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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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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7.1-2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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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1월 27일 주일 오전설교==
 +
 +======크리스천의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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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마태복음 7:1-2
 +
 +=====I.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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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7:1-2절은 성경에서 많은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는 부분 중 하나이다. “너희가 판단을 받지 아니하도록 판단하지 말라.” 이 말씀에 근거해서 사람들은 종종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어 누가 구원받지 않았다고 판단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것은 당신이 판단할 일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 판단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다. ​
 +
 +또한 우리의 삶의 많은 부분들은 판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엇이 선하고 악하고를 판단함으로써 선한 것을 붙들고 악한 것을 피한다.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라 판단될 때 그것을 혹은 사람을 멀리하게 된다. ​
 +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잘못된 의의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율법에서 의롭다고 여긴 그들은 스스로를 판단함에 있어 그리고 남을 판단함에 있어 그리고 우리 주 예수님을 판단함에 있어 잘못된 판단을 하였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의에 대한 것을 가르치실 때 그들에게 믿음을 강조하셨고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 이제 주님은 7장을 통해 “판단” 혹은 심판에 대해 가르치셨다.
 +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크리스천에게 오늘 말씀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다. 크리스천으로써 우리는 무엇을 판단해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가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 질문들은 너무도 중요한 이슈이다. 다행히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셨다.
 +
 +=====II. 1,2에 대한 올바른 해석=====
 +
 +먼저 1,2절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필요하다. 판단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평가”를 의미하고 두 번째는 “심판”을 의미한다. 어떤 것의 가치나 의미를 평가하는 것이 있고 무엇인가를 정죄하기 위해 “심판”하는 의미를 갖는다. 이 중에서 정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 아니다. 정죄는 하나님의 고유 권한이다. 하나님께서는 왕들과 치리자들과 재판관들을 세워 그것을 실행하도록 위임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직무를 가진 하나님의 종들이다. 누가복음 6장에는 이렇게 기록되었다:​
 +
 +**눅 6:37-38 판단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판단을 받지 아니할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아니할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함께 흔들고 넘치게 하여 사람들이 너희 품에 안겨 주리라. 너희가 잴 때 쓰는 그 척도로 너희가 다시 평가를 받으리라,​ 하시니라.**
 +
 +평가를 의미하는 판단에 대해서는 오늘 말씀이 완전히 금하고 있지 않다. 5절에서 “그 뒤에야 네가 분명하게 보고 네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내리라.”라는 말씀을 통해 다른 사람을 판단함으로써 그 사람의 영적 성장을 위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판단에 대한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
 +=====III. 판단의 전제조건=====
 +
 +====1. 우리는 미래에 판단(심판) 받을 것이다. 1절====
 +
 +우리가 구원받았던 그렇지 않던간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앞에 서게 될 것이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심판하실 백보좌 심판에 서게 될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이 사람의 모든 행위들에 따라 심판하실 것이다.
 +
 +계 20:12 또 내가 보매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져 있었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것들에 근거하여 심판을 받았더라.
 +
 +구원받은 우리들은 이 백보좌 심판에 서지 않는다. 대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서게 될 것이다. ​
 +
 +롬 14:10-13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무시하느냐?​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리라. 11 기록된바,​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굴복하고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였느니라. 12 그러므로 이와 같이 우리 각 사람이 자신에 관하여 하나님께 회계 보고를 하리라. 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를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자기 형제의 길에 걸림돌이나 넘어질 기회를 두는 사람이 없는지 판단할지니라.
 +
 +그날에 우리의 모든 동기들이 드러날 것이다.
 +
 +====2. 우리 역시 판단받는다. 2절.====
 +
 +우리가 사람들을 판단할 때 우리 역시 그들에게서 판단받는다. 어떤 판단을 하든간에 판단할 때 사용하던 그 척도로 우리 역시 잼을 당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원리를 가르친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앞서 우리는 자신을 살펴보고 스스로를 동일한 판단의 척도로 재어보아야 한다.
 +
 +롬 2:1 그러므로,​ 오 판단하는 사람아, 네가 누구이든 변명할 수 없나니 이는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들을 행하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에서 네 자신을 정죄하기 때문이라.
