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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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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1.11 [2013-03-10 10:18]
admin
말1.11 [2017-06-20 09:04] (현재)
줄 1: 줄 1:
 +==2012년 9월 30일 주일오전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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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백성의 죄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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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말라기 1장 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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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1:11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인들 가운데서 내 이름이 크게 되며 모든 곳에서 내 이름을 위해 향을 드리고 정결한 헌물을 드리리니 내 이름이 이교도들 가운데서 크게 되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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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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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받은 크리스천으로써 범하기 쉬운 오류 중 하나는 범죄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데 있다. 그것은 “구원의 영원한 안전 보장”이란 성경적 교리를 알게 된 크리스천이 갖게 될 문제이다. “구원의 영원한 안전 보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의 효력이 나의 모든 죄에 있다는 것을 믿는 것과 같다. 즉, 내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 나의 과거의 죄들과 현재의 죄들과 미래의 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의 효력 아래 놓여있고 나는 영원한 속죄를 얻었음을 말한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는데 그 뒤에 죄를 범하게 되었다고 해서 내가 다시 회개하고 죄의 용서함을 얻어야 하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이미 나의 죄 문제는 해결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죽으셔야 할 이유가 없다. 만일 내 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못하였다면 예수님은 다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또 죽으시고 부활하셔야 한다는 셈이다. ​
 +
 +사람들이 “구원의 영원한 안전 보장”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되는 이유는 분명 구원받은 이후에도 우리가 여전히 죄의 본성 아래 있어 죄를 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자 하는 열망도 내게 있고 죄의 쾌락을 즐기고자 하는 열망도 내게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연유로 죄를 범하게 되면 과연 나의 구원은 어떻게 되는가? 하고 성도는 흔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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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2:16-18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되는 줄 알므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이것은 우리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자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의롭게 될 수 없느니라. 17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고자 하다가 우리 자신 또한 죄인으로 드러난다면 그리스도께서 그런 까닭으로 죄의 사역자가 되시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들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내 자신을 범죄자로 만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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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살려다가 죄인으로 드러났다고 해서 그리스도께서 그런 까닭으로 죄의 사역자가 되시는가?​ 성경은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라고 말한다. 왜나면 이미 우리는 죄에 대해 그리고 율법에 대해 죽었기 때문이다. 율법은 살아있는 자에게는 정죄하여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으로는 죽은 자이기 때문에 율법이 더 이상 정죄할 수 없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효력아래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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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할 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의 죄 문제 다시 말해 죄들의 속죄 문제가 해결된 것이지 죄를 범할 수 없게 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를 범할 수 있으며 죄의 본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종종 우리의 죄들의 속죄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성도는 죄를 범하는 것에 대한 심각성을 점차적으로 상실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자신이 죄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자신이 범하는 죄들의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이 자신이 범하는 죄들을 작게 여기면서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라는 점만 인지하면서 살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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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성도가 구원받은 후 내적 성장을 하게 되면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보여주듯이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점점 더 깊이 자각하게 된다. 그러나 지체된 성장은 성도로 하여금 죄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삶을 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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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는 성도들과 믿지 않는 자들 사이에서 우리는 동일한 죄들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믿는 성도들의 죄는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결과가 다르다. 물론 믿는 성도들의 죄들은 이미 그리스도의 피의 효력 아래 용서되었으나 문제는 그 영향력과 결과이다. 이것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죄들보다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왜 그러한가?​ 믿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이 위에 있기 때문이다. 믿는 성도들의 죄는 단순하게 왕에 대한 반역이나 주인에게 대하는 불순종의 개념을 넘어 사랑하는 아버지와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성도의 죄는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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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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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가 보게 될 말라기는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의 죄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말라기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말 1:1에서 “엄중한 부담”이라 일컫고 있다. 말라기는 자기에게 주어진 대언의 말씀을 “부담”으로 느낀 것이다. 그만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슬픔과 괴로움이 담겨있음을 보여준다. “말라기”란 이름은 그 뜻이 “나의 사자”란 뜻이다. 예전에 주의 천사에 대해 언급할 때 천사에 대한 히브리어가 “말락”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바로 말라기가 동일한 단어이다.
