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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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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7.1-5 [2018-03-25 16:19]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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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3월 25일 주일오전설교==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
 +본문 말씀: 마태복음 7장 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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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7:1-5 너희가 판단을 받지 아니하도록 판단하지 말라. 2 너희가 무슨 판단으로 판단하든 그것대로 판단을 받고 너희가 무슨 척도로 재든 그것대로 너희가 다시 평가를 받으리라. 3 너는 어찌하여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깊이 생각하지 못하느냐?​ 4 혹은,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네가 어찌 네 형제에게 이르기를,​ 내가 네 눈에서 티를 빼내게 하라, 하려느냐?​ 5 너 위선자여,​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 뒤에야 네가 분명하게 보고 네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내리라.**
 +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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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디지털 및 아날로그의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다. 하루에도 많은 정보들이 우리에게 전달되고 우리에게서 나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 전달되는 모든 정보들이 다 진실 된 것은 아니다. 어떤 것들은 새빨간 거짓이 있을 수 있고 어떤 것들은 약간의 거짓이 섞인 선의의 거짓말이 있을 수 있으며 어떤 것들은 약간의 거짓이 섞인 속이기 위한 말이 있을 수 있다. 우리에게서 나가는 정보들도 동일하다. 다 옳은 것만은 아니다. 그 정보들에 대한 판단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또 우리는 전달된 정보들을 가지고 어떤 판단을 내리는가?​ 이런 문제들은 삶의 문제들 가운데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정보를 다루는 부분에서 매우 지혜로울 필요가 있음을 생각한다. ​
 +
 +마태복음 7장 1절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는 구절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들이 잘못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싶지 않을 때 이 구절을 인용하곤 한다. 본문은 우리에게 이런 의문을 들게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행동들을 심판으로 가져오는 것은 옳은 일일까? 사실 이 질문에 답하기는 어렵다! 본문 구절을 잘 해석하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마치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절대 옳지 않는 일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해하게 된다. 예수님의 말씀을 쉽게 풀이하자면,​ 남을 판단하는 일은 옳을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고 말하고 계신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구절은 우리로 하여금 남을 판단하기 앞서 먼저 생각하도록 우리를 가르친다. 이 다섯 구절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문제에 대해 중요한 것들을 가르친다. 우리가 인정하든 그렇지 아니하든 간에 혹은 인식하든 그렇지 아니하든 간에 우리는 생각의 많은 시간들을 남을 판단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기준들을 가지고 남을 판단하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삶의 문제에서 중요한 남을 판단하는 것을 두고 주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가르치고 계시는가?​
 +
 +한 번은 예수님께 사람들이 나아와 자기 형제들과 재산을 나누는 일에 주님께서 개입해주시기를 바랬다. 그 때 주님은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나누는 자로 삼았느냐?​”고 말씀하셨다. 본문의 제목은 거기서 발췌하였다. 만일 우리가 법정에서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재판관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I. 주의해야 할 경고(마 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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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7:1-2 너희가 판단을 받지 아니하도록 판단하지 말라. 2 너희가 무슨 판단으로 판단하든 그것대로 판단을 받고 너희가 무슨 척도로 재든 그것대로 너희가 다시 평가를 받으리라.**
 +
 +본문에서 “판단”으로 사용된 단어는 “심판을 선언하다” 혹은 “강하게 반대를 표출하거나 거친 비판을 표출하다”란 뜻을 갖고 있다. 이것은 심판자의 자리에서 행하거나 다른 사람의 말들과 행위들을 근거해서 심판을 선언하는 것을 말한다. ​
 +
 +예수님께서 1절에서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 말이 모든 판단이 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다른 말씀 뿐 아니라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전체적인 내용들을 근거로 판단하자면 크리스천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 대한 판단을 행하도록 부름을 받은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실 때 주님은 그것을 “판단의 법도”라 부르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판단의 근거가 되어야 함을 가르치신 것이다. ​
 +
