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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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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2.15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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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0월 14일 주일오전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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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백성의 죄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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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말라기 2장 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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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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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사회적 기본 단위를 이루는 것은 가족이다. 가족은 그 시작이 창 2장의 아담과 이브에게서 볼 수 있으며 가족은 또 다른 가족을 형성하기 위한 파생체가 된다. 가족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한 몸이 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오늘 우리는 “결혼”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될 것이다. 오늘은 말라기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백성의 죄들 세번째 시간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더럽히”는 죄에 대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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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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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라기는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말 1:1에서 “엄중한 부담”이라 일컫고 있다. 말라기는 자기에게 주어진 대언의 말씀을 “부담”으로 느낀 것이다. 그만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슬픔과 괴로움이 담겨있음을 보여준다. “말라기”란 이름은 그 뜻이 “나의 사자”란 뜻이다. 예전에 주의 천사에 대해 언급할 때 천사에 대한 히브리어가 “말락”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바로 말라기가 동일한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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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라기가 하나님의 엄중한 부담을 선포할 당시 상황은 바빌론의 느브갓네살왕의 침공으로 인해 나라를 잃고 오랜동안 포로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유다는 어려운 중에 하나님의 집 성전을 건축하고 느헤미야의 지도아래 예루살렘 성벽과 성문을 완공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삶은 예전과 같이 회복되지 못했다. 그들의 눈에 솔로몬이 지은 성전과 비교하였을 때 당시 지어진 성전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으며 이스라엘은 예전의 영토를 회복하지도 자신의 영화도 회복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여전히 다른 나라들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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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시절에 주변의 이방 민족들은 이스라엘의 영화를 보려고 찾아왔었지만 이제 그들의 예루살렘과 성전은 한차례 파괴되어 재건축 되었을 뿐 아니라 그 일로 말미암아 주변 민족들에게서 그들은 자기들의 신앙과 그들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 조롱을 받아야 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민족들의 신들을 따라가며 율법을 버리고 죄들을 범하던 그들에게 하나님의 큰 징계로 이 모든 시련들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주님은 그들을 사랑하셨고 사랑하는 아버지로써 그들이 다시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도록 그들을 본국으로 부르신 것이다. 이제 주님은 그들이 현재의 어려움과 난관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주님을 사랑하여 섬기던 믿음의 조상들처럼 그들이 율법을 준수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신실하며 이방인들의 빛으로써 걷기를 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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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여러 시련들과 어려움으로 인해 점차적으로 죄를 범하기 시작했다. 말라기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범한 여섯 가지 죄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
 +  I.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함(말 1:1-5)
 +  II. 하나님의 이름을 치욕스럽게 함(말 1:6-2:9)
 +  III. 하나님의 언약을 더럽힘(말 2:10-16)
 +  IV.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반문함(말 2:17-3:6)
 +  V. 하나님의 창고를 도둑질함(말 3:7-12)
 +  VI.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경멸함(말 3: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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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하나님의 언약을 더럽힘(말 2:​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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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로 본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죄”였고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치욕스럽게 함” 이었다. 오늘은 세 번째 시간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더럽히”는 하나님의 백성의 죄에 대해 보겠다.
 +
 +**말 2:10 우리 모두에게 한 아버지가 계시지 아니하냐?​ 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우리가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더럽힘으로 각 사람이 자기 형제를 대적하며 배신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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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모두에게 한 아버지가 계시지 아니하냐?​”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창조하신 분이시므로 그분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가 되신다. 그 다음 구절이 그 점을 명확히 한다. “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지 아니하셨느냐?​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창조의 때로 우리의 시각을 돌리게 한다. 맨처음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창조로 인해 사람의 아버지가 되셨다. 그런 점에서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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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3:38 게난은 에노스의 아들이요,​ 에노스는 셋의 아들이요,​ 셋은 아담의 아들이요,​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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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단순하게 육체적 창조만 그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만드셨을 때 단순히 육체적인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영을 불어 넣으심으로써 그는 영적 존재가 되었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 즉 아담에게 있어 하나님은 육체적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아버지가 되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과의 그런 관계를 잃어버렸다. 죄가 들어온 이후로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의 형상으로 태어나지 아니하고 아담의 형상을 따라 태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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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 5:1-3 이것은 아담의 세대들에 대한 책이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날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그를 만드시되 2 그분께서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시고 그들을 창조하시던 날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의 이름을 아담이라 부르시니라. 