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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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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3.1-12 [2019-09-14 16:07]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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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9월 8일 주일오전설교==
  
 +======우리 주님의 신앙에 대한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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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말씀: 마태복음 23장 1-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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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23: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무리와 자기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너희에게 지키라고 명하는 모든 것은 지키고 행하되 그들의 행위대로 하지는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아니하며 4 또 무겁고 지기에 힘든 짐들을 묶어 사람들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로도 그 짐들을 옮기려 하지 아니하느니라. 5 도리어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자기들의 모든 행위를 하나니 곧 그들은 성구함의 폭을 넓게 하며 자기들의 옷단을 큼직하게 하고 6 잔치의 맨 윗자리와 회당의 으뜸가는 자리와 7 시장에서 인사 받는 것과 사람들로부터,​ 랍비여, 랍비여, 하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불리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한 분 곧 그리스도이니라. 너희는 다 형제니라. 9 땅에 있는 자를 너희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한 분 곧 하늘에 계신 분이시니라. 10 또한 너희는 지도자라 불리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한 분 곧 그리스도이니라. 11 오직 너희 가운데 가장 큰 자는 너희 종이 될지니라.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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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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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주님께서는 자신의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고 그 자신의 교회가 순수한 교회로서 끝까지 남아있기를 원하셨다. 하나님께서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주었던 많은 것들이 이제 주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사역하고 있는 동안 부패하였고 진리에서 떠나 형식적인 것들이 되었다. 하지만 참된 교회는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그 순수성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순수성을 유지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본문 말씀을 통해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문제들을 짚어보고 또 주님께서 오늘의 교회들을 향해 무어라 책망하실지를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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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역사상 초기의 교회는 313년 밀라노 칙령 이후에 로마 카톨릭 교회의 등장으로 급속히 타락하게 되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다른 종교들을 상당히 포용한 결과 그 순수성을 상실하였고 또 오늘 본문에서 보는바와 같이 주님께서 경고하신 모든 것들을 실행하였다. 참된 교회는 지하로 산으로 토굴로 숨기 시작하였다. 이제 교회 시대의 마지막인 현재 우리는 마찬가지로 전체 교회가 위기 가운데 있음을 본다. 더 이상 사람들은 구원에 대해 관심을 갖지도 않는다. 많은 교회들이 카톨릭이 행했던 동일한 전철을 따라가고 있다. 많은 장로교회들이 카톨릭과 거의 흡사해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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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서 책망하시던 바래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어떤 성격과 행위가 있는지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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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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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그들의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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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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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서기관들은 율법의 교사로 알려져 있었다. 원래 서기관은 하나님의 말씀을 필사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며 공문서 작성을 위해 고대 왕들에게 임용되어 중요 요직을 맡기도 하였다(삼하 8:17). 바빌론 포로 이후로는 율법을 전문적으로 가르칠 율법학자의 개념이 매우 중시되었으며 그들의 일은 율법을 연구하고 해석하여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이들은 오늘날의 개념으로 보면 법률전문가였다. 구약의 에스라는 서기관이었으며 그는 유대 땅으로 돌아온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해주고 가르치는 일을 진행하였다.
 +
 +“바리새”란 “구별된 자”란 뜻을 갖는다. 바리새인들은 마카베 전쟁 이후로 가장 강력한 종교적인 당파가 되었으며,​ 이들은 이스라엘이 물려받은 율법 및 조상들의 전통을 존중하고 일상생활의 사소한 데에 이르기까지 이 율법을 정확하게 지키려는 열정을 품고서 메시야에 대한 약속들의 성취를 인간 편에서 확보하려고 분투했다. 이들의 운동은 처음에는 평신도에서 시작된 운동이었지만,​ 오래지 않아 이들은 서기관 계층과 긴밀히 연결되었다. 이들은 율법과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전통들을 냉혹하게 적용하고자 하였다.