 +눅 12:57을 보면 주님은 “참으로 또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 스스로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지 아니하느냐?​”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사람들이 무엇이 옳은지 스스로 판단하기를 원하신다. 그렇기 위해서 우리는 선과 악에 대한 근본적인 지식이 필요할 것이다. 요 7:24을 보면 예수님은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말고 의로운 판단으로 판단하라.”고 종교지도자들에게 요청하고 계신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의 근거를 삼는 실수를 쉽게 범한다. 고전 5:3-5을 보면 사도 바울은 교회가 자기 아버지의 아내와 음행의 죄를 범한 사람을 판단하여 그를 내쫓을 것을 명령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그 명령을 주면서 그를 이미 정죄하였다고 말한다. 마 7:6을 보면 예수님은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사람들을 판단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보배로운 진리들을 받아들이기에 합당하지 않은 개나 혹은 돼지인지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마 7:15-16을 보면 주님은 거짓 대언자들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삶의 열매들은 사람들을 판단하는데 매우중요한 정보이다. 고린도전서 6장을 보면 사도 바울은 장차 성도들이 “세상을 판단할” 것이라 말하고 있다. 크리스천은 앞으로 이 세상의 왕들과 재판관들로 세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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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6:2-3 성도들이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너희가 가장 작은 문제들을 판단하는 것도 감당하지 못하느냐?​ 3 우리가 천사들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하물며 이 세상 삶에 속한 일들은 얼마나 더 많이 판단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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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일서 4장 1-6을 보면 사도 요한은 모든 영들을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시험하라고 말한다. 즉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성도들로 하여금 종교들을 판단하여 그것들이 거짓인지 진리인지 구분할 것을 명령하셨다. 우리는 진리의 영과 오류의 영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마 18:15-18을 보면 교회가 죄를 범하였으나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형제를 두고 어떤 방식을 통해 징계를 집행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이것은 죄를 범하였으나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형제에 대한 심판을 교회가 집행하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구절들이 하나님의 성도들에게 올바른 지식과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의로운 판단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마태복음 7장에서 가르치시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실 마태복음 7장의 전체가 판단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렇기에 주님은 판단의 문제를 언급하기 앞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경고를 주고 계신다. 주님은 “판단하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시고 “너희가 판단을 받지 아니하도록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다. 주님은 우리의 판단에 앞서 주의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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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어떤 태도로 판단하려 하는지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 판단은 비판하거나 정죄하는 의미와 동일하게 사용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향해 그들의 잘못만을 들추어내거나 혹은 비판하려는 영을 가지고 대할 수 있다. 비평의 영을 지닌 사람은 오직 남의 잘못만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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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판단하기 앞서 우리가 다른 사람의 동기나 그들의 실제적인 상황을 모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가장 영적인 사람이었던 사무엘도 사람을 판단하는 부분에서는 실수를 범하였으며 주님은 사무엘에게 “{주}는 사람이 보는 것처럼 보지 아니하나니 사람은 겉모습을 보나 {주}는 마음을 보느니라.”(삼상 16:17)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귀로 전해 들은 것들을 근거로 해서 판단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알지 못하며 어떤 일들에 대한 마음의 동기를 명확히 알지 못한다는 점을 생각에 두어야 한다. 마치 우리가 그 사람들의 마음이나 그들의 동기를 정확히 아는 것인 양 판단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하나님의 자리에 놓으며 또 실수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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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절을 보면 주님은 “너희가 무슨 판단으로 판단하든 그것대로 판단을 받고 너희가 무슨 척도로 재든 그것대로 너희가 다시 평가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신다.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의 심판자로 세우는 자는 그 역시 동일한 척도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을 실제적인 면에서 잊어버리곤 한다. 언젠가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게 될 것이며 그 때 우리가 사용했던 척도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주님께서 “긍휼을 베푸는 자에게는 주께서 친히 주의 긍휼을 보이시고 곧바른 자에게는 주께서 친히 주의 곧바르심을 보이시며 26 순수한 자에게는 주께서 친히 주의 순수하심을 보이시고 거역하는 자에게는 주께서 친히 주의 적대하심을 보이시리니”(시 18:​25-26)라고 하신 말씀을 깊이 생각해보라.