3 아담이 백삼십 년을 살며 자기 모양대로 자기 형상에 따라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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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영적 아버지로 두게 되는 것은 거듭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성령을 통해 우리가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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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여기 말라기는 단순히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고 우리 모두는 그분의 창조물이라는 관점에서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은 잃어버렸다 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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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3:9 그것으로 우리가 하나님 곧 아버지를 찬송하며 또 그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들어진 사람들을 저주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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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와 주로 믿고 신뢰함으로써 거듭날 때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 중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참된 거룩함으로 창조하신 새 사람을 입”게 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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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엡 4:24 또 너희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참된 거룩함으로 창조하신 새 사람을 입을 것을 가르침을 받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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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옷입는 것과 같다. “너희 가운데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자는 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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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우리 모두가 한 아버지를 두고 있다면 우리 모두는 같은 아버지를 둔 형제들이다. 어찌하여 우리가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더럽힘으로 각 사람이 자기 형제를 대적하며 배신하느냐?​ 만일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더욱 더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들이다. 하나님께서는 형제가 형제를 속이는 것을 싫어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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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전 4:6 아무도 어떤 일에서든 도를 넘어 자기 형제를 속여 빼앗지 말라. 우리가 또한 너희에게 미리 경고하고 증언한 것 같이 주께서 그런 모든 자들에게 복수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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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오늘날 사회는 서로 믿지 못하는 사회로 변해버린 것 같다. 그것은 비단 외부의 일만 아니다. 크리스천이 다른 크리스천을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특히 여기서는 “결혼”과 관련하여 형제를 배반하는 것들을 말하고 있다. 11절이 그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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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2:11 유다는 배신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안에서는 가증한 일이 저질러졌나니 유다가 주께서 사랑하시는 것 즉 그분의 거룩함을 더럽히고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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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유다와 이스라엘과 또한 왕국의 수도인 예루살렘이 어떻게 하나님의 언약을 더렵혔는지를 말씀하고 계신다. 그것은 “유다가 주께서 사랑하시는 것 즉 그분의 거룩함을 더럽히고 이방 신들의 딸과 결혼”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결혼”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지고 계시는지 우리에게 잘 보여준다. 어떤 사람들은 성적 관계가 더러운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올바른 결혼 안에서 행해질 때 주님은 그것을 “사랑”하시고 그것을 “거룩”하다고 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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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 13:4 결혼은 모든 것 가운데 존귀한 것이요 잠자리는 더럽히지 말아야 하거니와 음행을 일삼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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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이 결혼식을 치르면서 한 서약은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그것은 거룩하며 또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실행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결혼을 자신의 백성의 삶에 있어 특별한 목적과 의미가 있다고 여기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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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우리가 우리 입으로 한 서약에 대해 죄를 범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하게 보시는 것과 사랑하시는 것을 깨뜨리는 것과 같다. 결혼은 인간이 세운 제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인류를 향한 선한 뜻이었으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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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결혼 관계을 사랑하신다. 왜 그러한가?​ 결혼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바울은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와 같음을 말한다. 결혼은 또한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일 뿐 아니라 가족의 일원인 남자와 여자와 자녀들의 필요를 채우는 방식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결혼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모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결혼을 통해 사랑과 순종을 배워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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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가?​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언약에 대한 배반으로 보시고 또한 가증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믿지 아니하는 이방 민족을 배우자로 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의 결혼을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뿐더러 이것은 영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성도의 마음을 주를 섬기는 데서 돌이키게 하거나 방해할 것이다. 그것은 영적 간음을 범하는 것과 같다. 성경은 여러 군데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이방 민족들을 아내로 두었을 때 나타나는 폐혜를 기록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나오게 되었을 때 무리 중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던 사람들도 섞여 있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과 결혼하여 그들을 따라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종종 불평의 근원지가 되었다. 민 11:4은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에 빠짐으로써 이스라엘 자손들 역시 같은 죄에 빠지게 되어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까?​”하며 불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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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수기를 보면 모압왕이던 발락은 이스라엘을 저주하길 원하여 발람을 고용했다. 