 +
 +이것의 좋은 예가 다윗의 정죄를 통해 볼 수 있다.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하여 간음을 범하였을 때 하나님은 나단 대언자를 그에게 보내었다. 나단 대언자는 다윗에게 한 부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부자가 있었는데 양도 많고 재물도 많아 부족함이 없지만 그에게 가난한 이웃이 있는데 그에게는 암양밖에는 없었다. 그럼에도 이 사람은 그 암양을 마치 자신의 자식처럼 사랑하고 아끼고 돌보아 주었다. 하루는 부자에게 한 손님이 왔는데 이 부자는 가난한 이웃의 암양을 억지로 빼앗아 그 양을 죽이고 요리를 해 자기 손님에게 주었다는 이야기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윗은 크게 노하여 그 사람에 대해 사형이라는 심판을 정죄했다. 그러자 나단은 당신이 그 사람이니이다. 라고 말하였다. 다윗은 왕이었고 그에게는 아내도 여럿이었고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으나 그의 이웃이던 우리야는 밧세바라는 단 하나밖에 없는 아내를 아끼고 있었는데 왕인 다윗이 그의 아내를 억지로 빼앗고 우리야를 사지로 몰아 죽게 했다. 다윗은 이미 부자에게 사형을 선언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동일한 심판으로 정죄한 셈이 된 것이다.
 +
 +====3. 분명하게 볼 때에 남을 도울 수 있다. 3-5절====
 +
 +내 자신을 먼저 판단하지 않으면 그것은 판단받는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스스로에게 해를 끼치는 셈이 된다. 그러나 자신을 먼저 판단하여 고침을 받은 후에는 남을 돕는 섬기는 일을 할 수 있다.
 +
 +주님은 진리를 선포하고 그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예를 드신다. 여기서도 3-5절이 예화로 말씀하셨다.
 +
 +**마 7:3-5 너는 어찌하여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깊이 생각하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네가 어찌 네 형제에게 이르기를,​ 내가 네 눈에서 티를 빼 주겠노라,​ 하려느냐?​ 5 너 위선자여,​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 뒤에야 네가 분명하게 보고 네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내리라.**
 +
 +예수님은 예화를 “눈”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것은 우리의 판단이 행동이나 자세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지 보이지 아니하는 동기를 말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의 동기를 억지로 해석함으로써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
 +사람들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줄 때에 그 일은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모든 일에서 그분 안에 이르도록 성장하게 하려 하”는 목적(엡 4:15)을 두고 행해야 한다.
 +
 +=====IV. 판단의 이유와 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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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판단의 이유. 6절.====
 +
 +**마 7:6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것들이 그것들을 자기 발밑에서 짓밟고 다시 돌이켜 너희를 찢을까 염려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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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판단/​분별이 필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긴 거룩한 것들과 진주들을 아무에게나 주어서는 아니되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의 말씀을 맡기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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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126:6 귀중한 씨를 가지고 나가서 우는 자는 반드시 기뻐하며 자기의 곡식 단들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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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 모든 피조물들에게 전해야 하지만 때로 우리의 입을 막을 때를 판단/​분별해야 한다. 예수님은 재판정에 섰을 때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과 기적을 원했던 헤롯에게 일언반절도 하지 않으셨다.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은 그분의 말씀을 듣기를 원치 않으며 오히려 조롱하는 유대인들에게 복음 전하기를 거부했다. 진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복음이 전해지면 그것을 마음에 담기보다 조롱하거나 짓밟을 생각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 때 필요한 것은 말씀을 전하지 않는 판단이 필요하다. 우리의 입술을 굳게 닫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긴 거룩한 것들을 개들과 돼지들에게 던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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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로 성경에서 거룩한 것들은 하나님께 바쳐진 헌물들을 뜻한다. 구약의 드려진 헌물들을 거룩한 것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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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9:13 거룩한 것들에 관하여 섬기는 자들이 성전에 속한 것들로 사는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제단에서 섬기는 자들이 제단과 함께 헌물에 참여하는 자들임을 알지 못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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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제사장도 하나님께 드려진 헌물 즉 거룩한 것을 그것이 고기가 되었든 빵이 되었든 자기에게 먹을 것이 남는다해도 절대 개에게 던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거룩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먹지 않으려거든 불태워야 한다. 또한 돼지에게 진주와 같은 귀중한 것을 던지지 않을 것이다. 돼지는 소중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가 먹을 수 없다면 그의 발에 짓밟힐 뿐이다. 하나님께 속한 소중한 것들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함부로 맡겨질 수 없다. 그들은 그것의 가치를 모른다. 구원받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믿음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 복음이 전해져야 하나 우리는 그들에게 거룩한 것들을 맡길 수 없다. 