 +
 +먼저 이 대언의 말씀이 주어진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당시 상황은 하나님의 백성 유다와 에돔이 바빌론의 느브갓네살왕의 침공으로 인해 나라를 잃고 오랜동안 포로생활을 하다가 유다는 하나님께서 페르시아왕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그가 칙령을 내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고국으로 돌아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하나님의 집을 건축라하고 명령하여 이제 자기 본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은 본국으로 돌아와 어려운 중에 하나님의 집 성전을 건축하고 느헤미야의 지도아래 예루살렘 성벽과 성문을 완공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삶은 예전과 같이 회복되지 못했다. 그들의 눈에 솔로몬이 지은 성전과 비교하였을 때 당시 지어진 성전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으며 이스라엘은 예전의 영토를 회복하지도 자신의 영화도 회복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여전히 다른 나라들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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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시절에 주변의 이방 민족들은 이스라엘의 영화를 보려고 찾아왔었지만 이제 그들의 예루살렘과 성전은 한차례 파괴되어 재건축 되었을 뿐 아니라 그 일로 말미암아 주변 민족들에게서 그들은 자기들의 신앙과 그들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 조롱을 받아야 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민족들의 신들을 따라가며 율법을 버리고 죄들을 범하던 그들에게 하나님의 큰 징계로 이 모든 시련들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주님은 그들을 사랑하셨고 사랑하는 아버지로써 그들이 다시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도록 그들을 본국으로 부르신 것이다. 이제 주님은 그들이 현재의 어려움과 난관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주님을 사랑하여 섬기던 믿음의 조상들처럼 그들이 율법을 준수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신실하며 이방인들의 빛으로써 걷기를 원하셨다.
 +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여러 시련들과 어려움으로 인해 점차적으로 죄를 범하기 시작했다. 말라기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범한 여섯 가지 죄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
 +  I.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함(말 1:1-5)
 +  II. 하나님의 이름을 치욕스럽게 함(말 1:6-2:9)
 +  III. 하나님의 언약을 더럽힘(말 2:10-16)
 +  IV.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반문함(말 2:17-3:6)
 +  V. 하나님의 창고를 도둑질함(말 3:7-12)
 +  VI.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경멸함(말 3: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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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을 우리는 차례 차례씩 몇 주에 걸쳐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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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함(말 1:1-5)=====
 +
 +말라기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 정말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표면적으로는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섬기는 일들은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마음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다만 내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므로 혹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을 보여주기는 해야 하므로 그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는 멀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들을 언급하실 때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사랑”에 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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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1:2-3 주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그러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떤 점에서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주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광야의 용들을 위해 그의 산들과 유산을 피폐하게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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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앞으로 언급할 이스라엘 백성의 죄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필연의 이유이기도 하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부족은 모든 죄들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을 두고 “사랑”을 언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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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22:35-40 그때에 그들 중의 한 율법사가 그분을 시험하려고 그분께 질문하여 이르되, 36 선생님이여,​ 율법에서 큰 명령은 무엇이니이까?​ 하매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38 이것이 첫째가는 큰 명령이요,​ 39 둘째 명령은 그것과 같은 것으로서,​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니라. 40 모든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이 이 두 명령에 매달려 있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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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신명기 6장을 인용한 것이다. 모세는 출애굽 이후에 하나님의 열가지 명령 즉, 십계명과 하나님의 율법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였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신명기를 통해 율법을 다시 언급할 때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우리를 위하여 주신 율법에 순종하라고 말하고 있다. 