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자리에 앉는다면 우리 역시 동일하게 판단받을 것을 예상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심은 것을 거두게 될 것이다. 또한 비록 하늘에 가지 않아도 이 땅에서도 이 말씀의 원리는 그대로 이루어진다.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사용하던 척도가 그대로 자신에게 이루어지는 일들은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사울과 요나단이 전쟁에서 죽게 되었을 때 그 소식을 한 아말렉인이 다윗에게 전하였다. 그 아말렉인은 사울의 소식을 들으면 다윗이 기뻐할 것으로 여기고 자신이 사울을 죽였음을 말하였다. 그러나 그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었다. 다윗은 그의 말을 근거로 그를 판단하여 그가 주의 기름부음 받은 자에게 칼을 들었으므로 칼로 죽임당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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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에 우리는 판단의 문제에 있어 다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특히 그것이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비평이나 비난이 된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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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는 모든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비난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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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미투 운동이 한참이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에 대한 평가에 대해 우리는 조심스럽게 그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감추어진 사실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처럼 처음 우리에게 알려진 사실이 전부가 아닌 경우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떤 사건들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기도 한다. 참으로 반쪽짜리 정보들은 듣는 자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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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제조공장의 사장에 대한 일화가 있다. 그 사장은 불시에 자신의 상점들을 시찰하였다. 한번은 어떤 상점에서 한 청년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손을 주머니에 넣고 포장기계에 몸을 기대며 시간을 때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 사장은 화가 나 그에게 가서 주급을 얼마 받느냐고 물었다. 그 청년은 놀란 눈을 하면서 “삼백 불을 받는데요”라고 답변하였다. 그러자 사장은 지갑을 꺼내어 삼백 불을 주면서 그에게 “주급을 줄테니 여기서 나가서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하였다. 청년은 아무 말하지 않고 삼백 불을 받아 주머니에 넣고 떠났다. 그 때 그 상점 매니저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사장은 그에게 가서 “그 청년이 얼마나 오랫동안 일하고 있었는가?​”하고 물었다. 매니저는 “그는 여기 직원이 아닙니다. 단지 배달할 포장을 받으러 왔을 뿐입니다.”라고 답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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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우리 모두는 다 넘어져 죄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비난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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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일 1:8-10 만일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우리가 말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이며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9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10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면 우리가 그분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들며 또한 그분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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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요한은 “만일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우리가 말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이며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였다. 비록 우리가 구원받았다 할지라도 여전히 우리 안에는 죄의 본성이 있으며 우리 모두는 죄를 범한다. 우리 모두는 아직 완전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우리는 고의적으로 죄를 범하는 일을 최대한 줄인다 하여도 여전히 우리는 환경과 상황에 따라 혹은 감정에 이끌리어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다른 사람이 범한 죄가 나와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나 역시 동일하게 넘어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라. 성경에서 가장 영적인 자들 역시 넘어져 죄를 범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는 그들보다도 못하다. 