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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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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4.1-11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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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2월 9일 주일오전설교==
  
 +======예수님과 시험======
 +
 +본문말씀:​ 마태복음 4장 1-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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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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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은 예수님께서 지상사역을 시작하기 앞서 마귀에게 시험받으신 것을 보여준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그럼에도 그분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는 것은 우리 역시 시험을 피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이유로 시험을 받으셨나?​ 본문말씀을 통해서 시험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
 +=====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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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4:1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들어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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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마귀에게 시험을 받을 장소인 광야로 가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성령께서는 왜 그분을 마귀의 시험을 받는 곳으로 인도하신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시험이었다. 주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 오셨는데 그 과업을 하기 앞서 주 예수님께서 과연 그 일에 합당하신 분인지를 입증하셔야 했다. 첫 사람 아담을 생각해보라. 그에게 주 하나님께서는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 땅을 정복하라. 또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라”(창 1:26)고 명령하셨는데 인간은 그에게 맡겨진 통치에 대해 에덴 동산에서 합당하지 못함을 보여주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아담으로 오셨다.
 +
 +예수님과 아담과 이브가 받은 시험은 비슷한 면과 다른 면이 있다. 예수님께서 세 가지 영역에서 시험을 받았던 것처럼 이브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고 “먹기에 좋고 눈으로 보기에 아름다우며 사람을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나무”(창 3:6)라고 여기고 거기서 나는 열매를 따서 먹었다. 그러나 시험의 결과는 달랐다. 아담과 이브는 시험에서 실패한 반면 예수님은 시험에서 승리하셨다. 아담과 이브는 그들이 받은 시험에 대해 좋은 조건 가운데 있었지만 실패하였고 예수님은 좋지 않은 조건 가운데 있었음에도 승리하셨다. 아담과 이브는 먹을 곳이 풍부한 곳에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먹기에 좋은” 열매를 탐내었다. 그들은 온 땅의 지배자로 모든 영광을 소유함으로써 “눈으로 보기에 아름다운”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눈에 더 원하였던 것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주는 것이었다. 그들은 또한 모든 동물들의 이름을 지을만큼 하나님의 형상을 지음을 받은 존재였으며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며 그분과 교제하는 지혜로운 이들이었다. 소위 신들의 영역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주는 지혜가 더욱 탐스러워보였다. 반면 예수님은 40일 동안 주리신 상황이었으며,​ 또한 마귀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성전의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멀쩡함을 보임으로써 사람들의 영광을 취하라는 유혹을 했을 때 그것을 거절하셨으며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이 가장 지혜로운 행위는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것임을 보여주셨다. 주님은 그분이 잃어버린 것을 찾으러 오신 분으로써 그리고 온 인류를 위하여 구속을 제시하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심을 보여주셨다. 이 시험의 기간이 끝나고 주님께서 비로소 공생애 즉 과업을 시작하셔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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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를 인도하사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우리를 건지시옵소서.”라고 기도할 것을 가르치셨다. 그런데 여기서 성령님께서는 그분을 시험의 장소로 인도하셨다. 때로 우리는 모든 시험이 마귀로 부터 오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직접 시험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곧 네가 사랑하는 네 유일한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거기서 내가 네게 일러 줄 산들 중의 하나에서 그를 번제 헌물로 드리라.”(창 22:1)라고 명령하심으로써 그를 시험하셨다. 또한 다윗을 시험하여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과 유다의 수를 계수하도록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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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하 24:1 다시 {주}의 분노가 이스라엘을 향해 타오르매 그분께서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움직이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수를 세라, 하고 말하게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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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의 경우 사탄이 그 시험하는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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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상 21:1 사탄이 이스라엘을 대적하려고 일어나 다윗을 선동하여 이스라엘의 수를 세게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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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시험이 하나님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야고보는 우리에게 그런 마음을 버릴 것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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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1:13-15 아무도 자기가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악으로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의 욕심에 이끌려 유혹을 받을 때에 시험을 받나니 15 그런즉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완료되면 사망을 낳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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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우리는 두 종류의 시험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경우와 같이 자신의 성도의 믿음을 시험하여 입증하거나 완전하게 할 경우가 있으며 다윗의 경우와 같이 죄를 범하게 하는 시험이 있다. 