모세는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읽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주 예수님께서도 율법의 그 목적은 하나님을 사랑함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표면상으로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므로 “너희도 거룩하라”라고 보여지나 그 내면에 들어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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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의 문제점을 거론하실 때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역시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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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 2:4-5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조금 있나니 이는 네가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이라. 5 그러므로 네가 어디로부터 떨어졌는지 기억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하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네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속히 네게 가서 네 등잔대를 그것의 자리에서 옮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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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먼저 자신의 백성을 사랑하시고 이제 자신의 백성에게 자신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신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는 “주께서 어떤 점에서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였다. 종종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질문이기도 하다. 고난과 어려움을 겪는 하나님의 백성은 종종 하나님께서 과연 자신의 백성을 사랑하신다면 왜 우리에게 이런 고난이 찾아오고 우리를 심한 박해가운데 두시는가?​ 혹은 우리로 하여금 이런 궁핍한 일을 겪게 만드시는가?​ 혹은 우리로 하여금 이런 치욕스런 일들을 당하게 하시는가?​ 하고 하나님께 묻곤 한다. 그럴 때마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신 것과 동일하게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라고 하실 것이다. 주님은 자신의 백성을 사랑하셨다는 증거로 언급하신 것이 “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수세기동안 하나님의 백성에게 참으로 어려움을 던진 말이기도 해왔다. 과연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미워하시는가?​ 한번은 누군가가 히브리 크리스천이었던 Gaebelein 박사에게 “하나님께서 에서를 미워하셨다고 하셨는데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라고 말했더니 Gaebelein 박사는 “저는 2절이 더 어렵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셨는지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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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라고 말할 때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점에서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나요?​ 증명해보세요.”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은 불신과 불순종의 시작이 된다. 예를 들어 이브 즉 하와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금지된 열매를 먹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좋은 것들에대해 금하고 계신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이거나 우리에 대해 소홀이 대하신다고 생각하게 만들고자 한다. 그는 우리의 생각속에서 속삭인다. “지금 너에게 주어진 환경들을 봐봐. 이런 어려움과 고난과 시련이 왜 오는거야?​ 하나님께서 정말 너를 사랑하는 것 맞니?” 사탄은 고난받던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렇게 속삭였을 것이다. “너희가 거두어야 할 곡식이 어디있니?​ 하나님께서 너희를 돌보는 것이 맞냐? 만일 그러하다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사랑하는 것이냐?​” 우리는 자신의 죄악을 깨닫기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심을 두가지 측면에서 말씀하고 계신다. 먼저는 주님께서 은혜 가운데 야곱을 선택하고 에서는 거부하였다는 것과 두번째는 주님이 에돔은 심판하였어도 범죄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징계 이후 포로생활에서 구속되어 본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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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왜 야곱을 사랑하셨는가?​ 그가 어떤 뛰어난 선한 행위가 있어서였는가?​ 아니다. 그는 자기 이름만큼이나 속이는 자였다. 그가 어떤 뛰어난 지혜가 있어서였는가?​ 아니다. 그는 세상적으로는 지혜로웠을지 몰라도 영적인 일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셨는가?​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였다. 야곱에게서 하나님께서 호의를 보일만한 어떤 긍정적인 것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인 우리를 사랑하실 때에도 그러하다. 주님은 우리에게서 어떤 호의를 얻을만한 것이 있어서 우리를 사랑하셨는가?​ 아니다. 오히려 전혀 없다! 우리는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들이었고 하나님의 원수였던 자들이고 진노의 자녀들이었다.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사랑할 때 보여 주신 자신의 크신 사랑으로 인하여 심지어 우리가 죄들 가운데서 죽었을 때에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느니라.)”(엡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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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우리를 위하여 죄들의 대속적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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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에서는 미워하시는가?​ 먼저 미워하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때로는 미워하다는 말은 상대적인 개념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먼저는 싫어하다는 뜻으로 쓰일 수 있다. 대부분이 이런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종종 미움은 사랑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이해해야 할 때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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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 29:30-31 야곱이 라헬에게도 들어가니라. 그가 또한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고 또 다른 칠 년을 여전히 그와 함께하며 섬기니라. 31 주께서 레아가 미움 받는 것을 보시고 그녀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수태하지 못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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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곱의 라헬에 대한 사랑은 레아에 대한 것보다 더 하기 때문에 라헬에 대한 사랑에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레아는 덜 사랑받는 즉, 미움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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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6: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이는 그가 이 주인을 미워하고 저 주인을 사랑하거나 혹은 이 주인을 떠받들고 저 주인을 업신여길 것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맘몬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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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상대적인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우리가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는 것은 한 주인은 상대적으로 덜 사랑받기 때문이다. 