구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레위기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을 알려주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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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 11:47 곧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 먹을 수 있는 짐승과 먹을 수 없는 짐승 사이에 구별을 두기 위한 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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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그들에게 “구별”을 할 수 있는 판단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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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서 개와 돼지는 또한 거짓 교사와 거짓 대언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여러분이 이단에 속하는 어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소중한 진리들을 알려주는 것은 의미없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그것을 듣고 깨닫기 보다는 오히려 돌아서서 자기들의 교리의 약한 부분을 보강하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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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판단을 하는 이유는 그것으로 남을 정죄하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으로 남을 섬기고자 함에 있다. 우리는 때로 귀중한 진주 즉,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만한 마음을 가진 사람인지를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의 말에서 나오는 대답으로 어떤 꼬투리를 잡길 원하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같은 종교지도자들처럼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어떤 꼬투리를 잡기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입을 다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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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판단의 자원. 7-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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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판단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다가 뜬금없이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주님이 주제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12절이 그것을 보여준다. 12절은 “황금률”이라 불리는 말씀인데 그 시작은 “그러므로”라고 되어있다. 기도에 대한 이야기가 12절과 함께 이어지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연약한 인간임을 잘 알고 있다. 우리에게는 판단을 잘하기 위해 지혜가 필요한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너그러이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약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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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경우 우리에게 영적 분별력이 필요한 때에 우리는 실수하는 경우가 많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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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 1:9-11 내가 이것을 기도하노니 곧 너희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판단에서 더욱더 풍성해지고 10 너희가 뛰어난 것들을 입증하며 그리스도의 날까지 신실하고 실족거리가 없는 사람이 되며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의 열매들로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양이 되기를 구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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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우리에게 기도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우리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구함으로써 그분의 지혜를 구하고 또한 하나님께서 내 삶에서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찾아야 하며 또한 기회를 얻기위해 문을 열어주기를 간구하며 두드려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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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 판단의 원리. 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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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절에 이르러 주님은 결론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하신다. 이것은 판단의 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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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사람들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너희도 그들에게 그와 같이 행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대언자들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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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주님은 지금까지 많은 철학자들이 말한 것과 다른 것을 언급하신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이 내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을 그들에게 하지 말라.”라는 비슷한 말들을 들었을 것이다. 종종 나는 비슷한 말들을 아이들에게 하곤 했다. “네가 그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라. 그렇게 당하면 기분이 좋겠냐? 그럼 하지 말아라.” 우리의 판단은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면을 보여준다. 반면 주님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판단을 요구하고 계신다. 주님은 “하지 말라”가 아니라 “행하라”고 언급하신다. 내가 사랑받기 원한다면 사랑을 베풀라고 말씀하신다. 친절을 원한다면 친절하게 대하라고 주문하신다. 우리 말에 “말로 주고 되로 받는다”고 말한다. 사람들에게 잘 해주면 그 사람도 우리에게 잘 해주고 함부로 대하면 그 사람도 나를 함부로 대하게 된다.