먼저 알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범하도록 우리를 시험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것이 야고보가 말하는 바이다. 주님은 우리를 단련하고 완전하게 하려고 시험하신다. 이것은 마치 공장에서 만드는 제품이 성능과 품질에 문제가 없는지 여러 가지 테스트 즉 시험을 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입증을 위한 것이다. 즉 아브라함의 예와 같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하시는 시험의 이유는 우리의 믿음을 입증하기 위함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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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주님은 마귀로 하여금 우리를 시험하도록 허락하시기도 한다. 거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욥기를 보면 욥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마귀에게 자랑하셨다. 마귀는 욥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믿음이 신실하고 진실한 자가 된 것이지 그를 시험하여 좋지 않은 것들을 그의 삶에 주게 된다면 그는 분명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라 하였다. 주님은 그에 대해 마귀에게 욥을 시험할 것을 허락하신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주님은 우리의 미래를 이미 아신다는 점이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지만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믿음과 영적 성장을 위하여 그것을 허락하신다. 욥은 혹독한 마귀의 시험 아래서도 주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았으며 자신의 의를 버리지 않았다. 다윗의 경우 이스라엘의 죄악을 두고 주님은 기뻐하지 않으셨으며 그들을 칠 이유로 마귀에게 다윗을 시험하도록 허락하셨다. 이 경우 다윗은 마귀의 시험에 넘어졌고 이스라엘의 많은 수가 죽임을 당하였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하여금 사람의 수를 의지하지 않도록 교훈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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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시험은 또한 우리의 정욕으로부터 온다. 다윗은 마귀의 선동을 받을 때 그의 교만한 마음으로 인하여 넘어졌다. 야고보는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의 욕심에 이끌려 유혹을 받을 때 시험을 받”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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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부터 오는 시험은 우리를 강하게 하고 믿음을 굳건하게 하며 영적으로 성장하게 하고 무언가를 배우게 하려 함에 있다. 그렇지만 겉으로 볼 때 이 시험은 때로 욥이 당하였던 것처럼 매우 혹독한 경우가 있다. 자동차 공장에서 차를 만든 후 그 차의 품질을 점검하기 위해 행하는 테스트는 매우 극한적인 상황으로 차를 움직이거나 환경 가운데 둔다. 아주 덥거나 추운 환경에서 차의 성능에 문제가 있는지 점검하고 또한 엔진의 최대 출력으로 맞추어놓고 몇 시간동안 가동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험도 그러하다. 때로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매우 견디기 어려운 상황을 주시거나 환경에 두시곤 한다. 잊지 말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시험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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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10:13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시험 외에는 너희가 어떤 시험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하나님]은 신실하사 너희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시험 당하는 것을 너희에게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또한 그 시험과 함께 피할 길을 내사 너희가 능히 그것을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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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부터 오는 모든 시험은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시험이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시험은 나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우리 모두는 시험 아래 놓이곤 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신실하시다. 주님은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대해 신실하게 입증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시험 당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신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여러분을 마치 자동차 엔진의 최대 출력으로 돌리듯이 여러분이 “이것이 나의 견디는 한계”라고 느끼는 그 때에도 주님은 우리를 잘 알고 계신다는 점이다. 주님은 우리가 그 시험은 능히 감당할 수 있음을 아신다. 또 한 가지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 시험을 감당할 은혜를 베푸심으로써 그 일을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 우리는 종종 그런 특별한 체험을 하곤 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그 시험의 순간에 우리로 하여금 피할 길도 주신다. 따라서 “불가항력적으로 내가 시험에 빠졌다”라고 우리는 말할 수 없다. 시험의 순간에 죄를 범하지 않을 길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믿음과 신뢰의 영역에서 실패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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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까지가 크리스천과 시험에 대한 것이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과 시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예수님은 그분이 하나님이셨으므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과연 예수님은 죄를 범하실 수 있었을까?​” 만일 우리가 “그분은 원래부터 죄를 범하실 수 없는 분이셨다”라고 답한다면 “그분이 시험을 당하여도 넘어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면 그분이 당한 시험이 어떻게 진정한 의미에서 시험이 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만일 “예수님께서 죄를 범하실 수 있었다”라고 생각한다면 이것 역시 “성육신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죄를 범하실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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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영으로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으로써 그분은 죄를 짓지 않으신다는 점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점을 언급한다. 바울은 예수님께서는 “죄를 알지 못하였”음을(고후 5:21) 말하였으며,​ 베드로는 예수님께서는 “죄를 짓지 않으셨다”고(벧전 2:22) 말하며, 사도 요한은 예수님 안에는 “죄가 없다”고(요일 3:5)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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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후 5:21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 못한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22 그분께서는 죄를 짓지 아니하시고 입에 교활함도 없으시며\\