그러한 생각은 다른 사람이 죄를 범하였을 때 우선적으로 정죄의 마음을 갖기보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자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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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6:1 형제들아,​ 만일 어떤 사람이 잘못에 빠지거든 영적인 너희는 온유의 영으로 그러한 자를 회복시키고 네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에 들지 않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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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으므로 비난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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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어떤 행동들과 말들에 대해 정확히 그 사람의 마음의 동기를 알지 못한다. 그 부분은 하나님의 영역이며 우리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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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여인에 대한 일화다. 그녀가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쿠키 과자를 사서 의자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자신이 앉은 의자의 한 칸 건너에 앉은 남자가 그녀와 남자 사이에 있는 의자에 놓여 있는 쿠키 과자를 만지작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그 남자가 자기 가방에서 쿠키 상자를 꺼내어 먹는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지만 그는 상자에서 쿠키를 하나 꺼내어 먹었다. 그녀는 화가 나고 열이 받쳤다. 그녀도 상자에 손을 뻗어 쿠키를 하나 집어 먹었다. 남자는 계속해서 쿠키를 꺼내어 먹었고 여자도 모든 쿠키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기에 질세라 꺼내 먹었다. 마침내 쿠키가 하나 남았다. 그 때 남자가 그 쿠키를 집더니 반 조각을 내어 입에 넣고는 여자를 바라보고 그 한 조각을 남기고 일어나 떠났다. 여자는 이 남자의 뻔뻔스러움에 말을 할 수 없었다. 정말 거만하고 무례한 남자가 아닌가! 그 때 비행기에 탑승하라는 안내방송이 있었다. 여자는 비행기에 탑승하였지만 여전히 그 남자로 인해 분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티슈를 꺼내려고 가방을 여는 순간 자신의 쿠키 상자가 가방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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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4:5 그러므로 [주]께서 오실 때까지 때가 이르기 전에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분께서 어둠의 감추어진 일들을 빛으로 가져가 드러내시고 마음의 의도들을 드러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이 [하나님]께 칭찬을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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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서 14장은 각 사람이 행하는 부분에서 각 사람이 동일하게 주님을 섬기려는 마음이 있다 할지라도 각 사람의 판단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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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 14:5-8 어떤 사람은 한 날을 다른 날보다 귀히 여기고 다른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 사람은 자기 마음에서 완전히 확신할지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해 중히 여기고 날을 중히 여기지 아니하는 자도 [주]를 위해 중히 여기지 아니하며 먹는 자도 [주]를 위해 먹나니 이는 그가 [하나님]께 감사드리기 때문이라. 먹지 아니하는 자도 [주]를 위해 먹지 아니하며 또한 [하나님]께 감사드리느니라. 7 우리 중에 아무도 자기를 위해 살지 아니하고 또 아무도 자기를 위해 죽지 아니하는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니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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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비난하지 말라. 어쩌면 그것이 하나님의 고유 영역일 수 있다.====
 +
 +롬 14:4 다른 사람의 종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 그의 서거나 넘어짐이 그의 주인에게 달려 있은즉 참으로 그가 세워지리니 [하나님]은 능히 그를 서게 하실 수 있느니라.
 +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 하나님의 법에 대한 것이 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다. 우리는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판단하는 것이 될 것이다.
 +
 +약 4:11-12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자기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자기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율법을 비방하며 율법을 판단하는 자니라. 그러나 만일 네가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을 행하는 자가 아니요 판단하는 자로다. 12 율법을 주시는 이가 한 분 계시는데 그분께서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남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
 +
 +====5.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므로 비난하지 말라.====
 +
 +롬 14:10-13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무시하느냐?​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리라. 11 기록된바,​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굴복하고 모든 혀가 [하나님]에게 자백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였느니라. 12 그러므로 이와 같이 우리 각 사람이 자신에 관하여 [하나님]께 회계 보고를 하리라. 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를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이것 즉 아무도 자기 형제의 길에 걸림돌이나 넘어질 기회를 두지 않을 것을 판단할지니라.
 +
 +다른 사람을 판단하던 내가 동일한 척도로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게 될 날이 있을 것이다.
