 +고전 3:11 아무도 이미 놓은 기초 외에 능히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나니 이 기초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
 +주님은 자신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이것은 신약에서 처음으로 교회에 대한 언급이다. 또한 “지옥의 문들이 교회를 이기지 못할 것”을 말씀하셨다. 만일 여러분이 베드로와 같은 동일한 고백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대한다면 주님은 자신위에 교회 즉 “불러낸 모임”을 세울 것이고 지옥은 그 사람들을 절대 이길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구원의 영원한 안전을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신다. 또한 그것은 이 땅에서 진실되게 주님을 믿었던 사람의 믿음이 절대로 아닌 것으로 번복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성도가 자신의 믿음을 끝까지 지킬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를 끝까지 이끄신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돌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역시 살아있는 돌이 되어 교회라는 건축물을 이룬다.
 +
 +벧전 2:4-5 참으로 사람들에게는 거부당하였으나 하나님께는 선정 받은 돌 곧 보배로운 산 돌이신 그분께 나아와 5 너희도 살아 있는 돌들로서 영적 집으로 건축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도다.
 +
 +바울은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살펴보고 너희 자신을 입증하라.”고 하였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있는가? 그분께 여러분의 삶을 의탁할 수 있는가?
 +
 +=====V. 섬기는 믿음=====
 +
 +21절부터 26절까지는 이제 주님께서 베드로의 구원하는 믿음에서 더 큰 믿음으로 나아가길 원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기를 원하신다.
 +
 +마 16:21-23 그때부터 예수님께서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장로들과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일들로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며 셋째 날 다시 일으켜질 것을 자기 제자들에게 보이기 시작하시니 22 그때에 베드로가 그분을 붙잡고 꾸짖기 시작하여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이 일이 결코 주께 임하지 아니하리이다,​ 하거늘 23 그분께서 돌이키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너는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내게 실족거리니라. 네가 하나님에게서 난 일들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에게서 난 일들을 좋아하는도다,​ 하시니라.
 +
 +주님은 이제 그분의 중요한 사역을 공개적으로 말씀하시기 시작하신다. 지금까지 주님은 십자가를 공개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으나 이제는 제자들이 깨달아 알 수 있게 말씀하신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장로들과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일들로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며 셋째 날 다시 일으켜질 것을 자기 제자들에게 보이기 시작하시니”
 +
 +막 8:​32에서는 “드러내 놓고 그 말씀을 하”셨다고 말한다. 제자들은 주님의 십자가의 언급을 들으시고 놀랐을 것이다. 그들은 주님께서 왕국을 세우시는 왕으로써 오셨다고 확신했으며 이제 그분이 자신을 드러내시며 “메시야이시자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셨을 때 제자들은 자신들이 이제 승리의 편에 서 있고 분명 크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제자들은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고 앞으로 있을 영화에 사로 잡혀있을 때에 주님은 그들의 귀에 충격적인 사실을 전한 것이다. 베드로가 주님을 말리며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이 일이 결코 주께 임하지 아니하리이다.” 한 것은 충분히 우리도 가능한 것이며 또한 다른 제자들의 마음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베드로의 말에 “사탄아,​ 너는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내게 실족거리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주님은 베드로의 믿음의 고백을 들으며 그를 칭찬하셨으나 한 순간에 그는 “사탄”으로 불린 것이다. 이것은 사탄이 베드로에게 인간적인 생각을 주었거나 혹은 사탄이 하나님의 사역에 걸림돌이 되는 것처럼 베드로의 인간적인 생각이 주님께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
 +베드로의 잘못이 무엇인가?​ “네가 하나님에게서 난 일들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에게서 난 일들을 좋아하는도다.” 그는 인간적인 시각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바라본 것이다. 인간적인 시각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라. 그것은 고통과 죽음 뿐이다. 다시 부활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치욕적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마음 즉, 그분의 생각을 알지 못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반드시 십자가의 길을 걸으셔야 했다. 그것은 또한 우리를 죄의 권세와 마귀의 권세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 지금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말씀과 다툰다. “주님, 내 생각에는 이렇게 이렇게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목적과 의도를 알지 못하고 인간적인 유한한 생각을 가지고 그분의 사역을 제한한다. 그로인해 우리는 그분께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에게 그를 구원하는 믿음이 있었는가?​ 물론 있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나아가 고난당하시고 죽으실 것을 받아들일 믿음은 없었던 것이다. 베드로의 인간적 시각은 사탄이 광야에서 주님을 시험하던 것과 같은 것이다. “주님, 편하게 주의 왕국을 세우실 수 있는데 무슨 십자가의 길이라니요?​ 그것은 치욕적이고 힘든 길입니다. 주님은 당장에 하늘의 천사들을 호령하실 수 있는데 왜 어려운 길을 택하십니까?​” 그것이 우리의 사고 방식이다. 그러나 만일 주님께서 마귀가 유혹했던 것처럼 혹은 베드로가 인간적인 생각으로 말렸던 것처럼 주님이 그의 의견을 따랐다면 그분의 왕국은 세웠을지 몰라도 우리 모두를 영원히 구원할 구원의 길은 없는 것이다. 그분의 왕국은 있으나 왕국의 백성이 없다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
 +주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생각으로 살지 아니하고 십자가의 길을 걸을 것을 말씀하신다.