 +요일 3:5 그분께서 우리의 죄들을 제거하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알거니와 그분 안에는 죄가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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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예수님께서 모든 부분에서 죄 없는 분이심을 보여줄 뿐 아니라 그분께서 처녀 마리아를 통하여 탄생하셔야 했음을 보여준다. 모든 사람은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죄”로 불리는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다윗은 “내가 불법 가운데서 형성되었으며 내 어머니가 죄 가운데서 나를 수태하였나이다.”(시 51:7)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악한 본성 가운데 태어난 자임을 시인하였다. 따라서 만일 예수님께서 우리와 동일한 방법으로 육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하여 태어났다면 이 아담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야 했을 것이다. 주님은 “죄”라 불리는 이 본성을 가지고 계시지 않을 뿐더러 실제적인 면에서도 죄를 짓지 않으셨으며 그분이 죄를 알지 못한 것은 그분께서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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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육신을 입은 면에서는 우리와 동일하게 시험을 받으실 수 있으시다. 히브리 기자는 이점을 명확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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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 4:15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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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이 점에서 마태복음에 기록된 시험을 주님께서 받으셨다. 마귀는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것들을 행할 것을 제안함으로써 그분을 시험하셨다. 하지만 이 시험은 외부에서 오는 시험이다. 우리와 반대되는 것은 내부적으로 즉 마음과 생각으로부터 주님은 어떤 시험도 받지 않으셨다. 즉 어떤 악한 생각이나 죄악이 있는 감정이 그분 안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사탄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어주었는데 이와 같은 시험에 대해 주님은 전혀 반응하지 않으신다. 주님은 죄를 범할 유혹을 대할 수 있지만 도덕적으로 그분은 그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주님은 내적으로 죄를 범하실 수 없음에도 외적은 시험은 그분께 실제적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주님에게 주어진 시험의 목적은 그분께서 죄를 범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촛점이 있다기보다 그분이 받는 엄청난 시험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행함을 입증하기 위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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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4:2 밤낮으로 사십 일 동안 금식하시고 그 뒤에 주리시니라.**\\
 +**마 4:3 그 시험하는 자가 그분께 나아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령하여 이 돌들이 빵이 되게 하라, 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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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십일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님은 주리셨다. 그 뒤에 시험하는 자 즉 마귀가 첫 번째 시험을 하였다. 사람은 굶주리면 배고픔을 달래고자 쉽게 유혹에 넘어간다. 사울 왕 때에 사울 왕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얻고자 사람들에게 저녁때까지 아무 음식이든지 먹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맹세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그 날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심히 기진한 상태가 되어 저녁때에 노략한 물건으로 날아가 양과 소와 송아지들을 취하고 땅에서 잡아먹을 때에 하나님께서 금하신 피째 먹는 죄를 범하였다(삼상 14:32). 마귀는 굶주림이 주는 욕망을 이용하여 예수님에게 광야에 널린 돌들을 들어 그것을 빵이 되게 하여 굶주림을 해결하라고 유혹한다. 여기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인지 아닌지를 마귀가 의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바와 같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냐? 그러면 이런 능력이 당신에게 있지 아니하냐?​” 마귀는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써 가진 권능을 사용하여 육신의 굶주림을 해결하라고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
 +그러나 하나님으로써 가진 그분께서 소유한 능력을 마귀의 말에 따라 사용하여 본성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은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불순종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분께서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광야에 계시면서 40일을 금식하는 인도 가운데 있었을 뿐 아직까지 그분에게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 가운데 계셨다. 주님은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내가 내 뜻을 구하지 아니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구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요 5:30)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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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마귀의 이 시험은 그가 에덴 동산에서 이브에게 했던 시험으로 인하여 이브가 나무를 보고 “먹기에 좋은” 나무라고 유혹받은 것과 같다. 사도 요한은 이것을 “육신의 정욕”이라는 범주안에 넣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육신의 욕망을 충족하는 삶을 살도록 유혹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먼저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할 것을 명령하셨다. 그러나 마귀는 “너도 살아야 할 것 아니냐? 안 그래?” 이렇게 우리에게 유혹의 말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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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4:4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
 +주님은 마귀의 시험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답하셨다. 이것은 우리가 시험의 순간에 어떻게 마귀가 우리의 생각의 영역에 던지는 불붙는 화살을 끌 수 있는지 보여준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고 하나님에 대해 믿음과 신뢰를 포기하지 않는데 있다. 주님은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라고 답변하셨다. 주님은 우리에게 육신의 생명의 문제보다 하나님께 순종의 문제가 더 중요함을 가르치고 계신다. 빵을 얻는 것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내가 순종하고 있는가이다. 주님은 하나님께서 그분께 돌을 빵으로 변하게 하라는 어떤 명령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사탄에게 순종하기보다 굶주리는 것이 아무리 심하여도 그것을 택하셨다. 사탄은 분명 그러면 네가 죽을 것이다 라는 뉘앙스를 던졌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삶의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주어짐을 보여주고 계신다.