 +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사역하실 때 바리새인들은 공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고 이스라엘 민족에서 많은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모세가 백성을 재판하려고 앉았듯이(출 18:18) 이제 서기관들은 율법을 가르치고 그 의미를 해석하였고 바리새인들은 율법과 전통의 무거운 짐들을 백성들에게 부과하고 있었다. 주님께서 “무엇이든지 그들이 너희에게 지키라고 명하는 모든 것은 지키고 행하되”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가르침에 복종을 추가하신 데는 이유가 있다. 주님께서 “그러므로”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음을 주의를 가지고 대해야 한다. 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으므로 당연히 자신이 가르치는 것들에 스스로 복종해야 했다.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그들은 모세의 권위를 계승한 자들이고 또한 모세의 율법을 강론하는 자들이므로 그들은 본이 되어야 하는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가르치는 율법에 복종을 해야 하나 그러하지 못하였다. 또한 그들이 율법을 잘못 해석하기도 하였고 율법의 명백한 의미를 회피하고자 “고르반”(막 7:9-13)과 같은 고안품을 만들어낸다든지 자기들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궤변을 만들어 내고, “이것은 해도 되고 저것은 해서는 아니 되며 안식일에는 일을 하면 안 되기 때문에 이삭을 따먹어서도 안 된다”는 등 여러 가지 끝도 없이 구별들을 만들어내었다. 주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그들의 모든 누룩에 대해 경고를 주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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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주님은 세워진 권위들에 대해 모든 면에서 적법하게 복종할 것을 명령하고 계신다. 우리 위에 세워진 사람들이 자기들의 의견들에서 언제나 옳지는 않을 것이고 그들의 성격 역시 언제나 우리의 존중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 위에 세워진 바로 그 사실이, 그들이 우리에게 지시하는 것들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의무에게서 다르지 않다면 우리가 그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지시에 복종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더 높은 권위에 있는 자들이 그들의 지위에 합당하지 않을지라도 우리가 그들에게 복종하는 것은 겸손을 행사하고 하나님의 뜻에 동의하는 것이다. “모든 혼은 더 높은 권력들에 복종할지니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은 권력이 없으며 이미 있는 권력들도 [하나님]께서 임명하셨느니라. 2 그러므로 누구든지 권력에 거역하는 자는 [하나님]의 규례를 거역하나니 거역하는 자들은 스스로 정죄를 받으리라.”(롬 1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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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로운 점은 종교지도자들을 책망하는 이 장에서(마 23장) 주님께서 제사장들을 정죄하거나 책망하고 계시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제사장들은 전체적으로 보면 주님의 가르침을 반대하는 일에 주도적인 자리에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수제사장들은 사두개인들로 이루어졌는데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반대하는 일에 주도적이었다. 사두개인들은 아마도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의 우두머리로 제사장 “사독”을 세웠는데 거기서 이름이 유래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세속과 결탁하여 정치적인 입지를 가지기 시작하면서 율법에서 가르치는 영적인 것들을 거부하였다. 그들은 죽은 자들의 부활이나 천사의 존재에 대해 부정하였다. 그들은 공회에서 지도적인 당파로 정치적인 책임을 주로 맡았으며 로마 사람들과 타협하더라도 유다 백성에게 남아 있던 정치적인 자유의 마지막 몫이라도 지켜보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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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사도행전 역사의 처음을 보면 “제사장들의 큰 무리도 믿음에 순종하”(행 6:​7)였다고 말한다.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며 그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해야 하나니 그는 만군의 {주}의 사자니라.”(말 2:7) 이것이 주님께서 제사장들을 세우신 목적이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의 때에는 교사와 제사장간의 임무가 분리가 되었으며,​ 서기관들은 백성을 가르쳤고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섬기는 일을 하고 있었다. 율법 글자의 세밀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우쭐대던 서기관들은 오히려 율법의 영적 의미를 가르치신 거룩한 교사이신 분에게 매우 강렬하게 적대적이었다. 제사장들은,​ 언제나 사두개인들인 지도자들(수제사장들)을 제외한다면 그렇게 적대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성전에서 섬기는 일들로 분주하였으며 그들은 전체적으로 대중의 교사들로 인지되지 않았으며 아마도 서기관들처럼 그렇게 영향력이 있지 못한 것처럼 보이며 백성의 눈에 그다지 현저하게 드러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주님은 율법을 성취하러 오셨기에,​ 주님은 큰 절기들에 참석도 하셨고 자신이 치유하신 나병환자들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그의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선물을 드릴 것을 지시하기도 하셨다. 