그런데 발람은 하나님의 경고를 받고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 없었으며 오히려 축복하고 말았다. 그 뒤 발람은 발락에게 하나님의 백성이 스스로 저주받는 방법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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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 25:1-3 이스라엘이 시팀에 머무르며 백성이 모압의 딸들과 행음하기 시작하니라. 2 그들이 자기 신들에게 희생물을 드릴 때에 백성을 부르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니라. 3 이스라엘이 스스로 바알브올에게 연합하였으므로 주의 분노가 이스라엘을 향해 타오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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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 2:14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몇 가지 있나니 이는 거기에 발람의 교리를 붙잡는 자들이 네게 있기 때문이로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들에게 희생물로 바친 것들을 먹게 하고 또 음행하게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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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락에게 일러준 발람의 계략은 간단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의 딸들을 아내로 주라는 것이었다. 이보다 더 간단한 계략이 어디있는가?​ 모압의 아리따운 여자들을 보고 백성들은 그들과 결혼하고 이제 그들의 신들을 같이 섬기게 된 것이다. 이 일로 재앙이 이스라엘 진영에 내려져 이만 사천 명이 죽임을 당했다. 믿지 아니하는 배우자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참된 하나님이 아닌 것들을 섬기게 할 것이다. 그것이 돈이 되었든지 명예가 되었든지 학벌이 되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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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로몬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왕이었으나 그가 이방 여인들을 아내들로 맞이한 후 그들은 솔로몬의 마음을 돌이켜 그로하여금 온전히 주님을 따르지 않게 만들었다. 믿지 아니하는 배우자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주님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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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북왕국이 영적으로 완전히 쇄락하게 된 요인에는 한 여인이 있었다. 아합은 이세벨을 아내로 맞이했는데 이세벨은 시돈 왕 에드바알의 딸로 그녀로 인해 이스라엘은 바알 신을 섬기게 되었고,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는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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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들은 그것은 단지 이방 신들을 섬기는 우상과 관련된 이방민족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바울은 믿는 크리스천에게 무어라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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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후 6:14-18 너희는 믿지 않는 자들과 더불어 공평하지 않게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 의와 불의가 어찌 사귀겠느냐?​ 빛과 어둠이 어찌 친교를 나누겠느냐?​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일치하겠느냐?​ 혹은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무슨 몫을 나누겠느냐?​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찌 조화를 이루겠느냐?​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니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고 그들 가운데 거닐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17 주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가운데서 나와 분리하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받아들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아들딸이 되리라. 전능자 주가 말하노라,​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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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의 결혼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눈에 여전히 가증한 것일 뿐이다. 만일 여러분이 믿지 아니하는 사람을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다면 실제 결혼하기 전에 그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해야 한다. 만일 결혼 전에 인도할 수 없다면 결혼 후에는 더욱 할 수 없다. 결혼 전에는 배우자를 얻기 위해 배우자의 요구를 들어주지만 결혼 후에는 그럴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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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여기서 인종적 구분을 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다. 주님은 배우자의 “믿음”을 보고 계신다. 예를 들어 모압여인이었던 롯은 보아스의 아내가 되었을 뿐 아니라 이 계보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롯은 비록 육체적으로는 이방 여인이었지만 그녀는 모압의 신들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유대교로 개종한 여인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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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2:12 이 일을 행하는 자가 선생이나 학자나 혹은 만군의 주께 헌물을 드리는 자라도 주께서 야곱의 장막들 가운데서 그 사람을 끄집어내어 끊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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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는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보는지 보여준다. 주님은 그 사람이 이스라엘에서 “선생” 즉 “랍비”이거나 혹은 학자 즉 “바리새인”이라 해도 혹은 하나님께 헌물을 드리는 “제사장”일지라도 그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들을 야곱의 장막들에서 끊으시겠다고 경고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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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2:13 또 너희가 눈물과 울음과 부르짖음으로 주의 제단을 덮으면서 또한 이런 일을 행하였나니 그러므로 그분께서 다시는 헌물을 중히 여기지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선한 뜻으로 받지도 아니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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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 죄를 범할 때 그들이 젊었을 때 아내로 두었던 히브리 여인을 버리고 예쁘고 그들의 취향에 맞는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취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더욱 진노를 가져오게 만든 이유였다. 쫓겨난 여인들은 주의 성전으로 나와 하나님께 눈물과 울음과 부르짖음으로 주께 아뢰는데 그들을 내쫒은 남자들은 주께 헌물을 드린ㄷ고 주께 나아온다. 그렇다면 동일한 제단에 한 사람은 “눈물과 울음과 부르짖음”으로 나아오고 다른 사람은 “헌물”을 가지고 나아오는 것이다. 주님은 그들이 드리는 헌물을 받지 아니하시겠다고 말씀한다. 비록 그들이 자기들의 잘못을 뉘우치더라도 바로잡지 않는한 그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달래려는 어떤 선물도 선한 뜻으로 받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
 +**말 2:14 그럼에도 너희는 이르기를,​ 어찌된 까닭이니이까?​ 하는도다. 그 까닭은 주께서 너와 네가 어려서 취한 아내 사이에 증인이 되셨기 때문이라. 네가 그녀를 대적하며 배신하였으나 그녀는 여전히 네 짝이요 네 언약의 아내니라.**
 +
 +사람들은 결혼하고 이혼하는 문제가 내가 편하게 살고자 하는 것인데 무슨 잘못이 있느냐?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주님은 결혼서약은 주님께 엄숙한 것이며 주님은 남편과 아내 사이에 “증인”이 되신다고 말씀하신다. 여러분은 결혼 서약을 행할 때 단지 주례자와 하객들에게만 한 것이 아니다. 여러분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증인으로 그 서약을 맹세한 것이다. 주님은 여러분이 그 서약을 준행하며 지키기를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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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여전히 네 짝이요 네 언약의 아내니라.” 이것은 결혼의 목적과 구속력에 대해 말한다. 여기 “짝”이라 번역된 단어는 “companion”이다. 쉽게 말하자면 “반려자”이다. 여러분의 아내는 여러분의 인생의 반려자이다. 아내는 남편의 반려자요,​ 남편은 아내의 반려자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배우자를 허락하신 것은 배우자가 여러분의 인생의 반려자로써 서로를 완전하게 하려는데 있기 때문이다.