 +
 +**마 4:5 이에 마귀가 그분을 데리고 거룩한 도시로 올라가 성전 꼭대기에 그분을 세우고**\\
 +**마 4:6 그분께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리라. 기록된바,​ 그분께서 자신의 천사들에게 너에 관한 책무를 주시리니 그들이 자기 손으로 너를 받들어 언제라도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하매**
 +
 +그러자 마귀가 다른 시험을 위해 그분을 거룩한 도시로 올라가 성전 꼭대기에 그분을 세웠다. 그것은 주님을 광야에서 어쩌면 아라비아에 있는 호렙 산에서 이동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 꼭대기에 두었음을 말한다. 왜 마귀는 그곳에서 주님께 “뛰어내리라”라고 유혹하였을까?​ 그는 이번에 성경을 인용하였다. 그가 인용한 성경구절은 시편 91:​11-12이다. 이 구절은 메시야에게 주어진 보호에 대한 약속을 언급하는 구절이었다. 종종 사람들은 마귀가 이 구절을 인용할 때 약간 성경을 변경함으로써 예수님에게 적용하였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주님은 성경을 인용한 마귀에게 잘못을 지적하고 있지 않다. 단지 “주 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라고 답변하고 계실 뿐이다. 마귀가 그 장소를 택한 것은 그곳이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는 곳으로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기에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주님께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시고 안전하게 착지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대단한 분으로 그분을 따를 뿐 아니라 말라기 3:1의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놀라워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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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3:1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주]가 갑자기 자신의 성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가 기뻐하는 언약의 사자라. 보라, 그가 임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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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메시야인 것을 사람들의 주목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어떤 묘기를 통해 증명하도록 유혹하는 것이다. 그것은 주님께서 자신이 영광을 받으시되 어떤 고통이나 고난 없이 쉽게 그것을 받도록 유혹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십자가와 같은 고통을 받지 않고 쉽게 사람들에게 영접되어 왕좌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브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고 “보기에 아름다우며”라고 유혹을 받은 것과 같다. 사도 요한은 이것을 “안목의 정욕”(요일 2:​16)이라는 범주에 넣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신이 영광을 받는 것을 택하는 것이다. 어떤 분들은 이것을 “인생의 자랑”이란 범주에 넣기도 한다. 그러나 내 견해로는 안목의 정욕이 합당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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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4:7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또 기록된바,​ 너는 [주] 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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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귀의 시험에 대해 주님은 여전히 성경을 인용함으로써 답하였다. “너는 주 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이것은 두 가지를 말씀하시는 것 같다. 첫 번째로 주님은 마귀에게 “내가 네 하나님이니,​ 나를 시험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분이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과 연관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야를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그 약속은 먼저 하나님의 뜻 가운데 머무르는 삶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뜻은 저버리고 그 약속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과 같다. 주님은 이것을 통해 자신이 메시야로 계시되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있으며 또한 십자가의 고난이 그보다 먼저 와야 함을 보여주고 계신다. 영광의 왕좌에 앉기 전에 먼저 십자가의 고통이 필요함을 보여주시고 계신다.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은 역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함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신다. 종종 우리는 지름길을 택하려 하거나 우리 눈에 좋은 것을 택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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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4:8 마귀가 다시 그분을 데리고 심히 높은 산으로 올라가 세상의 모든 왕국들과 그것들의 영광을 그분께 보여 주며**\\