주님은 제사장들의 사역에 방해하지도 않으셨고 이 번 장에서 보듯이 제사장들의 삶과 행위에 대해 비난하지 않으셨다. 반면 수제사장들은 주님께 적대적이었는데 아마도 수제사장들이 자기들의 세력권으로 인지하고 있던 성전에서 주님께서 권위를 행사하시고 또 성전 구역에서 장사하던 상인들을 내어 쫓음으로 수제사장들의 수익을 줄이는데 일조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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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기관들은 주님을 반대했고 수제사장들도 그러하였는데 두 경우 모두 이기적인 동기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이기심을 주의하고 그것과 싸워야 한다. 이기심은 혼의 생명을 독으로 물들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주님을 대적하게 세우며 그들의 마음속에 “당신의 뜻대로가 아니라 내 뜻이 이루어지리라.”라고 말하도록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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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그들의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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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아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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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율법 주변에 울타리를 치는” 그들의 실행으로 율법을 아주 무겁게 만들고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는 멍에로 만들어 버렸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관련해 그들은 경직되고 피곤하게 만드는 규정들을 세웠으며 마가복음(막 7:4)에서 언급한대로 그릇들을 씻는 것들과 관련해서도 세세한 규칙들을 세웠다. 하지만 그들 스스로는 자기들 손가락을 가지고도 그 짐을 움직이는 것을 도우려 하지 않았다. 거룩하고 자신을 부인하는 삶을 사는 교사라면 자기가 사람들에게 지게 하는 짐을 짊어지는 본이 되어 사람들을 도울 것이다. 그런 행위는 그의 회심이 실제임을 입증하고 그가 강조하는 마음의 동기들의 힘과 그가 전파하는 은혜의 권능을 보여준다. 실행이 없는 전파는 서기관들의 경우에서처럼 만족하는 영향력이 거의 없으며 사람들이 자신을 부인하고 경건한 삶을 살도록 많이 돕지 못한다. 진실로 자신을 부인하는 삶이 가장 설득력 있는 설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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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의 모든 행위들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찬사를 가져오지 아니하는 마음의 내적 순결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헌신의 외적 전시를 통해 사람들의 눈에 띄기를 애썼다. 그들은 보통보다 더 큰 성구함에 만족하고 일상적으로 입는 것보다 옷단의 가장자리와 옷술이 사람들의 눈에 잘 띄게 하였다. 성구함과 옷술을 다는 것 자체가 어떤 해를 주는 것은 아니다. 성구함과 옷술 모두 율법에서 분명하게 지시한 것들이다. 해를 주는 것은 시선을 얻고자 하는 마음에 있으며 내적으로 있는 영적인 신앙 보다 외적인 것들을 높이려는 경향 가운데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열망하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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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으뜸이 되는 것을 탐했다. 그들은 잔치와 같은 어떤 행사나 회당에서 높은 자리들을 열심히 열망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이 “랍비여,​ 랍비여”라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들의 신앙은 외적인 쇼일 뿐 그들은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도 없고 영적 거룩함에 대한 갈망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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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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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존중의 칭호를 구해서는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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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는 랍비라 불리지 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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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한 교사와 한 아버지와 한 스승(흠정역에서 지도자로 번역됨)만이 있다. 주님의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을 높이거나 드러내려는 어떤 구별이나 으뜸이 되기를 추구해서는 아니 된다. 주님의 사람들은 모두 형제이다. 말씀을 단지 글자로만 취해서는 아니 된다. 그렇게 한다면 바리새인들을 따르는 것이다. 그들은 글자의 노예였지만 주님의 가르침은 영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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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성경을 보면 흥미로운 부분을 볼 수 있다. 