 +
 +=====II. 살펴야할 도전(마 7:3-4)=====
 +
 +**마 7:3-4 너는 어찌하여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깊이 생각하지 못하느냐?​ 4 혹은,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네가 어찌 네 형제에게 이르기를,​ 내가 네 눈에서 티를 빼내게 하라, 하려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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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구절에서 주님은 실제적인 문제를 다루고 계신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우리는 언제나 왜곡된 관점에서 판단한다. 주님은 그런 상황을 눈에 들보를 가진 자가 작은 티를 가진 자에게서 그 작은 것을 빼내려 하는 것으로 설명하신다. 들보란 집의 천장의 기초가 되는 기다란 나무 기둥을 말한다. ​
 +
 +우리가 다른 사람의 삶 가운데 잘못을 볼 때에 사실 우리 역시 우리 안에 있는 문제들에 매여 있는 상태이다. 만일 우리가 자신이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정말로 거룩함 가운데 거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정죄하기보다 오히려 그를 사랑하고자 하며 그를 위해 기도하며 또한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찾고자 할 것이다. 그를 비난하거나 정죄함으로써 무너뜨리는 것을 구하거나 혹은 그런 일에 참여하기보다 세우고 회복하는 일에 자신을 드릴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우리 역시 나 자신의 죄들에 매여 있으며 주님은 그것을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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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가진 문제는 종종 우리 자신도 동일한 죄들이나 더 안 좋은 죄들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롬 2:1에서 그 문제를 다루었다. “그러므로,​ 오 판단하는 사람아, 네가 누구이든 변명할 수 없나니 이는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들을 행하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에서 네 자신을 정죄하기 때문이라.”(롬 2:1)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죄가 없다고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동 방식과 그들의 말과 그들의 옷차림과 같은 것들을 통해 그들 안에 있는 죄의 드러나는 표징들을 보면서도 정작 우리 안에 감추어져 있는 편견과 위선적인 영과 숨겨진 죄들에 대해서는 눈멀어 보질 못한다. 그런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위치에 서려 한다는 것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주님은 핵심을 다루고 계신다. 주님은 판단을 받는 사람의 죄보다 비판과 정죄의 죄를 가지고 있는 것이 더 큰 죄라는 것을 지적하신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삶에 보이는 결점에 대해 말하는 순간 그것은 우리 삶에 있는 큰 문제도 드러낸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것은 이웃에 대한 사랑이 결여되어 있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주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고 명령하셨다. 다른 사람이 내 기준들에 맞추어 살지 아니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무너뜨리려는 생각을 멈추고 오히려 우리는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는 자신에게서 사랑이 결여되어 있지 않은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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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높이 평가되어야 할 조언(마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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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7:5 너 위선자여,​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 뒤에야 네가 분명하게 보고 네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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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이 구절에서 매우 강력한 표현을 사용하셨다. 주님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자들을 위선자라 칭하셨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행한다면 그것은 마치 우리가 실제 우리 자신보다 더 거룩한 사람으로 행세하고 있음을 뜻한다. 주님은 그 다음 매우 가치 있는 조언을 줌으로써 우리가 쉽게 빠지는 덫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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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앞서 자신의 삶을 먼저 깨끗하게 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신다. 그런 다음에야 우리는 형제를 도울 좋은 위치에 있게 된다. 만일 우리의 마음이 깨끗하다면 우리는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형제의 눈에서 티를 뺄 수 있음을 말씀하신다. 분명하게 본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우리는 다음을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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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분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역시 넘어지기 쉬운 죄인들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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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마음이 순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주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는 하나님을 보고 언젠가 우리 역시 심판대에 서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보게 될 것이다. 성령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남을 판단하는 자리에 제대로 설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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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우리는 우리의 형제를 더욱 분명하게 볼 것이다. 그가 사랑과 긍휼과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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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마음이 주를 향해 확정되고(시 57:7) 우리의 눈이 분명하게 깨끗하게 되면 우리는 올바른 영을 가지고 범죄한 형제에게 다가갈 수 있고 잃어버린 죄인에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이전에 심판과 비난과 정죄의 영을 가지고 나아가던 것과 같이 나아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사랑과 긍휼과 도움과 회복의 영을 가지고 다가설 것이다. 그것이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6:1-2에서 말하는 바이다. 우리 안에 타락한 형제를 도우며 회복하고자 하는 바램이 있어야 하며 잃어버린 혼을 건지고자 하는 영의 소망이 있어야 한다. 만일 비판과 정죄의 영을 가지고 잃어버린 자들에게 나아간다면 우리는 그들을 영원한 정죄로 정죄하게 될지 모른다. 우리가 심판과 비난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 한은 우리는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가 서로를 향한 사랑 안에서 걸을 때에 세우고 바로잡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그의 죄를 지적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나의 죄가 될 것이다. ​
 +
 +레 19:17-18 너는 네 형제를 마음속으로 미워하지 말며 어떤 식으로든 네 이웃을 책망하여 죄가 그에게 임하지 못하게 하라. 18 ¶ 너는 원수를 갚지 말고 네 백성의 자손들에게 불평하지 말며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주}니라.