 +
 +마 16:24-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지니라. 25 누구든지 자기 생명을 구원하려 하는 자는 그것을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로 인해 자기 생명을 잃으려 하는 자는 그것을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혼을 잃으면 그에게 무슨 유익이 있느냐? 사람이 무엇을 주어 자기 혼을 대신하게 하겠느냐?​
 +
 +만일 누군가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려거든 즉 그분의 제자의 삶을 살으려거든 주님은 세 가지를 말씀하신다.
 +
 +  A. 자기를 부인하라.
 +  B. 자기 십자가를 지라.
 +  C. 나를 따르라.
 +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은 자기 정체성을 부인하라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며 세뇌를 시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종종 소극적인 자세를 가져오는 결과를 가져온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나의 삶의 통치권이 나에게 있지 아니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가 되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주님, 내가 나의 삶의 주인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주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해 사는 것을 말한다.
 +
 +고후 5:14-15 이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기 때문이라. 우리가 이같이 판단하므로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었으면 모든 사람이 죽은 것으로 판단하노라. 15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가져다 주었다. 사람들은 주님께서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길을 걸으라고 말씀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십자가는 “치욕적인 죽음”을 상징했다. 로마인들에 의해 행해지는 십자가의 처형은 가장 악랄한 방식으로 죄인을 죽이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시민에게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절대 십자가를 처벌하지 않았다. 십자가에 달렸던 강도들은 그런 점에서 로마 시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 십자가는 죽음을 상징했다. 마찬가지로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자신에게 죽음을 선언하는 것과 같다. 바울은 “성령을 통해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이라”고 했다.
 +
 +롬 8:13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로되 성령을 통해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
 +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지라는 말이 무거운 짐들과 문제들을 자신이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주님께 맡기라. 십자가를 지는 것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이와 같이 주님은 우리가 자신을 죄에 대하여 자신에 대해 죽은 자로서 보시길 원하신다.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 나의 의견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죽은 자의 의견일 뿐이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명령에 대해 나의 생각은 죽은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과 마귀와 육신이 주는 생각을 따르지 않는 것을 뜻한다.
 +
 +롬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너희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 그것이 너희의 합당한 섬김이니라. 2 너희는 이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오직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받으실 만하며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
 +
 +마지막으로 주님은 “나를 따르라.”라고 하셨다. 그것은 이제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다. 나의 생각을 부인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생각을 따라야 한다. 그분의 말씀대로 순종함이 있어야 한다. 순종하지 않는 것은 동의하지 않는 것과 같다.
 +
 +이것은 바울이 로마서 6장, 7장, 8장에서 보여준 진리와 같음을 알 수 있다.
 +
 +롬 8:5-6 육신을 따르는 자들은 육신의 일들을 생각하거니와 성령을 따르는 자들은 성령의 일들을 생각하나니 6 육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망이요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
 +주님은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 크리스천의 삶의 본질을 놓기 이전에 이미 십자가의 길을 통해 그것을 보이셨다. “어떤 사람이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지니라.” 그것은 크리스천의 삶의 본질이다. 그것은 주님의 제자가 되는 삶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을 소유하는 것이다.
 +
 +사도행전을 보면 주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그분의 제자로 불렸다. 또한 이 제자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그리스도인” 즉, 크리스천으로 불렸다. ​
 +
 +행 11:26 그를 만나매 안디옥으로 그를 데려오니라. 그들이 만 일 년 동안 그 교회와 함께 모이며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는데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니라.
 +
 +이 말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 혹은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들”이란 뜻이다. 크리스천의 삶은 주님께서 보여주신 바와 같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는 자들을 말한다. 여러분은 단순하게 크리스천으로 불리고 있는가? 아니면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가?
 +
 +=====VI. 결론=====
 +
 +여러분은 어떠한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같이 종교적인 열심은 있으나 구원하는 믿음이 없는 자인가? 아니면 베드로의 고백처럼 구원하는 믿음을 소유한 자들인가?​ 혹 여러분은 제자들과 같이 적은 믿음을 소유한 자들인가?​ 아니면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하는 섬기는 믿음을 소유한 자들인가?​
마16.24-26.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