베드로는 마가를 자신의 아들처럼 대하며 말하였고 마찬가지로 바울도 디모데와 디도를 그렇게 대했다. 바울은 자신을 고린도에서 회심한 사람들의 영적 아버지로서 기술하였다(고전 4:15). 요한은 자기가 쓰는 누군가를 “아버지들”로 불렀다(요일 2:13). 히브리서(히 13:7, 17)에서 우리를 다스리는 자들에게 복종할 것을 지시받는데 여기서 다스리다는 그리스 단어는 “주인”이라는 단어에서 왔다. 이들은 모두 주님의 말씀을 대적하거나 거부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이들은 그것들을 칭호로 사용하고 있지 않으며 그것들을 자랑하고 있지도 않다. 주님께서 “땅에 있는 자를 너희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라고 하셨을 때 육신의 친 아버지들을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님을 생각해보자. 육신의 아버지들은 그들을 실제로 낳은 부모로서 아버지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주님께서 이 번 장에서 경고하고 계시는 것은 사람들이 높이는 칭호에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베드로나 바울이나 요한은 실제적인 영적 역할을 말하고 있다면 이 번 장에서 주님께서 경고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높이는 칭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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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천들은 이런 칭호들을 추구하려고 해서는 아니 된다. 그런 칭호들을 높여서는 아니 된다. 만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그런 칭호들이 우리에게 온다면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것을 높여서는 아니 된다. 그것을 거부한다고 해서 참된 겸손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허식일 수 있다. 누군가 말씀을 잘 가르치는 자들을 자신의 영적 아버지로 부른다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것이 높임의 칭호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어려운 가르침은 마음에서 겸손하고 다른 사람들을 우리 자신보다 더 높게 생각하는 생각의 낮아짐에 있다. 우리는 다 형제이며 다 하나님 아버지를 둔 가족의 지체들이며 한 스승 아래서 배우는 제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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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진실로 겸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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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위대하고 가장 성숙을 향해 진보한 크리스천들은 기꺼이 모두의 마지막이 되고 모두를 섬기는 자가 되기를 동의할 것이다. 겸손에서 더욱 진보할수록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분에게로 우리를 더욱 가까이 이끈다. 그리스도의 신앙의 첫 원리는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는 것이다. 주님은 이 말씀을 반복해서 하셨으며(눅 14:11, 눅 18:14) 그분의 사도들도 그것을 반복하였다(약 4:6, 벧전 5:5). 주 예수님은 상산수훈의 처음부터 겸손의 복됨에 대해 가르치셨다. 주님은 자신의 거룩한 성품과 자신의 삶의 온유와 겸손을 통해 자신이 가르치는 것을 보여주셨다. 거룩한 성경에서 이것이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그렇게 자주 반복함으로써 우리가 겸손의 깊은 중요함을 느끼는데 도우며 우리로 하여금 겸손의 소중한 은혜를 더욱 개발하도록 촉구하기 위함이다. 겸손이 없이는 생명으로 이끄는 좁은 길에서 실제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아니 그 좁은 문을 열어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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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리새인들은 자신을 높였고 높임 받는 칭호들을 사랑했으며 높은 자리를 사랑하고 사람들의 찬사를 사랑했다. 크리스천들은 분명히 그리스도에게서 배워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 위에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을 위한 안식을 찾으리니 30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마 11:29-30) 스스로를 높이는 것은 영적 파멸에 이를 것인데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들을 물리치”(약 4:6)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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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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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위에 세워진 자들에게 적법하게 모든 일에 복종하되 선하고 친절한 자들 뿐 아니라 심술궂은 자들에게도 그리하여야 한다. 우리는 바리새인들처럼 말하고 행하지 아니하기보다 차라리 행하고도 말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께서는 “네 오른손이 하는 것을 네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다. 보이기를 사랑하는 데서 피하고 사람들의 찬사를 받는 칭호들을 사랑하지 말라. 그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받아들이되 겸손으로 옷입으라. 높아짐의 독은 혼의 생명을 망칠 것이다. 지속적으로 겸손에서 자라나도록 간절히 기도하라.
마23.1-12.txt · 마지막 수정: 2019-09-14 16:07 작성자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