 +
 +사도 바울의 조언처럼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마음속으로 형제를 미워하지 않으며 형제를 책망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8장에서 교회 안에서 한 형제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복잡한 절차를 마련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정죄하려는 과정이 아니라 회복하기 위한 기회를 얻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너희는 스스로 주의하라. 만일 네 형제가 네게 범법하거든 그를 꾸짖고 그가 회개하거든 그를 용서하라.”(눅 17:3) 고린도 5장에서 사도 바울이 범죄한 형제를 교회가 내쫓지 않은 것을 두고 교회를 책망하였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그 형제가 진심으로 회개하였을 때 사도 바울은 어떤 권면을 고린도 교회에게 주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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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후 2:4-11 내가 마음이 몹시 괴롭고 아파서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나니 이것은 너희가 근심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에게 더욱 넘치게 베푸는 사랑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함이라. 5 그러나 어떤 사람이 근심을 일으켰을지라도 그가 어느 정도만 나를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나는 너희 모두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지 아니하려 하노라. 6 그런 사람에게는 많은 사람에게서 이같이 벌 받은 것이 충분하니라. 7 그런즉 너희가 오히려 반대로 그를 용서하고 위로함이 마땅하니 혹시라도 그런 사람이 지나친 근심에 잠길까 염려하노라. 8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그를 향한 너희의 사랑을 확증하라. 9 너희가 모든 일에서 순종하는지 너희의 증거를 알기 위해 내가 또한 이런 목적으로 너희에게 썼노라. 10 너희가 누구에게 어떤 일을 용서하면 나도 용서하노라. 만일 내가 누구에게 어떤 일을 용서하였다면 내가 그것을 용서한 것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너희를 위해 한 것이니 11 이것은 사탄이 우리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의 계략들에 대해 무지하지 아니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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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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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비난하려는 성향을 가진 데는 몇 가지 이유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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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난은 자아상(self-image)을 크게 한다. 다른 사람의 실패에 손가락질하며 그를 무너뜨리는 것은 적어도 우리 눈에 우리 자신이 그 사람보다는 조금 더 뛰어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것은 우리에게 교만과 자만과 자아상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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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비난은 종종 즐겁다. 인간의 본성에는 나쁜 소식을 듣고 전하거나 다른 사람의 결점을 드러내는 일에 즐거움을 취하는 성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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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비난하는 자는 비난받는 자보다 자신이 더 뛰어난 것처럼 느낀다. 즉 비난은 우리를 교만으로 세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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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비난은 우리가 살면서 한 일들이나 결정들을 정당화한다. 다른 사람들의 결점이나 넘어짐을 지적함으로써 우리의 결정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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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비난은 우리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를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다. 우리의 완고한 신념과 강한 정신이 다른 사람의 넘어짐으로 인해 입증되기 때문에 비난은 기분을 좋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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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비난은 상처와 보복의 출구이다. 우리는 그가 당하는 일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잠재적으로 혹은 잠재적이지 않을 지라도 우리는 “그가 내게 상처를 주었으므로 그도 상처받는 것이 마땅해” 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넘어진 사람을 비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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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단 받지 아니하려면 판단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주님으로부터 배우자. 우리는 그들의 재판관이 아님을 기억하자. 사랑과 온유와 긍휼과 포용의 영을 취하자.
마7.1-5.txt · 마지막 수정: 2018-03-25 16:19 작성자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