 +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셨을 때 그에게는 짝이 없었다. 그와 함께 인생을 같이 살아갈 자가 없었던 것이다. 주님은 아담을 잠들게 하고 그의 갈비뼈를 취하였다. 어떤 면에서 남자는 여자가 있어야 완전한 몸이 된다.
 +
 +창 2:23-24 아담이 이르되, 이는 이제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 그녀를 남자에게서 취하였으니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
 +결혼에서 일 더하기 일은 완전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아내는 언약의 아내이다. 그것은 결혼의 구속력을 말한다. 여러분은 결혼을 통해 “언약” 아래 있다.
 +
 +마 19:3-9 바리새인들도 그분께 나아와 그분을 시험하여 그분께 이르되, 남자가 무슨 이유로든 자기 아내를 버리는 것이 율법에 맞나이까?​ 하매 4 그분께서 대답하여 그들에게 이르시되,​ 처음에 그들을 만드신 분께서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시고 5 말씀하시기를,​ 이런 까닭에 남자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하신 것을 너희가 읽지 못하였느냐?​ 6 그런즉 그들이 더 이상 둘이 아니요, 한 육체이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거늘 7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 그녀를 버리라고 명령하였나이까?​ 하니 8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이 강퍅하므로 너희 아내를 버리도록 너희를 허락하였으나 처음부터 그것은 그렇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 외에 다른 이유로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자는 간음하며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하는 자는 간음하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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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은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으로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 오직 결혼의 언약은 배우자의 죽음과 음행 즉 간음의 연고가 아니면 깨어지지 않는다. 맨처음 모세가 남자가 아내를 버릴 수 있는 조건으로 언급한 것은 여자에게서 어떤 “부정한” 것을 발견하였을 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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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24:1 남자가 아내를 취하여 그녀와 결혼한 뒤에 그녀에게 부정함이 있음을 발견하였으므로 그녀가 그의 눈에 은총을 얻지 못하거든 그는 이혼 증서를 써서 그녀의 손에 주고 그녀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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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부정한” 것의 의미를 바꾸기 시작했다. 예수님이 지상에 계셨을 때 사람들은 빵을 태워먹는 것도 이혼사유에 들어간다고 판단했다. 그런 연유로 바리새인들은 “남자가 무슨 이유로든 자기 아내를 버리는 것이 율법에 맞나이까?​”라고 그들이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를 주님께 낸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은 사람이 깨뜨릴 수 없음을 언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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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 당시에 믿는 크리스천에게서도 결혼의 문제는 대두되었다. 당시의 문제는 믿지 아니하는 가정에서 한 사람이 주 예수님을 구주와 주로 믿기 시작한 경우 이 때는 결혼의 문제가 어떻게 되는지가 혼란스러웠다. 이제 가치관이 틀려진 배우자를 두고 서로 같이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졌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바울은 고린도전서7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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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7:10-15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령하노니 명령하는 이는 내가 아니라 주시니라. 아내는 자기 남편을 떠나지 말라. 11 그러나 그녀가 떠나거든 결혼하지 말고 지내든지 아니면 자기 남편과 화해하라. 또한 남편도 자기 아내를 버리지 말라. 12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주가 아니라 내가 말하노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않는 아내가 있는데 그녀가 그와 함께 살기를 기뻐하거든 그는 그녀를 버리지 말며 13 또한 여자에게 믿지 않는 남편이 있는데 그가 그녀와 함께 살기를 기뻐하거든 그녀는 그를 버리지 말라. 14 믿지 않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히 구별되고 믿지 않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히 구별되었나니 그렇지 않으면 너희 자녀들도 부정하였을 터이나 이제 그들이 거룩하니라. 15 그러나 믿지 않는 자가 떠나거든 떠나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그런 경우에 속박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에 이르도록 우리를 부르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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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과 아내 모두 믿는 크리스천일지라도 마음이 다르거나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같이 사는 것이 정말 힘들어 갈라지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런 경우 바울은 그들이 설령 갈라지더라도 반드시 화해하든지 아니면 결혼하지 말고 지내야 할 것을 명령한다. 남편과 아내 모두 믿는 경우 그들에게 이혼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쪽이 믿지 아니한 경우 그 쪽이 떠나길 원한다면 떠나가게 하라고 말한다. 그런 경우는 결혼의 속박에 영향 받지 아니한다. 이 경우 믿는 자와 다시 결혼하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
 +