왜 우리가 하나님과 맘몬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는가? 사람들은 하나님도 잘 믿고 또 부자가 되어 살면 더 좋은 일 아닌가? 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덜 사랑받게 되어있다. 어느 쪽이 덜 사랑받게 되겠는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돈은 덜 사랑받을 것이고 돈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은 덜 사랑받게 될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과 맘몸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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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4:26-27 어떤 사람이 내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녀나 형제나 자매나 참으로 자기 생명도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아니하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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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가족의 일원들을 싫어하고 생명도 싫어하게 되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도가 아니다. 오히려 주님은 여러분이 가족의 일원들이나 혹은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주님의 제자가 되기 어려울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 섬기는 일을 여러분의 가족 일원들보다 아니 어떤 일보다 더 우선적으로 놓지 않는다면 즉 더 사랑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그분의 제자되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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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대할 때 짜투리로 대하는 일은 다반사이다. 즉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모든 일의 나중인 셈이다. 과연 내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최우선적으로 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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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서는 내가 미워하였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시던 것에 비해 에서는 덜 사랑받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장자권과 축복을 주셨지만 에서에게는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으셨다. 뿐만 아니라 이제 시간이 흘러 야곱 즉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성전을 건축하고 성벽을 재건하였을 때에 동일하게 바빌론의 침공으로 무너진 에돔은 민족적으로 회복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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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1:4 에돔은 이르기를,​ 우리가 궁핍하게 되었으나 돌아와서 황폐한 곳들을 세우리라,​ 하거니와 만군의 주는 이같이 말하노라. 그들이 세울지라도 나는 헐리라. 그들이 그들을 일컬어 사악한 지역이라 하며 주께서 영원토록 격노하시는 백성이라 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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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적으로 에돔 족속은 사악한 백성이었다. 오바댜서는 에돔의 사악함을 열거하면서 이 민족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회복하려고 하였으나 주님께서 그들의 죄악으로 인한 심판으로 멸망케 하셨다. 일반적으로 에돔 족속의 끝은 헤롯대왕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후 에돔은 역사 속에서 완전히 사라져 민족적 정체성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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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에돔은 심판하여 멸망케 하였을 때에도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은혜를 베풀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의 힘으로 회복할 능력이 없을 때에 주님은 그들이 바빌로에서 포로생활 중에 그들을 멸망당하지 않게 아끼셨다. 우리는 그러한 예를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바빌론에서 높은 지위까지 올랐으며 아각사람 하만이 모든 유대인들을 죽이려는 시도를 하였을 때에 주님은 여인 에스더를 통해 오히려 유대인들의 원수들에게 멸망을 선포하게 하셨고 사람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게 하였다. 또한 페르시아왕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여 그들로 하여금 본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칙령을 내리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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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참으로 약한 백성이었다. 그들에게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느헤미야와 에스라와 학개와 스가랴와 같은 지도자들과 대언자들을 통해 그들이 본국에 돌아와 섬기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주님과의 언약에 복종하는 문제에 있어서 그들은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과 함께 하셨고 그들을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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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과 박해와 여러 어려움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님은 여전히 신실하시며 우리와 함께 하시며 또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신실하게 섬기길 원하신다. 주님은 그럴 때 우리를 축복하겠다고 약속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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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1:5 너희가 눈으로 보고 이르기를,​ 주께서는 이스라엘 지역에서부터 크게 되시리로다,​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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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라기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특권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지역”이라 번역된 영어단어는 “border”이다. 오늘날로 “국경”이라 번역되는 단어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예전에 이스라엘이 영화를 누릴 때에는 주변의 민족들과 멀리 있는 나라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소식을 듣고 찾아와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에 대해 배우고 그분께 영광을 돌렸다. 이 말은 이스라엘이 다시 영화를 누리기를 바라는 백성의 염원이 담긴 말이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영화를 누리게 되는가? 그것은 백성이 믿는 하나님께서 높임을 받으시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알려지며 또한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영광을 돌리고 찬양을 드림으로써 이루어진다. 백성의 특권은 하나님에 대해 알리며 그분을 가까이 섬길 수 있다는 것이다.