 +**마 4:9 그분께 이르되, 네가 만일 엎드려 내게 경배하면 내가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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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귀는 이제 마지막 시험을 주고 있다. 그 시험은 자신에게 경배하면 모든 왕국들과 영광을 주님께 주겠다는 것이다. 마귀의 제안은 많은 사람들이 유혹을 받기에 좋은 “인생의 자랑”이라는 유혹이다. 인생의 자랑 중 가장 큰 유혹은 권력욕이라고 한다. 자신이 아무리 부자여도 돈이 많아도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귀가 정죄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의 자리에 앉고 싶어했다. 마귀는 예수님께 자신에게 경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세상에 대한 통치권을 즉각적으로 소유하게 될 것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마귀에게 경배한다면 그를 하나님이라고 인정하는 것과 같으며 그것은 마귀가 원하는 바이자 그 역시 세상에 대한 통치권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이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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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아버지가 아들과 종을 두고 있었다. 아들은 공부를 하러 먼 곳으로 간 사이 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게 되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의 유언서가 제대로 전달이 될지가 염려스러웠다. 종이 일부를 취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지혜로 유언서를 작성하였고 그 유언서는 종의 손에 들려 아들에게 전달되었다. 그 내용은 모든 재산을 종에게 넘긴다는 것이었고 아들은 오직 하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유언서를 받은 아들은 망연자실하였고 유명하다는 랍비에게 하소연하였다. 랍비는 이야기를 듣고는 아버지의 지혜를 칭찬하였다. 궁금해 하는 아들에게 랍비는 종을 소유로 가지라고 조언하였다. 그러면 모든 재산이 당신의 것이 될 것이라 하였다. ​
 +
 +만일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경배하여 세상의 통치권을 소유하여도 그것은 여전히 마귀의 것이 될 것이다. 현재 마귀는 이 세상의 신으로(고후 4:4) 불리며 세상의 왕국들이 그에게 속해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세상의 모든 왕국들은 주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바뀔 것이다(계 11:15). 주님은 여전히 하나님의 계획과 그분의 때를 기다리시며 인내하고 계신다. ​
 +
 +**마 4:10 이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너는 여기서 물러가라. 기록된바,​ 너는 [주] 네 [하나님]께 경배하고 오직 그분만을 섬길지니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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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이 세 번째 답변 역시 성경을 인용함으로써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다. “너는 주 네 하나님께 경배하고 오직 그분만을 섬길지니라.” 이 역시 주 예수님께서 영으로는 하나님이시므로 사탄에게 그분께 경배할 것을 요구하실 뿐 아니라, 육신을 입은 하나님의 아들로써 주님은 인간의 가장 지혜롭고 현명한 것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을 찾고 경배하며 그분을 섬기는 일임을 보여주고 계신다. 이브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고 “사람을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나무”로 교만한 마음을 가졌으나 우리 주님은 겸손으로 옷입으셨다. 주님은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을 취하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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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4:11 이에 마귀가 그분을 떠나고, 보라, 천사들이 와서 그분을 섬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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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 마귀의 모든 시험을 물리치셨을 때 마귀는 그분을 떠났다. 그러자 천사들이 와서 그분을 섬겼다. 무엇을 섬겼겠는가?​ 예수님의 현재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였을 것이다. 주 하나님은 그 때까지 예수님을 보전하셨을 뿐 아니라 자신의 약속대로 그분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셨다. 주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셨으며 그 뒤에 모든 것이 옴을 몸소 보여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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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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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시험을 통해 마귀는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자들 역시 시험할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를 저항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배울 수 있다. 마귀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시험하였다. 마귀의 시험에 배제되는 사람은 없다. 예수님께서 말씀에 대한 신뢰와 확신으로 승리하셨듯이 우리 역시 동일한 말씀이 주어졌다. 마귀가 제시하는 것들은 우리의 영원한 유익을 위해서는 쓸모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물질적 번영이나 권력이나 그 어떤 것보다도 성도의 내적이고 영적인 관계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없다. 먼저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이 의를 구하고 그 다음 물질적 필요가 온다.
마4.1-11.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