 +**말 2:15 그분께는 영의 여분이 있었으되 그분께서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것은 그분께서 하나님을 따르는 씨를 구하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너희 영을 조심하여 결코 어려서 취한 아내를 대적하며 배신하지 말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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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가정이 영적 그리고 육체적으로 하나가 되기를 원하신다. 만일 가정이 이혼으로 갈라져 있다면 그 안에서 자라는 아이는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일에 방해를 받는다. 아이는 정신적으로 어떤 면에서 영향을 받게 된다. 보통 문제아이들의 가정은 결손인 경우가 많다. 왜 가정이 바로 세워져야 하며 남편과 아내는 결혼이라는 관계를 통해 서로 사랑하며 서로 존중하며 섬겨야 하는가? 하나님을 따르는 씨를 구하고자 함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 역시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돌봄을 배우며 또한 부모에게 순종하듯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부모를 섬기듯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배우게 되길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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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결혼 관계를 두고 “너희 영을 조심하여” 살펴야 한다. 만일 마음에 있는 배우자가 믿지 아니하는 자라면 반드시 먼저 주님을 믿도록 인도해야 한다. 결혼 후에는 너무 늦는다. 또한 결혼 서약을 통해 우리는 아내와 하나님과의 언약 아래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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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2:16 주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하노라. 나는 아내 버리는 것을 미워하노라. 사람이 자기 옷으로 폭력을 덮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 영을 조심하여 배신하지 말지니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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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내 버리는 것을 미워하노라.” 하나님께서는 “이혼”을 미워하신다. 주님은 어떠한 경우에서든지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버리는 것을 원치 않으시며 좋은 감정으로 대하지 아니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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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자기 옷으로 폭력을 덮나니” 오늘날 결혼서약을 할 때 서로에게 반지를 끼워주는 풍습이 있다. 그런데 성경은 이와 다른 풍습을 가지고 있다. 남자가 여자에게 자신의 옷을 덮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남자는 아내를 보호하며 사랑으로 돌볼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룻기에서 볼 수 있다. 보아스는 룻의 가까운 친족이었기 때문에 룻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그런데 룻이 그것을 원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오미는 룻에게 방법을 알려주는데 그것은 보아스가 축제가 끝난 후 곡식단에 누워 자는 것을 보거든 그의 발치에 누워있다가 그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 그에게 “당신의 옷자락으로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당신은 가까운 친족이니이다.”(룻 3:9)라고 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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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아내와 같이 여기셨다. 주님은 이스라엘 위로 자신의 옷자락을 펴서 언약 속으로 들어갔다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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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겔 16:8 이제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가며 너를 보니, 보라, 네 때가 사랑을 할 때더라. 내가 내 옷자락을 네 위에 펴서 너의 벌거벗은 것을 덮어 주며 참으로 내가 네게 맹세하고 너와 함께 언약 속으로 들어가매 네가 내 것이 되었느니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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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연유에서 우상숭배는 영적 간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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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만일 남자가 여자를 버리는 것은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과 같다. 그런데 남편과 아내는 한 몸이므로 남자는 자기 옷으로 스스로에게 폭력을 덮는 것과 같다. 그것은 또한 언약을 파기하는 것이다. “그녀는 언약의 아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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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 영을 조심하여 배신하지 말지니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주님은 두 번에 걸쳐 동일한 말씀을 하신다. 주님께서 “결혼”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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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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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결혼 서약의 언약아래 있다면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섬기기를 원하신다. 그 언약은 하나님께 매우 값진 것이며 주님이 사랑하는 것이고 주님께 거룩한 것이다.
  
말2.15.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