 +
 +눅 6:31-36 사람들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너희도 그들에게 그와 같이 하라. 32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면 무슨 감사를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느니라. 33 너희가 너희에게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면 무슨 감사를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와 같이 하느니라. 34 너희가 어떤 자들에게 받기를 바라며 빌려 주면 무슨 감사를 받겠느냐?​ 죄인들도 준 만큼 받으려고 죄인들에게 빌려 주느니라. 35 오직 너희는 너희 원수들을 사랑하고 선을 행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려 주라. 그리하면 너희 보상이 클 것이요, 또 너희가 가장 높으신 이의 아이들이 되리니 그분께서는 감사하지 아니하는 자와 악한 자에게 친절하시니라. 36 그러므로 너희 아버지께서 긍휼을 베푸시는 것 같이 너희도 긍휼을 베풀라.
 +
 +또한 어떤 것이 그 사람이나 나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어느 누구도 스스로에게 해를 끼치려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에게 소중한 것을 주지 않으며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도리어 나에게 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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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 판단에서 주의 할 것. 13-23절=====
 +
 +13절부터 23절까지 주님은 세 가지 판단에서 주의할 것을 말씀하신다. 주께서 이 말씀을 주시는데는 15절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거짓 대언자들이 세상에 많으며 우리는 그들을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스스로를 속이지 아니하기 위함이다. 21-23에 나오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하나님의 종이며 구원에 속한 자들이라고 생각했으나 주님은 그들에게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셨다. 갈라디아서 6:7에서 주님은 “속지 말라”라고 말씀하셨다.
 +
 +====1.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
 +
 +**마 7:13-1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넓어 거기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좁아 그것을 찾는 자가 적으니라.**
 +
 +주님은 두 가지 길이 있음을 말씀하신다. 그 길의 끝은 완전히 다르다. 한 길은 생명으로 향하나 다른 길은 파멸 즉 지옥으로 향하고 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넓은 길이다. 많은 사람들이 택하는 쉬운 길이다. 문은 기회 혹은 선택을 의미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쉬운 인생을 살라 하지 않으셨다. 때로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들은 절대 쉬운 길이 아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헌신”을 요구하신다. 좁은 길로 가는 것은 쉽지 않다. 그 길이 좁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의 것들과 죄에 속한 것들을 포기하라고 말씀하신다.
 +
 +그것은 우리가 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문제에서 주저하는지를 보여준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믿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구속의 사역도 충분히 이해하며 믿는데 어려움이 없으나 그분께 신뢰와 믿음을 두는 일을 주저한다. 그리스도께 믿음을 둠으로써 나는 세상의 많은 즐거움을 포기해야 하고 또한 그 삶은 때로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을 신뢰하는 삶을 포기하게 된다.
 +
 +좁은 문과 넓은 문은 우리에게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혹은 우리에게 주어진 어떤 기회를 잡을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묻는다. 너는 정말 주 예수 그리스도께 믿음을 두며 그분을 신뢰하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쉬워보이는 길을 택할 것인가? 좁은 문은 우리의 구원과 관련되어 우리의 신앙의 출발과 연관이 있으나 삶의 중간 중간에서도 우리는 이것을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반드시 끝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넓은 길을 택하고자 하는 충동을 받는다.
 +
 +====2.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
 +**마 7:15-20 거짓 대언자들을 조심하라. 그들이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은 약탈하는 이리니라. 16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니 사람들이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거두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좋은 열매를 맺고 썩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또 썩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느니라. 19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 속에 던져지나니 20 그러므로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
 +주님은 이제 두 나무에 대해 언급하신다. 나무를 통해 우리는 그 열매를 보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참된 믿음을 두고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참생명이 우리 안에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변화되며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
 +요 15:1-2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시니 2 내 안에서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모든 가지는 그분께서 제거하시고 열매를 맺는 모든 가지는 깨끗하게 하사 그것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느니라.
 +
 +크리스천이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가 있다면 주님은 그 가지를 제거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더 이상 쓸모가 없다고 여기시고 그분의 집으로 데려가시는 것을 의미한다.
 +
 +열매는 그 나무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열매를 통해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를 알게된다. 무화과인지 포도나무인지 아니면 가시나무인지 아니면 썩은 나무인지...
 +
 +이것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준다. 내가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신뢰하는 삶을 살고있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나의 삶은 그리스도를 신뢰함으로써 변화되었는가?​ 거짓 대언자들은 겉으로는 양의 가죽을 입고 오기 때문에 알 수없다. 그러나 그 본질은 바꿀 수 없다. 속은 여전히 약탈하는 늑대의 본성이 나오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 열매로 그들을 알 수 있다.