 +
 +비록 지금은 이스라엘과 그들이 믿는 주님이 주변 이방신들을 믿는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지만 이제 하나님의 역사와 도우심으로 예전의 영화를 되찾게 되기를 소망하고 있는 백성의 마음이 담겨있다. “주께서는 이스라엘 지역에서부터 크게 되시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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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또한 사악한 자의 결말과 하나님의 백성의 결말의 차이를 보여준다. 에돔은 이스라엘이 바빌론의 침공으로 멸망할 때 기뻐하였고 그들을 약탈하고 또한 자기들이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 일로 인해 하나님은 에돔을 기뻐하지 않으셨다. 결국 에돔 역시 동일하게 파멸을 맞이했다. 에돔은 다시 돌아와 나라를 세울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과 성벽을 건설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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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죄를 범하는 자신의 백성을 징계하셨지만 그들을 심판하여 멸망케 하시는 것은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은 자신의 백성이 범죄할 때 그들을 징계하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멸망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다시 일어남”이 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다시 자신의 백성을 통해 영화롭게 되기를 원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향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고통가운데 고난 가운데 두시는가?​ 하며 조롱하지만 사실은 징계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준다. 만일 하나님께서 징계하지 아니하신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아니함을 보여준다. 그 뒤에는 완전한 파멸만 오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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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 12:6-8 주께서 사랑하는 자를 친히 징계하시고 자신이 받아들이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시느니라,​ 하셨느니라. 7 너희가 징계를 견디어 내면 하나님께서 아들을 대우하듯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자가 무슨 아들이냐?​ 8 모든 사람이 징계를 받으므로 너희에게 징계가 없으면 너희가 사생아요 아들이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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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여러분에게 자녀가 있는데 그들이 잘못되어 감에도 여러분이 그들을 징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들을 망치는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벨리알의 자식들이 되도록 두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은 자기 백성들이 벨리알의 자식들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러므로 고난이나 어려움으로 오는 하나님의 징계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아들로 대우하시기 위해 주시는 사랑의 표식인 것이다. “너희에게 징계가 없으면 너희가 사생아요 아들이 아니니라.”
 +
 +히 12:11 이제 어떤 징계도 그 당시에는 기쁘게 보이지 아니하고 슬프게 보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단련된 자들에게 의의 화평의 열매를 맺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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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서 의의 열매를 원하신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의의 열매를 맺기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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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이것은 자기 백성의 형통함을 크게 기뻐하시는 주님을 보여주신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징계만 하시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주님은 자신의 백성을 축복하기를 원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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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35:27 나의 의로운 사정을 지지하는 자들이 기뻐 외치고 즐거워하게 하소서. 참으로 그들이 계속해서 이르기를,​ 자기 종의 형통함을 기뻐하시는 주를 크게 높일지어다,​ 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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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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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과연 자기들을 사랑하시는가?​ 하고 의심 가운데 있었다. 그것은 결국 그들의 모든 섬김에 있어 신실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자기를 사랑하지 아니함을 탓하기 앞서 먼저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노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심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혹 첫사랑을 잃었는가?​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심을 깨달아야 할 때이다. 다음 주는 하나님의 백성의 죄들 두 번째 편을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