 +
 +가끔 사람들에게서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섬기는 것처럼 여기던 사람이 갑자기 실족하여 믿음에서 완전히 떠나 부정까지 하는 경우를 보는데 정말 이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인가?​ 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정말 구원받았다면 그 사람에게는 구원받은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는 증거 즉 열매가 있다. 무엇보다도 생각할 수 있는 열매는 시험의 때에도 아름답게 피는 믿음을 말할 수 있다.
 +
 +눅 8:13 바위 위에 있는 것들은 들을 때에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이나 뿌리가 없어 잠시 믿다가 시험의 때에 떨어져 나가는 자들이요,​
 +
 +참된 믿음은 뿌리가 있는 믿음이다. 시험은 그 사람의 믿음을 잎사귀나 줄기까지는 흔들지 몰라도 그 뿌리는 아니다. 뿌리는 바람에 요동하지 않는다.
 +
 +====3.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가 구원받는다.====
 +
 +**마 7:21-23 내게,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르기를,​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대언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많은 놀라운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
 +
 +세 번째는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주님을 섬긴다고 말한다. 그러나 입술의 고백으로는 그 사람이 누구에게 속하였는지를 알 수는 없다. 오직 믿음의 순종이 필요하다. 많은 교회들이 은사주의 운동에 참여하며 방언하며 신유의 기적을 행한다고 말한다. 몇 년전부터는 은사주의가 교회의 정식인 것처럼 자리를 잡았다. 거부해야할 방언은 오히려 기독교 TV나 라디오방송에서 권장하고 있다. 오늘날 말하는 방언은 성경에서 말하는 방언과 거리가 멀다. 성경의 방언은 복음 전파를 위해 주어진 외국어를 뜻한다.
 +
 +입술의 고백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어라 말씀하실까?​ 가 더 중요하다. 주님은 나를 안다고 할 것인가? 아니면 모른다고 할 것인가? 그 해답은 “하나님의 뜻을 행함에 있다.”
 +
 +어떤 사람들은 단지 교회만 다니고 교회를 통해 주님을 섬길 생각을 갖지 않는다. 단지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에 참석함으로써 구원받는 문제만 해결된 것을 만족한다. 그러나 정말 그러할까?​ 주님을 섬기려는 마음이 없는 크리스천이라면 나는 그 사람의 구원을 의심할 것이다. 여러분 안에 주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가? 만일 없다면 구원받은 것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구원은 단순히 머리로만 이해하여 받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그분의 말씀의 뜻에 순종함이 필요하다. 믿음의 순종을 찾아볼 수 없는 크리스천이라면 그 사람의 믿음은 헛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
 +주님은 이것을 두 집에 비교하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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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들을 듣고 그것들을 행하는 자를 나는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 하리라. 25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그 집이 무너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그것을 반석 위에 세웠기 때문이라. 26 나의 이 말들을 듣고 그것들을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자는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으리라. 27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집이 무너져 그것의 무너짐이 심하였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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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이 집을 동일하게 튼튼하게 잘 짓는다. 그러나 한 집만이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 때에 남아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기초에 달려있다. 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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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생각할 때에 마지막 날에 주님은 사람들의 참된 믿음에 대해 그 사람의 고백을 흔들 것이다.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믿음을 두었다면 그분이 하신 말씀에 따라 살고자 하는 순종의 삶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믿음은 헛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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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삶의 중간에 찾아오는 고난을 통해 알 수 있다. 주님은 우리의 삶에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 때가 있을 것임을 말한다. 그 때에 여러분은 서있는가?​ 만일 서 있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참된 믿음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여러분이 서있는 것은 여러분 자신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여러분이 서있는 기초가 여러분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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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I.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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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천의 판단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어떤 선택을 요구한다. 주님은 우리가 쉬운 길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우리에게 열매맺는 삶을 살기를 요구하신다. 주님은 또한 우리에게 믿음이 가져다주는 순종의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마7.1-2.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